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그 코트는 남자의 것이었다.그리고 이 외투는 공원에서 배남준이 입고 있던 것이었다.순식간에 이준혁의 표정이 굳어졌다.윤혜인은 어젯밤 급하게 나와 옷을 얇게 입고 있었고 기다리는 동안 배남준이 자신의 코트를 그녀에게 덮어 주었다.이후 여은이 더 두꺼운 옷을 가져왔지만 윤혜인은 막 병실에 들어올 때 그래도 배남준의 코트를 다시 입었다.윤혜인은 이준혁을 보며 조용히 물었다.“어때요? 좀 괜찮아졌어요?”이준혁은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이를 애써 감추며 말했다.“괜찮아.”코끝이 찡해진 윤혜인은 눈가가 약간 붉어졌다.“괜찮을 리가 없잖아요.”이준혁은 그녀의 붉어진 눈가를 보고 가슴이 아려왔다.자연스레 손이 침대 옆으로 들리더니 침대 면에서 주먹 한 뼘 정도의 거리에서 멈췄다.마치 보이지 않는 도덕적 경계선이 그를 붙잡고 있는 듯했다.이준혁은 자신의 명성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지만 윤혜인은 앞으로 북안도에서 오래 머물러야 할지 모른다.때문에 그는 그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미안해.”이준혁이 그녀에게 사과했다.“놀랐지?”“아니요.”윤혜인은 울먹이며 말했다.“나 그렇게 겁쟁이는 아니에요.”그의 무릎 부상은 결국 윤혜인을 보호하다 입은 상처였다.죽기 전에 윤혜인을 노리는 에단 로드를 처리하려고 그렇게까지 고집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이런 큰 부상은 입지 않았을 것이다.이준혁은 윤혜인의 배를 바라보며 힘겹게 집중했다.“그럼 너는 어때요? 몸은 괜찮아? 아기는 잘 있지?”두 사람이 이렇게 부드러운 대화를 나눈 건 참 오랜만이었다.윤혜인은 마음속의 쓴맛을 억누르며 말했다.“괜찮아요. 아주 얌전하고 자주 발로 차지도 않아요.”“발로 차다니?”이준혁은 흥미가 생긴 듯 물었다. “아기가 발로 찬다고?”윤혜인이 임신했을 때, 그는 곁에 있지 못했기에 태동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네. 가끔은 아주 장난꾸러기예요.”윤혜인이 말하는 동안 갑자기 배가 살짝 불룩해졌고 이준혁은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이
이준혁은 자신이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윤혜인이 말할 다음 말을 들어야 했다.윤혜인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이미 결혼했고 내 삶이 있어요. 준혁 씨가 여기에 머물면 나와 남준 씨 사이에 오해가 생길 거예요. 나는 그런 오해를 만들고 싶지 않아요.”윤혜인은 한 손으로 코트를 잡아당기며 몸을 더 따뜻하게 감싸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그리고 그녀는 더 이상 배남준을 남준 오빠라고 부르지 않고 단순히 남준 씨라고 불렀다.마치 과거에 이준혁을 준혁 씨라고 부르던 시절처럼 모든 게 변했다는 걸 상기시키고 있었다.윤혜인은 이준혁에게 모든 것이 달라졌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윤혜인은 덧붙였다.“준혁 씨와 함께한 시간은 정말 특별했어요. 사람 인생에서 그렇게 많은 일을 겪을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맞지 않았죠. 그러니 헤어진 건 옳은 선택이에요. 이제는 남준 씨와 함께 단순한 삶을 살고 싶어요. 이해할 수 있겠죠?”얇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이준혁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윤혜인은 그가 이미 자신의 말을 이해했다는 것을 알았다.아마 곧 그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것이다.“준혁 씨가 이해해주길 바라요.”윤혜인은 일어나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기 백일 되면... 그때 준혁 씨 초대할게요.”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준혁 씨, 서울로 돌아가 치료받아요. 거기가 준혁 씨 건강에는 더 적합할 거예요.”그 말을 남기고 윤혜인은 발걸음을 돌려 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혜인아, 가지 마...”눈빛에 어둡고 지친 기운이 가득한 채 이준혁은 그녀의 등을 향해 간절하게 불렀다.그러더니 이준혁은 피곤한 듯한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제발, 부탁이야. 나 정말 아무것도 안 할게. 그저 아이가 태어나는 걸 보고 싶어. 아름이가 태어날 때도 난 없었어. 이번에는 놓치고 싶지 않아.”자존심 강했던 이준혁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다시 한번 간절히 윤혜인에게 애원했다.그 모습에 발걸
