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뭐가?임세희와 임향숙은 서로 마주 볼 뿐 감히 말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준혁의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이준혁이 입을 열었다.“한 글자에 한 대씩 때려. 휘재 네가 잘 보고 있어. 한대도 빠지면 안 돼.”“준혁 오빠.”임세희는 두려움에 떨었다.이준혁이 이 년을 감쌀 줄 몰랐다. 임향숙을 때리는 것은 그녀를 때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만약 오늘 임향숙이 맞으면 그녀는 이준혁에게서 아무런 존중도 받지 못할 것이다.안 된다!그녀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임향숙은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었다.“도련님, 제가 잘못했어요. 제 주제에 혜인 아가씨를 훈계하면 안 됐어요. 부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아직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 같네요...”이준혁의 눈빛이 사나워졌다.“윤혜인은 내 와이프예요. 누구도 함부로 대해선 안 되죠.”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말투는 위압감 넘쳤다.임세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이준혁은 임향숙은 물론 그녀에게까지 경고하고 있는 것 같았다.모두 이 년 때문이야!그녀는 증오심을 억누르며 가여운 표정을 지으며 애원했다.“오빠, 아줌마는 제가 태어났을 때부터 저를 보살핀 사람이에요. 이미 60세가 넘었는데 백번 넘게 맞으면 죽을지도 몰라요.”이준혁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임세희를 똑바로 볼 뿐이었다.눈에 드리운 깊은 그늘이 차갑게 식었다.“주변의 사람을 이제 바꿔야겠어. 이런 사람들은 그저 임씨 가문에 먹칠할 뿐이야.”임세희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리고 말았다.그녀를 아끼던 오빠가 이렇게까지 그녀의 뺨을 때릴 줄은 몰랐다.그녀에게 이제 일말의 감정도 남지 않았단 말인가?시선을 거둔 이준혁은 윤혜인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빨개진 그녀의 손을 보던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나한테 맡기라고 했잖아? 손 아프지 않아?”한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던 윤혜인은 그저 고개를 저었다.“아프지 않아요.”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
그리고 그의 품에 안겼을 때 임세희가 짓던 그 도발적인 미소.그녀의 심장은 예전처럼 산산조각이 나 아파야 했다.하지만 조금 견딜 수 있을 것 같다.아마 최선을 다했기 때문일 수도 혹은 이미 버려짐에 익숙했을 수도 있겠다....어느쪽이든 나쁘지 않다...그녀는 자신의 어깨를 감싸며 몸을 따뜻하게 한 후 돌아서 집으로 향했다.집에 도착한 윤혜인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위층으로 올라가 이미 오래전에 정리한 트렁크를 찾았다.트렁크에 막 손이 올려지는 그때 커다란 손에 제지당했다.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감았고 빈틈없이 품에 앉았다.“어디 가려고?”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머리위로 들려오자, 윤혜인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임세희를 돌보러 가지 않았나?이준혁은 그녀를 돌려세워 마주 보게 했다. 남자의 눈이 위험하게 가늘어졌다.“체인이라도 사서 묶어놔야지, 안 되겠어.”그렇지 않으면 한 눈판 사이에 놓쳐버릴 수도 있으니까.그는 강한 소유욕을 감추지 않았다.윤혜인은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맑은 눈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그 도우미가 한 말이 맞아요. 모두 내가 한 말이에요. 만약 걱정된다면 지금 달려가서 위로해줘요.”그녀는 거짓말이 싫었다. 했으면 했고 아니면 아니다.이것 때문에 이준혁이 그녀를 처벌한다고 해도 받아들일 것이다.이준혁의 눈빛은 어두운 물웅덩이처럼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녀의 손이 다시 트렁크를 잡았다.누군가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은 고문이었다.그녀는 지금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녀가 막 걸음을 옮기려 하자 이준혁이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고 재빠르게 입술을 탐했다.너무 격렬한 움직이는 그의 입술이 그녀를 집어삼킬 듯했다.윤혜인은 숨을 쉴 수 없었다.그의 입술은 항상 너무 공격적이었고 거칠어서 그녀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했다.얼굴이 붉어진 그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그를 밀어냈다.이준혁이 드디어 그녀를 놓아주며 입술을 뗐다.“만족해?”윤혜인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네
