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이준혁을 전혀 관심하지 않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윤혜인은 모르지만 곽경천은 알았다. 윤혜인은 여러 번 꿈결에 울면서 안 된다고 연신 외쳐댔다. 그 외침이 얼마나 처절한지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지게 했다.깨어나면 곽경천에게 들키지 않게 간병인에게 젖은 베개 수건을 바꿔 달라고 했다. 곽경천은 그런 윤혜인의 노력을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모른 척했다.그러다 언젠가 윤혜인의 태도를 슬쩍 떠봤다.“이준혁이 깨어나서 두 사람이 다시 만난다 해도 뭐라 하지는 않을게.”이준혁은 윤혜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마다하지 않았다. 바로 이점이 곽경천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 남자라면 윤혜인이 진심을 다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그리고 전에 가져갔던 유서도 이준혁이 가짜 결혼을 하면서 다시 보내왔다.혹시나 자기가 안 좋은 일을 당할까 봐 최대한 윤혜인에게 유리하게 유서 내용을 바꿔서 곽경천의 사무실로 보내왔다.그 결혼식을 올린 것도 윤혜인을 위협하는 찰스를 상대하기 위해서 올린 가짜 결혼식이었다. 모든 진실을 알아버린 곽경천은 더는 이준혁의 흠을 잡을 수가 없었다.이준혁은 애초에 윤혜인과 만날 때 곽경천에게 했던 약속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지켰다.이번 기회에 이준혁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면 곽경천도 더는 두 사람 사이를 막을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윤혜인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했다. 곽경천은 윤혜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이준혁은 열흘 넘게 혼수 상태에 빠져 있었다. 처음 며칠이 제일 위험했고 몇 시간에 한 번씩 의사가 상태가 위중하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할 정도였다.윤혜인은 겉으로는 덤덤해 보였고 이준혁 얘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셋째 날 밤 휠체어를 끌고 몰래 이준혁이 있는 병실로 향했다.하지만 중환자실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다.주훈이 분주하게 돌아치다 의사가 위중한 상태를 알릴 때마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걸 보고 가슴이 점점 더 아팠다.윤혜인은 지금 졸병이나 다름없었다. 이준혁의 그 어떤 소식도
이진숙은 원지민에게 아예 관심이 없었고 원씨 가문에 있으면서도 원지민의 괴롭힘을 수도 없이 받았던 터라 원지민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그나마 총명했던 이진숙이 빨리 원씨 가문에서 도망 나와서 망정이지 아니면 원지민에게 당했을지도 모른다. 이진숙은 원지민의 유골조차 받으러 가고 싶지 않아 보디가드에게 아무렇게나 처리하라고 시켰다. 얼마나 미웠으면 묫자리 하나도 사주기 싫어했다.원지민의 결말이 아무리 비참해도 윤혜인은 전혀 동정이 가지 않았다. 그런 짓을 저지를 때부터 이런 결말을 가져올 거라는 걸 알아야 했다.원지민이 정말 미래를 내다봤다면, 그래서 결국 이런 결말을 맞을 거라는 걸 알았다면 과연 이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까…윤혜인을 죽이려고 한 남자에 관해 여은이 조금 알아냈다. 그 남자도 북안도에서 온 사람이었다.북안도, 윤혜인은 그 지명을 들을 때마다 이상했다. 가본 적도 없는 섬인데 도대체 무슨 원한이 있길래 죽이지 못해 안달 난 건지 궁금했다.하지만 윤혜인은 아직 힘이 부족했기에 섣불리 조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곽경천은 이에 관해 자기가 조사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그렇게 병원에서 보름 정도 더 입원해 있는데 좋은 소식이 날아왔다.이준혁이 깨어났다는 소식이었다.아직 눈만 깜빡일 뿐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말할 수도 없어 아무 의사 전달도 하지 못했다.게다가 약물 중독에 무릎 골절, 그리고 총상 합병증까지 더해져 아직 시름 놓기는 어려웠다.김성훈은 심사숙고 후 이준혁이 깨어난 지 3일째가 되는 날 수술로 이준혁의 몸에 해독제를 심어 넣기로 했다.독액이 이준혁의 체내에 남아있으면 자체의 치유 능력이 떨어져 아무리 치료해도 결국 눈만 깜빡일 수 있는 정도로 회복하고 다른 건 아무것도 못 할 것이다.수술 전날 김성훈이 윤혜인을 찾아왔다.김성훈은 여전히 친화력 있고 유머러스했다. 마음속으로 친구의 건강을 걱정했지만 그 초조함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지는 않았다.특히 윤혜인처럼 조용히 몸조리해야 하는 경우
