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서가 이안이를 달래서 재우고 나니 거의 9시가 되었다. 샤워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임지혜가 왔다. 조은서는 밤중에 정신 나간 사람처럼 허둥대는 임지혜를 보더니 재빨리 집안으로 들이면서 낮은 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로 밤중에 왔어?”임지혜는 목이 꽉 막혀 말을 못하였다. 한참 지나 임지혜는 붉어진 눈으로 말한다.“나 저녁에 차준호 만났어.”조은서는 흠칫하였다.한참 지나 조은서는 임지혜를 거실로 안내했고 뜨거운 물수건을 꼭 짜서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려 했다.임지혜는 조은서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중얼거린다.“은서야, 나... 반 대표가 나의 과거를 알게 되어 날 싫어할까 봐 겁이 나.”임지혜가 전에 반성훈에게 고백했었다. 전에 남자를 사귀었었고 아기를 유산한 경험이 있다고.하지만 반성훈은 그 남자가 차준호인 줄은 모른다. 평소에는 임지혜가 반성훈을 반 씨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반 대표라고 부르는 것을 봐서 임지혜가 확실히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조은서는 머리를 숙여 임지혜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하였다.“반 대표가 너에게 다가가기 전에 많은 생각을 하고 너를 선택했을 거야. 반 대표가 사실 그 일들을 다 알고 있고 나한테 물은 적도 있어. 나도 숨김없이 전부 얘기를 해줬어. 지혜야, 반 대표가 알고 있어. 그 사람이 차준호인 것을.”임지혜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자는 이안이를 깨울까 봐 소리를 눌러가며 울었다. 임지혜는 태어나서부터 가진 것이 별로 없고 가진 것보다 잃은 것이 많기에 그녀는 절대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특히 반성훈같은 남자가 자신을 좋아해 주고 자신의 형편없는 과거까지 용납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것이다.임지혜는 조은서의 품에 안겨 울먹이며 말한다.“비록 반 대표가 결혼도 했었고 아이도 있지만 나하고 비교하면 그 사람의 인생은 너무 완벽한 거야.”반씨 가문은 하와이의 명문 가족으로 몇 대째 쭉 이어오고 있다. 반성훈의 조건이 지나치게 좋긴 하다. 조은서는 임지혜의 기분을 알
이 한마디 말이 두 사람의 거리를 좁혀주었다. 두 사람 사이에 아무리 오해가 많고 아무리 낯설어도 그들 사이에는 딸 이안이가 있었다. 이안이를 위해서 그들은 그 일도 해야 했다......30분 뒤, 롤스로이스는 서서히 진이 정원에 멈췄다. 조은서가 차에서 내리면서 눈빛이 촉촉해졌다. 진이 정원은 여전하였다. 하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바뀌었다...이안이는 아빠의 품에 안겨 작은 소리로 물었다.“아빠, 엄마 왜 울어?”유선우가 나지막한 소리로 답했다. “엄마가 아빠한테 화났어.”어른들의 일을 이안이는 알 수가 없다. 이안이는 다만 눈길로 엄마를 쫒고 있었다. 엄마는 슬퍼서 울고 있는 것 같았다...조은서는 급히 기분을 다스렸다. 진이 정원의 하인들은 전부 유선우가 초빙해 온 사람들이다. 일찍부터 오늘 사모님과 아가씨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전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 조은서를 만나면 사모님이라 불렀고 전처럼 공손하게 모셨다.조은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은서 씨라고 부르면 돼요.”그 말에 하인들은 감히 응하지 못하였다.유선우는 표정이 복잡해졌지만, 조은서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사모님이 말한 대로 해요.”유선우는 이안이를 데리고 정원을 구경하였다. 조은서는 함께 다니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기가 싫어서 아예 작은 주방에 들어가 이안이에게 줄 송편을 만들기로 했다. 이안이가 제일 좋아하는 떡이다...등 뒤에서 유선우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조은서가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는 모습은 예전과 다름없었다 전에도 조은서는 주방에서 이것저것 만들기를 좋아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능숙하지는 못하였다. 그때의 조은서는 직업이 없었고 단지 유선우의 어린 신부였다. 유선우의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는 참지 못하고 다가가 등 뒤로 그녀를 살포시 껴안았다. 그는 옷 위로 조은서의 몸을 훑었다. 조은서는 넋이 나간 듯 굳어있다...박하 향기를 머금은 남성의 입김이 그녀의 귓등을 간지럽히고 뜨거운 열기가 그녀의 여
