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로 전화를 걸려던 윤혜인은 잠시 멈추고 대신 문자를 보냈다.[남편, 바빠요?]그녀는 거의 남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어젯밤에 이미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했고 반응도 나쁘지 않았으니 이제 진심을 표현하는 데에 인색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윤혜인이었다.일 때문에 바쁜 것일 수도 있으니, 나중에 문자를 확인하면 그가 너무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문자를 보낸 지 거의 30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무 연락이 없다.윤혜인은 빈번하게 휴대폰을 확인하고 있었다.모든 신경이 휴대폰에 집중된 이런 행동은 별로 좋지 않은 것이다.마침내, 휴대폰의 문자 알림이 울렸다.그녀가 서둘러 확인해 보니 소원의 문자였고 그녀에게 술 한잔하러 가자는 내용이었다.윤혜인은 지금 불안한 상태보다는 나가서 바람 쐬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약속을 잡은 후, 그녀는 기사와 함께 그곳으로 이동했다.그들은 롤리에서 보기로 했다. 여기는 각종 엔터테인먼트가 통합된 고급 클럽이었다.두 사람은 작은 룸을 잡고 한 사람은 주스를 마시고 다른 한 사람은 와인을 마셨다.요즘 소원은 아주 평안하게 보냈다. 육경한의 약혼녀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들의 결혼식이 3개월 뒤로 미뤄졌다. 백일 안에 다시 식을 올릴 거라 한다.당연히 약혼녀를 위로하느라 바쁜 육경한이여서 소원이를 괴롭힐 여유가 없었다.그녀의 아버지도 훨씬 좋아졌고 회사도 가장 어려운 시기를 넘겼다.여전히 많은 빚은 지고 있지만 회사는 돌아가고 있고 천천히 재정비하고 있었다.그녀의 큰 관심사는 윤혜인이었다.“이준혁과는 어때? 요즘 뜨거워졌다고 들었는데 나 이모 소리 들을 수 있는 거야?”그 무리와 어울리고 있는 소원은 이준혁과 임세희가 다시 만난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그래서 임세희가 그 정도의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다는 생각했다.이 결과에 대해 그녀는 매우 안도하고 있었다.10년지기 절친의 고집스러운 의지가 드디어 빛을 발하고 있어서 그녀는 너무 기뻤다.잠시 생각하던 윤혜인이 대답했다.“곧 듣게 될 거야.”
그때 마침 룸이 열리고 웨이터가 음식 카트를 밀고 나오고 있었다.너무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임세희였다.주훈이 미처 잡기도 전에 윤혜인은 이미 문고리를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여기는 롤리의 가장 럭서리한 룸이었다.위층과 아래층에는 값비싼 꽃들로 가득했다. 크리스탈조명이 방 전체를 꾸미고 있었고 기둥마저 고급지게 번쩍이고 있어 화려함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었다.스크린에는 임세희 공주님 생일 축하한다고 적혀 있었다.그 주인공은 중앙에 앉아있었고 다이아가 박힌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어제의 초라한 모습은 사라지고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얼굴이었다.한순간, 윤혜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룸은 시끌벅적해서 아무도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이준혁의 팔짱을 낀 임세희가 케익 한 조각 떠서 그의 입에 먹여주고 있었다.그러자 옆에 선 남자가 흥을 돋구며 말했다.“이런 식은 너무 심심하잖아요. 이 대표가 오늘 세희 아가씨를 위해 이렇게 성대한 생일파티를 준비했는데 세희 아가씨가 성의를 보여줘야지 않겠어요? 입으로 먹여주는 게 어때요?”모두가 두 사람을 부추겼다.“입으로! 입으로!”남자를 바라보고 있는 임세희는 얼굴을 붉혔고 남자가 반응이 없자 고개를 숙여 케익을 한점 베어 물었다. 그리고 이준혁에게 다가갔다.휘파람 소리, 거드는 소리가 어지럽게 섞였다.그 케익이 남자의 입술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을 본 소원은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욕설을 내뱉었다.“내연녀 주제에 뭐가 저렇게 당당한 거야? 역겨워.”그녀는 윤혜인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다.윤혜인이 갑자기 입을 뗐다.“준혁 씨.”시끄럽던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불청객에게 향했다.그녀는 주위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걸어가 남자 앞에 멈춰 서며 말했다.“준혁 씨, 집에 가요.”눈꺼풀을 살짝 들어 윤혜인을 보던 남자가 시선을 거뒀다. 마치 낯선 사람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윤혜인의 머릿속이
