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서는 온몸을 떨고 있었다.조은서는 유선우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현실이 항상 이렇게도 잔인하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조은서는 유선우가 자신을 속일 이유가 없다는 것도 속으로는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그를 바라보던 그녀는 다소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선우 씨...”유선우는 임지혜를 위해 사정하고 싶어 하는 그녀의 뜻을 알아챘다.그는 담뱃재를 털더니 덤덤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이게 뭐 옷 한 벌 사는 김에 양말 한 짝 더 사 오는 그런 가벼운 일도 아니고, 굳이 내가 그녀를 위해 차씨 가문과 정씨 가문에게 미움을 살 이유는 없잖아. 게다가 은서야, 내가 자선 사업가는 아니잖아... 안 그래?”마지막 세글자를 뱉어내는 그의 말투는 가벼웠지만 눈빛은 깊었다.조은서는 그의 뜻을 알아챘다. 그녀가 져주며 몸을 낮추고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간다면 그는 임지혜를 지킬 수 있다. 그러면 임지혜의 아이도 안전하게 태어날 수 있다.그녀는 주먹을 움켜쥔 채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유선우는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의 표정에서 그녀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읽은 그도 더는 억지를 부리지 않고 몸을 기울이더니 담배를 끄고 덤덤하게 말했다.“그럼 임지혜보고 외국에 나가 있으라고 해. 아무도 모르는 섬에 가서 아이를 낳아. B시에는 더 이상 남을 수 없을 거야.”조은서는 고개를 숙여 낮은 목소리로 고마움을 표했다.유선우는 점잖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차 문을 열어줬다.조은서는 차에서 내릴 때 다리마저 후들거렸다.그녀는 밤바람을 맞으며 유선우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즉시 도로변으로 달려가 택시를 잡았다....깊은 밤, 임지혜는 문을 열자 조은서를 보고 깜짝 놀라서 물었다.“뭔 일인데 한밤중에 왔어? 넋이 나간 모습까지 하고는.”그녀는 찬바람에 조은서가 추위를 탈까 봐 서둘러 그녀를 끌어들였다.불빛이 비치자, 눈치 빠른 임지혜는 조은서의 목덜미에 남겨진 엷은 키스 마크를 보더니 비로소 몇 마디 농담을
그날 밤, 조은서는 임지혜의 집에 남아 밤을 새웠다.그녀는 목욕하고 나서 임지혜의 잠옷을 입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임지혜의 목소리는 가볍고도 부드러웠다.“나 사실 이젠 차준호 신경도 안 써. 걔는 걔대로 결혼하고 나는 나대로 아이를 낳고. 은서야, 난 다 계획이 있어. 이제 보름만 더 지나면 B시를 떠나 작은 도시로 가서 살 거야. 거기서 집도 사고 자그마한 꽃집도 하나 차리려고. 내 아이랑 같이 지낼 거야.”“하지만 너랑 멀리 떨어져 있어, 보고 싶을 거야!”“나 보러 올 거야?”조은서는 듣는 내내 가슴이 찡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지! 매년마다 적어도 몇 번은 갈 거야, 약속할게! 그리고 내 가게의 지분 10%를 너에게 줄게, 너랑 같이 아이를 키우고 싶어. 이쁘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아이가 크면 남자든 여자든 외모는 무조건 탑급이지!”조은서는 말을 하며 몸을 돌려 임지혜를 껴안았다.“보고 싶을 거야.”임지혜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두 사람은 더 이상 말 하지 않고 서로 껴안고 조용히 밤을 보냈다... 그저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이날부터 조은서는 이별을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그녀는 사람을 구해 경기도에 작은 별장 한 채를 사달라고 부탁했다. 대략 80평 정도인데 생활 인프라도 우수하고 풀옵션으로 되어있었다.그녀는 임지혜가 그곳에서 편하게 지내기를 바랐다.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미리 옷을 사주어 모두 Y시로 택배를 보냈다. 죄다 핑크색이었고 임지혜는 분명 좋아할 것이다.서서히 조은서는 불안에서 기대로 바뀌었다.그녀는 작은 생명이 곧 찾아올 거라는 것을 기대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기대했다... 그녀는 아이에게 최대한 잘해주는 것으로 임지혜의 어린 시절의 불행을 만회하려고 했다.임지혜는 질투가 나서 낳지 않겠다고 농담도 했지만 조은서는 그녀가 기뻐하는 것을 알수 있다...임지혜가 떠나는 날, 조은서는 그녀를 배웅하러 갔다.그녀는 KTX