빗속에 서 있는 유선우의 모습은 말로 이룰 수 없이 청초하고 잘생겼다...함은숙은 유선우를 보자마자 다급히 다가가 말을 꺼냈다.“선우야, 이안이 좀 보게 해줘. 난 이안이 친할머니잖아. 그리고 오늘 추석이라 내가 특별히 이안이 먹으라고 송편도 맛있게 만들어 왔어.”말을 하며 함은숙은 급히 고용인더러 송편을 가져오도록 지시했다.그러나 유선우는 담담히 입을 열어 그녀를 가로막았다.“쓸데없이 힘 빼지 마세요. 전 절대 당신을 이안이와 만나게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은서와 이안이는 제 아내이고 제 아이입니다. 당신과는 그 어떤 관계도 없어요.”함은숙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그러자 옆에 있던 고용인이 그녀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함은숙을 불렀다.“사모님!”함은숙은 고용인을 밀쳐버리고 자신의 얼굴과 몸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빗물을 온전히 맞았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에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 유선우의 옷깃을 부여잡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유선우, 너 지금 뭐라 그랬어? 넌 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고 있어? 내가 왜 이안이 친할머니가 아닌데? 내가 얼마나 이안이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데!”촘촘히 내리는 빗방울이 그의 앞에서 막을 이루며 떨어져 내렸다. 유선우는 계속하여 함은숙을 밀어내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유문호가 저희를 떠났던 그 날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었죠. 하지만 당신은 저의 존재를 잊었어요. 우리는 원래 잘 지낼 수 있었어요. 그러나 당신의 마음속에는... 유문호뿐이었죠!”유선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검은 대문은 마치 유선우가 그녀에게 닫아버린 마음의 문처럼 함은숙의 눈앞에서 천천히 닫혀버렸다.함은숙은 멍하니 굳게 닫힌 대문을 바라보았다.그리고 그 순간, 함은숙은 갑자기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유선우가 그녀를 원망하고 있다...근 몇 년 동안 유선우는 본가에 돌아온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그녀와 함께 명절을 보낸 적도 없었다
조은서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이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저 생리 왔어요.”유선우는 조은서의 미세한 표정 하나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그녀를 몰아세웠다.“우리 사이가 이제 그것밖에 안 돼? 단지 아이를 낳기 위해서야?”이윽고 그는 화제를 다시 꺼내더니 말 속에 담긴 뜻을 솔직하게 들추어냈다...번쩍 치켜든 그녀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눈가에 맺힌 그 눈물의 의미는 아마 어쩔 수 없는 현실과의 타협일 것이다.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가늘고 흰 손가락으로 유선우의 셔츠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자 조은서는 조금 쉰듯한 유선우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몇 년이 지났는데 우리도 이제 상대방을 알아가야 하지 않겠어? 은서야, 적어도 난 시간이 필요해.”과거에 유선우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이런 일을 하기 위해 이치를 한가득 늘어놓았지만, 조은서는 이 또한 핑계일 뿐 유선우는 단지 그녀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른 아침의 주방에는 언제든지 고용인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결국, 조은서는 타협하고 말았다.손가락 힘이 풀리고 그녀의 몸은 곧바로 누군가의 품에 안겨버렸다.유선우는 계단을 밟으며 검은 눈동자를 조은서의 작은 얼굴에 고정했다. 그는 그녀에게 키스를 퍼붓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2층에 도착하고 유선우는 조은서의 침실 문을 열어 그녀를 침대 끝에 내려놓았다.조은서의 몸에는 연한 색의 실크 가운이 걸쳐져 있었는데 몸이 침대에 닿으며 가운도 부드럽게 침대 위에 감겼다.크리스탈조명 아래, 유선우의 눈동자 속에는 남자의 욕구가 일렁이고 있었고 또 다른 조은서가 이해할 수 없는 깊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이윽고 그는 가운을 사이에 두고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조은서는 엄청난 수치심에 천천히 눈을 감았다...유선우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분명 감각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내키지 않아 한다는 것을.그 반 대표라는 남자 때문인 건가?반 대표라는 사람과 함
