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서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임지혜를 바라보더니 울면서, 또 웃으면서 말했다.“왜 그럴 가치가 없겠어? 너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그러니까 얼른 나아!”임지혜의 눈가에는 눈물이 예속 흘러내렸다.조은서는 그녀를 꼭 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나 그동안 어떻게 버텼는지 알아?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고!”임지혜는 몸이 허약했지만 있는 힘껏 손을 들고는 조은서를 꼭 안았다....음식을 조금 먹고 난 뒤 의사는 임지혜의 몸 상태를 체크하기 시작했고 조은서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피했다.병실을 나선 그녀는 긴 복도 끝으로 나가 창밖의 햇살을 가만히 지켜봤다.이제야 그녀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지혜가 깨어나서 정말 다행이야. 그리고 지혜가 자포자기하지 않고 아직 살아갈 용기가 있다는것도 다행이야.’하지만 조은서는 그 아이를 떠올리면 코끝이 찡하고 마음이 괴로웠다.앞으로 다른 의학적 수단으로 임지혜가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해도 이미 세상을 뜬 그 아이는 아닐 것이니 말이다.“은서 씨.”갑자기 그녀 뒤에서 차준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조은서가 몸을 돌리고는 한참 동안 조용히 그를 쳐다보다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여긴 왜 왔죠?”차준호는 손에 든 서류봉투를 흔들며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그 사람이 깼다면서요. 얼굴 보는 김에 호텔 양도 계약서를 주려고 해요. 은서 씨, 내가 한 번 만나봐도 될까요?”조은서는 살짝 고개를 들더니 겨우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지혜가 깨어나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알아요? 준호 씨, 지혜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감정이 남아있다면 다시는 지혜 앞에서 얼쩡거리지 마세요. 지혜는 준호 씨도, 그리고 준호 씨의 잘난 아내도 감당할 여력이 없거든요.”차준호가 낮은 목소리로 사과했다.“은서 씨, 딱 얼굴 한 번 보고 서류를 넘겨주는 것뿐이에요.”조은서는 동의하지도 거절하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몸을 돌려 섰다.그녀 뒤에서
차준호는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그는 힘껏 임지혜를 안으며 그녀가 더 말하지 못하게, 떠나지 못하게 했다. 잠시라도 그는 다시 임지혜의 품을 탐닉하고 싶었다. ...임지혜는 그가 준 호텔 서류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그녀는 서류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는 차준호더러 꺼지라고 했다.그에 대한 사랑은 더는 남지 않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없으니 원한도 당연히 없다는 말 한마디 더 남겨둔 채 말이다.차준호가 병실을 나설 때 눈에는 초점을 잃었다. 셔츠는 피범벅이 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등골이 오싹하게 했다.문밖에는 정우연이 서 있었다.병실에서 나오는 차준호를 보더니 정우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또 저 여우 년 생각나서 보러 온 거죠? 준호 씨, 저년을 해친 건 다른 사람이 아닌 준호 씨예요. 저 여우 년을 계속 생각하지 않았...”차준호가 그녀에게 귀싸대기를 날렸다.곧이어 그는 정우연의 목을 꽉 조르면서 벽으로 밀어붙였다.숨이 막혀 얼굴이 시퍼레진 정우연은 차준호의 손을 잡고는 퍽퍽 내리쳤지만 끝까지 자존심을 내려놓지 않으려고 했다.“내가 저년보다 못한 데가 어디 있어요? 나는 정씨 가문의 아가씨예요. 하지만 임지혜 저년은 몸을 파는 걸레라고요!”차준호는 당장이라도 그녀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눈가가 벌게진 채로 또 그녀에게 귀싸대기를 날렸다.“지혜한테 한 번이라도 손을 더 대면 내가 장담하는데 너를 꼭 죽여버릴 거야. 맹세해.”정우연은 얼빠진 얼굴로 제자리에 서 있었다.차준호는 절대 농담으로 이 말을 뱉은 게 아니었다. 만약 임지혜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는 정말 상대를 죽일 수도 있었다...정우연은 멍한 채 있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입꼬리를 씩 올렸다.“준호 씨, 저년을 그렇게 사랑한다면 왜 그때 결혼하지 않았어요? 왜 저년이 아닌 나랑 결혼했냐고요.”‘그러게. 내가 왜 그랬지?’차준호 본인도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몰랐다....일주일 후.임지혜가 퇴원한 후 조은서는 그녀를 데리고 묘원으로 향했다.