윤혜인은 자신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사랑할 용기가 없는 것이었다.사랑의 대가는 너무나 컸고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그때 적절한 타이밍에 문이 열리더니 배남준이 들어왔다.“이야기 다 끝났어?”이준혁은 잠시 굳은 얼굴로 배남준을 바라보았다.‘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혜인이가 나랑 대화를 나눈 것도 배남준과 상의한 결과였다는 건가?’이준혁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사실은 이미 눈앞에 명확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을 뿐이다.배남준은 윤혜인의 손을 잡으며 이준혁을 바라보았다.“이준혁 씨, 다리를 위해서라도 서울로 돌아가 치료받는 게 좋을 겁니다. 아이 백일 때 오셔도 돼요. 언제든지 환영하니까요.”배남준의 태도는 당당했지만 그에 비해 이준혁의 자존심과 집착은 한순간에 초라해졌다.그는 마치 자신이 남의 가정을 침범하려는 부끄러운 존재로 전락한 듯한 기분이었다.온몸이 경직된 채 이준혁은 주먹을 꽉 쥐었다.배남준은 그의 무례함과 대답 없는 태도에 개의치 않고 담담하게 윤혜인에게 고개를 돌렸다.“우리 집에 가자.”“네.”윤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짧은 ‘네’라는 대답 속에서도 배남준에 대한 의지가 느껴졌다.윤혜인은 그를 아주 많이 의지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마치 알콩달콩한 여느 부부처럼 느껴졌다.배남준의 손은 윤혜인과 자연스럽게 깍지를 끼며 더 단단히 그녀와 연결됐다.두 사람은 그렇게 손을 잡고 병실을 나섰다.이 순간, 이준혁은 갑자기 침대에서 뛰어올라 그들을 쫓아가서라도 이 관계를 깨뜨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혜인이는 분명히 나랑 함께 잘 살아 보겠다고 약속했는데...’하지만 이제 윤혜인은 아무 망설임 없이 다른 남자의 손을 잡고 태연하게 떠나고 있었다.자리에서 일어서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미 굳어버린 다리는 감각을 잃은 지 오래였다.이준혁은 그들을 쫓아가는 것은커녕 움직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쾅!”침대 옆의 스탠드가 바
배남준은 윤혜인이 산 것이면 가지려고 했다.“아니야. 그렇게 까탈스럽지는 않아.”배남준이 웃으며 말했다.“집에 가자.”배남준이 차 문을 열며 윤혜인을 차에 태웠다.차는 이미 떠났지만 창문가를 꿋꿋이 지키는 그림자는 여전했다.이준혁은 화기애애한 두 사람을 보며 심장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처럼 아팠다.그녀의 손을 잡고 안고 달래는 건 원래 그가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배남준이 그의 자리를 완전히 뺏어가 버렸다.이준혁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이준혁은 이튿날 비행기로 떠났다.지금 서울로 돌아가 수술한다면 윤혜인의 출산 예정일을 놓칠 게 뻔했다.이준혁은 놓치고 싶지 않았지만 윤혜인은 매정하게도 그 기회를 주지 않았다.윤혜인은 눈앞에 펼쳐진 현실로 다른 사람과 새로운 삶은 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었다.이준혁은 이런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친근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요동쳤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정말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더 미쳐가거나 아니면 더 비굴해지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이준혁의 교양과 자존심이 그가 더 비굴해지는 걸 용납하지 못했다.그럴 바에는 차라리 서울로 돌아가 윤혜인이 원하는 조용한 삶을 돌려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윤혜인은 이준혁이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다. 여전히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 구경도 하고 산책도 했다.그럴 때마다 옆에는 배남준이 함께했다.저녁이 되자 테이블에는 윤혜인의 입맛을 맞춰서 준비한 요리들이 올라왔지만 윤혜인은 젓가락만 헤집을 뿐 별로 먹지 않았다.배남준이 다가와 물었다.“저녁 먹어?”윤혜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배남준을 올려다봤다.“오빠, 어쩐 일로 왔어요?”도우미가 배남준의 손에서 외투를 받아 걸었다.배남준이 말했다.“같이 밥 먹으려고 왔지.”배남준은 요즘 호적을 따로 옮기느라 바빴다. 윤혜인과 아이를 데리고 다른 나라로 이민 하러 가겠다는 핑계로 말이다.배씨 가문은 이런 규정이 있었다.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면 호적
