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우는 의사에게 몇 번이고 확인했었다. 그는 조은서가 마음을 돌리는 기미가 보이냐고 물었지만, 의사는 없다고만 했다. 그러면서 사모님은 이혼하려는 의지가 강경하고 유선우를 만날 생각이 없다고 하였다. 들을 때마다 유선우는 실망스러웠다. 섣달그믐날 저녁, 유선우는 사람을 시켜 특별히 조은서를 위해 빚은 물만두와 딸 이안이의 사진을 조은서에게 보내줬다...조은서가 받아보면 좋아하겠다고 유선우는 생각했다. 이 해 그믐날 저녁은 여느 때와 같이 유 씨 본가에서 진행하기로 했는데 금년은 유달리 썰렁하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조은서도 집에 없었다...하지만 함은숙의 기분은 상당히 좋아 보였다. 본가는 명절 분위기로 한껏 멋을 냈고 작년보다 힘을 더 쓴 것 같다. 그 어떤 대경사를 맞이하는 듯싶었다. 유선우는 딸 이안이와 함께 차에서 내리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본가의 고용인이 조용히 귀띔을 해주었다. “큰 사모님이 이지우 아가씨를 집으로 초대해서 지금 와 있습니다.”유선우는 마당에 세워진 하얀색 벤틀리를 보더니 이지우의 차임을 알았고 이 또한 함은숙의 뜻임을 알아차렸다. 고용인은 할머니 신변으로 조은서를 걱정하면서 한마디 한다.“작은 사모님이 아직 유 씨네 호적에 올라있는데 지우 아가씨는 뭐가 그렇게 절박한지… 명문가의 체통이 전혀 없네요.”유선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표정은 담담하였다. 그러자 고용인은 더욱 걱정되었다. 함은숙은 확실히 이 뜻이 있었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끊임없이 암시했으며 그 밖에도 이지우에게 비취반지 한 쌍을 선물하면서 사람이든 물건이든 짝을 이뤄야 한다고 하였다. 이지우는 부끄러운 듯 눈을 내리깔고 선물을 받으면서 유선우를 바라보았지만, 유선우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이 없다. 저녁식사가 끝난 뒤 유선우는 테라스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 이지우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유선우와 똑같이 테라스 난간에 기대어 섰다.이지우는 유선우의 잘생긴 얼굴을 보면서 낮은 소리로 말한다.“선우 오빠, 제가 진중하지 못한 건 알아요
유선우는 이지우에게 기대도 착각도 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는 조은서와의 혼인관계를 끝내야만 다른 여자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설령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이안이를 위한 적합한 여자면 된다고 생각했다.별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유선우는 뒷좌석에 앉아 이안이를 품에 안고 생각에 잠겼다. 차가 별장 앞에 거의 다다를 때 기사가 급브레이커를 밟자 차가 튕기면서 멈춰 섰고 이안이는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다. 유선우는 아이를 달래면서 묻는다.“무슨 일이야?”기사는 차 앞에 있는 아가씨를 알아보고는 머리를 돌려 말했다. “그 백서윤 아가씨네요. 설날에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요. 제가 내려가 볼 테니 대표님은 잠깐 계세요.”유선우는 잠깐 망설이다가 낮은 소리로 말하면서 아이를 아주머니에게 넘겨주었다. “내가 내려가서 볼게.”차 앞에 서있던 백서윤은 유선우를 보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백서윤은 오늘 저녁 이지우가 유 씨 본가로 간 것을 알고 이지우가 함은숙이 지정한 며느리 후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마음이 조급했던 것이다. 그녀는 1초의 지체도 없이 달려와 사촌 언니인 백아현을 팔아 유선우의 마음을 잡아보려고 했다. 백서윤은 눈길에서 꼬박 세시간이나 서 있어 온몸이 얼음덩어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유선우는 진중한 모습으로 그녀와 다른 세상의 사람인 듯 냉담하였다. 그러고는 전에 있었던 보살핌은 발생한 적 없는 듯한 얼굴로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백서윤은 음반 한 장을 내밀었다. 그 음반에는 아직 소녀의 체온이 남아있었다. 백서윤은 조심스럽게 유선우에게 건네 주면서 말한다.“이건 언니가 남기고 간 것인데 아마도 그 인 것 같아요.”그녀가 유선우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을 유선우는 모를 리가 없다. 유선우는 음반을 받으면서 담담히 말한다. “진 비서한테 수표를 보내주라고 말해놓을게.”유선우는 그 말만 남기고 몸을 돌려 차에 오르려고 할 때 등 뒤에서 백서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 대표
