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인은 노란색 연결선을 가위로 정확하게 겨누고 주저하지 않고 단번에 잘랐다.“싹둑...”가위가 선을 자르는 소리와 동시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꼭 감았다. 가슴이 마구 뛰며 심장이 곧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겁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폭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성공했다!’기쁜 나머지 하마터면 윤혜인은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도 시간도 많지 않았다.그녀는 다음 폭약 지점으로 가야 했다.호텔에서 구한 도구가 든 가방을 챙기고 윤혜인은 이전에 파악한 경로를 따라 또 다른 폭약 지점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첫 번째 경험 덕분에 이번에는 별다른 고민 없이 가위를 꺼내 들고 연결선을 향해 자르려 했다.하지만 싹둑 소리가 나지 않고 대신 쿵 하는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툭!”윤혜인의 손에서 가위가 떨어졌고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바닥에 엎드리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그 큰 소리에 폭탄이 터진 줄 알았다.하지만 예상했던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고 곧 머리를 살짝 들며 윤혜인이 상황을 확인하려던 순간, 그녀의 관자놀이에 차갑고 검은 총구가 닿았다.윤혜인의 온몸이 굳어버렸다.검은 복장의 그림자 팀원이 그녀를 한번 훑어보고 말했다.“너구나? 우리 주인님이 찾는 그 여자가!”윤혜인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 남자가 말하는 주인님이 에단 찰스를 뜻하는 걸 알았으니 말이다.곧 다시 폭약 쪽을 한번 돌아보던 남자는 욕설을 내뱉었다.폭약의 연결선이 잘려 있었던 것이다.그는 다시 윤혜인을 향해 무섭게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네가 자른 거야?”윤혜인은 고개를 숙여 말없이 있었다. 그러자 남자는 그녀의 턱을 세게 움켜잡았다.“팍!”총의 손잡이가 윤혜인의 입술을 강하게 가격했고 하얀 치아를 붉게 물들인 피가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다.“퉤!”윤혜인은 피를 뱉으며 말했다.“그래. 내가 잘랐어.”남자는 이미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확인하려 했던 것뿐이라 윤혜인은 더 숨길 이유가 없었다.그저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윤혜인은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며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고 다시 전기 충격 판을 그의 손목에 대고 충격을 주었다.손목에 작은 상처가 났고 윤혜인은 그 상처를 노려 지속적으로 전류를 흘려보냈다.전류가 손목을 마비시키기 시작하면서 남자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손을 뒤로 뺐다.“젠장!”남자는 손목을 감싸 쥐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바닥에 웅크렸다.윤혜인은 그 틈을 타서 다리를 뽑아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호텔 복도의 문들이 모두 닫혀 있어 숨을 곳이 없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하지만 곧 뒤에서 타닥타닥 추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가 이미 그녀를 쫓아오고 있었다.“멈춰! 너 도망칠 수 없어! 멈추라고!”그림자 팀원은 손을 다친 상태에서도 끈질기게 윤혜인을 쫓아오며 소리쳤다. 그는 무전기를 들어 상황을 보고했다.“주인님, 여자를 찾았습니다. 지금 7층에서 추격 중입니다!”에단 찰스는 무전기의 보고를 듣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그는 고개를 돌려 피투성이가 된 원지민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미안하군, 원지민 양. 그 여자가 너무 늦게 나타난 탓이지. 어쩔 수 없었어.”원지민은 바닥에 엎드린 채 한없이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가까이서 보면 그녀의 입가가 피투성이가 된 것이 보였다. 그 옆에 버려진 살점은 바로 원지민의 잘린 입이었다.에단 찰스는 실제로 그녀의 입을 도려낸 것이다.절망한 채 원지민은 바닥에 누워 있었다.변명할 시간조차 없이 이 미친놈에게 무참히 당한 것이다.세상에 이런 미친 사람이 존재하다니, 아무 말도 없이 에단 찰스는 원지민에게 이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원지민의 속에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에단 찰스는 원지민이 죽은 듯이 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는 금세 흥미를 잃었다.그의 눈에 원지민은 쓸모없는 실패작에 불과했다.남자에게 버림받고 온갖 악행을 저질렀음에도 그녀는 겨우 평범한 여자인 윤혜인조차 처리하지 못했으니 말이다.에단 찰스는 실크 손수건을 집어 손을 닦고 그의 앞에 튄 피까지 닦
