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인은 얼떨결에 뒤로 넘어졌고 다행히 이준혁이 제때 잡아주었다.“뭐가 네 건데 이 미친놈아. 소원이는 널 떠나려고 죽었어. 네가 건드리는 걸 원하지 않아. 빨리 그 손 놔!”윤혜인은 여전히 가서 뺏고 싶었지만 이준혁이 뒤에서 가지 못하도록 손을 붙잡고 있었다.오랜 세월을 알고 지낸 이준혁은 육경한이 조금은 미쳐 있고 매우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실수로 윤혜인이 다칠까 봐 두려웠던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충동적으로 가지 마, 네가 다칠 수도 있어.”육경한은 소원의 시체를 안은 채 밤낮으로 자리에 앉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소종이 다그치자 육경한은 얇은 입술로 차가운 말을 뱉어냈다.“집으로 데려갈 거야.”두 사람이 가장 많은 추억을 공유했던 오아시스로 돌아갈 것이다.소종의 표정이 급변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어떻게 데려가요?”“가서 무덤을 준비하고, 사람 시켜서 얼음 관을 집에 가져오라고 해.”“!!!”미쳤다!대표님이 미쳤다!얼음 관이 집에 가져다 놓을 수 있는 물건이었던가?하지만 차마 더 이상 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아 육경한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곧 장례식 날짜가 정해지고 윤혜인을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도착했다.가짜 무덤일 뿐 소원의 시신이 들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두 몰랐다.조문이 끝난 후 윤혜인은 육경한을 무시한 채 일찍 자리를 떴다.죽은 다음에야 슬픈 척하는, 전혀 동정할 가치도 없는 놈과 같이 참배하고 싶지 않았다.돌아오는 길에 이준혁의 전화가 울렸다.주훈은 임세희가 몸이 좋지 않다며 그를 만나려 한다는 말을 전했다.윤혜인은 그 말을 듣고 있다가 갑자기 차 문에 손을 뻗었다.끼익-급히 브레이크를 밟아 차가 멈췄고 이준혁은 윤혜인을 뒤로 끌어당기며 소리쳤다.“미쳤어?”윤혜인은 지금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를 힘껏 뿌리쳤다.“꺼져! 나 건드리지 마!”윤혜인의 엄지가 이준혁의 손등을 스치면서 할퀴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다만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고집
이걸 알리는 건 이준혁에게도 위험한 일이었다.최근 이천수는 갑자기 미친 듯이 권력을 잡기 위해 온갖 꼼수를 부렸다.송휘재는 이천수를 무너뜨릴 결정적 증거를 손에 쥐고 있었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 문서를 몰래 숨겼다.송휘재가 죄를 저질러 구치소에 들어간 후 이천수가 이 난리를 치자 그에게 연락이 왔다. 이준혁이 임세희의 배 속에 있는 아기를 지킬 수 있게 도와준다면 나온 뒤에 무조건 협조하겠다고 했다.이천수의 경계를 늦추기 위해서는 임세희의 아이가 이준혁의 아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어야 한다.이런 복잡한 일은 윤혜인이 모를수록 좋았고 3개월만 버티면 이천수를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었다.소원의 죽음에 이준혁의 마음은 늘 불안하기만 했다.윤혜인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다. 슬퍼하지 않는 다기엔 조금 전 울면서 죽일 듯이 육경한을 욕했지만, 그렇다고 슬프다고 하기도 이상한 행동이었다.이준혁은 그녀를 지켜보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윤혜인, 넌 날 떠나지 않을 거지?”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그녀를 석 달 동안 계속 가둬두는 게 도망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윤혜인은 줄곧 이혼을 언급하고 있었다.윤혜인은 그녀의 눈빛에 담긴 소유욕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지금 그를 자극하는 것은 그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기에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 반대로 이렇게 말했다.“안 떠나요.”이윽고 그녀는 가녀린 얼굴로 나지막이 부탁했다.“이준혁 씨, 출근 안 해도 되니까 지금처럼 저 가둬두지 않으면 안 돼요? 꼭 죄수가 된 기분이에요.”이준혁은 그녀의 말 속에 담긴 진실을 캐내려는 듯 덤덤하게 바라봤다.윤혜인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소원이도 없어서 충분히 힘든데 매일 날 가둬놓기만 하면, 대체 날 사람으로 보기는 해요?”“그만 울어.”이준혁은 손을 뻗어 그녀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고 마음이 약해져 이렇게 말했다.“외출은 할 수 있지만 경호원이 동행해야 하고 밖에 너무 오래 있지 마, 알았지?”