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참을 수 있으면 그녀는 정말 그를 리스팩해할 것이다.순간, 남자는 안색이 냉랭해졌는데 화날 것 같으면서도 참고 있는 듯하였다."난 바람피운 적이 없어. 너 말고 다른 여자랑 잔 적도 없어.”남자의 고백에 윤혜인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아주 담담하게 비아냥거렸다."그럼, 대표님이 참 정이 깊은 사람이라고 할 걸 그랬어요. ”"저에게 이렇게 애틋하게 대하다니, 우리 사이에 아이는 어떻게 없어졌는지도 잊게 생겼네요냐고 묻겠어요.”아이 얘기가 나오니, 이준혁의 기세가 조금 약해졌다.그는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뜻밖의 일이었어.”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는 결코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그들의 첫 아이에 대한 그의 가슴앓이는 윤혜인 못지않았다."대표님은대표님의 뜻밖으로 대표님의 찐 사랑을 구하러 가셨고, 또 뜻밖으로 위험에 빠진 저를 버리고 가신 거예요?”정말 좋은 핑곗거리라고 윤혜인은 생각했다. 윤혜인은 입꼬리를 조금 올리더니 말했다."그러면 제가 다른 남자랑 데이트하고 친밀한 행동을 하는 것도 뜻밖이라고 하면 되겠네요. ”"우리 둘 다 뜻밖으로 저지른 일인데 대표님도 너무 따지지 마세요.”윤혜인이 한마디씩 할 때마다 남자의 안색은 점점 먹물처럼 어두워졌다."아까 그 남자랑 같이 나를 상대하기로 마음을 굳혔구나?”이준혁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남자가 망가져도 괜찮다는 뜻인가?”이 말은 조금도 포장하지 않은 협박이었다. 그도 더는 감추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는 그 남자를 망가뜨리고, 다시는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게 하려고 했다. 윤혜인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긴장한 기색도 없이 물었다. "대표님, 이건 또 협박인가요?”'또'라는 한 글자 때문에 남자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하지만 그는 부인하지 않고 대답했다. "맞아.”그녀가 다른 남자랑 데이트하는 걸 지켜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에 비하면 그녀에게 미움을 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이준혁은 마음이 조금 씁
5년 전에도 윤혜인은 이준혁에게 이혼을 요구한 적이 있었고 그때도 이준혁은 그녀를 억지로 붙잡아두기 위해 갖은 방법을 썼었다.이준혁은 스치듯 떠오른 그 기억에 마음이 복잡해졌다.이때 그들 뒤로 종업원이 음식을 나르면서 지나갔고 이준혁은 그녀를 끌어당기기 위해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하지만 윤혜인은 그가 손을 뻗는 것을 보고 습관적으로 몸을 뒤로 피했다. 그러하다가 잘록한 허리가 식탁 모서리에 부딪혔다.그녀는 아픈 듯 눈살을 찌푸리며 나지막이 신음을 냈다.갈 곳을 잃은 이준혁의 손은 한참 동안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이준혁은 윤혜인이 자기가 다칠지언정 그와 어떠한 접촉도 하고 싶지 않다는 눈빛을 읽고 눈시울이 붉어졌다.“내가 그렇게 싫어?”윤혜인은 눈을 살짝 치켜뜨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당연한 거 아니에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난 당신이 더 싫어요!”그녀의 단호한 말투와 혐오스럽게 바라보는 눈빛은 비수가 되어 그의 심장을 찔렀다.하지만 윤혜인은 그의 기분 따위는 상관하지도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 같으니 이만 가볼게요, 비켜주세요.”그녀는 이준혁이 계속 앞을 막고 있자, 차가운 말투로 그를 불렀다.“이준혁 씨?”이준혁은 상처를 제대로 입은 듯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왜...”“뭐라고요?”“왜 날 이토록 미워하는 거야?”기억상실증에 걸린 윤혜인이 돌아온 후, 두 사람은 두세 번밖에 만나지 못했다.이준혁은 아무런 기억이 없는 윤혜인이 어떻게 자기를, 이 지경까지 미워하고 거부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그는 심지어 윤혜인이 자기와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이러한 이준혁의 생각을 알 리 없는 윤혜인은 단호한 태도로 답했다.“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이 날 강요하는 것이 너무 싫어요., 게다가 당신은 첫 만남부터 거부감이 들었어요.”윤혜인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준혁에 대한 거부감과 저항심이
