그리고 육경한 앞에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선미가 가늘란 손가락을 내밀자마자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꺼져!"선미는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쿵 하는 소리와 함께 술잔이 선미의 얼굴을 스쳐 뒤쪽의 액정화면에 부딪혀 와르르 깨졌다.남자는 술에 취해 벌겋게 달아오른 눈을 치켜뜨고 사람을 잡아먹으려는 악마처럼 음흉한 소리를 냈다."꺼져!"그 무서운 표정에 선미는 놀라서 다리에 힘이 빠졌다.옷 단추를 잠글 겨를도 없이 허둥지둥 뛰쳐나갔다.밖으로 막 나왔을 때, 영숙이한테 한 발 걷어 맞았다."이년아, 그 남자가 너 좀 더 쳐다보면 데려갈 줄 알았냐?”선미의 마른 몸은 바닥에서 끓은 채 부들부들 떨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정말 아니에요.”"그렇게 포기할 줄 모르고 계속 희망을 품고 발버둥 치더니, 이젠 정신 차렸지?”영숙이는 영수증 한 묶음을 꺼내 선미의 얼굴에 내던졌다. "오늘 밤의 손실한 돈을 다 갚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선미는 그 영수증 위에 찍혀진 어마어마한 숫자를 보고 놀라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계속 머리를 조아렸다."잘못했어요, 제발 용서해주세요. 정말 잘못했어요!”이 돈은 그녀가 죽어서도 갚을 수 없는 금액이었다. "네가 벌린 일이야. 사람은 마음이 하늘보다 높아서는 안 돼. 자기 주제를 알아야지. 우리는 단지 너더러 함께 술을 마시라는 것일 뿐인데, 너는 밥 한술에 배불러지고 싶어 하잖아!”영숙이는 조금도 공감할 생각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 "하늘에 너 같은 작은 참새가 날아올라 갈 수 있을 것 같아?”그녀가 이렇게 건방지게 작은 참새 따위가 가지 위로 날아올라 봉황새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어떻게 이렇게 큰 손실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들이 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큰놈에게 미움을 사면 안 된다.육경한처럼 일이 많은 사람한테도 웃는 낯으로 받쳐줘야 한다. 영숙이는 선미의 순진한 얼굴을 보며 말했다. "네가 그를 따라가서 사는 삶은 여기보다 더 비참할 것이야.
이 목소리...육경한의 눈은 순간 뭔가에 홀린 듯 빨갛게 물들었다. 그는 손을 짚고 바닥에서 일어나 이 여자를 자기 품에 껴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이때 그녀가 검은색 하이힐을 들어 올려 그의 손등에 발을 디뎠다.여자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너 지금, 이 꼴이..."말소리가 잠시 멈추더니 구두 굽이 남자의 손등을 짓눌렀는데 마치 남자의 손바닥을 뚫고 싶은 것 같았다."아무도 원하지 않는 들개 같아.”이 말을 마치자 검은 구두 굽은 육경한의 시선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소원아!"그는 그제야 막혔던 목구멍이 터졌다."가지 마!"그는 입안에 온통 피 냄새였고, 말도 안 되게 쉰 목소리였다.파란색 고급 차의 후미등이 깜빡였는데 마치 그를 비웃고 불쌍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가지 마...”모든 소리가 자동차의 시동 소리 속에 파묻혔다."가지 마...제발...”육경한은 눈 밑이 촉촉하게 되었고, 바닥 위로 눈물을 떨구며 바람 속에서 미친 듯이 소리쳤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소종이 찾아올 때까지 말이다.그날 밤, 소중은 육경한을 태우고 온 서울을 돌아다니며 소원을 찾았다.하늘가에 동이 트기 시작했다.소종은 조금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대표님, 어젯밤에 술을 많이 마셨으니 먼저 약을 드실래요?”사실 그는 육경한이 너무 많이 마셔서 환각을 일으켰다고 생각한 것이었다.소원 씨가 죽은 지 이미 5년이 되었다.뒷좌석에 앉은 육경한은 검은색 셔츠 위에 흙을 뒤집어쓴 채 풀이 죽어 있었다.그는 손등의 핏자국을 보며 엉뚱하게 대답했다. "그녀가 돌아왔어.”소종은 여전히 그가 헛것을 봤다고 생각했다.'만약 소원 씨가 아직 살아 있다면 대표님 집에 누워있는 사람은 또 누구야?'소종은 감히 계속 생각하지 못했고, 진저리가 났다....아침에 작업실에 가려 하는 윤혜인이 차에 올라탔는데 운전자는 기사가 아니라 곽경천이었다."오빠, 오늘 안 바빠?”"응, 내가 데려다줄게.”곽경천은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았다.