하지만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팔에 전기가 찌릿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모기에게 물린 듯한 감각이었다.고개를 내려다보니 팔에 주사기가 꽂혀 있었고 원지민은 잔인하게 입을 크게 벌리고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할 말을 잃은 에단 찰스는 곧바로 총을 꺼내려 했지만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온몸에 마비가 퍼지기 시작했고 그가 맞은 것은 고분자 마취제였다. 맞은 후 반응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초에 불과했다.“너!!”그는 겨우 한 마디만 내뱉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고분자 마취제가 빠르게 에단 찰스의 신경을 마비시켰기 때문이다.“킥킥킥...”원지민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방금 자신의 입을 도려낸 그 칼을 집어 들었다.그리고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미친 듯이 에단 찰스의 얼굴을 향해 칼을 내리찍기 시작했다.다른 부위는 건드리지 않고 오로지 얼굴만 집중해서 찔렀다.그러자 원래 잘생기고 점잖던 얼굴은 순식간에 핏빛 벌집으로 변했다.“죽어, 죽어, 죽어!!!”원지민은 이렇게 소리치며 칼을 휘둘렀다.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그토록 악명을 떨치던 북안도의 지배자, 에단 찰스가 결국 한 여자의 손에 죽게 될 줄을.더군다나 그가 하찮게 여기던 원지민에게 말이다.원지민은 더 이상 에단 찰스의 원래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되자 비로소 칼을 내던졌다.그리고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며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하더니 기괴한 웃음과 함께 중얼거렸다.“이제야 보기 좋네. 내가 얼마나 균일하게 찔렀는지 봐. 네가 한 것보다 훨씬 낫지... 다음에는 더 잘해 볼게...”원지민은 완전히 미쳐버린 상태였다.그녀는 땅에 엎드려 있던 작은 권총을 집어 들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잘 숨어. 내가 너 찾으러 갈 거니까... 킥킥킥...”그녀의 끔찍한 웃음소리가 호텔 복도를 가득 메웠다.그와 동시에 다른 쪽에서 윤혜인은 감히 멈출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전력으로 달렸다.계단을 이용하는 것은
윤혜인은 너무나 두려웠고 너무나 무력했다.하지만 아무리 무서워도 그녀는 계속해서 강한 척할 수밖에 없었다.그 순간, 이준혁을 다시 보자마자 그동안 애써 강한 척했던 윤혜인의 모습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그녀의 얼굴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했고 그 모습은 처참했지만 동시에 한없이 연약해 보였다.가슴이 아파 견딜 수 없었던 이준혁은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혜인아...”“나 너무 화났었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당신...”윤혜인은 원망과 분노로 가득 찬 말을 쏟아내려 했지만 이준혁의 다리가 피에 젖어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서 있는 모습이 다리를 절고 있었고 바지 무릎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당신 괜찮아요? 다리가...”윤혜인은 이준혁의 팔을 힘껏 밀어내고는 급히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고였다.“이거 찰스가 그런 거예요?”“아무것도 아니야.”이준혁은 자신의 다리에 신경 쓰지 말라며 그녀를 일으켰다. 그리고 다급히 물었다.“너는? 어디 다친 곳은 없어?”냉랭한 기색은 사라지고 전과 같이 걱정이 담겨있는 따뜻한 눈빛이었다. 그 진심 어린 배려는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따뜻한 이준혁의 체온을 느끼며 그동안 불안했던 윤혜인의 마음은 서서히 안정되기 시작했다.비록 두 사람 사이에 그동안 수많은 갈등과 오해가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생사가 오가는 이 상황에서는 그런 것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윤혜인은 막 말을 꺼내려는 순간, 갑작스러운 ‘찰칵' 소리와 함께 총알이 장전되는 소리가 들렸다.두 사람은 동시에 굳어버렸다.뒤에서 그림자 팀원이 그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손들어! 움직이지 마!”윤혜인은 등 뒤가 얼어붙는 것처럼 차가워졌고 이준혁도 손을 들어 올렸다.그림자 팀원은 윤혜인이 아까 자신을 기습했던 일을 떠올리며 크게 분노했다. 그는 그녀에게 교훈을 주려는 듯 총구를 윤혜인에게 돌리며 말했다.“그 여자 이리로 보내.”“안 돼!”이준혁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거절했다.그
