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차에 시동이 걸렸다...유선우는 줄곧 말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가끔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보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만약 이 팔만 멀쩡했다면 아무리 두 다리를 움직일 수 없다 하더라도 유선우는 아마 많은 용기를 끌어모아... 조은서에게 다시 그의 곁에 돌아와달라고 빌었을 것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인생에는 만일이라는 가능성이 없었다....이튿날, 조은서는 차준호와 만나기로 약속했다.원래는 커피만 조금 마시며 몇 마디만 나누다가 갈 예정이었지만 차준호는 통화 중에 기어코 함께 식사하자며 고집을 부렸다.“오랫동안 만나지도 못했는데 이젠 제 체면도 생각해주지 않는 거예요?”결국, 그들은 고급 클럽에서 함께 식사하기로 했다.하지만 식사를 할 마음이 없었던 차준호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오직 조은서에게 집중했다.조은서도 차준호가 자신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그녀를 통해 임지혜를 그리워하고 있을 뿐이었다.조은서는 식전 술을 가볍게 내려놓으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준호 씨, 저와 만나려 했던 이유는 저도 알아요. 지혜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던 거죠? ... 네, 반성훈 씨가 떠난 건 맞아요. 하지만 준호 씨와 지혜는 이미 지나간 인연이에요. 오랜 시간이 흘러 지혜에게도 새로운 연인이 생기겠지만 그 사람이 준호 씨가 될 일은 이제 없을 거예요.”“이건 제가 준호 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에요.”...차준호는 여전히 임지혜와 한번 만나고 싶었다.조은서는 와인잔을 쥐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이제 그럴 필요가 있나요? 차준호 씨... 당신이 지혜한테 가져다준 상처를 제외하고도 당신은 유부남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이제 지혜 좀 그만 괴롭혀요. 지혜는 이미 당신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었어요.”조은서는 한숨에 해야 할 말을 전부 털어놓았다. 그러고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사과하고 자리를 떴다.차준호도 마음속으로는 조은서가 더 이상 그와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차준호는 정우연의 말을 듣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난 그렇다고 바깥 여자를 집안에 들이지는 않아.”정우연이 그의 말에 반박하려 하자 차준호는 갑자기 옷 주머니 안에서 십여 장의 사진을 꺼내더니 한 장 한 장 침대 위에, 정우연의 눈앞에 던져주었다.차준호는 정우연을 바라보며 냉소를 터뜨렸다.“네 이 요염한 사진들 잘 감상해 봐. 사진마다 남자가 다른데? 난 이 사진들 아니었으면 우리 사모님 몸매가 이렇게 섹시하고 잠자리에서 이렇게 뜨거운 줄은 몰랐네.”정우연은 침대 위에 던져진 그 사진들을 주워 하나하나 살펴보았다.그리고 그 자리에서 넋을 잃고 말았다...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정우연은 본능적으로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준호 씨, 전 정말 너무 외로워서 그랬어요. 제발 저희 아버지한테는 보여주지 마세요. 저희 아버지께서 알게 되시면 절 죽이려 할거예요.”차준호가 가장 독한 사람이라는 것은 정우연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차준호가 정말 자신을 내칠까 두려웠다.요 몇 년 동안 차준호는 정우연을 형편없이 괴롭히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마음이 약해진 적이 없었다.정우연은 차준호와의 관계를 다시 돌려놓기 위해 침대 끝까지 기어가 차준호의 다리를 부여잡고 몸을 드러내며 그를 유혹했다.그녀는 얼굴을 차준호의 허벅지에 찰싹 붙인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준호 씨, 우리 이제 화해해요, 네? 과거의 일은 이제 언급하지 말고 다시 시작해요. 저도 반드시 본분을 지키고 좋은 부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절대 다른 남자와 연락하지 않을게요. 당신만 절 사랑해준다면... 당신만 절 사랑해준다면 뭐든 할게요!”“난 널 사랑하지 않아.”차준호는 정우연을 밀어내며 싸늘하게 말했다.“이혼하자.”정우연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관계가 아무리 나쁘고 정우연이 무슨 짓을 저질러도, 심지어 다른 남자의 애를 가져도 차준호는 단 한 번도 이혼이라는 소리를 입에 담지 않았다. 하지만 지
