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자가 멘트를 마치자 심정희와 장씨 아주머니가 나란히 무대에 올라섰다.오늘, 심정희는 며느리를 얻게 되고 장씨 아주머니는 딸을 시집보내게 된다... 양가 어머니는 모두 환한 옷차림에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심정희는 일찍이 과거를 떨쳐냈고 이젠 그저 조은혁이 행복하기만을 바랐다.장씨 아주머니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줄곧 대표님과 사모님이 화목하기만을 간절히 바랐는데 지금 그들은 화목할 뿐만 아니라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까지 진행하게 되었다...그리고 뱃속에는 사랑의 결실이 들어있었다.장씨 아주머니는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렇게 그녀는 심정희와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결혼식장 직원이 차 두 잔을 가져다 놓았고 그들은 자단이 그려진 받침을 정성스럽게 내려놓고 오늘의 새사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래 하객들도 모두 숨을 죽이고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그리고 심지철도 멀리서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원래 그의 것이어야 하는 자리에 웬 엉뚱한 늙은 고용인이 앉아 부부의 인사를 받게 되는 것은 심지철에게 있어 말로 이룰 수 없는 큰 수치였다.박연희는 이제 정말 자신의 아버지와 인연을 끊은 것이다.도무지 견딜 수 없어 식장에서 나가려던 그때, 음악이 울려 퍼지고 심지철은 발걸음을 멈추고 무대 위를 바라보았다... 한 쌍의 아름다운 남녀가 두 손을 꼭 잡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남자는 말끔한 슈트를 차려입고 여자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어 그들의 모습은 마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정말 선남선녀가 따로 없었다...심정희와 장씨 아주머니는 너무 기뻐 인사를 받기도 전에 그들에게 돈 봉투를 건네주었다.그 모습에 박연희는 수줍은 듯 얼굴을 붉혔고 조은혁은 좌우에 각각 찻물을 한 잔씩 따른 뒤 그녀에게 건네주고는 양가의 어머니께 큰절을 올리며 인사를 드렸다... 심정희는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고 장씨 아주머니도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연신 입을 열었다.“그만 일어나세요.”사모님의 뱃속에는 아직 아이가 있는데 그녀가 어떻게
박연희의 눈가가 더욱 촉촉해지고 그녀는 그의 손바닥을 맞잡았다.이 길을 걸어오면서 그들은 마침내 진정으로 결합하게 되었다.그리고 이날, 하늘과 땅이 그들 사랑의 증인이 되었다.조은혁과 박연희는 영원히 동고동락하며 한마음 한뜻으로 살아갈 것이다....밤이 되고 조은혁은 하객들에게 찾아가 인사를 건네며 만취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 마지막엔 소꿉친구들이 직접 나서서 겨우 뜯어말릴 지경이었다... 그렇게 거의 반쯤 안은 상태에서 가까스로 부축해 6성급 호텔의 프레지던트 허니문 스위트룸으로 데려다주었다.스위트룸 문이 닫히자 조은혁의 취기는 순식간에 말끔히 사라져버렸고 그의 눈빛은 전례 없이 맑았다.같은 시각, 박연희는 거실에서 선물을 뜯고 있었다.마침 이지훈이 선물한 값비싼 금장 세트를 뜯고 있었는데... 비싼 것 말고는 다른 뜻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선물이었지만 조은혁은 질투가 나 죽을 지경이었다.그는 그 물건을 들고 위아래로 훑어보았는데 정말 할 말이 없었다.마지막으로 그는 소파에 앉아 매우 시큰둥하게 말했다.“이지훈은 예전에 조은서도 좋아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은서는 여전히 유선우의 아내였어. 그리고 또 얼마 전에 또 날 좋아했잖아... 그 사람은 뭐 다른 사람 아내를 좋아하는 게 취미래?”일부러 더 퉁명스럽게 말하는 것은 그저 아내가 그를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다.그러자 박연희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반박했다.“이지훈 씨가 저를 좋아할 때 저는 당신의 아내가 아니라 솔로였는데요.”“그럼 후회돼?”조은혁은 낮은 목소리로 웃으며 박연희를 가볍게 품 안으로 끌어안더니 그녀의 뒷덜미를 잡은 채 그녀에게 매달려 키스를 퍼부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키스한 후에야 조은혁은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후회해도 늦었어. 넌 이미 조은혁의 아내가 되어버렸어.”박연희는 그의 유치한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리고 박연희는 원래 남은 선물은 내일 뜯어보고 오늘은 먼저 샤워를 하고 화장을 지우려 했지만 그때, 손에 있던 상자에서 귀한