뭐가 고맙다는 거지...잠깐 생각해본 후에야 조은서는 그의 말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유선우는 조은서가 자신의 원망을 이안이에게 전하지 않은 것에, 이안이가 유선우를 친근하게 대하는 것에 고마워하고 있다... 한순간, 조은서는 마음이 쓰라려 왔다.“이안이를 데려갈 때 난 이안이에게 사랑과 행복만을 가르치겠다고 말했었어. 이안이는 내 아이지 내 감정의 도구가 아니야.”유선우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유선우가 엄숙한 얼굴을 하고 묵묵히 차 안에 앉아있자 이안이는 갑자기 작은 손으로 그의 얼굴을 받치며 귀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아빠, 웃으세요!”그러자 유선우도 이안이에게 싱긋 미소를 지어주었다.유선우의 미소에 이안이도 방긋 웃어 보였다. 이안이는 웃을 때 갓 난 치아가 환히 드러나는데 조은서의 어릴 적 모습과 똑 닮았다.유선우의 코끝이 찡해났다.만약 과거에 어리석게 굴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아마 원만한 가정을 이루었을 테고 유선우도 타인과 그녀를 공유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그때, 유선우가 문득 입을 열었다.“하와이에서는 어때? 괜찮아?”“네. 좋아요.”조은서가 답하자 유선우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고 계속하여 침묵을 지켰다.차가 조은서의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고 유선우는 함께 올라가지 않았다. 유선우는 트렁크에서 이안이의 물건을 모두 꺼내 놓았고 조은서는 그 물건 중에 캐리어 하나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난 이제 H시로 출장을 가야 해. 진 비서는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어.”유선우가 해명하자 조은서는 문득 유선우 역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가까스로 하루 반 시간을 내어 이안이를 놀아준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하여 이안이의 작은 손을 잡고 유선우에게 작별인사를 건네며 그를 재촉했다.“그렇다면 빨리 가보세요.”그러나 유선우는 묵묵히 깊고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는데 그 알 수 없는 눈빛 속에는 다소 기대가 담겨 있는 듯하다.이윽고 조은서는 고개를 숙인 채 이안이를 데리고 아파트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지 H시에서 돌아온 뒤, 유선우는 계속하여 조은서와 미적지근하게 거리를 두고 지냈다.아이를 보러 가도 조은서는 계속하여 그를 회피했다. 처음에는 자신을 피하기만 하는 조은서의 모습에 마음이 불편했지만 후에 다시 생각해보니 현재 그녀의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반성훈이고 그와의 관계는 결국 아이를 낳기 위함일 뿐이다.사실 그녀의 감정과는 무관한 관계이다.유선우는 생각할수록 점점 조은서와 멀어져갔고 그들 사이에는 이제 아이를 제외하곤 더 이상 남은 것이 없는듯하다...주말.YS 그룹 건물 안, 긴 창문을 건너 바깥을 내다보니 어느새 울긋불긋한 단풍잎들이 마치 불타는 것처럼 나무들을 빨간색으로 물들여 놓았다.또 한 해의 늦가을이 다가왔다.유선우는 멍하니 바깥 풍경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걸려온 조은서의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그녀의 전달사항은 매우 간단했다.“지금 시간 괜찮으세요?”유선우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조은서의 생리가 끝났다는 것을 예측한 유선우는 먼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천천히 답했다.“응. 괜찮아.”...밤 8시.그들은 힐튼 호텔에서 만났다.로얄 스위트룸 안, 불을 켜지 않아 어둑어둑한 실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유선우는 창가에 앉아 바깥의 네온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잠시 후, 조은서는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바깥의 불빛에 비친 유선우의 옆모습을 볼 수 있었다.그의 옆태는 칼에 베인 것처럼 날카롭고 잘생겼는데 윤곽만 봐도 그의 표정이 매우 엄숙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미세한 미닫이 소리에 깜짝 놀란 유선우는 이내 고개를 돌려 조은서를 바라보며 잠긴 목소리로 그녀를 맞이했다.“왔어?”조은서는 그의 인사말에 답해주지 않았고 불도 켜지 않았다.어쩌면 불을 켜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조용히 그의 눈앞에 다가갔고 그들 사이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유선우는 조은서의 옷차림을 더욱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 S 브랜드의 레이스 원피스로 그녀의 몸매를 더욱 잘 드