그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또 다른 사람이 끼어들었다.“나도 끼워줘요.”화장기 없는 수수한 모습이었지만 여기 다른 메이컵을 한 여자들보다 백 배는 예뻤기 때문이다.특히 밝은 눈동자는 순수해 보였고 살짝 올라간 눈꼬리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게 했다.보기 드문 훌륭한 여자였다.그들은 듣기 거북한 말들을 서슴지 않았지만, 이준혁은 못 들은 척하며 그들이 모욕하는 것을 내버려두었다.“소원, 여기 네가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소원은 몸이 부르르 떨렸다.고개를 돌린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뜬 육경한을 보았다.육경한은 소원의 팔목을 낚아채 밖으로 향했다. 소원이 뿌리치려 했지만, 그녀의 몸부림은 그의 힘에 비해 너무 보잘것 없었다.육경한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의 약혼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기에 육경한이 노골적으로 윤혜인 옆에 서있는 여자를 끌고 가는 것을 보고 윤혜인이 그런 류라고 더욱 확신했다.한 남자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친구분은 이미 찜 당했으니 아가씨는 저랑 놀아요. 얼마든지 돈을 드릴게.”옆에 있던 다른 남자가 불평했다.“누구 맘대로! 아가씨 이 자식 말은 듣지 말아요. 제가 2배로 줄 테니 저랑 놀아요.”윤혜인은 손을 뿌리치며 차갑게 말했다.“꺼져!”남자의 손에 꽂힌 이준혁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화가 난 남자는 손을 들어 올렸고 윤혜인을 때리려 했다. 그때 임세희가 막아서며 말했다.“화내지 말아요. 내가 아는 사람이에요.”남자는 그제야 조금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살벌했고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기세였다.임세희는 남자의 힘을 빌려 이 몹쓸 년을 때리고 싶었다.하지만 아직 윤혜인을 대하는 이준혁의 태도를 확신할 수 없기에 자칫 잘못하면 일을 그르칠 수 있어서 이런 상황에서는 착한 역할을 해야 한다.윤혜인은 고집스럽게 이준혁을 보고 있었다.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졌고 코끝이 찡해진다.“어젯밤에 나와 한 약속은 잊었어요?”마침내, 이준혁이 그녀를
남자는 말하면서도 조금 양심에 찔렸다. 방금 그녀는 역대급이긴 했다. 적어도 그는 쌩얼이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는 처음이었다.이준혁은 남자를 내려다보며 담담하게 물었다.“당신이 안소주야?”오늘 파티에 온 사람들은 모두 이씨 가문과 관계를 맺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이었다.하여 자신에 대해 묻는 것에 안소주는 감격 되어 하마터면 무릎이라도 꿇을 뻔했다.그는 속으로 자신이 떤 아부가 적절했다고 스스로를 긍정하고 있었다.그는 허리를 굽신거리며 말했다.“성은 안 씨 이고 안소주라고 해요. 제 아버지께서는 안영제약의 대표세요.”말을 마친 그는 손을 뻗어 존경을 표하며 이준혁에 악수를 청했다.이준혁은 남자의 손목을 잡고 힘껏 비틀었다.으드득-뼈가 부러졌다.남자는 손목을 감싸쥐며 바닥에 쓰러졌고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앞으로 다가간 이준혁은 남자의 손을 지그시 짓밟았다.안소주의 처참한 비명소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이준혁은 차가운 눈으로 지시했다.“끌어내. 다시는 이 면상을 보고 싶지 않아.”보디가드 2명이 다가와 남자를 질질 끌로 나갔다.사람들은 자신이 안소주처럼 저 대단한 분을 건드리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하지만 안소주가 어느 부분에서 그의 심기를 건드렸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임세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는 똑똑히 보았다.안소주의 그 손은 방금 윤혜인의 손목을 잡았었다.이것이 이준혁이 남자의 손을 망가뜨린 이유였다.그녀의 눈에 분노가 일렁였다. 자신이 힘들게 공을 들여 친자확인서까지 조작했지만, 이준혁의 마음속에서 그녀를 완전히 아웃시키지 못했다.도대체 어떻게 매료시킨 거지?...밖으로 나온 윤혜인은 정신이 아득해졌다.방금 일어난 일은 모두 꿈처럼 비현실적이었다.소원이 생각난 윤혜인은 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 소원이 미안해하며 일이 생겨 먼저 돌아간다며 그녀더러 조심히 들어가라고 했다.소원이에게 아무 일도 없다면 된 것이다.전화를 끊은 윤