그녀는 단지 가족을 원했을 뿐이다.임지혜는 마침내 소리를 냈고 마치 갈기갈기 찢어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은서야, 뭐가 이렇게 힘들지? 나한테 진짜 왜 이러는 거야? 왜 번마다 그 사소한 소원조차도 이루어지지 않는 거지? 나 진짜 이 아이 너무 사랑해. 나 심지어 이름까지 지었어... 임소미라고, 아이가 영원히 행복하고 태어나서부터 평생 행운이 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그녀는 마지막에 목소리가 쉬어서는 더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그녀의 몸에서 많은 피가 흘러나오더니 사방을 빨갛게 물들였다...조은서는 그녀를 안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당장 병원으로 가자! 임지혜 정신 차려. 내가 데리고 병원으로 갈게. 무조건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질 거라고, 들었어? 구급차... 구급차...”...지하 주차장에는 조은서가 목 놓아 우는 소리만 가득 퍼졌다.사방의 전광판은 갑자기 화면이 바뀌더니 모두 차준호와 정우연의 웨딩 사진으로 변했다.아, 오늘이 그날이구나!알고 보니 오늘이 바로 차씨 가문과 정씨 가문에서 혼인을 맺는 날이었다.임지혜의 눈은 이미 풀렸다. 그녀는 애써 행복하게 웃는 남자를 잡으려고 했지만 문득 그들의 마지막 밤이 떠올랐다. 차준호는 그녀의 왼쪽 귀에 대고 낮게 속삭였지만 그녀는 듣지 못했다.그녀는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늦은 밤, 병원 수술실 문 앞.조은서가 10시간을 기다린 끝에야 의사 선생님은 수술실에서 걸어 나오더니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임지혜 씨가 너무 심하게 다치셨습니다. 태아도 지키지 못했거니와 아직 혼수상태인데, 바이털로 봐서 아마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모든 건 임지혜 씨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일주일 안에 깨어날 수도 있고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조은서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아이가 없어졌다니,게다가 임지혜는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고...의사 선생님은 그녀가 괴로워하는 것을 눈치채고는 말했다.“잠시
조은서는 그저 애타 하는 그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그녀는 가소롭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차준호를 좋아하는 임지혜가 우스웠고 차씨 가문에서 임신한 임지혜를 가만히 놔둘 줄 알았다고 생각한 자신도 마찬가지로 우스웠다. 조은서는 비틀거리며 앞으로 두 걸음 걸었다.그녀는 어렴풋이 자신의 목소리를 들은듯했다.“준호 씨, 지혜는 당신 아이를 임신했어요. 당신한테 말할 생각조차도 없었고요. 그냥 작은 도시를 찾아서 아이를 조용히 낳고 싶었을 뿐인데. 가족을 원했을 뿐이라고...”조은서는 고개를 들자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지혜는 전혀 당신 결혼을 망칠 생각이 없었어요. 심지어 당신이 100억 주고 그녀의 귀 한쪽을 잘라버렸어도 그녀는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았어요. 준호 씨, 지혜가 이 좆같은 운명을 받아들인 건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아서가 아니에요. 그저 태여날때부터 가진 게 없었기 때문이죠. 지혜는 가족도 없고 애인도 없고... 그저 이 아이뿐인데! 지혜가 임신하고 나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아세요? 매일 저한테 아이에 관한 이야기만 하고, 그토록 아껴 쓰던 애가 아이가 다섯 살이 되는 해에 가정교사 두 명을 구해주려고 했어요. 왜냐면 그녀가 직접 가르칠 수 없다보니 오히려 그르칠까 봐 걱정된다고요.”차준호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아이는요?”조은서는 간신히 벽을 잡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차준호의 어깨를 스쳐 지나갈 때 그녀는 울음을 참으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유산됐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지혜 아마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대요...”“그게 무슨 뜻이죠?”차준호가 힘을 주어 그녀의 손목을 잡은 탓에 조은서는 손목이 아파났다.그러나 마음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그녀는 차준호의 매정함을 미워하고 차씨 가문의 잔인함을 미워하며 차준호를 바라보며 나무랐다.“지혜 잘못하면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어요. 차준호 씨, 더 이상 당신에게 피해 줄 일도 없고 당신네 두 가문의 합작에도 피해를 줄 일은 이젠 없을 거예요. 당신은
