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후 차는 별장에 들어섰다. 이건 그들이 한동안 지내던 별장이었다. 다시 돌아오니 박연희는 감회가 새로웠다. 뒷좌석에서 내리자마자 한 소녀가 품으로 안겨 왔다. “아빠!” 민희가 조은혁의 다리를 껴안고 애교를 부렸다. 조은혁은 한 손으로 민희를 안아 들고 차 안으로 들어와 자신이 다리 위에 올려 놓았다. 차 안은 매우 조용했고 민희는 아빠의 품에 안겨 조심스럽게 박연희를 힐끗 바라보았다. 아직 엄마를 기억하는 것이다. 하지만 4년이나 떨어졌기에 민희는 엄마가 조금 낯설었고 엄마라고 부르기도 쑥스러웠다. 박연희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오랫동안 가지 않은 고향에 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조은혁이 민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박연희를 힐끗 보았다. “안고 싶지 않아?” 박연희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안고 싶어요.” 그녀는 손을 뻗어 조은혁에게서 아이를 건네받았다. 박연희는 민희를 품에 안았다. 그녀의 품에 파고드는 어린아이의 몸은 마치 새끼 고양이 같았다. “엄마...” 박연희는 그런 민희를 더욱 꽉 끌어안고 그녀의 작은 얼굴에 입 맞추었다. 민희는 엄마의 사랑을 느끼며 꺄르르 웃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박연희 품에서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박연희는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조은혁을 바라보며 그가 아이를 달래주기를 원했다. 어둠 속에서 조은혁은 표정 변화 없이 입을 열었다. “4년 전에 네가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났었지? 그런데 이미 4년이나 흘렀어. 근데 우는 아이를 달래기도 싫은 거야? 아니면 새로운 연인이 생겨서 아이를 갖기 싫은 거야?” “아니에요.” 박연희는 조금 울먹거리며 민희의 얼굴에 자신 얼굴을 갖다 대었다. 그렇게 소리 없이 아이를 위로해 주었다. 차에는 적막과 함께 아이 울음소리만 들려왔다. 조은혁은 그렇게 한 참이나 박연희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망울은 검은 바다와 같이 그윽했고 그동안의 고통과 인내, 그리고 그녀에 대한 갈망과 원망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박연희는 민희를 밤새 껴안고 뽀뽀하고 싶었다. 커피머신에서 원두를 가는 소음이 들렸다. 조은혁은 아무런 말 없이 옆에 앉아 있었다. 외투를 벗은 길쭉하고 건장한 그의 몸은 셔츠에 감싸져 있었다. 어깨는 딱 벌어지고 허리는 가느다랬다. 장씨 아줌마의 말을 빌면 그를 밖에 놔두면 아마도 아름다운 나비들이 하루 종일 꼬일 것이다. 그는 커피를 담은 잔을 가지고 와 퉁명스럽게 말했다. “민희 숙제나 봐줘.” 민민희는 입을 삐쭉 내밀며 기분 나쁜 기색을 띠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도 박연희는 사랑스러웠다. “숙제하는 게 싫어?” 민희는 그녀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나 할 줄 몰라.” 박연희는 더 생각하지 않고 민희의 문제집을 펼쳤다. 그 순간 그녀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모든 문제가 빨갛게 물들어 있던 것이다. 제일 간단한 1 +1 문제도 민희는 답을 3으로 적었다. 그것도 몇 번이나 수정한 뒤의 답이었다. 수학뿐만 아니라 국어도 마찬가지였다. 박연희는 그제야 조은혁이 민희 숙제를 봐주라는 이유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가 고개를 들자 그의 끝을 알 수 없이 그윽한 눈과 마주쳤다. 그는 계속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박연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말해준 적 없잖아요.” “어떻게 말해주는데?”조은혁이 얼굴은 불빛 아래서 차갑기 그지없다. 그는 흔들리는 박연희를 쳐다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4년 동안 넌 아무런 소식도 없었어. 박연희, 네가 나한테 말해줘. 내가 어떻게 알려줘야 돼?” 그의 대답은 분노로 가득 찼다. 그의 말에 박연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품에 안긴 민희가 불쌍한 눈빛으로 아빠를 바라보며 울먹거렸다. “나는 멍청이야...” 박연희는 그런 민희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민희를 끌어안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애가 놀랐잖아요.” 조은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다른 말을 더 하려고 했지만 결국 말을 삼키고 아이 앞에
