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동안 수다를 떨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헤어질 때 거의 10시가 되어있었다. 서미연의 차가 먼저 떠났다. 조은서는 호텔 문 앞에 서서 몸에 두른 숄을 정리하고 나서 몸을 돌려 차에 오르려고 했다. 이때 비싼 외제 차 한 대가 그녀의 옆에 멈추더니 뒷좌석이 열리면서 한 남성의 팔이 불쑥 튀어나와 다짜고짜 조은서를 차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 바람에 조은서는 어떤 남성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익숙한 남성의 체취로 인하여 조은서는 그가 누군지 바로 알아차렸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유선우 씨.”유선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선우는 조은서의 가녀린 허리를 몸으로 끌어당기는 한편 한 손으로는 버튼을 누르자 뒷좌석과 앞 좌석의 연결 부분에서 검은색 유리창이 솟아올랐다. 그것도 방음 유리였다…밀폐된 공간에는 숨 쉬는 소리만 들려왔다. 그리고 유선우의 음울한 눈빛도 있었다.조은서의 빨간 입술이 살짝 떨리면서 물었다. “뭐 하자는 거예요?”유선우는 조은서의 가녀린 허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어깨에 둘렀던 캐시미어 숄이 흘러내리자 가느다란 끈만 걸쳐진 어깨가 보였다…보드라운 살결이 아주 유혹적이다!유선우는 조은서의 하얀 팔목을 쓰다듬으면서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호텔로 갈까?”조은서는 동그래진 두 눈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유선우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려고 했다. 조은서의 눈빛을 받으며 유선우는 또 다시 낮은 소리로 말한다.“호텔로 갈 거야.”조은서는 내숭 없이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서가 B시로 돌아온 이유가 바로 유선우와 잠자리를 가져 아기를 낳는 것이다. 어디서 잠자리를 가지든 다 똑 같은 것이다. 호텔도 마찬가지고.그 뒤로 유선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심지어 무섭기까지 하였다. 조은서는 서미연의 말이 떠오르면서 이 남자가 오랫동안 금욕을 해 온 관계로 이상이 생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은서는 더는 유선우를 건드리지 않고 조용히 옆에 앉아있었다…두 사람의 모습은 쾌락을 찾
조은서는 선택할 여지가 없다. 그녀는 유선우를 꼭 부둥켜안았다. 안 그러면 침대에서 떨어질 수 있었다. 유선우의 몸은 몹시 뜨거웠고 조은서의 심장은 뛰어나올 것만 같았다…유선우는 조은서의 목덜미를 잡고 그녀의 시선을 자기 얼굴에 고정시켰다. 두 쌍의 눈이 마주쳤다. 유선우의 까만 눈동자에는 여자에 대한 욕망과 함께 알아보기 힘든 한 가닥의 자제가 엿보였다. 두 눈동자는 먹물을 풀어놓은 바다같이 끝없이 깊다. 유선우는 낮은 소리로 물었다. “몸은 다 회복된 거야?”의문 구인 것 같지만 사실은 진술이다. 조은서의 몸매는 출산 전보다 훨씬 매력적이었고 남자의 손바닥에 전해오는 촉감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조은서는 거의 우는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말하지 마요.”유선우는 조은서의 목덜미를 잡고 아주 깊게 키스를 하였다. 마치 그녀를 통째로 삼켜버릴 듯 강렬하였다. 그의 몸에서 전해오는 옅은 담배냄새마저 그녀의 몸속으로 침투하려고 기를 쓰고 있다…갑자기 유선우는 모든 행동을 멈췄다. 유선우는 조은서를 품에 안고 머리를 숙여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이런 느낌을 즐기는 듯한 또한 버릇 같기도 한 그런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유선우의 머리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유선우는 조은서를 풀어주었다. 침대가에 앉아 바지를 주워 입은 유선우는 바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어 담배 한 개비를 털어냈지만 불은 붙이지 않은 채 그대로 입에 물고 사색에 잠겼다…전에는 담배를 절대 참은 적이 없다. 조은서는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선우는 이안이가 병에 걸린 사실을 알았기에 조은서를 데리고 호텔로 왔고 조은서와 잠자리를 하려고 했다…하지만 갑자기 왜 멈췄는지는 그녀도 알 수 없었다. 이날은 조은서의 가임기이며 오늘이 지나면 생리기가 지나기를 기다려야만 했기에 조은서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여 설령 두 사람 사이에 많은 응어리가 있다 쳐도 풀지 못하는 많은 오해가 존재하더라도 그녀는 유선우의 등 뒤로 다가가 살며시 그를
