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서는 이때 걸려 온 유선우의 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심정희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통로 끝의 밀폐된 창문 유리는 밤의 추위를 막아내지 못했다. 창문 틈 사이로 불어온 바람이 그녀의 볼을 아프게 때렸다. 그러나 그보다도 유선우의 말이 더 차가웠다. 전화 넘어 유선우의 목소리는 깊은 밤보다 더 차분했다. “넌 이미 차씨 가문의 다음 단계를 알고 있겠지. 조은서, 널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야. 임지혜가 유씨 가문의 사람이 되어야만 차씨네 영감탱이는 감히 건드리지 못할 거야.”조은서는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제가 부탁드려도 될까요?”유선우는 잠깐 침묵하더니 더욱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난 이미 자선 사업은 하지 않는다고 똑똑히 말했어. 조은서, 넌 알잖아. 네가 아니라면 난 그 둘 사이에 절대 관여하지 않아.”조은서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가 유선우와 몇 년간 부부로 살아왔는데 그의 성격을 모를 리 없다.그는 마음속의 씁쓸함을 누르며 가볍게 말했다. “저녁 무렵에 당신이 나에게 말했었죠. 내가 더 많은 것을 잃을 때쯤이면 권력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라고. 내가 유 대표의 사모님이라는 신분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유선우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선택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지 않는 것은 내키지 않아서였다. 그녀는 이미 다른 남자의 좋은 점들을 알게 되었고 허민우에게 감정이 막 생기는 지금 어찌 다시 유선우의 와이프가 되려고 하겠는가. 그러나 운명은 항상 공평하지 않은 법이다. 임지혜로 그녀를 타협시키기에는 충분했다.하지만 유선우는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마음속에 딴 사람이 있는 것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때로는 그들이 사람이 없는 어느 병원의 한 모퉁이에 숨어서 뜨겁게 키스하고 몸을 어루만지는 장면을 상상하기도 했다. 어쩌면 스트레스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이 남녀 사이 관계를 가지는 것일지
그 순간 그녀는 유선우의 말이 떠올랐다. 유선우는 그녀가 허민우랑 사귀게 되면 허민우는 고통 속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가 의학을 선택하고 권력을 선택하지 않은 고통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했다. 조은서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허민우가 그녀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감정 때문에 타인을 위해 산다는 것은 힘들고 지치는 일이다. 그녀는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허민우가 다시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서로의 노력으로 이루어져야지 한사람만의 일방적인 요구가 아니다. 그녀는 허민우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더는 없었다. 그녀는 다만 그에게 짐이 되고 유선우의 말대로 그녀는 허민우더러 자신의 선택에 대해 고통에 모대기게 할 것이었다. 5분 정도 지났을 때 병실 문이 가볍게 열렸다. 조은서는 돌아서지 않았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며 허민우에게 조금의 기회조차도 주지 않으며 자신에게도 후회의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는 듯했다.그녀는 낮은 소리로 자기 뜻을 말했다. “차씨 가문에서 임지혜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지금 유선우만이 지혜를 구해줄 수 있어요. 민우 오빠, 전 아마도 유선우의 곁으로 돌아가야 할가봐요... 미안해요.”허민우는 문 앞에 선 채로 그녀의 꼿꼿하게 서있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얻은 자유를 이렇게 포기하다니... 은서야, 정말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조은서는 허민우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점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녀를 너무나도 아껴서 하는 말이며 그녀가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머리를 젖히고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지혜를 위해서라면 그럴 가치가 있어요. 민우 오빠... 미안해요.”그가 그녀를 좋아한 지 그렇게 오라지만 처음으로 그녀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아마 그날의 포옹이 너무 따뜻해서 그런지 그녀에게 미련으로 남고 그녀더러 언제까지나 그렇게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 거
