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인이 떨리는 눈동자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준혁 손에 익숙한 핸드폰이 들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도 부족해 화면이 통화 중인 것으로 나타나 있었다.윤혜인은 자신의 핸드폰을 돌려받기 위해 손을 뻗었다. 이준혁은 별 저항 없이 그것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그녀가 막 입을 열려던 순간, 핸드폰에서 한구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혜인아? 나 지금 화장실 앞인데, 넌 지금 어디야? 혜인아?”윤혜인은 망설임 없이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전원까지 꺼버렸다.그녀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한구운은 여직원을 찾아 여자 화장실을 살펴봐 달라고 부탁했다.“제 여자친구가 화장실에 있는 것 같은데, 한번 확인 좀 부탁드려요. 이름은 윤혜인이에요.”그 말을 들은 이준혁은 눈동자가 싸늘하게 변했다.‘여자친구, 좋아하네.’한편, 윤혜인은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1초가 1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잠시 후, 여직원이 한구운에게 아무도 없었다며 얘기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윤혜인은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녀는 당연히 한구운이 포기하고 갈 줄 알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남자 화장실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한구운이었다. 윤혜인은 긴장과 불안으로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런데 이때, 이준혁이 그녀를 바라보며 나가라는 듯한 고갯짓을 했다. 윤혜인은 분노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모습을 엉망진창으로 흩트려 놓은 사람은 그였다. 그런데 이런 뻔뻔한 태도라니, 윤혜인은 그가 너무 증오스러웠다.그녀의 모습을 본 이준혁은 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직접 나가지 않겠다면, 나가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은 순간, 윤혜인이 그의 옷소매를 잡으며 간절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협조할 마음이 없었다. 이준혁이 그녀의 손길을 뿌리치고 다시 한번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은 순간이었다. 그녀가 다급히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키스를 시작했다. 이준혁은 한구운에
구둣발 소리가 유난히 크게 화장실 안에서 울려 퍼졌다. 윤혜인은 긴장감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손바닥에 땀이 차오르며 숨 쉬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졌다.그러나 대비되게 이준혁은 매우 태연한 표정이었다. 윤혜인은 상황이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든 그가 너무나도 미웠다. 하지만 여기서 싸우면 더 안 좋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들키는 상황을 상상하니, 윤혜인은 당장이라도 죽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그러다 문득, 이준혁이라면 왠지 방법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윤혜인은 분노를 잠시 제쳐두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그녀의 태도가 달라진 것을 느낀 이준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해결해 달라고?”냉랭한 분위기가 흘렀다. 하지만 윤혜인은 자주 봤던 표정이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그것보다 이 상황을 헤쳐 나가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이준혁을 설득할 방법을 고민하던 찰나, 똑똑하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작은 칸막이 안에서 울려 퍼졌다. 동시에 한구운의 목소리도 들렸다.“안에 누구 있어요?”그 순간, 윤혜인은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윤혜인은 고민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에게 코알라처럼 매달린 뒤, 아까 그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목덜미를 깨물어 버렸다. 하지만 대담한 행동과 달리 그녀의 몸은 두려움에 덜덜 떨리고 있었다.이준혁은 자기도 모르게 옅은 신음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놀란 윤혜인은 자신이 매달려 있다는 것도 잊고, 그의 입을 막기 위해 손을 뻗었다. 이준혁이 제때 그녀를 바쳐주지 않았다면, 큰 소리가 났을지도 몰랐다.한편, 한구운은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었다. 그가 강제로 칸막이 문을 열기 위해 발로 걷어차려던 찰나, 갑자기 청소부가 청소 카트를 밀고 들어오며 말했다.“고객님, 거긴 지금 수리 중이라 다른데 이용하셔야 할 것 같아요.”그리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지금 사용하실 건가요? 아니면 청소해