그의 말에 이준혁의 눈 속에 욕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가까이 있었기에 윤혜인도 느낄 수 있었다.그의 목을 감았던 그녀의 손이 아래로 내려가 그의 다리를 누르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하지만 이내 그에게 잡혀 몸을 움직일 수도, 일으킬 수도 없게 되었다.“그 사람을 잘 돌볼 수 없다면 비서 일도 그만둬.”그리고 전화를 끊어버렸다.그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허리를 다시 감았고 약간 힘을 주자 윤혜인은 그대로 그의 품에 안겨버렸다.가슴과 가슴이 맞닿아 뜨겁게 불타올랐다.반항하려는 윤혜인은 그대로 침대에 눌려버렸다.그의 손이 종아리를 따라 발목을 움켜쥐었다.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또 도망가?”그 손길은 윤혜인의 심장을 들어 올릴 뻔했다. 그는 언제나 그녀의 민감한 부위를 정확히 짚어내어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그녀는 약간 숨을 헐떡이며 힘없이 말했다.“그냥 내려가려고...”이준혁은 천천히 다가가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의 빨갛게 부은 입술을 바라보았다.“거짓말쟁이.”그 후, 그녀의 모든 헐떡임은 모두 그에게 삼켜졌다.그의 손은 옷을 밀어 올리고 민감한 부위를 감쌌다. 그러다 뭐가 생각났는지 입술을 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언제...”윤혜인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그의 손을 떼어 내고 싶었지만, 힘이 없다.그는 계속 추궁했다.“언제야?”윤혜인은 얼굴을 붉히며 얼버무렸다.“아마 아이를 낳은 후가 될 거예요...”남자는 생각에 잠기는 듯하며 가볍게 대답했다.“응.”왠지 그 음성에 무언가 낌새가 있는 것 같아서 윤혜인은 당황해하며 급히 말했다.“안 돼요. 생각도 하지 마요.”그는 욕망으로 어린 어조로 그녀를 세게 꼬집었다.“뭘 생각하지 말란 거야?”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거요...안 돼요!”“내가 아기 것까지 훔칠까 봐 두려운 거야?”그는 바짝 다가오며 그녀를 현혹시켰다.“걱정하지 마, 난 그 자식이 배부른 후에 할 거니까...”“그만 해요.”윤
이씨 가문.할아버지는 일찍부터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윤혜인을 보자 아이처럼 밝게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어서 들어와. 할아버지가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어.”음식을 차리던 문현미도 윤혜인을 보고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요즘 기침이 잦았던 그녀는 혹시나 윤혜인에게 전염될까 봐 그녀를 보러 가지 못했다. 이제 막 좋아진 상태라 가까이 못 하고 거리를 두며 그녀의 맞은편에 자리했다.장 씨 아주머니도 갓 끓인 전복죽을 윤혜인 앞에 가져다 놓으며 목을 축이도록 했다.윤혜인의 등장에 모두가 기뻐했다. 그녀는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귀염둥이였다.할머니가 떠난 후 윤혜인은 줄곧 저기압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이준혁은 아예 뒷전이었다.그가 자리에 앉자 그제야 아들도 왔다는 것을 인지한 문현미는 비난하기 바빴다.“혜인이를 잘 돌보라고 했는데 어떻게 얼굴이 반쪽이 되게 만들어! 그러다 뱃속의...”문현미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할아버지는 임신 사실에 대해 아직 모르고 있었고 윤혜인의 동의를 얻기 전까지는 말하면 안 되었다.그녀는 급히 말을 돌렸다.“다음에도 이렇게 삐쩍 마르면 여기에 들일 거야. 내가 직접 돌봐야겠어.”별다른 의견이 없던 이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윤혜인은 이미 임신초기를 넘긴 상태라 식욕이 왕성했다.기분이 좋았던 할아버지는 녹용주를 마셨고 이준혁이 그런 할아버지와 함께 술잔을 부딪혔다.그는 부지런히 윤혜인의 접시를 채워주었고 비닐장갑을 끼고 새우 껍질을 손수 발라주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편식하면 안 돼. 골고루 많이 먹어야 해.”윤혜인의 얼굴은 살짝 붉어졌다. 그녀는 그가 발라준 새우를 오물오물 맛있게 먹었다.그 모습에 이준혁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저녁 식사 후 밖에서 갑자기 큰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이런 밤에 돌아가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고 생각한 문현미는 장 씨 아줌마에게 두 사람이 쉴 곳을 부탁했다.문현미는 윤혜인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윤혜인이 항상 머물던
