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지와 같이 나온 동기들은 모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신은지는 이제 그들의 시선에 익숙해질 지경이었다.“은지 씨, 귀 뒤에 키스 자국이 아직도 있네.”동기 한 명이 낮은 목소리로 짓궂게 말했다. 신은지는 연애도 한번 못 해 보고 바로 결혼을 했다. 그러니 아무리 담담히 이 상황을 받아들이려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그녀는 얼른 두 손으로 귀를 가렸다.“가리기는, 다 봤는데.”신은지는 오늘 아침 거울을 보며 그 자국들을 하나하나 화장품으로 가렸다. 게다가 목폴라까지 입고 목도리도 두르고 평소와 다르게 머리까지 풀었는데 그래도 들킬 줄은 몰랐다. 동기들은 모두 박태준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는 얼른 자리를 떴다. 순식간에 작업실 문 앞에는 신 은지와 박태준밖에 남지 않았다.“타.”“자기를 너무 잘 모르는 거 아니야?”신은지는 이제 화도 안 났다.“어떤 여자가 자기를 덮치려고 했던 남자 차에 올라타?”박태준은 그녀가 아직도 어젯밤에 일로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한참 있다가 대답했다.“미안해, 참을 수 없었어.”사과하는 것 같았으나 성의가 하나도 없는 말이었다. 신은지는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돌아서서 가려는데 박태준이 그녀를 불렀다.“어머니 유물은 안 챙길 거야?”신은지가 고개를 돌렸다. 차에 에어컨을 틀어 놓은 상태였기에 박태준은 셔츠만 입은 채 단추를 끝까지 잠갔다. 하지만 그의 섹시한 겉모습은 그 비겁한 본성을 가릴 수 없었다“우리 엄마 유물이 왜 너한테 있어?”전에 신진하가 택배로 보내 준다고 해서 주소까지 다 보내 줬었는데 그 후로는 소식이 없었다. 유물이 남아 있는지를 떠나서 그가 정말로 보내줄 거라는 기대도 안 했기 때문에 신은지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었다. 비록 박태준이 좋은 남자는 아니었지만 이런 일로 그녀를 속일 사람은 아니었다. 박태준이 마음만 먹으면 그 물건들을 찾아오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었기에 이런 쉬운 일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다.“일단 타.”신은지는
갑자기 나타난 전예은을 보니 방금 신은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박태준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신은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네가 부른 거야?”손목으로부터 전해지는 고통에 신은지가 인상을 찌푸렸다. 박태준이 얼른 손을 놓았다. 붉어진 손목을 보며 박태준이 사과했다.“미안해. 힘조절을 못했어.”비록 박태준이 얼른 사과했지만 신은지는 저도 모르게 그와 거리를 뒀다.“네가 부른 사람이니까 네가 보내.”신은지가 전예은을 부른 원인은 바로 박태준이 자신을 순순히 보내 주지 않을 걸 알아서였다. 근데 이제 와서 어떻게 전예은을 그냥 보낼 수 있을까.“은지 씨.” 전예은이 두 사람의 대화를 잘랐다. 전예은은 낯빛이 창백했고 가녀린 몸을 가볍게 떨고 있었다. 이 상황이 굉장히 치욕스러운지 얼굴에 분노가 가득했다. “태준 씨랑 오랫동안 연락을 못 했어요. 근데 이런 방법으로 절 치욕스럽게 하시면 안 되죠.”전예은이 싸늘한 표정을 하고 있는 박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제가 아무리 뻔뻔해도 절 싫어하는 남자한테 매달리는 사람은 아니에요.”전예은을 바라보는 박태준의 눈빛이 여전히 차가웠다. 신은지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질투를 유발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번 생에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된 걸까.“일단 들어오실래요?”두 사람 사이에 어떤 모순이 생겨서 연애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몰라도 자신이 한번 설득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필요 없어요.”“나가.” 박태준과 전예은이 동시에 말했다. 전예은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몸을 돌려 나가 버렸다. 그러다가 그녀가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어차피 왔으니까 한마디만 할게. 초대장에 관한 일은 내 매니저가 함부로 벌린 일이야. 내가 연예계로 진출하고 싶어 하니까 기회를 만들어 주려다가 이런 오해가 생긴 것 같아. 이미 내가 혼냈으니까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을 거야. 미안해.”전예은은 말을 마치고 그대로 나갔
