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은 전부 상처로 남았고 미래, 그들 사이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그렇게 그들은 황혼 속에서 오랫동안 서 있었다.마침내 조은혁이 먼저 싱긋 웃으며 말을 꺼냈다.“그럼 먼저 갈게.”그는 또 그녀를 한 번 깊이 쳐다보고는 돌아서서 차 문을 열었다.차가 천천히 떠나고 박연희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겨울날, 그녀는 놀랍게도 몸에 걸친 양털 숄을 모으는 것마저 잊었고 진범이는 그녀에게 달려와 엄마의 다리를 껴안고 보들보들한 목소리로 물었다.“엄마 울었죠?”박연희는 허리를 굽혀 아들을 끌어안았다.어린아이의 어깨에 얼굴을 얹어 시큰둥한 눈을 가린 채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엄마 안 울었어. 바람이 너무 차서 잠깐 눈이 시렸나 봐.”그러자 진범이는 엄마의 얼굴을 잡고 앳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내가 불어줄게요.”눈물 한 방울이 박연희의 눈가를 스쳐 지나갔다....조은혁은 음식 한 봉지를 들고 아파트로 돌아왔다.조은서가 왔었다.그녀는 방을 정리하고 두 화분의 녹색 식물을 넣어 두고 냉장고까지 꽉 채워 주었다. 그리고 냉장고 위에 붙여진 메모를 뜯어보니 위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오빠, 냉장고에 있는 물만두는 정희 이모가 직접 빚은 거니까 잊지 말고 먹어.]조은혁이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그는 물만두를 꺼내 한 그릇을 삶아 먹은 후 소파에 기대어 담배를 피웠다.담청색의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그는 고개를 약간 젖혀 조금 전 박연희와의 만남을 떠올렸다.반년 동안 못 만났는데 박연희는 몸이 좀 풍만해진 걸 보니 분명히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가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진심이 있다면 그녀의 생활을 더 이상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합격한 전남편 역을 맡으면 된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어찌 달가워할 수 있겠는가? 그와 심지철의 대결은 원래 죽은 국면이었다.이겨도 져야 한다.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은혁은 계속하여 마른 침을 삼켰다.그는 재기를 노리고 박연희와의 미래를 생각하며... 만약 그녀가 정말 송도
하민희는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괴로워하며 애써 눈을 감고 있다.작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다.긴 속눈썹을 가볍게 떨며 무의식적으로 엄마를 부르는데 박연희는 그녀의 옆에 앉아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부드럽게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고 있었다...박연희는 몹시 괴로워했다.그녀에게 있어서 하민희는 그녀가 입양한 아이일 뿐만 아니라 하인우 부부 생명의 연속이기도 하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잘못된다면 그녀는 평생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박연희는 초조한 표정을 짓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하민희의 이마에 키스했다.그리고 같은 시각, 조은혁은 문 앞에 서서 그 광경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장씨 아주머니는 그를 보고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사모님, 대표님께서 오셨습니다.”장씨 아주머니는 말을 다 하고는 자신이 실언한 것을 깜짝 놀랐다.하지만 인제 와서는 아무도 그녀와 그렇게 많은 것을 따지지 않았다. 박연희가 조은혁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사람은 가장 약할 때 유연하고 무력해지는 것인지 그녀는 아주 가볍게 말했다.“무슨 일이 생기면 무슨 면목으로 아이의 부모님을 마주하겠어요?”“아직 결과가 안 나왔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하지만 어떻게 걱정을 안 할 수 있겠는가?결과가 나오기까지 1분 1초가 박연희에게는 고통의 연속이었고 이 긴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미래가 캄캄했다... 그녀는 하민희의 나약한 모습을 보고 입술을 가리고 나서야 울음을 참을 수 있었다.그녀의 어깨가 가볍게 떨렸다.조은혁은 그녀의 뒤에 서서 그녀를 위로하려는 듯 주저하며 손을 내밀었다.그러나 허공에서 멈춘 손은 결국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그는 이미 그녀의 남편이 아니다.이 사람에게는 이미 선량한 반쪽이 있다.한밤중에 하민희가 잠시 깨어났을 때, 그녀는 어리둥절하게 조은혁을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아빵”을 외쳤다. 작은 팔을 허공에 두 번 저었는데 이는 분명히 아이가 안고 싶어 하는 애교였다.조은혁은 마음이 나른해져 허리를 굽혀 어린 녀석을 안아 올렸다.
