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임윤아가 심경서에게 전화를 걸었다.통화가 연결되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임윤아가 먼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경서 씨, 전 떠나고 싶어요. 과거의 일은 제가 당신에게 미안하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그 잘못을 만회할 거예요...”“만회라...”술을 조금 마시더니 심경서가 소파에 기대어 낮게 웃으며 부드럽게 애정이 섞인 말을 건넸다.“왜 그래? 왜 또 이런 볼멘소리를 하고 있어? 윤아야, 내가 원하는 가장 좋은 만회는 네가 내 곁에 있는 거야... 항상 널 곁에서 볼 수 있게 해줘.”...임윤아는 머리를 이불 속에 파묻고 울먹였다.“경서 씨.”심경서의 목소리는 너무나 부드럽고 유혹적이었다.임윤아는 이미 그와 결별하기로 마음먹었지만 막상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또 조금 흔들리고 있다.심경서는 비즈니스 사업을 워낙 오래 했는지라 인심을 꿰뚫고 있다.계획을 완성하기에는 임윤아의 마음이 아직 부족했기에 그는 또 몇 차례 감동적인 말을 하며 그녀를 크리스마스이브에 초대했다.“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있었는데 아직 정정당당하게 밖에서 식사 한번 한 적이 없잖아. 윤아야, 무슨 일이 있으면 우리 크리스마스이브에 다시 얘기하자... 괜찮지? 요즘에는 일이 워낙 바쁜지라 조금 힘드네”...임윤아는 워낙 심경서를 깊이 사랑하는지라 자신이 겪었던 서러움도 꾹꾹 눌러 담고 김이서의 이야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경서 씨, 전 단 한 번도 당신과 함께 햇볕을 쬐며 걸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원래는 정말 그냥 거래였다.그녀는 명분이나 그의 마음속 자신의 지위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러나 여자는 한번 사랑에 빠지면 답도 없다고, 임윤아는 점점 그녀에 대한 남자의 감정이 진정한 사랑이 맞는지, 정말 서로를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해 신경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모든 상상은 결국 그녀의 원맨쇼일 뿐이었다.그녀와 달리 남자는 항상 깨어 있었다.깨어 있는 상태에서 임윤아를 지켜보고 또 임윤아가 혼자 가라앉는 것을 똑똑히 방관했
최민정은 완전히 넘어간 것인지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당부했다.“자꾸 신경 쓰이게 하지 마.”...크리스마스이브.심경서는 김이서를 데려와 그날 밤 침대에서 잘 위로해주었다.김이서는 평판이 좋지 않았다.친정에서 힘을 보태주지만 두 아이를 데리고 있는지라 사실 퇴로가 많지 않았다. 비록 심경서는 밖에서 돌아다니며 이상한 짓거리를 하고 다니지만 적어도 집에서는 예전보다 그녀를 존중해 주었고 이혼하고 싶다고 하면 그녀의 부모는 그녀에게 심사숙고하라고 권했다.여러 번 저울질한 끝에 김이서는 결국 남편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었다.검은 머리카락이 심경서의 몸을 옭아매듯이 남자의 몸에 흩어지고 김이서는 그의 몸에 엎드려 남편에게 입을 맞추며 다시 한번 그에게 쾌락을 요구했다.이번에 본가에 갔을 때, 김이서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남자가 널 사랑하는지는 그 사람이 너한테 돈을 주는지 그리고 너와 잠자리를 가지는지를 봐야 한다고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오늘날 심경서는 매달 김이서에게 생활비를 두둑이 챙겨주고 귀한 보석도 사주는데 그녀가 아무리 갖은 수단을 취하여 남편을 쥐어짜 내도 심경서의 마음이 밖에 머물러 있으면 남은 정력도 없을 것이다.하여 김이서는 완전히 깨달았다.김이서는 더 이상 남편의 비위를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았다. 대신 침대에서 더욱 대담해졌고 그녀의 매력을 발산하는 데에 집중했다.심경서는 그녀의 허리를 꽉 누르고 검은 두 눈으로 섹시하게 바라보며 원하는 대로 또 한 번의 라운드를 진행하며 김이서를 헐떡거리게 했지만 김이서는 마음속으로 충분히 만족했다.여자는 몸이 만족하면 훨씬 너그러워진다.하여 김이서도 더 이상 임윤아에 관해 묻지 않을 것이다.크리스마스이브, 심경서의 주선으로 두 집안은 유명한 한식집에서 식사하고 가장 좋은 룸을 예약했다...한창 취기가 오를 때, 심경서는 담소를 나누며 휴대폰으로 카톡을 보냈다.김이서는 그가 임윤아에게 보냈다고 추측하며 매우 불쾌해했다. 이렇게 중요한 날에 도 남편은 여자에게
