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진우는 부하에게 윤혜인의 영상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무심히 한 번 본 뒤 그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영상 속 생동감 넘치는 소녀는 사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그 젊고 아름다운 얼굴은 윤아름과 비교해도 청출어람이라 할 만했다.아름다움 외에도 윤혜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움직일 때 느껴지는 익숙한 감정은 마치 전생의 인연처럼 원진우의 영혼을 관통했다.그의 차가운 마음이 한순간에 부드러워졌다.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윤아름과 다른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란 사실을 생각하자 그는 이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었다.그때, 뒤에서 들리는 윤아름의 발소리가 그를 깨웠다.원진우가 영상을 채 끄지도 못했는데 윤아름이 물었다.“진우 씨, 이 아이는 누구야?”윤아름이 이렇게 묻자 원진우는 급하게 영상을 끄기는커녕 되레 윤아름 앞에 보여주며 말했다.“내 친구 딸이야.”그러자 윤아름은 놀란 듯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진우 씨 친구 딸이 벌써 이렇게 컸어?”아쉬움과 감탄을 담은듯한 그녀의 눈빛은 영상 속 소녀에게 머물러 있었다.“정말 예쁘네. 저 눈동자는 마치 달을 담은 것 같아. 정말 아름다워.”원진우는 윤아름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폈지만 특별한 반응을 읽을 수 없었다.윤아름이 한 말은 그저 미에 대한 칭찬일 뿐이었다.그러자 원진우는 핸드폰을 옆으로 던지며 무심하게 웃었다.“이 눈이 마음에 들어?”“응. 정말 예뻐.”순간, 원진우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무릎 위로 끌어올렸다.“그렇게 마음에 들면 이 눈을 파서 장난감으로 줄까?”“뭐... 뭐라고?”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윤아름은 눈을 크게 뜨며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원진우는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오히려 더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소름이 돋은 윤아름의 팔을 보고 원진우는 그녀가 진심으로 겁먹었다는 것을 눈치챘다.하여 더 이상 놀리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놀랐나 보네. 그냥 농담한 거야.”그러더니 윤아름의 턱을 손가락으로 살짝 들어 올려 가볍게 입을
윤아름은 깜짝 놀라며 떨리는 손으로 옷깃을 움켜잡았다.“진우 씨, 제발... 우희, 우희 선생님께서 금방 올 거야...”하지만 원진우는 셔츠를 풀어헤쳐 바닥에 던졌고 곧 굴곡이 선명한 복근이 드러났다. 그 모습은 매우 강인해 보였다.“괜찮아.”그는 몸을 숙이며 날씬한 팔로 윤아름의 다리를 들어 올리고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시간 충분해. 여기서 먼저 한번 해.”“...”주치의 진우희는 거실 밖에서 이미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원래 약속된 시간은 오후 3시였지만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방 문은 열리지 않았다.희미하게 들려오는 여자의 낮은 신음 소리와 남자의 낮은 유혹의 목소리가 방 밖까지 퍼져 나왔다.그 은밀한 소리에 진우희의 귀 끝이 붉어졌다.소파 근처에는 남자의 셔츠와 벨트 그리고 여자의 실크 잠옷이 모두 구겨진 채 바닥에 던져져 있었다.그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진우희 역시 남자친구가 있었던 적이 있었으니 지금 방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하지만 원진우처럼 차가운 사람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예상 밖이었다.“잘했어, 자기야, 한 번 더 하자, 응?”그렇게 한 시간이 더 지나서야 방 문이 천천히 열렸다.원진우는 머리를 갓 감은 듯 아직 젖은 상태로 나와 진우희를 보며 무심하게 말했다.“침 치료 끝나면 저 사람 밑도 한 번 봐줘. 자꾸 아프다고 하네.”진우희는 얼굴이 붉어졌다. 원진우는 정말 그녀를 외부인처럼 대하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원진우에게 길을 내어주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이미 정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안에는 아직 은밀한 향이 사라지지 않았다.부드러운 침대 중앙에는 아름다운 여자가 등을 보이며 누워 있었고 완벽한 곡선의 등이 드러나 있었다.그 등에는 손으로 집어낸 듯한 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진우희는 그 자국들이 심각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괜찮은 수준이라는 걸 알았다. 금욕을 오래 한 남자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이런 상태의 윤아