이준혁은 윤혜인에게서 아니라는 답을 강요하려는 듯 손바닥으로 그녀의 허리를 더욱 세게 끌어당겼다.거세진 그의 행동에 윤혜인은 고통스러운 듯 눈살을 찌푸리면서 소리쳤다.“준혁 씨, 미쳤어요?”화가 치밀어온 그녀는 당장이라도 이준혁을 물어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들었다.이준혁은 한참 동안 윤혜인을 바라보다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다시 한번 물었다.“내가 정말 너한테는 낯선 사람에 불과해?”윤혜인은 다소 격양되어 언성이 더욱 높아졌다.“백번을 더 물어봐도 내 대답은 똑같아요! 나한테 당신은 낯선 사람일 뿐이에요!”순식간에 주위의 공기가 쥐 죽은 듯 고요해졌고 이준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하고 눈만 가늘게 떨었다.윤혜인은 숨을 가다듬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그만 놔줘요.”그런데도 이준혁이 잡은 손을 계속 놓지 않자, 윤혜인은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게 내뱉었다.“설마 또 나한테 키스하려는 건 아니죠? 이선그룹의 대표가 이 정도로 욕구불만이에요? 지금 당장이라도 아가씨를 불러줄까요?”그 말 한마디에 이준혁의 눈빛이 더욱 차갑게 변하더니 윤혜인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그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면서 물었다.“당신은 내가 여자가 부족해서 이러는 것 같아?”윤혜인은 자기가 이준혁의 심리를 정확히 겨냥했다는 것을 직감하고 기뻤지만,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쓸데없는 걱정을 했네요., 당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오지랖이 넓었어요. 그래서 말인데 이제는 좀 비켜줄래요?”윤혜인은 차가운 말을 내뱉으면서 자기의 손목을 연신 주물렀고 이준혁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그녀가 방을 나가려는 순간, 이준혁이 그녀의 어깨를 잡아 또다시 벽 쪽으로 밀쳤고 이번에는 저돌적으로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그의 행동은 마치 빼앗긴 무언가를 되찾으려는 듯 거침없었고 윤혜인도 눈이 휘둥그레진 채 멍하니 그의 키스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뒤이어 정신이 번쩍 든 그녀는 분노가
윤혜인도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욱하는 마음에 내뱉은 말을 이준혁이 이런 식으로 받아치자,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한참을 말이 없던 그녀가 차가운 눈빛으로 이준혁을 바라보면서 물었다.“준혁 씨, 나... 좋아해요?”이준혁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물음에 조금 당황했지만 태연한 척 답했다.“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겠어?”윤혜인은 입술을 살짝 말아 올리며 조롱으로 가득한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내 눈에는 당신이 나에 대한 신선함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한다고밖에 느껴지지 않는데요? 내가 아무리 당신 아내라고 해도 5년 동안 만나지 못했으면 당연히 잠시나마 새로운 느낌이 들 거예요. 하지만 이러한 감정이 사그라들면 날 쓰레기처럼 버릴 건가요 아니면 애완동물처럼 집에 내버려둘 건가요?”이준혁의 가슴은 더욱 찌릿찌릿 아파 나면서 목소리까지 갈라졌다.“혜인아, 난 신선함 때문에 이러는 것도 아니고 널 쓰레기 취급하면서 버릴 생각은 더욱 없어, 넌 내 아내고 그 누구도 널 대신할 수 없어...”그의 애절한 목소리에 윤혜인의 머리가 복잡해졌고 그녀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준혁 씨, 내가 몇 번이고 말했잖아요. 당신 기억 속에는 내가 당신의 아내일지는 몰라도 나한테 당신은 그저 낯선 사람일 뿐이에요. 당신이 날 아내로 생각하고 당연하게 하는 행동들을 난 받아들이기 힘들 뿐만 아니라 계속 나한테 당신과 함께 있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도 감당이 안 돼요.”윤혜인은 냉랭한 목소리로 그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발언을 계속해 나갔다.“이게 준혁 씨가 사람을 좋아하는 방식인가요? 당신은 상대방의 의견이나 생각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이기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상대방을 좋아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하나 봐요.”이준혁은 상처받은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힘없이 놓았다.“혜인아...”이준혁은 윤혜인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해명하고 싶은 부분도 많았지만, 그녀는 좀처럼 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윤혜인은 온몸에 힘이 다 빠진 사람처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배남준의 이름을 불렀다.배남준은 그윽한 책 냄새를 풍기면서 차분하고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윤혜인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괜찮아, 내가 부축해 줄 테니까 천천히 일어나봐.”배남준은 그녀의 등을 감싸고 있는 손에 힘을 주면서 그녀를 안정적으로 일으켜 세우고 차까지 부축해서 이동했다.