베란다로 걸어가고 있는데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창문이 스르륵 열렸다.놀란 그녀가 눈을 크게 뜨며 비명을 지르려는데 커다란 손이 그녀의 입을 잽싸게 막았다.“나야.”정신을 차린 그녀는 정교하게 빠진 잘생긴 얼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그이 손이 풀리자,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당신... 어떻게 여기에 있어요?”“넘어왔어.”이준혁은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방금 샤워를 마친 것 같은 그는 몸에서 상쾌한 바디로션 향이 났고 흐트러진 머리카락들은 젖은 채로 이마에 아무렇게나 붙어있었다.낮에 비해 좀 더 나른해진 듯한데도 무척 매력적이었다.눈만 깜빡이던 윤혜인은 겨우 이성을 되찾았다.“안 자고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이준혁은 한 걸음 다가서며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응시했다.“내가 왜 왔을 것 같아?”윤혜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뭔가가 곧 폭발할 것 같았다.분위기는 점점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입술을 깨문 그녀는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고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이준혁이 그녀를 품속으로 끌어당겼다.그의 뜨거운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았고 고개를 숙여 재빠르게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깊은 키스가 이어지고 두 사람 모두 가볍게 헐떡거렸다.윤혜인의 몸이 살짝 들려지는가 싶더니 그에 의해 이미 침대로 향하고 있었다. 포근한 이불 위에 파묻힌 그녀를 이준혁이 몸으로 짓눌렀다.윤혜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경고했다.“어머님이 오지 말라고 했잖아요.”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목 주위을 지분거렸다. 그의 손은 잠옷을 들추고 욕망을 채우고 있었다.“살살 할 테니 걱정하지 마.”“그래도 안 돼요. 저리 가요...”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윤혜인은 그의 거침없는 움직임에 침대 시트를 잡고 말았다.얇은 잠옷 안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이준혁이 눈이 짙어졌다.“날 기다린 거야?”윤혜인은 급히 부인했다.“아니요.”오늘 저녁에 너무 많이 먹었고 임신한 상태라 그 부위가 더 커져서 뭔가가 조이는 느낌이 불편했고 취침하
그녀는 아주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임세희가 이준혁의 옆에 있었던 그 시간에 그녀는 그림자처럼 몰래 바라보기만 했기 때문이다.시간은 너무 잔인해서 많은 습관을 머릿속에 각인시켜 잊을 수 없게 한다.하지만 그녀는 지금 강력한 상대에 맞서려 하고 있다.너무 순진한 생각이란 것을 알지만 그녀는 임세희를 정말로 이겨보고 싶었다.그녀가 그 배후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수무책이었던 그녀는 할머니에게 너무 죄송했다.이준혁을 이용하여 그녀의 심장을 아프게 하는 것이 임세희가 제일 잘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녀도 하지 말란 법은 없다.지금 상황으로 보면 그의 아이를 가진 그녀가 훨씬 유리한 위치였다.하지만 그 말이 끝나자 기나긴 정적이 흘렀다.윤혜인은 갑자기 불안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얘기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말아요.”눈살을 찌푸린 이준혁이 손을 뻗어 그녀를 다시 품에 안았다.“뭘 얘기하고 싶어?”얘기할 마음이 있다는 신호다.윤혜인은 입술을 깨물었다.“당신이 임세희에게 빚졌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언제까지 갚을 건가요? 끝은 있나요? 아니면 평생?”만약 평생이라면 그녀는 생각을 거둘 것이다.너무 지쳤고 흔들 자신이 없다.이준혁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그녀의 코끝은 살짝 건드렸다.“그렇게 신경 쓰여? 질투하는 거야?”윤혜인은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의외였던 이준혁은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갔다.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찾으며 깊은 키스를 퍼부었다.“세희에게는 아무런 감정 없어.”윤혜인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은 대답이었다. 그는 전에도 이 말을 했었지만, 습관이라는 천평은 항상 임세희에게 기울여졌다.“하지만 당신은 단 한 번도 날 선택한 적 없어요. 티 내지 않는다고 전혀 괜찮다는 건 아니에요.”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초롱초롱한 눈이 그를 호되게 꾸짖고 있었다.“무지 신경 쓰여요. 남편이 그러는 것을 좋아할 와이프는 없어요.”시선이 맞닿았다. 이준혁은 가만히 그녀를 응시하고 있다.
