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지는 말을 잘 듣는 이상한 재주가 있다. 신은지 그녀는 도망칠 뿐만 아니라 문도 닫았다. 안방 침대 협탁에 콘돔 하나가 넣어져 있었다. 신은지는 오늘도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않을 것이다. 박태준 그 기술은 아주 형편없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신은지의 머릿속에는 고통이라는 한 가지 느낌만 남아 있었다. 토끼보다 더 빨리 달리는 여인을 보며 박태준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진선호는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바라보았다. “은지 씨 의사표현이 이해가 안 돼요? 안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요. 박태준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질투하는 거예요? 은지는 지금 내 여자 친구예요. 설마 이 수갑으로 우리가 함께 있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진선호의 기분이 표정으로 드러났다. "네, 맞아요. 좀 질투가 나서요. 상처받은 내 마음과 건강을 위해서, 오늘 밤은 여기서 자요.” 박태준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꿈도 꾸지 말아요.”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진영웅에게 전화를 걸어 회사 사람들 중 열쇠를 열 수 있은 사람을 찾아 연락하라고 했다. "은지 씨 고등학교 시절 알고 싶지 않아요?" 진선호가 건들거리며 말했다. “그때도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한마디로 첫사랑?” 그 말에 박태준은 동작을 멈췄다. ”말해요.”…… 신은지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침대 협탁 위의 휴대전화의 진동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협탁 앞으로 걸어가서, 고개를 숙이고 휴대전화 화면에 뜬 발신자 이름을 보았다. 강이연이었다. 신은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받지 않고 휴대전화 화면을 보니 강이연은 이미 10여 통의 전화를 했었다. 신은지가 샤워하는 데 10분 정도 걸렸으니 1분에 한 통씩 전화를 해 댄 것이다. 부재중 목록을 확인한 신은지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려 할 때 전화가 또 왔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계속 전화가 올 것 같았다. 사람을 구하려 했던 열의가 채 가시기도 전에, 요 며칠 동안 기자들이 가끔 병실에 가서 강이연을
병원. 신은지는 올라가기 전에 아래층에서 도시락을 샀다. 기자는 아직 병실에서 떠나지 않았다. 신은지가 들어오자 강이연은 그녀가 혼자라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시선을 돌렸다. “은지, 이렇게 늦었는데 나를 보러 온 거야? 왜 너 혼자 왔어? 위험하게 이렇게 외진 곳에 혼자 오면 어떻게 해?” 만약 이 말을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그들이 정말 친한 친구인 줄 오해할 것이다. "아니야. 그는 아래 주차장에 있어." 신은지가 봉투에서 하얀 테이크아웃 박스를 꺼냈는데, 아래층 허름한 식당에서 사 온 것이었다. "배고프다면서? 저녁 사 왔어 자, 먹여줄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밥 한 숟가락을 떠서 강이연 입 앞에 내밀었다. 보기에 요리는 신선하지도 만들어 놓은 지 얼마나 됐는지도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게 생겼다. 강이연은 신은지가 숟가락을 자신의 입에 넣을까 봐 입을 오므렸다. 강이연은 어려서부터 스타 셰프가 가장 신선한 재료로 만든 요리를 몇 백만 원이 넘는 식기에 담아 먹었다. 그런 강이연에게 신은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요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신은지는 몸을 앞으로 숙여 강이연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 먹어? 기자들이 다 보고 있어.” "...…” "강태민 어르신께서 최근에 남포시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해 보라고 하지 않았어?” 강이연은 이를 악물고 먹기 싫은 것을 먹으며 말했다. "넌 정말 무자비해.” 눅눅한 기름 냄새가 강이연의 혀끝을 자극하자 그녀는 참지 못하고 음식을 모두 뱉었다. 이런 쓰레기도 사람이 먹는 거야? 신은지는 분명히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시간을 계산해 보니 박태준이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올라와야 할 시간이었다.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남자의 본능이다.특히 강이연처럼 예쁜 여자라면 남자들이 더욱 좋아해야 했다. 강이연은 자신이 이렇게까지 애쓰며 박태준을 유혹하는데 그가 넘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강이연은 자신의 입 안 벽을 깨물어 눈물샘을 자극했다. 강이연이 고개를
