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릴 틈도 없이 전화가 끊겨버렸다. 그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침 나도 그쪽에 약속이 있었어.”그리고는 예고도 없이 윤혜인을 들어 올렸다. 그녀는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이준혁의 목에 팔을 두르고 말았다. 사람들도 많이 지나는 곳에 이런 자세로 있으려니 윤혜인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그녀가 고개를 이준혁의 품에 파묻으며 나지막이 말했다.“일단 좀 내려줘요.”“시간 없어. 네가 걷는 것보단 이게 빨라.”윤혜인이 짜증스레 말했다.“바쁘면 갈 길 가요. 내가 언제 데려다 달라고 했나요?”하지만 이준혁은 전혀 그녀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윤혜인은 그대로 조수석까지 옮겨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곧바로 안전벨트를 풀고 차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문이 잠겨 있어 열리지 않았다.윤혜인이 운전석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문 좀 열어요.”그러자 이준혁이 덤덤한 목소리로 답했다.“약속 있다며?”그녀가 다시 입을 열려던 찰나, 이준혁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덧붙였다.“내 차 타고 가는 게 더 빠를 거야.”그의 차가운 눈빛과 위험한 분위기에, 윤혜인은 자기도 모르게 몸이 굳어버렸다. 이준혁이 한 손을 핸들에 올려놓은 채 물었다. “오늘 내가 오지 않았으면, 할아버지한테 우리가 이혼한 거 말할 생각이었지?”윤혜인은 침묵했다. 실패하긴 했지만, 그의 말 대로 오늘 밝힐 생각이었다. 이준혁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참 대단하네. 할아버지 건강보다는 딴 남자와 새 출발하는 게 더 중요하다, 이거야?”오늘 그녀가 본 이태수는 컨디션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었다. 윤혜인은 이준혁이 왜 화를 내는지 이해되지 않았다.“당신이야말로 언제까지 숨길 생각이에요? 오늘 얘기 나눠봤는데, 못 받아들이실 정도는 아닌 것 같았어요.”그 말을 들은 이준혁의 표정이 더 안 좋아졌다. 그가 좌석 사이에 끼워져 있던 종이 뭉치를 세차게 던지며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적혀 있는지, 네가 직접 읽어!”종이가 날리면서 윤혜인의
‘하. 나랑은 마주치기도 싫다는 건가?’이준혁은 답답한 마음에 차 악셀을 힘껏 밟았다. 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빠르게 주차장을 떠났다.윤혜인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급히 안전벨트를 매며 손잡이를 찾았다. 눈물로 빨개졌던 뺨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제발 좀 천천히 가면 안 돼요?”하지만 이준혁은 찬 바람이 쌩쌩 부는 얼굴로 앞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계기판을 들여다보면 속도는 줄고 있었다. 그러나 윤혜인은 여전히 속이 울렁거렸다. 이준혁은 속도만 줄였을 뿐, 이리저리 사람이 없는 골목을 찾아 차 방향을 바꿨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최대한 몸을 등받이에 붙이며 눈을 감았다.그러는 와중에 한구운한테서 또 연락이 왔다. 윤혜인은 힘겹게 전화를 받았다. 전화 너머 한구운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혜인아, 지금 어디야?”그녀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곧 도착해요.”그러자 한구운도 뭔가 눈치챘는지, 긴말 없이 깔끔히 답했다.“알겠어. 그럼 문 앞에서 기다릴게.”그 순간, 또 차의 속도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윤혜인은 놀란 나머지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우려 몸을 숙이지 않았다. 앞으로 숙였다가 사고라도 난다면 크게 다칠 것 같았다.잠시 뒤, 마침내 약속장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앞에 한구운이 나와 있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윤혜인이 다급히 외쳤다.“차 좀 세워요!”하지만 이번에도 이준혁은 못 들은 척했다.윤혜인이 협박하듯 말했다.“안 세우면, 저 진짜 여기에 토할 거예요!”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겨우 1센치 간격을 두고 한구운 앞에 멈춰 섰다. 윤혜인은 간신히 후들거리는 다리를 지탱하며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첫발을 내딛자마자 무릎이 풀려 휘청거렸다. 한구운이 제때 부축해 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대로 넘어졌을지도 몰랐다. 윤혜인은 본인 아니게 한구운에게 몸을 기댈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한구운이 부드러운