같은 시각, 호텔 복도에는 또 한 쌍의 옛정이 맺힌 커플이 있다.임지혜와 차준호는 호텔 안뜰의 협로에서 만나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난 그는 예전보다 훨씬 성숙해졌고 온몸에는 단호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오직 임지혜를 볼 때만은 약간의 진심을 드러내곤 한다.“지혜야, 오랜만이다.”차준호는 평소에 이런 인사치레를 하지 않지만 그들 사이에는 인사 치렛말 외에는 선을 넘지 않는 말이 없었다.반성훈이 세상을 떠난 지도 몇 년이 되었다.그리고 그도 아내와 이혼한 지 오래되어 그의 신변에 더 이상 장애가 될만한 것이 없었다. 하여 차씨 집안의 모든 것들이 이제 그의 손아귀에 들어와 있다... 그녀가 B시에 돌아온 후, 그는 의도적으로 그녀 곁에 나타나지 않았고 또한 조은서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며 매년 임지혜의 생일 때가 되면 정성껏 선물을 준비하여 그녀에게 보내곤 했다.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응답을 받지 못했다.오늘 밤, 차준호는 더 이상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들도 이제 젊은 나이가 아니었고 더 이상 허송세월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특별히 여기에서 임지혜를 기다렸던 것이다.늦가을, 임지혜는 또다시 차준호와 마주 보고 있다.한참 만에야 임지혜가 빙긋 웃으며 답했다.“오랜만이네.”그녀의 담담한 미소는 너무나도 평화로워 옛날의 불행 따위 보이지 않았고 단지 눈꼬리 한 군데의 가느다란 주름이 그녀가 더 이상 젊지 않음을 상징하고 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생기가 넘쳤던 것 같은데 말이다.차준호는 임지혜의 등 뒤에서 저도 모르게 마음속의 그 말을 내뱉었다.“만약 결혼하는 사람이 너였다면 난 분명 엄청 기뻤을 거야.”오랜 세월이 흐르며 두 사람 모두 셀 수 없이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짧은 몇 초와 몇 마디 말.차준호는 사실 그녀의 냉담함과 거절을 느낄 수 있었다. 똑똑한 남자라면 진즉 그만두고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겠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바랬던 순간인데 차준호가 어떻게 이렇게 얻기 힘든 기회를 놓칠
서운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박연희를 되찾은 그 날의 장면도 오늘 밤처럼 떠들썩했었다. 온 심씨 집안에 갖가지 장식품들을 걸어놓고 집안 곳곳에 유리 등을 걸어놓았었다...그렇다. 그 유리 등은 상당히 아름다웠다.추억에 잠긴 심지철이 서 비서를 불러와 유리 등을 가지고 놀고 싶다며 덤덤하게 한 개를 가져오라고 분부했다.서 비서는 어리둥절했지만 잠시 후, 심지철에게 차를 한 잔 끓여 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잊으셨군요... 저택 안의 유리 등은 지난번에 모두 깨뜨렸습니다.”“깨버렸다고? 한 개도 남기지 않았단 말이야?”서 비서는 차마 뭐라고 말하기 어려웠다.하여 심지철도 더 이상 묻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외로움을 느꼈다.시간이 흐르니 그도 의외로 외로워진 모양이다.박연희의 일 때문에 몇 년 동안 심경서와 암암리에 대립했고 심철산 부부도 그와 멀어졌으며 김이서는... 말할 가치도 없었다.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힘에 부쳐 눈을 감자 고용인이 갑자기 그에게 달려와 소식을 알렸다.“심윤 도련님께서 또 열이 나십니다.”그러자 심지철은 곧바로 슬픔에서 빠져나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또 열이 나? 애 엄마는?”그러자 고용인은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밖에서 접대하고 계십니다. 아마 사모님들과 카드놀이를 하는 것 같네요.”심지철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심경서 일이 터지고 김이서는 항상 밖에서 나돌아다니며 접대를 다녔고 오늘은 카드놀이에 내일은 춤을 추는 일상을 반복했다... 사실 그녀의 소문을 들은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눈감아 줬을 뿐이다....새벽 2시 반.일련의 정밀 검사 후 심윤은 급성 혈액 질환으로 초보적인 판정을 받았고 가장 좋은 치료법은 골수를 이식받는 것이다.혈액 병...심지철은 여러 산전 수고를 겪으며 늘그막에 또 타격을 입자 뜻밖에도 갑자기 복도 벤치에 주저앉아 오랫동안 일어나지 못했다.밤바람이 한바탕 몰아치며 온몸이 서늘하게 식어갔다.그때, 멀리서 여자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윤아,