차준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임지혜가 곧 돌아온다......레스토랑 화장실.차준호에게 반성훈의 얘기를 꺼낸 뒤 한참이 지나도 조은서의 마음은 여전히 속상하기 그지없었다.임지혜뿐만 아니라 사실 조은서에게도 반성훈은 매우 좋은 친구였다. 반성훈은 관대하고 너그러운 성격에 친구로서도 매우 좋은 사람이었다... 당시 그의 비행기 추락 사고 소식을 듣고 조은서는 매우 오랫동안 그 소식을 믿지 못했다.반성훈의 비보를 다시 떠올린 조은서는 속상한 마음에 코끝이 찡해나고 눈가에는 눈물이 어렴풋이 맺혔다.그때, 마침 임도영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데리러 왔으니 문 앞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이었다.그러고는 겸사겸사 차준호와의 만남에 대해서도 물었다.그러자 조은서는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그냥 몇 마디 나눴어요. 보아하니 아직 지혜를 놓아주지 못한 것 같아서 명확히 말씀드렸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해요.”이윽고 그들은 몇 마디 더 나누고는 전화를 끊었다.조은서는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티슈로 얼굴을 닦다가 무심코 거울에 비친 사람의 얼굴을 보았다.백서윤!명품 슈트를 차려입은 백서윤의 모습은 직급이 낮지 않은 모양이었다. 당시 유선우에게 해고된 후, 그녀는 YS 그룹의 경쟁회사에 들어가 홍보 매니저의 직급을 달게 되었다. 2, 3년의 단련과 시련을 거쳐... 백서윤은 이제 예전의 청순한 소녀가 아니었다.거울 속, 조은서를 바라보는 백서윤의 눈빛이 달갑지 않았다.그리고 조은서에게 말을 건네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더욱 조롱이 섞여 있었다.“사모님... 아니... 유선우 대표님과는 이미 이혼을 했으니 이제 사모님이라 부르면 안 되겠군요. 방금 통화한 분은 새 남자친구인가요? 대표님 전 사모님은 참으로 능력이 좋으시네요. 항상 훌륭한 남자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당신에게 매달리고 당신도 마음 편히 그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으시니 말이에요.”조은서는 백서윤을 좋아하지 않는다.사실 조은서는 백씨 가문의 모든 사람을 싫어한다.백서윤의 조롱에 조은서
백서윤이 입을 열려던 순간, 그녀는 문득 복도 저 너머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유선우를 발견하게 되었다. 유선우의 검은 동공은 마치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 깊고 난해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백서윤은 더 이상 말할 용기도 없었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하나는 유선우가 보복할까 두려웠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유선우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기 때문에 유선우와 조은서의 재결합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마음이 복잡해진 백서윤은 그저 조은서를 향해 차갑게 웃어 보이며 다급히 마무리를 지었다.“전에 당신이 선우 씨를 매우 사랑한다고 사촌 언니에게서 들은 적이 있는데 난 그것을 사실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어요. 그런데 인제 보니 당신은 선우 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당신이 말하는 사랑은 결국 그 당시의 내 사랑과 다를 바 없이 똑같이 천박하기 그지없네요.”“다른 남자와 사랑하면서 당신이 말하던 그 새로운 삶이나 마음껏 살아가세요. 난 당신이 뼈저리게 후회할 날만을 기다릴 테니까.”...백서윤의 말이 끝나고 조은서는 한참이 지나서야 무뚝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백서윤 씨, 당신은 나와 유선우의 과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데?”말을 마친 조은서는 곧바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그녀가 몸을 돌린 순간, 복도 저 너머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던 그 사람의 모습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일단 자세히 캐묻지 않고 자리를 뜨긴 했지만, 조은서의 마음 깊은 곳에는 이미 의심의 씨앗이 심어졌다.조은서가 자리를 뜨고 백서윤은 벽에 몸을 기대 애써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한참 뒤,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는지 백서윤은 빠른 걸음으로 복도 끝을 향해 달려갔다...아니나 다를까 백서윤은 그곳에 있는 유선우를 발견하게 되었다.유선우는 휠체어에 앉은 채 창을 사이에 두고 1층이 있는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유선우가 조은서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있는 그 여