그 외침에 그림자 팀원은 알아들었다.손도 멈췄지만 여전히 반항적인 눈빛으로 그는 윤혜인을 바라보며 비웃듯 말했다.“그 여린 두부 같은 손으로 총을 쏘겠다고?”말을 하며 그는 오만하게 손가락으로 이준혁의 부서진 무릎을 꾹 찔렀다.그 소리만으로도 고통이 느껴졌지만 이준혁은 이를 악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총을 쥔 윤혜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사실 그녀는 총을 쏘는 법을 배운 적이 있다.해외에 있을 때 곽진명이 자기방어 기술을 가르치며 여러 기술을 전수했고 그중엔 사격도 포함되었다.하지만 현실에서는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게다가 한국에 돌아온 후, 총기 관리가 엄격해서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면 일반인은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그림자 팀원의 조롱에 윤혜인은 빠르게 총을 장전하고 안전장치를 풀며 그림자 팀원을 겨누었다.훈련된 사람처럼 그 일련의 동작들은 매우 능숙했다.그림자 팀원도 잠시 당황해 움직이지 못했다.그의 유일한 총도 이미 윤혜인이 주워들어 자신을 겨누고 있었다.윤혜인은 미세한 오차도 없이 그를 겨눈 채 말했다.“손들어. 뒤로 물러나.”그림자 팀원이 한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시선을 피하는 순간, 그의 의도가 이준혁의 눈에 보였다.그는 연막탄을 사용할 생각이었다.“퍽!”이준혁이 무릎을 들어 올리며 정확한 타이밍에 주먹을 날려 그림자 팀원을 바닥에 쓰러뜨렸다.그림자 팀원은 턱을 감싸며 반격하려 했다. 그의 눈에 이준혁은 이미 다리를 절고 있는 폐인처럼 보였기에 그런 폐인이 자신을 이길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다.하지만 그림자 팀원은 더 공격하지 못한 채 이준혁의 팔에 머리가 감겨 강하게 조여졌고 질식으로 인해 곧 기절하고 말았다.그가 완전히 기절한 것을 확인한 후에야 이준혁은 벽을 짚고 천천히 일어섰다.그런데 뒤쪽이 갑자기 고요해졌다. 방금까지 긴장하고 있던 윤혜인이 마치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연기가 서서히 사라지자 윤혜인이 앞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원지민이 눈을 깜빡이며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왜 나를 안 쳐다봐? 내가 못생겨서 그런 거야?”그녀는 이어서 조롱하듯 말했다.“아니면, 네가 좋아하는 여자에게도 한두 번 칼질해줄까? 그러면 나처럼 흉하게 변하겠지, 끄끅끄끅...”원지민은 마치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듯 손뼉을 치며 다시 끅끅 웃음을 터뜨렸다.이준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원지민, 네 상처는 에단 찰스가 만든 거야. 혜인이는 아무 관련이 없어. 지금이라도 혜인이를 풀어줘!”“풀어주라니. 무슨 개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그러자 이준혁이 날카롭게 말했다.“여긴 한국이야. 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람을 해치면 감옥에 갈 수밖에 없어.”윤혜인은 원래 긴장하고 있었지만 이준혁의 말을 듣고 나서 마음속에 작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이준혁은 원지민을 유도하고 있는 것 같았다.그의 그런 태도를 보고 나니 윤혜인은 조금 안정을 되찾고 조용히 서 있었다.그러나 윤혜인의 뜻대로 놔둘 리 없었던 원지민은 윤혜인의 머리카락을 꽉 움켜쥐며 세게 잡아당겼다.“아악!”윤혜인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고 원지민이 웃으며 말했다.“나 에단 찰스를 죽인 사람이야. 내가 감옥 따위를 무서워할 것 같아?”“네가 에단 찰스를 죽였다고?”이준혁은 깜짝 놀라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정말 네가 에단 찰스를 죽였어?” 이 말에는 유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지만 원지민은 이미 정신이 나가 있는 상태라 알아차리지 못했다.“그래, 내가 죽였어. 그 자식의 얼굴을 마구 찔러서 무려 여든 번 넘게! 그 자식이 내 얼굴을 망치게 했으니까. 개도 먹지 않을 정도로 만들어서 길거리에 던져버렸어!”윤혜인은 원지민이 이렇게까지 미친 사람일 줄은 몰랐다.더욱이 에단 찰스를 여든 번이나 찔러 죽였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에단 찰스는 굉장한 인물이 아닌가? 그런데 원지민에게 이렇게 쉽게 죽임을 당하다니, 믿기 힘들었다.비록 그녀의 목 뒤에 총이 겨눠져 있었지만 이준혁의 안심시키는 눈빛을 보니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다.원