윤혜인의 작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탈의실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다 됐어?”이준혁의 목소리였다.“다 됐어.”곧이어 치맛자락을 잡고 나온 임세희는 이준혁과 마주쳤다.순간,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화장을 두껍게 한 탓에 얼굴이 새빨개진 것은 그리 티가 나지 않았다.“가자.”이준혁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그러자 임세희의 얼굴에는 이내 실망한 기색이 역력해졌다. 앞에 있는 전신거울에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선명하게 비췄다.웨딩드레스는 아름다웠지만 그렇게 화장을 두껍게 했음에도 안색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정신병원에서 밤낮없이 겪은 고문과 툭 튀어나온 뱃살로 인해 그녀는 원래의 모습을 잃었다.때문에 이준혁이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는 것은 당연했다.뒤이어 둘은 촬영실로 갔다. 이것은 특별한 촬영이었다. 임세희 옆에는 모델 소품이 서 있었는데 최신 기술로 나중에 모델링하여 얼굴을 바꿀 예정이었다.촬영할 때, 이준혁은 창가에 서서 맞은편에 대기하고 있는 차를 확인했다.그것은 그를 미행하기 위해 이천수가 보낸 사람들이었다.이준혁은 일부러 직원들에게 커튼을 얇게 남기게 해 맞은편에서 그와 임세희가 웨딩 촬영을 하는 모습을 몰래 찍을 수 있게 했다.얼마 후 촬영이 끝나고, 이준혁은 임세희와 함께 나가려 했다.그때, 임세희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준혁 오빠...”하지만 곧 자신이 그렇게 부르는 것을 이준혁이 싫어했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그녀는 이내 말을 바꿨다.“준혁 씨, 나랑 진짜로 사진 한 장만 찍어주면 안 돼?”뚫어져라 그녀를 바라볼 뿐, 이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임세희는 이유 없이 긴장하여 목이 멨다.“준혁 씨, 나 요즘 매일 악몽을 꿔. 정신병원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니야. 나 정말 송휘재가 나오기 전에 나와 아이 모두가 무사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그녀는 이준혁이 이 아이를 지키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임세희 본인은 이 아이가 태어나기를 원하지 않았다.때문에 그녀는 한 번도 검진을 받지 않았었다. 당시
이준혁이 지시했다.“몇 명 데리고 가서 방금 탈의실에서 나온 사람을 찾아.”그러자 주훈은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최근 이천수가 계속 이준혁을 미행하고 있는데, 만약 그와 임세희의 관계가 가짜라는 것이 발각되면 틀림없이 이천수가 무언가를 알아낼 것이다.즉시 주훈은 앞뒤 출구를 조용히 봉쇄하게 한 뒤, 사람들을 데리고 건물 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하지만 스튜디오 건물이 너무 큰 탓에 사람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탈의실이 많기도 하고 큰 소란을 피울 수도 없어서 그들은 반드시 조용히 찾아야 했다.그 시각, 윤혜인은 이미 준비된 검은색 벤에 앉아 있었다.다행히 오늘 도망을 위해 미리 스튜디오의 통로 지도를 손에 넣었기에 그녀는 순조롭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이준혁이 이렇게 신중할 줄이야... 웨딩 촬영 하나에 이런 규모라니.’비록 이준혁에 대한 기대는 일찍이 접었지만, 조금 전의 그 장면은 여전히 그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임세희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면 그 사람 성격상 웨딩 촬영 같은 걸 할 리 없는데... 근데 그럼 나는 왜 속이는 거지? 나한테 더 이상 무슨 이용 가치가 있다고...’마음이 아프고 괴로운 나머지 윤혜인은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머릿속에는 당장 여기를 떠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운전기사는 외국인이라 언어가 통하지 않았고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었다.곧 차는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스튜디오 입구에 다다랐을 때, 윤혜인은 이준혁이 나오는 것을 보고 습관적으로 머리를 숙여 숨으려 했다.그러나 이내 차에 선팅이 되어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이준혁이 한 손으로 임세희를 차에 태우는 것을 보았다.어둡고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수려한 외모는 유독 빛났다.지나가는 몇몇 사람들은 넋을 잃고 임세희에게 부러운듯한 눈길을 보냈다.임세희는 계속 배를 손으로 감싸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대하는 모습이었다.“툭, 툭.”굵은 눈물이 윤혜인의 턱 끝에서 땅에 떨어졌다