그들의 사이에는 거리감이 없다.하여 임도영은 길목을 지나 길가에 차를 세운 뒤, 몸을 돌려 조은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직설적으로 물었다.“그 사람 생각해요?”조은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곧바로 답했다.“그런 거 아니에요.”그때, 딸칵하는 소리와 함께 임도영은 안전벨트를 풀고 조은서에게 키스하려는 듯 천천히 그녀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인간의 본능은 아무도 속일 수 없다고, 임도영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으려는 순간 조은서는 손을 들어 그를 가로막았다.그 순간의 움직임에 조은서도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사실 사귀는 연인 사이에 키스는 매우 정상적인 스킨쉽이었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임도영과의 스킨쉽을 피한 것이다...이윽고 조은서는 고개를 젖히고 자신의 행동에 어찌할 줄 몰랐다.임도영과 조은서의 거리는 당장이라도 닿을 듯 매우 가까웠고 서로의 뜨거운 숨결마저 느껴질 수 있는 거리였다. 일반적이라면 마음이 요동쳐야 하는 것이지만 조은서의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잠잠했다...임도영은 여전히 그윽한 눈빛으로 조은서를 바라보았다.“이래도 그 사람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조은서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곧바로 임도영의 입술에 의해 가로막히고 말았다. 조은서를 대하는 임도영의 표정은 너무나도 부드러웠는데 이는 연인 같지만 연인을 초과한 애정이 담겨있기도 했다--왜냐하면, 임도영은 조은서가 청순한 소녀에서 성숙한 여인이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그의 두 눈으로 직접 지켜봐 왔다.조은서에 대한 임도영의 감정은 매우 복잡했다.그는 여전히 조은서가 입을 열지 못하도록 그녀의 붉은 입술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져주었고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이게 연인의 신분으로서 그녀에게 말할 수 있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기에 그는 더욱이 지금, 이 순간이 소중했다.조은서를 사랑하고 아지만, 그녀를 곁에 묶어두는 것은 더욱 싫었다.어젯밤, 임도영은 접대 자리에서 여러 소문을 들으며 유선우가 왜 휠체어에 앉게 된 것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조은서
[조은서 씨, 그 계약서는 그저 장난이었을 뿐이야. 난 널 사랑하지 않아.]...한꺼번에 몰려든 기억들에 조은서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조은서는 고개를 살짝 젖히고 눈물을 참았다.하늘에서는 가랑비가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하더니 가느다란 빗줄기가 조은서의 몸에 떨어지며 그녀의 옷을 조금씩 적셨다. 하지만 조은서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마음의 초조함을 씻겨줄 차가운 빗물이 필요했다.조은서는 말없이 빗속을 걸으며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백서윤의 말을 반복했다.[정말 선우 씨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거라 생각해요? 정말 선우 씨가 당신과 아이들을 버리고 다른 사람과 새로운 가정을 차릴 거라 생각해요?]그 순간, 조은서는 우뚝 자리에 멈춰 섰다.길가에는 매우 호화로운 웨딩살롱이 세워져 있었는데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안에는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여인의 옆에는 한 남성이 함께하고 있었는데 행동거지가 친밀하고 애틋한 것을 보아하니 딱 봐도 예비부부였다.하지만 조은서는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그녀는 마에 씌기라도 한 듯 그 남녀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왜냐하면, 그 여인은 다름 아닌... 이지우였기 때문이다.이지우라면 당시 여주인의 행세를 하고 진이 정원에 나타났던 사람 아닌가. 유선우와 사귄다면서 왜 지금은 다른 남자와 결혼한단 말인가?조은서는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사실 진실은 이미 수면밖에 올라왔다.하지만 조은서가 무슨 수로 그토록 잔인한 진실을 받아들인단 말인가. 그녀는 심지어 유선우가 대체 무엇을 희생했는지,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심지어 유선우는 대체 무슨 심정으로 그녀의 앞에 나타났는지조차 감히 생각할 수 없었다.그날 밤, 서미연의 연회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유선우에게 조은서는 오히려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했었다.[선우 씨, 저 애인 있어요.]...빗줄기는 점점 거세졌고 조은서의 얼굴은 어느새 비에 흠뻑 젖어있어 그녀의 볼을