이준혁은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다정하게 말했다.“바보야, 내가 믿으라고 했잖아.”윤혜인은 잠시 멍해졌다.이준혁의 목소리는 비록 힘이 빠져 보였지만 총에 맞은 사람처럼 들리진 않았다. 게다가 총알에 맞아야 할 그의 몸에도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그녀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다.원지민 또한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확인하려는 듯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준혁 씨!”윤혜인은 남자를 끌어내리려 했으나 그는 힘겹게 한 다리로 일어서며 원지민의 총구를 마주했다.“안 돼!!!”윤혜인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원지민은 미친 듯이 이준혁의 얼굴을 향해 연거푸 방아쇠를 당겼다.“찰칵, 찰칵, 찰칵...”빈 탄피가 튀어나오는 소리에 원지민은 멍해졌다.‘이럴 리가 없는데. 왜 총이 이렇게 되지?’결국 총이 고장 나 아무 소리도 나지 않자 원지민은 분노가 폭발한 듯 총을 바닥에 내던졌다. 온몸이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이준혁, 이거 네 짓이지, 그렇지!”그녀는 격분하여 빠른 말투로 외쳤고 입가에 난 흉터가 찢어지면서 괴로운듯한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이 더없이 끔찍하고 혐오스러웠다.이준혁은 차분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든 총은 내가 바꿔 놓은 거야.”찰스가 그의 무릎뼈를 부러뜨리던 순간, 이준혁은 기회를 틈타 그의 총을 바꿔치기했다.다만 윤혜인을 구하러 달려오다가 서두른 나머지 자신이 숨겨둔 총을 챙기는 것을 깜빡했던 것이다.그래서 원지민이 들고 있던 총은 사실 이준혁이 바꾼 총이었다.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이준혁은 윤혜인을 몸으로 감싸 보호했다. 그의 몸 아래에는 방탄조끼가 있었다.에단 찰스를 잡기 위해 이준혁은 만반의 준비를 해 두었다.겉으로 보기엔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계획은 치밀했다.결국 원지민이 에단 찰스를 죽이지 않았더라도 그는 체포되었을 것이다.하지만 에단 찰스의 성격상 생포되기를 거부하고 광기로 맞섰을 것이고 그와 특수부대의 충돌은 엄청난 혼란을 불러왔을 것이다.그러면 특수부대도 피해를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은 두 사람이 같이 있고 나머지 날들은 나랑 같이 있자. 어때?”원지민이 터무니없는 제안을 내뱉자 이준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너 미쳤어? 난 너 지키려고 그런 적 없거든?”하지만 원지민은 꿈속에 빠져나오기 싫은 듯 억지를 부리며 말했다.“아니, 맞아. 준혁아, 이제 거짓말 그만해. 나도 알아. 네가 속으로는 날 좋아하고 있다는 거. 우리 오랫동안 함께 일하고 같이 살았잖아...”점점 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원지민은 그동안 이준혁이 한 적 없는 일들마저 스스로 상상해내고 있었다.그 모든 말이 다 허구였다.이준혁은 차갑게 끊어냈다.“원지민, 널 에단 찰스에게 남길 때 난 이미 두 가지 결말을 상상했어. 하나는 네가 그 자식에게 죽는 거고 다른 하나는 네가 그 자식을 죽이는 대신 찰스 가문이 널 고문하는 거였지.”“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 없어...”원지민은 자신이 꾸던 아름다운 꿈이 이준혁의 말에 산산조각 나는 걸 믿을 수 없었다.그녀는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중얼거리며 스스로에게 말했다.“넌 날 사랑해... 넌 나한테 마음이 있어... 넌 날 속이고 있어...”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을 세뇌하듯 속삭이며 무너진 꿈을 다시 쌓으려 했다.“날 용서한다고? 네가 무슨 자격으로 용서해?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하고 죄를 지은 사람은 너야. 대체 누가 누구를 용서하겠다는 건지... 네가 한 짓은 이 생에서도 다음 생에서도 그다음 생에서도 용서받을 가치가 없어.”이준혁의 얇고 매력적인 입술에서 나온 말은 차가웠고 그의 표정은 한없이 냉혹했다.“나는 네가 에단 찰스를 이기길 바랐어. 그게 더 통쾌할 것 같았으니까.”모두가 알았다. 찰스 가문을 건드리는 건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찰스 가문 사람들 모두가 미친 건 아니었지만 에단 찰스는 예외였다.그의 악명은 널리 퍼져 있었다.족장의 총애를 받으며 곳곳에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고 다녔는지라 에단 찰스의 행동을 못마땅해하는 가문 사람들도 많았다.에단
육경한이 그래도 대꾸하지 않자 육연주는 지켜보는 사람이 많은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외쳐댔다.“삼촌, 나 성폭행당했어요. 흑흑흑...”이말에 현장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육경한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육연주를 바라보며 물었다.“너 지금 뭐라고 했어?”길지 않은 말이었지만 육연주는 면죄부라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육경한의 관심만 남아있다면 다시 저 안으로 들어갈 일은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육경한에게는 살아있는 혈육이 별로 많지 않았기에 육연주와 이지애가 제일 가까운 가족이었다. 게다가 육경한은 육연주가 커가는 걸 지켜본 사람이었기에 그 정은 쉽게 무시할 수가 없었다.“나도 몰라요... 방씨 가문인지 서씨 가문인지 모르겠어요. 내 눈을 가리고 골목으로 끌고 가서 바닥에 누르고는... 반항할 새도 없이...”육연주는 이미지를 완전히 내려놓고 마구 울어대기 시작했다. 설명을 듣고 나니 꼴이 왜 그 모양인지, 괴롭힘당한 흔적은 뭔지 알 것 같았다.경비원들은 이미 육연주를 잡고 경찰이 오면 넘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고의로 해치려고 한 건 엄연한 죄였기에 그대로 놓아줄 수는 없었다.