사실 보름 동안 윤혜인도 매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아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순간부터 윤혜인은 이미 고통의 심연에 빠져 있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 전까지는 그래도 원지민의 말을 무시하고 두 사람의 아름다운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이준혁의 병을 고칠 수 없다면 여생을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아쉬움이 남지 않게 노력할 생각도 했다.가족이 되어 한 지붕 아래 오손도손 살 수만 있어도 전생에 쌓은 덕이라고 했다.그러다 한 사람이 갈지라도 추억만 있으면 그렇게 외롭고 쓸쓸하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 다 같은 곳으로 갈 거라는 생각으로 버틸 수 있을 것이다.마음은 아프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후회하기보다는 이준혁의 곁을 지키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려 했다.윤혜인은 앞으로 더 안 좋아질 건 없다고, 같이 이겨내다 보면 아름다운 미래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순간 모든 생각이 바뀌었다.원지민의 지독한 저주가 현실로 변하고 말았다.이준혁과 만난 뒤로 자꾸만 안 좋은 일만 생겼다. 윤혜인을 대신해 칼을 맞는가 하면 벼락에서 추락했고 윤혜인의 실종으로 배에서 지내며 윤혜인을 찾을 때까지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 뒤로도 독액과 폭탄, 그리고 총상까지…어느 하나 목숨이 위태롭지 않은 게 없었다. 마치 이준혁이 죽어야만 끝나는 악순환 같았다.병원에 보름 정도 있으면서 윤혜인도 끊임없이 반성했다. 정말 몸에 살이 많아서 그녀를 가까이하는 남자마다 만신창이가 될뿐더러 온갖 고난을 겪는 게 아닌지 말이다.그렇게 윤혜인은 이준혁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하루에도 여러 번 들었고 깨어나서도 회복이 빠르지 않다는 소식만 여러 번 들었다. 전부 안 좋은 소식이었다.그럴 때마다 윤혜인의 마음은 큰 돌덩이에 짓눌린 것처럼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윤혜인에게는 이제 선택지가 없었다. 떠나주는 게 제일 좋은 선택인 것 같았다.윤혜인도 마음이 향하는 곳이 어딘지 잘 알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아직 이준혁을 사랑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사랑 때문에 이준혁이 다치고 망
이준혁의 수술이 내일 잡혀 있었기에 안으로 들어가려면 무균복을 입고 들어가야 했다.주훈은 윤혜인이 이준혁과 단둘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알아서 밖으로 나갔다.침대에 누워 있는 이준혁의 몸에 장기를 검사하기 위해 넣어둔 튜브가 보였다.윤혜인을 무균복을 입었지만 이준혁의 몸에 달린 튜브를 보고 만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저 먼 발치에서 이준혁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윤혜인은 이준혁의 부풀어오르는 가슴을 보고 이준혁의 심장 박동과 숨결을 느꼈다. 만질 수 없다고 해도 그걸로 충분했다.“준혁 씨, 앞으로 내가 없어도 건강하게 잘 지내야 해요. 난 그걸로 돼요…”병실에서 나가기 전 윤혜인이 손을 내밀어 이준혁의 얼굴에서 약간 떨어진 곳을 매만지며 수척해진 이준혁의 얼굴을 손으로 그려냈다.눈물을 흘리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수술 성공을 기원하려고 했지만 마음 같지 않았다.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준혁 씨, 미안해요…”윤혜인은 아쉬움이 남는 듯 이준혁의 얼굴을 허공에 그리며 울먹였다.“약속 못 지킬 거 같아요. 우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꼭 잘 지내야 해요…”“약속해요. 이번 생은 꼭 건강하게 무사하게 아무 일 없이 오래오래 살아야 해요.”윤혜인이 눈물을 머금고 이렇게 기도했다. 마지막으로 윤혜인은 아랫배를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가, 너희들 생각도 엄마랑 같지? 아빠가 무사히 잘 지낼 수 있도록 기도하자.”“아빠한테 인사해야지?”윤혜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아랫배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에 윤혜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자리에 선 채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아까 느꼈던 태동이 진짜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다시 잠잠해진 아랫배를 보며 윤혜인은 태동이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다시 확인하고 싶었던 윤혜인이 이렇게 말했다.“아가, 아빠랑 인사하고 싶으면 다시 한번만 움직여 볼래?”5초 후, 윤혜인은 아랫배가 다시 움직이는 걸 느꼈다. 착각이 아니라 진짜 태동이었다.아이들이