조은서는 눈이 시큰거릴 때까지 한참 바라보고 나서야 몸을 돌렸다.몸을 돌린 지금 그녀는 이미 유 대표 사모님이었다. 그녀는 화려하고 웅장한 홀에 들어선 후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더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다시 한번 고개를 돌리면 후회할 것 같았기 떄문이다...백여 개의 테이블을 수용할수 있는 연회장에는 각 업계의 명사들이 모여있었다. 이는 한차례의 신랑이 없는 회문연이다. 그러나 차씨 가문의 어르신과 차준호의 부모는 이례적으로 참가하였다. 정우연의 면목을 세워준 것이다. 정우연은 비록 내키지 않았으나 얼굴에 환히 웃음을 지으며 잔을 들어 마셨다. 이때 연회장의 문이 열리더니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청량하게 울렸다. 모든 사람의 눈길은 일제히 문어구로 향했다. 조은서는 샤넬 브랜드의 유명한 블랙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메인테이블에 있는 차씨 가문의 어르신을 향해 걸어갔다. 중간에서 웨이터가 막아섰지만 그녀는 다 물리쳤다. 순식간에 그녀는 차씨 어르신의 앞에 다가섰다. 그는 모든 사람 앞에서 차씨 가문에게 물었다. “지혜와 준호 씨는 한동안 사귀었지만 그때는 정우연과 약혼하기 전의 일이죠. 그 짧은 동안의 감정으로 지혜는 정우연에게 청력을 잃도록 맞아댔어요. 그 때문에 당신은 잔인하게 지혜 배 속의 아이마저 죽였어요. 그뿐만 아니라 당신은 지혜조차도 죽이려고 했죠. 어르신, 차씨 가문은 몇 대째 독자로 내려왔는데... 대가 끊길까 봐 겁나지도 않으신가요?”차씨 네어르신은 분개했다.그는 손에 쥔 지팡이로 땅을 가볍게 치더니 무섭게 되물었다. “말로만 애가 있었다면 애가 있는 건가? 네가 그 아이가 준호의 애라면 무조건 준호의 앤가? 모든 일은 증거를 따져야 하는거 아닌가?”그가 좌우를 둘러보자 모두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차준호가 그토록 멍청할 리가 없지!][임지혜가 작정한 거지!][누구의 아이인지 어떻게 알아!]...그들은 차씨 가문에 빌붙어서 임지혜를 진흙탕에 처넣어 밟아버리려 했다...조은서는 눈을 내
차씨 어르신은 유선우의 미움을 살 수가 없었다. 차씨 가문과 정씨 가문을 합해도 유선우의 상대가 아니다. 유선우는 어린 나이에 높은 자리까지 올랐고 B시에서는 악랄하기로 유명했다. 그는 조은서를 바라보며 어떻게 하려는지 물었다.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는 두 가지 조건이 있어요.”“첫째는 차씨 가문에서 의료진을 대여 임지혜를 치료해 주며 사람들이 임지혜가 임신한 아이가 차준호의 아이라는 것을 알도록 해주는 것이에요. 임지혜는 그 당시 차준호의 애인이었으니깐요. 둘째는 임지혜에게 보상해 주는 것이에요.”차준호 어머니는 내키지 않아 하며 말했다. “임지혜는 이미 십만이나 가졌어. 아직도 뭘 더 보상해야 하는 거니?”조은서가 되물었다. “당신이 아이를 임신하고 유산하고 청력을 잃도록 맞아댄다면 십만이면 되겠어요?”차준호의 어머니는 불쾌해서 말했다. “나와 그 애가 같니?”이때 연회장의 문어구에서 낮은 소리가 울렸다. “내가 이 로열 호텔로 지헤에게 보상해 주겠어요.”말이 끝나자, 차준호가 문어구에 서있었다. 그의 얼굴은 온통 상처가 나 있었으며 팔은 붕대로 감겨있었다. 아주 처참한 몰골이었다. 정우연은 잔뜩 화가 나서 말했다. “준호 씨, 미쳤어요? 이 호텔은 자그마치 이천억이에요!”차준호는 그녀를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나의 아이를 임신했으니 나는 기꺼이 해주고 싶어. 그럼 넌 왜 내 아이를 갖지 못하는거지?”정우연의 얼굴은 일시에 창백해졌다. 그녀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차준호가 그녀랑 관계를 가진 것은 그때 병원 화장실에서 딱 한 번뿐이었다. 그 후로 그는 그녀를 건드리지도 않았으니 아이를 임신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녀는 너무 수치스러워 눈물이 글썽거렸다. 차준호는 그녀를 신경 쓰지도 않은 채 조은서를 보며 말했다. “은서 씨가 지혜를 위해 해준 모든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당시 지헤가 은서 씨한테 뭐든 해줬는데... 그 값어치가 있나봐요.”이 세상을 놀음처럼 대했던 그가 현