박연희는 담담히 웃었다. “당신 말이 맞아요. 누구도 기다릴 필요는 없죠. 나도 기분이 나쁘다거나 질투가 나는 게 아니에요. 축하해요, 여자 친구가 너무 젊고 이쁘던데요.” 조은혁은 아무런 표정 없이 답했다. “고마워.” 그들은 그렇게 헤어져야 했다. 박연희는 저도 모르게 아쉬움이 남았다. 이 집은 예전에 자신이 지냈던 집이었지만 조은혁이 이미 새 여자 친구가 생겼으니 그녀는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었다. 조은혁도 그런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거실에서 민희는 테이블 앞에서 눈물을 머금은 채 숙제를 하고 있었다. 박연희가 다가오자 민희는 일어나 그녀의 옷자락을 붙들고 애교를 부렸다. “민희는 멍청하지 않아요.” 민희는 엄마를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다. 엄마랑 함께 자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멍청하면 엄마가 싫어할까 봐 아이는 불안해했다. 박연희가 어떻게 민희를 좋아하지 않겠는가. 그녀는 민희를 품에 한참이나 안고 조은혁에게 말했다. “며칠 저희 집에 데려가고 싶어요. 괜찮아요?” 민희는 귀를 쫑긋 세우며 ‘범진 오빠’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박연희는 계속 말을 이었다. “범진과도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어요. 일주일 후에 데려다줄게요.”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 조은혁은 냉정하게 답했다. “보고 싶으면 범진을 데리고 와. 그리고 민희의 숙제도 도와주고.” 박연희는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는 벌써 차 열쇠를 가지고 외투를 입었다. “데려다줄게.” 박현의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조은혁은 그녀에게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고 밖으로 이미 나갔다. “엄마...” 민희는 불쌍하게 쳐다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새끼 고양이와도 같았다. 민희는 엄마랑 같이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범진 오빠도 보고 싶었다. 박연희도 그런 민희가 마음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민희를 안고 낮게 말했다. “엄마가 다음에 다시 올게.” 그녀가 나가자 민희도 그녀를 뒤따라 달려 나왔다. 박연희가 몸을 돌리자 민희도 그
앞에 신호등이 빨간불로 변하자 조은혁은 차를 멈추며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 내가 결혼한다면 내 아내가 민희를 잘 돌봐줄 거야. 학대할까 봐 무서워?” 말을 마치고 그는 고개를 돌려 박연희를 쳐다보았다. 박연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녀는 얼굴을 좌석에 깊게 기대였다. 그리고 탐스러운 머리카락이 그의 팔에 닿았다. 비록 옷에 가려졌지만 조은혁은 참을 수 없는 간질간질한 느낌을 받았다. 조은혁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20분 후, 그는 차를 그녀의 오피스텔 아래에 멈추었다. 그는 올라가지 않고 주말에 같이 밥을 먹자고 약속을 잡았다. 박연희는 곧바로 승낙하지 않았으나 조은혁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 “걱정하지 마. 우리끼리 밥을 먹는 거니까. 다른 사람은 오지 않을 거야. 너도 다른 사람 데리고 오지 말았으면 해.” 박연희는 그대로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오피스텔로 돌아온 후 그녀는 벽에 기대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민희를 생각할 때마다 ‘자신을 멍청하다’고 하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하서인도 떠올랐다. 그녀는 조은혁과 하서인이 벌써 동거를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하서인이 민희에게 평상시에 잘 대해 주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걱정이 되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그녀가 민희를 버렸다는 조은혁의 말에 그녀는 반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 조은혁은 운전하여 다시 별장으로 돌아왔다. 차가 멈추자 장씨 아주머니는 얼굴을 굳힌 채 밖에 서 있었다. 몇 년 사이에 장씨 아주머니의 지위는 점점 높아져 그녀는 대놓고 조은혁에게 말했다. “그렇게 원하던 사람이 왔는데 그게 무슨 태도에요?” “내 태도가 어때서요?” 조은혁이 차 문을 열고 내리지 않은 채로 의자에 기대어 담배를 한 대 물었다. 장씨 아주머니는 그런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사람이 집에 왔는데 밥이라도 먹여서 보내면 안 돼요? 그리고 말투
