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혁은 박연희가 B시를 떠난 것을 모르고 있다.하여 거의 매일 2시간씩 이탈리아 식당에 가서 저녁노을을 보고 황혼이 점차 대지를 뒤덮어 마지막 한 줄기 빛이 삼켜질 때까지 앉아 있곤 했다.그는 매일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렸다.하지만 박연희는 이미 출국했는데 어떻게 그와 만날 수 있겠는가?시간이 오래되어 그는 그날 밤의 온기가 지난 후 그녀가 후회했다고 생각했다. 박연희는 조은혁과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그를 피하고 있는 것이라고.한 달이 가고...설마 조민희도 그리워하지 않는단 말인가?조은혁은 심씨 저택에도 한 두 번 찾아간 것이 아니다.그러나 지금의 조은혁에게 있어 심씨 가문의 문턱은 미처 닿을 수도 없이 높았다. 그는 심지철을 만날 수 없었고 심철산 부부도 만나볼 수 없었다......그해 늦여름.조은혁의 간은 정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하였고 결국 조은서가 강제로 그를 병원에 입원시켜 수술하고 요양하게 하였다.장씨 아주머니도 다시 그에게 돌아왔고 그녀는 변함없이 조은혁 부녀를 돌봐주었고 조은혁은 가끔 그녀에게 박연희의 행방을 물었지만 장씨 아주머니도 아는 것이 없었다.YS 병원 VIP 병동.조은혁이 수술을 마친 지 사흘째 되던 날, 장씨 아주머니는 그를 위해 닭백숙을 끓여와 한 손으로 조민희를 껴안고 병문안을 왔다.조민희는 작은 꽃무늬 치마를 좋아한다.그녀는 병상 옆에 앉아서 아기자기하게 혼자 놀고 있는데 그 모습은 마치 뽀글이 인형같이 귀여웠다.장씨 아주머니는 조은혁의 시중을 들며 한편으로는 그가 자신을 아끼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했다.“아가씨가 기어코 대표님을 몰아세우지 않았다면 대표님은 여전히 자신의 몸을 제대로 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에는 그렇게 행패를 부리며 여자를 괴롭히더니 이제야 업보가 찾아왔겠지요.”그러자 조은혁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제가 다친 것은 간이지 신장이 아닌데요.”장씨 아주머니가 콧방귀를 뀌었다.“계속 날뛰면 간이 아니라 신장도 망치겠죠.”조은혁은 더 이상 아무 소리도
거리에는 오색영롱한 불빛이 번쩍이고 있었고 양옆의 상가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으며 공기 속은 여가수의 허스키하고 서글픈 노랫소리로 가득 채워졌다.단지 이 도시에는 그의 연희도, 진범이도 없을 뿐이다.떠들썩한 거리와 달리 조은혁은 잠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홀로 거리에 서 있었다.그 순간, 그는 심경서를 보았다.심경서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선을 보고 있었다. 그와 선을 보게 된 여인은 지적인 여성으로 외모는 그다지 놀랍지 않지만 관상이 좋고 기품이 상당히 우수해 보였다.양가 부모님들도 아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조은혁은 아무런 말도 없이 밖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그는 심경서의 의기양양한 모습과는 달리 눈에는 생기 하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그렇게 조은혁은 심씨 가족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심철산 부부는 그를 보고 매우 놀랐지만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은혁은 심경서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몇 마디 묻고 싶은 게 있어요.”심경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부모에게 말을 건넸다.“차 안에서 기다리세요.”옆 사람 없이 조은혁과 심경서는 하늘을 뒤덮은 네온 아래 마주 섰고 심경서는 조은혁의 붕대를 바라보며 먼저 입을 열었다.“방금 수술하셨다면서요.”조은혁은 예의상의 인사치레도 덜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연희는 어디에 갔습니까? 언제쯤 돌아오는 거죠?”그러자 심경서는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그때, 마침 선을 본 여자의 차가 그들의 앞을 지나갔고 여자아이는 심경서와 작별을 고하자 특별히 차창을 내렸다. 이에 심경서도 그녀를 향해 점잖게 웃어주며 매우 부드럽고 다정하게 그녀에게 안전운전하라고 말해주었다.하지만 웃을 때 그의 눈에서는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싸늘하기만 했다.차가 떠나자 심경서는 차 꼬리의 방향을 보며 중얼거리며 뜬금없는 말을 늘어놓았다.“잘 지내요. 곧 결혼하겠죠.”조은혁은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들려온 결혼 소식에 어리둥절 해졌다