이준혁의 존재를 눈치챈 한구운이 윤혜인에게 물었다.“자리 옮길까?”윤혜인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곳은 공공장소, 전처럼 이준혁이 무모한 짓을 벌일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이준혁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자, 윤혜인은 마음이 심란해졌다. 특히 뚫어져라 보는 그의 시선이 너무나도 소름이 돋았다.이준혁이 그녀가 앉아 있던 옆 테이블로 향하는 걸 본 순간, 윤혜인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언제까지 따라올 거예요!”그리고 찾아온 정적, 윤혜인은 살짝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최근 그에게 시달린 데다가, 좀 전의 그 질주까지, 예민할 대로 예민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녀와 반대로 이준혁의 얼굴엔 어떠한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윤혜인은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때, 한 여자가 그의 팔에 매달리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준혁 오빠.”윤혜인은 잠시 멍하니 자리에 굳어버렸다. 너무나도 당연히 이준혁이 자신을 따라왔을 거라 추측한 실수였다. 이준혁은 정말로 다른 약속이 있어 그녀를 데려다준 것이었다. 그제야 그의 옷차림도 다르게 보였다. 좀 전에 나타난 여자 때문에 꾸민 것 같았다. 윤혜인을 발견한 여자가 눈을 흘기며 입을 열었다.“좀 전에 뭐라고 했어요?”하지만 윤혜인이 망설이며 대답하지 않자, 정유미가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제 말 안 들려요?”여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정씨 집안의 금지옥엽 정유미였다. 항상 주변의 떠받음을 받으며 살아온 그녀였기에, 자신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은 윤혜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이때, 한구운이 윤혜인을 보호하듯 뒤로 잡아당기며 답했다.“죄송해요. 저한테 한 말이었어요.”그제야 정유미도 납득하고 윤혜인에게 관심을 껐다. 그런데 이때, 윤혜인의 손목을 잡고 있는 한구운을 본 이준혁이 싸늘하게 말했다. “오지랖은.”앞뒤 잘린 말이었지만, 누구에게 한 말인지 모를 수 없었다.순식간에 주변의 시선이 다시 그들에게로 쏠렸다. 모
정유미는 자라온 환경 때문에 남의 눈치를 볼 줄 몰랐다. 좋던 나쁘던 자신의 감정에 항상 솔직했다.이준혁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정유미는 그의 무미건조한 시선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우리가 무슨 사이죠?”이준혁이 물었다.“네?”정유미는 이 상황이 매우 당혹스러웠다.“오빠? 전 그쪽 같은 동생 둔 적 없어요.”누가 봐도 비꼬는 말투였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가 기분이 좋지 않음을 눈치챘을 테지만, 정유미는 그의 잘생긴 얼굴에 정신이 팔려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가 발그레한 얼굴로 작게 말했다. “호칭을 오빠라고 한 것뿐이잖아요. 전 오빠의 동생이 아니라 미래 아내의 자격으로 이곳에 온 거예요.”정유미는 그를 전에 사진으로 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어느 정도 보정이 들어간 모습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준혁의 실물은 사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셨다. 거기에 카리스마까지 더해, 정유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연예계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외모였다. 그녀가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오빠는 어떤 타입의….”하지만 정유미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언제 떠났는지, 이준혁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놀란 그녀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입구 쪽에 그가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분명 정유미를 무시하는 태도였지만, 그녀는 오히려 이 부분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는 차도남의 정석 같았다. 정유미는 다시 한번 그에게 빠져들었다.한구운 차에 탑승한 윤혜인은 생각에 잠겼다. 아까 그 여자의 말대로, 이준혁은 확실히 그녀와 다른 세계 사람이었다. 그를 좋아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분수에 넘친 짓이었을지도 몰랐다. 임세희가 없어지니, 다른 여자가 또 튀어나왔다. 이준혁의 옆엔 여자가 끊이질 않았다. 앞으로 그의 옆에 있으면 또 같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진작에 이 사실을 깨달았더라면 인생이 좀 덜 고달팠을 것이다. 윤혜인은 후회됐다. 매번 이준혁을 잊으려 노력했지만, 그가 나타날 때마다 그