그녀는 남자의 억압된 떨림을 느꼈다.“뭐 하는 거야?”이준혁은 그녀의 얌전하지 않은 손을 낚아채며 눈을 부릅떴다.윤혜인은 고혹한 눈빛으로 그를 힐끔 바라보곤 혀를 살짝 내밀고 그녀가 방금 깨문 자리를 핥았다.이준혁의 모습을 따라 하며 삼키며 빨아들인다. 남자는 너무 괴로워서 눈에 충혈이 질 지경이다.“자고 싶지 않단 거야?”이준혁은 꽉 쥐고 있던 그녀의 손을 풀고 단숨에 그녀 위로 올라가 그녀를 몸 아래 짓눌렀다.“엄마는 한밤중에 깨는 습관이 있으셔서 조용히 해야 해.”그가 낮은 소리로 경고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혜인은 남자 앞에서 함부로 혀를 놀리면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그는 그녀의 민감한 곳을 빨았다. 그의 움직임이 너무 느려서 그야말로 애간장을 태웠다. 고문을 당하고 있는 윤혜인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감히 주체할 수 없는 신음을 내뱉을 수 없었다.그녀가 힘들어하는 모습에 이준혁이 그녀의 입술을 살짝 쓸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장난이야. 엄마는 깨지 않아.”그렇다고 해도 윤혜인은 소리 지를 수 없었다.자신의 집이 아니었기에 충분히 느낄 수 없었다.밝은 빛은 아니었지만, 윤혜인은 그의 얼굴에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껏 인상을 쓴 그의 얼굴에서 지금이 남자도 여자와 마찬가지로 불편하면서도 만족스러운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다.마셔도 마셔도 성에 안 차 몇 번이고 반복했다.두 사람은 결국 땀으로 범벅이 된 채로 절정을 맞았다.이준혁은 그녀를 안고 다시 씻어러 갔다.욕실 조명 아래 그녀의 다리에 그가 괴롭힌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그녀를 안아 침대로 돌아간 이준혁은 약을 발라주었다. 그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말했다.“할 수 없다면서 왜 이렇게까지 날 괴롭히는 거지?”윤혜인은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몹시 지쳤다.가장 곤욕을 많이 치른 그녀의 다리는 아직까지도 들어 올린 힘이 없었다.그의 팔을 베고 있는 그녀는 천장을 바라보며 갑자기 입
세 번째로 전화를 걸려던 윤혜인은 잠시 멈추고 대신 문자를 보냈다.[남편, 바빠요?]그녀는 거의 남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어젯밤에 이미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했고 반응도 나쁘지 않았으니 이제 진심을 표현하는 데에 인색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윤혜인이었다.일 때문에 바쁜 것일 수도 있으니, 나중에 문자를 확인하면 그가 너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문자를 보낸 지 거의 30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무 연락이 없다.윤혜인은 빈번하게 휴대폰을 확인하고 있었다.모든 신경이 휴대폰에 집중된 이런 행동은 별로 좋지 않은 것이다.마침내, 휴대폰의 문자 알림이 울렸다.그녀가 서둘러 확인해 보니 소원의 문자였고 그녀에게 술 한잔하러 가자는 내용이었다.윤혜인은 지금 불안한 상태보다는 나가서 바람 쐬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약속을 잡은 후, 그녀는 기사와 함께 그곳으로 이동했다.그들은 롤리에서 보기로 했다. 여기는 각종 엔터테인먼트가 통합된 고급 클럽이었다.두 사람은 작은 룸을 잡고 한 사람은 주스를 마시고 다른 한 사람은 와인을 마셨다.요즘 소원은 아주 평안하게 보냈다. 육경한의 약혼녀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들의 결혼식이 3개월 뒤로 미뤄졌다. 백일 안에 다시 식을 올릴 거라 한다.당연히 약혼녀를 위로하느라 바쁜 육경한이여서 소원이를 괴롭힐 여유가 없었다.그녀의 아버지도 훨씬 좋아졌고 회사도 가장 어려운 시기를 넘겼다.여전히 많은 빚은 지고 있지만 회사는 돌아가고 있고 천천히 재정비하고 있었다.그녀의 큰 관심사는 윤혜인이었다.“이준혁과는 어때? 요즘 뜨거워졌다고 들었는데 나 이모 소리 들을 수 있는 거야?”그 무리와 어울리고 있는 소원은 이준혁과 임세희가 다시 만난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그래서 임세희가 그 정도의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생각했다.이 결과에 대해 그녀는 매우 안도하고 있었다.10년지기 절친의 고집스러운 의지가 드디어 빛을 발하고 있어서 그녀는 너무 기뻤다.잠시 생각하던 윤혜인이 대답했다.“곧 듣게 될 거야.”
