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우의 목젖이 꿈틀거렸다…한참 후에야 그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마사지사를 보내주었다.유선우가 다시 침실로 돌아왔을 때는 조은서가 이미 옷을 다 챙겨입은 후였고 온몸을 꽁꽁 싸맨 걸 보니 당장이라도 떠날 모양이었다.유선우는 등불 아래에 서서 조은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갈 거야?”조은서도 그의 물음에 부인하지 않았다.“할 일이 있어서요. 며칠 지나면 다시 이안이 보러 올게요… 그리고 일 처리가 모두 끝나면 이안이 데리고 갈 거예요.”하얀 등불의 빛과는 다르게 유선우의 눈은 어느새 붉게 충혈돼 있었다.“네 남편도 여기에 있고 네 아이도 여기에 있는데 대체 어딜 간다는 거야?”조은서, 넌 대체 어딜 가려는 거야?남편! 아이!조은서는 더는 유선우와 다투고 싶지 않았고 이제 그와 다툴 기력도 없었다. 조은서는 그저 비통한 눈빛으로 유선우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유선우 씨, 당신이 아직도 제 남편이라고 생각해요? 웃기지 않으세요? 그때 백아현을 위해 제 뺨을 때린 건 잊으셨어요? 그리고 백아현을 위해 제가 그렇게 애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으로 가버린 건… 유선우 씨, 이 집에서 피비린내가 느껴지나요? 그날 밤, 이곳은 피범벅이 되었고 제 다리 사이에서 새어나간 피는 계단까지 흘러내렸어요. 그럼 유선우 씨, 남편이라는 사람은 그날 밤 어디에 갔는데요? 당신은 그때 백아현을 위해 슬퍼해 주고 그녀를 위해서 마음을 썼겠죠. 아마 전 안중에도 없었을 거예요… 전 목숨을 바쳐서 이안이를 낳고 있었는데!”유선우의 안색은 점점 하얗게 질려갔다.조은서의 얇은 입술이 미세하게 떨려왔다.“당신은 맨날 여자아이가 좋다고, 아빠가 되고 싶다고 말했었죠. 그런데 이안이가 태어날 때에는 어디에 있었는데요? 이안이가 하마터면 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 했을땐… 또 어디에 있었는데요?”말을 마친 조은서는 여전히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러나 유선우는 조은서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는 침대에 눌러버렸다. 물론 이 모든 행동은 아무런 소리 없이 진행되었다
조은서는 그의 말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애초에 대답할 기력조차 없었다. 이윽고 안정제가 그녀의 체내에서 효과를 발하기 시작하며 조은서는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잠자리에 든 그녀의 모습은 수척하고 가냘파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유선우는 조은서의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지더니 이내 콩알만 한 눈물이 눈가로부터 뚝뚝 흘러내려 그의 양 볼을 적셨다…조은서는 분명 잠이 들었지만 무의식 간에도 그의 터치를 거부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선우는 가슴이 너무 아파 한참 동안 말없이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은 뒤에야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섰다.별장 1층 로비.집안에 작은 생명이 하나 더 늘어났기에 별장의 불은 저녁 내내 밝게 켜져 있었다. 하인들은 씻고 탕을 끓이고 약을 끓이며 각자 맡은 바 임무를 다했다...유선우는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왔다.그는 고개를 숙여 바꾼 지 얼마 되지 않는 카펫을 바라보았는데 여전히 은은한 피비린내가 그의 코끝을 맴도는 것만 같았다... 그러자 손바닥이 갑자기 떨려 나기 시작했고 유선우는 다급하게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지만 결국 불을 붙이지 못했다.그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깊은 밤, 유선우는 말없이 소파에 앉아있었다...창가에서부터 밤바람이 불어와 이마에 드리워진 그의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렸고 유선우의 차가운 안색은 그날따라 더욱 어두워 보였다... 그렇게 그는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말없이 한참 앉아있었다.새벽 1시.정원에서 갑자기 승용차 소리가 나자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슬쩍 쳐다본 하인은 그만 겁에 질리고 말았다.다섯 대의 검은색 미니밴이 일자로 별장에 들어섰고 차 문이 열리자 20명 좌우의 검은 옷을 차려입은 경호원들이 하나둘씩 내려왔는데 모두 업계의 엘리트와도 같은 모습에 차가운 얼굴에는 그 어떤 표정도 읽을 수 없었고 인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이었다.이윽고 스틸레토 힐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신혼생활을 즐기고 있어야 할 진 비서가 늦