소송은 말하기는 쉽지만 행하기는 너무 어렵다.윤혜인은 이선그룹 법무부는 몇 년 동안 한 번도 소송에서 진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이기고 지는 것은 둘째치고 그 긴 시간만 생각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해놓았다.그녀는 지금 이 남자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는데 남자의 아내라는 신분을 계속 달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 정말 그녀를 견딜 수 없게 했다.윤혜인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오빠, 내가 더 해보고 안되면 오빠 말대로 할게.""그래."곽경천은 윤혜인을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조금도 억울한 일이 있으면 꼭 나한테 말해, 알겠지?”"걱정하지 마, 오빠. 그럴 일 없을 거야.”차에서 내리려던 윤혜인이 갑자기 뭔가 생각나는 듯이 물었다."오빠, 주변에 괜찮은 남자 있어?”"응?""괜찮은 사람 있으면 구지윤한테 하나 소개해 줘.”곽경천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구지윤의 뜻이야?”윤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전에 얘기해 봤는데 싫지 않아서 하더라고.”윤혜인의 착각 때문인지 상관 곽경천의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는 어이가 없어 말했다."먼저 네 골칫거리부터 해결해.”구지윤 대신에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었다.윤혜인은 육선재 그 미친놈이 다시 찾아왔는데 구지윤을 지키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는 것이었다.차에서 내린 후 그녀는 무엇이 생각났는지 곽경천에게 물었다."남준 오빠 출장 갔다 왔어?”배남준은 곽경천의 오래된 동창이다. 돈 많고 잘생겼는데 심지어 아직 여자 친구도 없다.윤혜인은 곽경천의 내키지 않은 표정을 보고 자신이 나서서 구지윤에게 남자를 찾아줄 생각을 하고 있다."응, 어제 왔다고 문자 받았는데, 왜?”이 말에 윤혜인은 몰래 좋아하며 뭔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조심히 가.”몸을 돌리자마자 윤혜인은 휴대폰을 꺼내 배남준한테 메시지를 보냈다."남준 오빠, 바빠요?”빠르게 답장이 왔다."안 바빠.""무슨 일 있어?"그는 두 개의 메시지를 보내왔다."오
윤혜인은 이준혁도 여기서 밥을 먹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그가 술 한 병을 보내온 것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아무튼 별로 좋은 뜻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배남준도 위층에서 기개가 당당하고 잘생긴 남자가 매서운 눈매로 그들의 방향을 주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혜인아."그가 불렀다.윤혜인은 정신을 차리고 배남준을 보며 대답했다."네?”"무슨 일이야?"이 질문은 그의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는 것이었다.윤혜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오빠. 어서 드세요.”배남준은 일을 캐묻는 스타일이 아니다. 윤혜인이 말하지 않으면 더는 묻지 않는다.웨이터는 옆에 서서 물었다. "아가씨, 이 와인을 따 드릴까요?”윤혜인은 미지근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버리세요.”웨이터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술잔에 따르라는 줄 알고 병을 따서 술잔에 따르려고 하였다.윤혜인은 눈을 치켜들며 말했다. "버리라고요.”그래도 어리둥절해서 하는 종업원을 보고 다시 말했다. "쓰레기통에 버리라고요.”"쓰, 쓰레기통에 버려요?"종업원이 너무 놀란 나머지 말까지 더듬었다."네."윤혜인은 혼자 생각했다. '보기 좋아하면 잘 봐봐, 당신이 준 술이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것까지."종업원이 몇 번을 시도했지만 그래도 아홉 자리 술을 쓰레기통에 버리려 하니 그는 손까지 벌벌 떨었다.그녀도 종업원이 난처 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와인을 받아와 말했다."제가 할게요."그러더니 술을 쓰레기통에 깔끔하게 집어 던졌다.위층에서 모든 것을 본 이준혁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고 회거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분명 자기한테는 바쁘다고 해놓고 여기서 다른 남자와 데이트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그가 보낸 술마저 쓰레기통에 버리니 말이다.그녀의 그 표정...이준혁은 그녀가 마치 술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던지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버린 후에 더러운 것을 만졌다는 듯이 손을 닦았다.김성훈은 웃으며 말했다. "준혁아, 혜인 씨는 정말 너