룸 안도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심경서 역시 천천히 이쪽을 바라보았고 두 눈이 같은 공간에서 마주치자 여자의 눈에는 구슬 같은 눈물이 반짝였다. 임윤아는 자신의 애인이 그녀를 배신하고 그녀가 난처해지기를 바라며 그녀에게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 거라 믿고 싶지 않았다.임윤아의 입술이 하염없이 떨렸다. 그 말은 대체 왜 끝까지 입 밖에 내지 못한 것일까? 하지만 정말 입 밖에 냈다고 해도 결국 굴욕을 자초하는 것일 뿐이다. 결국, 임윤아는 한발 물러서며 낮은 목소리로 사과했다.“죄송합니다. 룸을 잘못 들어왔습니다.”김씨 집안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였지만 김이서는 더 이상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그저께 바로 임윤아에게 찾아가 경고했고 분명 자기 입으로 떠난다고 했는데 뒤에서 또 남편을 꼬드겨 정실 앞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다니. 하물며 지금은 부모님까지 다 함께 있는 자리인데...임윤아는 정말 그녀와 전쟁이라도 선포하려는 걸까?“임윤아 씨.”김이서는 자리를 뜨려는 임윤아를 불러세웠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임윤아의 곁으로 걸어가더니 애인을 빼앗기기라도 한 듯 흉악한 기세로 손을 들어 임윤아의 뺨을 두 대 거세게 내리쳤다.“천박한 년, 사람만 만나면 다리를 벌리는 천박한 년이 따로 없군.”김이서는 평소에도 아이들 앞에서 적지 않게 말했던 모양이다.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심진과 심윤도 임윤아를 둘러서더니 계속하여 손가락질하며 조롱했다.“나쁜 년! 나쁜 여자! 아빠를 훔친 나쁜 여자다.”임윤아의 작은 얼굴은 뺨을 맞은 탓에 한쪽으로 쏠려버렸다.정성껏 걷어 올린 머리카락도 잔뜩 흐트러져 낭패가 따로 없었다.심지어 연경의 제대혈로 살린 그 아이는 아예 물건을 들고 그녀를 때리기까지 하며 계속하여 나쁜 여자라고 욕지거리를 퍼부었다...그렇다.임윤아는 나쁜 여자이다.임윤아가 나쁜 여자가 아니었다면 어찌 심경서와 함께 있었겠는가?임윤아는 곧이어 시선을 과거의 연인에게 돌렸다. 그러나 심경서의 얼굴에는 냉담함밖에 찾아볼 수 없
박아영은 연경을 안고 멀리서 가까이 다가가자, 바닥에 누워 있는 여인을 보았다. 박아영의 비명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아가씨! 아가씨, 왜 이러세요? 아가씨가 가시면 연경은 어떻게요?”...그녀의 품에 안긴 연경은 이제 몇 개월밖에 되지 않는 갓난아이였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을 느꼈는지 아이는 고개를 들고 큰 소리로 쉴 새 없이 울부짖었다...생모의 처참한 상황을 보면 트라우마가 생길까 봐 박아영은 아이의 눈을 가려주었다. 그것은 한밤중에 피는 한 송의 장미와 같았다.아래층은 아수라장이었다.잠시 후에 경찰들이 도착해서 사고가 난 곳에 경계선을 쳤고 관계자 외 사람들이 현장을 파괴하지 못하게 하였다. 박아영도 연경을 안고 멀리서 여주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박아영은 일을 잘 하지만 무력감을 느꼈다. 이곳에 아는 사람이 없었다.‘맞다. 사모님이 있지...’그녀는 문득 지난번에 집에 왔던 사모님이 떠 올랐다. 그 사모님은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다. 지금 아가씨에게 이렇게 큰 일이 생겼는데 사모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 않는가?박아영은 들고 있는 돈지갑에서 박연희의 명함을 꺼냈다.전화 연결이 되자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한편으로, 조은혁과 박연희는 전화를 받은 후 곧바로 이곳으로 달려왔다...박아영은 핸드폰을 던지고 아이를 안으면서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녀는 울면서 그 사람들에게 빌었다.“저희 아가씨는 아직 젊고 건강해요. 구급차 불러 주실 수 있어요? 혹시나 모르니까 응급 처치해 보세요... 아이가 아직 이렇게 어린데 엄마가 없으면 어떡해요?!”그 사람들을 아이를 한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늦어서 살려낼 수가 없다. 박아영은 연경을 꼭 끌어안았다. 아이는 아직 쉬지 않고 계속 울고 있다...크리스마스이브는 곳곳이 떠들썩했다. 한 생명이 사라졌다고 경축 활동을 멈출 수 없다. ...룸 안에는 불빛이 눈부시게 반짝거렸다.밖에서 펑 하고 무슨 무거운 물건이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고 뒤이어