돌아가는 길에 신은지는 혼자 길가의 포장마차에 앉아 꼬치를 먹었다. 사실 그녀는 자신의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어쨌든 어릴 때부터 그녀가 알고 있던 아버지는 신진하였다. 엄마가 죽은 지 얼마 안 돼서 친아버지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생각이 달랐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신은지는 이미 그 정서적인 욕구가 필요한 나이가 지났다. 하지만 강이연의 말 때문인지 신은지의 머릿속에는 왠지 모를 강태민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솔직히 신은지는 자신이 강태민과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신은지는 자신의 엄마를 많이 닮았고, 주변 사람들은 항상 모녀가 똑같이 생겼다고 말했었다. 푸르슴 한 하늘에 한 줄기 빛이 번쩍이더니, 이어서 세찬 천둥소리가 났다. 신은지는 어렸을 때 천둥소리를 무서워했다. 천둥소리가 들리면 엄마 앞에서 신은지는 더욱 많이 놀랐다. 그녀가 놀랄 때마다 심은하는 신은지 옆에서 달래주고 맛있는 것도 주며 주의를 돌렸지만 심은하가 죽고 신진하의 새 집에서 천둥소리에 놀라도 신은지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그녀는 점점 천둥소리를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포장마차 안의 옆 테이블 사람들이 일어나 나가기 시작했고, 상인들도 물건을 옮기느라 바빴다. 여름의 비는 굵고 세찼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며 천둥 번개가 쳐서 하늘에 빛을 내뿜었다. 길 건너편에서 차를 세운 신은지는 비가 그친 뒤 차로 이동할 생각을 하며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서 동영상을 찍으려고 했지만 화면을 몇 번이나 터치해도 반응이 없었다. 휴대전화 충전기는 차 안에 있었고 앉아 있는 자리 주변에도 콘센트가 없었지만 신은지는 가게에서 충전기를 빌리기 귀찮았다.여름 소나기는 빠르게 지나가는 편인데 오늘따라 비가 유난히 길게 오는 것 같았다. 휴대전화가 없어서 그런지 지루해서 그런지 정말 오랫동안 비가 내렸다. 신은지는 비를 맞으며 달려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을 때 차 한 대가 포장마차 앞에 멈추어 섰다. 차가 익숙하다고
좁은 자동차 안에 신은지는 축축이 젖은 박태준에게 안겨 있어 차 안은 온통 비 냄새로 가득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공기 중에는 설명할 수 없는 끈적함과 심장이 멎는 듯한 모호함이 솟아올랐고, 차 안의 온도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박태준은 신은지의 허리를 감고 있던 자신의 손을 살짝 풀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신은지가 손을 들어 두 사람의 입술 사이를 가로막았다. "비가 그쳤어.” “……” "집에는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는 부상자가 있어. 게다가 넌 나오기 전에 진선호 씨랑 한바탕 싸웠고. 이런 상황에 내일 아침에 집에 들어가면 좀 걱정되지 않겠어?” 신은지의 말은 아주 보잘것없는 핑계였다. 집에는 경호원이 있었고 급하면 주치의를 불러 그를 돌볼 수도 그리고 병원에 데리고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박태준은 신은지를 노려보며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무서운 표정으로 고집스럽게 아무 말하지 않고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좋아.” 주택 주차장에 주차된 차 안은 고요했다. 신은지는 차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지만 박태준은 움직이지 않고, 고개를 숙여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는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며 박태준의 날카로운 이목구비와 가늘게 뜬 어두운 눈빛을 희미하게 가렸다. 차 밖에서 문을 잡고 서 있던 신은지는 말했다. "안 내려?” "은지야...” 얇은 입술을 벌리고 연기를 내뿜은 박태준은 말했다. "먼저 들어가. 담배 한 대 피우고 들어갈게.”신은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들어갔다. 박태준은 고연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휴대전화를 보고 있던 고연우가 전화를 바로 받았다. "여자가 왜 너랑 자는 걸 그렇게 거부할까?” "사랑하지 않아서." 고연우은 박태준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매섭게 정곡을 찔렀다. "……" 박태준은 가슴이 답답해져서 제대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여자가 네 여자친구가 되겠다고 약속했으면?” "그럼 기술이 좋지 않은 거야.” 박태준은