그 남자를 한바탕 혼낸 이준혁은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하지만 한발 앞선 임세희가 그를 붙잡았다. 그의 팔에 매달리고 몸을 밀착시키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오빠, 나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안소주의 일로 분위기는 싸해졌다. 그래서 마침 둘의 모습을 본 어떤 이가 분위기를 띄우려고 외쳤다.“키스해.”그의 말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모두들 그들에게 다가가며 외쳤다.“키스해! 키스해!”임세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곧 그녀의 뜻대로 전개될 것이다.그녀의 목적은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하려는 것이었다. 필경 이준혁의 여자 친구 자리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오직 그녀만 차지했었고 그녀에게도 임씨 가문에도 아주 유리하게 작용했다.이쯤 되면 이준혁도 그녀의 체면을 세워줄 것이라고 임세희는 생각했다.아니라 해도 정도껏 비위를 맞춰줄 거라 여긴 임세희는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거의 닿을 뻔한 찰나, 이준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담담하게 경고했다.“임세희, 정도껏 해.”오늘 여기에 온 그는 그녀가 생일파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까발리지 않고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었다.임세희는 입술을 깨물며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사람들이 보고 있잖아? 이 정도도 못 해주는 거야? 그저 가벼운 입맞춤도 안 돼?”이준혁의 눈이 더욱 차가워졌다.“나에게 와이프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와이프’란 세글자가 임세희의 가슴에 날아와 꽂혔다.꽉 쥔 그녀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어떻게! 그년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바람 핀 년인데 어떻게 와이프자격이 있는 거야!이건 그녀만 들을 수 있는 호칭이다! 반드시 그녀야만 한다!이준혁은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자리를 떠났다.한순간, 정적이 흘렀다.임세희는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해명했다.“오빠가 급한 일이 생겨서 그래요. 우리는 계속 해요.”파티는 다시 열기를 되찾았다.몸을 돌린 임세희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순간 얼굴이 사악하게 일그러졌
차 안에서는 술 냄새가 조금 났다. 보아하니 방금 술은 마신 것 같았다. 그는 눈을 감고 의자에 몸을 맡겼다.그때 휴대폰의 알림음이 울렸다.소원이었고 집에 도착했는지 묻고 있었다.그녀가 걱정할까 봐 윤혜인은 도착했다고 답장했다.소원은 영상 하나를 보내왔고 그 속에는 그들이 떠난 후 이준혁과 임세희에게 키스하라고 부추기는 장면이 담겨있었다.영상은 짧았고 두 사람의 얼굴이 서로 닿기 직전에 영상은 갑자기 끊겼다. [혜인아, 그 사람과 잘 지내고 있단 거 거짓말이었지? 네가 그 사람의 와이픈데 왜 그렇게 널 대하는 거야?]영상 속 남자와 여자는 너무 잘 어울렸다.뚝뚝-눈물이 휴대폰 액정에 떨어졌다. 그녀가 급히 눈물을 훔쳤지만 또다시 떨어졌다.그렇게 휴대폰은 눈물로 얼룩졌다.심장이 또다시 갈기 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그녀는 진짜 멍청했다.항상 그의 사소한 부분에 대뜸 흔들린다.그렇게 매번 웃음거리로 전락하였다.그녀는 이제 그의 맹세 따위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이신우는 아무 말 없이 손수건을 건넸다.그것을 건네받은 윤혜인은 눈물을 아무렇게나 닦았다.그녀의 작은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억지로 강한척하는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 아프게 했다.눈물을 닦고 난 후에야 그것이 손수건이란 것을 알아차린 그녀는 더러워진 상태로 돌려줄 수 없어 그대로 주머니에 넣었다.차는 개인 별장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린 이신우는 손을 내밀며 그녀를 힐끔보고는 다시 손을 내렸다.문에 들어서자, 40대로 보이는 여자가 다가오며 이신우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여자친구야?”윤혜인이 대답하기 전에 이신우가 입을 열었다.“아니에요. 다쳐서 처치 부탁할게요.”고개를 들어 윤혜인을 본 여자는 당황한 듯 말했다.“소아?”윤혜인은 순간 멈칫했다. 여자는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저었다.“안경을 하나 맞춰야겠어.”여자는 윤혜인의 손을 잡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구급상자에서 약통을 꺼내 그녀의 상처를 세심하게 닦아주며 윤혜인을 바라봤다.