그믐날 밤, 백씨 일가는 별장으로 초청받았다.그들은 불안하였다. 유선우의 뜻을 알 수가 없다.하지만 김춘희는 자신만만하게 말하였다. “유 대표님이 아마 아현이가 생각나서 우리에게 보답하려고 하는 것일 거야. 새해라고 우리에게 용돈을 주시려고 하는 것이니 좀 있다 챙기기만 하면 돼.”그녀는 침착한 말투로 말했다. 딸을 잃은 지 반년도 안 된 엄마같이 보이지 않았다. 백정수는 욕을 퍼붓는다.“돈에 눈이 멀어가지고 양심은 떼서 개를 줬냐?”김춘희가 반박하려고 할 때 진 비서가 계단으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김춘희는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면서 말한다.“진 비서, 설날이라고 유 대표님이 우리까지 다 챙겨주고 너무 미안하지 뭐야.”하지만 진 비서의 태도는 전과 많이 다르다. 입을 열자 말투가 쌀쌀맞다.“유 대표님께서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김춘희는 속이 철렁했다. 방금 전의 그 자신감이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계단을 오를 때 백서윤을 밀치면서 낮은 소리로 분부하였다. “좀 있다 무슨 일 있으면 네가 막아서야 돼. 평소에 큰아빠, 큰엄마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백서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다.그녀는 자신이 방금 유선우에게 넘겨준 음반이랑 상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백서윤은 자신이 큰 사고를 쳤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일언반구도 감히 못 하였다...백씨 일가는 진 비서를 따라 계단으로 올라갔다. 서재의 뽀얀 담배 연기에 눈이 따가웠다. 김춘희는 손을 휙휙 저으며 앙칼진 목소리로 말한다. “진 비서는 유 대표님을 어떻게 돌보고 있는 거야? 이게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이야?”진 비서가 차갑게 웃었다. 유선우는 소파에 앉아있었고 저녁 식사 때 입었던 정장 차림이었다. 그는 넥타이도 풀지 않은 채 머리를 숙여 손가락 끝의 담배를 바라보면서 낮은 소리로 물었다. “그때 백아현을 조은서로 둔갑시킨 것 맞지?”백아현의 부모는 놀라서 가만히 있었다. 백서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둔갑을 시키다니?’서재 안은 잠시 잠잠하더니
샹데렐라 등불 밑 유선우는 아무런 표정이 없이 말한다. “목숨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알아서 해.”진 비서는 흠칫 놀랐지만, 알겠다고 대답했다. 진 비서는 유선우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좀 지나 정원으로부터 자동차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진 비서는 유선우가 조은서를 데리러 갔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조은서가 드디어 돌아올 수 있었다…그믐날 밤, 대지는 온통 흰 눈에 덮여 있다. 까만색 랜드로버는 눈길을 서서히 달려 오랜 시간 끝에 그 개인 별장에 도착했다. 여전히 벽돌로 지어진 흰색 담벼락이었고 여전히 어둠 속에 우뚝 솟아 있는 괴물과도 같았다. 유선우의 차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마당에는 발자국이 거의 없었고 눈은 내린 그대로 쌓여있었다. 유선우는 뭔가를 감지했고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차에서 내리면서 유선우는 두껍게 쌓인 눈에 걸려 한쪽 무릎을 꿇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이 녹아 바짓가랑이를 적셔 차가운 기운이 뼛속으로 파고들었다…그는 비틀대며 별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별장 복도에는 대문이 하나 더 가설되어 있고 자물쇠가 잠겨있다. 조은서에게 전하라고 보낸 물만두는 아래층 식탁에 놓여있었다. 누군가 거의 다 먹어버리고 몇 개 남지 않은 채로 접시에 널부러져있다. 그리고 이안이의 사진이 그 옆에 아무렇게나 널려있었다…큰돈 들여 초빙해온 사람들은 화로를 쪼이면서 카드를 놀고 있었다. 물만두는 이들이 먹은 것이 분명하다. 유선우를 보자 그들은 당황하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유 대표님, 오늘은 그믐날이라…”유선우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있었다. “문 열어.”그 사람들은 뭔가를 더 말하려고 하는데 유선우는 발로 카드테이블을 걷어차면서 이를 악물고 말한다.“문 열라고.”그 중 한 사람이 문을 열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전부 부인이 지시한 것입니다. 저희가 마음대로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유 대표님.”유선우는 그 자리로 그 사람을 아래층으로 차버렸다. 그 사람은 처참한 비명을 질