윤아름은 통증을 잊기 위해 진우희와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두 사람의 대화 방식은 아주 특별했다.서로 종이에 한 마디씩 적는 방식이었고 그 종이는 물에 닿으면 바로 불타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이것은 원진우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윤아름이 고안한 방법이었다.윤아름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선생님, 어쩌다 원씨 가문의 주치의를 하게 됐어요?]그러자 진우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인 채 글을 적었다.[제가 오지 않으면 아버지가 오셔야 해서요. 아버지는 나이가 많으셔서 실수하실까 봐요.]진우희의 아버지는 북안도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의술을 배웠고 어머니는 한국 사람이었다.아버지가 한국으로 의학 공부를 하러 갔을 때 어머니와 만나게 되어 그녀가 태어나게 된 것이다.결혼 후, 아버지는 아내와 진우희를 데리고 자신의 고향인 북안도로 돌아왔다.이곳은 정치적으로 복잡한 상황이었고 각 재벌 가문이 자신들의 영역을 나누고 있었다.조금이라도 잘못된 편에 서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었다.하지만 서로를 사랑하는 그들에게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이었다.진우희의 아버지는 무법천지인 북안도에 지쳐 할아버지를 봉양한 후 한국으로 돌아가 살기로 결심했다.한국은 북안도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살기 좋은 천국 같은 곳이었다.얼마나 늦은 시간에 나가더라도 총알에 맞을 걱정이 없으니 말이다.하지만 원씨 가문의 전 주치의가 의문사한 후, 진우희의 아버지는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겸비한 의사로 추천받아 원진우의 호출을 받게 되었다.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진우희의 아버지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미리 유언 같은 말을 남기기까지 했다.진우희는 아버지의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오랫동안 먹먹했다.그래서 일찍 아침부터 용기를 내어 원진우의 저택으로 가서 스스로를 추천하게 되었다.그녀는 뛰어난 침술 솜씨로 원진우를 만족시켰고 그곳에 남는 것이 확정된 후에는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부모는 화를 내며 진우희를 한국으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진우희는 도망자가 되
윤아름은 방금 겪은 굴욕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다시 원진우와 마주친 후부터 그녀의 악몽은 또 시작됐다.처음 그가 자신을 서울의 별장에 가둔 후, 악몽 같은 반달이 지나가고서야 윤아름은 원진우가 방심한 틈을 타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그리고 그 탈출은 무려 5년 동안이나 이어졌다.그때 윤씨 가문은 위태로운 시기를 겪고 있었고 곽씨 가문에게도 더 이상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윤아름은 홀로 한적한 어촌에 몸을 숨겼고 그곳에서 아이까지 낳았다.하지만 원진우의 부하들이 그녀를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당황한 나머지 윤아름은 어촌의 착한 이웃에게 아이를 믿을 만한 사람에게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그 후 윤아름은 다시 원진우에게 붙잡혀 북안도의 법 없는 원시적인 부락으로 끌려가게 되었다.그가 윤아름을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는 그녀를 더 완벽하게 가두고 한국과의 모든 연결을 끊기 위해서였다.처음에 윤아름은 온 힘을 다해 탈출하려 했고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포기하지 않았다.하지만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녀의 세계는 무너져버렸다.사람들은 윤아름이 발코니에서 실수로 떨어졌다고 했지만 아무도 그녀가 모든 걸 포기하고 스스로 뛰어내렸다는 걸 알지 못했다.그렇게 윤아름은 5년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다시 깨어났을 때, 시간이 흘렀음에도 원진우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여전히 편집적이고 잔인하며 광기에 사로잡힌 모습이었다.원진우는 자신이 윤아름을 붙잡고 있는 한, 몇 명을 죽이든 상관하지 않았다.그리고 윤아름은 자신이 기억 상실을 연기하는 것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원진우처럼 영리하고 의심이 많은 사람은 곧 모든 것을 알아챌 테니 말이다.하여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결심했다.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직접 확인하지 못한 이상, 포기하지 않겠다고.