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에서는 술 냄새가 조금 났다. 보아하니 방금 술은 마신 것 같았다. 그는 눈을 감고 의자에 몸을 맡겼다.그때 휴대폰의 알림음이 울렸다.소원이었고 집에 도착했는지 묻고 있었다.그녀가 걱정할까 봐 윤혜인은 도착했다고 답장했다.소원은 영상 하나를 보내왔고 그 속에는 그들이 떠난 후 이준혁과 임세희에게 키스하라고 부추기는 장면이 담겨있었다.영상은 짧았고 두 사람의 얼굴이 서로 닿기 직전에 영상은 갑자기 끊겼다. [혜인아, 그 사람과 잘 지내고 있단 거 거짓말이었지? 네가 그 사람의 와이픈데 왜 그렇게 널 대하는 거야?]영상 속 남자와 여자는 너무 잘 어울렸다.뚝뚝-눈물이 휴대폰 액정에 떨어졌다. 그녀가 급히 눈물을 훔쳤지만 또다시 떨어졌다.그렇게 휴대폰은 눈물로 얼룩졌다.심장이 또다시 갈기 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그녀는 진짜 멍청했다.항상 그의 사소한 부분에 대뜸 흔들린다.그렇게 매번 웃음거리로 전락하였다.그녀는 이제 그의 맹세 따위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이신우는 아무 말 없이 손수건을 건넸다.그것을 건네받은 윤혜인은 눈물을 아무렇게나 닦았다.그녀의 작은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억지로 강한척하는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 아프게 했다.눈물을 닦고 난 후에야 그것이 손수건이란 것을 알아차린 그녀는 더러워진 상태로 돌려줄 수 없어 그대로 주머니에 넣었다.차는 개인 별장으로 들어섰다.차에서 내린 이신우는 손을 내밀며 그녀를 힐끔보고는 다시 손을 내렸다.문에 들어서자, 40대로 보이는 여자가 다가오며 이신우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여자친구야?”윤혜인이 대답하기 전에 이신우가 입을 열었다.“아니에요. 다쳐서 처치 부탁할게요.”고개를 들어 윤혜인을 본 여자는 당황한 듯 말했다.“소아?”윤혜인은 순간 멈칫했다. 여자는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저었다.“안경을 하나 맞춰야겠어.”여자는 윤혜인의 손을 잡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구급상자에서 약통을 꺼내 그녀의 상처를 세심하게 닦아주며 윤혜인을 바라봤다.
별장은 조용했다.아줌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보통 이 시간에 취침하지 않으시는단 말이다.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짐을 챙겼다.방안은 커튼이 쳐져 있지 않은 상태라 달빛이 스며들었다. 그녀도 불을 켜지 않았다.옷장을 연 그녀는 전에 넣어두었던 트렁크가 보이지 않았다.딸깍-불이 켜졌다.이준혁은 터벅터벅 그녀에게 다가오며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뭘 찾는 거야?”깜짝 놀란 윤혜인은 그가 거기에 서있을 줄은 몰랐다.임세희의 생일 파티는 어쩌고 여기에 있는가?”하지만 그가 어디에 있든 그녀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그녀가 물었다.“아줌마는요?”이준혁은 대답대신 반문했다.“뭘 찾아?”“트렁크요.”“가려고?”그의 말투는 폭풍우가 휘몰치기전처럼 잔잔했지만 너무 불안한 느낌을 주었다.윤혜인은 한발짝 뒤로 물러서며 차갑게 말했다.“이미 결정난 거 아니에요?”임세희의 생일 파티에서 그가 한 말은 이미 그녀를 난처하게 하고도 남았다.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그녀도 그렇게 무신경하지는 않았으니까.이준혁은 아무말없이 그녀를 응시했다.윤혜인은 울어도 보았으니 이제 훨씬 차분해졌다. 감정적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예전에 그녀는 이준혁을 포기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한순간의 문제 같아 보인다.그는 항상 상처를 주고 달콤함으로 그녀를 달랬다. 그것이 너무 반복되다보니 많이 지쳤다.아무말 없는 이준혁에 윤혜인이 계속해서 말했다.“생각이 정리 된것 같으니 좋게 끝내요. 우리. 난 예전과 같은 태도예요. 아무것도 원하지 않지만 아이는 절대 당신에게 줄 수 없어요.”어느 부분이 그를 자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눈이 갑자기 날카롭게 변했고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갔다.그는 무섭게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들어 올려 문 쪽으로 밀어붙였다.“다음 남자를 이미 찾은 거야? 아이의 아빠가 누군지 말해! 이신우야?”왜 또 이신우를 걸고넘어지는지 윤혜인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녀와 이신우가 만난 횟수는 한 손으로도