윤혜인은 손에 들고 있던 잔을 들어 원진우를 향해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삼촌, 제가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한 잔 먼저 마시겠습니다.”그러더니 금세 잔을 비웠다.그녀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잔에 들어 있던 술에는 몇 시간 동안 상대를 잠들게 하는 특수 성분이 들어 있었다.그러나 윤혜인은 미리 해독제를 복용해둔 상태였고 원진우의 경계를 풀게 하려고 같은 술을 마신 것처럼 보이게 했다.원진우 같은 교활한 상대에게는 대화나 교섭보다는 이런 방법이 가장 안전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윤혜인이 잔을 비워도 원진우는 여전히 미동조차 없이 술잔을 들지 않았다.초조해진 윤혜인은 도우미를 다시 불러 그의 잔을 채우게 했다.“앞으로도 저 잘 봐주셨으면 하니까 또 한잔 올리겠습니다.”한국인 사이에서 ‘두 잔’은 최고의 예우를 의미하기 때문에 원진우도 어른으로서 이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만약 거절한다면 그의 인품에 오점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마침내 원진우는 천천히 잔을 들고 그녀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그러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잔이 입술에 가까워지려는 순간, 그는 갑자기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아, 깜빡했군. 오기 전에 집에서 의사에게 받은 약을 먹었는데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세 시간 동안은 물도 마실 수 없다고 했어요.”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윤혜인은 분노로 속이 끓어올랐지만 원진우가 댄 이유가 합리적이었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첫 번째 계획은 명백히 실패한 셈이었다.곧 원진우가 자리를 뜨려 하자 윤혜인은 재빨리 다음 계획으로 전환했다.원진우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그녀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들은 바에 의하면 해외 무역에 아주 조예가 깊으시다고 하던데 저희 집도 국제 해운업에 종사하고 있어서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시간 괜찮으신가요?”그러자 원진우는 잠시 멈춰서서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물어봐요.”이윽고 윤혜인은 몇 가지 질문을 던졌는데 모두 해외 무역의 어
곽경천은 곧 다가올 파티에 계획에 이준혁도 포함시키기로 했다.자신은 원진우의 별장에 인원들과 함께 잡입할 예정이고 파티장에는 배남준 혼자였는데 그에게 온전히 윤혜인을 맡기기가 불안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파티장에서 잠재적인 위험인물인 원진우를 감시하고 윤혜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추가 인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그러나 윤혜인은 이준혁이 다리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반대했다.그가 파티에 등장하면 원진우가 의심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곽경천의 우려가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이 계획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은 윤혜인도 잘 알고 있었다.파티장에 있는 사람들과 별장으로 잠입하는 사람 모두 위험이 따르는 임무였다. 게다가 시간이 촉박해 추가 인원을 조정할 여유도 없었다.윤아름의 행방을 찾을 기회가 얼마 남지 않았다.원진우가 모레 회사 양도 계약서에 서명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떠나게 되면 윤아름의 소식을 알아낼 마지막 기회를 놓치게 된다.이준혁은 이번 파티가 배남준을 돕기 위한 행사라는 곽경천의 설명을 듣고 이를 납득했다.배씨 가문에는 생후 첫 파티 후 배남준이 독립적인 가장이 되어 호적을 옮길 수 있는 전통이 있었다.질투가 나긴 했지만 이준혁은 배남준이 윤혜인을 향한 마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공정하게 행동해왔다는 점을 존중하고 있었다.배남준은 숨겨진 음모 없이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상대였다.다음 날, 드디어 생후 한 달 기념 파티가 열렸다.윤혜인은 밝은 빨간색 원피스에 회색 모피 외투를 입고 고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행사에 나타났다.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원진우도 파티장 정문에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북안도에서 배씨 가문과 찰스 가문이 보내는 초대장에는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무언의 룰이 있었다.그렇지 않으면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었다.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원진우는 크림색 벨벳 수트를 입고 문학적이고 온화한 인상으로 나타나 눈길을 사로잡았다.그러나 윤혜인은 그의 겉모습이 실제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의
이준혁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에서 그가 자격지심을 느껴 한다는 것을 깨닫고 윤혜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자존심 강하고 남들한테 존경만 받는 사람이 언제부터 저렇게 불안해하는 감정을 품게 됐을까?’그녀는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었다.하지만 윤혜인에게 역시 억울한 감정이 있었다.이준혁을 기다리다 사무실에서 잠들었고, 깨어나니 주변은 새까맸고 홀로 추위 속에 거의 얼어붙을 뻔했으니 말이다.“왜 날 찾으러 오지 않았어요?”그녀는 작게 말했다.그 어둠과 추위를 떠올릴 때마다 서운함이 다시 피어올랐다.만약 이준혁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면 윤혜인은 사무실에서 잠들어 문이 잠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내 잘못이야.”남자는 말했다.“모두 내 잘못이야. 맹세할게. 앞으로 절대 너를 혼자 두지 않을 거야.”이준혁은 한때 그녀를 놓아주려는 생각을 했었지만 곽경천이 그녀와 거리를 두라고 말하자 그의 가슴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순간 그는 깨달았다. 자신은 결코 윤혜인을 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윤혜인이 그를 싫어하지 않는다면 불편한 몸일지라도 이준혁은 그녀를 지키겠다고 결심했다.결혼 이야기가 거짓임을 알았을 때, 그는 더 이상 방관자가 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그녀와 아이들이 이준혁의 세상에서는 가장 소중한 존재였기에 그들의 삶에 함께하고 싶었다.윤혜인의 얼굴은 살짝 붉어졌다.‘언제 이렇게 빨리 마음을 바꾼 거지?’얼마 전까지 차갑기만 했던 이준혁이 이제는 윤혜인이 듣고 싶었던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그가 자신을 두고 돌아가지 않았던 일에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약간의 원망을 풀고자 윤혜인은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했다.“날 혼자 두지 않겠다니... 무슨 뜻이에요? 나 유부녀인 거 알잖아요. 설마 남편 자리를 뺏으려고요?”그러자 이준혁은 살짝 미소 지으며 그녀가 아직 진실을 모른다는 걸 알아챘다.하여 윤혜인의 장단에 맞춰주고자 이준혁이 말했다.“상대가 너라면... 기꺼이 감수하지.”