그러자 의사가 정색하며 말했다.“혈연관계가 없다면 매칭 가능성은 0입니다.”“검사해보죠.”조은혁이 박연희를 보며 말했다.박연희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저도 해보죠.”심철산 부부도 검사를 해보고 싶다고 나섰다. 민희가 심씨 가문의 핏줄은 아니지만 박연희가 친혈육으로 여긴 이상 민희는 심씨 가문의 자식이었다.결국 심지철과 서지앙까지 검사를 했다.검사 결과는 3일이나 기다려야 했다.의사는 그들에게 아이의 상태가 위험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고, 그들의 골수는 가능성이 희박하니 당장 하와이로 가서 아이의 직계 가족을 찾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밤이 되고 비가 끊임없이 내렸다.박연희는 병실 바닥 창가에 서서 창밖으로 누렇게 시든 바나나 잎이 빗물에 흠뻑 젖어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유리에 옅은 안개가 피어오르고 그녀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무의식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그녀는 이미 하씨 가문과 연락이 닿았고 그들은 조은혁을 만나려 했다.과거는 가슴을 짓누르는 큰 바위처럼 그녀의 숨을 턱턱 막히게 했다.병상 곁에서 심지철은 직접 손녀를 극진히 돌보고 있었다.그는 하민희의 손을 잡고는 박연희에게 말했다.“민희 병 나으면 가서 이름부터 바꿔. 내 성을 따라 심 씨로 바꿔. 그러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거야.”박연희는 가볍게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그녀는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하씨 가문을 상대하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하씨 가문의 누구와도 골수가 맞지 않다면 민희는 어떡해야 할까?깊은 밤, 그녀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일주일 동안 그녀는 눈에 띄게 야위었다.심지철은 안타까운 마음에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기왕 하와이에 갈 거면 오늘 밤 짐 싸서 떠나. 여긴 나랑 아주머니가 보고 있으면 되니까 경서랑 같이 가. 그럼 도윤이도 안심할 거고.”박연희는 고개를 끄덕였다.“내일 아침에 돌아오면 제가 말할 거예요.”심지철은 애틋하게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가서 푹 쉬어. 이 아빠가 있는데 뭔 걱정이
그녀의 입술이 움직이며 마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 같았지만 결국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고 자신의 손을 뺐다.“우리 안 맞는 것 같아. 헤어져.”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송도윤은 잠시 멍해졌다가 일어나서 쫓아가 다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다급해진 그는 속마음을 털어놓았다.“내 말이 틀렸어? 늘 내가 양보했어. 나도 결혼한 적 있지만 우리 사이를 방해할 아이는 없다고. 하지만 넌 두 명이나 되잖아. 연희야, 이성적으로 한 번 선택해 봐.”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헤어져.”송도윤도 갑자기 안색이 차가워졌다.“박연희, 후회하지 마.”그녀는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차로 가서 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차에 탔을 때, 그녀는 가슴이 울렁거렸다.어쨌든 반년을 만났으니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지만 그녀는 송도윤이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한참 후에야 그녀는 페달을 밟고 떠났다.그녀가 심씨 저택에 돌아왔을 때, 가족들은 이미 그녀가 송도윤과 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민희가 아픈 상황이라 식사할 때 모두 이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점심시간에 박연희가 짐과 여권을 챙겨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최민정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그녀의 짐을 자세히 살펴보고는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식사 전에 송씨 가문 사람들이 전화 와서 진짜 헤어질 마음인지 물어보더라고요. 그쪽 태도가 너무 거만해서 내가 대신 그렇다고 해버렸어요. 난 언제나 아가씨 편이에요. 비록 송도윤이 모든 면에서 뛰어나고 여태까지 두 사람 잘 지내왔지만 중요한 순간에 사람 인품을 알 수 있는 거잖아요. 민희한테 진심으로 대해 주지 않는데 두 사람이 어떻게 행복하겠어요? 차라리 일찍 끊는 게 맞아요.”박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대답했다.최민정은 참지 못하고 떠보듯 물었다.