심정희는 연달아 눈물을 훌쩍이며 말했다.“그래. 그럼 먼저 씻고 와서 뭐라도 좀 먹으렴. 사람을 챙기려고 해도 자신부터 든든해야지.”조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살며시 임지혜의 손을 잡고는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심정희는 등을 돌리고 괴로워했다....조은서는 간단히 씻고 2층 식당으로 내려갔다.엘리베이터 문어구에 도착하니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고개를 기울이니 그녀의 눈에는 허민우가 들어왔다.그는 흰색 의사 가운을 입고서 복도 끝자락의 창가에 기대 있었다. 창문은 열려있었고 불어 들어온 바람은 그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그의 주위는 옅은 우울감으로 드리웠다.그의 상태를 봐서는 밤을 새운 듯하였다.허민우는 병원의 주치의였다. 꽤 지위가 있는 편이었다. 그는 조은서를 많이 돌봐줬었다... 조은서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녀는 다가가서 낮은 목소리로 고맙다고 전했다.허민우는 그녀를 깊게 바라보았다.조은서는 살이 많이 빠졌다. 허약한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조은서는 허민우가 자신이 왜 임지혜에게 이토록 잘해주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녀는 그저 서서 창밖을 내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열여섯 살 때 한 번 납치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지혜도 함께 끌려갔어요. 나는 너무 나약하고 무서워서 계속 울었었고, 그 사람들이 던져준 찐빵을 먹으려 하지도 않았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들은 찐빵을 다시 가져갔었어요.”조은서는 울먹이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지혜는 먹으려던 찐빵을 다시 옷 속에 숨겼어요. 그리고 찐빵이 맛이 없다고 했었죠. 돌멩이처럼 딱딱하다고. 우리가 하루를 꼬박 굶었을 때 지혜가 숨겼던 찐빵을 꺼내 나에게 주면서 나보고 먹을 거냐고 물었어요. 그때 나는 배고파 죽을 것만 같은지라 반반씩 나눠 먹자고 했는데 지혜는 찐빵이 뭐가 맛있냐며 저를 속였어요. 그러고는 나가서 고기 두 접시를 사먹겠다고 했었죠.”그녀의 목소리는 심각하게 떨렸다.“이틀을 밤낮
저녁 무렵, 임지혜는 아직도 깨지 않았다.심정희는 눈시울이 붉어진 조은서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여긴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 넌 집에 가 씻고, 옷도 바꿔입고, 눈이라도 잠깐 붙이고 와. 이대로 어떻게 버틸 거니? 게다가 네 아버지께서도 걱정하신다.”조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떠날 무렵 그녀는 임지혜의 손을 만지며 말했다. “임지혜, 빨리 깨어나야 해.”심정희는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녀는 조은서의 옆에 다가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아침에 내가 의사 선생님을 바래다줄 때, 너랑 허민우를 봤어... 은서야, 민우를 받아들이기로 했니?”조은서는 잠깐 침묵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어머니, 전 아직 그럴 여유가 없어요.”심정희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비록 때가 아니지만 단번에 거절하지는 마렴. 그가 널 아주 좋아하는 게 내 눈에도 보인단다. 나와 너의 아버지께도 항상 예의 바르고.”조은서는 머리를 끄덕였다. “어머니, 저도 알아요.”...두 사람은 몇 마디 더 주고받고 나서 조은서는 층계를 내려갔다. 그녀가 병실에서 걸어 나올 때 누군가 그녀의 손을 잡아챘다. 그녀는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유선우였다. 저녁의 어스름 속에서 유선우의 얼굴은 유난히 차가워 보였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타.”조은서가 거절하자 유선우는 그녀를 롤스로이스 차에 밀어붙이었다. 그 순간 그녀는 어깨가 아파왔다. 유선우의 얼굴은 그녀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뱉어내는 말들은 더더욱 차가웠다. “허민우 때문이야? 걔 때문에 이젠 내 차도 타려고 하지 않는 거야? 나를 피하기라도 하려고?”조은서는 너무 지친 나머지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선우 씨, 우린 이미 이혼했어요. 내가 누구랑 함께하든 당신 동의까지 구할 필요는 없잖아요?”유선우는 그녀를 빤히 쳐다볼 뿐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갑자기 손을 뻗어 뒷좌석의 문을 열고 조은서를 밀어 넣었다. 그녀가 도망치려고 하기도 전에 유선우도 따라 차에 오르더니 차 문까지 잠