배남준은 아버지가 원진우와 비밀리에 대화하는 것을 엿들었다.대화의 내용은 원진우가 북안도의 회사를 팔고 다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과거에 원진우가 떠날 때마다 그의 행방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웠다. 심지어 이번에는 원진우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니 다시 그의 흔적을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울 것이다.곽경천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이번 계획은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만약 이번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윤아름을 찾을 마지막 희망마저 잃게 될 것이니 말이다.곽경천은 고민스러웠다.‘하필 이런 중요한 시기에 혜인이가 병에 걸리다니... 앞으로 3일 후면 파티가 열릴 예정인데 그때 무대에 설 수 있으려나?’만약 불가능하다면 그녀를 대신해 위장할 사람을 빨리 찾는 것도 필요했다....의식을 되찾은 윤혜인은 자신이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머리는 무겁고 여러 혼란스러운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이준혁은 그녀와 등을 돌린 채 멀어져 갔고 아무리 그를 불러도 그가 남긴 것은 차가운 뒷모습뿐이었다.“어때, 괜찮아?”남자의 낮고 깊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윤혜인은 눈을 깜빡이며 꿈속의 그 남자가 지금 자신의 침대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순간 꿈에서 느꼈던 그 서운함이 현실로 밀려들어 왔다.“왜 나 무시했어요?”윤혜인은 불만스럽게 물었다.그러자 그녀의 말에 당황한 이준혁은 준비했던 설명조차 단숨에 잊어버렸다.눈가가 붉어진 채 윤혜인은 점점 더 억울해했다.“나... 꿈에서 계속 불렀는데... 준혁 씨는 나 무시하고...”그녀의 말을 들은 이준혁은 그것이 꿈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고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그 후에는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자신이 어떤 감정이든 상관없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동정이냐 아니냐가 정말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중요한 것은 윤혜인이 이준혁의 곁에 있고 그녀의 꿈과 시선에 그가 있다는 것뿐이었다.“응. 내 잘못이야
“죄송합니다.”이준혁은 진심으로 사과했다. 이번 일은 분명히 그의 책임이었다.만약 그의 부주의가 아니었다면 윤혜인이 이런 고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이준혁은 자책하며 곽경천이 자신을 때려줬으면 싶을 정도로 후회하고 있었다.그때 주훈이 갑자기 ‘퍽’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었다. 그러더니 곽경천을 향해 말했다.“모든 게 제 잘못입니다. 제가 혜인 씨에게 대표님을 보러 오라고 부탁했거든요.”그는 깊이 자책하고 있었다.만약 자신이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윤혜인이 사무실에 갇혀 얼어붙는 일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주훈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그녀가 떠났는지 관심을 두지 않은 자신의 큰 실책이라 여겼다.이번 일로 이준혁이 자신을 탄페니아에 10년간 가 있으라 해도 감수할 각오였다.하지만 곽경천은 사건의 전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사실 윤혜인이 먼저 주훈에게 전화를 걸어 이준혁의 상황을 물어봤고 주훈은 그저 그녀에게 와보라고 덧붙였을 뿐이었다.주훈이 권하지 않아도 윤혜인은 이준혁을 찾아갔을 것이다.이준혁을 찾으러 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전제하에 주훈의 말은 그저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았다.곽경천은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잘못한 사람이 있다면 책망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불필요한 비난을 하지 않았다.그는 주훈을 일으키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일어나요. 이 일은 주 비서님 잘못이 아니니까요. 혜인이는 스스로가 원해서 간 거예요.”이 말을 듣고 이준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곧이어 곽경천은 이준혁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인이는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로 흔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혜인이가 준혁 씨를 찾아간 것은 마음속에서 준혁 씨를 지우지 못해서였을 거예요.”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이준혁 씨, 이준혁 씨도 혜인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를 리 없잖아요.”“이번 일을 계기로 혜인이에게서 조금 떨어져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준혁 씨가 진정으로 마음을 정리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겠어요.”사실 곽경천은 이준혁에게 크게