유선우는 조용히 보고 있었다. 불현듯 그와 조은서의 첫날 밤이 떠올랐다. 비록 그다지 아름다운 기억이 아니었지만, 유선우에게는 후련한 날이었다. 심지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기억이었고 또한 그 뒤 그가 결혼하려는 결심을 내리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유선우는 조은서를 바라보았고 조은서는 그 한 쌍의 남녀를 바라보면서 과거를 떠올리는 듯하면서 눈빛이 다소 촉촉하였다. 유선우는 그녀의 어깨를 살짝 감싸안았다. 체크아웃 할 때 프런트 직원의 눈빛은 의미심장하였다. ‘유 대표님, 너무 빠른데요.’컴퓨터에 나타나는 시간으로 봐서 앞뒤 모두 포함하면 30분 밖에 안 걸렸다. 뒷정리를 하고 나서도 좀 더 애틋한 시간을 가져야 하고 내려오는 시간도 한참 걸려야 할 텐데 말이야...직원은 영수증을 유선우에게 건네주면서 공손하게 말한다.“유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유선우는 직원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채고 한 번 더 돌아보았다. 살짝 화난 듯한 한 쌍의 눈동자는 특히 매력적이라 직원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다 가고 나서야 직원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말했다. "놀래서 죽는 줄 알았잖아."주차장에 있던 김 기사도 유선우가 이렇게 빨리 내려올 줄 생각 못했다. 방금 차를 마시고 잘 준비를 하는데 누군가 창문을 두드리기에 벌떡 일어나보니 창밖에 유선우가 서있었다. 김 기사는 급히 차에서 내렸다. 유선우는 손을 내밀면서 말한다.“차 키 줘요. 제가 운전할게요.”김 기사는 급히 차 키를 유선우에게 넘겨주고 텀블러를 들고 택시 잡으러 가면서 머리를 끄덕이면서 조은서에게 인사를 하였다. “사모님 들어가세요.”늦은 밤이라 조은서는 시정하기도 귀찮다. 조은서는 피곤하여 뒷좌석에 기대어 앉고 싶었으나 유선우는 운전석 옆자리의 차 문을 열면서 말한다.“타!”할 수없이 유선우의 옆자리에 앉았다. 길을 달리면서도 유선우는 별로 말이 없고 조은서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오늘밤은 이렇게 지나겠지 하고 조은서는 생각하였다. 하지만 차가
조은서는 집으로 돌아왔다. 등 뒤에 문을 기대고 서서 숨을 고르면서 잠깐 넋이 나가 있었다. 한참 뒤 조은서는 손을 내밀어 자기 입술을 살며시 만지더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조은서는 유선우를 용서할 수 없거니와 자기 자신도 용서할 수 없다.차 안에서 격정의 순간에 조은서는 아무런 감각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줄곧 자제하여 왔지만 신체의 변화는 자신을 속이지 못한다. 유선우의 손길은 그녀의 꾹꾹 눌러왔던 생리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조은서는 치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아파트 내는 조용하였고 심정희는 자리에 누웠다. 심정희가 조은서를 위해 준비해 둔 야식이 있었지만, 조은서는 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조은서는 침실로 들어가 독서 등을 켜고 침대에 앉아 이안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쌔근쌔근 자고 있었다. 요즘 주 닥터가 처방해 준 약을 먹고나서 많이 좋아졌고 코피도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안이의 병은 줄곧 조은서의 마음에 걸려있는다. 하여 오늘 밤 그 힘든 시간에도 그녀는 벌거벗은 채로 유선우를 끌어안고 유선우에게 자신과 잠자리를 해달라고 거의 애원하다시피 한 것이다. 이것만 생각하면 조은서는 마음이 씁쓸해졌다. 이안이가 깨어나 눈을 비비며 엄마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 엄마가 제일 예뻐.’조은서는 이안이에게 이불을 여며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꿈을 꿨냐고 물었다. 이안이는 머리를 젓다가 다시 끄덕이었다. 그러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꿈에 아빠를 봤어. 엄마, 아빠는 언제 아기를 데리러 와?”조은서는 아기 담요로 이안이를 감싸 품에 안고 상냥하게 달랜다.“두 밤만 자면 아빠가 우리 아기를 데리러 올 거야. 그리고 우리는 함께 추석을 쇨 거야.”“엄마, 추석은 뭐야?”“추석은 한 가족이 다 모이는 날이야. 그날 밤 달이 제일 둥글거든.”...이안이는 '응' 하고 대답했다. 갑자기 이안이가 작은 코를 킁킁거리며 조은서의 몸에 갖다 대면서 강아지처럼 냄새를 맡았다. 한참 냄새를 맡더니 쫑알거리며 말한다.“엄마 몸에서 아빠