윤혜인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이준혁이 음탕하게 웃으며 말했다.“됐어. 선택할 필요 없어. 다른 놈이 사용했던 거 나도 역겨워.”그녀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했다.이준혁은 그녀의 앞에 서서 정장 바지로 단단히 감싸고 있던 긴 다리를 갈라서 그녀의 몸 양쪽에 옮기고 몸을 구부려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고 입을 벌리도록 강요했다.윤혜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벗어날 수 없었던 그녀는 두 눈을 꼭 감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미쳤어요?... 저리 가!”그는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잡았다. 그리고 자신에게로 잡아당겼다.“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야.”윤혜인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건드리면 남자구실을 못 하게 할 거예요!”가까이에 있는 이준혁의 얼굴에서 짙은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에 살기가 어렸다.“이 아이를 갖고 싶지 않으면 어디 마음대로 해 봐.”간단한 그의 한마디가 그녀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윤혜인은 아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없었다.“임세희에게도 똑같이 이래요?”이준혁의 얼굴에는 잔인함과 무자비함이 가득했다.“잠자리용으로 널 데리고 있는 거야. 그러니 너의 위치를 잘 알아 둬.”남자는 화가 나면 아무 도리도 통하지 않았고 무슨 말이든 내뱉었다.그는 차갑게 몸을 부딪쳐 오며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누구와도 비교하지 마. 넌 그럴 자격이 없어.”윤혜인은 비명을 질렀다. 얼굴 전체가 이상한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읍...켁...켁...”그녀의 고통스러운 모습에 이준혁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다른 사람을 이렇게 모신 적 없나 보네? 너한테 너무 오랫동안 속았으니까, 너의 처음을 받아내야 하지 않겠어?”윤혜인은 머릿속이 윙윙 울려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반항도 할 수 없었다.그저 기계적인 반응만 있었을 뿐...이준혁은 멈추지 않았다. 순간, 그는 온몸의 피가 위로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고 절정으로 치달았다.그의 손은 그녀의 턱을 우악스럽게 잡고 있었다. 그녀의
약을 건네받은 이준혁은 한 웅큼 집어삼키고 주훈이 가져온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김성훈은 계속 병실을 쳐다보는 이준혁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네가 아프기 시작하면 혜인 씨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마. 그녀의 작은 몸이 너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시간 나면 치료를 받아. 통제력을 잃고 무슨 일이라도 생긴 후에 후회하지 말고.”김성훈은 잘 돌려서 타일렀다.조울증은 심하기도 하고 경하기도 해서 자제력이 있다고 해도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보통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에 자제력이 무너진다.이준혁은 듣고 있는 듯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알았어.”김성훈이 다시 물었다.“그리고 방금 인스타에 네가 세희에게 생일 파티를 열어줬다며 좋은 일이 생길 거라던데 어떻게 된 거야?”이준혁은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무심하게 말했다.“멋대로 올린 거야.”“그럼, 이대로 내버려둘 거야? 혜인 씨가 상처받으면 어떡해?”상처?이준혁의 눈이 차갑게 변했다. 그 여자는 상처 따위 받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칼을 들고 그의 심장을 찌를 줄만 안다. 게다가 아주 치명적으로.검사 결과가 빨리 나왔다.프로게스테론이 낮고 저혈당에 경미한 출혈이 있어 유산기가 있으므로 입원해서 태아를 보호해야 했다.김성훈은 깜짝 놀랐다.“임신한 사실을 왜 우리에게 알리지 않았어?”이준혁의 얼굴에는 기쁜 기색이 없었다. 그는 몸을 돌려 병방으로 향했다.수액을 맞고 있는 그녀는 통증이 완화되어 훨씬 차분한 모습으로 잠자고 있었다.이준혁은 바로 옆에 있는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밤은 평화로웠다.날이 밝아 눈을 뜬 윤혜인은 옆 침대에서 자는 이준혁을 보았다.남자는 뻣뻣한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고 길고 곧은 다리는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윤혜인은 어제 밤의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침대 난간을 잡고 화장실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자신의 체력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그때 강한 손이 그녀를 잡고 일으켜 세