VIP 병실 안, 심경서 부부는 아이를 지키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원래는 정말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이젠 그저 낯선 사람같이 느껴졌다.심윤은 병상에 누워 잠을 청했는데 잠자리가 상당히 불안했다. 이마에는 콩알만 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자는 내내 끊임없이 잠꼬대하며 부모를 찾았다.“엄마 아빠...”김이서는 그러한 자기 아들을 바라보며 가슴이 찢기는 기분이었다.“이제 병의 내력은 따지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한 가지만 약속해줘요. 심씨 가문에서 골수를 찾을 수 없다면 박연희와 조진범을 찾을 거예요. 그리고 박연희 뱃속의 그 애까지... 어쨌든 저는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을 거예요. 난 그저 우리 윤이만 살아나면 되니까.”그러자 심경서가 경악하며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이식하든 안 하든 그건 남의 자유야. 하물며 연희 씨는 임신까지 했는데.”“아이는 유산하면 돼요.”그 순간, 심경서가 김이서의 뺨을 내리쳤다.얼굴이 돌아가고 귓가에 윙윙 소리가 들렸다.그렇게 한참 후에야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는데 김이서는 얼굴에 침울한 기색을 띠며 가벼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경서 씨, 윤이는 우리의 아들이에요. 하나뿐인 우리 아들이라고요! 아버지가 될 생각조차 없었으면 아이는 왜 낳았어요?”그러자 심경서가 엄숙한 목소리로 그녀를 나무랐다.“나와 네 아이는 연희 씨와 상관없어. 연희 씨는 당신에게 빚진 거 없고 연희 씨 아이는 더더욱 당신에게 빚지지 않았다고.”그 말에 김이서는 완전히 미쳐버리고 말았다.“당신 아직도 박연희 생각하고 있어? 임윤아도 있잖아. 그 천한 년과 수백 번도 자지 않았어? 그런데 어째서 아직도 마음속에 그 망할 놈의 첫사랑을 품고 있는 거야? 결국, 붉은 장미는 백합을 이길 수 없나 보군요.”...김이서는 마음속의 말들을 전부 시원하게 털어놓았다.심경서는 원래 그녀를 상대하는 것조차 귀찮았으나 말할수록 더욱 의기양양해질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하여 심경서는 냉소를 금치 못하며 그를 비아냥거렸다.“최근의 일을 내가 정
그러자 진범이는 작은 얼굴을 찌푸린 채 김이서를 사납게 노려보았다.“그 사람은 내 엄마가 아니야. 피를 빨아먹는 모기야.”그 순간, 너무 화가 난 김이서의 예쁜 얼굴이 잔뜩 찌그러졌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인내심을 가지고 진범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자애로운 얼굴을 하고 가볍게 물었다.“우리 진범이 세상에서 제일 착하지? 지금 집에 있는 동생이 아파서 골수를 기증받아야 하는데... 진범이가 해줄 수 있겠어?”그러자 진범이가 언성을 높였다.“싫어요. 당신은 그저 피를 빨아먹는 모기일 뿐이에요.”진범의 담임선생님도 그 상황을 보고 다급히 다가와 그들을 말렸다.그런데 그때, 차를 타고 아이를 데리러 온 장씨 아주머니는 김이서가 아이를 꼬드기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고 장씨 아주머니는 바로 진범이를 끌어당겨 품에 가두고 김이서를 사납게 노려보았다.“무슨 일이세요? 심씨네 댁에서 먹을 것도 없어서 어린아이를 유괴하는 짓이나 하는 거예요?”“저 심씨 댁의 사모님입니다.”그러자 장씨 아주머니는 그녀에게 침을 뱉었다.“그럼 저는 조은혁의 장모님인걸요. 당신은 왜 그 쓸모없는 남편을 지키지 않고 허구한 날 우리 집에서 어슬렁거리는 겁니까? 알만한 사람은 당신이 또 진범이 피를 뽑으러 왔다는 것을 알겠죠. 그런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당신이 우리 집 조은혁을 꼬시러 오는 줄 알겠어요. 분명히 말해두는데 조은혁 씨는 지금 매우 가정적이고 게다가 당신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당신은 우리 집 사모님보다 한참 뒤떨어져 있으니까요.”장씨 아주머니는 공부를 한 적이 없어 말이 조금 무식하게 들렸지만 구구절절이 김이서의 정곡을 찔렀다.박연희보다 못하다고?그녀가 박연희보다 못한 게 뭐가 있단 말인가.그녀가 한창 화를 내고 있을 때, 장씨 아주머니는 이미 진범이를 꼭 껴안고 자리를 떠나 밝고 기개가 넘치는 고가의 캠핑카에 올라탔다... 떠날 때 장씨 아주머니는 김이서를 경멸하듯 쳐다보며 그녀에게 뻔뻔하다며 한마디 욕을 퍼부었다....장씨 아주머니는 쉽사리 화가 풀