프로그램에 관련된 사실을 감독은 이미 반 개월 전부터 허 원장에게 말했었다. 당시에는 신은지가 경원에 없었던 데다가 허 원장은 신은지가 얼굴을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딱히 말을 꺼내지 않았었다. 지난번에 다큐멘터리에서 신은지는 손만 드러냈고 또 파트너인 이경수의 외모가 출중했기에 많은 네티즌들의 궁금증을 유발했었다. 감독은 신은지가 출연에 동의했다는 소식을 듣자 매우 기뻐하며 일주일 후부터 촬영을 시작할 것이라고 알려줬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날 신은지는 촬영 팀에서 보낸 스케줄표와 출연진 리스트 같은 자료들을 받았다. 신은지는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저 감독님의 명성을 빌어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바로 그 베일에 싸인 인물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서 신은지는 대체적인 촬영 스케줄을 파악한 후에는 단체 채팅방에서 나와 버렸다. 빼곡한 글자를 보자니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촬영 날 메이크업을 받을 때 전예은을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며칠 전 연예계로 진출할 생각이라고 하더니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신은지는 이마를 짚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메이크업을 받는 방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를 볼 수가 있었다. 김청하가 전예은에게 촬영 스케줄에 대해 고지하면서 신은지를 쳐다봤다. 김청하가 고개를 돌리며 비웃었다.“촬영도 곧 시작할 텐데 그 실버인가 뭔가 하는 사람은 아직도 안 오네요. 첫날부터 모두를 기다리게 할 생각인 건가?”사실 어제 출연진 리스트에서 실버라는 이름을 보자마자 김청하는 전예은에게 불만을 토로했었다.“신비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역시 돈에 넘어가네요. 다른 사람 보다 복구 비용을 훨씬 더 많이 받는 것도 모자라 이젠 이런 프로그램까지 참가하다니.”김청하는 일찍 와서 이미 다른 출연진들을 다 확인했지만 낯선 얼굴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신은지는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이미 왔는데요. 매니저님은 자신이 맡으신 분이나 잘 관리하
박태준은 눈썹을 찌푸리며 손에 있는 서류를 보고 있었다."무슨 정체?""신은지가 바로 그 실버야."전예은이 강조했다.“내 그림 복구해 준 사람.”그녀는 당시 그 그림으로 강혜정의 비위를 맞추고 싶었고 박태준에게도 놀라움을 주려고 했기 때문에 사전에 언급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후에 생일파티에서 그 소란이 있었기에 실버라는 사람이 공개될 수밖에 없었다.페이지를 넘기던 박태준이 서류에서 눈을 떼고 한참 후에야 대답했다.“어.”그의 태도가 이렇게 평온한 것을 보고 전예은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이미 알고 있었어?"몰랐다. 그는 이경수가 신은지를 실버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지만 당시 그는 그냥 애칭이라고 여겼을 뿐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 일에 대해 딱히 개의치 않았었다. 그는 전예은의 질문에 더 이상 대답하지 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전예은이 목소리를 높였다."신은지가 나를 속인 것도 알고 있어? 아니면 이 안에도 네 계획도 있니?"“뭘 속인 거지?"전예은이 침묵했다. 방금 그 말을 뱉자마자 그녀는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알았다. 실버는 비록 그녀에게 높은 가격을 받았지만 미리 가격을 제시했고 자신도 동의했다. 그래서 사기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기껏해야 고의로 그녀를 괴롭힌 정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원래 별로 사이좋게 지내는 관계가 아니었으니 사실 실버가 복구 작업을 받지 않아도 할 말이 없다.박태준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전예은은 그가 여전히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았지만 한참 지나서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할 것 같은 이유를 댔다."