별장은 조용했다.아줌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보통 이 시간에 취침하지 않으시는단 말이다.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짐을 챙겼다.방안은 커튼이 쳐져 있지 않은 상태라 달빛이 스며들었다. 그녀도 불을 켜지 않았다.옷장을 연 그녀는 전에 넣어두었던 트렁크가 보이지 않았다.딸깍-불이 켜졌다.이준혁은 터벅터벅 그녀에게 다가오며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뭘 찾는 거야?”깜짝 놀란 윤혜인은 그가 거기에 서있을 줄은 몰랐다.임세희의 생일 파티는 어쩌고 여기에 있는가?”하지만 그가 어디에 있든 그녀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그녀가 물었다.“아줌마는요?”이준혁은 대답대신 반문했다.“뭘 찾아?”“트렁크요.”“가려고?”그의 말투는 폭풍우가 휘몰치기전처럼 잔잔했지만 너무 불안한 느낌을 주었다.윤혜인은 한발짝 뒤로 물러서며 차갑게 말했다.“이미 결정난 거 아니에요?”임세희의 생일 파티에서 그가 한 말은 이미 그녀를 난처하게 하고도 남았다.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그녀도 그렇게 무신경하지는 않았으니까.이준혁은 아무말없이 그녀를 응시했다.윤혜인은 울어도 보았으니 이제 훨씬 차분해졌다. 감정적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예전에 그녀는 이준혁을 포기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한순간의 문제 같아 보인다.그는 항상 상처를 주고 달콤함으로 그녀를 달랬다. 그것이 너무 반복되다보니 많이 지쳤다.아무말 없는 이준혁에 윤혜인이 계속해서 말했다.“생각이 정리 된것 같으니 좋게 끝내요. 우리. 난 예전과 같은 태도예요. 아무것도 원하지 않지만 아이는 절대 당신에게 줄 수 없어요.”어느 부분이 그를 자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눈이 갑자기 날카롭게 변했고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갔다.그는 무섭게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들어 올려 문 쪽으로 밀어붙였다.“다음 남자를 이미 찾은 거야? 아이의 아빠가 누군지 말해! 이신우야?”왜 또 이신우를 걸고넘어지는지 윤혜인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녀와 이신우가 만난 횟수는 한 손으로도
윤혜인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이준혁이 음탕하게 웃으며 말했다.“됐어. 선택할 필요 없어. 다른 놈이 사용했던 거 나도 역겨워.”그녀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했다.이준혁은 그녀의 앞에 서서 정장 바지로 단단히 감싸고 있던 긴 다리를 갈라서 그녀의 몸 양쪽에 옮기고 몸을 구부려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고 입을 벌리도록 강요했다.윤혜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벗어날 수 없었던 그녀는 두 눈을 꼭 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미쳤어요?... 저리 가!”그는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잡았다. 그리고 자신에게로 잡아당겼다.“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윤혜인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건드리면 남자구실을 못 하게 할 거예요!”가까이에 있는 이준혁의 얼굴에서 짙은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에 살기가 어렸다.“이 아이를 갖고 싶지 않으면 어디 마음대로 해 봐.”간단한 그의 한마디가 그녀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윤혜인은 아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없었다.“임세희에게도 똑같이 이래요?”이준혁의 얼굴에는 잔인함과 무자비함이 가득했다.“잠자리용으로 널 데리고 있는 거야. 그러니 너의 위치를 잘 알아 둬.”남자는 화가 나면 아무 도리도 통하지 않았고 무슨 말이든 내뱉었다.그는 차갑게 몸을 부딪쳐 오며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누구와도 비교하지 마. 넌 그럴 자격이 없어.”윤혜인은 비명을 질렀다. 얼굴 전체가 이상한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읍...켁...켁...”그녀의 고통스러운 모습에 이준혁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다른 사람을 이렇게 모신 적 없나 보네? 너한테 너무 오랫동안 속았으니까, 너의 처음을 받아내야 하지 않겠어?”윤혜인은 머릿속이 윙윙 울려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반항도 할 수 없었다.