앞 좌석의 운전사가 좌석째로 뒷좌석으로 밀려오는 바람에 그 피가 전부 뒷좌석으로 흐르게 되었다.윤혜인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깨진 유리에 이마가 찔려 온 얼굴에 피가 흘렀고 머릿속은 혼미했다.교통사고로 인해 가드레일이 날아가 대교 도로가 차단되었다.그 시각, 검은색 고급차 안에서 임세희는 갑자기 심한 복통을 느꼈고 아래쪽에는 출혈이 보였다.“준혁 씨, 나 배가... 배가 너무 아파...”임세희가 고통스러워하며 신음했다.그러자 이준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즉시 앞서가던 차에 전화를 걸어 지시했다.“멈춰서 좀 기다려.”그 후, 그는 차에서 내려 임세희를 안고 다리를 건너 걸어갔다.벤의 앞부분에 불꽃이 피어올랐다.윤혜인은 뒷좌석에서 고통스럽고 무력하게 창밖을 바라보다가 흐릿하게나마 이준혁의 모습을 보았다.“이준혁!”그녀는 크게 외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입을 여는 것조차 어려웠다.피투성이 손을 힘겹게 뻗어 가까이 있는 창문을 잡으려 하며 윤혜인은 속으로 말했다.“준혁 씨, 우리 아이를 구해줘...”하지만 눈앞에선 임세희를 안은 이준혁이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윤혜인은 절망감에 눈을 감았다.그때,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고 윤혜인은 희망을 본 듯 힘겹게 눈을 떴다.그러자 구급차가 아직 멈추기도 전에 ‘쿵’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불타며 강물 속으로 빠져들었다.곧 차는 차가운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차 안으로 들이닥쳤고 윤혜인의 눈가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도망치려 하지 않았다면 교통사고를 당하지도 않았을 텐데...’그녀는 후회했다.‘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난 다신 이준혁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야.’배 속에서 미약한 움직임이 느껴졌고 윤혜인은 그것이 첫 태동이라는 것을 알았다.아기가 엄마에게 힘을 주는 것 같아 심장이 미어지는 듯 아파왔다.“아가야, 미안해! 엄마가 무능해서... 널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아.”...병원.임세희가 무사하다는 소식을 듣고 이준혁은
남자의 목소리는 마치 며칠 동안 말하지 않은 것처럼 이상하게 낮고 쉰 목소리였다.“흑흑흑...”진아연은 울음을 터뜨렸다.“경한 씨, 저 사람들 나한테 약도 발라 주지 않아요. 얼굴이 너무 아파서 썩어가는 것 같고 계속 고름이 흐르고 있어요... 너무 아파요... 내가 잘못했어요, 제발 용서해줘요, 정말 너무 아파서 죽고 싶을 정도예요...”진아연은 몰랐다. 그녀의 상반신에 있는 화상 부위는 이미 썩어 있는 탓에 치료를 해도 썩은 살을 도려내야 한다는 사실을.그 부분은 큰 흉터로 남게 될 것이며 그녀의 얼굴은 이제 완전히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육경한은 더 이상 그 얼굴을 바라보기도 싫었다.“어디 죽는 것보다 더 아프겠어?”진아연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정말로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워요!”그 상처들은 매일 수천 마리의 개미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가렵고 아팠다. 때로는 그냥 벽에 부딪혀 기절하고 싶을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녀는 죽고 싶지 않았다. 육경한에게서 많은 돈을 받았고 아직 삶을 즐기지 못했기에 절대 죽을 수 없었다.갑자기 ‘쾅’하는 소리가 났다육경한은 바닥에 칼을 던지고 담담한 목소리로 유혹하듯 말했다.“정말 견딜 수 없다면, 스스로 끝낼 수 있어.”순간, 진아연의 안색이 차갑게 굳어졌다.‘지금 나더러 자살하라는 거야?!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어?!’곧 완전히 절망한 진아연이 울부짖었다.“육경한, 내가 당신 구했잖아. 양심은 어디 국에다 말아먹었어? 날 이렇게 대하면 당신도 기필코 벌을 받을 거야!”그러자 육경한이 벌떡 일어서서는 내려다보며 말했다.“내가 네게 준 보상은 이미 내가 받은 은혜의 값어치를 훨씬 넘었어. 하지만 네 욕심은 끝이 없었고 내 경고도 무시한 채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어.”그의 차가운 눈빛에는 혐오감이 가득 담겨있었다.“너도 네 쓸모없는 오빠처럼 죽어 마땅해!”그 말을 마치고, 남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뒤돌아 나갔다.오늘 그는 진아연에게 칼을 주러 온 것이