마치 자신에겐 책임이 없다는 듯, 뻔뻔한 모습에 윤혜인은 분노했다.“그쪽이 신경 쓸 거 아니에요.”“하….”이준혁은 화가나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지금 나 도발해? 화장실이라고 내가 널 못 건드릴 것 같아?”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윤혜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반박하려 했다. 하지만 이준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아직 교훈이 부족해?”순식간에 시야가 어두워지면서 고개가 돌아갔다. 차가운 이준혁의 입술이 거침없이 그녀의 입술을 탐하기 시작했다.윤혜인은 당황해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그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입안에 아까처럼 비릿한 피 맛이 났다. 그러나 이번엔 입술을 깨문 건 이준혁이었다. 그는 벌하듯 윤혜인의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그녀는 따끔한 고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길고 차가운 손이 윤혜인의 몸을 제멋대로 훑고 다녔다. 그녀는 원치 않았지만, 몸이 멋대로 반응하고 있었다. 서서히 얼굴이 흥분으로 빨갛게 물들었다. 그녀는 몇 번이고 이준혁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의 손은 마치 본드를 붙인 듯, 떨어질 줄 몰랐다.자극이 서서히 뇌를 마비시켰다. 윤혜인의 몸은 이미 이준혁에게 길들어 있었다. 도저히 반항할 수 없는 흥분이 전신에 퍼졌다. 윤혜인은 반항하던 것을 멈추고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점점 입안을 헤집는 움직임이 깊어졌다. 이준혁은 구석구석, 윤혜인의 입안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쓸고 다녔다. 잠시 뒤, 키스는 멈췄지만, 그녀는 몸이 나른하게 풀려 제대로 서 있는 것도 힘들었다.“당신, 정말 무례한 거 알아요? 이렇게까지 해서 나한테 보여주고 싶은 게 뭔데요?”윤혜인은 이준혁한테 농락당한 기분이 들었다. 강제로 느껴야만 하는 흥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아직도 모르겠어?”이준혁이 뚫어져라 그녀를 마주 보며 기다란 손가락으로 입술을 꾹 눌렀다. 부드럽고도 촉촉한 촉감이 손끝에서 느껴졌다.“이래도 나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할 수 있어?”윤혜인은 오만한 그의 표정이 보기 싫어
순간 이준혁의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다. 하지만 윤혜인은 전혀 개의치 않고 코웃음치며 말을 이었다.“부족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키스 값으로 이 이상은 줄 수 없어요.”이런 식으로 누군가를 짓밟는 것은 그녀도 처음이었지만, 먼저 시작한 것은 이준혁이었다. 중요한 자리에 참석한 것을 알고도 그녀를 화장실로 강제로 끌고 가 옷까지 찢어 놓았다. 윤혜인은 그저 받은 대로 돌려준 것뿐이었다.“윤혜인!”이준혁의 얼굴이 분노로 붉으락푸르락해졌다.“겨우 이 정도로 화났어요? 대표가 되어서 인내심이 없으시네요.”윤혜인이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다시 한번 비꼬았다.“조언 하나만 할게요. 돈 벌고 싶으면 얼굴만 잘생긴 것으론 안 돼요. 성격부터 좀 죽이세요.”그러자 이준혁은 당장이라도 윤혜인의 목을 비틀어버릴 듯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하지만 윤혜인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더 당당히 그와 마주 보았다.평소엔 제대로 그에게 반박조차 하지 못했지만, 오늘 드디어 그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윤혜인은 그 어느 때보다 속이 후련하고 짜릿했다.서로 마주 보며 대치하기 시작한 지 한참, 이준혁이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윤혜인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변기 뚜껑 위로 주저앉았다. 심장이 아직도 미친 듯이 벌렁거리는 것 같았다.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윤혜인의 몸은 그에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늘 이 경험을 통해 다시 한번 확실하게 깨달았다.이건 결코 그녀에게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언제든지 휘두를 무기를 상대에게 쥐여준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오늘은 여차저차 이렇게 끝났지만, 만약 이준혁이 정말 물불 안 가리고 화 냈더리면, 이렇게 간단히 끝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내려왔다. 온갖 생각들과 불안들이 그녀의 머리를 헤집어 놓았다. 하지만 윤혜인은 애써 그 복잡한 문제들을 고민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지금은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어 이준혁한테 진 빚을 갚은 다음, 유학 자금을 모으는 것이 중요했다. 외국으로 가버리면, 이준혁이라도