회사가 매우 바빴지만 유선우는 그래도 허니문이라는 명목하에 조은서를 데리고 일주일 동안 여행을 다녔다.B시에 돌아온 후 유선우는 그 프로젝트 때문에 많이 바빠 거의 매일 야근했다. 심지어 회사에서 밤을 새우고 집에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주말, 유선우는 간만에 제시간에 돌아왔다.검은색 롤스로이스 팬텀이 천천히 별장에 들어오더니 주황색 노을을 받게 되자 더 반짝반짝 빛나게 되었다.하인이 다가와서 문을 열고는 그에게 정성스럽게 저녁 메뉴를 전했다.유선우가 긴 다리로 차에서 내리고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느긋하게 물었다.“은서는 돌아왔어요?”고용인이 웃음을 머금은 채 대답했다.“사모님께서 집을 나서지 않으셨습니다. 온 오후 위층에서 뭔가를 하고 계시던데요.”유선우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긴장을 풀고 미소를 짓는 그의 얼굴은 너무나도 잘생겨 나이 든 고용인마저 저도 모르게 그에게 눈길이 갔다.요즘 유선우는 너무 바빴지만 그래도 기분이 많이 좋아 보였다. 아무래도 조은서가 돌아왔으니 말이다.위층으로 올라가며 얇은 코트를 벗어던진 유선우는 지금 흰 셔츠에 정장 바지 차림이었다.그가 침실 문을 열자 카펫 위에 무릎 꿇고 앉아 수많은 선물과 박스를 정리하고 있는 조은서를 발견했다.그는 코트를 소파 위로 던진 후 그녀의 뒤에 앉더니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허리를 꼭 끌어안으며 머리를 그녀의 어깨에 기댔다.“모레 새로 가게를 오픈할 때 사모님들에게 줄 선물이야?”유선우가 손으로 선물을 헤집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조은서는 워낙 안목이 좋은지 선물은 모두 정교하고 실용적이었다.스카프며 럭셔리 브랜드 커피잔이며 모두 근사한 선물이었다.유선우가 또 그녀에게 말했다.“나중에 쇼핑할 때 내 옷 좀 대신 사줄래?”조은서가 알겠다고 대답했다.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두 사람의 재혼은 그렇게 놀라운 소식이 아니었다.조은서은 일부러 그를 냉대하지 않으려 했기에 유선우의 요구라면 그녀는 최대한 들어주기로 했다.어차피 남은 평생을 같이 살아가야 하
조은서가 살짝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씻는다고 하지 않았어요?”유선우는 또 한참 그녀에게 키스를 퍼붓고 나서야 침대에서 내려가 샤워하러 갔다.욕실에 들어선 순간 미소를 머금던 그의 얼굴은 곧바로 굳어졌다.사실 여자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바로 잠자리를 가지는 것이었다.조은서는 편안해 보였지만 이 모든 걸 즐길 여유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그녀는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고 있었다.가장 사랑이 고플 때도 그녀는 침대 시트를 꼭 잡을 뿐 소리를 내지 않았다.그녀는 더는 예전처럼 그의 목을 끌어안거나 낮은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속삭이지 않았다.몇 분 후, 유선우는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오자 이미 침대에서 일어난 조은서를 발견했다.실크 이너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검은 긴 머리가 목뒤로 늘어져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분위기를 풍겼다.그녀는 통유리 앞에 서서 가만히 서 있었는데 유리창은 온도 차 때문에 물기가 가득 찼다.조은서는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저도 모르게 그 위로 글자를 썼다.확실하게 볼 수는 없었지만 ‘민우’라는 이름이 쓰인 것 같았다.욕실 밖에서 가만히 이 모든 걸 지켜보던 유선우는 마음이 복잡했다.방금까지 두 사람은 잠자리를 가졌는데도 조은서는 지금 다른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었다.만약 예전이었다면 유선우는 절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그는 조은서를 침대에 밀어붙이며 몸으로 그녀를 정복함으로써 다시는 그 사람을 생각하지 못하게, 그리고 오직 그만을 사랑한다고 말하게 강요했을 것이다.하지만 지난번에 유선우는 이미 그녀에게 강요를 하지 않을 거라고 약속했었다.조은서가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자 유선우를 발견하고는 살며시 쓰던 글을 지웠다.분위기는 삽시에 미묘해졌다.유선우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옷 갈아입고 내려가서 밥 먹자.”조은서는 그가 떠난 후 또 글을 적어 내리기 시작했다.[민들레꽃이 지면.]이 일이 있고 난 뒤로 분위기는 한껏 가라앉았다. 하지만 유선우는 여전히 그녀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깊은 밤, 유선우는 침실로 돌아갔다.어두컴컴한 침실에서 조은서는 고른 숨을 내뱉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잠이 든 모양이다.그는 옷을 벗고 그녀의 뒤로 누웠다.