‘육경한 당신보다 더 잔혹하고 더러운 수단을 쓰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진아연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죽어 마땅한 사람은 육경한 바로 당신이야!”침묵이 흘렀다!공기 속에는 무한한 정적이 가득했다!육경한은 얇은 입술을 꽉 다물었고 창백한 얼굴에는 핏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그 말들은 마치 무수한 커다란 돌덩이처럼 하나씩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러 숨을 쉴 수 없게 만들었다.최근 그는 자신의 마음이 이미 고통에 무뎌졌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진아연의 말들은 다시 한번 그의 가슴을 찔렀다.그렇게 한참을 진정시킨 후, 그는 옆에 있던 검은 옷을 입은 사람에게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이 여자의 혀를 잘라.”“네!”명령이 떨어지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점점 진아연에게 다가왔다.‘미쳤어! 악마야, 이건!’진아연은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로 무서웠다. 곧 누군가가 자신의 입을 억지로 벌리려고 할 때 그녀가 외쳤다.“육경한, 당신이 그 여자한테 미안한 일이 이것뿐이라 생각해? 그 여자가 왜 당신을 배신하지 않았다고 계속 말했는지 한번 생각해봐!”그러자 육경한은 갑자기 몸을 돌려세우더니 눈빛을 반짝였다.“뭘 알고 있는데?”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움직임을 멈췄다.진아연의 다리 옆에는 악취가 나는 물웅덩이가 생겼다. 무서워서 결국 오줌을 싼 것이었다.마치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듯 그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안 말해줄 거야. 날 풀어주지 않으면 당신은 평생 진실을 알지 못할 거야!”지하실에서는 계속되는 고문이 펼쳐졌다.처절한 비명이 점점 더 커졌지만 진아연은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사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입을 열면 바로 죽음이 찾아오리라는 것을.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한, 절대 말할 수 없었다.몇 시간 후.육경한은 지하실에서 올라와 잔뜩 붉어진 눈으로 뒤에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에게 명령했다.“입을 열 수 있게 계속 고문을 진행해! 절대 죽게 하지는 말고!”며칠 후, 지하실
공항 통로.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가 천천히 눈썹을 찌푸렸다.그때, 뒤에서 주훈이 이준혁의 길을 가로막는 어린 여자아이를 보고 서둘러 앞으로 나왔다.그러고는 무릎을 꿇더니 부드럽게 말했다.“꼬마야, 엄마를 못 찾겠니?”아이는 동그란 큰 눈에 풍성한 속눈썹을 갖고 있었는데 핑크색 드레스를 입어 눈처럼 하얀 피부가 더욱 돋보였다.한눈에 보기에도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 같았다.그녀는 주훈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머리를 흔드는 그 순진한 모습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르르 녹일 듯했다.주훈은 목소리를 더 부드럽게 낮추며 말했다.“아저씨가 공항 직원한테 엄마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게, 어때?”그러자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발끝을 들어 작은 손으로 이준혁의 손가락을 잡아당겼다.“잘생긴 아저씨, 엄마한테 전화하게 핸드폰 좀 빌려주실 수 있으세요?”무시당한 주훈은 잠시 당황했다.‘어린 애가 외모를 다 가리고 참나...’그는 가볍게 기침하며 찰나의 당혹감을 감추고 부드럽게 말했다.“아저씨가 공항 안내방송 직원에게 데려가 줄게, 그러면 더 빨리 찾을 수 있을 거야. 알겠지?”그 말을 듣자 아이는 실망한 듯 반짝이던 눈빛을 거두고 고개를 끄덕였다.그 눈빛과 동작이 한 사람을 매우 닮아 있었다.순간, 마치 바늘에 찔린 듯 이준혁은 마음이 흠칫 떨렸다. 주훈이 막 아이를 데리고 공항 직원에게 가려는데 그가 낮은 목소리로 제지했다.“잠깐만.”이준혁은 몸을 굽혀 똘망똘망하게 예쁜 눈을 보고 말했다.“아저씨 핸드폰 빌리고 싶어?”“네, 잘생긴 아저씨.”아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촉촉한 큰 눈으로 이준혁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귀여운 모습에 이준혁의 가슴도 순간 따뜻해졌다.곧 묵묵히 핸드폰을 꺼내주는 이준혁의 행동에 주훈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동안 감정 없는 기계처럼 일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던 대표님이 아이한테 전화를 걸도록 핸드폰을 빌려주다니... 이게 무슨 놀라운 일이야?’아이는 작은 손으로 엄마의 전화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