돈, 비록 그 그림이 좀 심하게 훼손된 건 맞지만 시장가격으로 계산하면 그렇게 높은 가격을 받을 필요는 없었어.”"돈을 위해서라면 그냥 내 비위나 잘 맞추면 더 많이 벌지 않을까? 그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쁘게 일할 필요도 없을 텐데.”전예은은 박태준이 자신을 비꼬기 위해 이 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박태준의 태도를 보아하니 모든 걸 알게 된 것 같았다. 어쩐지 전예은이 밖에 나갔다 오더니 표정이 많이 나아진 것 같더라니 이제 보니 박태준이 애인을 대신해 복수를 하러 온 것 같았다. 신은지는 오늘 하루 종일 바삐 돌아다니느라 이미 충분히 피곤한 상태였다. 근데 또 박태준의 시비까지 받아주려 하니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신은지는 휴대폰을 테이블에 탁 내려놓고는 팔짱을 꼈다.“전예은이 어떻게 하고 싶대? 돈을 돌려달래? 그건 안 되지.”“실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니까 쓸데없는 사람은 끼여들이지 마.”“쓸데없는 사람이라니? 전예은이 오전에 전화해서 나에 대해 다 말한 거 아니야? 그래서 일부러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거고.”“전예은이 나한테 말했다는 건 네가 확실히 나한테 숨기는 일이 있었다는 거야.”박태준이 신은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네가 실버라는 걸 왜 안 알려줬어?”“너한테 알려줄 필요가 있어? 뭐 나한테 맡길 골동품이라도 있니?”“내가 무슨 말하는지 알 텐데.”신은지는 갑자기 지난 기억들이 떠올라 기분이 우울해졌다. 신은지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나한테 물어본 적은 있어? 내 작업실 바로 네 서재 옆인 데다가 한 번도 문을 잠근 적이 없는데 방안에 그렇게 많은 도구들이 있었는데도 3년 동안 넌 본 척도 안 했어.”이혼을 결심한 다음부터 신은지는 이런 일로 그를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원망해 봤자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박태준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고 신은지는 말을 이어 나갔다.“넌 그냥 내가 매달 월급이나 받아먹는 매니저인 줄 알지? 그리고 이 직업도 우리 엄마 덕분에 얻었다고 생각하고. 그러니까 넌 내가 널 떠나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잖아.”레스토랑의 불빛이 조금 어두웠기에 박태준의 표정이 어떤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신은지가 왜 지금 이렇게
신은지는 싸움 구경을 하다가 화제가 그쪽으로 넘어가게 될 줄은 몰랐다.“아니에요.”“날 속이려고 하지 마. 만약 그 자식이 정말 그런 짓을 했다면 용서할 수 없어.”강혜정은 만약 신은지가 고개를 끄덕이기라도 한다면 바로 박태준에게 달려갈 기세를 취했다. 신은지는 고개를 저었다.“그런 적 없어요, 어머님. 결혼 한지 3년이나 됐지만 애초에 저한테 손을 댄 적이 없으니까요.”강혜정에게 이혼할 거라고 밝힌 후부터 신은지는 이제 그녀에게 숨길 것이 없었다. “뭐라고?”믿을 수 없는 말에 강혜정이 눈을 크게 떴다.“결혼하고 한 번도 해 본 적 없어?”강혜정은 민망해서 직접적으로 얘기를 하지 못했다.“태준이가 혹시... 아니면 저번에 그 약을 좀 더 사 올까? 더 먹으면 할 수도 있잖아.”신은지는 민망했다. 더 가다가는 강혜정이 정말 박태준에게 각종 약을 다 먹일 것만 같았다. 신은지는 얼른 해명했다.“아니에요. 아무 문제도 없어요. 그냥 저랑 하기 싫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손주는 바로 생기실 거예요.”“그럴 리가 없어. 분명히 걔가 먼저...”강혜정이 말을 멈췄다. 함부로 말했다가는 오해가 깊어질 수도 있으니 일단 박태준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혜정은 이제 쇼핑을 하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졌다.“일단 오늘은 그만 가자. 우리 집에 와서 밥 먹고 가.”신은지는 가기 싫었지만 강혜정이 기분이 별로 안 좋은 것을 보고 그냥 조용히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강혜정은 2층 서재로 올라갔다. 아주머니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아가씨, 사모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요? 왜 쇼핑하고 돌아오셔서 오히려 기분이 더 안 좋아지신 것 같죠?”신은지는 고개를 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시간 후 박태준이 돌아왔다. 그는 신은지를 한번 쳐다보고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박태준이 서재의 문을 두드렸다. “어머니, 부르셨어요?”“은지랑은 어떻게 된 일이니? 분명 네가 먼저 원