유선우는 말없이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의 안색은 어둡고 음침한 감옥보다도 더 암담했다.“아니요. 괜찮습니다.”그는 누구보다도 조은혁의 성격을 더 잘 알고 있었다.이미 상소를 거부했다면 그 결정을 절대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조은혁은 자유를 되찾기 싫은 것이 아니라 유선우에게 빚지기 싫었다. 그는 조은서가 유선우에게 더는 은혜를 입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리고 오늘에 와서야 유선우는 속죄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조씨 집안 가족들은 모두 유선우와 철벽을 친 것이다.그가 다시 비행기를 타고 B시로 날아와 별장에 돌아왔을 땐 이미 아침 7시였다...검은색 롤스로이스가 검은색 꽃무늬 대문 앞에서 천천히 멈춰 섰다.이윽고 기사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전했다.“대표님, 사돈 어른이십니다.”밤새 이리저리 다녔는지라 차에 앉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던 유선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다급히 차 문을 열고 내려 인사를 건넸다.“어머님.”이른 아침, 흰 이슬이 찬 공기에 서리를 이루었다.심정희는 많은 변을 당하고 하룻밤 새 흰머리가 된 상태인데도 차분하게 유선우를 대했다. 이윽고 그녀는 조금 쉰듯한 목소리로 가볍게 말을 건넸다.“은서 데리러 왔습니다.”유선우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눈을 내리깔며 답했다.“이곳이 곧 은서의 집이고 제가 책임지고 은서를 잘 돌볼 겁니다. 어머님, 앞으로 필요한 게 있으시면 직접 저한테 말씀하시면 됩니다.”그러자 심정희는 참담한 미소를 지으며 단칼에 거절했다.“아니요. 대표님을 귀찮게 할 수는 없죠.”심정희는 말 한마디로 곧 그들의 관계에 벽을 쳤다.한순간, 유선우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긴, 그날 밤 조은서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버리고 떠나 조씨 집안이 한순간에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는데 심정희가 어떻게 그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이윽고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결국, 심정희가 먼저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대표님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조은서는 눈을 떴다.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자신의 품 안에 안겨있는 이안이를 발견했다.이안이는 연분홍 점프슈트 차림으로 그녀의 품속에서 달콤하게 자고 있었는데 그 이목구비는 말로 이룰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웠다.이안이를 바라보던 조은서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바로 그때, 잠에서 깨어난 이안이는 먼저 칭얼거리며 두어 번 울더니 엄마의 향기를 느꼈는지 곧바로 몸을 조은서가 누워있는 쪽으로 돌리기 위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너무 어린지라 방향을 구분하기 어려웠는지 몸놀림이 매우 서툴렀다.조은서는 아직 몸이 너무 허약하였지만 그래도 몸을 옆으로 돌려 아이에게 젖을 먹일 준비를 했다.하지만 조은서도 엄마는 처음인지라 동작이 서툴러 도무지 단추를 풀 수가 없었다.결국, 이안이는 초조해 났는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작은 얼굴은 울음을 터뜨리며 새빨갛게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그때, 따뜻한 손바닥이 그녀를 대신하여 잠옷 단추를 쉽게 풀고는 옷을 열어주었다...이윽고 유선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조은서의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금방 먹이기 시작해서 조금 아플 수도 있어.”그러나 조은서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그녀는 여전히 유선우와 말을 섞기 싫어했고 여전히 그의 존재를 무시하고 있었다.이윽고 조은서는 고개를 숙여 이안이를 가까이 끌어안았고 아이는 본능에 의해 엄마를 찾으며 작은 두 손으로 잡고는 게걸스럽게 젖을 빨기 시작했다. 조금 힘겨워 보였지만 그래도 꽤 만족한듯싶었다...조은서는 아파 났는지 뒤로 조금 물러났지만, 이안이는 곧 본능적으로 그녀를 따라갔다.그러고는 있는 힘껏 젖을 빨아 먹었다.유선우는 자리를 피하지 않고 한편에 서서 모녀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순간 기묘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그와 조은서는 이제 부부일 뿐만 아니라 이안이의 엄마, 아빠이다...이안이의 탄생은 그들 사이의 분노를 씻어내고 더욱 평화롭게 만들어준 것 같다.그 순간, 유선우는 정
