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아니었으면 준혁이가 중독되어 죽을 위기에 처했겠어? 그 주사는 원래 네 목에 들어가야 했어. 네 아이가 유산된 것도 네가 자초한 일이야. 넌 애초에 준혁이 옆에 있을 자격이 없어! 준혁이에게 끊임없는 재앙을 불러온 건 너야. 준혁이가 몸을 다치고 생명이 위태로울 때마다 그 모든 일은 다 너 때문이었어! 넌 그저 재앙을 몰고 다니는 불행의 화신일 뿐이야!”“...”“우두둑...”그 순간, 원지민의 유일하게 멀쩡했던 손가락이 이준혁의 차가운 손에 의해 무참히 부러졌다.“아아아...”원지민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닥쳐!”이준혁이 오랫동안 억눌러왔던 분노가 마침내 폭발했다.윤혜인을 향해 총을 쏘고 독침으로 그녀를 해치려 했던 것만으로도 원지민은 이미 수천 번, 수만 번 죽어 마땅했다.그는 멀쩡한 무릎을 구부리며 반쯤 웅크린 자세에서 손바닥을 힘껏 들어 그녀의 얼굴을 내리쳤다.이준혁이 여자를 때린 것은 태어나 처음이었다.그는 그동안 여자를 때리는 남자를 경멸해 왔고 자신이 받아온 교육으로도 절대 여자를 폭력으로 다루지 않았다.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손바닥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는 그 마음속의 깊은 분노를 해소할 수 없었다. 마치 그냥 가볍게 긁는 것처럼 전혀 속이 풀리지 않았다.결국 이준혁은 주먹을 움켜쥐고 원지민의 얼굴에 강하게 내리쳤다. 원래부터 흉측했던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피가 몰려 돼지처럼 부어올랐다.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다시 한번, 또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내리쳤다.윤혜인은 충격에 휩싸인 채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평소에 늘 냉정하고 자제력 있던 이준혁이 지금은 완전히 미쳐버린 사람처럼 원지민의 얼굴을 망가뜨리고 있었다.그저 한 번에 끝내려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진심으로 죽이고 싶다는 의도가 분명해 보였다.“넌 정말 죽어야 해. 찰스 가문이 널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널 지옥으로 보내줄게!”이렇게 말하며 이준혁은 바닥에 떨어진 군용 나이프를 집어 들고 그 칼을 원지민의 목에 겨눴다. 그러고는 거
특히 그의 다리 상태는 심각했다.한쪽 다리만으로 걸을 수 있었고 다른 한쪽은 에단 찰스가 짓뭉개버린 무릎이었는데 조금 전에도 다시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만약 조속히 치료를 받지 않으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 뻔했다.윤혜인은 이준혁의 건강 상태가 너무나 걱정되었다. 그의 손을 꼭 붙잡고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다.“준혁 씨, 우리 가요. 병원으로 가요. 여기는 지휘부 사람들에게 맡기면 되니까.”아무리 말해도 이준혁의 눈에 가득 찬 살기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이준혁이 그렇게 원지민을 혼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지민은 여전히 윤혜인에게 두 번이나 해를 가하려 했고 심지어 윤혜인의 배 속에 있는 아이까지 에단 찰스로 하여금 꺼내버리려 했다.이런 악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이준혁은 죽을래야 결코 마음 편히 죽을 수 없을 것 같았다.이준혁은 윤혜인이 왜 걱정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그가 원지민을 죽임으로써 법적 문제에 휘말릴까 봐 염려하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이준혁의 몸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고 할 수 있는 일도 한정되어 있었다.‘이런 악마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난 절대 눈 감고 죽을 수 없을 거야. 내 명예에 흠집이 생긴다고 해도 상관없어.’이준혁의 마음속에 불길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 뜨거운 살의가 윤혜인에게까지 전달되어, 그녀는 그 열기가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윤혜인은 이준혁이 완전히 통제력을 잃었다는 걸 알았다.이 순간, 윤혜인은 자신의 생사에 관한 문제로, 이준혁이 이렇게까지 이성을 잃은 것은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윤혜인은 그를 꼭 끌어안으며 애틋한 목소리로 말했다.“준혁 씨, 부탁이에요. 우리 이만 가요...”그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견뎌왔다는 것을 윤혜인은 알고 있었다.이제 그녀는 이준혁이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원했다.남자의 몸은 그 따뜻한 포옹에 점차 이완되기 시작했다. 윤혜인은 이준혁을 꼭 붙잡고 벽을 짚으며 천천히 일어섰다.하지만 그들의 핸드폰은 조금 전 싸움 중에 어디론가