깊은 밤, 조은혁은 안방으로 돌아왔다. 넥타이를 풀고 씻으러 들어가려던 참에 고개를 든 그는 민희가 새끼 젖소 잠옷을 입고 큰 침대에 엎드려 자는 것을 보았다. 작은 엉덩이가 씰룩쌜룩하며 강아지처럼 귀여웠다. 조은혁은 넥타이를 곁에 놓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민희가 그의 곁으로 굴러와서 한쪽 다리를 안고 애교를 부렸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 한숨을 내쉰 조은혁이 아이의 작은 몸을 들어서 품에 안았고 아이는 아빠의 복근을 만지며 놀고 있었다. 조금 지나자 하얗고 귀여운 얼굴이 만두처럼 찡그려졌다.“아기는 바보예요.”아이의 작은 몸을 안고 있던 조은혁은 마음속으로 슬픈 기분이 들어 민희에게 입을 맞췄다. 민희가 두 살이 될 때 장숙자가 아이들의 책을 사와 민희에게 글과 숫자를 가르쳤지만... 민희는 아무리 해도 배워내지 못했다. 100번을 시도해도 다 실패로 돌아갔다. 하여 조은혁은 민희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지능 발달에 대해 검사를 했는데 민희의 IQ 수치는 52로 나왔고 이는 경미한 지능 장애에 속했다. 그날, 조은혁은 민희를 안고 돌아왔고 민희도 무언가를 감지한 듯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은 채 조은혁의 소매를 조심스럽게 만지며 말했다.“아기는 바보예요.”그날 밤, 조은혁이 직접 민희에게 가르쳤지만, 민희는 여전히 배워내지 못했다. 밤이 깊어진 조용한 시각, 민희는 피곤한 얼굴로 조은혁의 품에서 자고 있었고 꼭 감은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반짝거렸다. 가엾은 아이의 모습에 조은혁은 이렇게 다짐했었다. 배우지 못해도 상관이 없다고, 자신이 평생 키워주겠다고.민희는 5살이 되었고 유치원에서는 꼴찌를 하는 아이였지만 대단한 아버지를 둔 덕에 선생님은 아이를 나무라지 않았고 일부 젊은 미혼의 여 선생님은 기회를 타서 이 싱글대디한테 호감을 보였다. 하지만 조은혁은 한 번도 거기에 응답하지 않았다. 침대 머리에 기대서 품 안에 있는 딸아이를 보면서 조은혁은 저도 모르게 박연희를 떠올리게 되었다. 조은혁은 정상적인 남자였고 그 방면의 수요가 일반 남자들보다 훨
평소 조정윤은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심경서는 크고 부리부리한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아내를 보면서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당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야.”결혼생활 3년 동안 그는 처음으로 이렇게 그녀를 차갑게 대했다. 조정윤은 서운한 감정이 들었지만 드러내지 않고 남편의 외투를 벗겨주면서 남편에게 일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부족한 곳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아버님께서 당신에게 화를 낸 건가요?”심경서는 대답이 없었다. 그때,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고 아버지의 길을 따라 걸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그렇게 했어도 심지철은 여전히 심경서에게서 마음을 놓지 못하고 그 사람을 걱정하고 있었다. 심란한 마음으로 심경서는 가운을 들고 샤워실로 갔다. 조정윤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한참이 지나 조정윤은 남편이 앉았던 자리를 만져보았는데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그 자리에 앉았다. 심경서와 결혼한 지 3년이 되었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금실이 좋은 부부였지만 남자의 진짜 속마음은 곁에 있는 아내만 알수 있는 것이었다...남편의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이 있다. 심경서는 일에 열정이 넘치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잘해주었으며 부부의 잠자리도 한주에 세 번씩 많지도 적지도 않게 꼬박꼬박 이어왔다... 그리고 매번 할 때마다 그는 아주 다정하게 여자로서 아내의 느낌을 헤아려주고는 했었다. 하지만 조정윤은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정윤은 두 사람의 혼인이 심경서에게는 사업을 이뤄나가는 것처럼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심경서는 영원히 그녀에게 잔소리하지 않을 것이고 영원히 그녀에게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조정윤에게 시집을 잘 갔다고 말했다. 심씨 가문은 권세가 있는 가문이고 심경서의 미래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격적으로도 깔끔하고 단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조정윤만이 알고 있는 사실은 심경서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영원히 좁