조민희는 26이라는 숫자가 적혀있는 촛불을 꽂아두었다. 그리고 조은혁은 문을 열자마자 그 광경을 보고 순간 전기 충격을 받은 듯 심장이 찌릿하며 아파 났다.그는 시간이 지나면 조민희가 박연희를 잊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조민희는 결코 박연희를 잊지 않았고 그녀는 자주 어머니의 근황에 관해 물었다... 엄마 어디 갔냐고, 엄마 언제 오느냐고 말이다.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고 날이 갈수록, 해가 갈수록 그들은 계속하여 박연희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이듬해 박연희의 생일에 그는 조민희를 데리고 하와이에 갔다.그 이듬해 박연희의 생일에 그는 JH 빌딩을 다시 사들였고 그들이 살던 별장도 전부 사들였다. 그리고 그해 조은혁의 자산은 다시 정점을 찍었고 그는 다시 심씨 집안과 겨룰 수 있게 되었다.그해 심경서의 부인이 아들, 딸을 낳게 되었고 아이가 만 한 달이 되자 조은혁은 조민희와 함께 축하 연회에 참석했고 그는 심경서의 아이에게 큰 돈 봉투 두 개를 쥐여주었다.심경서의 아내인 김이서도 조민희에게 큰 돈 봉투를 쥐여주며 조은혁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었다.그해 조민희는 어느덧 이미 4살이 되었다.가녀리고 예쁜 아가씨가 되어 아빠 팔에 안겨있는 조민희의 모습에 얼마나 많은 아가씨가 부러워 죽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조은혁은 그녀의 목에 걸려있는 평안 부적을 살짝 건드리며 입을 열었다.“민희가 아주 어렸을 적, 그녀의 외할아버지가 준 부적이죠...”김이서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심경서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있었다.바로 그때, 심지철과 심철산 부부가 뒤늦게 도착했고 심지철은 조민희의 목에 걸린 평안 부를 보고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는 한참 동안 그 물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박연희한테 신분을 밝혔던 그 날을 떠올렸다... 사람들의 떠들썩하고 시끌벅적한 말소리가 장내를 가득 채웠다.그날 그는 박연희를 직접 손바닥에 받들었다.그가 높이 치켜세울수록 경서와 그녀 사이에서 경서를 선택한 것이 얼마나 무자비한 선택인지 뼈저리게 다가왔다..
검은 우산과 검은 드레스는 빗속에서 한 폭의 아름다운 수묵화를 그려냈다.4년 만에 박연희는 드디어 다시 B시로 돌아왔다.그녀가 B시로 돌아온 다음 날, 물건을 정리하던 중 그녀는 문득 4년 전, 조은혁이 그녀에게 중요한 일이 있다며 만나자고 했던 그 날을 떠올렸다.그해, 박연희는 어쩔 수 없이 떠나야만 했다.사실 박연희는 단 한 번도 그 약속을 잊은 적이 없지만 변고는 항상 계획보다 더 빨리, 맹렬하게 찾아온다... 그에 비해 조은혁에 대한 그녀의 사소한 옛정은 참으로 보잘것없이 느껴졌다.잔잔한 아쉬움도 있고 미련과 걱정도 있지만 박연희는 후회하지 않았다.지난 몇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다시 이 식당을 찾은 것은 그 시절의 아쉬움을 달래고 과거의 자신과 작별인사를 하려는 이유가 컸다... 4년 동안 그녀는 이제 그들도 서로 마음을 놓아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비는 계속해서 추적추적 내리고 길바닥에 생긴 물웅덩이가 번쩍번쩍 빛나며 사람들의 그림자를 비추었다.그때, 누군가의 어슴푸레한 얼굴이 비치고 조은혁은 순간 온몸을 흠칫 떨었다.그는 자신의 두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 가느다란 실루엣을 바라보니 모든 충동이 순식간에 격앙되고 분명 하늘과 땅 사이는 아무런 소리 하나 없이 고요하지만 그의 귓전은 귀청을 찢을 듯 거세게 울려 퍼졌다.그녀가 돌아왔다!박연희가 돌아왔다!박연희가 정말 뜻밖에도 돌아왔는데...그녀는 의외로 이곳을 기억하고 있다. 박연희는 조은혁이 그해 그녀와 이곳에서 만나자고 했던 약속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4년이나 늦어버렸다... 4년, 그 사이 얼마나 많은 상전벽해를 겪었는가. 4년 동안 그는 여기에 몇 번이나 왔는가.박연희가 드디어 돌아왔다.그녀는 이렇게 평온하게 그의 곁을 스쳐갔고 마치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리고 4년 동안의 이별이 모두 환상이었던 것처럼 그의 앞을 지나쳤다...무언가가 뜨겁게 떨어질 것만 같았다.조은혁은 황급히 머리를 쳐들고 그 무언가가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이윽고