신은지는 이 망할 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 않았다. 박태준은 일부러 불쌍한 척 억울한 척하면서 자신을 약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정말 박태준의 머리를 갈라 그의 뇌를 보고 싶었다. 박태준의 뇌는 하체에 있는지 매일 그 일을 생각하고 있다. 신은지는 그를 노려보며 사악하게 말했다. “나 잘 거야. 전화하지 마. 영상통화도 걸지 하지 마. 계속 귀찮게 하지 마. 이 기간에는 그런 생각 꿈도 꾸지 마.” “……” 박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인터넷 검색창에 ‘연적이 우리 집에서 자는데 어떻게 하지?’라고 입력했다. 이런 이상한 질문들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누군가가 질문했었다. 클릭해 훑어보니 다양한 답 중 눈에 들어오는 답이 있었다. [너는 연적과 자고, 연적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라. 남녀가 생활하고, 마법을 사용하면 마법으로 물리치면, 넌 인간 위에 있는 것이다.] 답글은 읽은 박태준이 화가 나서 휴대전화를 던졌다. 이런 답을 생각해 내는 사람은 도대체 뭐지? …… 다음날. 신은지는 출근하지 않았지만 집에서 잠을 잔 탓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계단을 내려갔을 때 마침 진선호의 방에서 주치의가 나왔다. "왕 박사님, 환자 상처는 좀 어떤 가요?”"조금만 꿰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저 남자분은 기본체력이 좋아서 하룻밤 지나고 나니 열도 가라앉았어요. 하지만 침대에서 일어나 운동하지 않도록 해야 해요. 반복적으로 상처를 꿰매면 회복 속도도 늦고 큰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신은지가 대답했다. "왕 박사님, 며칠 동안 이곳에서 지내시면 안 될까요? 환자 상태가 오락가락할까 봐 걱정이에요.” "네. 박 대표님이 아침에 전화로 가장 좋은 약을 쓰라고 하시면서 며칠 동안 환자 옆에 붙어서 지켜보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환자분의 빠른 회복을 위해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께 부탁해서 영양식을 준비하라고 하셨어요.” 왕 박사는 오랜 시간 박씨 가문의 주치의로 일해서 그런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여기 와서 지내라고 했다고요?" 박태준의 눈썹이 실룩거리며 경련을 일으켰다. 찌푸린 박태준의 침울한 얼굴에서 불쾌감이 드러났다. 박태준의 시선은 강이연의 뒤에 서있는 경호원에게로 향했고,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와이프는?” "사모님께서는 점심을 드시고 방으로 올라가셨어요.” 박태준은 슬리퍼를 갈아 신고 곧장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와이프가 들어오라고 했다고?” 신당동에는 규칙이 있었는데 경호원은 지시가 있기 전에는 저택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경호원이 말했다. "사모님께서 왕 박사님과, 김씨 아주머니와 강이연 씨를 잘 돌보라고 하셨습니다.” 김씨 아주머니는 오늘 온 가사 도우미였다. 신은지의 지시는 보살핌을 가장한 감시였기에, 강이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강이연은 2층에 올라가서 신은지의 머리카락이나 손톱 따위를 몰래 찾으려고 했지만 2층에 올라가기는커녕 그녀가 조금이라고 움직이기만 하면 그 여섯 개의 눈이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박태준이 계단을 오르자마자 신은지가 방에서 나왔다. 신은지는 턱으로 강이연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너의 예쁜 스토커. 내가 널 도와서 하루 종일 상대해 줬으니까 이젠 네가 처리해.” "하.” 박태준은 아무 감정도 없이 목구멍에서 낮은 소리로 비웃음을 터뜨렸다. ”신당동 이름이 바뀐 줄 알았는데?” 신은지는 천천히 내려오며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뭘로 바꿀까?” 박태준은 이를 악물고 한 자 한 자 내뱉었다. “신당동 쓰레기수거장.” 어제는 진선호를 주워오더니 오늘은 강이연을 주워왔다. 박태준이 준비한 물건의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에 쓸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그는 애원하는 눈빛으로 신은지를 바라보았다. 신은지에게 화를 낼 수 없는 박태준은 강이연에게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었다. 박태준은 아래층에 있는 경호원을 힐끗 보고 억울한 눈빛을 하고 있는 강이연의 눈을 마주쳤다. 차가운 강철 심장을 가진 박태준은 조금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그는 힐끗