윤혜인도 아무런 저항과 말도 없이 그에게 자기의 몸을 맡겼다.뒤따라온 이준혁은 포옹하는 듯한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한참 동안 그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깊은 어둠이 내린 밤.이준혁은 차로 두 사람의 뒤를 밟아 그녀의 집 앞까지 따라왔다.배남준과 윤혜인이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목격한 이준혁은 1분 1초가 더디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이준혁은 일순간의 충동으로 일을 망쳐버리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세뇌했다.한참 후, 배남준이 윤혜인의 집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킬 수 있었다.배남준이 떠난 뒤에도 이준혁은 자기의 생각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흘러가는 현실에 의기소침한 표정으로 넋 놓고 그녀의 집 대문만 물끄러미 쳐다보았다.그는 윤혜인이 자기에 대한 미운 감정이 남아 있어서 적대시한다고 생각했을 뿐, 자기를 낯선 사람으로 여긴다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게다가 이때까지 윤혜인에게 한 행동이 그녀의 반감을 더욱 불러일으켰다는 걸 오늘 그녀가 보여준 눈빛과 행동으로 모든 걸 느낄 수 있었다.이준혁은 복잡한 마음에 밤새도록 그녀의 집 앞에서 재떨이가 꽉 찰 정도로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다음 날 아침 8시, 집 문을 나선 윤혜인은 눈에 띄는 곳에 익숙한 검은색 고급 차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이준혁이 자기 집 앞에서 밤을 새웠을 거라고 꿈에도 생각 못 한 윤혜인은 그의 등장에 눈살을 찌푸리며 얼굴이 검게 변했다.이준혁은 윤혜인이 집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기다렸다는 듯 재빠르게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남자의 말에 윤혜인이 우뚝 멈춰 섰다.그녀는 고개를 돌려서 멍한 표정으로 약간 놀란 듯 물었다.“정말이요?”기쁨의 기색이 눈에 훤히 드러났다.이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 속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엿보였다.윤혜인은 아침에 문을 나서자마자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그녀는 기뻐하면서 얘기했다.“그럼 잠깐만 기다려줘요.”신분증을 챙기지 않았기에 돌아가 신분증을 챙겨야 했다.돌아서는 그녀의 몸짓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그 모습에 이준혁은 가슴이 약간 아픈 것 같았다.요즘 들어 그의 심장은 시도 때도 없이 아파졌다.그는 심장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게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다.하지만 신체검사를 받아본 결과 아무 문제도 없었다.윤혜인이 기뻐하면서 신분증을 들고나올 때, 이준혁은 한층 어두워진 시선으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그리고 진중한 말투로 얘기했다.“두 가지 조건이 있어.”그 순간 윤혜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나랑 장난해요?!”이준혁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얘기했다.“약속하면 나도 두말하지 않을게.”“얘기해 봐요.”윤혜인은 어쩔 수 없었다.“이혼하고 나서 나를 피하지 않기. 반년 안에 재혼 금지.”“그게 다예요?”윤혜인은 약간 의아해했다.그녀는 이준혁이 대단한 조건이라도 내걸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간단한 요구일 줄은 몰랐다.이준혁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반년 안에 결혼하기는 불가능하다.아름에게 새아빠를 찾아준다고 해도 사람을 잘 골라야 했다.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이준혁을 피하지 말기. 두 사람은 원래도 마주칠 일이 적었기에 이 조건은 큰 소용이 없다. 게다가 이준혁과 큰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전 남편과 인사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이준혁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입을 열었다.“그것뿐이야.”윤혜인은 너무 간단하다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다.하지만 이준혁이 말을 이었다.“포기하려는 게 아니야. 공평해지길 원한다면서? 그렇게 해줄게. 내가 다시 널 짝사랑할 테