원진우가 윤혜인을 언급한 전화 통화를 들은 후부터, 윤아름은 그녀의 딸이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그리고 오늘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 전에 이미 긴장한 나머지 입에서 나온 건 단 한 마디였다.“무서워요.”간단한 말이었지만 흥미롭다는 듯 원진우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그는 타인이 자신을 두려워해야 배신하지 않고 자신 몰래 행동하지 못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원진우는 얇은 입술을 살짝 말아 올리며 말했다.“내가 무슨 머리 세 개에 팔이 여섯 개는 달린 괴물이라도 돼?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는 없을 텐데.”진우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긴장한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그는 무심하게 물었다.“방금 방 안에서 무슨 얘기를 했나?”진우희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고?”그러자 원진우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그럼 둘이서 방 안에 한 시간이나 있는 동안 아무 말도 안 했다는 건가?”그 미소는 차라리 없는 게 나을 뻔했다.진우희는 그 미소에 겁을 먹고 두 다리가 풀려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죄송합니다. 가주님.”원진우는 느긋하게 다리를 내리고 그녀를 주시하며 말했다.“그래, 뭐가 그렇게 죄송한데?”“저... 제가.”진우희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사모님께서 부탁하신 약을 사기로 한 게 제 잘못입니다.”“어떤 약을 사기로 했는데?”진우희는 녹는 종이를 내밀었고 그 위에는 윤아름의 필체가 선명히 남아 있었다.진우희는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가주님. 제가 사모님의 돈 5만 유로에 눈이 멀어 그만 약을 사기로 했습니다.”하지만 원진우는 그 종이를 다 읽고도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5만 유로라니 통이 크긴 하군.”“죄송합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사 줘.”남자는 냉담하게 말을 끊었다.“...네?”원진우는 미소를 지으며 녹는 종이를 다시 진우희 앞에 던졌다.“사주라고.”진우희는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하고도 여전히 주저하며 종이를 줍지 못했다.그리고 그런 겁에 질린
“아니에요. 아니에요...”진우희는 감히 돈을 받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거절했지만 원진우는 단호하게 그녀의 말을 잘라버렸다.“진우희, 내 인내심은 한계가 있어. 내가 하는 말에 반박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그 말 한마디에 진우희는 두려움에 떨며 종이를 주워들고는 벌벌 떨며 말했다.“감사합니다. 가주님...”진우희가 방을 나가자 원진우의 우아한 표정은 차갑게 굳어졌다.아이를 갖자고 했던 원진우의 말은 그저 농담이었다. 설령 윤아름이 임신을 하더라도 그는 그녀가 아이를 낳게 하진 않을 것이다.나이가 든 사람에게 아이를 낳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원진우는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고 차라리 아이를 갖지 않는 편이 나았다.하지만 윤아름은 그 말을 마음에 새겼는지 진우희에게 피임약을 부탁한 모양이었다.‘자기 몸 건강에 자신이 있었던 건가? 정말 임신할 수 있다고? 하지만...’원진우는 곧 윤아름이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것을 떠올렸다.어쩌면 그녀는 자신이 아직 열여덟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개를 푹 숙인 채 원진우는 방으로 돌아갔고 윤아름은 몸을 숙이고 쉬고 있었다.원진우의 커다란 손이 자신의 등을 쓰다듬자 윤아름은 살짝 몸에 닭살이 돋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참으며 그를 뿌리치지 않았다.“왜 아직도 안 자?”원진우가 물었다.“잠이 안 와...”윤아름은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진우 씨... 나 돈 좀 줄 수 있어?”그 말투에 원진우는 웃음이 터졌다.자존심 강한 윤씨 가문 아가씨인 윤아름이 자신에게 지금 돈을 달라고 하니 말이다.하지만 이 말은 진우희의 말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주었다. 그녀가 돈을 원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매수하려는 목적일 것이다.그러자 원진우는 경계심을 서서히 풀었다.윤아름은 그가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순간 화가 나서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안 줄 거면 됐어.”“안 준다고 한 적 없는데.”원진우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진심 어린 웃음을 띠며 말했다.그러더니 팔을