강이연은 그가 신은지를 마음에 두고 있다고 해석했다. 미소를 지어 보이며 금방 입을 열려던 참이었다.이때, 문밖에 있던 보안요원이 말했다.“박 대표님, 강태민 씨 오셨습니다.”둘째 큰 아버지 라니, 그녀의 안색이 급격하게 돌변했다. “네 엄마를 죽인 진범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아? 네가 강 씨 가문에 들어오지 못하니까 내가 대신 찾아줄게.”신은지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고마워. 하지만 마음만 받을 게.”곧이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앞에 다다르자 강태민이 등장했다.“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이연이 데리고 당장 나가겠습니다.”강이연은 남포시로 돌아가겠다고 그와 약속했었다. 모레에 있을 비행기표까지 예매를 끝냈다.병원에서 나와서 친구와 작별 인사를 하겠다는 그녀의 말에 감시할 사람을 붙이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무탈하게 넘어가나 싶었지만 그녀가 신당동까지 찾아갈 줄은 몰랐다. 그렇지 않고서 바쁜 와중에 직접 찾아올 필요가 없다. 신은지는 계단 위에서 아래로 내려 보았다. 그리고 예의를 차리려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강태민 씨, 잠깐 시간 괜찮으실까요?”강태민은 한참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네, 괜찮습니다.”두 사람은 정원 중앙에 위치한 정자로 자리를 옮겼다. 주위로는 인공호수, 인공잔디 등 인조적으로 만든 환경이 펼쳐졌다. 불어오는 바람에는 촉촉함이 들어있고, 마침 꽃 냄새도 은은하게 풍겼다. 신은지는 꽃들을 바라보았다. 꽃의 이름은 모르지만 그저 모양새와 향기가 좋았다. 곧이어 김 씨 아주머니가 차를 가지고 왔다. 찻주전자를 탁자 위에 올려 두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제 어머니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지만 계실 때는 저에게 아주 상냥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강태민에게 차를 따라주면서 의미가 담긴 말을 건넸다.“그 뒤로 얼마나 좋은 사람인 지 알게 됐습니다.”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익숙한 것에 속아 소중함을 잃어야 후회를 하게 됐습니다. 참 간사하기 그지없죠?”강태민이 말했다.“그 시간
그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신은지가 먼저 정자를 떠나 다시 저택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강태민은 그녀를 따라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계속 신은지를 향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박태준은 남자로서 그의 눈빛에 다른 의도가 있다는 점을 알아챘다.그는 실눈을 뜬 채로 강태민을 바라보았다. 신은지가 걸어오기 전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있다가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오고 나서야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제야 활활 타오르는 짜증이 가라앉았다. 그는 신은지의 죽마고우, 지인도 조심해야 하는 마당에 늙은 남자까지 상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머리가 아팠다.신은지는 문을 열자 박태준이 멀뚱멀뚱 서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탁자 위에 놓인 음식은 전혀 건드리지 않은 것 같았다.“밥 안 먹고 서서 뭐 하는 거야?”박태준의 얼굴에는 원망스러움이 잔뜩 서려서 곧 흘러내릴 것 같았다.“재밌었나봐?”“그냥 그래.”신은지는 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싸우고 싶지 않은 마음에 대충 얼버무렸다.“저 사람은 너 때문에 온 거야, 내가 부른 게 아니라.”“...”신은지는 여러 일에 휘말리면서 점심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바람에 그가 화가 난 이유를 알아낼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서둘러 자리에 앉아 식사를 계속했다. 박태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자리에 앉았다.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식사에도 불구하고 그는 입맛이 살아나질 않았다.“은지야, 부성애가 부족한 여자가 성인이 되면 자기보다 훨씬 연상인 남자를 쉽게 좋아하게 될 수도 있어?”만약 강이연의 말대로 신은지가 돈과 외모 때문에 강태민을 좋아하는 거라면 그를 이길 자신은 있다. 하지만 경험과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는 강태민의 압승이다. 또한 50대 나이에도 어려 보이는 얼굴은 여자의 이목을 더 끌기도 한다. 강태민은 나이가 있어도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란 도련님이다. 부유한 환경 속에서 산 덕에 몸에는 우아함이 베어 있다. 신은지는 국을 마시고 나서야 배가 든든하게 채워지는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