육경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육연주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고민하는 듯 보였다.하지만 소원은 육연주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상태도 그렇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는데 이런 얘기를 꺼낸 걸 봐서는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이미지가 실추될 수도 있는 일을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말할 여자는 이 세상에 없었지만 그중 어딘가에 책임을 회피하려는 요소도 들어있는 것 같았다.“삼촌, 삼촌, 진짜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내가 너무 화가 나서 잠깐 정신을 잃은 것 같아요...”육경한이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렸다. 육연주의 사정이 딱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말했다.“네가 빌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야.”비록 소원이 다치지 않게 육경한이 막아주긴 했지만 육연주가 정말 해치려든 사람은 소원이었기에 육경한이 용서한다고 해서 용서할 수 있
육연주도 깜짝 놀란 상태라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경비원에 의해 바닥에 제압되고 나서야 훌쩍훌쩍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삼촌, 삼촌... 나 좀 살려줘요... 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삼촌...”얼굴이 굳어진 육경한이 바닥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남은 힘으로 소원을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너 괜찮아? 황산에 맞은 건 아니지?”육경한이 아래위로 훑으며 소원의 몸에 망가진 부분이 없는지 살폈다. 소원은 육경한에게 고려 백자 같은 존재였기에 조금의 흠집도 용납할 수가 없었다.아직 놀라움을 떨쳐내지 못한 소원이 멍한 표정으로 말했다.“나 괜찮아...”“정말 괜찮은 거 맞아?”육경한은 그래도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다시 한번 되물었고 소원이 고개를 저어서야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보기 드물게 중얼거렸다.“너만 괜찮으면 됐어. 그러면 된 거야.”육연주가 아직 뒤에서 울부짖고 있었다.“삼촌, 이 사람들 좀 어떻게 해줘요... 너무 아파요. 빨리 풀어주라고 해요.”육경한이 고개를 돌렸다. 지금까지 끔찍이 아껴왔던 조카였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육연주는 이제 육경한이 기억하던 순진하고 해맑은 여자아이가 아니었다.“연주야. 너무 실망이다.”육경한이 침통한 심정으로 말했다. 소원을 해치려 드는 사람이 가족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지금 소원에게 손대면 소원뿐만이 아니라 소원 뱃속의 아이까지 위험해지게 된다. 아까와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조금만 엇나가도 평생 후회했을 것이다. 그러니 가족 간의 정이라 해도 더 봐줄 수가 없었다.육연주는 살짝 무섭긴 했지만 지금까지 줄곧 자기를 아껴줬던 육경한이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울기만 하면 육경한의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육연주가 무슨 사고를 치든 나서서 뒤처리를 해주던 사람이 바로 육경한이었으니 이다.육연주가 이렇게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변한 것도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삼촌... 삼촌... 나 일부러 그런 거 아니
소원이 비웃으며 물었다.“가질 수 없으면 부숴버리는 게 사랑이라면 그 사랑 참 위대하네요.”“현재 씨는 원래 내 꺼였어요. 소개팅한 그날부터 나는 사랑에 빠졌다고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왜 나와 소개팅했겠어요?”육연주가 늘어놓는 말은 정말 갈수록 가관이라 소원도 더는 들어줄 수가 없었다. 행색이 다소 이상해 보이는 육연주를 정신과에 데려가는 게 어떻겠냐고 육경한에게 제안해 볼 참이었다. 얼핏 보기엔 큰 자극을 받아 정신이 약간 이상해진 것 같았다.육연주는 아직도 씩씩대며 중얼거렸다.“다 너 때문이야. 빌어먹을 년. 여우 같은 년. 우리 삼촌을 꼬드긴 것도 모자라 내 남편까지 꼬드겼잖아.”소원은 새로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욕을 들으며 어이가 없었다. 아까 이지애도 똑같은 욕을 했고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생각이 막무가내라 입씨름을 벌여봤자 전혀 의미가 없었다.더는 실랑이를 벌이기 싫었던 소원이 자리를 떠나려는데 육연주가 갑자기 쫓아오더니 일그러진 표정으로 병사리를 들고 욕설을 퍼부었다.“죽어. 네가 없어지면 현재 씨도 나 바라봐주겠지. 그래야 현재 씨가 나 영원히 사랑해 줄 거야.”마침 차를 끌고 온 주석훈이 이를 보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소원 씨, 조심해요.”