“조은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진짜 민희 친아버지라도 된 것처럼 여기저기 바삐 움직이던데.”박연희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박연희는 그를 올려다보며 입술을 떨었다.“당신이랑 상관없잖아.”그녀가 발버둥 쳤지만 남자는 더 큰 힘으로 그녀를 억눌러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예측할 수 없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안에 한 가닥의 기대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박연희는 그의 뜻을 알아채고 눈을 늘어뜨렸다.“그래요. 헤어졌어요! 하지만 그건 우리 사이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아요. 아니,우리는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죠. 조은혁 씨... 우리는 영원히 끝났어요.”엘리베이터 안은 고요했고 그의 가쁜 숨결만 있었다.그는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받쳐 든 팔은 얇은 셔츠 천을 사이에 두고 근육이 튀어 올랐다. 긴장의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나간 심경서가 다시 돌아와 입구에 서 있었다.“도착했어요.”두 사람은 곧 떨어졌고 심경서의 눈빛은 헤아릴 수 없었다....이 해프닝으로 박연희는 밥을 먹으러 내려가지 않았다.밤 8시, 심경서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그가 음식을 가지고 와서 그녀와 함께 먹으니 설날 저녁도 같이 먹는 셈이었다.두 사람은 묵묵히 있었다.잠시 후, 심경서가 박연희의 그릇에 담긴 미동도 하지 않은 음식을 보더니 물었다.“무슨 생각 해요? 방금... 그 사람 때문에?”“아니에요!”박연희는 손에 든 포크로 무의식적으로 음식을 헤집으며 말했다.“걱정하고 있었어요! 하씨 가문 사람도 맞는 사람이 없을까 봐.”심경서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럴 리 없을 거예요. 민희 몸에 있는 부적 못 봤어요? 그건 할아버지가 특별히 서 비서에게 시켜 보방사에 가져온 거예요. 아주 신통하다고 들었어요.”박연희는 그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고마워요.”“송도윤 씨는요? 조금의 미련도 없는 거예요?”박연희는 어리둥절해 하며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그리하여 심경서는 그녀가 송도윤과 새로운 사랑에 빠진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사랑이든 미움이든 조은혁의 자리가 있으리라 생각했다.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녀에게
그때 하인우는 참혹하게 죽었다.그녀도 두 어르신과 급히 한 번 만났을 뿐 후에 그녀는 베를린으로 갔다.다시 만난 것은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이었다.조은혁은 그녀가 무릎을 꿇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연희야, 네 잘못 아니야!”박연희는 여전히 그를 상대하지 않았다.그녀는 두 어르신을 바라보며 땅바닥에 엎드렸다.“다 제 잘못입니다. 만약 두 고인의 영혼이 있다면 민희가 평안하고 건강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인우 오빠를 봐서라도 아이를 살려주세요.”하인우의 부모는 그저 울기만 했다.그들도 아이를 구하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의 제약을 받아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이때 하인아가 나섰다.그녀는 박연희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쏘아 붙였다.“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인우 오빠라고 불러? 당신만 아니었다면 우리 오빠 손이 부러지지도 않았고, 오빠랑 새언니가 비참하게 죽지도 않았어.”박연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하인아는 악독한 눈으로 박연희의 뺨을 때리려고 손을 뻗었다.그녀는 자신이 조은혁에서 겪었던 좌절을 이 따귀로 모조리 갚고, 그녀를 발밑에 세게 밟아야만 자신이 잃었던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누군가 그녀의 손을 막았다.조은혁의 검고 어두운 눈동자에는 노기가 찼다.“이게 무슨 짓이죠?”하인아는 손을 빼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그녀는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왜, 마음 아파요? 마음 아프면 당신이 무릎 꿇던가. 무릎 꿇고 스스로 손가락 세 개를 잘라 내! 손가락 하나에 목숨 하나. 우리 오빠랑 새언니... 그리고 우빈이 한쪽 다리까지!”조은혁은 그녀의 뼈를 부러뜨릴 뻔했다.하인아의 사랑은 원망으로 변했다.설령 지금 이 남자가 초라해져도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와 임우빈은 잘 지낼 것이고 그녀에게 아직 좋은 미래가 있었다.박연희는 얼굴을 들고 조은혁을 바라보았다.그는 하인우를 싫어하고, 민희와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었다. 송