윤혜인은 의아해했다.그녀가 먹든 안 먹든 그가 무슨 상관인가?게다가 그녀가 먹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가 여기에 있어서 밥이 넘어가지 않을 뿐이다.“당신이 나가...”그녀가 말하기도 전에 입술이 막혀버렸다.“...”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가볍게 짓눌렀고 그녀의 아픔을 배려한 듯한 노력이 보였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혜인은 욕실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역겨워서 발버둥을 쳤고 그 바람에 죽을 그에게 쏟았다.이준혁은 뜨거운 죽에 데였다. 그는 입술을 떼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또 화를 낼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인내하며 다시 새것을 꺼냈다.“먹어. 아니면 방금전 방법으로 먹일 거야.”윤혜인은 그가 당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녀의 눈에 그의 모든 행동은 그저 환자였다.신경 쓰지 말자.그녀는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그가 여기서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고 나가준다면야.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천천히 한 숟가락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먹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어디가 찢어졌는지 스치기만 해도 쓰라렸다.이준혁이 없었더라면 아파서 울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그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다.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 눈물은 그저 역겨운 법이다.웃음거리가 될 필요는 없지 않잖아?이준혁은 화장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그가 옷을 가지러 가는 것을 본 윤혜인은 어리둥절했다. 옷장까지 준비했다고? 아예 병원에서 지낼 셈인가?식사가 끝난 후, 간병인이 깨끗하게 청소했다.그녀가 누워서 쉬고 있는데 이준혁이 갑자기 그녀의 입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윤혜인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의 손을 쳐냈다.이준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윤혜인은 그를 경계했다.“아무리 도구라고 해도 휴식 시간이 있어야지 않겠어요?”그녀의 신체가 좋지 않았다면 어젯밤의 고통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얼굴색이 변한 이준혁은 휴지를 뽑아 입을 닦으라는 의미로 그녀에게 건넸다.하지만 윤혜인은 받지 않았다. 그녀는
소원은 머리를 감쌌다. 그들은 그녀에게 달려들어 무작위로 밟았다.등과 복부, 팔 어느 한 곳도 놓치지 않고 때렸다.머리채가 잡혀있어서 몸 전체가 바닥에 눌린 상태로 일어설 수 없었다. 입에서는 피 비릿한 냄새가 났고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고통에 그녀는 정신이 아득해졌고 급기야 피까지 토했다.그들은 야수처럼 피를 보면 더 흥분하는 것 같았고 더욱 무자비하게 변했다.몸을 움츠리고 있는 그녀는 이를 악물고 끝까지 참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어제 다른 사람의 파티에서 오만한 내연녀라고 조롱했던 자신이 오늘 그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다.그중에서도 제일 천한 류여서 그녀조차도 자신이 부끄러웠다.간혹 그녀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적 있다. 그러면 이런 고통을 당하지 않아도 되니 살아 숨 쉬는 것보다 행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누군가가 머리를 잡고 있는 그녀의 팔을 내리며 그녀의 얼굴을 빛에 노출시켰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그녀의 초라한 모습을 담았다.소원은 그들의 증오스러운 눈빛을 보았고 뒤에 있는 진아연이 방키를 쥐고 흔드는 것을 보았다.순간, 그녀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고 심장이 얼음처럼 얼어버렸다.이해하지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육경한이 방 키를 그녀에게 줬고 마음껏 분풀이를 하라고 한 것이다.그는 이런 방식으로 그녀를 모욕했다.퍽-누군가가 꽃병을 들어 그녀의 몸을 내리쳤다. 거대한 소리와 함께 꽃병이 산산조각이 났다.소원의 얼굴은 유리 조각에 찢어졌다. 어깨와 얼굴에 피가 흘렀다.이 광경에 모두가 얼어붙었다.모두 꽃병을 깨트린 사람을 보자 그 사람은 당황해했다.“난... 아니에요....”그 꽃병은 누가 건넸는지 그도 알지 못했다.고통이 너무 심해서 소원의 반응도 훨씬 느려졌다. 그녀는 멍한 상태로 일어나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피로 흥건한 손, 새빨갛고 뜨거운...너무 아파.진짜 너무 아파.“악!”비명이 들리고 누군가가 꽃병을 깨뜨린 사람을 밀쳤다.“죽이려는 거야?”그때 인파가 갈라졌다.
