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서 있은 일 후로 조은서와 유선우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그는 좀처럼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돌아갔다고 해도 옷만 갈아입을 뿐, 두 사람은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조은서의 임신 상황도 진유라를 통해 접했다.이순영의 건강 상태가 날이 갈수록 나빠졌다.유선우와 조은서는 그녀의 곁을 지켰는데 계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를 피했다. 한 사람은 낮에 찾아가고 나머지 한 사람은 저녁에 찾아갔다. 서로 불편해할 일도 없었다.이순영도 두 사람 사이에 일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녀로서 바꿀 수 없었다.가끔 유선우에 관한 스캔들이 생기기도 했다.초가을.이른 아침, 조은서는 식탁 앞에 앉아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창밖에는 푸르싱싱한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고 날씨도 아주 좋았다.그러나 손 옆에 놓인 아침 신문에는 유선우의 스캔들이 보도되어 있었다.그와 예쁜 여자 연예인이 함께 같은 호텔에 묵었다는 것이다. 카메라에 포착된 두 사람은 앞뒤로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이 복도를 걸었는데 썸타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꽤 다정해 보였다.조은서는 한참 들여다보았다...하인은 그녀가 속상해할까 봐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사모님, 우유가 식은 것 같은데 제가 따뜻한 거로 다시 바꿔드리겠습니다.”조은서는 그녀의 호의를 저버리고 싶지 않아 알겠다고 간단히 답했다.바로 이때, 밖에서 하인 한 명이 들어오더니 조은서 곁에 다가가 난감해하면서 말했다.“한여름 씨라는 분께서 사모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사모님... 안으로 들일까요?”‘한여름?’조은서는 일어나 창문 옆으로 다가가 내려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정원에 아주 고급스러운 승합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아리따운 여자 한 명이 진지한 표정을 짓고 매니저와 함께 옆에 서 있었다. 조은서 뒤에 서 있던 하인이 못마땅해하며 말했다.“연예인이라는 사람이 너무 뻔뻔한 것 아닌가요? 사모님, 제가 가서 쫓아낼게요.”조은서는 담담하게 웃었다.그녀는 유선우가 한여름과 어떤 사이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유선우가 스캔들을 해명
한 주일 후, 한여름은 연예계 블랙리스트에 들어가게 되었다.그녀는 처음에 자신이 누구를 건드렸는지 모르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과 물어본 끝에 겨우 자신이 유선우를 건드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유는 자신이 집까지 찾아가 유 사모님을 성가시게 굴었다는 것이었다.한여름은 조은서를 찾아 빌고 싶었다.그러나 상황을 알고 있던 사람이 그녀에게 알려줬다.“유 사모님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 주요하게 유 대표님께서 불쾌하셔. 빌 생각하지 말아. 유 대표님한테 안 먹혀.”한여름은 어안이 벙벙했다....가을밤, 가랑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깊은 밤, 롤스로이스 팬텀 한 대가 별장으로 들어왔다. 불빛 때문에 비에 젖은 차는 아주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기사는 차에서 내려 우산을 들고 뒷좌석 문을 열고는 가볍게 말했다.“대표님, 집에 도착하셨습니다.”차 안은 어두컴컴했고 유선우는 뒷좌석에 앉아 눈을 감고 휴식하고 있었다.요즘 회사 일이 너무 많을 뿐만 아니라 이순영 건강도 점점 더 악화되어 저녁에 편히 주무시지 못하고 계속 ‘문호’를 불렀다. 그는 거의 매일 밤 그녀를 간호하러 갔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효도한다고 해도 그녀의 상처 입은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유문호가 실종된 지 십여 년이 되었다. 곧 이 세상을 뜨게 되는 이순영은 친아들을 한번 만나보고 싶어 했지만 그마저도 불가능했다.기사는 유선우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걸 발견하고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했다.유선우가 현관을 들어서자 집에 있던 하인이 그를 마중하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야식을 뭐로 준비해드릴까요? 사모님은 방금전에 잠드셨습니다. 낮에는 계속 어르신 곁에서 간호하셨고요. 요 며칠 피곤하셨는지 살도 빠지신 것 같습니다.”현관 쪽에 있는 크리스탈 조명이 밝게 빛났다.유선우의 표정이 조금 좋아졌다. 그는 신발을 벗고 조용히 말했다.“야식은 안 먹는 거로 할게요.”그는 천천히 위층으로 올라갔다.유선우는 한 계단씩 올라가면서 갑자기 자신이 조은서를 안 본 지 한 주일