하지만 유선우를 가로막기에는 모두 역부족이었다. 그는 두세 번 만에 조은서의 성을 침입했고 얇은 입술은 끊임없이 그녀의 귓가를 맴돌며 잠긴 목소리로 듣기 거북한 말을 늘어놓았다.“알려줘.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어떻게 해야 널 완전히 만족시킬 수 있는데?”조은서는 유선우를 볼 수 없었다.하지만 유리창에 그들의 모습이 비치며 서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조은서를 품에 가둔 유선우의 준수한 얼굴에는 엄격한 기색이 역력하여 보기만 하여도 몸이 안달 나는 기분이었다...조은서는 반항할 수 없었기에 그저 묵묵히 이 모든 것을 견딜 수밖에 없었다.창가에서 한판 하고 나서 유선우는 또 그녀를 안아 들고 침실에 있는 침대 위에 내려놓고는 다시 그녀의 몸에 자신의 몸을 부딪쳤다... 그는 3년 동안 억눌렀던 남자의 욕구를 이 순간에 모두 풀어냈다.그는 조은서의 몸을 전혀 애지중지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거칠고 천박하게 그녀를 대했다.몇 차례의 폭풍우가 지나가고 어두컴컴한 침실 안, 두 사람의 거친 호흡이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때, 유선우가 고개를 돌려 부드럽게 물었다.“좋았어?”하지만 조은서는 그대로 몸을 뒤척이더니 대답이 아닌 뒷모습만을 그에게 보여주었다.이윽고 노련한 흉내를 내며 시큰둥하게 답했다.“나쁘지 않았어요.”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선우는 당장이라도 조은서를 끌어 당겨와 몇 번이고 더 그녀의 몸을 탐하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남은 이성으로 욕구를 삼켜낸 뒤 억누르는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네 다른 남자들과 비하면 어때?”조은서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최근 몇 년간 조은서의 인생에는 다른 남자가 전혀 없었고 이안이가 병에 걸리며 더욱 사랑을 논할 마음 따위 없었다. 유선우가 이런 말을 꺼내는 건 상당히 합리하지 않았지만, 조은서는 굳이 그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고 오히려 가볍게 콧방귀를 뀌며 비아냥거렸다.“별로 더 좋을 건 없네요.”유선우는 울화통이 터지며 조은서에게 다가가 그녀의 턱을 잡고 으름장을
파도가 일렁이는 그들의 마음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조금 전 가장 격렬하게 몸을 부딪치던 때도 지금, 이 순간만큼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았다.조은서의 눈가에 맺힌 눈물은 과거 유선우에 대한 모든 사랑과 원망이 깃들어 있었는데 그녀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 방울 두 방울 뚝뚝 흘러내리던 눈물방울은 어느새 유선우의 키스와 함께 전부 닦여져 있었다.유선우의 목소리는 이제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갈라져 있었다.“아직도 내가 원망스럽지? 아직도 날 사랑하지?”하지만 조은서는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이 문제에 답하고 싶지 않았다.조은서가 대답하려 하지 않자 유선우는 각종 수단을 가리지 않고 그녀에게 끈질기게 매달렸다. 그의 검은 동공은 한순간도 조은서의 얼굴을 떠나지 않았고 그녀의 반응을 호시탐탐 살폈다. 유선우는 절박하게 조은서의 얼굴에서 지난날의 정을 보고 싶어 했고 자신을 사랑했던 흔적을 조금이나마 찾기 위해 애썼다...하지만 조은서는 끝내 그의 물음에 답해주지 않았다.이윽고 유선우는 그녀의 옆에 몸을 돌려 누웠지만, 그의 다른 한 손은 여전히 그녀의 몸 위에 둘려 있었고 얼굴을 그녀의 목덜미에 파묻은 채 한껏 자세를 낮추었다.“은서야, 지난 몇 년 동안 난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을 찾은 적 없어. 욕구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난 항상 네가 돌아와서 기분 나빠할까 봐 다른 여자를 찾으려는 생각조차 한 적 없어.”조은서가 다른 남자를 찾을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하지만 막상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나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그리고 저도 모르게 조은서는 그와 반성훈 중 누굴 더 좋아할까 하는 생각을 하고 누구의 테크닉이 더 좋다고 여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일단 그런 인식을 하게 되면 남자들에게는 일종의 비인간적인 괴롭힘과 다를 바 없다.예전 같았으면 유선우는 절대 조은서가 다른 남자를 마음에 품고 다른 남자가 그녀의 곁을 차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자존심과 오만함은 절대 타인과 그녀를 공유하는 것을 허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