배남준은 차갑게 굳은 어머니의 시체를 지키고 있었지만 배영석은 걸음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배남준은 언젠가 배씨 가문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내리게 되었다.그렇게 조금 크고 나서도 배씨 가문 남자애들 사이에서는 특출나지 않았다. 자기 자신을 최대한 숨기기 위해 교육자가 되는 걸 선택했기 때문이다사실 배남준은 학식이 높을 뿐만 아니라 머리도 총명했다. 국제 무역도 막힘없이 해냈고 다른 영역에서 두각을 드러냈다.배영석은 평생을 용맹하게 산 자신과는 달리 유약한 서생으로 자란 배남준을 보며 후계자 교육을 시킬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하여 배남준이 호적을 따로 파겠다고 해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배영석은 배남준이 북안도를 떠나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교육자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아이도 제대로 키우지 못할 텐데 고생 좀 하다 보면 다시 북안도로 돌아와 의지할 곳을 찾을 것이다.배영석은 배남준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지만 배남준의 와이프 윤혜인과 처남인 곽경천이 궁금했다.곽씨 가문은 L 국에서도 꽤 유명했다. 이번에 곽진명은 몸이 좋지 않아 오지 못했지만 곽진명과 어떻게 항운 사업을 확장할지를 관해 토론해 보고 싶었다.곽씨 가문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서라도 배영석은 결혼식을 성대하게 치러주며 새며느리에 대한 관심을 표현했다. 그러면 북안도에서 며느리를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한편, 배남준이 손을 씻고는 식탁을 마주한 채 앉았다.도우미가 수저를 내다 주고는 천천히 물러가자 주방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배남준이 야채를 집어서 먹더니 말했다.“맛 괜찮네. 이거 먹어봐. 아이에게 좋대.”윤혜인이 한 젓가락 집어서 입에 넣었지만 나무껍질을 씹는 것처럼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를 위해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그 뒤로도 배남준이 먼저 한입 먹고 괜찮다 싶으면 윤혜인에게 말해줬다. 윤혜인은 그런 배남준의 성화에 못 이겨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먹었다.웬만큼 먹자 배남준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이준혁 씨 수술 잘 받았고
윤혜인도 조금이라도 많이 먹고 싶어 억지로 먹지만 그러고 나면 다 토해내기 일쑤였기에 오히려 역효과였다.심지어 지겹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를 잘 키우지 못할 것 같았고 합격한 엄마도 될 수 없을 것 같았다.하지만 이 일은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곽경천과 배남준은 다 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윤혜인도 배가 점점 불러왔기에 아무것도 도울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란 최대한 번거로운 일을 만들지 않는 것이었다.하지만 지금 배남준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배남준이 뭔가 눈치챈 것 같았다.다 털어놓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더 참다간 정말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누군가를 잡고 얘기하는 게 제일 전형적인 자아 구제 수단이었다.윤혜인도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고 병이 나기 전에 적극적으로 구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오빠, 나 살짝 힘들어. 아무것도 못 하는데 짐만 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아이 셋을 잘 키워낼 수 있는지도 의문이야.”윤혜인은 마음속에 꾹꾹 눌러뒀던 말을 내뱉고 나서야 참아왔던 숨을 내쉴 수 있었다.원지민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자기도 모르는 새에 짐이 된 것이다.배남준은 윤혜인의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걸 발견했다. 배남준과 곽경천은 매일 자기가 할 일에 몰두하느라 여자가 임신하면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는 걸 놓치고 말았다.방에 앉아 소식만 기다리는 나날 속에 윤혜인은 자기가 점점 쓸모없는 사람으로 되어간다고 생각했다.“혜인아.”배남준이 윤혜인 맞은편에 앉더니 손을 꼭 잡으며 윤혜인을 바라봤다.“혜인아, 너 지금 엄청 잘하고 있어. 부담 갖지 마. 우리 기분 걱정하느라 무슨 생각이 들어도 꾹 참고 혼자 소화해 내면서 몸도 잘 챙기고 있잖아.”“모든 일을 질서정연하게 잘 해내고 있는데 아이들을 잘 키워내지 못할 리가 있겠어?”“아름이 봐봐 얼마나 건강하고 예뻐. 네가 좋은 엄마라는 제일 좋은 증거잖아.”배남준이 곽아름 얘기만 꺼내도 윤혜인은 잠시 기분 나쁜