차에 타기 전에 심경서는 고개를 돌려서 한번 쳐다보았다.경찰차가 대부분을 막아서 안 보이지만 그는 흩어진 인파들 사이로 한 여인이 피바다에 누워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듯이 누워있는 그녀의 모습은 매우 온화하여 한스러운 기색이 추호도 없었다.임윤아, 윤아...심윤은 차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아빠, 빨리 타요! 나쁜 여자가 죽었어요.”이에 심경서는 주춤하더니 차에 올라탔다.심씨 저택으로 돌아온 후 그의 마음은 당황하고 혼란스러웠다. 그는 통쾌함을 느꼈으나 눈을 감으면 임윤아가 죽은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몸을 돌려 김이서를 안으려고 했다. 어쩌면 에너지를 방출하면 허튼 생각을 그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김이서는 피했다.그녀는 남편과 1m 정도 떨어진 곳에 누웠고 새까만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담담한 말투로 피곤하다고 말했다.그녀는 처음으로 남편이 두려웠다. 남편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밤에 심경서는 꿈을 꾸었다.꿈에 임윤아가 나타났다.환한 별장의 홀에서 그녀는 서서 유화를 그리고 있었다. 가끔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그와 사랑을 속삭였다.“경서 씨가 유화를 좋아하신다고 해서 일부러 배웠어요.”그리고 꿈에서 그녀가 구치소에 왔다. 그녀는 종래로 자신을 사랑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사랑한 적이 없다면, 그녀가 화류계의 여인이라면 어찌 쉽게 그의 함정에 빠지고 자살할 수 있을까...마지막에 나타난 것은 한 송이의 활짝 핀 장미였다.그녀는 작별 인사도 없이 룸의 문을 열고 단호하게 뛰어내렸다.그녀의 ‘경서 씨’와 작별 인사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경서 씨’와 한평생 살겠다고 했었다.심경서는 악몽 속에서 놀라 깨어났다. 온몸에 식은땀이 나서 등 뒤까지 서늘했다.그는 실크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왔다.마찬가지로 김이서도 잠들지 못했다. 어두움 속에서 옷을 주섬주섬 입는 소리가 들려와서 심경서가 외출하려는 것을 추측했다... 그의 애인과 작별 인사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어쨌든 김이서는 무서움에 벌벌 떨었다.심
박아영은 연경의 이마에 뽀뽀하고 나서 말했다.“저는 이만 갈게요. 연경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조은혁은 연경이를 안으면서 박아영을 위로해 주었다.“저희는 아이를 고생시키지 않고 잘 키울게요. 꼭 행복한 어린 시절과 미래를 줄 겁니다.”눈시울을 붉힌 박아영은 결국 떠났다....사흘 뒤에 조은혁은 심씨 회사에 찾아갔다.심경서에게 진실을 알려주려고 하였다.연경의 제대혈이 그 아들의 목숨을 구한 것인데 그는 은혜를 원수로 갚고 임윤아를 죽게 하였다... 그는 심경서는 사내대장부로서 어찌 한 여인을 이렇게 괴롭힐 수 있는지 따지려고 하였다.모든 것은 조은혁 자신이 한 것이었다.왜 자신에게 복수하지 않고 한 여인을 못살게 구는가?더구나 그를 위해 아이까지 낳은 여인이었다.하지만 심경서의 비서는 심경서는 밖에서 손님을 접대하고 있어서 자리에 없다고 하였다. 조은혁은 주먹으로 장소를 알아냈다.그가 클럽에 도착했을 때 심경서는 벌건 대낮부터 술에 젖어있었다.사치스러운 룸에서 심경서는 한 여인의 허벅지에 누워있었고 흰 셔츠의 단추 세 개가 활짝 열려 있으며 벨트도 느슨해 잠겨 있고 검은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다.여인은 말할 것도 없고 더욱 지저분해 보였다.방금 격렬한 정사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여인은 심경서에게 포도를 먹이고 있다. 한 송이의 수입 포도는 한 알 한 알씩 미인의 입을 통해 심경서의 입으로 들어갔다.심경서는 미인의 서비스를 누리고 있었다.젊은 여인의 눈매는 보면 볼수록 한 사람과 비슷해 보였다. 그러나 그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하기 싫었고 그냥 느끼고 싶었다.심경서가 다시 여인과 사랑의 교류를 하려고 할 때 누군가 문을 차고 들어왔다.조은혁이었다.매니저는 뒤에서 필사적으로 당기려고 했으나 조은혁은 얼마나 폭력적인 존재인가. 그는 사람을 바로 로비의 벽에 처박고 위협했다.“한마디만 더 나불대면 이 클럽을 부숴버릴 거야.”매니저는 온몸을 벌벌 떨었다.B시에서 조은혁은 염라대왕이라는 사실을 누가 모르는가? 그가 부숴버린