의외로 반성훈의 짝은 사실 임지혜이다. 임지혜의 얼굴에 나타난 희열의 표정은 감출 수 없었다. 차준호는 케이스를 조용히 내려놓고 머리를 숙여 임지혜를 바라보았다. 눈에는 오랫만의 상봉의 설렘 같은 건 없고 단지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되어버린 뒤의 허망함 같은 것만 남아있다...차준호는 사실 임지혜가 시집을 갈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반성훈 같은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다. 일 때문에라도 간혹 만날 수도 있는 사이이다. 차준호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온다.“이 사람이랑 사귀고 있는 거야?”임지혜같이 쿨한 여인도 이 시각에는 목소리가 떨려온다.“그래. 반 씨가 나한테 아주 잘하거든.”차준호는 눈을 몇 번 깜빡이었다. 그의 눈초리는 지나치게 길고 예쁘다. 하지만 강렬한 인상 때문에 사람들은 때때로 이런 것을 놓치게 된다...차준호는 임지혜를 오랫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다시 낮은 소리로 물었다.“잤어?”임지혜의 눈에 갑자기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녀는 아주 난처해하였다. 허둥지둥 물품을 정리하여 떠나려던 그 순간에 끝내는 두 글자를 차준호에게 남겼다. “잤어.”잤다... 차준호는 순결 주의 남성이 아니고 절대로 자신의 욕구를 자제하지도 않지만 임지혜로부터 이 두 글자를 듣는 순간 그는 몸이 휘청거리면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차준호는 차에 앉아 담배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이 밤, 차준호는 술에 취해 별장으로 돌아가니 이미 자정이었다. 정우연이 1층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3년이 지난 지금, 정우연은 이미 예전의 화려함이 줄줄 흐르던 명문 가족의 규수가 아니다. 불행한 결혼생활은 그녀를 사정없이 괴롭혀 얼굴에는 이미 여자의 온화함이란 찾아볼 수 없었고 몸매는 비쩍 말라 전혀 남자의 흥미를 북돋울 수 없었다. 이 몇 년 동안 차준호는 그녀에게 딱 두세 번 곁을 주었다. 그것도 매번 술에 취해서였다. 술에 취한 차준호는 정우연을 소파에 눌러 일을 치렀고 그는 정우연의 귓가에 대고 임지혜의 이름을 불렀
조은서가 이안이를 달래서 재우고 나니 거의 9시가 되었다. 샤워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임지혜가 왔다. 조은서는 밤중에 정신 나간 사람처럼 허둥대는 임지혜를 보더니 재빨리 집안으로 들이면서 낮은 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로 밤중에 왔어?”임지혜는 목이 꽉 막혀 말을 못하였다. 한참 지나 임지혜는 붉어진 눈으로 말한다.“나 저녁에 차준호 만났어.”조은서는 흠칫하였다.한참 지나 조은서는 임지혜를 거실로 안내했고 뜨거운 물수건을 꼭 짜서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려 했다.임지혜는 조은서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중얼거린다.“은서야, 나... 반 대표가 나의 과거를 알게 되어 날 싫어할까 봐 겁이 나.”임지혜가 전에 반성훈에게 고백했었다. 전에 남자를 사귀었었고 아기를 유산한 경험이 있다고.하지만 반성훈은 그 남자가 차준호인 줄은 모른다. 평소에는 임지혜가 반성훈을 반 씨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반 대표라고 부르는 것을 봐서 임지혜가 확실히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조은서는 머리를 숙여 임지혜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하였다.“반 대표가 너에게 다가가기 전에 많은 생각을 하고 너를 선택했을 거야. 반 대표가 사실 그 일들을 다 알고 있고 나한테 물은 적도 있어. 나도 숨김없이 전부 얘기를 해줬어. 지혜야, 반 대표가 알고 있어. 그 사람이 차준호인 것을.”임지혜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자는 이안이를 깨울까 봐 소리를 눌러가며 울었다. 임지혜는 태어나서부터 가진 것이 별로 없고 가진 것보다 잃은 것이 많기에 그녀는 절대로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특히 반성훈같은 남자가 자신을 좋아해 주고 자신의 형편없는 과거까지 용납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것이다.임지혜는 조은서의 품에 안겨 울먹이며 말한다.“비록 반 대표가 결혼도 했었고 아이도 있지만 나하고 비교하면 그 사람의 인생은 너무 완벽한 거야.”반씨 가문은 하와이의 명문 가족으로 몇 대째 쭉 이어오고 있다. 반성훈의 조건이 지나치게 좋긴 하다. 조은서는 임지혜의 기분을 알