차로 박을 수도 없는 일이라 일단 먼저 세우고 차에서 내려 그쪽으로 뛰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육경한의 보디가드도 이지애를 끌어내느라 자리를 비운 상태였기에 소원 옆에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소원은 육연주의 손에 들린 게 뭔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었지만 좋은 물건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뚜껑이 열리자 코를 찌르는 냄새가 공기 속으로 퍼졌다.눈살을 찌푸린 소원은 속에 든 것이 황산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미쳐버린 육연주가 소원의 얼굴을 망가트리려 하고 있었다.소원이 자기도 모르게 한 손으로 얼굴을 막으며 다른 손으로 육연주를 밀어내려 했지만 육연주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와 그럴 수가 없었다. 피할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육연주가
두 사람의 관계는 이혼한 거나 다름없지만 이혼 신청은 아이가 태어난 다음에 보충한다고 보는 게 맞았다.게다가 소원은 육경한이 했던 말을 도로 무를까봐 그러는지 변호사까지 대동했고 이혼 협의를 공증까지 하겠다고 했다. 소원도 쩍하면 제멋대로 약속을 어기는 육경한이 너무 무서웠지만 그래도 아이를 남기는 건 육경한의 제안뿐만이 아니라 뱃속에 아이가 생기면서 포지션이 다시 엄마로 변하는 바람에 마음이 흔들린 것이다.처음에는 따듯하게 반겨주지 못했지만 아이의 형상이 소원의 마음속에서 점점 입체감 있게 만들어지고 있었다.잘못은 어른이 했고 아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기에 소원도 아이의 살 권리를 함부로 뺏을 수는 없었다.육경한이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을 비웃듯 웃었다. 이런 불평등 조약에도 속수무책인 건 그가 이기적이게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걱정하지 마. 이 아이가 태어나면 너 자유롭게 해줄게.”육경한이 사인하며 말했다. 이젠 서로에게서 자유로워질 때가 된 것이다. 소원과 아이를 보호하며 여생을 보내는 것도 좋은 선택인 것 같았다. 이제 정말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렇게 생각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다른 일 없으면 이쯤 하자."소원이 이렇게 말하며 주지훈과 자리를 떠났고 육경한은 멀어지는 두 사람을 뒤에서 지켜봤다.밖으로 나온 두 사람이 차를 타고 떠나려는데 갑자기 앞에 육연주가 나타났다.“소원.”육연주가 소원을 불러세웠다. 옷은 어딘가 헝클어져 있었고 표정도 약간 이상했는데 더 무서운 건 몸에 괴롭힘과 학대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이었다.소원은 육연주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몰라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서서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내 인생을 망쳤어.”누가 모녀 아니랄까 봐 하는 말도 이지애와 똑같아 소원은 절로 웃음이 났다.“당신들이 내 인생을 망쳤다는 생각은 안 해요? 잘못을 저질러서 벌받는 건데 왜 자꾸만 다른 사람이 당신 인생을 망쳤다고 하는 거예요?”소원은 이 사람들의 뇌 회
방씨 가문에서 지키려 한다 해도 방민아의 인생은 별로 희망이 없었다.육연주는 적게 연루되기도 했고 육경한이 손쓴 덕분에 구치소에 한 달 구금되었다가 나왔다. 육경한이 육연주에게 변호사를 찾아줬지만 육연주 모녀는 이를 소원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 한사코 거절하면서 일부러 육연주를 구치소에 들여보냈고 육경한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하지만 육연주 모녀가 모르는 게 있었다. 받은 대로 돌려주는 게 원칙인 방씨 가문은 방민아가 이 지경까지 된 게 다 육연주 탓이라고 생각한 이상 복수를 준비할 것이고 그 후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그다음은 서씨 가문이었다. 육연주가 서씨 가문에서 보낸 시간은 그리 오라지 않았지만 서현재의 사랑을 받지 못해 사람이 점점 이상해진 데다 원래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재벌 집 아가씨라 서씨 가문에 척을 진 사람이 많았다.지금의 서씨 가문은 몰락하게 되었고 서현재가 암 덩어리 같은 사람들을 서씨 가문에서 몰아내긴 했지만 줄곧 호의호식하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으니 그 어떤 미친 생각을 해도 놀라울 건 없었다.이런 상황에서 육연주가 계속 서울에서 나댄다면 앙심을 품은 서씨 가문 사람들이 기회를 노리고 복수해 올 수도 있기에 아예 이지애와 함께 외국으로 나가 피신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었지만 모녀는 육경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소원에게 홀려 인사불성이라고만 생각했다.이지애는 끌려가면서 육경한에게 원망을 퍼붓기도 했다.“경한아, 네가 어떻게 우리한테 이래? 우리가 잘해준 거 다 잊은 거야? 여자 하나 때문에 피도 눈물도 없이 우리를 내치겠다고? 가족인데 어떻게 그래?”사실 잘해줬다고 할 것도 없었다. 상대편에 서서 손가락질하지 않고 돈 몇십만 원 쥐여준 게 전부였다. 이지애도 그때는 살만했기에 양심이라는 게 남아있었고 조금의 ‘선심’을 베풀었지만 육경한은 갚아야 할 돈보다 천 배, 만 배는 더 많은 돈으로 보답했다.다만 이지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을 빚쟁이 대하듯 대했다. 돈이 많으니 이걸로는