“내가 한발 늦었어요!”“윤아 씨를 살릴 수 없지만 적어도 당신을 통쾌하게 때릴 수 있죠!”...조은혁은 심경수의 옷자락을 거머쥐고 주먹질하기 시작했다.한 대, 또 한 대, 그는 거침없이 때렸고 심경서의 콧등마저 부러뜨렸다.그는 한 대 때리면 한마디 욕을 퍼부었다.마지막에 피범벅이 되도록 때렸고 자기 손바닥도 피투성이로 되었다. 하지만 그는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심경수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정신 차리게 때리고 싶었다.“!”심경서는 카펫 위에 쓰러졌다. 그는 숨을 크게 헐떡이었고 온몸은 피범벅이었다.조은혁은 또 세게 한 발 걷어차고 나서 침을 뱉었다.“당신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죽였어요.”끝으로, 조은혁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는 떨리는 손으로 담뱃갑과 라이터를 꺼내고 고개를 숙이면서 불을 붙였다. 심경서와 같은 쓰레기와는 더 이상 말하기 싫었다.그는 심경서가 찾아오기를 바란다는 말만 남기고 떠나버렸다.룸의 문이 열리고는 다시 세게 닫혀서 벽이 충격으로 웅웅 소리가 났다.심경서의 얼굴이 온통 피로 덮여 있으나 그는 웃었다.정말 통쾌하기 그지없었다.이 산송장 같은 몸이 마침내 감각을 되찾았다. 그도 통증을 느낄 수 있었구나!그런데 조은혁이 뭐라고 했지? 그를 찾아가라고?미쳤어?!그는 임윤아를 죽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자초한 일이 아닌가?자기는 왜 화류계 여인을 위해 묵념하고 슬퍼해야 하지?그녀가 그에게 진 빚이 있는데 왜 그가 미안해야 하는데...왜 빚진 것이 없다고 그래?그녀가 죽었으니, 그의 원한은 이제 누가 풀어주냐?심경서는 비틀거리면서 일어섰다. 그러고 나서 계속 술에 취하고 향락에 빠졌다......조은혁은 별장으로 돌아왔다.저녁 무렵에 아름다운 노을이 하늘을 뒤덮었고 2층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고용인은 엄수지가 방문하여 지금 위층에서 사모님과 함께 있다고 하였고 오늘 저녁에 어떤 요리를 드시고 싶은지 물었다...조은혁의 긴 손가락에 담배를 끼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엄수지는 떠보는 듯한 말을 남기고 밥을 먹고 떠났다.조은혁 부부는 둘만 남겨졌다.그들은 기분이 아직 무거웠다.조은혁은 창가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지는 않았지만, 그의 마음은 조금 죄책감이 들었다...임윤아는 너무 불쌍했다.조은혁은 예전에 그녀가 자신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받아들여 달라고 하던 모습이 생생했다.이 세상에서 그녀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너무 많았다.그중에서 심경서가 제일 심한 상처를 주었다.늦은 밤, 박연희는 남편에게 기대어 낮게 말했다.“집이 부족하지 않는데 연희에게 더 좋은 엄마를 맺어주고 싶어요. 연희의 생각을 잘 들어주고 연희를 존중해 줄 수 있는 사람이요.”조은혁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엄수지 씨를 얘기하는 거야?”“맞아요. 엄수지 씨는 믿음직하고 아이를 잘 돌볼 거예요. 연희에게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을 거예요. 수지 씨가 아이를 돌본다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조은혁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엄수지 씨는 성격이 너무 좋지. 그리고 너랑 꽤 친하니 만약 아이를 입양하게 된다면 너도 자주 볼 수 있고... 논의해 볼 수 있을 것 같아.”부부들은 서로에게 비밀이 없었다.박연희는 검은 하늘을 바라보며 처량한 표정을 지었다.“심경서가 너무 밉네요. 이렇게까지 독하다니!”“은혁 씨, 나는 이 아이가 사생아로 되기를 원하지 않아요. 이렇게 힘든 세상에 여자아이가 어떻게 살아남을가요...”“만약 엄수지 씨와 함께 자란다면, 그녀의 성격에 자신뿐만 아니라 연희 앞의 비바람도 함께 막아 주고 좋은 미래를 선물해 줄거예요.”...조은혁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함께 검은 하늘을 바라보았다.박연희의 두 눈은 눈물이 맺혔다.모든 건 그녀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기에 마음 속에 무거운 돌이 남겨진 듯한 기분이었다.연희의 앞날을 잘 생각해 주어야 임윤아에게 조금의 죄책감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조은혁은 그녀와 이마를 맞대며 깊은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연희야, 나도 앞으로 너에게 더 잘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