눈빛이 어두워진 채 이준혁은 묵묵히 소화전 쪽으로 걸어갔다....한편, 윤혜인은 이미 추위로 감각이 사라진 상태였다.의식은 오락가락했고 마치 꿈속에서 이준혁이 자신을 구하러 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은 듯했다.무의식중에 그녀는 손을 뻗어 문을 몇 번 두드려 그에게 자신이 여기 갇혀 있다는 신호를 주려고 했다.하지만 너무 지쳐있어 눈조차 뜨기 힘들었다.더 이상 추위를 느끼지 못할 만큼 피곤함이 몰려왔고 손은 힘없이 축 처졌다.지쳐 의식을 잃어가던 그 순간, 큰 소리와 함께 문에 구멍이 뚫렸다.이준혁은 서너 번의 도끼질로 문을 쳐서 자물쇠를 부수고 마침내 문을 열었다.윤혜인은 그의 무릎 담요로 사용하던 짙은 남색 담요를 몸에 감싼 채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바로 그때,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건물 전체에 전기가 다시 들어왔다.바닥에 웅크린 윤혜인의 얼굴은 아름다웠지만 병든 사람처럼 창백해져 있었다.이준혁의 가슴 속엔 극심한 통증이 일었다.몸을 낮추고 그녀를 안아 올렸지만 마치 얼음 덩어리를 안는 것처럼 차가웠다.윤혜인의 몸은 이미 차가워져 조금 경직되어 있었고 다리는 자연스럽게 구부러지지도 않았다.다행히 아직 숨을 조금 쉬며 윤혜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이준혁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후 천천히 일어섰다.지팡이 없이 걷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지만 그는 모든 힘을 남아 있는 한쪽 다리에 집중해 무릎을 꿇고 지팡이를 집어 벽에 기대어 두었다.그런 다음 지팡이를 짚으며 윤혜인을 어깨에 걸쳐 안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엘리베이터에 도착해 1층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주훈이 이미 구급대와 함께 들것을 대기시키고 있는 게 보였다.구급대는 윤혜인을 곧장 들것으로 옮겼고 이준혁도 함께 이동했다.주훈은 뒤따르며 죄책감에 사로잡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만약 그가 윤혜인에게 오라고 하지 않았다면 그녀가 사무실에 갇혀 반나절 동안 얼어붙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다행히도 이준혁이 윤혜인을 찾았지만 만약 모두가 그녀가
곽경천은 분통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모든 단계에서 누군가가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도 윤혜인이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그는 급히 이준혁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다. 때는 이미 새벽 3시였다.이준혁은 전화를 받고 즉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사실 그는 잠들지도 않은 상태였다.곧장 이준혁은 윤혜인이 그날 자기 사무실에 왔다가 떠난 후 소식을 들은 바 없다는 것을 곽경천에게 알리고 전화를 끊었다.곽경천은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현지 경찰에 연락해 CCTV를 조사하기 시작했다.침대에 앉아 잠시 생각했으나 이준혁은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는 외투를 걸치고 휠체어에 올라 회의장에 향하기로 했다.혹시나 싶었지만 가장 먼저 확인할 곳이 이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회의장이 전원이 차단되고 문이 잠기면 보안 시스템이 작동하여 상급 관료의 허가 없이는 다시 전원을 공급할 수 없었다.이준혁이 당직자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하여 주훈에게 당직자의 집 주소를 찾아가 직접 연락하도록 지시한 후, 이준혁 자신은 보안 직원에게 열쇠로 건물 내부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했다.그렇게 그는 손전등을 입에 물고 어두운 계단을 한 계단씩 올라가기 시작했다.한 손으로 난간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지팡이를 짚어야 해서 손전등을 입에 문 채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갔다.입이 피로할 때는 손전등을 외투 주머니에 넣고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길을 찾았다. 다행히 사무실은 높은 곳이 아닌 그나마 적당한 8층에 있었다.20분 정도가 지나 8층에 도착한 그는 숨이 차오르는 것도 무릅쓰고 사무실로 향했다.사무실 문 앞에 다다라서는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전원이 차단된 상태에서는 이 문을 열 수 없었다.전력을 공급하고 비밀번호를 입력해야만 열리는 구조였는데 문에 틈새도 없어 내부 상황을 볼 수도 없었다.창문도 벽 쪽에 설치되어 있어 창문을 통해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이준혁은 윤혜인의 이름을 부르며 문을 힘껏