조은서는 눈을 내리깔고 자신의 못난 모습을 곁눈질했다.두 사람은 몸이 바싹 맞닿아 있었다.실크 치맛자락 아래, 가늘고 긴 다리가 그의 몸 양쪽에 놓여 있고 유선우의 짙은 색 양복바지는 그녀의 피부를 더욱 희고 고귀하게 만들어 보기만 해도 애타게 만들었다.조은서는 눈을 가늘게 떨었다.“그럴 기분 아니에요.”그녀는 다소 애원 섞인 말투로 물었다.“다음에 하는 게 어때요?”유선우는 나른하게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그녀를 흘겨보았다. 툭 튀어나온 목젖은 남성적인 매력을 뽐내며 위아래로 움직였다... 조은서는 몸을 약간 뒤로 기울였다. 유선우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만지며 물었다.“무서워?”그는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의 뒷덜미를 잡고 끌어안았다. 조은서는 그가 키스하고 싶어 하는 줄 알고 먼저 다가가 입술을 내밀며 그를 받아들이려 했다.유선우는 손바닥에 살짝 힘을 주었다. 조은서는 멈칫하더니 그를 올려다보았다...유선우의 눈빛은 예측할 수 없는 상위자가 장악하고 있는 금욕감을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이런 유선우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조은서는 그가 먼저 대시한다면 많은 여자가 그를 위해 무엇이든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어떤 일이든지!그녀의 머리는 그에 의해 눌려져 목에 대여 있었고, 붉은 입술은 그의 튀여나온 목젖에 대고 있었다. 목젖은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조은서도 이제 성숙한 어른이다.그녀는 그가 그녀에게 무엇을 시키려고 하는지 눈치맞혔다. 그는 대가를 지불하고 차씨 가문과 사이가 틀어졌는데 돌아가서 유 대표 사모님이 되려면 그가 원하는 것은 절대 꽃병따위가 아니라 동등한 가치다.그의 비위를 맞추고 잘해주는 것이 바로 그녀의 가치다.조은서는 이런 일을 한 적이 없었다.그녀는 천천히 다가가 부드러운 입술을 튀어나온 그의 목젖에 대고, 그녀가 상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를 기쁘게 하였다...그녀는 굴욕스럽고 수치스러웠다. 그녀는 끝까지 고개를 들지 않았고 그의 눈을 피했다. 머리카락이 잡히자 그녀의 머리는 강제로 들렸고
관계 후, 두 사람은 침묵에 빠졌다. 아마 이젠 부부가 아니라서 거나 오랜만에 하지 않아서 그런지 서로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조은서는 옷을 걸치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몸이 약간 끈적해요. 샤워하고 싶어요.”분위기는 더욱 미묘해졌다. 조금 전에 서둘렀던 탓에 유선우는 콘돔을 착용하지 않았다. 남자는 그렇게 편했겠지만 여자는 정리하려면 무척 귀찮았다. 유선우는 가볍게 기침하더니 말했다. “밖에서 기다릴게.”그는 말하자마자 밖으로 나갔다. 엉망으로 된 침대는 어차피 내일이면 청소원이 처리할 것이다. 유선우는 남자로서 신경 쓰지 않겠지만 조은서는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시트를 갈아 씌웠고 낡은 것은 가방에 넣고 진 비서가 세탁 맡길 것이라고 메모를 적어 놓은 후에야 샤워하러 들어갔다. 따뜻한 물이 몸에 떨어질 때 그녀는 방금 서로 뜨겁게 얽혔던 순간을 회상했다. 유선우는 많이 부드러워진 듯했다. 아마 누구랑 비교하는가가 문제인듯하다. 하지만 조은서는 이 모든 게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 사이에 이젠 섹스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목욕을 마치고 나서 그녀는 올 때 입었던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유선우는 소파에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에 흰 담배를 낀 채 우아한 자태로 있었다. 보기에 마치 한 폭의 보기 좋은 풍경 같았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는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후, 자기의 정장 외투를 그녀에게 던지며 말했다. “걸쳐. 병원까지 데려다줄게.”조은서는 거절하지 않았다....차에 탄 후, 유선우는 몸을 옆으로 기울이고 말했다. “뭐라도 좀 먹을까?”조은서는 그의 괴롭힘에 몇 번이나 시달려 피곤했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병원에 식당이 있어요. 한 끼 정도 대충 때우면 되죠. 이따가 지나가다가 약국이 보이면 차 좀 세워주세요. 약 좀 사려고요.”유선우는 핸들을 가볍게 돌리며 말했다. “사후 피임약?”조은서는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이 밝아졌는데도 임지혜는 여전히 조용히 누워 있었다...조은서는 얼굴을 그녀의 손바닥에 파묻으며 혼잣말했다.“지혜야, 너 꼭 일어나야 해. 앞으로 널 괴롭히는 사람이 없으니까 당당하게 웃으며 살아가도 돼. 예전에 있었던 일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져 업신여김을 당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앞으로 또 아이가 생길 거야. 