“경한아... 억울해서 죽을 것 같구나. 쟤가 어떻게 했는지 아니? 날 욕하고 때리고...”이지애는 모든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소원은 어이가 없는 상황에 헛웃음만 나왔고 한편으로는 육경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육경한은 이 일에 엮이고 싶은 생각조차 없는지 차가운 표정으로 옆에 서 있는 경호원을 바라봤다.“가만히 서서 뭐 하는 거야? 빨리 데려가.”육경한의 싸늘한 눈빛을 마주한 경호원들은 두피가 저릿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지금 바로 데려가겠습니다.”이지애는 육경한이 자신의 편을 들 거라고 생각해 재빨리 다각 그의 손목을 잡았다.“역시 경한이가 최고야. 우린 가족이라는 걸 잊으면 안 돼. 저 여자가 우리 남매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거야.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 연주가 안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니? 살도 많이 빠졌어. 삼촌이 무시한다며 얼마나 울었는지...”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지애는 뭔가 잘못됐음을 알아챘다.‘경호원이 왜 나한테 오지?’‘저 천박한 계집애를 끌어내지 않고 뭐 하는 거야.’“잠깐만... 지금 착각하는 모양인데 경한이는 저 여자를 끌어내라고 한 거야. 옆에 있는 변호사까지 묶어서 밖으로 쫓아내.”경호원들은 이지애처럼 눈치가 없고 멍청하지 않았다.아무리 생각해 봐도 육경한이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명성을 더럽히는 이지애였다.‘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빽이 있다며 대표님과 미우 그룹을 언급하는지...’‘대표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인데, 이 사람은 도대체 왜 이런 거지?’경호원들은 이지애의 헛소리를 무시하고 그녀를 끌고 나갔다.현실 부정 중인 이지애는 육경한의 팔을 꽉 잡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경한아, 말 좀 해봐. 저 여자 쫓아내려고 했잖아. 나는 네 누나야. 어떻게 가족을 버리고 외부인 편을 들 수 있어? 경한아...”이지애는 눈물을 쏟았다.“말 좀 해봐.”“누나.”육경한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진지하게 말했다.“여러 번 말했잖아요. 소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대뜸 욕을 바가지째로 먹었다.그럼에도 이지애는 좀처럼 멈추지 못했다.“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X신들. 멍청하기는.”방금까지 동정심을 느끼던 여자에게 심한 욕을 먹었으니 다들 어이가 없었고 이러쿵저러쿵 수군거리는 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그 엄마에 그 딸이라는 말을 지껄일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저렇게 추잡스러운 엄마 밑에서 자란 딸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그러니까요. 좋은 사람이었다면 구치소에 수감되었겠어요?”이지애는 여론이 이렇게 빨리 바뀔 줄 몰랐는지 더욱 흥분했다.“너희들이 뭘 알아. 이 여자가 내 딸을 해쳤고 내 딸은 피해자야. 이 여자가 헛소리를 하지 않았더라면 수감될 일도 없었어.”사람들은 더 이상 이지애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가 소리 지르며 욕하는 모습은 정말 품위가 없어 보였다.“그쪽이 돈 많고 대단한 사람이라면서요? 딸이 억울하게 누명을 썼으면 당연히 빼냈겠죠.”이때 한 아주머니가 일침을 놓았다.“맞는 말이에요.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잡았겠어요? 다 이유가 있는 거지.”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맞장구를 쳤다.“이유 없이 사람을 잡았다면 돈도 없고 인맥도 없는 우리가 일 순위이겠죠.”“됐어요. 됐어요. 이만하고 다들 들어갑시다. 구경났어요?”아파트 단지 관리자가 달려와 구경 중인 사람들을 돌려보냈다.그 시각.육경한은 고위급 회의에 참석 중이었고 황진수는 전화를 받고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육경한은 해외의 유명 대기업과 협상하는 회의에 참석했다. 중요한 회의인 만큼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하지만 소원에 관한 일은 한 글자도 빠짐없이 보고하라는 명령을 받았기에 황진수는 몇초간 망설이다가 결국 회의실로 들어갔다.사람들의 의아한 시선을 받으며 그는 육경한에게 다가가 보고 했다.그러자 육경한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더니 옆에 있던 황진수를 회의석으로 끌어당겼다.“네가 해.”‘지금 나한테 이 중요한 회의를 떠맡기고 간 거야? 내가 이런 걸 할