박태준과 개 ……이건 머리 아픈 과제이다. 어떻게 대답하든지 모두 함정이다.다행히 박태준은 이런 일에 시시콜콜 따질 나이가 지났기에 신은지가 이 화제를 더 토론할 생각이 없자 더는 끈질기게 조르지 않았다.그는 차 문을 닫고 차 머리로 에돌아 운전 좌석에 앉았다.차 안의 분위기는 이상해졌다. 남자는 무표정으로 앞을 보고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말라는 모습이었고 신은지도 벙어리 식으로 데려다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안하고 더이상 남자를 자극하지 않았다.그녀는 금방 본가에서 꿀물을 먹어서 좀 목이 말랐다. 그래서 차 수납함에서 캡을 열지 않은 광천수를 꺼냈다. 금방 병뚜껑을 열려다가 박태준이 그녀를 향한 눈빛을 알아차렸다.신은지는 동작을 멈추고 광천수 병을 들고 머리를 돌리며 물었다.“마실래?”‘허’ 박태준은 확실치 않은 대답을 했다.신은지는 사양 없이 어이없다는 듯이 박태준을 힐끗 보고는 병뚜껑을 열고 입가로 물병을 보냈다. 그러나 옆에 있는 누군가의 눈빛이 너무 강하여 무시할 수 없었다.그녀는 물병을 건네주었다.“마셔.”박태준은 건네주는 물병을 피하면서 말했다.“나의 수준이 별로라고 하면서 지금은 왜 나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거지?”???그녀는 이 남자의 사고방식에 탄복했다. 그러나 이해는 갔다. 박씨 가문은 명성이 혁혁한 가문이고 박태준은 독자로 옆에 목적을 갖고 다가가는 사람도 많았다.신은지는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를 젖히고 크게 한 모금 마셨다. 차디찬 물은 목구멍을 통해 위로 들어갔다. 신은지는 찬물에 추워서 으스스 몸을 떨었다.“그래. 내가 틀렸지. 아마추어가 동정을 받을 자격이 없지. 그러니 훼멸하자.”박태준 ……아파트 아래에서 차가 멈춰 서자마자 신은지는 차에서 내려 아파트 단지 안으로 뒤에 맹수가 쫓는 듯이 재빠르게 달려 들어갔다.겨울의 밤은 정적에 젖었고 쌩쌩 부는 찬 바람에 나무 잎은 윙윙 소리를 내고 가로등은 안개에 싸여 어둡던 불빛이 더 어두워졌다.눈에 보이는 건 당직 서는 경비 외에 급급히 지나가
그 후 며칠이 지나 심은지는 아파트 구역에서 그 몇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냥 그날 저녁 너무 생각이 많았구나 하고 곧 그 일을 잊어버렸다.필경 이번 프로그램은 금방 녹화를 마치고 아직 방영되지 않은 상태라서 누군가가 본인에게 불리한 일을 벌여도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이날 심은지는 잔업을 마치고 진선호의 전화를 받았다. 진선호는 원망하면서 불평했다.“심은지 씨는 제가 연락하지 않으면 저에게 연락 안 주네요. 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그날 병원에서 작별 후 두 사람은 연락이 없었다. 그동안 진선호도 많이 바빠서 연락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한가하고 보니까 의리 없는 이 여자가 자기에게 문자 하나도 보내지 않았었다.진선호가 여자처럼 불평을 하니 심은지는 저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상처는 다 나았나요? 의사선생님한테 약 바꾸러 갔었나요?”진선호는 하하 웃으며 말했다.“심은지 씨가 물어보길 기다렸다가는 무덤위의 풀이 한참 자랐겠네요.”심은지는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고 진선호 말을 이어 대답 하지 않았다.진선호는 십몇초를 기다리다가 불만의 목소리로 말했다.“학창 시절에 심은지는 말수가 적지만 의리가 있고 마음이 착한 열혈 청년이었는데 몇 년만인데 생기가 없어지고 과묵한 표주박으로 변했네요.”“나를 원망하려고 전화했어요?”“당연히 아니죠. 저녁 같이 먹어요.”진선호는 느슨한 목소리로 말했다.“내려와요. 심은지씨 집 아래에 있어요.”“전 지금 사무실에 있어요. 집에 없어요.”“.....이미 늦었는데 ” 진선호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니 8시였다. 진선호는 손의 일을 끝내자마자 저녁 식사를 같이하려고 심은지 아파트에 왔다. “진유라 씨한테서 심은지 씨는 자택 근무한다고 들었는데요. 사무실이 어딘데요. 데리러 갈게요.”심은지는 멍했다가 음..경원작업실에 다시 돌아온 일을 진유라한테 미처 알려주지 않았었다.“아뇨, 자가 운전해 갈게요. 여기 좀 외따진 곳이라 도착한 후에 위치를 문자로 찍어 줘요. 바로 갈게요.”“그래요.”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