“허민우는 그럴 능력이 없어. 그는 차씨 가문과 정씨 가문에 맞서지 않을 거야. 너희 둘이 함께해도 그는 감정 빼고는 아무것도 너에게 줄 수 없어. 더욱이 임지혜도 보호해 주지 못해. 그는 점점 깊은 고통에 빠질 것이고 그 당시 권력을 쟁탈하기보다 의학을 선택했던 것을 반복해서 후회하게 될 거야.”“은서야, 권력에 맞설 수 있는 건 더 큰 권력일 뿐이야.”...조은서의 온몸은 떨려났다. 그녀는 유선우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속으로는 그가 자신을 속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임지혜에게 또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웠다. 만약 임지혜에게 또 일이 생긴다면 그녀는 도저히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마치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 본 듯한 유선우는 담담히 웃으며 몸을 돌려 차 문을 열어주며 예의 바르게 물었다. “너절로 택시 타고 갈래? 아니면 내가 데려다줄까?”“나혼자 갈게.”조은서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차에서 내리며 발을 비틀거렸다. 유선우는 그녀를 부축하지 않았다. 그는 값진 차에 앉아 차분히 그녀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그는 조은서의 마지막 선택이 틀림없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B시에서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녀를 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어쩌면 허민우는 그녀에게 아쉬움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이후 그녀가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온다 하더라도 그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허민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침대 위에서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그의 몸을 만지면서도 병원에서의 그 포옹을 떠올릴지 모른다.어둠 속에서 유선우는 주먹을 움켜쥐더니 그의 목젖은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는 더 이상 생각하기 싫었다. 그는 그녀가 허민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상상하기조차 싫었다......현실은 조은서에게 더 많은 생각을 할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날 밤, 거의 모든 메인스트림에서 임지혜에 관한 부정적인 뉴스를 터뜨렸다. [전직 톱 모델 임지혜의 과거-14살에 중년 남자에게 성폭행 당하다.][임지혜
조은서는 이때 걸려 온 유선우의 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심정희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통로 끝의 밀폐된 창문 유리는 밤의 추위를 막아내지 못했다. 창문 틈 사이로 불어온 바람이 그녀의 볼을 아프게 때렸다. 그러나 그보다도 유선우의 말이 더 차가웠다. 전화 넘어 유선우의 목소리는 깊은 밤보다 더 차분했다. “넌 이미 차씨 가문의 다음 단계를 알고 있겠지. 조은서, 널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야. 임지혜가 유씨 가문의 사람이 되어야만 차씨네 영감탱이는 감히 건드리지 못할 거야.”조은서는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제가 부탁드려도 될까요?”유선우는 잠깐 침묵하더니 더욱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난 이미 자선 사업은 하지 않는다고 똑똑히 말했어. 조은서, 넌 알잖아. 네가 아니라면 난 그 둘 사이에 절대 관여하지 않아.”조은서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가 유선우와 몇 년간 부부로 살아왔는데 그의 성격을 모를 리 없다.그는 마음속의 씁쓸함을 누르며 가볍게 말했다. “저녁 무렵에 당신이 나에게 말했었죠. 내가 더 많은 것을 잃을 때쯤이면 권력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라고. 내가 유 대표의 사모님이라는 신분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유선우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선택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지 않는 것은 내키지 않아서였다.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의 좋은 점들을 알게 되었고 허민우에게 감정이 막 생기는 지금 어찌 다시 유선우의 와이프가 되려고 하겠는가. 그러나 운명은 항상 공평하지 않은 법이다. 임지혜로 그녀를 타협시키기에는 충분했다.하지만 유선우는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마음속에 딴 사람이 있는 것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때로는 그들이 사람이 없는 어느 병원의 한 모퉁이에 숨어서 뜨겁게 키스하고 몸을 어루만지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했다. 어쩌면 스트레스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이 남녀 사이 관계를 가지는 것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