그저 기계적인 반응만 있었을 뿐...이준혁은 멈추지 않았다. 순간, 그는 온몸의 피가 위로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고 절정으로 치달았다.그의 손은 그녀의 턱을 우악스럽게 잡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 있던 사람이 좋다고 손뼉을 쳤다.“그래. 그래. 욕을 바가지로 먹어야 정신을 차리지. 인플루언서가 된 느낌이 어떤 건지 알려주자.”순간 구경하던 직원들이 일제히 핸드폰을 꺼내 소원의 얼굴을 찍으며 욕설을 퍼부었다.육연주는 이런 상황이 참 마음에 들었다. 꼬리 치길 좋아하는 소원을 인터넷에 폭로해 얼마나 뻔뻔한 사람인지 세간에 알리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소원은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몰랐다. 사람들 눈에 육연주는 서현재의 와이프였고 서씨 가에서 인정한 며느릿감이었지만 소원은 아무 명분이 없었다. 그런 소원이 서한 그룹까지 찾아왔으니 이상하게 생각할 만도 했다.하지만 소원은 서현재가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게다가 서씨 가문에서 육연주를 고른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육연주는 공부라곤 해본 적이 없는 여자라 금융은 일절 몰랐기에 서한 그룹의 경영에 간섭할 일이 없었다. 그리고 육연주는 육씨 가문 사람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든 발을 뺄 수 있었다.“육연주 씨, 서현재와 얘기 나누러 온 것뿐인데 뭐가 방해된다고 그래요.”소원은 여전히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육연주는 화가 치밀어오른 나머지 가방을 들어 소원에게 던졌다.“정말 여간 뻔뻔한 게 아니네요. 이런 수모를 겪어도 그런 말이 나와요?”소원이 옆으로 쓱 비키며 공격을 피했지만 육연주는 소원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고 보디가드를 불러 소원을 끌어냈다.“빌어먹을 년.”육연주는 소원이 끌려 나가는 걸 보고도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다.벌건 대낮만 아니었으면 정말 소원을 때려죽이고 싶었지만 결혼이 코앞이라 손에 피를 묻힐 수 없으니 여기서 멈췄지 아니면 정말 때려죽였을지도 모른다.“거기.”육연주가 데스크 직원들을 매섭게 쏘아보더니 경고했다.“오늘 일 현재 씨 귀에 들어가는 날엔 당신들부터 해고할 거야.”육연주는 이미 서한 그룹의 사모님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했다. 데스크 직원들은 육연주가 언젠간 서씨 가문 안주인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저 눈치만 볼 뿐 대꾸
‘기억을 잃었다고 하면 과연 믿어줄까?’소원은 서현재가 기억을 잃었을 뿐이지 이성을 잃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의심이 든 순간 조사할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진태의 음모를 알아차릴 것이다.서진태가 무슨 꿍꿍이인지 알기만 해도 서진태를 경계할 수 있으니 너무 끌려다니진 않을 것이다.그때 뒤에서 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원 씨?”소원이 고개를 돌렸다.찰싹.소원은 여자가 날리는 귀싸대기를 제대로 맞아 귀가 제대로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여자가 포기하지 않고 귀싸대기를 더 날리려는데 소원이 얼른 손을 낚아챘다. 그러자 여자가 오만하게 데스크 직원에게 명령했다.“서서 보고만 있을 거예요? 얼른 잡고 때려요.”데스크 직원이 넋을 잃었다.비서실에 전화를 넣을 때 미래의 사모님도 함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비서가 사람을 일단 남겨두라고 하자 데스크 직원은 소원이 말한 것처럼 서현재와 아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아마도 전 여자 친구거나 떨어지지 않고 질척거리는 외간 여자 같았다.소원은 그제야 내려온 사람이 육연주임을 알아봤다.데스크 직원이 다가와 도와주려는데 육연주가 귀싸대기를 두 방 날렸다.“일을 왜 이따위로 해요? 회사에 누굴 들이고 누굴 들이지 말아야 할지 몰라요?”데스크 직원이 얼굴을 감싸 쥔 채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위에서 지시한 대로 했을 뿐인데 이런 수모를 겪을 줄은 몰랐다.육연주는 그저 데스크 직원을 이용해 기선을 제압하여 미래의 서한 그룹 사모님이 누군지 알려주려 했다. 선제공격이 제일 타격감이 큰 편이다. 육연주는 오늘 모든 사람에게 서현재의 와이프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야 앞으로 감히 서현재를 넘볼 사람이 없을 것이다.“소원 씨, 도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 내가 그날 분명히 경고했죠. 현재 씨 유혹할 생각하지 말라고. 그런데 회사까지 찾아와요? 정말 너무 뻔뻔하네요.”육연주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퉁명스럽게 말했다.소원은 볼이