그녀의 따뜻한 목덜미에 얼굴을 대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녀의 몸을 가볍게 건드리며 일부러 깨우려고 했다.한참 후, 조은서는 점점 정신이 들었다.유선우는 그녀가 깬 걸 알고는 얇은 입술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나 아직 사랑한다고 말해.”조은서가 천천히 눈을 떴다.하지만 그녀는 유선우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그녀는 유선우의 아내인 척 모임에 가고 그와 잠자리를 가질 수 있었고, 또 그의 일상생활의 모든 걸 챙길 수 있었지만 양심을 어기며 거짓말할 수는 없었다.그들 사이에는 거래가 있지 않았던가? 사랑과는 전혀 무관한 거래 말이다.조은서가 한참 침묵하자 유선우의 얼굴색은 점점 어두워졌다.그는 조은서를 몸 아래로 다시 눕힌 후 달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봤다.“선우 씨, 왜 그래요?”조은서는 그와 한참 눈을 마주친 후 물었다.그녀의 빨간 입술에서 성숙한 여인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몸을 일으킨 조은서는 그의 부드러운 입술을 어루만졌다.하지만 유선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조은서는 그런 반응을 살피더니 몸을 돌려 협탁 서랍에서 작은 박스 하나 꺼냈다. 그리고 또 입술에 가까이 대고는 물었다.“잠이 안 오니까 다른 거라도 할래요?”유선우의 얼굴색이 더 어두워졌다.조은서는 그와 잠자리를 가지더라도 절대 그를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거짓말로도 할 수 없었다.유선우는 갑자기 그녀의 두 손목을 한 손으로 쥐고는 침대 위로 세게 눌렀다.조은서는 어쩔 수 없이 허리를 튕겨 올렸다.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힘없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선우 씨!”유선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며 애간장을 태우게 했다.어둠 속에서 보인 그의 얼굴에는 바람기가 더해졌는데 그들이 처음 결혼했을 때보다도 훨씬 매혹적으로 느껴졌다.그는 그윽한 눈으로 조은서를 바라
임지혜가 웃으며 대답했다.“얼른 가.”...유선우는 홀 앞쪽에 있는 파란 통 유리창 앞에 서 있으면서 조용히 담배를 피웠다.오늘 그는 특별히 옷을 차려입었다.새하얀 셔츠에 겉은 수제 벨벳 양복을 입고 있어 유난히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하지만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의 모습은 또 그렇게 쓸쓸해 보였다.그가 도착한 지 30분이 다 되어갔다.그가 도착했을 때 빌딩 앞에 두 줄의 화환이 놓인 걸 봤는데 유난히 그중 하나가 눈에 띄었다. 민들레꽃으로 이룬 화환이었는데 이 계절에 민들레꽃 찾기란 쉽지 않았다.그리고 그 위에는 허민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조은서는 그 화환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가운데에 놨다.하지만 남편인 그가 정성껏 고른 8개의 꽃바구니는 그저 외롭게 옆에 방치되어 전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그걸 본 유선우는 안으로 더 들어가지 않았다.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도 그는 어젯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던 조은서 생각뿐이었다.그녀는 분명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게 맞았다. 아니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선뜻 내뱉지 못할 리가 없었다.조은서는 쓸쓸한 뒷모습의 유선우를 발견했다.그녀는 천천히 그의 옆으로 걸어간 뒤 그의 잘생긴 얼굴을 올려봤다.사실 그녀도 유선우가 기분이 우울한 걸 눈치챘다.하지만 사랑의 감정은 머리가 조종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그녀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그녀는 손을 그의 팔에 얹고는 까치발을 들어 그가 물고 있던 담배를 뺏었다.“담배 그렇게 많이 피우지 마세요. 곧 커팅식인데 들어갈까요?”유선우는 그저 그윽한 눈으로 조은서를 바라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조은서는 그를 위해 넥타이를 정리해 주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요즘 유난히 담배를 많이 피우는 것 같던데, 몸에 안 좋아요.”“나 걱정하는 거야?”유선우가 물어보자마자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백아현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지난주 백아현의 몸에 맞는 신장과 심장의 기증자가 나타났다. 그녀가 살아남을