이 한마디 말이 두 사람의 거리를 좁혀주었다. 두 사람 사이에 아무리 오해가 많고 아무리 낯설어도 그들 사이에는 딸 이안이가 있었다. 이안이를 위해서 그들은 그 일도 해야 했다......30분 뒤, 롤스로이스는 서서히 진이 정원에 멈췄다. 조은서가 차에서 내리면서 눈빛이 촉촉해졌다. 진이 정원은 여전하였다. 하지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전부 바뀌었다...이안이는 아빠의 품에 안겨 작은 소리로 물었다.“아빠, 엄마 왜 울어?”유선우가 나지막한 소리로 답했다. “엄마가 아빠한테 화났어.”어른들의 일을 이안이는 알 수가 없다. 이안이는 다만 눈길로 엄마를 쫒고 있었다. 엄마는 슬퍼서 울고 있는 것 같았다...조은서는 급히 기분을 다스렸다. 진이 정원의 하인들은 전부 유선우가 초빙해 온 사람들이다. 일찍부터 오늘 사모님과 아가씨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전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다. 조은서를 만나면 사모님이라 불렀고 전처럼 공손하게 모셨다.조은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은서 씨라고 부르면 돼요.”그 말에 하인들은 감히 응하지 못하였다.유선우는 표정이 복잡해졌지만, 조은서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사모님이 말한 대로 해요.”유선우는 이안이를 데리고 정원을 구경하였다. 조은서는 함께 다니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기가 싫어서 아예 작은 주방에 들어가 이안이에게 줄 송편을 만들기로 했다. 이안이가 제일 좋아하는 떡이다...등 뒤에서 유선우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조은서가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는 모습은 예전과 다름없었다 전에도 조은서는 주방에서 이것저것 만들기를 좋아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능숙하지는 못하였다. 그때의 조은서는 직업이 없었고 단지 유선우의 어린 신부였다. 유선우의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는 참지 못하고 다가가 등 뒤로 그녀를 살포시 껴안았다. 그는 옷 위로 조은서의 몸을 훑었다. 조은서는 넋이 나간 듯 굳어있다...박하 향기를 머금은 남성의 입김이 그녀의 귓등을 간지럽히고 뜨거운 열기가 그녀의 여
빗속에 서 있는 유선우의 모습은 말로 이룰 수 없이 청초하고 잘생겼다...함은숙은 유선우를 보자마자 다급히 다가가 말을 꺼냈다.“선우야, 이안이 좀 보게 해줘. 난 이안이 친할머니잖아. 그리고 오늘 추석이라 내가 특별히 이안이 먹으라고 송편도 맛있게 만들어 왔어.”말을 하며 함은숙은 급히 고용인더러 송편을 가져오도록 지시했다.그러나 유선우는 담담히 입을 열어 그녀를 가로막았다.“쓸데없이 힘 빼지 마세요. 전 절대 당신을 이안이와 만나게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은서와 이안이는 제 아내이고 제 아이입니다. 당신과는 그 어떤 관계도 없어요.”함은숙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그러자 옆에 있던 고용인이 그녀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함은숙을 불렀다.“사모님!”함은숙은 고용인을 밀쳐버리고 자신의 얼굴과 몸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빗물을 온전히 맞았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에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 유선우의 옷깃을 부여잡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유선우, 너 지금 뭐라 그랬어? 넌 네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고 있어? 내가 왜 이안이 친할머니가 아닌데? 내가 얼마나 이안이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데!”촘촘히 내리는 빗방울이 그의 앞에서 막을 이루며 떨어져 내렸다. 유선우는 계속하여 함은숙을 밀어내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유문호가 저희를 떠났던 그 날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었죠. 하지만 당신은 저의 존재를 잊었어요. 우리는 원래 잘 지낼 수 있었어요. 그러나 당신의 마음속에는... 유문호뿐이었죠!”유선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검은 대문은 마치 유선우가 그녀에게 닫아버린 마음의 문처럼 함은숙의 눈앞에서 천천히 닫혀버렸다.함은숙은 멍하니 굳게 닫힌 대문을 바라보았다.그리고 그 순간, 함은숙은 갑자기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유선우가 그녀를 원망하고 있다...근 몇 년 동안 유선우는 본가에 돌아온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그녀와 함께 명절을 보낸 적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