돌아가는 길에 유선우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 조은서의 몸을 감쌌다. 유선우는 그녀에게 외투를 씌워 줄 때 두꺼운 외투를 통해서 조은서의 갈빗대가 분명한 것이 만져졌다. 그녀는 몹시 허약하였기에 그를 거절하지 않았고 조용히 조수석 옆자리 창틀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까만색 외투는 그녀의 얼굴을 반쯤 가려 야위고 뾰족한 부위밖에 안 보인다…보기만 해도 몸서리가 날 지경이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창밖만 바라보고 있다. 새해의 달빛이 나뭇가지에 드리우고 서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져 올 때 조은서는 아주아주 낮은 소리로 말한다.“선우 씨, 해피뉴이어”하지만 유선우는 해피하지 않다. 그는 조은서가 그와 작별 인사를 한다는 것을 안다. 이번 설날이 그들이 함께 맞는 마지막 설날일 것이다… 하지만 유선우는 이렇게 그녀를 보내기엔 억울하였고 이렇게 보내기가 너무 싫었다. 유선우는 조은서를 다시 소유하고 싶어졌다. 차가 길목에 멈춰 섰다. 차안은 조용하고 조은서의 가느다란 숨소리만 들려왔다. 유선우는 잠긴 목소리로 연속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조은서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조은서가 피해버렸다. 조은서는 유선우와의 신체 접촉을 거부한다. 새해 첫날 유선우가 서른을 맞이하는 이날 그들의 결혼은 끝을 향해 다가갔다. 원인은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어떻게 지속한단 말인가?뭐라 해도 더는 같이 할 수 없다……아침 6시, 유선우는 조은서를 데리고 별장으로 돌아왔다. 까만색 랜드로버와 값비싼 까만색 캠핑카가 나란히 들어와 정원 주차장에 멈췄다. 유선우가 차에서 내렸다. 까만색 캠핑카에서는 함은숙과 이지우가 내렸다. 함은숙은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고 유선우를 보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말한다.“지우랑 나랑 네가 혼자 설을 쇠는 것이 적적할까 봐 함께 명절을 보내려고 왔어.”이 말은 이미 그들의 관계를 인정했다는 뜻이다. 이지우는 가방에서 돈봉투를 꺼내면서 부드러운 웃음을 띠웠다. “이안이가 너무 보고싶더라고요. 이안이에게
이지우는 차체 위로 넘어졌다.이윽고 그녀는 정성껏 준비한 돈봉투를 내려다보며 참담한 웃음을 터뜨렸다.사실 유선우는 계기를 찾고 싶었을 뿐 조은서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저 자신을 위해 모든 곤경을 뚫고 난 뒤의 재회를 위한, 그녀에게 다시 헌신할 수 있는 핑계를 찾았을 뿐이다. 유선우는 여전히 조은서를 사랑하고 있다.조은서를 사랑하고 있다...그렇다면 그녀가 지금까지 몇 년 동안 기다린 게 뭐가 된단 말인가?조은서가 몇 년 동안 갖은 괴롭힘과 시달림을 겪으며 만신창이가 되어도 자신은 여전히 조은서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자기가 조은서보다 못한 게 대체 뭐란 말인가?...유선우는 조은서를 품에 안고 별장에 돌아왔다.일찍 일어난 고용인들은 조은서의 모습에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러고는 하나둘 저마다 눈물을 후두둑 떨구며 울먹였다.“사모님, 왜 이렇게 말랐어요? 그쪽에서 밥도 제대로 안 줬어요?”조은서는 몸이 너무 허약해 말도 꺼낼 힘조차 없었는지 애써 웃어 보이기만 했다. 그러자 고용인은 눈물을 훔쳤다.“지금 바로 죽을 끓여올 테니 사모님은 먼저 올라가서 쉬고 계세요.”고용인은 급하게 주방으로 가버렸고 유선우는 조은서를 안은 채 위층으로 올라가 한 손으로 침실의 문을 열었다.침실 안은 마치 봄날처럼 포근하고 따스했다.한편, 이안이는 아기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단잠을 자고 있었다.그리고 하룻밤 내내 이곳을 지키고 있던 진 비서는 소파에 기대 쪽잠을 자고 있었다.유선우가 조은서를 데리고 침실에 들어올 때 마침 진 비서는 기척에 잠에서 깨어났고 다급하게 눈을 뜬 그녀는 눈앞의 광경에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좀처럼 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그녀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녀도 참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이더니 몸을 일으켜 조심스럽게 다가가 울먹이면서 물었다..“어떻게, 어떻게 된 거예요? 대체 그곳에서 얼마나 못 지낸 거예요?”조은서는 씁쓸하게 웃어 보이고는 다시 눈을 지그시 감고 중얼