소원은 외교팀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 전화했다. 외국인이라 인맥이 매우 넓었기에 서씨 가문의 일을 조사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서씨 가문이 밖에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는지, 그리고 맏며느리가 임신했는지만 확인하면 아까 들은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있었다.소원은 사실 서현재가 기억을 잃은 게 어찌 보면 행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서씨 가문에서 서현재를 해치지 않고 다리까지 고쳐줬으니 말이다.하지만 지금 그 모든 걸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 모든 게 진실이라면 서씨 가문은 제일 큰 악마 소굴이었기에 빨리 서씨 가문에서 도망쳐야 했다.불안한 마음을 안고 며칠이나 기다렸지만 조이는 소식을 전해오지 않았다. 한시름 놓고 그들이 술에 취해 헛소리한 거라고 생각하려는데 조이가 소식을 보내왔다.“소원, 전에 말했던 거 조사해 봤는데 확실히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더라고요. 서씨 가문 맏며느리도 회사 관리에 참여했고 얼마 전에 쌍둥이를 낳았대요.”모든 게 들어맞았다. 소원은 머리를 세게 두들겨 맞은 것처럼 멍했다.서현재가 자신을 벗어나 원하던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서씨 가문이 서현재를 이용하려 한다면 서현재는 반드시 도망쳐야 한다.소원은 영숙에게 반차를 올리고 차를 잡아 서현재가 있는 회사로 향했다. 서현재의 번호가 없어 가는 내내 마음이 불안했다. 차가 서한 그룹에 도착하자 소원은 바로 데스크로 뛰어갔다.“안녕하세요. 서현재 씨를 만나려고 왔어요.”“안녕하세요. 예약은 하셨나요?”데스크 직원이 물었다.“아니요.”소원이 고개를 저었다.“죄송합니다. 예약하지 않고서는 만날 수 없습니다.”데스크 직원이 말했다.“저 서 대표님과 친구예요. 전화해서 소원이 급한 일로 찾아왔다고 잠깐 내려오라고 하면 돼요.”“죄송합니다. 예약한 손님만 접대하는 게 저희 원칙입니다. 더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네요.”데스크에서 바로 거절했다. 작은 회사에서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 서현재를
“우리 아빠가 말해준 거야. 외국에서 장사할 때 서씨 가문과 접점이 있었는데 우연히 서씨 가문 사람을 만나서 물어본 거래. 그래도 함부로 외부에 알리지는 마. 나도 어르신에게 밉보이긴 싫거든. 무서운 사람 같아.”“나도 알아... 걱정하지 마. 나까지만 아는 걸로 하고 절대 외부로 얘기하지 않을게.”소원은 서씨 가문에 이런 비밀이 있을 줄 몰랐다. 역시 소원의 직감이 맞았다. 서진태는 서현재를 사랑하지 않을뿐더러 서현재가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저번에 직접 사람을 불러 서현재의 다리를 못 쓰게 만든 것만 봐도 서진태가 서씨 가문의 일원인 서현재를 전혀 관심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만약 위층에서 토론한 내용이 사실이라면 서진태가 그동안 행동과 어느 정도 맞았지만 희생양이 된 서현재가 너무 위험했다.소원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저녁을 먹지 않아서 그런지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고 다리에 힘이 풀려 얼른 벽을 붙잡고 서는데 어쩔 수 없이 소리가 났다. 위층에 있던 사람들이 소리를 듣고 바로 신경을 곤두세웠다.“거기 누구예요?”소원은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와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 걸음만 앞으로 나아가면 위에서 보일지도 모른다. 토론자 중 한 명이 아래로 머리를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내가 여기서 보고 있을 테니까 빨리 아래 내려가서 봐봐.”소원은 정말 당장이라도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자 이제 납작 없이 잡힐 것이다. 도망간다고 해도 복도 CCTV만 조사하면 누가 엿들었는지 다 조사할 수 있을 것이다.야옹.그때 가냘픈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서 온몸이 눈덩이처럼 하얀 고양이가 기어 나오더니 우아하게 앞으로 걸어가며 연신 야옹거리며 울부짖었다.위에서 내려다보던 사람이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계단을 내려가는 사람을 불러세웠다.“됐어. 고양이가 낸 기척이었어.”계단을 내려오던 사람이 걸음을 멈추더니 다시 위로 올라가며 말했다.“내가 그랬잖아. 이 시간에 여기로 걷는 사람이 없다고.