새벽, 유선우의 폰이 울렸다.유선우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등을 켰다. 그는 함께 깨어난 조은서를 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화 너머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엄마, 무슨 일이세요?”전화를 한 사람은 함은숙이었다.함은숙의 목소리는 깊은 밤에 특히 냉정하게 들려왔다.“선우야, 할머니께서 더는 못 버티실 것 같아. 얼른 은서를 데리고 와. 할머니 마지막 모습은 봐야지.”유선우는 약 30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금방 갈게요.”오 분도 되지 않아 두 사람은 옷을 갈아입고 집 문을 나섰다.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빗방울이 값비싼 롤스로이스 차체를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치 진귀한 눈물 같았다...임신한 조은서 때문에 유선우는 운전을 빨리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조은서는 그의 옆에 앉아 조용히 비가 내리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오늘이 이은숙 곁에 있어줄 수 있는 마지막 밤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차는 빨간 신호등 앞에 천천히 멈춰 섰다.그는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피우고 싶었으나 결국 담배를 사물함 안에 버리고 조은서의 손을 살며시 쥐었다.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조은서는 손을 빼지 않았다.이은숙 그녀를 아껴준 만큼 그녀의 마음도 유선우와 마찬가지로 이 음산하고 어두운 밤과 같이 차가워났다.조용히 손을 잡고 있은지 약 30초가 지나자 신호등이 녹색 등으로 바뀌었다.유선우는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다시 핸들을 잡고 집중해서 운전했다. 다음 신호등 앞에 가서도 그는 조은서의 손을 다시 잡지 않았다. 조은서는 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아까 느껴졌던 온기가 그저 그가 무의식적으로 추태를 부린 것이라는 것을.반 시간 후, 블랙 롤스로이스가 본가에 들어섰다.이은숙은 거의 임종에 달했다.유선우와 조은서가 침대 옆에 서 있었지만 그녀는 이미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이은숙은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며 얼마 남지 않은 힘을 다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
유선우는 고개를 약간 쳐들고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면서 이은숙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나 문호예요... 나 돌아왔어요...”“문호가 돌아왔어!”이은숙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얼굴이 그녀가 키운 아이, 유문호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힘겹게 숨만 쉬고 있을 뿐, 더는 그 이름을 부를 힘이 없었다.자신의 문호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표정이 아주 평온해 보였다. 유문호가 돌아왔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문호야, 너 곧 할아버지가 된다는 건 알고 있니? 두 달만 더 지나면 유씨 집안에 가족 한 명이 더 생기게 될 거야.문호야, 네가 보면 얼마나 기뻐할까!밤은 점점 더 깊어졌고 이은숙은 떠나기 아쉬워했다.문호가 돌아왔어.유선우는 그녀의 손을 잡고 조용히 옆에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할머니 곁에 혼자 있어 주고 싶어요. 다들 나가서 쉬세요.”사람들이 다 나간 후, 그는 큰 침실에 남아 이은숙의 곁을 지켰다. 그는 부드럽게 이은숙의 머리를 빗겨주고 그녀에게 노래도 불러주었다. 그는 어렸을 때 이은숙이 자신에게 불러주면서 어릴 적 유문호도 이 노래를 듣고 자랐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새벽 다섯 시, 이은숙은 편안히 눈을 감았다.본가의 하인들은 눈물을 흘렸고 다들 함께 이은숙의 장례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유선우는 천천히 위층으로 올라갔다.침실 문을 열어보니 조은서는 이미 깨어 있었다. 그녀는 하인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깬 것이다... 그녀는 이은숙이 돌아갔다는 걸 알고 눈물을 흘렸다.유선우는 그녀의 불룩한 배를 보면서 유유히 말했다.“할머니께서 멀리 나가신 후에 나와.”그는 말을 하고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옷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이날을 위해 미리 준비해둔 것이었다.유선우는 침대 옆에 서서 흰 셔츠를 벗고 짙은 회색 셔츠와 바지를 입고 검은색 넥타이를 했다. 넥타이를 매는 그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어려있었