원지민의 목구멍으로 검붉은 피가 올라왔지만 반듯하게 누워 있던 터라 어혈을 뱉어내지 못해 다시 기도로 흘러 들어갔다.“컥. 콜록콜록.”원지민은 사레가 크게 들렸는지 팔뚝마저 검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아까 그렇게 넘어지고 나니 온몸에 힘이 쭉 빠진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욕설을 퍼부으려고 입을 열어도 목구멍에서는 ‘억’하는 소리만 들려왔다.마음이 다급해질수록 솟구치는 어혈은 점점 많아졌고 그대로 기도로 빨려 들어갔다.“컥. 컥. 콜록콜록…”기침하면 할수록 입가에 하얀 거품이 점점 많아졌고 기침하는 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원지민은 두 손으로 바닥을 쾅쾅 내리치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건물 안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고 옆에는 찰스라는 그림자 팀 대원만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그렇게 발버둥 치던 원지민은 갑자기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더니 몸이 점점 뻣뻣해졌다.윤혜인은 이준혁을 부축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이 건물은 지금 안전한 상태였고 더 들이닥칠 적들도 없었다.윤혜인의 체력으로 이준혁을 부축해 걷기란 매우 힘들었고 언제든 떨어질 위험이 있었기에 엘리베이터를 타는 게 가장 안전했다.이준혁을 겨우 엘리베이터로 안내한 윤혜인은 일단 이준혁을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게 하고는 잠깐 휴식했다.층수를 누르고 고개를 돌리자 이준혁이 예쁜 눈동자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화들짝 놀란 윤혜인이 얼른 이준혁의 이마를 짚어보며 물었다.“어때요? 좀 괜찮아요?”이준혁이 윤혜인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혜인아… 이거 지금 꿈 아니지…?”이준혁은 거칠거칠한 손바닥으로 윤혜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이거 진짜지?”이준혁은 열이 많이 나서 의식이 흐릿한 상태였다.윤혜인은 이준혁이 피가 묻은 손으로 천천히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다가 부드럽게 말했다.“그래요. 나 맞아요. 정말 나예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준혁이 윤혜인의 팔을 잡더니 그녀를 으스러지게 꽉 끌어안았다. 이준혁의 팔은 마치 억센 넝쿨과도
이준혁이 눈을 뜨고는 윤혜인을 바라봤다. 눈시울은 어느새 빨개 있었고 열이 심하게 나는지라 눈이 충혈된 상태였다.하지만 이준혁의 또렷한 눈빛에 윤혜인은 이준혁의 정신이 말짱한 게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이준혁은 윤혜인의 머릿결에 살포시 키스하더니 매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꿈이 너무 좋아서 영영 깨고 싶지 않네…”순간 코끝이 찡해 난 윤혜인은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이준혁이 손을 내밀어 윤혜인의 눈가를 닦아주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울지 마. 네가 울면 내 마음이 너무 아파…”윤혜인은 울음을 그치고 싶었지만 좀처럼 그게 되지 않았다. 그녀는 눈물을 잔뜩 머금은 채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요…”“우리… 우리 곧 병원에 도착할 거예요. 준혁 씨 다 나으면 가족끼리 모여서 단란하게…”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윤혜인의 표정은 기쁨에 가득 차 있었다. 드디어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엘리베이터에서 3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대문 쪽에 특수 부대 알파팀 사람들이 전격 무장하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경찰차와 앰뷸런스 소리가 들렸다.단조롭기만 한 선율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하모니로 들렸다. 드디어 안전해졌다는 의미기도 했다.윤혜인은 몸이 불덩이 같은 이준혁을 부축해 나오며 울먹였다.“준혁 씨, 봐요. 알파팀 사람들이에요. 조금만 더 버티면 바로 병원에 도착할 수 있어요. 도착하면 우리 가족 셋이… 아니다…”윤혜인이 눈물을 훔치며 말을 바꿨다.“우리 가족 다섯이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조심해요.”그때 문밖에서 누군가 낮은 소리로 경고했다.윤혜인이 고개를 들어보니 위아래로 까만 옷을 입은 남자가 총으로 윤혜인을 겨누고 있었다.경고와 함께 남자는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윤혜인의 머리였다.바깥은 빛이 밝았기에 윤혜인은 남자의 파란 눈동자에 차오른