평소에 곽경천한테 아부하는 것처럼 배남준에게 똑같이 했다. 어쨌든 효과는 똑같다."넌 어떤 스타일 좋아하는데?"배남준은 담담한 말투로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요?" 윤혜인이 의아해했다."음, 아름이에게 어떤 아빠를 찾아주고 싶어?”아름이 아빠라...윤혜인은 얼핏 아름이가 좋아하는 그 남자를 떠올렸다.그리고 그녀는 빠르게 이 생각을 접었다. 누가 돼질지언정 그 사람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요구는 한 가지에요, 아름이한테 잘해주면 돼요.”"그럼 너한테는?""나한테?"배남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성격이 좋고 책임감 있고 바른 사람이면 돼요.”배남준은 따뜻한 음료를 윤혜인에게 건네며 물었다. "내가 네 조건에 맞는다고 생각해?”콜록콜록윤혜인은 방금 뜨거운 음료를 마셔서 하마터면 사레들릴 뻔했다.배남준이 일어나 그녀의 등을 다독이려 하자 그녀는 손을 저으며 괜찮다고 하고는 괜찮아졌다.그녀가 어색한 듯 또 한 번 물을 마시자 배남준은 숨김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경천이한테 네가 아름이 아빠를 찾아주고 싶다고 들었는데, 나는 어때?”윤혜인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말했다."남준 오빠...”"혜인아, 나는 감정에 대한 욕구가 별로 없어,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혼할 나이가 됐어. 우리는 여러모로 잘 맞고, 아름이도 나를 좋아하잖아. 되게 잘 어울릴 것 같아.”그렇다, 그냥 딱 어울린 것뿐이다. 배남준은 학문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이성과의 애정 이런 것에 대해 줄곧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그는 줄곧 착실하게 생활하는 습관이 되었다.이제 결혼할 나이가 되니 결혼 상대가 윤혜인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윤혜인도 그의 뜻을 알아들었다. 자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그녀가 익숙하고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으로 말이다.그녀는 묵묵히 생각해. 보았는데, 결국 그녀도 배남준이 가장 적합한 상대라고 생각했다.적어도 서로 잘 알고 있으니, 그가
그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윤혜인은 더는 발버둥 치지 않았다.배남준은 고개를 돌려 마주 잡은 두 사람의 손을 보며 물었다."혜인아?”이준혁의 눈빛은 마치 먹잇감을 잡으려는 짐승과 같았다.윤혜인은 두 사람이 이러다가 싸움이라도 날까 봐 두려웠다. 배남준 같이은 공부만 해 온 사람은 싸워봤자이 이 미친놈이랑 싸우면 분명 손해 볼 게 뻔하다고 생각했다."남준 오빠, 먼저 차에 들어가 계세요. 이 사람이랑 몇 마디하고 갈게요.”배남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 물었다."괜찮겠어?"이 말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던 이준혁이 손에 힘을 더하게 의 손을 더 힘껏 쥐게 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가서 배남준을 때릴 것만 같았다.윤혜인은 황급히 한 걸음 앞으로 나가 두 사람 사이에 섰다. 그리고서서 그를 가로막는 듯이 두 팔을 벌렸다.이 모습은 본 이준혁은 무언가가 심장을 찌르는 것처럼 느껴졌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윤혜인이 배남준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남준 오빠. 제가 곧 찾아갈게요.”배남준은 그이 남자의 표정을 보고 그녀를 해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가 잘 처리할 수 있다고 믿고 머리를 약간 갸우뚱한 채로 밖으로 나갔다.배남준이 멀어지자 그녀는 시무룩하게 손을 뿌리쳤다."이제 좀 놔줄래요?”이준혁은 손에 힘을 줄였을 뿐, 놓지는 않았다. 그리고 물었다. "이게 네가 바쁘다고 한 이유였어? 다른 남자랑 데이트하는 게?”말 속에 가득한 질투심이 느껴졌다.만약 곽경천이 그녀에게 이준혁이 남자가 예전에 첫사랑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정말 이준혁이이 남자가 자기를 사랑해서 질투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그녀는 웃으며 일부러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 "대표님, 지금 질투하는 거예요?”이준혁이은 입술을 오므린 채리고 입을 열려고 한 순간하자 그녀가 계속 말했다. "질투 나면 준혁 씨도 다른 여자랑 데이트해요., 상관없어요,. 저는.”