윤혜인은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지만 티를 낼 수가 없어 슬픔을 억지로 누르며 말했다.“네. 나아질 거예요. 앞으로 준혁 씨 잘 부탁드려요.”“제 일인걸요.”주훈이 대답했다. 하지만 대답하고 나니 어딘가 이상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니, 윤혜인이 어디 간다는 말로 들렸다.하지만 더 묻기도 애매해 고개를 들어 윤혜인의 눈치를 살폈지만 이상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지극히 정상이라 오히려 더 이상했다.“비서님, 그러면 저는 먼저 들어가 볼게요.”윤혜인이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이튿날, 7시.윤혜인은 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옆에는 여은과 곽경천도 보였다.곽경천은 윤혜인이 계속 창밖으로 이준혁의 병원이 있는 쪽을 내다보자 잠깐 고민하다가 이렇게 말했다.“혜인아, 걱정되면 지금 돌아가도 돼.”“아니야. 오빠.”이 말을 뒤로 윤혜인은 담요를 뒤집어쓰더니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곽경천이 한숨을 내쉬었다. 윤혜인이 정말 떠나고 싶은 게 아니라는 걸 곽경천도 알고 있었다. 병원에 있을 때도 몸이 진작에 나았지만 이준혁이 걱정돼 퇴원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리고 이준혁이 수술하는 날 떠나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도 아마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어서일 것이다.외국 시간으로 새벽 세 시에 곽경천은 서울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이준혁의 수술은 아무 문제없이 끝났고 3, 4개월 천천히 몸조리만 하면 침대에서 내려와 설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중요 장기를 피해 갔다고는 하나 가슴에 총알을 맞았기에 관절의 활동 능력은 조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릎뼈가 아작난 터라 잔뼈를 제거하고 3D 프린터로 프린트한 관절뼈를 장착하긴 했지만 상처가 아물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적어도 회복에 반년은 걸린다는 소리였다. 어느 하나 바로 되는 게 없었다.곽경천은 이 좋은 소식을 윤혜인에게 알렸다. 윤혜인이 멈칫하더니 덤덤하게 잘됐다고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갔
간호사는 이준혁이 왜 갑자기 손을 빼갔는지 몰라 억울한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환자분, 왜…”“장갑은요?”이준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간호사는 그제야 이준혁이 결벽증이 있어 다른 사람이 만지는 것을 싫어한다는 걸 알아챘다.하여 오기 전에 수간호사가 무조건 무균 장갑을 착용해야만 수액할 수 있다고 당부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간호사가 연신 사과하더니 카트에 놓인 장갑을 끼며 말했다.“지금 바로 착용하겠습니다.”이준혁은 간호사의 능력을 의심했지만 장기적으로 보살핌을 받는 것도 아니고 고작 수액 하나 놓아주는 거라 뭐라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간호사가 장갑을 끼더니 남자의 손을 받아와 바늘을 꽂아야 하는 곳에 알코올 솜으로 소독했다.장갑을 끼고 있어 촉감이 살짝 떨어지긴 했지만 손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간호사의 심장이 툭 터질 것만 같았다.VIP층에 잘생긴 남자가 입원해 있다는 소식은 이미 병원에 퍼다 하게 퍼진 상황이었다.하지만 남자는 조용한 걸 좋아했고 여자와 접촉하는 걸 싫어했기에 평소에는 거의 남자 의사가 와서 검사하고 치료해 줬고 수액 같은 작은 일도 남자 간호사를 찾았다.마침 이번 주에 수액을 책임진 남자 간호사가 휴가를 내는 바람에 여자 간호사로 대체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간호사는 어린 간호사들이 다른 마음을 품을까 봐 VIP층의 간호사들이 하루에 한 번씩 바꿔가며 수액 해주기로 정했다.하지만 첫날 수액 하러 온 간호사가 남자의 잘생긴 얼굴을 보고 선을 넘으며 남자에게 쪽지를 건넸다.남자는 쪽지를 받자마자 수간호사에게 건넸고 간호장은 그 간호사를 호되게 혼내고는 제일 아래층에 있는 일반층으로 보내버렸다.그러자 그 뒤로 온 간호사 셋은 매우 얌전했고 선을 넘는 행동을 할 엄두를 못 냈다. 그저 남자에게 수액만 꽂아주고는 바로 자리를 떠났다.지금 수액 하러 온 간호사도 남자의 잘생긴 얼굴을 보고는 마음이 붕 뜬 상태라 동료 간호사가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걸리면 기껏해야 제일 아래층에 있는