“안돼!”하인우의 어머니가 처량하게 소리를 지르더니 그에게 다가가 뺨을 세게 때렸다.그녀는 그 칼을 빼앗아 품에 꼭 껴안고 통곡했다.“만약 인우가 살아 있다면 절대 이렇게 하지 않았을 거야! 우리 인우가 얼마나 순하고 착한 아이인데. 절대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을 자르라고 하지 않았을 거야! 우리 인우는 절대... 오직 하늘에서 자기 딸이, 나의 손녀가 건강하게 자라기만을 기도하고 있겠지.”“손가락 세 개를 자르면 인우가 살아 돌아와? 내 손녀를 구할 수 있는가?”...하인우의 어머니는 땅바닥에 엎드려 통곡했다.“제발 부탁이네. 우리 민희를 위해 다들 검사 한 번 해주게. 인우 체면을 봐서라도 인우 딸에게 살길을 열어줘야지. 나랑 인우 아빠는 이미 저세상 길에 오를 사람인데 무슨 원한을 내려놓지 못하겠는가.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그녀는 여러 사람을 향해 끊임없이 절을 했다.노년에 아들을 잃고 원래 건강이 좋지 않은데 지금은 봄바람에 더욱 휘청거려 안쓰러워 보였다.사람은 역시나 감정의 동물이었다.누군가 먼저 입을 열었다.“내가 제일 먼저 검사하겠네!”그러자 옆 사람도 앞다투어 말했다.“나도 하겠네. 인우는 우리 혈육이야. 이 큰아버지가 안 구하면 누가 구하겠어? 내 골수가 맞다면 내가 기증하겠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증인이야!”“나도!”“나도! 내 가죽이 제일 두꺼워!”...삽시간에 하씨 가족들은 모두 하인우의 어머니를 지지하기 시작했고 하인아는 조급해 났다.그녀는 골수를 기증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우리 오기 전에 약속했잖아요. 민희 양육권 되찾고, 저 사람들에게 거액의 배상금을 받아내자고. 다들 잊은 거예요?”하인우의 어머니가 울며 말했다.“민희가 연희 양 옆에 있는 것도 인우 소원이야.”하인아는 화가 난 죽을 지경이었다.“큰어머니, 정신 차려요! 이렇게 쉽게 용서하자고요? 오빠랑 새언니를 죽인 범인이에요! 그리고 우빈이를 건물에서 뛰어내려 다리를 부러뜨리게 한 장본인이고!”하씨 가족
박연희는 바로 문을 열었다. 그녀의 눈에는 기대가 가득했고 심장은 너무 긴장된 나머지 튀어나오려는 것 같았기에 말하는 목소리도 살짝 떨려왔다.“은혁 씨, 결과가 어떻게 됐어요? 적합한 결과가 나왔어요?”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에 들린 서류봉투를 박연희에게 건네주는 조은혁의 검은 눈동자에는 슬픔이 비쳐있었다. 박연희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녀는 이런 충격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문틀을 잡고 겨우 중심을 잡았다. 하씨 가문의 열 명이 넘는 친척들 가운데서 적합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민희는 어떻게 되는가? 어린 민희는... 아직도 병원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마침 이때 B시에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민희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한다는 내용이었다. 박연희는 눈가의 눈물을 훔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해요. 제가 실례를 범했어요.”박연희는 창가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아이가 자신이 우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게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며 다정하게 어르고 달랬다. 그쪽에서는 장숙자가 민희에게 말을 가르쳤고 민희는 연약하지만 말랑한 말투로 말했다.“엄마, 민희는 엄마가 보고 싶어요.”“엄마도 민희 보고 싶어.”입을 열자마자 박연희의 목소리는 흐느낌이 더 심해졌다. 전화를 끊고 통유리창 앞에 서 있는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는 이런 결과를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했다. 더욱이 그녀는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고 민희의 천진난만한 눈빛을 어떻게 마주하여야 하며 하인우 부부한테 어떻게 얘기를 했으면 좋을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다.호텔 방안은 고요했고 조은혁은 조용히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는 박연희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안다. 박연희에게 다가가는 그의 발걸음 소리는 두꺼운 러그에 파묻혀 박연희가 알아채기도 전에 조은혁은 이미 그녀의 뒤로 와서 떨리는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살며시 잡았다.“연희야, 울지 마. 그만 울어.”박연희는 갑자기 뒤돌았고 가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