유선우는 조은서에게 다가가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조은서는 그의 접근을 온몸으로 거부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유선우, 더는 가까이 다가오지 마. 오지 말라고!”그녀의 목소리는 피곤으로 가득 차 있었다.유선우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 조은서는 이미 산후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집안이 망하며 그녀의 곁에는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가족이 없었고 남편이라는 사람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녀를 저택에 감금해놓고는 맨날 속죄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우습기 그지없었다.어수선한 장면, 암울한 분위기.그들 사이도 한때는 더없이 달콤했지만, 지금은 결국, 이 지경까지 오고야 말았다.조은서는 유선우에 의해 별장에 감금되었다.심정희는 속수무책이었고 임지혜도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도전해보았지만 결국 조은서를 만나지 못했다...그제야 그녀는 유선우의 권세가 얼마나 강대한지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조은서는 떠날 수 없었고 여전히 유선우와 냉전을 벌이고 있다.그들 부부 관계가 파탄 났다는 건 비교적 가까운 사람들은 전부 알고 있는 사실이다...일주일 뒤, 함은숙이 이안이를 보러 별장에 찾아왔다.이안이는 최고의 보살핌을 받으며 통통하게 잘 키워져 무척 사랑스러웠다.함은숙은 이안이를 안아 들어 아이의 눈매를 보고는 조은서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유선우, 바깥에 경호원이 엄청 많던데 언제까지 이렇게 가둬놓을 셈이야? 항복할 때까지? 그런데 조은서도 결국 조씨 집안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마. 걔도 귀하게 자랐어... 쉽게 의지를 굽히지 않을 거다.”유선우는 창가에 서 묵묵히 바깥을 내다보았다.함은숙은 이안이를 데리고 놀며 계속하여 말을 이었다.“게다가 너도 앞날이 창창한 나이인데 온화하고 다정한 아내를 찾아야지. 이안이도 자신을 돌봐줄 어머니가 필요하고 조은서는 지금 상태로 자신도 돌보지 못할 텐데...”유선우도 함은숙이 뭘 말하고 싶은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이혼하라는 소리이다.하지만 유선우는 자신이 조은
임지혜는 갖은 방법을 다해도 조은서를 만날 수 없었고 심정희는 눈물로 얼굴을 적셨다.결국, 임지혜는 마지못해 차준호를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를 만나러 가기 전 그날 밤, 그녀는 베란다에서 밤새 담배를 피웠고 맥주도 마셨다...술에 취한 임지혜는 울다가 또 웃으며 차준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그를 뼈저리게 원망했다....로열 호텔.차준호는 사무실에 앉아 긴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당시는 정씨 가문과 가장 격렬하게 싸우던 시기였기에 차준호는 온몸의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었다.그때, 그의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복잡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대표님, 임 아가씨께서 만나자고 하십니다.”어느 임 아가씨?차준호의 첫 반응은 만남을 거절하는 것이었다. 그는 귀찮은 듯 덤덤하게 말을 내뱉었다.“적당히 둘러대서 보내버려. 안되면 수표라도 한 장 쥐여주든지. 그리고 밖에 나가서 함부로 입 놀리지 말라고 경고하고.”그러나 이 비서는 여전히 자리를 뜨지 않았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임지혜 씨가 찾아오셨습니다.”임지혜가?차준호는 넋이 나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천천히 다리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들어오라고 해.”곧이어 이 비서가 임지혜를 데리고 사무실에 들어섰다.이 비서는 차준호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기에 차준호와 임지혜 사이의 과거도 잘 알고 있었다. 하여 그녀는 사람을 데리고 들어온 뒤 눈치껏 자리를 피해주었다.두툼한 동화 대문이 무거운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혔다.임지혜는 문 앞에 서서 묵묵히 차준호를 바라보았고 차준호 역시 마찬가지였다.둘은 그렇게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차준호는 책상 위에 올려둔 와인을 모조리 치우고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던 담뱃불도 꺼버렸다. 사실 과거에 그들이 사귈 때에도 차준호의 생활은 방탕하기 그지없었지만, 오히려 지금은 이러한 모습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임지혜는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 차준호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차준호, 너도 이제