파티가 끝나고.모든 손님을 보낸 조은서는 가게를 정리하고 나서야 임지혜와 작별 인사를 건넸다.임지혜도 당연히 그들 부부의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걱정 어린 얼굴을 보였다.조은서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괜찮아, 싸우지 않는 부부가 어디 있겠어.”그녀는 임지혜를 택시에 태운 후 차가 떠난 걸 지켜보고서야 두 팔을 안고는 천천히 주차장으로 걸어갔다.밤바람이 얼굴을 스쳤다.그녀는 어떻게 유선우를 마주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검은 벤틀리를 몬 유선우는 차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옅은 회색 연기가 얇은 입술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곧 밤바람에 사방으로 흩어졌는데 그 광경은 남자로 하여금 더 차갑게 보이게 했다.조은서가 차에 올라탄 후 고개를 숙여 안전벨트를 매려고 했다.유선우가 담뱃불을 끄고는 그녀에게 다가왔다.“내가 할게.”“괜찮아요.”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유선우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두 사람은 워낙 가까이에 있어 조은서는 유선우의 뜨겁고도 간지러운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유선우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이런 일조차도 이젠 거부하는 거야?”조은서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선우 씨, 그게 아니잖아요. 나 하루 종일 바삐 움직였더니 너무 피곤해요.”철컥.유선우는 조은서에게 벨트를 매준 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피곤하니까 나 상대하기도 싫다는 거야?”어두운 차 안에서 조은서는 그를 바라봤고 유선우도 그녀를 바라봤다.약 1분이 지난 후, 유선우가 허리를 곧게 펴고는 다시 핸들을 잡았다. 마치 조금 전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그는 시동을 걸면서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이제 집에 가자.”어쨌든 심기가 불편했는지 유선우는 침실이 아닌 서재에서 잠을 청했다.서재의 소파는 푹신하지 않았기에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래서 LP로 ‘명상곡’을 틀고는 눈을 감은 채 잠을 청했다.그가 잠을 이루지 못할 때마다 이 곡을 들으면 항상 마음이 진정되고 감정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하룻밤이 지나니 화도 많
하지만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건 다른 남자 때문이었다.유선우는 의자에 살짝 등을 기대더니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그는 하루 종일 어떻게 조은서와의 관계를 개선할지 고민했는데 그녀는 다른 남자 때문에 눈물이나 흘리고 있었다.허민우와 함께하지 못한 것이 남은 평생 아쉬워할 거란 말인가?조은서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허민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허민우를 마음에 두고 있는 마당에 전남편은 어디 눈에라도 들어오겠는가?요즘 따라 유선우는 조은서에게 많은 배려를 베풀었다.조은서가 부드러운 남자를 좋아하는 걸 알아 그도 똑같이 그녀에게 부드럽게 대했을 뿐만 아니라 한 번이라도 그녀에게 잠자리를 강요한 적이 없었다.분명 서로가 원해서 두 사람이 관계를 가졌다고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조은서가 조금이라도 불편한 티를 낼 때마다 그는 욕구를 참곤 했었다.그가 최선을 다해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하고, 또 곁에 있어준 것도 결국 쓸모없는 짓이었다. 이것들은 모두 조은서가 필요하고 원한 게 아니었다.그는 또 서운했던 다른 기억을 떠올렸다.요즘 그는 술자리가 있거나 야근 때문에 집에 늦게 들어가곤 했는데 조은서는 단 한 번도 걱정하며 그에게 연락한 적이 없었다.두 사람이 화목한 결혼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착각했으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결국 조은서는 그들의 결혼 생활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으니 화기애애하다는 가상이 이루어졌다.그의 모든 걸 신경 쓰지 않으면서 조은서는 허민우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유선우는 무표정으로 담뱃불을 지폈다.가게로 들어간 조은서가 민들레꽃을 꽃병에 꽂아 넣었다. 그를 대충 쳐다볼 때와는 달리 아련한 눈빛으로 꽃들을 바라보는 그녀였다.유선우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고, 조은서에게도 전화하지 않았다.그는 그저 목적지 없이 운전하기 시작했는데 저녁 8시가 될 때 차준호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준호야, 어디에 있어? 나와 술 안 마실래?”유선우는 눈앞에서 빛나는 네온 간판을 보며 덤덤한 얼굴로 물었다.“어디에 있는데?”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