절차는 빠르게 끝났다. 이혼을 한 순간, 윤혜인의 머릿속에는 알 수 없는 장면이 떠올랐다.익숙한 듯한 장면에 그녀의 머리가 약간 띵해졌다. 하지만 이내 정상으로 돌아왔다.이준혁은 이혼 서류를 꽉 쥔 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마치 무언가가 그의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법원을 나설 때, 이준혁이 말했다.“데려다줄까?”윤혜인은 기분이 좋아서 얼른 축하 파티라도 열고 싶었다. 그녀는 손을 저으며 얘기했다.“괜찮아요, 오빠가 데리러 올 거예요.”이렇게 좋은 소식은 바로 곽경천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어두운 푸른 색의 차가 멈춰 섰다.차창이 내려가고 곽경천이 윤혜인을 보면서 차에 타라고 했다.윤혜인은 발을 떼려던 순간 무언가 떠오른 듯 몸을 돌려서 웃으면서 얘기했다.“이 대표님, 이혼 축하해요.”그 순간, 운명의 굴레가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언젠가 그도 이렇게 웃으면서 말할 것이다. 재혼을 축하한다고 말이다.예전의 장면을 떠올린 이준혁은 가슴에 비수가 박힌 것처럼 아팠다.죽고 싶을 만큼의 고통이었다.윤혜인이 차에 타자 곽경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혜인아, 돌싱 축하해.”이윽고 차는 이준혁의 앞으로 지나갔다. 곽경천은 일부러 차를 느릿하게 운전하면서 이준혁을 쳐다보았다.고통스러워하는 그의 표정을 보면서, 곽경천은 팔을 창문에 걸쳤다. 봐도 봐도 모자란 표정이었다.그녀의 여동생이 겪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저녁.윤혜인은 구지윤과 함께 클럽으로 가서 파티를 열었다. SU가 돌아온 것도 축하할 겸 말이다.세 사람은 다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었다.윤혜인은 섹시한 스타일이었고 구지윤은 조용한 스타일이었으며 SU는 어떤 스타일이든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윤혜인이 이혼 서류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면서 웃었다.“너희들 이혼해 봤어?”두 사람은 다 이혼 과정에 대해서 들었다.다만 그렇게 순조로울 줄은 몰랐다.SU가 얘기했다.“그 이 대표님이 지금 그런 말을 하다니. 생각도 못 할 일이야!”윤혜인과 S
“풉.”맞은편에 앉은 김성훈은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하얗게 질린 이준혁의 얼굴을 보면서 장난스레 얘기했다.“윤혜인 씨도 이제는 호락호락하지 않네. 널 속여서 이혼하다니.”그 말에 이준혁의 낯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김성훈이 먼저 윤혜인이 이곳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준혁을 불러온 것이다.김성훈은 세 사람의 대화를 처음부터 듣고 있었다. 하지만 이준혁은 와서 쓰레기라는 소리밖에 듣지 못했다.하지만 김성훈은 그녀들이 아까 했던 얘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이준혁에게 알려주었다.친구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는 것을 보면서, 김성훈은 약간 재밌다고 생각했다.계속 솔로라고 놀릴 때는 언제고.지금은 마찬가지잖아.“근데 너도 참 입이 무겁네. 재혼한 일을 알려주지도 않는다니.”김성훈은 이준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홀로 얘기했다.“그렇지 않았다면 선물을 준비했을 텐데.”이준혁은 못 들은 것 같았다. 김성훈은 다시 세 여자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윤혜인에게 남자 친구를 찾아주려고 하는 것 같은데.”김성훈이 웃으면서 얘기했다.“이번에는 네 실수야. 기회는 없어.”“아니.”이준혁은 술을 들고 한 모금 마시고 차가운 목소리로 얘기했다.“남자 친구를 찾을 기회를 주지 않을 거야.”오늘 한 말처럼, 다시 한번 윤혜인을 짝사랑할 것이다.그리고 백지장이 된 그녀의 기억 속에 이준혁이라는 이름을 다시 새겨넣을 것이다.그래서 속아서 이혼한 것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지금 중요한 것은 윤혜인이 다시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억지로 그녀를 붙잡아두는 것이 아니라.김성훈은 그를 등지고 있는 붉은 머리의 여자를 보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말하기 어려운 익숙함이 보이는 것 같았다.한참 생각하던 그는 그제야 그 여자가 소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귀를 기울여 보면 목소리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호기심이 동한 그가 앞으로 가서 그녀의 얼굴을 보려고 할 때, 세 여자는 함께 자리를 떴다.이준혁은 그들을 따라가