박연희는 마음이 아파왔다. 아까 이지훈과의 통화에 조은혁이 오해했음을 알아챘다. 스위스에서 이지훈이 박연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기에 그들은 자주 만났었다. 이번에 그녀가 진범을 데리고 귀국한 사실을 이지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연희는 별다른 설명을 붙이지 않았다. 그녀에게 이지훈은 지나간 과거였다. 여인의 침묵은 대체적으로 침묵으로 끝난다. 귀에 거슬리는 브레이크 소리를 내며 황금빛 차량이 도로변에 멈춰 섰다. 밤공기와 더불어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조은혁은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았다. 차유리너머 와이퍼가 좌우로 움직였지만 시야는 여전히 흐릿했다. 한참이나 지나 그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담배 연기가 차 안에 자욱했고 그의 향수 냄새와 뒤섞였다. 조은혁은 천천히 담배 반대를 피우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검은 두 눈동자는 수많은 질문을 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그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조은혁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남자가 있는데 레스토랑에 왜 간 거야? 예전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한 거야?”박연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달빛 아래 그의 얼굴과 말투는 점점 심각해졌다. “말해.” 박연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한참이나 지나서야 그녀는 입을 열고 나지막이 말했다. “우연히...우연히 만난 거예요.” 차 안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 조은혁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마치 죄인을 심문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꿰뚫어 보았다. 그들이 다시 대면한 그날의 분위기는 사실 좋지 않았다. 박연희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입을 열었다. “운전해요.”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았다.“민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없어? 네가 그렇게 떠나가면 민희는 네가 걔를 버린 줄 알아. 그래서 밤중에 계속 울면서 깨. 그때 왜 떠난 거야? 나랑 다시 재결합하고 싶지 않아서 민희도 버리고 떠난 거야?”“아니에요. 그건 아니에요.” “그럼 뭔데?” ...박연희는 고개를 돌려 조은혁의 조각 같은 얼굴을
조은혁은 불도 켜지 않고 침대맡에 앉았다.그저 담담한 눈빛으로 자신의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손을 뻗어 천천히 진범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진범은 몸을 뒤척거려 이목구비가 더욱 나타났다. 진범의 수려한 이목구비는 20대 초반의 박연희와 너무나도 닮았다. 갑자기 생각난 기억들은 조은혁의 심장에 비수처럼 날아와 아파왔다. 그는 상처를 품고 살았다. 4년이나 지나 그는 이미 명예와 부를 이루었다.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의 상처는 이미 아물었다고 생각했고 그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박연희와 다시 만나자 그의 상처는 다시 곪기 시작한 것이다. 조은혁은 오래 머물지 않고 빨리 떠났다. 박연희는 창가에 서서 그런 그를 내려다보았다. 조은혁이 오피스텔을 나와 차에 들어갈 때까지 박연희는 조용히 쳐다보았다. 조은혁이 떠나자 그녀는 진범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어두웠지만 그녀는 침대맡에 놓인 수표 한 장을 발견했다. 박연희는 조용히 스탠등을 켰다. 수표에 적힌 날자는 그들이 약속한 날짜보다 더 전이었다. 순간 박연희는 가슴 속에서 통증을 느꼈고 그 통증은 서서히 서서히 퍼져갔다. 이 수표를 조은혁은 4년이나 몸에 지니고 다녔단 말인가. ...이튿날. 박연희는 진범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갤러리에 들렀다.몇 년간, 황 사모님이 도움 속에서 갤러리를 문제없이 경영할 수 있었다. 박연희는 황 사모님에게 20프로의 지분을 주었고 둘은 그렇게 사업을 시작했다. 황 사모님과 만나 박연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은혁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황 사모님은 커피를 저으며 빙그레 웃었다.“몇 년 동안 그 사람은 정말 스캔들 하나도 없었어요. 그러다가 최근에 젊은 아가씨가 접근했다고 하드라고요. 우리 집 아저씨 말로는 미용원 출신 아가씨라고 하던데, 그런 사람을 옆에 두는 게 너무 이상해요.” 황 사모님은 생각하다가 또 말을 이었다.“하서인이라고 했었던 거 같은데...” 박연희는 낮게 웃었다. 황 사모님은 그녀의 손을
