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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1화

심씨 어르신은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

"너의 과대망상이 그 여자를 해쳤어."

심경서가 미친듯이 웃었다.

"과대망상이라고요? 사람을 좋아하는 게 틀린 건가요? 저는 단지 한 사람을 좋아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자신이 마음을 감추지 못한 것뿐이라고요. 그녀를 사랑했을 뿐이에요. 할아버지가 그 사람이 싫다 하여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과 결혼했잖아요. 이 사람과 잠자리할 때 약까지 먹어야 해요. 이 사람에게 성욕이 없으니깐요."

"경서,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심씨 부인이 눈물을 흘렸다.

여러 해 전의 일이었지만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심경서 마음속의 비밀이었기에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이 없었다. 하하그가 직접 대놓고 모든 생각을 입 밖에 입 밖으로 내보냈다.

미친것인가.

심경서는 부드럽게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한마디 내뱉었다.

"엄마, 미안해요. 더 이상 집에서 살기 싫어요. 더 이상 트루먼 쇼에서 살기 싫어요."

그의 말에 뒤에 서 있던 심씨 어르신이 무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네가 많이 컸구나. 밖에 나가면 더 어려울 거야. 네가 살 수나 있을 줄 알고?"

심경서는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들어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심씨 가문에 있는 게 치욕스러워요."

심씨 어르신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4년 동안 심경서 때문에 걱정되어 밤잠 이루지 못한 날이 얼마였던가.

어르신은 그를 어렵게 전임 자리까지 올려놓았고 심경서도 잘 따라왔다.

하지만 박연희가 다시 귀국하자 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심경서가 문밖으로 달려 나갔다.

김이서는 처참하게 소리 지르며 그를 따라 나왔다.

"심경서, 빨리 돌아와!" 어두운 야밤에 그녀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하지만 심경서의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결국 떠났다.

자신의 아내에게서 벗어났다.

그녀를 버린 것이다.

그는 약을 먹어야만 그녀와 잠자리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건 김이서 같은 규수에게 얼마나 큰 치욕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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