바로 그때, 별장의 고용인이 음식을 들고 침실로 들어왔다.고용인은 조심스럽게 음식을 내려놓고는 눈물을 글썽이며 입을 열었다.“사모님, 따뜻할 때 얼른 드세요. 그리고 드시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주세요.”그러자 조은서는 허약하게 싱긋 웃어 보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마워요.”주인님의 개인적인 가정사이니 고용인 신분인 그녀가 섣불리 끼어들 수는 없었기에 곧바로 묵묵히 자리를 비켜주었다.조은서도 이미 그녀만의 계획이 있었다.그녀는 소파에 기댄 채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그릇을 받치고 고용인이 준비해 준 죽을 들이켰다... 음식이 몸에 들어가니 기력도 많이 회복되었지만 그래도 허약한 건 변함없었다.죽을 다 마신 뒤, 조은서는 아기 침대에 살포시 기대 곤히 자고 있는 이안이를 다시 한번 눈에 담고 나서야 드레스룸에 들어가 갈아입을 옷을 가지러 갔다.조은서가 드레스룸에서 나오자 유선우는 부드럽게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며 말했다.“아직 몸이 많이 허약하니까 내가 씻는 걸 도와줄게.”하지만 조은서는 단칼에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조은서의 단호한 태도에 유선우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그냥 돌봐주고 싶어서 그래. 그것도 안되겠어?”조은서는 여전히 담담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유선우 씨, 당신은 이제 제 남편이 아닌데 이러시면 곤란하죠.”그 말을 들은 유선우의 동공이 약간 움츠러들었지만, 조은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그를 지나쳐 곧장 욕실로 걸어 들어갔다.조은서에게도 자존심이 있다.그녀는 유선우가 도와주는 것도 싫었고 고용인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았다. 옷에 감춰진 맨몸이 얼마나 앙상하고 보기 흉할지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역시나, 거울 속에 비친 여인에게는 붙어있는 살이 거의 없었다.조은서는 자신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녀는 이제 겨우 26살이다....조은서는 20분의 시간을 들여 간단히 몸을 씻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그녀가 욕실을 나설 때 유선우는 마침 아기 침대 옆에 서서 곤히 잠든 이안이의 평온한
유선우의 눈시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그는 저도 모르게 뒤에서 조은서의 가느다란 허리를 끌어안고는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파묻은 채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은서야, 나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게.”조은서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그러자 유선우는 조은서의 몸을 다시 돌려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조은서를 마주하고 있는 유선우의 눈가는 어느새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유선우는 당장이라도 조은서에게 입술을 포개며 그녀는 여전히 그의 소유라는 것을, 그들의 관계는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때, 조은서가 팔을 뻗어 부드럽게 그를 막았다.그녀의 얇은 팔에 촘촘히 박힌 바늘 자국은 마치 절대 넘을 수 없는 커다란 구덩이마냥... 그들을 가로막았다.유선우의 눈동자가 더욱 깊어졌다.그는 조은서의 팔을 꼭 움켜쥐고는 그녀를 붙잡는 것이 아닌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은서야,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내 셔츠 좀 다려줄래? 나 저번에 네가 사준 셔츠 엄청나게 좋아해.”그때, 차가 준비되었는지 아래층에서 승용차 경적이 들려왔다.조은서도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저 이제 가볼게요.”이렇게 가면 그들은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다.이렇게 가버린다면 그들은 이제 완전히 남이 되는 것이다.유선우는 단 한 번도 이렇게 추태를 부린 적이 없었다. 그는 거의 무릎을 꿇은 채 조은서를 옷장 앞에 가둬버렸다. 그는 얼굴을 과하게 평평한 조은서의 아랫배에 묻은 채 잔뜩 쉰 목소리로 가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그 순간, 조은서의 옷이 뜨거운 무언가에 젖어 들기 시작했고 물기에 옷이 피부에 달라붙어 상당히 불편했다.유선우를 내려다보는 조은서의 표정도 매우 복잡해 보였다.유선우가 울고 있단 말인가.그토록 철석같던 남자도 눈물을 흘릴 때가 있구나... 하지만 인제 와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정원 안에는 번쩍거리는 고급 캠핑카 두 대가 서 있다.아침 햇살이 공중에서 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