이윽고 웨딩살롱 직원이 그들에게 따뜻한 커피 두 잔을 내왔다.하지만 조은서는 커피에 손도 대지 않은 채 계속하여 이지우만을 뚫어지라 바라보았다.한편, 이지우의 눈빛은 어느새 과거의 추억에 잠긴듯했고 곧바로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때는 선우 오빠가 나와 거래를 하고 싶어 한다고 진 비서한테서 연락 왔어요.”말을 하며 그녀는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들이마셨다.침착한 말투에 비해 그녀의 가늘고 긴 손가락은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다시 입을 열 때 이지우의 얼굴에는 쓰디쓴 미소가 걸려 있었다.“그때 전 마음속에서 유선우 씨를 원망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어요? 하지만 진 비서가 내세운 건 제가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숫자였어요. 그건 2조가 달하는 프로젝트였거든요. 전 결국 그 유혹을 거절하지 못하고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뒤에 진 비서를 따라 병원에 가 서류에 사인하는데 그때 봤던 유선우 씨는... 그 모습은... 그때 유선우 씨의 모습은 지금 당신이 알고 있는 그 모습보다 얼마나 끔찍할지 감히 가늠할 수도 없어요. 조용히 침대 위에 누워 거의 움직일 수도 없었는데 조은서 씨, 그거 알아요? 그때 그의 눈빛은 너무나도 평온하고 태연하게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어요.”말을 이어가는 이지우의 목소리에는 암울한 감정이 배어 있었다.반면 조은서의 눈은 이미 촉촉하게 젖어 있었지만, 그녀는 뚫고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고 계속하여 이야기를 들었다.잠깐 숨을 들이켜던 이지우는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당시 전 계약서를 작성하고 약조대로 2조를 받은 뒤, 그 사람의 요구대로 선우 씨의 여자친구 행세를 했죠. 당시 진이 정원에서 막대한 모욕감을 느끼셨을 텐데 그거 알아요? 그때 유선우 씨는 휠체어에도 제대로 앉지 못해 침실에 누워 모든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어요.”“당신이 오고 당신이 떠나는 것까지!”“은서 씨, 당신도 아마 유선우 씨가 왜 이렇게 된 것인지 짐작하셨을 거예요. 맞아요. 유선우 씨는 그 수술에 직접
허민우는 방금 다녀가며 신약도 계속 개발 중이니 절대 포기하지 말라며 신신당부했다.유선우는 당연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얼마나 지나야 오른손을 쓸 수 있고 휠체어에서 일어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누구도 그에게 정답을 알려줄 수 없다.유선우가 기분이 좋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고용인들도 섣불리 그를 방해하지 못했지만, 오늘은 예외였다.정원으로부터 승용차 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더니 이윽고 난잡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는 문어 구에서 다급하게 그를 부르는 아주머니의 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사모님께서 돌아오셨어요.”함은숙이 찾아왔다고 여긴 유선우는 담담히 답했다.“금방 내려갈 테니 아래층 식당에 좀 앉아계시라고 하세요.”하지만 문어구는 잠잠하기만 할 뿐이었다.유선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상황을 살피기 위해 휠체어를 밀고 밖에 나가려던 그때, 문이 천천히 열렸다...문이 열리고 문어구에는 온몸이 비에 흠뻑 젖은 조은서가 서 있었다. 평소에는 줄곧 가장 아름답고 단아한 모습만을 유지해 왔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그녀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하지만 조은서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조은서는 그저 아무 말도 없이 그곳에 서 있었다. 얼핏 보면 평온해 보였지만 그녀의 가슴팍은 심각하게 기복이 심했고 그녀의 입술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조은서는 왠지 모르게 팽팽한 고무줄처럼 그 자리에 굳어있었다.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유선우는 곧바로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먼저 내려가 보세요.”아주머니는 잠깐 망설이는가 싶더니 결국 앞치마를 만지작거리며 자리를 떴다.그렇게 아주머니가 떠나고 둘만이 다시 한 공간에 남게 되었다.바깥에는 여전히 폭우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쉼 없이 내리는 비에 집안의 공기마저 습해지는 듯 했다. 밝은 조명 아래 비친 유선우의 각진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그는 오히려 금욕적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문 닫고 빨리 들어와.”조은서는 천천히 방안으로 들어왔다.두터운 문이 바깥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