이은숙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생활이 원래대로 돌아왔다.유선우는 집에 자주 돌아오기 시작했다.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담담하게 대했다. 밥 먹을 때도 별로 대화하지 않았고 잠잘 때도 서로 거리를 두었다. 심지어 유선우는 때때로 객실에서 자기도 했다. 가끔 밤이면 뒤에서 그녀를 안고 그녀의 불룩한 배를 만지며 아이의 존재를 느끼기도 했다.조은서가 깰 때도 있었지만 항상 잠자코 그가 배를 어루만지게끔 내버려 두었다.그들 사이에 남은 것이라고는 아이밖에 없었다.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이 그를 좋아했었다는 걸 잊었고 그 또한 그녀에게 보상해주려 했던 것을 잊었다. 더욱 나아가 그가 했던 말도 잊어버렸다...“조은서, 나 딸 가지고 싶어. 퇴근하고 집에 오면 차 문이 열리자마자 어린 여자아이가 나의 다리를 안고 아빠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고싶어.”그들은 과거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잊어버린 채 서로에게 받았던 상처만 기억하고 있다.그들은 결국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누구도 자존심을 버리려 하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상대방을 안아주려 하지 않았고 한 번이라도 상대방에게 사과하려 하지 않았다....이은숙이 돌아간 지 한 달이 지났다.조은서도 임신하지 8개월이 되었다. 그녀는 거의 외출하지 않았고 모든 가게를 임지혜에게 맡겼다.저녁 무렵, 그녀는 진유라의 전화를 받았다.진유라는 아주 공손하게 말했다.“대표님께서 출장을 가셔야 하는데 사모님께서 짐 좀 싸주셨으면 합니다. 갈아입을 옷 몇 벌과 여권을 준비해주시면 됩니다.”여권...유선우가 출국하는 건가?조은서는 백아현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 스케줄도 임시 생긴 것이었다. 그녀는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고 유선우를 위해 갈아입을 옷 몇 벌을 준비해주고 여권도 챙겨주었다....반 시간 후, 진유라가 짐을 가지러 왔다.그녀는 조은서 손에서 여권을 받으면서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백아현 씨가 장기이식 후 거부반응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아마 오래 못 버
임지혜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아이에게 잘할게.”조은서는 생긋 웃었다.임지혜는 잠시 앉아있다가 가게 보러 먼저 떠났다.그녀가 떠난 후 조은서는 혼자 창가 옆에 앉아 있었다. 석양이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그녀의 얼굴을 주황색으로 물들였는데 부드러움을 더해주었다.바로 그때, 유이안이 그녀의 배속에서 움직였다.매우 기뻐하는 것 같았다.조은서는 손을 배 위에 올려놓고 아이의 존재를 느끼면서 마음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녀는 유이안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미소를 띠었다.유이안은 초겨울에 태어나게 되므로 조은서는 쇼핑몰에 가서 유이안에게 수많은 옷을 사줬는데 다 핑크색이었고 귀여웠다.그녀가 아래층 남성옷 코너를 지날 때 한 점원에게 붙잡혔다.점원은 열정적으로 그녀에게 어필했다.“사모님, 오늘 우리 브랜드에서 행사를 진행하는데 모든 옷들을 다 20% 할인해줘요. 아시다시피 우리 브랜드는 평소에 할인 활동이 없어요. 브랜드 성립 기념일에만 오늘처럼 큰 할인 활동을 해요.”조은서는 문뜩 유선우가 전에 셔츠 두 벌을 사달라고 했던 것을 떠올렸다. 비록 그녀가 거절했지만 말이다...그녀는 고민끝에 가게로 들어가 유선우의 나이에 어울리는 셔츠 두 벌과 넥타이를 구매했다. 사실 이런 일들은 그녀가 전에 자주 해왔던 일이었다. 유선우의 일생생활도 그녀가 책임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하려고 하니 약간 낯설게 느껴졌다.아마 곧 헤어지게 될 거라서 그런 듯했다....그녀가 별장으로 돌아갔을 때, 유선우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하인은 그녀 대신 물건을 위층으로 올려갔다. 하인은 남성 셔츠가 있는 걸 보고 속으로 은근 기뻐했다.“사모님, 아직도 반 시간 정도 있어야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쉬고 계세요. 제가 부르러 올게요.”조은서는 확실히 피곤했다.그녀는 간단히 답하고는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하인은 그녀에게 담요를 덮어주고는 조심스럽게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녀는 유이안이 태어난 꿈을 꾸었다. 아주 귀여웠다. 아이가 조금