잠시 침묵하던 이준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그 여자가 죽었다고 해도, 아이는 분명 살아있을 거야. 이천수가 자꾸만 일 벌이는 거 보면 알 수 있어.”“그렇다면 당분간 말 잘 듣는 아들 흉내 내면서 좀 방심하게 만들어 봐. 너의 아버지가 그 아이를 숨기느라 꽤 애쓴 것 같은데, 이대로는 찾기 힘들어.” 김성훈의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분명 서로 연락하고 있을 거야.”이준혁이 술을 들이켜며 말했다. 그가 계속해서 술을 퍼먹는 모습을 보고, 김성훈이 농담을 던졌다. “왜? 전처 마음 돌리기 쉽지 않나 봐?”그 말에 이준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러자 김성훈이 더 짓궂게 그를 놀리기 시작했다.“한두 번 거절당한 얼굴이 아닌데? 어디 내가 한번 팁 줘?”김성훈은 이준혁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좋아한다고 표현한다는 것이 도리어 상대의 화를 불러일으켰을 게 뻔했다. 이준혁이 냉담한 표정으로 김성훈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러는 너는, 여자친구가 있긴 하고?”김성훈은 순간 할말을 잃었다. 이준혁의 말에 정곡이 찔렸기 때문이다. 남한테 비수 꽂는 건 이준혁의 특기였다. 이러니 윤혜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것도 이해됐다. 그래도 친구가 고생하는데,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 그 태도부터 바꿔. 평소대로 하면 절대로 안 넘어와. 사람이 좀 져주는 맛도 있어야지. 맨날 그렇게 빳빳하게 구니, 누가 좋아하겠어?”일단 조언은 했지만, 김성훈은 그가 받아들일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지까지가 그의 역할, 결과는 이준혁의 몫이었다.이준혁은 술집을 나선 뒤, 회사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이혼한 뒤로, 익숙한 일상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자꾸만 윤혜인이 떠올라 견딜 수 없었다. 그런다가 어느 날 진짜 못 버티면 납치라도 할 것 같아, 스스로 자제하고 있었다. 다음날 일찍, 이천수가 정유미를 데리고 이준혁을 찾아왔다.이준혁과 눈이 마주친 정유미는 순식간에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맞선에서 완전히 병풍 취급을 당한 이튿날,
이준혁이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으며 차갑게 말했다.“아버지가 하세요, 그럼.”그의 눈빛에 담긴 살벌한 기운을 느낀 이천수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한두 번 본 눈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이준혁은 항상 그에게만 차가웠다. 이천수는 이럴 때마다 자신만 외부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준혁은 그를 아버지라 불렀지만, 태도는 전혀 아니었다.그럴수록 이천수는 이준혁한테 정이 떨어졌다. 이준혁한테 밀려 해외로 밀려났지만, 이번만큼은 반드시 다시 자리를 되찾아야 했다. 그래야 그의 또 다른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테니.“준혁아, 네가 날 그렇게 몰아붙이지만 않았어도, 우리 관계가 이렇게까지 틀어지진 않았어.”이준혁이 정색하며 말했다.“말 끝났으면, 이만 나가보세요!”“너!”이천수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자신의 목적을 상기하곤 다시 꾹 참았다.“결혼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 일단 유미랑 잘 좀 지내봐. 이번 에너지 프로젝트 성사하면, 회사도 큰 도약을 할 수 있을 거야.”이천수의 의도야 뻔했다. 일단 정유미를 통해 그녀의 가문과 이용해 목적을 이룬 다음, 여차 마음에 안 들면 쫓아낼 생각인 것이다. 이준혁은 더 대꾸할 가치를 못 느껴, 인터폰을 통해 주훈을 불렀다.“손님 나가신다. 배웅해 드려.”결국 이천수는 주훈에 의해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을 나온 그는 곧바로 정유미에게 다가가 말했다.“유미야, 준혁이 원래 성격이 좀 차가워. 하지만 네가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한다면 저 녀석도 바뀔 거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듯이, 너만 노력한다면 저 녀석도 넘어올 수밖에 없을 거야. 알겠지?”정유미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답했다.“알겠어요, 아버님.”이천수는 정유미의 태도가 매우 만족스러웠다. 말한 적은 없지만, 그는 이준혁의 외모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고 있었다. 정유미같이 머리에 든 것이 없는 여자가 사랑에 빠지기 딱 좋은 타입이었다. 이천수가 칭찬하며 덧붙였다.“그래, 착하네. 넌 내가 인정한