영숙은 차갑게 말했다.“그 셋은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참을 수 있으면 참아. 아니면 피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이 터져도 내가 대신 해결해줄 일은 없을 거야!”소원은 바보가 아니었는지라 영숙의 말 속에 담긴 선의를 금세 알아챘다.다음에 또 그 셋을 마주친다면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결근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처럼 서로 계산만 가득한 곳에서 같은 여성이 보여주는 호의는 그녀에게 작지 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소원은 영숙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알겠습니다, 언니. 절대 폐 끼치는 일 없을 거예요.”소원이 미소 짓는 것을 보고 영숙은 잠시 멍해 하더니 어딘가 어색한 듯 담배를 끄며 고개를 돌렸다.그러고는 자리를 떠나면서 넌지시 말했다.“미친 거 아니야? 너 도와주는 거 아니라니까.”소원은 영숙이 떠난 후에도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이제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영숙은 선한 사람이었다.그녀가 왜 자신을 돕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진심과 가식은 구분할 수 있었다.그렇게 씻고 나서 소원은 다시 밖으로 나왔다.걸어가던 중에도 머릿속은 온통 서현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정말 현재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이번 기억 상실이 현재에게 축복일까, 아니면 불행일까?’만약 기억을 잃지 않았다면 서현재는 분명 싸울 것이었다.서씨 가문의 결혼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통제에도 절대 굴복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는 어두운 복도를 따라 걸으며 뒤편 문 근처에 도착했다.그 순간, 2층 창문 쪽에서 들려오는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렸다.희미하게 들리던 대화 속에 ‘서씨 가문’이라는 단어가 언급되자 소원은 멈춰 서서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기로 했다.“서씨 가문에서 요즘 그 사생아를 꽤 중시하는 것 같더라.”“사생아라니? 그 자식은 사생아보다도 더 낮은 존재야. 사생아조차도 못 되는 잡종이지.”“야, 그런 말 하면 큰일 난다. 서씨 가문 어르신이 그 사람을 중히 여긴다는데... 네가 그
소원은 손에 있는 10만 원의 현금을 꽉 움켜쥐었다.정말 ‘특별한 선물’이라는 게 대체 뭘 의미하는지 뻔했다.유진이, 그 아이가 그들의 손에 있다는 사실 말고 또 뭐가 있을까.소원은 고개를 약간 들어 방민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 뒷모습이 멀어질수록 머릿속 생각은 복잡해졌다.그때 진아연이 우연을 가장하며 소원 곁으로 다가왔다.“체리, 무슨 일이야? 오늘 손님이 그렇게 힘들게 했어? 어쩌다 이렇게 됐대?”진아연은 일부러 따라온 것이었다. 그녀는 방금 육경한의 태도와 방민아가 말하는 것을 전부 지켜보았다.육경한이 소원에게 보이는 태도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한때 그는 소원에게 미쳐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달랐다.현재 육경한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방민아였다.그리고 진아연의 생각에 오직 방민아만이 그와 어울릴 자격이 있었다.진아연은 속으로 흡족해했다.한때 육경한이 소원에게 보였던 미친 행동이 정말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것도 그저 지나가는 집착에 불과했던 것이다.육경한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고 오래된 것에 금방 싫증을 느끼는 사람이었다.‘그럼 내가 저질렀던 죄도 언젠가는 용서받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소원은 아무 말 없이 진아연을 외면했다.그녀와 대화하고 싶지도, 그녀의 속셈을 지금 당장 폭로하고 싶지도 않았다.소원은 진아연이 어떤 목적으로 접근했는지 그리고 그녀 뒤에 누가 있는지 지켜보고 싶었다.경솔하게 누군가와 한편이 되는 건 절대 안 될 일이었다.겉으로 도와주는 척하는 사람이 실제로는 자신을 이용해 다른 악행을 저지르려는 경우가 많았다.그리고 그런 일이 드러나면 결국 죄를 뒤집어쓰는 건 자신이었다.진아연은 소원이 말을 하지 않자 어딘가 거리감을 느꼈다.사실 그녀는 소원이 자신을 알아보는 게 두려웠지만 지금까지 소원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걸 보며 안심했다.소원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자신이 여전히 이 세상에 살아있다는 증거는 없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다만 그 사람으로
소원은 육경한을 바라보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육경한, 너희가 현재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너희 스스로가 잘 알겠지! 여기서 도덕적인 척하며 남 심판하지 마. 진짜 가장 비도덕적인 건 너희 같은 인간들이니까!”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육경한은 갑자기 손을 뻗어 소원의 목을 움켜쥐며 이를 악물었다.“그래, 내가 쓰레기라면 너네 현재는 뭐... 착한 사람이라는 거야?”소원은 목이 졸려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소원, 네가 그렇게 서현재가 착한 사람이라 믿는다면 나는 끝까지 너를 실망시키고 말 거야!”곧 육경한은 손을 거칠게 놓으며 소원을 벽에 내팽개쳤다.소원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어 헐떡였다.“똑똑히 봐. 남자는 변하지 않을 것 같지? 서현재도 변할 거야. 나 같은 쓰레기보다도 더 못한 인간으로.”