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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2화

이미 지난 일이라 마음에 담아 두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끔 그 기억을 상기시킬 때는 마찬가지로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여기서 뭘 더 할 마음도 싹 사라져 버렸던 박연희는 조은혁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난 내려가서 봐야겠어요!”

처음에는 못 나가게 박연희의 허리를 잡고 있었던 조은혁도 결국 손을 풀고 그녀를 보내주었다.

간단히 채비를 마친 박연희가 방을 나서자 장숙자가 옆에서 응원을 해주기 시작했다.

“사모님, 무서워할 거 없어요. 그 여자는 이미 끈 떨어진 연이잖아요. 봐요, 대표님은 보러 나오시지도 않으시는데.”

“대표님 보겠다는 말은 안 했잖아요.”

“아, 그러네요...”

웃으며 말하는 박연희에 장숙자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캐리어와 함께 거실에 서 있던 진시아는 2층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발그레한 볼과 이마에 맺힌 땀방울, 박연희가 뭘 하다 내려왔는지 성인들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조은혁이 집에 있다는 생각에 잠시 놀랐던 진시아는 이내 웃음을 흘렸다.

애초에 박연희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 온 것이니 조은혁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진시아는 박연희가 1층에 내려온 걸 보고서도 앉을 생각을 않고 말했다.

“나 이번엔 진짜 갈 거야, 그리고 다신 안 와. 고마워, 박연희. 그리고 전엔... 내가 미안했어.”

진시아는 저를 살려준 박연희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연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시아가 이렇게 떠나면 더 이상 조은혁도 진시아를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아니, 감히 신경 쓰지 못 할 것이다.

박연희에게 허리 굽혀 인사한 진시아는 고개를 들었다.

끝까지 듣지 못한 용서의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애초에 박연희의 용서를 바라는 것 자체가 사치였기에 진시아는 체념하고 돌아서려 했다.

그때 박연희가 용서 대신 다른 말을 했다.

“이제 어디로 갈 거야?”

진시아는 발걸음을 멈추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벨린, 나는 벨린으로 갈 거야.”

둘이 약속했던 그곳에 진시아는 홀로 가 다시는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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