말을 마친 주석훈은 손에 감았던 삼각 머플러를 풀어 칼을 깨끗이 닦은 뒤 다시 넣고는 진아연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참혹하게 죽은 채 혼자 남겨진 진아연은 숨이 멎는 순간에도 눈을 크게 뜬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지 못한 채로 죽어버렸다....집에서 하룻밤을 쉰 소원은 다음 날 오후가 되자 서둘러 병원으로 유진을 보러 갔다. 다행히 점점 좋아지는 유진의 상태에 소원은 안도했다.육경한은 그녀를 만나 최근에 확인한 소식을 알려주었다.“진아연이 죽었어.”청천벽력 같은 한 마디에 소원은 자리에 얼어붙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어떻게...”소원은 단서가 이렇게 쉽게 끊겼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진아연은 아버지를 죽인 진범을 알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었는데 이제 그녀가 죽었으니 그동안 애써 찾아낸 다른 단서들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었다.순간 무력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범인은 안상철과 같은 방식으로 진아연을 죽였어. 똑같이 67번을 찔렀어. 범인은 인체 해부에 아주 숙련된 사람이야.”소원은 경계심을 품으며 물었다.“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상철 삼촌을 죽인 사람과 동일인물이라는 말이야...?”만약 정말 같은 사람이라면 이 범인이 아마도 아버지를 죽인 진범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구도 이 두 사람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응, 내 추측도 그래. 너도 조심하고 경계심을 잃지 마.”육경한은 반지를 꺼내 소원에게 건넸다.“이거 받아.”반지를 본 소원은 순간 멍해졌다.“이게 뭐야?”소원이 손을 내밀지 않자 그녀가 오해한 것임을 눈치챈 육경한은 어두운 눈빛으로 말했다.“이건 호신용 반지야. 끼고 있어. 안에 바늘이 있는데 그 바늘에는 독이 있어서 이 바늘로 찌르면 상대방은 온몸의 힘이 빠지게 돼.”반지의 기능을 들은 소원은 그제야 이 작은 물건이 유용한 곳에 쓰인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받아서 손에 꼈다. 하지만 결혼반지를 끼는 곳에 아니라 독신임을 상징하는 손가락에 꼈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지만 주석훈은 여전히 온화하고 젠틀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는 이런 장면에 익숙해진 듯 별 반응이 없었다.마지막 몇 번의 칼질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진아연의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칼날이 그녀의 살을 천천히 파고들며, 생명은 마치 촛불이 꺼지듯 서서히 소멸해 갔다.죽을 수 있을 만큼의 고통, 그러나 죽지 못하게 만드는 고통. 그야말로 가장 잔혹한 죽음이었다.기운이 다 빠진 진아연은 주석훈의 차분한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이제... 알겠어... TV 뉴스에 나왔던 안상철의 죽음도 당신...”진아연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진작 알아차려야 했다.“당신... 맞지...”이제야 모든 진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늦어도 너무 늦었다...그날 현장에 있었던 그녀는 안상철이 도망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상철이 돈을 숨겨둔 곳까지 몰래 따라갔다. 그녀는 그 돈이 신비로운 인물이 준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신비로운 인물이 주석훈인지 몰랐다.안상철을 따라간 진아연은 그 돈을 손에 넣어 자신의 도피 자금으로 쓰려고 했다.그래서 안상철이 돈을 파내는 것을 보고 망치를 들어 안상철의 머리를 내리친 뒤 돈을 챙겨 차를 타고 도망쳤다.그 후 며칠 동안 숨어 지내며 안상철에 대한 소문을 기다렸고 그러다가 안상철이 칼에 여러 번 찔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칼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강하게 내리쳤을 뿐이었고 힘도 많이 들이지 않았다. 그녀의 목적은 안상철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돈을 얻는 것이었다.살인이 두려워서 안상철을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단지 살인죄까지 뒤집어쓰면 도주가 더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이 시점에서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것은 스스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하지만 안상철을 죽인 사람이 겉으로 보기에 이렇게 점잖은 주석훈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진아연이 물었다.“왜... 왜 그 사람을 죽이고... 나까지... 죽이는 거야...”주석훈이