한참이 지나 박연희는 정신을 차리고 비서를 불러 그녀 대신에 손님을 접대하라고 당부하고는 심경서를 데리고 개인 사무실로 갔다. 분명히 가족이었지만 분위기가 미묘하게 가라앉아있었다. 박연희는 커피를 내리며 가볍게 물었다.“아메리카노 괜찮죠?”심경서는 싱글 소파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박연희가 한가한 시간에 그린 그림들이 사처에 널려있었고 코끝에는 그녀의 몸에서 나는 은은한 향수 냄새가 남아있었다. 지금 그는 고모라는 말이 더는 입에 떨어지지 않았다. 심경서는 박연희의 뒷모습을 보면서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송도윤의 일에 대해서 아버지가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에요. 아버지는 저를 시험하기 위한 것입니다... 제가 아직도 그 마음이 남아있는지를요.”커피를 내리는 박연희의 행동이 한 박자 느려졌다. 그녀는 뒷모습을 보인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경서 씨, 어르신께서 경서 씨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데 대해 제가 기뻐해 줘야 하지만... 제가 아무 이유도 없이 이 일과 관련이 있게 되어 아주 난감해요. 그러니 돌아가서 어르신께 전해주세요. 앞으로는 이런 일을 더는 벌이지 마시라고요.”커피가 다 내려지고 커피 향이 방을 가득 채웠다. 박연희는 커피를 심경서에게 건네주면서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일과 마찬가지예요.”심경서는 곧은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런 장면들에 잠식된 지 오래된 탓인지 그의 심성과 눈빛은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박연희가 기억하는 심경서의 모습은 단정하게 차분했으며 책을 볼 때 모습이 멋있었다. 요즘 황 사모님한테서 들었던 심경서 전무님의 일 처리 방식과 지금 그의 모습을 보면 28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침울해 보였다. 물론 심경서의 겉모습은 여전히 멋있고 분위기가 넘쳤지만 제일 좋은 시절의 심경서가 어떤 모습인지 보았던 사람으로서 그녀는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박연희는 심경서의 맞은 편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오래도록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고
조은혁...지금의 박연희는 조은혁을 보면 봤지 심경서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심경서에게 아주 예의를 차린 말투로 말했다.“경서 씨, 보이시죠? 제가 좀 바빠서요.”심경서도 억지를 부리지 않고 차가운 표정으로 일어섰다.“그럼 두 사람이 다시 잘되는 것을 방해하지 않겠습니다.”나가는 길에 심경서는 조은혁과 마주쳤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옷에 성숙하고 당당한 분위기를 풍기는 조은혁의 모습은 심경서가 싫어하는 모습이었다. 심경서가 차갑게 말했다.“조 대표님, 참 공교롭네요.”조은혁은 안에 있는 박연희를 한번 보고 심경서를 한번 보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고 심경서와 똑같은 말투로 비아냥거렸다.“심 전무님, 얼굴 보기 힘든 분이네요. 오늘은 어떻게 쓸데없는 꿍꿍이를 생각하지 않고 고모한테로 와서 효도할 생각을 했어요?”심경서는 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건 조 대표님께서 신경 쓰실 일이 아닌 것 같은데요.”그러고 나서 심경서는 빠르게 자리를 떴는데 지나가는 순간 두 남자의 어깨가 스치면서 기 싸움이 대단했다. 심경서가 떠나고 조은혁은 하서인과 함께 사무실로 들어갔다. 방금의 일로 박연희는 피곤해진 마음에 좋게 말하는 것도 생략했다.“은혁 씨, 중요한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해요. 별일 없다면 제 앞에서 알짱거리지 말고요.”이마를 붙잡고 있는 그녀는 커피를 내리기도 귀찮았고 하서인을 보지도 않았다. 하서인도 개의치 않고 곁에서 매니큐어를 만지작거렸다. 조은혁은 피식 웃으며 울었다.“왜 그래... 심경서랑 얘기가 잘 안 된 거로 나한테 화풀이하는 거야?”박연희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소파에 기대앉아 넋을 놓고 다른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조은혁은 자신이 그녀의 앞에 있는데 그녀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살짝 불만이었다. 가끔 드는 남자의 직감도 정확했다. 그는 방금 심경서가 떠날 때의 표정과 그날 레스토랑에서 심경서가 테이블을 엎은 것을 생각했다... 모든 것들은 하나의 사실로 이어졌다.조은혁은 고개를 돌려 하서인에게 나가 있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