서울국제호텔.도착해보니, 이미 한구운의 부모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윤혜인을 보자마자 매우 반갑게 맞이하며 선물로 쇼핑백 하나를 건네주었다.아들의 여자친구에 매우 만족한 모습이었다.윤혜인은 거절하고 싶었지만, 한구운의 눈짓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그녀는 일단 이 만남을 끝낸 뒤 그에게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한구운은 잠시 통화할 데가 있다면서 그들에게 먼저 올라가라는 신호를 보냈다.윤혜인은 한구운 엄마의 손에 이끌려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가는 길에 익숙한 뒷모습이 보여 자기도 모르게 멈춰 섰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이준혁이었다. 그는 많은 인파에 둘러싸인 채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 교차했다. 하지만 그는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한 듯, 무심히 고개를 돌렸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운명의 장난 같은 상황에 윤혜인은 한숨이 나왔다.잠시 후, 그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저절로 걸음이 느려졌다. 어떻게든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 타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서서히 닫혀갔다. 그를 피하는 것에 성공했나 싶은 순간, 갑자기 문이 다시 열렸다.“안 타세요?”이준혁이 무심한 표정으로 물었다.그러자 한구운의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를 이끌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고마워요.”엘리베이터 안에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이때, 한구운의 엄마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혜인아, 난 네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어. 얼른 구운이랑 상의해서 결혼 날짜 잡았으면 좋겠어. 우리도 이제 늙었는데, 하루라도 빨리 손주가 보고 싶어.”윤혜인은 뒤에서 따가운 시선을 느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공손히 답했다.“어머님, 저희 아직 거기까진 생각 안 해봤어요.”그러자 한구운의 엄마가 말을 이었다.“물론 아직 나이가 어리니,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도 이해해. 그래도 애는 일찍 가져야 여자한테 좋아. 애 태어나도 넌 신경 쓸 거 하나 없
윤혜인은 옆으로 물러서 그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하지만 이준혁은 지나치지 않고 그녀의 앞에 발걸음을 멈춘 채, 싸늘한 눈빛으로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왠지 모를 불안이 몸을 감쌌지만, 윤혜인은 티 내기 싫어 애써 침착한 척 말했다.“좀 지나갈게요. 비켜주세요.”“어디로 가려고?”그의 말에 윤혜인은 당황했지만, 곧 다시 정신을 차리고 담담하게 답했다.“당신과 상관없잖아요.”그녀는 이준혁이 애당초 이 길을 비켜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언쟁 벌이고 싶지 않았다.윤혜인이 옆에 난 작은 공간을 향해 발을 뻗은 순간이었다. 갑자기 이준혁이 다리를 턱하고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는 하마터면 이준혁의 발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가 갑자기 윤혜인의 허리를 잡아채더니, 강제로 남자 화장실로 끌고 들어갔다. 당황한 그녀가 발버둥 쳤지만, 그의 힘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윤혜인은 강제로 빈 칸막이 속으로 던져졌다. 동시에 문이 철컥하고 잠기는 소리와 함께 벽에 밀쳐졌다.다행히 칠성 호텔인 만큼 화장실은 깨끗하고 또 향기로웠다. 그래서인지 윤혜인은 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까 약속 자리에 오기 전 단정했던 옷차림도, 헤어도 모두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져 있었다.그녀가 빨갛게 달아오른 눈으로 그를 향해 외쳤다.“당장 이거 놓지 못해요?”그러자 이준혁이 그녀의 턱을 세게 부여잡으며 자신의 쪽으로 향하게 만들었다.“왜? 한구운이랑 한시도 떨어져 있기 싫어? 그놈이 도대체 너한테 뭘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급속도로 사이가 발전했을까?”그의 목소리엔 혐오가 가득한 걸 이준혁 본인도 알고 있었다. 질투를 숨기기 위해 내뱉은 독한 말이라는 것을. 요 며칠, 이준혁은 온갖 방법으로 윤혜인과 화해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윤혜인은 조금도 동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에 반해 한구운은 너무나도 쉽게 그녀의 마음을 얻어버렸다. 그것도 부족해 상견례에 결혼과 아이까지, 이준혁은 화가 나