그러니까 제발 일어나, 응? 제발, 이렇게 빌게. 이 모든 것이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해줘!”희망이 없는 기다림은 사람을 절망하게 했다.이른 아침, 의사가 어두운 얼굴로 임지혜의 상황이 그렇게 좋은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만약 4시간이 지나도 임지혜가 깨어나지 않는다면 그녀는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다고, 다시 말해 식물인간이 될 수 있다고 했다.영원히 깨어나지 못한다니...조은서는 가슴이 비수에 꽂힌 듯이 아팠다.그녀는 갑자기 화장실로 뛰어가더니 세면대를 붙잡고 담즙이 나올 때까지 구토했다. 그리고 온몸에 힘이 쭉 빠져 무기력하게 벽에 기댄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그녀는 천천히 몸을 웅크리고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지혜야, 임지혜!”그 순간 슬픔의 무게는 조은서의 세상을 무너뜨릴 듯했다.병실 안에서.임지혜의 검지와 연결되어 있던 모니터에 약간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약하게 울리는 기계음과 함께 임지혜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은서가 울고 있는 거 아니야? 울지마! 은서야 울지마, 내가 텀블링 보여줄까?’“은서야... 은서야...”임지혜는 미약한 목소리로 조은서의 이름을 반복해서 불렀다.그녀는 혼수상태인 와중에도 조은서의 슬픔과 괴로움이 느껴졌다.고통만 안겨주는 이 세상을 떠나고 싶었지만 그녀에게는 아직 조은서가 있었다. 자신의 죽음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조은서가 걱정이 되었다.의사가 깜짝 놀라 멈칫했다. 곧이어 그는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사실 방금 조은서에게 ‘4시간’이 남아 있다고 한 것도 그녀를 위한 위로였다.그의 의학적 소견으로 임지혜는 사실 4시간도 버티기 어려웠는데, 임지혜가 기적적으로 깨
조은서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임지혜를 바라보더니 울면서, 또 웃으면서 말했다.“왜 그럴 가치가 없겠어? 너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얼른 나아!”임지혜의 눈가에는 눈물이 예속 흘러내렸다.조은서는 그녀를 꼭 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나 그동안 어떻게 버텼는지 알아?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고!”임지혜는 몸이 허약했지만 있는 힘껏 손을 들고는 조은서를 꼭 안았다....음식을 조금 먹고 난 뒤 의사는 임지혜의 몸 상태를 체크하기 시작했고 조은서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피했다.병실을 나선 그녀는 긴 복도 끝으로 나가 창밖의 햇살을 가만히 지켜봤다.이제야 그녀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지혜가 깨어나서 정말 다행이야. 그리고 지혜가 자포자기하지 않고 아직 살아갈 용기가 있다는것도 다행이야.’하지만 조은서는 그 아이를 떠올리면 코끝이 찡하고 마음이 괴로웠다.앞으로 다른 의학적 수단으로 임지혜가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해도 이미 세상을 뜬 그 아이는 아닐 것이니 말이다.“은서 씨.”갑자기 그녀 뒤에서 차준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조은서가 몸을 돌리고는 한참 동안 조용히 그를 쳐다보다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여긴 왜 왔죠?”차준호는 손에 든 서류봉투를 흔들며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그 사람이 깼다면서요. 얼굴 보는 김에 호텔 양도 계약서를 주려고 해요. 은서 씨, 내가 한 번 만나봐도 될까요?”조은서는 살짝 고개를 들더니 겨우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지혜가 깨어나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알아요? 준호 씨, 지혜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감정이 남아있다면 다시는 지혜 앞에서 얼쩡거리지 마세요. 지혜는 준호 씨도, 그리고 준호 씨의 잘난 아내도 감당할 여력이 없거든요.”차준호가 낮은 목소리로 사과했다.“은서 씨, 딱 얼굴 한 번 보고 서류를 넘겨주는 것뿐이에요.”조은서는 동의하지도 거절하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몸을 돌려 섰다.그녀 뒤에서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