심지어 진아연은 얼마 전까지도 주석훈을 젠틀한 문화인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보니 큰 착각을 한 것 같았다.진아연은 주석훈을 향해 아첨하는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변호사님, 어떤 일이든 할게요. 제발...”“쉿!”주석훈은 두 번째 손가락을 입가에 올리며 ‘쉿’하는 소리를 냈다.‘쉿’하는 그 소리에 온몸에 식은땀이 난 진아연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번뜩이는 칼날을 휘두르던 남자는 ‘푹’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를 찔렀다.“안녕, 나는 주석훈이야.”“으악!”진아연은 하늘을 향해 비명을 내질렀다.칼은 급소를 찌르지 않았지만 충분히 고통스러웠다.이어서 또 한 번 칼을 휘두른 주석훈은 이번에도 급소가 아닌 뼈 사이를 정확히 찔렀다. 날카로운 칼날이 조금씩 몸을 파고들자 진아연은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주석훈이 친절하게 말했다.“여긴 무릎뼈가 있는 곳이야. 다음은 발목뼈, 아마 통증이 다를 거야.”“왜... 왜, 왜 이러는 거예요?”진아연은 쉰 목소리로 힘겹게 물었다.“세상 일에 꼭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 네가 저지른 일에는 인과응보가 따르는 법이지. 지금 겪는 건 그저 그 대가일 뿐이야.”말을 하면서 그녀의 뼈 사이를 정확히 찌른 주석훈은 날카로운 칼날로 진아연의 발목 힘줄을 끊었다.또다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주석훈은 들리지 않는 듯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하나만 말해줄게. 나는 사실 법의학자가 될 뻔했어. 예전에 인체 해부하는 것을 좋아했거든. 변호사가 될 생각은 없었어. 변호사가 된 이유는 돈을 빨리 벌기 위해서야.”주석훈은 일상적인 대화를 하듯 진아연에게 이야기했다.고통에 죽을 지경인 진아연은 울며 말했다.“나를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육경한을 죽이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그렇게 말했지. 하지만...”주석훈은 뼈관절을 해부하며 말을 이었다.“너를 믿을 수 없어. 쓰레기 주제에 두 번째 기회를 바라다니, 꿈 좀 그만 꿔!”무자비하게 조롱하는 주석훈의 말에
진아연의 이름을 들은 육경한은 매우 침착하게 천천히 말을 뱉었다.”괜찮아, 아마 걔는 살 수 없을 거니까.”“...”황수진은 육경한이 진아연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고 매우 놀랐다. 그가 보기엔 이 신비한 사람이 진아연을 구출한 것을 보면 그녀를 포기하지 않고, 한 패거리로 여긴다는 것을 의미하였지만 뜻밖에도 육경한은 그의 생각과 달랐다.육경한은 동네 정문 쪽 동영상을 보면서 이리저리 보다 지프차량이 진아연을 돌격하는 곳에서 멈추었다.차량은 아무런 인정사정이 없이 그 자리에서 사고를 내려고 했다.하지만 아마도 진아연 단지 입구에서 죽는다는 것이 정말 번거롭고 또 잠재된 위험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서 방안을 바꾼 것 같았다.하지만 결국 이 방안은 집행될 것이고 이 신비한 사람은 절대 진아연의 목숨을 남기지 않을 것이다.황수진이 지프차를 보았는데, 분명히 가짜 번호판이었지만 조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그가 한국 본토에서 활동하는 한 날 중에는 언제든지 증거가 남게 될 것이다.반대편 차 안에서 진아연은 그곳을 본 후 안색이 어두워졌다."제트 씨, 왜 저를 이렇게 황량한 교외에 두셨어요? 택시를 타고도 돌아가기도 곤란해요."“여기 안 오고 들키고 싶어요?"제트의 기분은 나빠지자 진아연은 감히 말하기 무서웠다."그럼 제가 내려가도 되나요?"진아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서두르지 않고 담배 한 대를 다 피운 후에야 천천히 진아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내려요.“진아연은 기쁜 마음으로 차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아주 쉽게 차 문이 열렸다. 그녀는 일종의 재난을 모면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매우 기뻤다는데 한 발이 발밑의 땅을 금방 밟았을 때, 뒤에서 누가 등이 세게 걷어찼다.진아연은 멀리 차여 입에서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왔고 마치 자신의 몸이 해체되는 것처럼 느껴졌다.차근차근 차에서 내려 진아연의 앞에 다가와 걸음을 멈춘 남자를 보고 진아연은 어리둥절해졌다.“왜... 왜 저를 발로 차요?"제트는
남자는 재밌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만약 제가 당신에게 기회를 준다면요?”“무슨 기회요?”진아연은 자신이 누구와 거래하는지 잊지 않고 전전긍긍하며 물었다.남자의 두 눈은 마치 별을 숨긴듯 하였다. 그는 반혹적인 어조로 말했다.“육경한을 죽일 기회를 줄게요. 만약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으면 저는 당신의 잘못을 추궁하지 않고 평안히 출국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어요. 진아연 씨, 어떻게 생각해요?”“정말이에요?”진아연은 그의 말을 정말 믿기 어려웠다.제트를 마주할 떄 진아련은 항상 착각에 빠졌다. 사실은 육경한을 죽이는 것보다 제트를 마주하는게 더 어려웠다. 이 두 문제를 함께 놓으면 비교가 될 것이다.왜냐하면 그는 아주 신비하기에 누구도 그의 배경과 내력을 알 수 없어 그와 상대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경한의 약점은 아주 많다. 소원이와 그녀 뱃속에 있는 아이, 그리고 망할 놈 유진이... 심지어 하나하나의 나쁜 계획은 이미 진아연의 마음속에서 형태를 갖추게 되며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제트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물론 정말이에요, 당신이 성공하면 저는 말한 대로 다시는 따지지 않을 것이에요. ”말하는 사이에 남자는 뒤에 쫓아오는 세 대의 차를 가볍게 따돌렸다.