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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6화

한참이 지나 박연희는 정신을 차리고 비서를 불러 그녀 대신에 손님을 접대하라고 당부하고는 심경서를 데리고 개인 사무실로 갔다.

분명히 가족이었지만 분위기가 미묘하게 가라앉아있었다. 박연희는 커피를 내리며 가볍게 물었다.

“아메리카노 괜찮죠?”

심경서는 싱글 소파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박연희가 한가한 시간에 그린 그림들이 사처에 널려있었고 코끝에는 그녀의 몸에서 나는 은은한 향수 냄새가 남아있었다. 지금 그는 고모라는 말이 더는 입에 떨어지지 않았다.

심경서는 박연희의 뒷모습을 보면서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송도윤의 일에 대해서 아버지가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에요. 아버지는 저를 시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제가 아직도 그 마음이 남아있는지를요.”

커피를 내리는 박연희의 행동이 한 박자 느려졌다. 그녀는 뒷모습을 보인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서 씨, 어르신께서 경서 씨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데 대해 제가 기뻐해 줘야 하지만... 제가 아무 이유도 없이 이 일과 관련이 있게 되어 아주 난감해요. 그러니 돌아가서 어르신께 전해주세요. 앞으로는 이런 일을 더는 벌이지 마시라고요.”

커피가 다 내려지고 커피 향이 방을 가득 채웠다. 박연희는 커피를 심경서에게 건네주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일과 마찬가지예요.”

심경서는 곧은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런 장면들에 잠식된 지 오래된 탓인지 그의 심성과 눈빛은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박연희가 기억하는 심경서의 모습은 단정하게 차분했으며 책을 볼 때 모습이 멋있었다.

요즘 황 사모님한테서 들었던 심경서 전무님의 일 처리 방식과 지금 그의 모습을 보면 28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침울해 보였다. 물론 심경서의 겉모습은 여전히 멋있고 분위기가 넘쳤지만 제일 좋은 시절의 심경서가 어떤 모습인지 보았던 사람으로서 그녀는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박연희는 심경서의 맞은 편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오래도록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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