소원은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허리를 짚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가 그녀를 부축했다.“소원 씨, 괜찮아요?”말을 건넨 사람은 주석훈이었다.오늘 아침 두 사람은 합의 사항을 만들기 위해 만나기로 약속했다.그러다가 미친 사람처럼 소원에게 달려드는 이지애를 목격했고 소원이 중심을 못 잡고 뒤로 넘어지려던 찰나에 타이밍 좋게 나타나서 부축했다.옆에서 발악하던 이지애는 어디선가 나타난 경호원에게 제압되었다.“너 누구야? 감히 날 막아?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경호원에게 꽉 붙잡힌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앞으로 나가려는 모습은 정말 우스꽝스럽다.이지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당장 놔. 이거 놓으란 말이야. 내가 누군지 알아? 미우 그룹 대표가 내 동생이야.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다들 죽고 싶어서 환장하는구나. 내 동생이 오면 너희는 하나도 빠짐없이 서울에서 쫓겨날 거야.” 이지애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소리쳤다.반응을 보니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이 육경한이 보낸 사람이라는 걸 모르는 눈치다.경호원들은 육경한과의 관계를 듣고 쉽게 손을 쓰지 못했다. 그들의 임무는 소원을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기에 이지애가 해치지 못하게 손을 묶어두었다.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이지애와 소원이 다투고 있을 때 곧바로 육경한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물었다.이지애는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녀는 소원을 부축하는 주석훈을 보며 막말을 퍼부었다.“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내 동생이랑 헤어진 지 며칠 됐다고 또 다른 남자를 만나? 너는 남자를 꼬시는 게 취미야?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하여튼 개 버릇 남 못 준다니까.”이지애의 말은 듣기 굉장히 거북했고 소원은 방금 한 대만 때리고 멈춘 자신을 원망했다.그 시각 주석훈은 단호한 표정으로 이지애를 바라봤다.“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것도 처벌 대상입니다. 제 의뢰인이 내연녀라는 증거가 있나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일방적인 모함에 속하고 법에 의거하여 충분히 고소할 수 있
이지애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생트집을 잡았다.그러나 사건의 경과를 모르는 동네 사람들은 무작정 소원을 내연녀라고 생각했다.하필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수다를 떠는 시간이라 하나둘씩 밖으로 나와 수군거리기 시작하더니 소원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이를 본 이지애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오늘 기필코 소원을 짓밟으리라 다짐했다.그녀는 계속하여 소리쳤다.“빈말이 아니라 여러분은 남편 간수 잘해요. 한동네 살다가는 이 여자한테 홀랑 넘어갈 수도 있다니까요?”소원은 분노로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말조심하세요. 계속 이런 허위 사실을 퍼뜨리면 고소할 겁니다.”소원이 경찰에게 신고하려고 핸드폰을 꺼내자 이지애는 단번에 핸드폰을 쳐냈다. 소원을 모욕하려고 찾아온 만큼 절대 경찰에 신고하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핸드폰이 쿵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너무 화가 났던 소원은 맞서 싸우려고 했지만 그 타이밍에 이지애가 손을 들어 그녀를 밀었다.계단에 서 있던 소원은 이지애가 손을 뻗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서며 허리를 짚었다.그러고선 자신의 본능적인 행동에 깜짝 놀랐다,‘내가 왜... 이 아이를 신경 쓰는 거지...’그녀의 몸은 이미 아이를 지켜야 한다고 스스로 결정한 것 같다.비록 소원은 결정을 내린 상태가 아니지만 본능이 이렇게 행동하게끔 그녀를 이끌었다.이런 제스처를 취하는 건 타고난 모성애일까?이지애는 죄책감을 느낀 소원이 겁을 먹고 그런 행동을 했다고 착각했다.아니나 다를까 더욱 뻔뻔하고 오만한 태도로 욕설을 퍼부었다.“다들 봤죠? 겁먹었잖아요. 잘못한 게 있으니까 죄책감을 느끼는 거예요. 끝까지 아니라고 잡아뗄 수 있겠어요?”“이 여우 같은 계집애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세요. 남자에 환장한 X이에요. 천박한 것.”주변 사람들은 이지애의 말을 듣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우리 동네에 이런 여자가 살고 있었다니. 정말 몰랐네요.”“이래서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 거야. 저 예쁜 얼굴로 이런 짓을 할 줄 누가 알았겠어? 남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