곽경천이 윤혜인을 찾아 얘기를 나눴다. 별다른 진척은 없어도 배남준의 건의에 따라 윤혜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이를 들은 윤혜인이 잠깐 침묵하더니 말했다.“오빠, 혹시 그 CCTV 영상 나 보여줄 수 있어?”얘기를 들어보니 CCTV 속에 찍힌 안경남이 유일한 단서 같았다.곽경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윤혜인이 임신 중에 걱정하는 게 싫었지만 이 일은 윤혜인에게 큰 고민거리가 된 것 같았다.곽경천은 CCTV 영상을 태블릿에 카피해 윤혜인에게 건네더니 자기도 옆에 앉아서 같이 봤다.이 영상을 500번도 넘게 본 곽경천이었다. 남자가 사라진 골목의 CCTV도 100번 넘게 봤지만 전혀 단서라고 할만한 게 없었다.멀쩡한 사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으니 정말 난해했다.윤혜인이 다시 한번 쭉 보더니 순환 재생을 누르며 여러 번 돌려봤다.남자가 어딘가 이상했지만 도대체 어디가 이상한지는 콕 집어내긴 힘들었다.옷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았다. 까만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어깨에 엄청 두꺼운 패드를 욱여넣은 것 같았다. 이렇게 두꺼운 패드를 넣었다는 건 체격을 불리기 위해서였다.남자는 점잖으면서 빈약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키도 작은 편이었다. 겨우 170이 되는 키에 어깨 패드를 잔뜩 욱여넣으니 꼴이 오히려 우스워 보였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곽경천의 말처럼 다른 이상한 점은 없었다.그래도 윤혜인은 포기하지 않고 여러 번 더 돌려봤다. 곽경천이 나가서 30분 남짓하게 통화를 하고 왔지만 윤혜인은 아직도 소파에 앉아 쿠션을 앉고 영상을 보고 있었다.“됐어.”곽경천이 그쪽으로 다가가 말했다.“내일 마저 봐. 그러다 눈 나빠지겠다.”곽경천이 이렇게 말하며 태블릿을 끄려 했다. 하지만 태블릿을 아래로 누르는 순간 윤혜인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잠깐만.”곽경천이 멈칫했다. 윤혜인이 정지 버튼을 누르자 화면은 안경남이 진열장 앞에 3초 정도 머물러 있는 게 보였다.하지만 진열장 안에는 눈길을 끌 만한 물건이 없었다. 그저 하얀 벽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여자라니.곽경천은 문득 그 사람이 사라진 골목에 까만 옷을 입은 행색이 수상한 여자를 봤던 게 떠올랐다. 백번도 넘게 본 영상이라 틀림없었다.곽경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윤혜인을 꼭 끌어안으며 칭찬했다.“혜인아, 정말 고마워. 정말 큰 도움이 됐어.”윤혜인은 너무 기뻤다. 윤아름을 찾을 단서가 다시 생겨난 것이다.곽경천은 골목 CCTV 영상을 핸드폰에서 카피해 윤혜인과 계속 돌려보기 시작했다.이번에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까만 옷을 입은 여자가 약재를 사 간 안경남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이에 그들은 이 여자가 윤아름과 관련되어 있음을 확신했다. 아니면 약재 하나를 사기 위해 남자로 위장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동시에 윤아름이 살아있다는 게 망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도 설명할 수 있었다.‘엄마가 아직 살아있다니.’곽경천은 이 영상을 컴퓨터 고수에게 보내 이 여자의 형상만 단독으로 따내 알아보기 쉽게 해상도를 높여달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의 정면 형상이 나왔다.곽경천은 그 사진을 배남준에게 보내 조사해달라고 했다. 배남준이 북안도에서의 세력이라면 여자를 빠른 시일 내에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아니나 다를까 해가 지기도 전에 소식이 왔다.여자는 강북구 진 의사님의 딸 진우희였고 마찬가지로 의대생이었다.곽경천은 여자를 찾는 일에는 윤혜인을 나서지 못하게 했다. 언제든 잠재적인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윤혜인도 배가 나날이 커져 불편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따라가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그저 조심하라고 당부하며 절대 충동적으로 움직이지 말라고 덧붙였다.곽경천이 가고 윤혜인은 마음을 졸이며 집에서 기다렸다.한편. 원씨 저택.오늘은 윤아름에게 주기적으로 침을 놓는 날이었기에 진우희는 문 앞에 서서 집사가 나오길 기다렸다.집사가 검사를 마치고 진우희에게 지하로 통하는 숨겨진 문을 열어줬다.안으로 들어가자 윤아름이 침대맡에 앉아 수놓기하고 있었다. 원진우에게 한참 빌어서야 특제된 바늘로 심심풀이할 수 있게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