이번 만남을 위하여 임지혜는 많은 물건을 준비해왔다. 그중에는 아이의 장난감과 옷, 그리고 조은서의 보양식들까지... 자질구레하게 차 한 대를 실어왔다.임지혜는 사전에 많은 말들을 준비해왔지만, 조은서의 모습을 보자마자 무너지고 말았다.조은서의 모습은 초췌하기 그지없었다.조은서는 살이 너무 빠져 원래도 갸름한 얼굴은 더욱 가늘어졌고 몸에는 병을 달고 있는 듯 초췌했다... 이게 대체 어딜 봐서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이란 말인가. 임지혜도 다른 여인들이 아이를 낳은 뒤의 모습을 많이 봐왔었지만 모두 하나같이 보살핌을 잘 받아 얼굴에 윤기가 돌았었다.임지혜는 마음이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그녀는 조은서의 가녀린 몸을 어루만져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왜 이렇게 말랐어? 혹시 유선우가 잘 안 대해줘? 의사에게 진찰은 받아봤어?”조은서도 오랜만에 만나는 임지혜의 모습에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졌다.하여 그녀는 나쁜 소식은 전부 감추고 좋은 소식만 전해주었다.“입맛이 좀 안 좋은 것 뿐이야. 다른 건 다 좋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임지혜가 이 말을 어떻게 믿겠는가?조은서도 임지혜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임지혜가 자신을 위해 맹목적으로 유선우와 부딪히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임지혜만 결국 휘말려 들어 손해를 볼 것이다.하여 조은서는 이안이를 안아 임지혜에게 보여주었다.이안이는 보살핌을 잘 받아 매우 사랑스러웠고 얼굴도 예뻤다. 그러자 임지혜가 기쁨에 겨운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닮았다. 은서야... 이안이 너와 엄청나게 닮았어.”그녀는 애써 울먹임을 참으며 품 안에 안긴 이안이와 놀아주었다.“아줌마가 장난감 엄청 많이 사 왔는데 좋아?”영롱한 색깔을 띈 딸랑이는 소리도 맑고 고왔다.이안이도 기쁜지 환한 웃음으로 보답해주었는데 그녀가 환히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작은 잇몸이 매우 귀여웠다.하지만 임지혜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그녀는 이안이를 품에 꼭 끌어안은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
유선우의 강압적인 손길에 아파 났지만 조은서는 소리를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소파 위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에 걸려있는 크리스탈 조명이 유난히 눈부시게 밝았다. 그녀의 기억대로라면 그 크리스탈 조명은 그들의 사이가 가장 애틋할 때 유선우가 이탈리아에서 주문한 것이다.조은서는 그 수정등을 매우 좋아했다.잠자리를 공유하던 수많은 밤, 조은서가 고개를 들기만 하면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탈 조명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토록 영롱하고 아름답던 빛깔은 오늘따라 이상하게 차갑고 눈부시게 느껴졌다...분명히 서로 껴안고 친밀한 행동을 하고 있지만 왜 몸은 여전히 차갑기만 한 것인지, 왜 서로 몸을 부딪쳐도 조금의 쾌락도 없이... 혐오만 남았는지.조은서의 가녀린 몸이 가볍게 떨렸다.더는 참을 수 없게 되자 조은서는 결국 넋을 잃고 울부짖었다.“유선우... 아파...”그러자 유선우가 움직임을 멈췄다.그는 얼굴을 조은서의 가슴팍에 묻었고 그의 손바닥은 여전히 조은서의 가녀린 허리에 머물러 있었다. 잔뜩 헝클어진 옷과 헐떡이는 숨소리, 그들의 모습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키스와 사랑이 아닌... 한바탕 전쟁을 치른 듯하다.유선우는 조은서를 껴안고 숨을 헐떡였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손을 뻗어 조은서의 입술을 어루만지더니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은서야, 아프면 말해줘... 지금처럼. 자꾸 나 무시하지 마. 나랑 말도 해줘. 내가 해줬으면 하는 게 있다면 꼭 말해줘... 네가 말만 해준다면 난 뭐든 널 위해 해줄 수 있어. 어머님 부양하는 것, 네 오빠를 위해 상소하는 것... 그 무엇이라도 다 돼.”그러자 조은서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조금 뒤, 그녀는 시선을 옮겨 오만하기만 한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았다. 유선우가 이렇게 자세를 낮추고 그녀에게 참회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전에는 분명 그녀의 얘기를 들어줄 시간조차 없었는데...임신했다고 말하면 후에 다시 얘기하자고 말했고 의 필름은 백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