가족이라는 것은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완전하지 않다.진우희는 종이를 물에 던져 넣으며 마음속의 신념을 더욱 굳건히 했다....윤혜인이 출근하자 비서가 와서 보고했다.“원지민 씨 쪽에서 또 일단 예복은 필요 없다고 하네요.”윤혜인은 원지민의 이랬다저랬다 하는 태도에 약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럼 다시 확인해봐요. 만약 보름 뒤가 결혼식이라면... 지금 확정하지 않으면 예복이 준비되지 않을 텐데 나중에 우리가 처리 못 했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네, 제가 다시 연락해볼게요.”“그리고 만약 정말로 취소한다면 계약금 전액은 돌려주지 않는다고 확실히 알려줘요.”디자이너의 가치는 그 디자인에 있으므로 여러 번 협의 끝에 취소한다면 업계 규칙에 따라 추가 배상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윤혜인은 원지민과 그 문제로 더 얽히고 싶지 않았고 계약금 정도는 보상으로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곧 비서가 다시 와서 보고했다.“확실히 취소한다고 하네요. 원지민 씨 남편분께서 한 달 전에 이미 V사 찬란한 인생 컬렉션의 같은 시리즈로 예복을 예약했대요. 원지민 씨가 그 사실을 모르고 오해가 생겨서 저희 쪽 예복은 취소하겠답니다.”‘찬란한 인생’은 V사의 고급 맞춤형 럭셔리 드레스 라인으로 한 벌에 수억에서 수십억까지 할 수 있는 고가의 예복이었다.고급 맞춤형 의류는 미리 주문해야 하니 이준혁이 신경을 써서 비밀리에 드레스를 준비해둔 모양이었다.“알겠어요. 그렇게 처리해요.”윤혜인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한동안 우울하게 지냈지만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계속해서 자신을 가두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일도 하고 사람들과도 어울리며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원지민과의 일이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속에서 일렁이던 감정의 파도는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머지않아 윤혜인은 이 아픔을 완전히 떨쳐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퇴근 시간이 되자 배남준이 윤혜인을 데리러 왔다.두 사람은 도시안의 도시라 불리는
윤혜인은 망설임 없이 배남준의 팔을 잡고 먼저 계단을 올랐다.유리 회전문이 돌아가며 두 사람의 모습은 이준혁의 시야에서 사라졌다.식사 중 윤혜인은 별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특별한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았다.배남준은 신사적으로 그녀의 스테이크를 잘라서 건넸지만 윤혜인이 많이 먹지 않자 물어보았다.“입맛에 안 맞아?”“아니요. 오후에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서요.”배남준은 근처에서 혼자 식사 중인 이준혁을 한 번 바라보고 나서 윤혜인을 불렀다.“혜인아.”“네?”곧 배남준이 신중하게 말을 꺼냈다.“혹시... 아직 마음 정리가 안 된 거야?”포크를 놓은 손을 잠시 멈칫했지만 윤혜인은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배남준은 마음속으로 그녀를 안타깝게 여겼다.“정말로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면 억지로 참을 필요 없어. 시간이 지나면 분명 치유될 거야.”곽경천과 친구라 배남준은 윤혜인에 대한 감정이 미묘했다. 처음에는 그녀를 여동생처럼 여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았다.사실 그는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고 어떤 감정이 좋아한다는 것인지도 잘 몰랐다.다만 배남준이 원하는 것은 윤혜인이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그 행복 속에 자신이 포함되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녀가 행복하면 그것으로 충분했다.윤혜인은 배남준의 위로에 감사했다.때로는 오빠인 곽경천에게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그가 너무 감정적으로 대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배남준에게는 그런 걱정이 없었다. 배남준은 언제나 윤혜인의 생각을 헤아리고 부담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대해주었다.“알겠어요. 남준 오빠.”그녀도 그의 생각과 같았다. 억지로 마음을 차갑게 만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두자는 것이다.지금처럼 이준혁과 같은 공간에서 식사할 수 있을 만큼은 되어야 했다.평생 피해 다닐 수는 없을 테니 시간이 지나면 결국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윤혜인은 믿었다.저녁 식사는 예상보다 일찍 끝났고 자리에서 일어난 윤혜인의 눈에 멀리 이준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