큰비가 온종일 내렸다.저녁 무렵, 하늘에는 노을이 졌는데 매우 아름다웠다.조은서는 숄을 쓰고 테라스에 서서 조용히 밖을 내다보았다.그녀는 유선우와의 결혼생활을 되새겨보았다. 그리고 전에 테라스에서 그를 위해 적어두었던 일기장과 웨딩사진을 태웠던 일을 떠올렸다. 추억들이 그녀의 마음속 깊이 새겨져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침실에 있던 전화가 계속 울렸다.조은서는 숄을 올리고 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보고는 침실로 돌아가 전화를 받았다.박연준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그는 조은서에게 나쁜 소식을 전했다.“사모님, 조은혁 씨 재판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소식에 따르면 새로운 증거를 찾아 재판일이 앞당겨진다더군요. 만약 재판이 엄하게 진행된다면 적어도 5년은 선고받을 것 같습니다. 먼저 급해하시지 마시고... 제가 알아보았는데 이번 재판을 새로 맡은 분이 유씨 집안과 인연이 꽤 깊던데 유 대표님께서 나서시면 일이 잘 해결될 것 같습니다.”폰을 쥐고 있는 조은서의 손가락이 떨렸다.이럴 수가, 갑자기 5년이라니...박연준도 미안해했다.“죄송합니다, 사모님. 지금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유 대표님 뿐입니다. 부부 사이 관계를 막론하고 이번에는 유 대표님의 도움을 청하셔야 합니다.”조은서가 말하려고 할 때 바깥 정원에서 차 경적소리가 들려왔다.유선우가 돌아온 건가?조은서는 배를 잡고 테라스로 걸어갔는데 마침 유선우가 차에서 내려오는 걸 보았다. 그리고 백정수가 그의 뒤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백정수는 초췌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매우 슬퍼보였다. 그는 옆에 어색하게 서서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바로 이때, 유선우 고개를 들자마자 조은서와 눈이 마주쳤다.그녀를 보고 있는 그의 눈빛이 차갑고 낯설었다. 마치 그날 밤 필름을 깨부순 그녀의 따귀를 내리칠 때처럼 말이다. 조은서는 마음이 아파났지만 이를 상관할 겨를이 없었다.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맻혀 있었다.유선우는 한참 그녀를 쳐다보다가 차문을 닫았다.그는 이층으로 올라가 서재 문을 열고 서랍 안에
그는 비꼬면서 말했다.“아직도 네가 그렇게 값진 존재라고 생각해? 내가 정말 너랑 이혼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는 거야? 내가... 나 유선우가 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조은서는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유선우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한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녀를 기생으로 생각했던 것인가...심지어 배 속에 아이도 이젠 아무렇지 않단 말인가.이 모든게 다 그녀가 백아현의 전화를 끊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유선우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미련없다는 듯 떠나버렸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떠났다.조은서와 백아현 중에서 진정으로 어리석은 사람은 조은서였다.가장 우스운 건 그녀가 오늘에 와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조은서는 허탈하게 웃었다.‘내가 유선우에게 빌다니. 유선우가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니...’‘유선우가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가 유선우의 구세주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 계속 희망을 품었었다니.’조은서는 자신이 너무도 우스웠다.그녀는 유선우의 구세주일 리가 없었고 그냥 그의 성욕을 처리해주는 여자에 불과했다.그가 조은서와 백아현을 대하는 태도는 확연히 달랐다.왜 그녀는 계속 몰라보는 걸까?왜 그에게 희망을 품고 있는 걸까? 그의 애를 임신하고도 그에게 모욕 당하고 의심 받고... 그녀는 다 자신이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녀의 감정 기복이 심해지면서 배 속에 있던 아이도 불안하게 움직였다.마치 유이안이 엄마의 비통함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조은서는 조용히 서재에 서 있었다. 정원에서 차 엔진소리가 들려왔는데 그녀는 유선우가 떠났다는 걸 알았다.그는 마지막으로 백아현을 보러 갔다......유선우가 떠난 지 사흘이 되던 날, 조은혁은 6년이라는 판결을 받았다.그날 저녁, 조승철은 심장마비로 구급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돌아갔다.그날은 마침 추석이었다. 집집마다 떠들썩했고 하인들은 아래층에서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