조은혁이 말을 마치자 박연희가 얼굴을 붉혔다.매번 조은혁이 보상을 해주고 나면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게다가 임신한 몸일지라도... 조은혁에게는 그녀를 괴롭힐 방법이 항상 있었다.그러나 박연희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책을 주워 읽으며 시치미를 뗐다.“당신의 보상 따위는 필요 없어요.”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고귀해 보여 원래 조은혁은 그럴 의도가 없었지만 어느덧 또 그녀를 품속으로 끌어들여 계획을 말하도록 협박했다.조은혁의 품에 안겨 얇은 어깨에 느슨하게 걸쳐진 검은색 실크 잠옷 아래 훤히 드러난 투명한 피부는 마치 아름다운 유리 조각 같이 고혹적이었다.그녀는 그의 잘생긴 얼굴을 어루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계획을 말해주었다.박연희의 스킨쉽에 끔뻑 넘어가 버린 조은혁은 지금이라도 당장 그녀에게 보상을 주고 싶었다.이윽고 그는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넌 얼마든지 가서 판을 벌여. 내가 너의 든든한 방패가 돼줄게. 때가 되면 나도 너를 도울게.”...3일 후.B시의 김씨 가문에서 연회를 열었다.김씨 집안은 비록 전성기는 아니지만 김씨 집안의 인척은 대단했다. B시, 이곳에서는 설령 심지철일지라도 조금의 체면을 팔아야 했다.하여 김씨네 가문이 연회를 열게 되자 심씨 집안 전원이 연회에 참석하며 그들의 체면을 세워주었다.물론 심경서는 참석하지 않았다.저녁 8시.김씨 별장, 연회가 한창 무르익고 은은하고 감동적인 바이올린 음악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유명인사들은 귀부인들의 가는 허리를 잡고 무도장에서 춤을 추며 한 곡이 끝나면 미련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물론 심지철의 지위는 초연했다.심씨네 가족은 김씨 가문의 주인과 함께 앉아서 다과를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심경서에 관한 일에서는 김씨 가문을 이용할 수 있기에 심지철은 계속하여 그들의 곁에서 바람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김씨 가문의 태도는 모호하기만 했다.뜻대로 풀리지 않자 심지철도 점점 힘에 부쳤다.그때, 마당에서
아무런 인기척도 없이 고요한 밤.심씨 저택은 적막하기만 했다.2층의 메인 침실, 최민정은 드레스룸에서 옷을 정리하며 그녀가 평소에 입던 옷과 액세서리는 모두 두 개의 큰 상자 안에 넣어두었다...그리고 심철산은 밖에서 담배를 피웠는데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열 개 정도 담겨 있었다.최민정은 짐 정리를 끝내고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며 물었다.“철산 씨, 저와 함께 가지 않겠어요? 만약 당신이 나와 함께 간다면 우리는 여전히 금실 좋은 부부겠죠... 하지만 당신이 이곳에 남는 것을 선택한다면 저도 당신의 선택을 존중할 거예요. 하지만 우리 부부의 인연도 여기까지죠. 이 집은 더 이상 있을 수 없어요.”그녀는 심지철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진심으로 그를 아버지처럼 대했다.하지만 운명은 그녀를 조롱하기라도 하듯 이상하게 흘러갔다.최민정은 그 현명한 어르신이 사실은 이렇게까지 우매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자신의 건강을 해칠까 봐 목숨보다 더 아낀다던 친손자에게 골수를 이식해주지 않고 그를 죽게 내버려 두었다.심철산은 담배를 뻑뻑 피워댈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정말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최민정도 그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곧이어 고용인을 불러 분부했다.“아주머니, 제 짐을 차에 올려놓으세요.”그 말에 깜짝 놀란 임씨 아주머니가 다급히 물었다.“사모님, 어디 가십니까?”최민정은 수중에 재산이 있는 데다 친정집도 굴할 것 없는 가문이라 갈 곳이 없을까 봐 걱정할 일은 없었다.“먼저 호텔에서 지내고 추후의 일은 천천히 계획해 보려고요.”임씨 아주머니가 조마조마한 마음을 무릅쓰고 막 짐을 들려고 하자 그때 현관에서 심지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어디로 갈 건데? 왜, 이 집을 버리려고?”최민정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고는 곧이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여기가 집이라고 할 수 있나요? 모든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저는 이제 잘 모르겠어요. 어르신은 우매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며, 경서는 밖에서 바람이나 피우고, 김이서 씨도 여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