윤혜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더는 군말 없이 손에 쥐고 있던 카드를 주훈에게 건네줬다.“차용증은 주 비서님께서 갖고있습니까?”주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여긴 6억 원이에요. 확인하시고 차용증은 저한테 돌려주세요.”주훈은 잠시 머뭇하더니 입을 열었다.“대표님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아니요. 주 비서님께서 처리해 주세요.”윤혜인은 이준혁의 새 여자 친구한테 오해받고 싶지 않다고 바로 거절했다.정유미는 여전히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고 주훈은 말썽을 일으키기 싫어서 윤혜인을 데리고 차용증에 관한 일을 처리하러 갔다.차용증을 건네받은 후 윤혜인은 집으로 돌아갔다.이준혁은 밤이 깊어질 때까지 사무실에서 일했다.퇴근하고 나왔을 때 정유미는 이미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이준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정유미 씨는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거죠?”주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유미 씨께서 계속 가지 않았습니다.”이준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완전히 주훈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정 씨네 가문은 지금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는중인데 만약 정유미를 쫓아내면 다른 사람들은 이 씨네 가문과 정 씨네 가문의 사이가 좋지 않은 줄 알고 주식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주훈은 이내 물었다.“유미 씨를 깨울까요?”“아뇨, 문 열어줄 사람만 있으면 됩니다.”이준혁은 말을 마치고 떠날 준비를 했다.“대표님.”주훈은 그를 불러 세우고 오후에 윤혜인이 돈을 갚으러 온 일에 대해 전했다.그는 카드를 이준혁에게 건네주며 말했다.“그럼 이 카드는?”사실 당시 이준혁은 윤혜인이 차용증을 가지러 오면 그저 줄 테니 돈을 갚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그도 윤헤인에게 설명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카드를 그의 손에 억지로 쥐여주었다.주훈은 엄청 눈치 보였다.이준혁은 화가 치밀어 올라 녹색 카드를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이를 갈며 말했다.“버리세요.”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돌리고 떠났다.이준혁은 화가 잔뜩 난 채 차에 탔다. 위가 쥐어짜는 듯
윤혜인은 소파에 던져졌다. 생리통 때문에 그녀는 힘없이 말을 내뱉었다. “도대체 뭐 하는 거죠?”“네 생각엔?”이준혁의 얼굴은 차갑게 굳은 채 이미 반쯤 다 헤쳐진 셔츠 속으로 뚜렷한 복근을 드러냈다. 길고 고운 손가락은 단추를 계속 풀고 있었다. 무엇을 할지는 말하지 않아도 뻔했다. “미쳤어?”윤혜인의 감정은 격해졌다. “너 아직도 나를 잘 모르나 봐.”이준혁은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그녀를 거칠게 덮쳤다. 그녀를 소파에 눕힌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과연 담이 있을가 없을가?”윤혜인은그에 의해 소파에 갇힌채 도망갈 곳이 없었다. 그가 그녀의 입술을 베어물자 그녀는 얼굴을 돌리며 눈시울이 붉어진 채 증오에 가득찬 말투로 내뱉었다. “이준혁, 하기만 해봐,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녀의 말에 이준혁은 갑자기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웃었다. 다만 그 웃음은 은근히 자조적이었다. “그럼 네 말을 꼭 명심하고 절대 날 가만두지 마.”그는 그녀의 갸름한 턱을 단번에 베어물었다. 누가 봐도 그의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마크를 남기려는 듯했다. 이준혁은 그토록 그를 거부하는 그녀가 미웠다. 그녀보다 더 차갑고 모진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사랑하지 않는다더니 진짜로 사랑하지 않았고 남자친구를 찾는다더니 진짜로 남자친구를 찾았다. 일련의 서운함이나 미련도 없이 쿨하게 과거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했다. 그녀는 지극히 독했다.이준혁은 그녀의 턱을 깨물고 자세히 훑어보더니 물었다. “네 돈은 그가 준거야? 6억원에 너를 가졌어?”윤혜인은 손바닥을 가볍게 꼬집으며 좀 가소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화가 난 것은 알고 보니 6억원 때문이었다.그는 이 돈이 다른 남자가 그녀에게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슬프게도 이미 이혼했으면서도 그는 여전히 그녀를 하찮게 보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들어 분노로 가득찬 그의 시선을 마주하고 비아냥거리는 웃음을 띠며 말했다. “준혁 씨는 돈 한푼 쓰지 않고 날 가졌는데 지금 6억원원에 날 가졌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