이 제트는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사람마냥 무섭기 그지없었다.하지만 진아연의 마음속에 있는 제트는 탁월한 능력이 있어서 그녀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어 놀라지 않았다.진아연은 눈앞의 남자를 보면서 자신의 충성심을 알려 주었다.“제트 씨, 안심해요, 저는 반드시 임무를 완수할 거니까. 당신은 저를 죽이지만 않으면 됩니다.”“음, 기대가 되네요.”“...”뒤따라오던 세 대의 차가 앞차를 잃어버린 후, 경비원들은 실시간 정보를 병실의 VIP 라운지에 전달했다.유진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남자는 황수진보고 유진이의 휴식에 방해 안 되는 대기실에 오라고 했다.지금 육경한의 안색은 매우 안 좋았다.경호원들이 전송해 오는 화면
남자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잡히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 또 오다니 정말 바보 중의 바보예요! ”“제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이곳 경비원은 다른 동네 분들과 다를 줄은, 이곳 경비원은 정말 최고급 경호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여자가 원망하자 옆에 있던 남자가 말했다. “진아연, 당신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멍청한 사람인 것 같아요. ”진아연은 순간 자신의 이름을 듣고도 반응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사람은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가 라는 생각에 그녀는 그를 경계하면서 물어봤다.“누구세요? “남자는 침묵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얼굴 가리려고 마스크를 썼지만, 눈빛에 드러나는 냉랭함은 숨길 수 없었다. 진아연은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문득 무슨 생각이 나서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 당신이 바로 제트 씨이세요? ”남자는 그녀를 상대하지도 않고 부인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다 설명했다. 진아연은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바지에 실수까지 할 뻔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늑대 무리에서 도망쳐 나와 호랑이 굴에 들어갈 줄을... "제트 씨... 아주 죄송해요, 제가 일부러 여기에 나타난 건 아니예요. 지금 당장 꺼질게요. ”놀라움은 하여금 진아연의 이성을 잃게 만들어 고속도로에서 차 문을 열고 뛰어내릴 생각까지 하였다.제트와 비교했을 때, 지금 뒤에서 자신을 쫓아오는 경비원들이 구세주라고 생각되었다. 진아연은 제트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라고 느꼈다. 필경 지난번에 그의 손에서 죽을 뻔했으니까... 진아연의 손이 차 문손잡이에 닿았을 때, 차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진아연은 절망 속에서 두 손을 비비며 용서를 비는 자세를 취했다. “죄송해요... 제트 씨... 저 진짜 멀리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니까 저를 놓아주세요. ”안장이 좁아서 진아연은 무릎을 꿇을 수 없어 두 손을 끊임없이 비비며 아주 작은 희망을 찾고 있었다.남자는 역시 수단과 방법을 숨기고 있었다. 뒤차의 추격을 피하는 동시에
여자가 작은 골목에 들어섰을 때, 경비원이 말했다. “아가씨, 길을 잘못 들었어요. 13동은 저쪽에 있어요.”여자는 할 수 없이 돌아섰는데 경비원이 다시 말했다. “아가씨, 친구 보러 처음 오셨어요?”여자는 이곳의 경비원이 왜 범인을 검문하는 것처럼 자신을 물어보는지 이해 안 가 속으로 욕했다.여자는 대충 대답했다.“네네, 처음 왔어요.”13동 문 앞에 오자 경비원이 직접 603의 초인종을 눌렀고 방울 소리가 울리자, 안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여보세요?”경비원은 여자보고 말하라고 고개를 돌렸다.“...”정말 어쩔 수 없어 여자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배를 움켜쥐며 말했다.“아이고, 배가 너무 아파요.”여자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하자 경비원은 즉시 구급차를 불러주었다. 그리고 경비원이 구급차를 부르는 사이에 여자는 작은 틈을 놓치지 않고 도망쳤다.“거기서요!”경비원은 일반인보다 더 빠르게 반응해 무전기에 대고 빨리 저 검은 옷 입은 여자를 잡으라는 말을 했다.여자는 자신의 눈앞에서 점점 닫혀 가는 문을 보며 당황해 어리둥절했다.“닫지 말아요.”안에서 경비원이 소리를 듣고 여자 쪽으로 돌진해 왔다. 그들은 마치 여기서 여자를 기다리고 있는 듯 일반 경비원보다 속도가 더욱 빨랐다.바로 얼마 전 육씨 그룹이 이곳의 부동산을 사서 전문적인 경호원으로 바꾸어 수상한 인물을 주시하여 남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의심이 가는 사람들을 모두 붙잡아 파출소로 보냈다. 여자는 온몸에 힘이 빠진 채 어디로 도망갈지 몰랐다. “저 여자 잡아요.”전에 여자와 얘기하던 경비원이 소리쳤다. 여자가 잡힐 것만 같았는데 갑자기...펑!큰 소리가 나 그곳을 보자 검은색의 지프차 한 대가 돌진해 들어와 난간에 부딪혀 부서지는 것이 보였다.대중들은 모두 이 갑작스러운 변고에 어리둥절하여 반응하지 못했지만, 지프차가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자, 경비원들은 모두 재빨리 몸을 피했다.유독 여자만 제자리에서 자신한테 향해 오는 것을 멍하니 보며 어찌할 바
