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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4화 기억나지 않는다

신은지가 박태준에게 좌석이 구석에 있다고 말했는데, 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자리에 앉기까지 ‘죄송합니다’, ‘좀 비켜주세요’를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른다.

무대에서 스태프가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머리, 몸, 팔다리를 구분할 수 있어 그게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을 뿐 더 자세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맥이 빠져 한숨을 쉬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목숨을 반쯤 잃은 것 같았다.

“다시는 콘서트 오지 않을 거야. 오빠는 역시 TV에서 보는 게 제맛이야. 롱샷, 클로즈업이 번갈아 바뀌고 고화질 버전이라 얼굴에 주름이 몇 개 있는지까지 똑똑히 보이거든.”

“... 현장에서 복근을 보는 게 더 좋다며?”

“너무 멀어서 그냥 살덩어리로밖에 보이지 않잖아. 복근, 흉근 심지어 맥주배도 분간이 안 되는데 뭐가 좋아?”

“...”

잠시 후 콘서트가 시작되고 주인공이 등장하자 객석에서는 지붕이 날아갈 것 같은 즐거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신은지는 초록색 불빛이 반짝이는 응원판을 안고 턱을 그 위에 얹어 하얀 피부가 시퍼렇게 물들었다.

진유라는 조금 전까지도 풀이 죽어 다시는 보러 오지 않겠다더니 이내 분위기에 이끌려 비명을 질러댔다.

신은지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런 그녀를 쳐다보았다.

콘서트가 진행된 두 시간 동안 진유라는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질렀지만 기대했던 하이라이트는 없었다. 복근은 고사하고 오늘 밤은 아예 유교보이 컨셉으로 바꿨는지, 쇄골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춤을 추느라 땀을 너무 많이 흘려 공연복이 흠뻑 젖었고, 흰색 와이셔츠가 몸에 착 달라붙으면서 보일 듯 말 듯 살색이 드러나 금욕과 절제의 미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비명이 더 커졌다.

역시 여자들은 직접적인 노출보다는 이런 아련한 느낌을 더 좋아한다.

신은지는 이 같은 고주파 소음 공해에 시달리며 간신히 콘서트가 끝날 때까지 견뎠고 마지막에는 귀까지 먹먹했다.

그들이 맨 마지막에 나왔는데, 진유라는 말을 못 할 정도로 목이 쉬었지만 여전히 스스로 만든 수화로 신은지와 소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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