윤혜인은 심장을 날카로운 물건에 찔린 것처럼 저릿한 게 너무 아팠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이준혁을 품에 안고는 슬픔에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준혁 씨…”이준혁이 눈을 뜨더니 손을 들고 싶었지만 좀처럼 들리지가 않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총을 맞은 가슴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윤혜인이 얼른 손으로 막았지만 손가락 틈으로 피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나왔다.이준혁은 눈꺼풀이 너무 무거웠고 말도 나가지 않았다. 누군가 풀로 눈꺼풀을 붙여놓기라도 한 듯 좀처럼 떠지지 않았다.윤혜인은 어쩔 바를 몰라 하며 절규했다.“안 돼… 준혁 씨… 제발 눈 좀 떠요… 제발 정신 차리라고요…”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이준혁은 눈을 꼭 감은 채 반응이 없었다. 윤혜인의 착각인지 몰라도 아까까지만 해도 불덩이처럼 뜨겁던 이준혁의 몸이 점점 차갑게 식어가는 것 같았다.이렇게 무서운 건 처음이었다. 마치 온 세상을 잃은 듯한 기분이었다.두 번째로 겪는 아픔이었다.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고작 얼마나 지났다고 또 예고도 없이 들이닥쳤다.그리고 이번엔 저번보다 더 가슴이 미어졌다. 누군가 손으로 장기를 억지로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처럼 갈기갈기 찢어질 듯이 아팠다.윤혜인은 뭍에서 메말라가는 생선처럼 퀭한 눈으로 앞을 멍하니 내다봤다.‘왜… 행복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왜 이런 생이별이 들이닥친 걸까… 왜 하늘을 늘 이렇게 잔인하기만 한 걸까…’구급 대원이 들것을 들고 달려와 윤혜인을 타일렀다.“일단 부상자부터 치료하게 해주세요…”이 말에 윤혜인은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잡은 듯 구급대원의 팔을 붙잡고 애원했다.“제발 이 사람 좀 살려주세요. 저는 이 사람 없으면 못 살아요. 제 아이도 마찬가지예요…”윤혜인의 절규에 사람들의 마음도 찢어질 것만 같았다.구급대원이 꿋꿋하게 말했다.“최선을 다하겠습니다.”윤혜인은 응급 처치를 방해할까 봐 옆으로 물러나면서도 연신 이렇게 말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별말씀을요. 사람을
깜짝 놀란 알파 팀 사람들이 그 남자를 반듯하게 눕히더니 얼굴을 여러 번 내리쳤다.“저기요. 일어나봐요. 빨리 구급차로 옮겨…”윤혜인은 남자의 입가로 흘러내린 검붉은 피를 보며 남자가 음독했음을 알아챘다.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이렇게 빨리 중독되었다는 건 한 가지 경우밖에 없었다.그것은 바로 스스로 음독했다는 것이다.의사가 달려와 동공과 입 안쪽을 확인하더니 말했다.“스스로 음독했어요. 이빨에 독을 숨긴 것 같아요.”윤혜인은 머리가 윙 했다. 그녀의 추측이 그대로 들어맞았던 것이다.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려 했지만 머리가 너무 복잡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구급차로 실려 가는 이준혁을 보며 윤혜인은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윤혜인은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남자를 뛰어넘어 구급차를 따라가려 했지만 너무 마음을 졸인 탓인지 눈앞이 까매졌고 아무 예고도 없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사모님…”깜짝 놀란 주훈이 윤혜인을 부르더니 번쩍 안아 들어 다른 구급차에 실었다.…윤혜인은 길고 긴 꿈속에서 헤매고 있었다.예정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윤혜인을 이준혁이 살뜰히 보살펴주고 있었다. 의사가 윤혜인을 분만실로 데려가는데 윤혜인이 이준혁의 손을 꼭 잡고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요. 어디 가면 안 돼요…”이준혁이 윤혜인의 손을 꼭 맞잡더니 약속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어딜 가. 여기서 너랑 아이가 나오길 기다릴게.”윤혜인은 이 말을 듣고도 너무 불안해 이준혁의 손을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마음이 너무 먹먹하고 답답해 이 말만 반복했다.“거짓말하면 안 돼요. 어디도 가지 말고 꼭 나 기다려야 해요…”이준혁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안 간다고 했잖아. 왜 점점 어린이가 되어가는 것 같지?”이준혁이 윤혜인의 코끝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달콤하게 말했다.“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에게도 이렇게 애교 부리려고?”이쯤 되면 한시름 놓아야 맞는데 이상하게도 불안함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머릿