소원은 아무 반응 없이 의자에 축 늘어져 있었다.육경한의 동공이 순식간에 움츠러들었다. 당황한 그는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수술대에 누운 소원은 의식을 되찾았다.부분 마취가 들어가기 전 그녀는 이사가 핀셋으로 깨진 유리 조각을 골라내는 것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매번 오장육부를 건드려서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삼켜야 했다.그녀는 말을 할수 없었다. 차가웠다가 뜨거워지는 감각에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고 상처에 흘러내려 손만 움켜쥘 뿐이었다.매끄러운 등에 무수히 많은 상처가 생겼고 여자인 의사도 가여운 눈빛을 보냈다.가장 중요한 것은 얼굴이었다. 광대뼈에서부터 관자놀이까지 찢어져 흉터가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마취가 서서히 효과를 발휘하고 소원은 흐릿한 기억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그녀는 부모님이 애지중지하는 공주님이었고 아주 친한 친구와 함께였다. 그녀를 사랑하는 그 소년도 있었다.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하던 그 소년, 입맞춤으로 얼굴을 붉히던 그 소녀는 이제 없다...소원이 다시 실려 나왔을 때는 마취가 한창 효과를 발휘하고 있을 때여서 그녀는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왼쪽 얼굴은 두꺼운 거즈로 덮여있었다.워낙 작은 얼굴이라 거즈가 얼굴의 절반을 덮고 있었다. 그 모습은 너무 충격적이었다.육경한이 의사에게 물었다.“얼굴에 흉터가 남나요?”여의사는 그를 보더니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남자들은 모두 얼굴을 보고 생각하는 하체 동물인 것 같다.이 환자는 등과 어깨의 상처가 얼굴보다 많이 심한 상태인데 말이다.“지금 상황으로 봐선 흉터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요. 환자의 심리적 위안도 무시하면 안 돼요.”여의사는 강조했다.병원 경영진이 맞이한 환자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경찰에 신호했을 것이다.이 상처는 사고처럼 보이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구타를 당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한밤중에 마취 효과가 사라졌다. 잠에서 깬 소원은 아직 머리가 개운하지 않았다.“엄마. 너무 아파...너무 아파...”그녀의 소리에 깬 육
육경한이 몸을 돌려보니 진아연이었다.진아연이 담배를 싫어하는 것을 떠올린 그는 무의식중에 담배를 꺼버렸다.진아연은 그의 행동에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육경한은 절대 그녀를 탓하지 않을 것이고 그녀가 그 여자를 죽였다고 해도 그녀에게만은 매몰차게 굴지 못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어떻게 온 거야?”육경한이 물었다.진아연은 보온병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아침을 챙겨 왔어요.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해물 수프에요.”육경한의 눈빛이 따뜻해졌다. 해외에서 지내는 동안 진아연이 끓여준 수프는 그의 유일한 온기였다.두 사람은 VIP 병동의 식당으로 왔다.진아연은 뚜껑을 열고 직접 한 그릇 떠서 그에게 건넸다.육경한은 몇 모금에 그릇을 말끔히 비웠다.“맛있어요? 예전과 같은 맛인가요?”진아연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맛있어.”진아연은 또다시 한 그릇 떠서 그에게 건네다가 손에 힘이 풀려 수프를 쏟고 손등에 화상을 입었다.“악-”그녀는 비명을 질렀다.육경한은 급히 그녀를 안아 들고 냉수로 통증을 가라앉히고는 간호사를 찾아 약을 발랐다.약을 바르는 내내 진아연은 육경한의 품에 안겨 그의 셔츠를 잡고 설움을 토해냈고 하도 눈물을 흘려서 그의 옷이 흠뻑 젖었다.육경한은 미간을 찌푸리며 간호사를 꾸짖었다.“할 줄 알아요?”깜짝 놀란 간호사는 손이 떨렸고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육경한의 관심에 진아연은 기뻤고 너그러워졌다.“경한 씨, 난 괜찮아요. 너무 그러지 말아요.”육경한은 그제야 불안한 마음을 억눌렀다.약을 바른 후.육경한 화장실에서 옷에 튄 얼룩을 처리하고 간호사 스테이션 옆을 지나갔다. 그때 두 간호사가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다.“어제 VIP 병동에 온 여자와 함께 온 남자를 봤어?”“누구?”“이마에 흉터가 있고 약간 사나운데 아주 아주 잘생긴 그 남자.”“아, 그 잘생긴 오빠? 왜?”“방금 VIP 구역에서 어떤 여자를 안고 있었어. 상처를 치료해달라고 왔더라고. 그 여자가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지, 뜨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