그는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소원은 머릿속이 하얘져 무슨 생각도 할 수 없었다.육경한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그들은 서현재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걸 말이다.자신이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하게 만들어 서현재를 평생 후회하게 할 것이다.그리고 언젠가 진실을 알게 되더라도 그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될 것이다.소원은 바닥에 주저앉아 목을 감싸 쥐었다.목이 불에 데인 듯 화끈거렸다.또각또각.누군가가 하이힐 소리를 내며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방민아가 소원을 내려다보며 비웃음을 지었다.“소원 씨, 이렇게 보니까 정말 개 같아요. 꼬리를 흔드는 한심한 개 말이에요.”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제 가식을 벗어던진 방민아와 얘기할 가치는 없다고 느꼈다.방민아는 가방에서 10만 원을 꺼내 소원의 머리 위에 던지며 경멸스럽게 말했다.“이건 경한 씨를 대신해 소원 씨에게 주는 팁이에요. 소원 씨가 어떤 존재인지 잊지 않길 바랍니다.”클럽에서 가장 낮은 등급의 서비스 요금이 바로 한 시간에 10만 원이었다.이 말은 방민아가
육연주의 두 친구가 분위기를 띄우는 듯 샴페인을 마구 뿌리며 축하하기 시작했다.물이 섞인 술이 소원의 온몸을 적셨다.모두가 환호하며 즐거워하는 가운데 소원만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에 사로잡혔다.그 물기가 가슴속까지 스며들어 얼음처럼 차가웠다.마음 깊은 곳까지 차갑고 그 차가움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소원은 서현재가 과거를 잊었기를 바랐음에도 육연주가 그의 인생에 어울리지 않는 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만약 서현재가 육연주와 함께한다면 그는 서씨 가문의 완벽한 통제 아래 놓이게 될 뿐 아니라 육연주의 지배 아래에서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지금도 서현재의 고통과 갈등이 그녀에게 보였는데 앞으로는 더 말할 것도 없을 터였다.만약 언젠가 서현재가 과거를 기억해낸다면 그것은 고통스러운 순간들의 시작일 것이다.그를 너무나 잘 알기에 소원은 미리부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만약 서현재가 기억을 되찾는다면 그 고통은 그를 완전히 무너뜨릴 것이 분명했다.소란이 끝난 후, 모두가 술을 꽤 많이 마신 상태였다.서현재도 붙잡혀 적지 않게 술을 마셨고 육경한과 방민아 역시 몇 잔 마셨다.특히 육연주와 그녀의 친구들은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셔버렸다.육연주는 친구를 서현재로 착각하며 안긴 채 사랑을 속삭였다.“현재 씨, 나 정말 현재 씨 사랑해요... 정말로... 근데 현재 씨는 왜 나를 신경도 안 써요...”“헤헤... 그래도 결국 현재 씨는 내 사람이 됐잖아요... 이제 내 거잖아요...”친구를 안고 입맞춤까지 하며 정신없이 울부짖는 육연주의 모습이 주변 사람들조차 당황하게 만들었다.서현재는 그런 그녀를 더 이상 쳐다보지 않았고 자신의 상태도 좋지 않아 가슴을 누르며 비틀거리더니 방을 나갔다.소원은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아무도 서현재의 이탈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밖으로 나간 그녀는 그의 뒷모습이 복도 모퉁이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 본능적으로
“손님, 케이크 좀 드세요.”소원이 다시 한번 방민아를 불러서야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감사합니다.”계속해서 케이크를 나눠주던 소원이 서현재에게 건네려고 할 때, 육연주가 갑자기 그것을 가로채며 말했다.“현재 씨, 현재 씨가 사 온 케이크가 얼마나 달콤한지 한번 먹어봐요.”이 케이크는 분명 서씨 가문에서 준비한 것이었다.서현재는 아무 말 없이 케이크를 받았다.이런 자리에서 굳이 육연주의 얼굴에 먹칠을 할 이유는 없었다. 비록 아무런 감정이 없어도 돌아가 서진태와 분명히 얘기할 때까지는 참아야 했다.육연주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소원이 자신의 친구들에게 케이크를 나눠줄 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그녀의 두 친구는 즉시 알아차리고 소원이 케이크를 나눠주고 돌아서기도 전에 양옆에서 그녀를 덮쳤다.“어머 어머!”모두들 단순한 생일 장난이라 생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하지만 두 친구는 일부러 더 심하게 장난을 쳤다.케이크를 얼굴에 던지고도 멈추지 않고 양손으로 얼굴에 더 세게 밀어붙이며 소원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게 만들었다.“연주야, 생일은 이렇게 즐겨야 재밌지 않겠어?”두 사람은 남은 케이크를 소원의 몸에 온통 문질러댔다.결국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케이크로 엉망이 되었고 마치 작은 밀가루 인형처럼 보일 때까지 괴롭힘을 당했다.곧 서현재가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기색으로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육연주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꺅!”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리자 육연주는 천천히 입에서 반지를 꺼냈다.눈부시게 빛나는 커다란 다이아몬드 반지였다.“현재 씨가 준비한 깜짝 선물이에요?”육연주는 서현재를 끌어안으며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흑흑... 현재 씨, 정말 감동이에요.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해주다니...”이 반지는 서씨 가문에서 준비한 것이었지만 서현재는 전혀 몰랐다.반지가 번쩍이는 모습을 본 서현재는 무의식적으로 소원을 바라보았다.온몸이 케이크 범벅이 되어 표정을 읽을 수 없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