곽경천이 돌아왔을 때, 도우미들은 이미 주인이 없는 틈을 타 저들만의 편의를 봐가며 태만하게 지내고 있었다.배남준이 윤혜인을 피하며 며칠째 모습을 보이지 않자 도우미들은 윤혜인이 버림받았다 생각하고 그녀를 무시하기 시작했다.아이를 출산했음에도 자신들의 주인이 윤혜인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다고 판단한 도우미들은 일에 태만해졌고 그녀를 아예 무시하며 허술하게 일을 처리했다.윤혜인은 원래 문제를 일으키기 싫어하는 성격이어서 도우미들과 크게 마주칠 일 없이 지냈고 이들의 불성실함을 알아채지 못했다.그리고 도우미들은 윤혜인의 이러한 성격을 이용해 점점 더 방자하게 굴었다.태만하게 군 나머지, 그들은 윤혜인이 하룻밤은 물론 사흘을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해도 아마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곽경천은 도우미들이 무릎도 제대로 꿇지 않은 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는 것을 보자 이들이 윤혜인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번에 파악했다.분노가 끓어오른 그는 단호하게 경호원들에게 명령했다.“이 사람들 모두 끌고 나가서 무릎 꿇게 해! 한 명도 잠들지 않도록 감시하고!”그러자 당황한 도우미들이 소리를 질렀다.“저희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렇게 벌을 주시는 거예요? 아가씨도 성인이신데 저희가 항상 따라다닐 수는 없잖아요!”특히 곽경천에게 발길질을 당한 도우미가 가장 먼저 고개를 들고 당당히 외쳤다.“내가 무슨 권리로 그러냐고요?”곽경천은 냉랭하게 눈을 치켜떴다.“남준이가 없다고 해서 당신들을 다스릴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까?”도우미들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하여 그저 뻣뻣하게 등을 펴고 말했다.“저희 가주님만이 저희를 벌할 권리가 있습니다!”“좋아요.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나 보네요.”곧 곽경천은 그들 앞에서 배남준에게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걸었다.상황을 들은 배남준은 크게 분노하며 도우미들에게 더욱 엄격한 벌을 내리겠다고 명령했다.그들을 야외에서 무릎을 꿇을 뿐만 아니라 겉옷을 벗고 한
순간 윤혜인은 절망감에 휩싸였다.차가운 기류가 어둠 속에서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윤혜인을 지켜보며 언제든지 삼킬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윤혜인은 유일한 방한 도구인 담요를 꼭 껴안았지만 추위에 몸과 정신이 얼어붙어 더 이상 생각할 수가 없었다.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은 이준혁뿐이었다.만약 모두가 그녀가 실종된 것을 알아차린다면 이준혁은 아마도 윤혜인이 자신의 사무실에 있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다행히 평소에 곽경천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기 전 윤혜인에게 전화해 그녀의 안전을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다.그날 밤 업무로 인해 늦어진 그는 전화 대신 윤혜인이 자고 있을까 봐 문자로 대신 메시지를 보냈다.[혜인아, 자?]문자를 보낸 후 다시 일에 몰두했다.파티 준비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원진우의 계획을 지연시키거나 필요할 경우 그를 체포하기 위해 행사장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곽경천은 디자인 도면을 수십 번 확인하며 허점을 찾아냈다.작업을 끝마치고 밤이 깊어졌을 때, 그가 다시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윤혜인의 답장은 없었다.‘벌써 잠에 들었나...’샤워를 마치고 나와서도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어 곽경천은 곧바로 별장에 전화를 걸었다.그렇게 전화가 여러 번 울리다가 결국 연결되었고 도우미의 잠에 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누구를 찾으시는 거죠?”곽경천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왜 이제야 받는 거야?!’“곽씨 가문 사람인데 혜인이는 자고 있나요?”그가 자신을 ‘곽씨 가문 사람’이라고 밝히자 도우미는 그가 바로 윤혜인의 오빠임을 알아챘다.하여 도우미는 눈을 비비며 대답했다.“잘 모르겠어요. 오늘 하루 종일 아가씨께서 별로 밖에 나오지 않으셨거든요.”‘안 나왔다고?’곽경천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여은과 도지훈이 아기를 서울로 데려간 터라 윤혜인은 아기를 돌볼 필요가 없는데 하루 종일 방에만 있었다니 참 이상했다.그는 단호하게 말했다.“지금 가서 확인하고 즉시 보고해요!”곽경천의 엄격한 목소리에 도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