이런 상황을 그녀는 개의치 않을뿐더러 두 팔을 들어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참을 수 있으면 그녀는 정말 그를 리스팩해할 것이다.순간, 남자는 안색이 냉랭해졌는데 화날 것 같으면서도 참고 있는 듯하였다."난 바람피운 적이 없어. 너 말고 다른 여자랑 잔 적도 없어.”남자의 고백에 윤혜인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아주 담담하게 비아냥거렸다."그럼, 대표님이 참 정이 깊은 사람이라고 할 걸 그랬어요. ”"저에게 이렇게 애틋하게 대하다니, 우리 사이에 아이는 어떻게 없어졌는지도 잊게 생겼네요냐고 묻겠어요.”아이 얘기가 나오니, 이준혁의 기세가 조금 약해졌다.그는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뜻밖의 일이었어.”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는 결코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그들의 첫 아이에 대한 그의 가슴앓이는 윤혜인 못지않았다."대표님은대표님의 뜻밖으로 대표님의 찐 사랑을 구하러 가셨고, 또 뜻밖으로 위험에 빠진 저를 버리고 가신 거예요?”정말 좋은 핑곗거리라고 윤혜인은 생각했다. 윤혜인은 입꼬리를 조금 올리더니 말했다."그러면 제가 다른 남자랑 데이트하고 친밀한 행동을 하는 것도 뜻밖이라고 하면 되겠네요. ”"우리 둘 다 뜻밖으로 저지른 일인데 대표님도 너무 따지지 마세요.”윤혜인이 한마디씩 할 때마다 남자의 안색은 점점 먹물처럼 어두워졌다."아까 그 남자랑 같이 나를 상대하기로 마음을 굳혔구나?”이준혁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남자가 망가져도 괜찮다는 뜻인가?”이 말은 조금도 포장하지 않은 협박이었다. 그도 더는 감추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는 그 남자를 망가뜨리고, 다시는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게 하려고 했다. 윤혜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긴장한 기색도 없이 물었다. "대표님, 이건 또 협박인가요?”'또'라는 한 글자 때문에 남자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하지만 그는 부인하지 않고 대답했다. "맞아.”그녀가 다른 남자랑 데이트하는 걸 지켜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에 비하면 그녀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이준혁은 마음이 조금 씁
5년 전에도 윤혜인은 이준혁에게 이혼을 요구한 적이 있었고 그때도 이준혁은 그녀를 억지로 붙잡아두기 위해 갖은 방법을 썼었다.이준혁은 스치듯 떠오른 그 기억에 마음이 복잡해졌다.이때 그들 뒤로 종업원이 음식을 나르면서 지나갔고 이준혁은 그녀를 끌어당기기 위해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하지만 윤혜인은 그가 손을 뻗는 것을 보고 습관적으로 몸을 뒤로 피했다. 그러하다가 잘록한 허리가 식탁 모서리에 부딪혔다.그녀는 아픈 듯 눈살을 찌푸리며 나지막이 신음을 냈다.갈 곳을 잃은 이준혁의 손은 한참 동안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이준혁은 윤혜인이 자기가 다칠지언정 그와 어떠한 접촉도 하고 싶지 않다는 눈빛을 읽고 눈시울이 붉어졌다.“내가 그렇게 싫어?”윤혜인은 눈을 살짝 치켜뜨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당연한 거 아니에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난 당신이 더 싫어요!”그녀의 단호한 말투와 혐오스럽게 바라보는 눈빛은 비수가 되어 그의 심장을 찔렀다.하지만 윤혜인은 그의 기분 따위는 상관하지도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 같으니 이만 가볼게요, 비켜주세요.”그녀는 이준혁이 계속 앞을 막고 있자, 차가운 말투로 그를 불렀다.“이준혁 씨?”이준혁은 상처를 제대로 입은 듯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왜...”“뭐라고요?”“왜 날 이토록 미워하는 거야?”기억상실증에 걸린 윤혜인이 돌아온 후, 두 사람은 두세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이준혁은 아무런 기억이 없는 윤혜인이 어떻게 자기를, 이 지경까지 미워하고 거부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그는 심지어 윤혜인이 자기와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이러한 이준혁의 생각을 알 리 없는 윤혜인은 단호한 태도로 답했다.“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이 날 강요하는 것이 너무 싫어요., 게다가 당신은 첫 만남부터 거부감이 들었어요.”윤혜인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준혁에 대한 거부감과 저항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