“…”동심이 잔뜩 묻어나는 말에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윤혜인은 꿀이 떨어지는 눈빛으로 화기애애한 이 모습을 지켜보다 순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는 곽아름에게 물었다.“아름아, 아빠는?”곽아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엄마, 아빠가 뭐예요?”“…”순간 말문이 막힌 윤혜인이 다시 물었다.“아름이 아빠 말이야. 아까 밖에 서 있지 않았어? 얼른 아빠 들어오라고 해.”사실 눈을 뜨자마자 본 사람이 이준혁이 아니라는 생각에 윤혜인은 살짝 서운하기도 했다. 이준혁이 제일 처음으로 두 사람의 아이를 봤으면 했는데 말이다.하지만 곽아름은 여전히 못 알아들은 듯한 눈치였다.“엄마, 아빠가 어딨어요? 아름이는 아빠가 있은 적이 없는데?”윤혜인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아빠가 있은 적이 없다니, 그럴 리가 없었다.윤혜인이 얼른 곽진명에게 물었다.“아빠, 준혁 씨 못 봤어요? 아까까지 밖에 서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줘요. 네?”곽진명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혜인아, 우리 아이들 앞에서는 얘기 안 하기로 했잖아.”“왜 얘기하면 안 되는데요?”윤혜인은 왜 갑자기 이준혁을 꺼내면 안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이의 친부이자 윤혜인의 남편인데 안 되는 이유가 뭔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윤혜인이 혼자 낳은 아이도 아닌데 말이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부드럽게 그녀를 다독이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게 이상했다.“오빠…”윤혜인이 곽경천에게 도움을 청했다.“준혁 씨 좀 불러줘.”“…”곽경천이 잠깐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혜인아, 내가 어디 가서 찾아줄까?”윤혜인이 말했다.“멀리 안 가겠다고 했으니까 복도에 있을 거야.”곽경천이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혜인아.”곽진명이 입을 열었다.“이준혁은 진작에…”“아빠.”곽경천이 곽진명을 말리더니 이렇게 말했다.“아이들 데리고 먼저 나가 있어요. 아름이도 잠깐 나가 있어.”곽진명이 윤혜인을 힐끔 쳐다보더니 슬픈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병실은 이
윤혜인은 온몸이 굳어버렸다. 곧이어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어떻게 이럴 수가…”윤혜인은 믿을 수가 없었고 믿기도 싫었다.“그럴 리가 없잖아. 방금 전까지 나랑 얘기도 나누고 기다리겠다고 한 사람인데…”“혜인아, 진짜야.”곽경천이 그런 윤혜인을 안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꿈을 꾸고 있는 윤혜인의 눈에도 눈물이 가득 차올랐고 시간은 예전으로 돌아갔다.아무런 온도 없는 철문에 영안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중간에 놓인 침대에 하얀 천에 가려진 누군가가 누워 있는 게 보였다.윤혜인은 뻣뻣하게 굳은 그 몸을 보자마자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준혁 씨…”윤혜인이 이준혁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했다. 온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한 고통이었다.‘왜… 도대체 왜…’하늘은 늘 그랬듯 무심했고 이준혁에게만 매정했다. 순간 운명의 장난처럼 원지민의 목소리가 윤혜인의 귓가에 다시 맴돌았다.‘넌 준혁이를 죽이려고 태어났어. 두 사람이 만난 것부터 잘못이야. 넌 언제가 준혁이를 죽이고 말 거야…’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원지민의 말은 지독한 저주와도 같았다.“아니야… 안 돼…”윤혜인이 갑자기 대성통곡했다.“다시 돌려내. 하느님, 저 사람 좀 다시 돌려주세요.”“다시 돌려만 준다면 사랑하지 않아도 돼요…”“그러니 제발 돌려만 주세요…”두 사람의 만남이 잘못이라면 만나지 않아도 된다. 영원히 만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일어나. 혜인아. 일어나봐…”꿈결에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애써 눈을 떠보니 어렴풋했던 그림자가 점점 선명해졌다. 곽경천이었다.“혜인아, 깼어?”곽경천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까 윤혜인이 가냘픈 목소리로 아니야, 안 돼라고 외칠 때 곽경천의 마음도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윤혜인은 멍한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다가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오빠, 그 이…”곽경천이 윤혜인의 생각을 읽어내고는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준혁은 아직도 수술 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