소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 유진이를 보러 갈래”“필요 없어”육경한은 단호히 거절하다 멈칫했다. 그러다 소원이 자신이 아이를 못 본다고 오해 할가봐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가 보고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일도 다 병원에 가지고 갈 거니까. 넌 휴식이 필요해. 알았어? “유진이 병으로 쓰러진 후 소원은 며칠 동안 거의 밤새 자지 못해 눈 밑에는 이미 짙은 다크써클이 생겼지만 그녀는 억지로 버티는 중이었다.소원은 유진이 자신을 찾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육경한은 무슨 일이든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직접 휴대폰 음성 메시지를 소원이에게 들려주었다.“아빠, 엄마 보고 잠자고 있으래요. 만약 성공하지 못하면 저는 삼촌이라고 부를 거예요. ”“엄마보고 많이 휴식하고 있으래요. 그렇지 않으면 뱃속의 아기가 천천히 자랄 거예요. 저는 아기를 빨리 만나고 싶어요. 아기한테 오빠가 지금 힘이 세니까 아기를 업을 수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요. ”캐톡에서 유진이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협박한 것을 보니 두 사람의 사이가 아주 좋은 것 같았다. 유진이의 소리는 듣기에도 정신이 맑고 괜찮아 보였다.소원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생각해 보니 자기가 쉬지 않은 것을 아이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금 내가 자신의 건강에 대한 책임은 즉 유진에게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기에 소원이는 말 듣고 차에서 내려서 휴식을 취하러 갔다.네 명의 경호원은 육경한의 분부에 따라 두 명은 아파트 입구에 두 명은 계단 입구를 엄중히 지켜 사수의 파리 한 마리조차 날아 들어갈 수 없었다.육경한의 차가 떠나자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여인이 사방을 둘러보며 나타났다.그녀는 벙거지 모자를 쓰고 얼굴을 절반 이상 가린 채 마스크를 쓰고 수상한 모습으로 나타나 동네 경비원의 주의를 불러일으켰다.“저기요, 당신은 어느 건물로 가나요? 여기에서 뭘 하고 있습니까? “여인은 경비원한테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요... 사람을 찾고
주석훈이 웃으며 말했다.“허허. 몰랐죠? 저 평소엔 되게 허당이에요.”“변호사님 은근히 유머가 넘친다니까요.”주석훈은 언변에 능했기에 단 몇 마디에 간호사가 함박꽃 같은 웃음을 지었다.“저기는 왜 저런 거래요? 아까 길을 잘못 들었는데 막더라고요.”주석훈이 물었다.“아, 저기요.”간호사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어떤 여자애 한 명 들어왔는데 가족이 살해당했다나 뭐라나. 실어증에 걸려서 한마디도 못 했는데 평소 믿고 따르던 언니가 와서 입을 열었다고 들었어요.”주석훈이 물었다.“여자애요? 많이 놀랐나 보네요.”“그러게요.”간호사가 대답했다.“가족이 칼 맞고 죽었는데 누가 견딜 수 있겠어요.”“억울한 사건이 얼마나 많은데 범인만 잡아도 다행 아니겠어요?”주석훈이 말했다.“어려울 것 같던데요?”간호사가 말했다.“뭐 유용한 단서가 안 나왔나 보더라고요. 아빠가 여자애를 지키겠다고 같이 들어가지 않아서 아무것도 못 봤대요. 진술한 상황이 경찰이 알고 있는 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 경찰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만 내쉬더라고요.”간호사가 이렇게 많은 내용을 알 수 있었던 건 안지영의 간호를 책임진 간호사가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주석훈이 더 물으려는데 다른 간호사가 들어왔다.“어? 이 간호사 있었네? 저쪽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까 빨리 가봐.”이 간호사가 말했다.“알겠어요. 이것만 마무리하고 갈게요.”치료를 받은 주석훈이 이 간호사에게 고맙다고 말하자 이 간호사가 얼굴을 붉히며 괜찮다고 말했다.주석훈이 멀리 가고 나서야 다른 간호사가 이렇게 말했다.“이 간호사, 아까 저 사람이랑 무슨 얘기 했어? 저 병실에서 나온 얘기는 함부로 하면 안 돼.”“저 별말 안 했어요. 다들 아는 내용 얘기해준 거예요.”이 상황에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인정하면 바보나 다름없었다.“그래. 앞으로 조심해. 자칫하다간 징계 먹을 수도 있어.”나이 많은 간호사가 귀띔했다.“알아요.”이 간호사가 얼른 대답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