윤혜인은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 것을 보고 통쾌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했다. 그녀가 다시 조롱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아, 그러고 보니 당신한테 고마워해야 하네요. 덕분에 그 사람과 함께 할 기회를 얻은 거니까.”이준혁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는 것을 느끼며, 윤혜인은 속에서 아주 후련함이 솟구쳤다.“그 사람, 아이 되게 좋아해요. 앞으로 최소 아이 두 명은 낳을 생각인데, 그러면 총 네 식구가 되겠네요? 저희 아주 행복하게 살 거예요.”“웃기지 마!”이준혁이 그녀의 어깨를 부서질 듯 잡으며 말했다.“넌 절대로 그놈이랑 아이를 가질 수 없어!”윤혜인이 코웃음치며 말했다.“당신이 뭔데요? 그쪽이 이런 말 할 자격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전처가 다른 남자랑 애 가지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생겼어요?”이준혁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윤혜인이 그를 똑바로 마주 보며 단호히 말했다.“당신은 날 통제할 자격 없어요!”순진하게 이준혁만 바라보며 살던 그녀는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윤혜인은 다시는 그런 멍청한 짓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이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윤혜인은 어깨를 잡고 있는 그의 힘이 점점 거세지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애써 고통을 참으며 더 강하게 그에게 말했다.“그러니까 이제 나 좀 보내줘요. 너무 길게 자리를 비우면, 사람들이 찾으러 올 거예요.”그녀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언급하면, 그가 미쳐 날뛰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의 착각이었다. 그의 광기는 조금도 줄어들 기미 없이, 더 흉포해졌다.이준혁이 위험하게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내 허락 없이는 넌 절대로 그럴 수 없어.”그의 목소리를 침착했으나, 윤혜인은 맹수 앞에 놓인 먹잇감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불길함을 감지한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뭘 어쩔 생각인데요? 여긴 남자 화장실이에요. 언제든지 사람이 들어올 수 있….”하지만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준
윤혜인이 떨리는 눈동자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준혁 손에 익숙한 핸드폰이 들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도 부족해 화면이 통화 중인 것으로 나타나 있었다.윤혜인은 자신의 핸드폰을 돌려받기 위해 손을 뻗었다. 이준혁은 별 저항 없이 그것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그녀가 막 입을 열려던 순간, 핸드폰에서 한구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혜인아? 나 지금 화장실 앞인데, 넌 지금 어디야? 혜인아?”윤혜인은 망설임 없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전원까지 꺼버렸다.그녀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한구운은 여직원을 찾아 여자 화장실을 살펴봐 달라고 부탁했다.“제 여자친구가 화장실에 있는 것 같은데, 한번 확인 좀 부탁드려요. 이름은 윤혜인이에요.”그 말을 들은 이준혁은 눈동자가 싸늘하게 변했다.‘여자친구, 좋아하네.’한편, 윤혜인은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1초가 1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잠시 후, 여직원이 한구운에게 아무도 없었다며 얘기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윤혜인은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녀는 당연히 한구운이 포기하고 갈 줄 알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남자 화장실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한구운이었다. 윤혜인은 긴장과 불안으로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런데 이때, 이준혁이 그녀를 바라보며 나가라는 듯한 고갯짓을 했다. 윤혜인은 분노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모습을 엉망진창으로 흩트려 놓은 사람은 그였다. 그런데 이런 뻔뻔한 태도라니, 윤혜인은 그가 너무 증오스러웠다.그녀의 모습을 본 이준혁은 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직접 나가지 않겠다면, 나가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은 순간, 윤혜인이 그의 옷소매를 잡으며 간절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협조할 마음이 없었다. 이준혁이 그녀의 손길을 뿌리치고 다시 한번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은 순간이었다. 그녀가 다급히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키스를 시작했다. 이준혁은 한구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