게다가 누가 봐도 잘난 이 남자와 함께라면 인생의 정점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운이 좋으면 명분을 얻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명분까지는 아니더라도 차와 집은 무조건 얻어낼 수 있을 테니 손해 볼 건 없었다.이렇게 생각한 간호사는 더는 지체할 수가 없었다.남자 간호사가 고작 한주만 휴가 냈기에 이 남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다. 그러니 이 기회를 어떻게든 잘 이용해야 했다.간호사가 얼굴을 붉히더니 말캉한 목소리로 말했다.“환자분, 이제 수액 넣을 거예요. 따끔하니까 좀 참으세요.”이준혁은 몇 끼는 굶은 것 같은 간호사의 말투에 미간을 찌푸리더니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도도한 남자의 모습에 간호사는 더 흠뻑 빠지고 말았다.게다가 남자는 딱 봐도 신분이 남달라 보였다. 대표라면 이 정도 도도함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간호사는 마치 마사지하듯 이준혁의 손등을 톡톡 건드리며 혈관을 찾았다.이준혁이 차가운 눈빛으로 쏘아보자 간호사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죄송해요. 혹시 제가 아프게 했나요? 좀 더 살살해드릴게요...”간호사가 여전히 말캉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준혁은 그 말투가 역겨워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빨리 해요.”“네.”두어 번 더 두드린 간호사가 혈관을 찾았는지 바늘을 찔러넣었다.이준혁의 미간은 펴진 적이 없었고 바늘을 찔러넣자마자 얼른 손을 거뒀다. 하지만 이때 간호사가 남자의 손을 꼭 잡더니 꿀 떨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환자분, 이러면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거치대에 고정해 줄게요.”간호사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남자의 손을 자꾸 알게 모르게 자기 가슴으로 갖다 댔다.간호사는 자기 가슴에 자신감이 넘쳤다. 침대에 오랫동안 누워있었는데 설레지 않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가슴에 손이 닿기도 전에 남자가 억지로 손을 빼더니 불쾌한 듯 이렇게 말했다.“필요 없으니까 나가세요.”간호사는 어렵게 온 기회를 그대로 날려버릴 생각이 없어 마지막으로 용기 내어 이렇게 말했다.“환자분, 저 할 줄
“환자분, 혹시 잘못 말씀하신 거 아니에요? 저는…”임이나가 얼른 수화기를 잡더니 버벅거렸다.“잘못 말하신 거죠? 왜 저를 해고하시는 거예요?”“당장 꺼져.”이준혁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차갑게 쏘아붙였다.이에 임이나는 자기가 잘못 들은 게 아님을 눈치채고 어쩔 바를 몰라 했다.임이나가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애걸복걸했다.“안… 안 돼요. 환자분,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해고만은 안 돼요…”이 병원은 서울에서 제일 큰 병원이었다. 여기서 해고당하면 그녀를 받을 병원이 없었다.게다가 이 신분이 있으면 괜찮은 남자 친구를 찾을 수 있는데 해고당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환자분,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해고하지만 않으면 뭐든… 뭐든 다 할게요.”임이나는 아직도 헛된 착각을 하고 있었다. 남자가 공짜로 잠자리를 가지기 위해 이걸로 협박하는 거라고 생각했다.이렇게 잘생긴 남자라면 임이나는 하루 정도 자는 것도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다.이준혁은 그런 임이나가 너무 역겨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당장 나가지 않으면 서울에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해줄게.”“…”이준혁의 매정함을 맛본 임이나는 이준혁이 그녀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는 걸 알아챘다.머리를 굴리던 임이나는 매니저가 병실로 들어오기 전에 제복을 풀어 헤치더니 울면서 하소연했다.“환자분, 왜 이러시는 거예요… 싫다고 말씀드렸는데 옷을 찢은 것도 모자라 모함까지 하면 어떡해요…”임이나는 병실에 CCTV가 없다는 걸 알고 헛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문을 열고 들어온 매니저가 눈앞의 광경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이준혁의 제보가 겹쳐지자 간호사를 협박해 뭔가 얻어내려다 실패하고 들킬까 봐 먼저 고발한 상황 같았다.VIP 병실의 환자들은 돈이 많지 않으면 지체가 높았기에 매니저도 이런 상황에서 바로 처리하기보다는 상관에게 보고하고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마침 이 병원의 관리자가 김성훈의 친구였다. 김성훈은 요새 이준혁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병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