달큰한 차를 마시고 있었지만 심지철은 쓰게 느껴졌다. 4년이나 만나지 못한 딸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이미 돌아온 지 며칠이나 지났는데 왜 진범일 데리고 집에 돌아오지 않는 거냐.” 박연희는 서비서에게 눈짓을 주었다. 서비서는 그 뜻을 알아채고 몸을 일으켜 먼 곳으로 갔다. 박연희는 다시 시선을 거두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러고 싶지 않네요.” 심지철은 심기가 불편했는지 목소리를 더욱 낮게 깔았다.“무슨 뜻이냐. 심경서는 이미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어. 그리고 그 일은 이미 지난 일이야. 누구도 다시 거론할 사람이 없어. 연희야, 네가 나를 미워한다는 걸 잘 알아. 하지만 나도 그때 사정이 있었어. 집으로 돌아와라. 애비도 이젠 늙어서 네가 옆에 있어 줬으면 좋겠어.” 박연희는 천천히 손에 든 찻잔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경서가 잘 지내고 있고 모든 일이 잘 되고 있잖아요. 제가 다시 돌아가서 폐를 끼치고 싶진 않아요.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아요.”박연희는 쓰게 웃었다. “더 이상 감정싸움 하고 싶진 않아요.” 박연희가 그때 떠나간 것은 심지철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날 이후 그녀는 심씨 딸이 아니었고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빚진 감정이 없게 된 것이다. 박연희는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심지철은 그녀의 뜻을 알아챘다. 그도 더 이상 박연희에게 강요하지 않고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부탁했다. “돌아와서 살지 않아도 된다. 한 가족이니 모여서 밥이라도 한 끼 먹자. 몇 년 동안 네 오빠와 형수가 너랑 진범을 많이 그리워했어.” 박연희도 마지못해 알겠노라 동의했다. 심지철이 떠나고 박연희는 혼자 그 자리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주말 저녁. 박연희는 혼자 한식집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이번 모임에 심경서 부부를 제외한 심씨 사람들만 참석하는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식집에 들어가자 보이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송도윤 가족이 떡하니 앉아 있는 것이었다. 박연희를 보자 심철
심지철이 천천히 다가왔다. “우리 심씨 가문 일에 조 대표는 끼어들지 마세요.”조은혁은 박연희의 팔을 자신에게로 힘껏 끌어당겼다. 그는 심지철의 냉철한 눈을 바라보며 그 기세에 맞서 입을 열었다.“이 사람과 저는 부부가 아니어도 우리는 한 가족이에요. 그리고 이 사람은 내 아이 엄마이기도 하고요. 이 점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거예요.”...심지철은 그의 말에 냉소했다. “그러면 조 대표는 우리 일에 굳이 끼겠다는 뜻이군요.” 조은혁도 차갑게 웃어 보이고는 반강제적으로 박연희를 끌고 나갔다. 송도연 가족도 분위기가 싸해져 급히 자리를 떴다. 룸안은 적막으로 가득 찼다. 심지철은 얼굴빛이 어두워져 심경서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네가 아직 걔한테 마음이 있는 거냐? 네가 결혼하고 애를 낳은 몸인 것을 잊은 것이냐? ...이렇게 경고망동 해서야. 내가 어찌 내 자리를 너에게 물려 주겠나.” 심경서도 차갑게 맞받아쳤다. “그럼 당신은요? 내가 부인과 자식을 잊었다고 했는데 당신은 체통을 잊으신 건가요? 당신은 아버지란 사실을 잊은 건가요? 당신이 다른 여자와 놀아나 연희가 태어났잖아요. 연희가 정말 당신 딸이 되고 싶은 줄 알 아세요? 걔가 정말 돌아오고 싶은 줄 아시냐고요. 지금 밖에서 잘살고 있는데 왜 돌아오시라고 한 거에요? 보고 싶어도 가만히 있어요. 그게 심씨 가문의 명예에 먹칠하지 않는 길이에요.” ...심경서가 말을 마치자마자 심지철이 그의 따귀를 때렸다.그때 문 앞에서 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건 바로 심경서의 아내 조정윤이었다. 늦은 밤 남편이 갑자기 집을 나가자 그녀도 걱정되었는지 따라 나온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조정윤은 깜짝 놀랐다. “경서 씨!” 룸은 화려한 빛이 넘실거렸다. 심경서의 눈빛은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그 모습의 조정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 조은혁은 박연희를 이끌고 화장실로 들어왔다. 너무 큰 힘을 쓰는 바람에 그녀의 몸은 문에 부딪혔다. 그는 익숙한 듯 문을 잠갔다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