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이준은 진은영을 쳐다보았다.세 식구가 함께 자는 모습은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박준식의 와이프가 될 사람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순결을 지킬 것이 뻔했다.유이준은 그저 진은영의 표정을 통해 지나간 일을 얼마나 기억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두 사람 모두 옛 추억을 잊은 적 없지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잠시 후, 유이준이 진별이에게 말했다.“며칠 지나면 엄마랑 잘 수 있을 거야.”진별이는 기분이 안 좋은지 입을 삐쭉 내밀었다.“엄마 아빠랑 셋이 함께 자고 싶다고요. TV에서는 다들 그렇게 자던데.”유이준은 아빠로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그냥 막말하기로 했다.“며칠 지나면 엄마 아빠랑 같이 잘 수 있을 거야.”“이준 씨.”진은영은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고 싶었다.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그녀는 평소와는 달리 부드러워 보였다.유이준은 그저 조용히 쳐다보고 있었고, 공기는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이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진은영은 진별이의 볼에 뽀뽀하면서 이만 헤어지기로 했다.“모레 봐.”진은영은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후다닥 차에서 내렸다.유이준이 계속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끝난 사이였기 때문에 더 이상 가깝게 지내면 안 되었다.‘진은영, 미쳤어? 왜 아직도 이준 씨한테 남다른 감정을 품는데?’...차 안, 유이준은 아까의 감정을 돌이켜보면서 진은영이 박준식을 위해 순결을 지킨다고 생각했다.진별이 한숨을 내쉬었다.“에잇, 답답해. 아빠는 왜 아무것도 못 해요?”유이준은 진별이를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손을 뻗었지만 녀석의 머리까지 닿지 않았다.“아빠가 아무것도 못 했으면 어떻게 진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났겠어.”그야말로 한방에 얻은 아이였다.유이준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진별이의 모습에 모든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진은영의 결혼 때문에 슬펐던 마음도 잊히는 느낌이었다. 유이준은 방향을 돌려 유씨 저
모레면 진별이가 유치원 입원 테스트를 받는 날이었다.진은영이 유치원 입구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유이준이 굳이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진은영은 이런 사소한 일때문에 싸우고 싶지 않아 알겠다고 했다.이제 막 전화를 끊었는데 하연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다.“어제 오후에 이준이 진별이랑 비서 한 명을 데리고 찾아왔었어. 아무 말 없이 영양제를 두고 가더라고. 딱봐도 구하기 힘든 것들이었어.”진은영은 멈칫하고 말았다.“지금까지 내가 너의 옆에 없어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도 몰랐어. 난 자격 없는 엄마라 너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는 못해도 이 한마디는 해야겠어. 이준이 아직 너한테 마음 있는 것 같아. 괜한 자존심을 부리는 거지. 남자아이가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를 막 괴롭히고 그러잖아. 존재감을 발휘하려고... 난 이준이가 딱 그 남자아이 같아.”진은영은 듣고서 시무룩해하더니 말했다.“나 이제 곧 준식 씨랑 결혼해. 이제부터 이런 말 하지 마. 다른 사람이 들으면 오해하겠어.”하연은 하려던 말을 꾹 삼키고 한숨을 내쉬었다.10분 뒤, 유이준이 진별이를 데리고 도착했다.유이준은 차에서 기다리는 대신 한 손으로 진별이를 안고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던 과일바구니를 하연에게 건넸다. 하연은 눈치가 보이는지 진은영을 힐끔 쳐다보았다.유이준이 담담하게 말했다.“어제 농장에서 바로 따온 거예요. 드셔보세요.”하연은 그제야 과일바구니를 받았다.이때 유이준은 검은색 코트에, 가슴에 브로치까지 한 진은영을 쳐다보았다. 파마머리를 하고 있어 평소보다 더욱 여성스러워 보였다. 딱봐도 정성껏 꾸민 모습이었다.유이준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를 계속 쳐다보았다.“예쁘네요. 이래야 사모님처럼 보이죠.”칭찬 속에 씁쓸함이 묻혀있었다.진은영은 못 들은 척 진별이의 손을 잡았다. 진별이는 반응이 어찌나 빠른지 바로 다른 한 손으로 유이준의 손을 잡는 것이다. 세 가족이 드디어 모인 것이다.유이준은 진은영 모녀를 데리고 유치원으로 향했다. 유이준이 이 유치원에 큰돈을 들였
이 순간의 감동은 그들이 여러 번 사랑을 나눴을 때보다 더 깊었다. 유이준은 여러 번 그녀를 도와주었고 금전이며 자원도 아낌없이 쏟아부었지만 이렇게 따뜻한 온정을 보여준 적은 드물었다. 진은영은 원래부터 울컥하는 감정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애써 눈물을 참았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무너지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눈을 깜박였다. 유이준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 같았고 진짜 부부처럼 보였으며 진별이의 완벽한 부모처럼 보였다. 한편 서정숙은 진별이에게 그림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기만 하면 되는 문제지를 내주었다. 진별이는 원장의 품에 기대어 반짝이는 눈망울을 빛내며 말했다. “이건 병아리, 이건 오리...” 서정숙은 눈물을 머금고 칭찬했다. “아가야, 정말 똑똑하구나.” 진별이는 자랑스러움 가득한 얼굴로 유이준을 바라보았다. 하얗고 귀여운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아빠는 마음이 녹을 것만 같았고 이렇게 완벽한 존재가 자기 아이란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는 다시 아이의 엄마를 바라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진별이에 반한 서정숙은 진별이를 학교에 남겨두기로 했고 유이준과 진은영에게 오후 4시 20분에 아이를 데리러 오라고 했다. 그녀는 유이준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진별이를 저희에게 맡기세요, 유 대표님! 여기 음식 안전과 신변 안전은 절대 문제없어요...” 유이준은 믿었다. 음식은 그가 유기농 농장에서 직접 들여온 것이고 학교의 경비도 YS 그룹 보안 회사의 최정예 요원으로 교체했으니 진별이는 이곳에서 아주 안전할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여교사가 진별이를 반으로 데려갔다. 진별이는 세 걸음마다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빠, 잘 가요. 학교 끝나면 꼭 데리러 오세요.” “아빠...” 유이준은 고개를 돌려 진은영을 바라보며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일부러 그녀를 놀렸다. “진별이가 엄마가 있다는 걸 깜빡했나 봐요.
말이 떨어지자마자 진은영의 입술은 유이준에게 점령당했다. 부드럽고 소중하게,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다루듯이. 진은영은 눈을 뜬 채로 유이준을 마주 보았다. 이 순간만큼은 그녀에게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유이준은 한 번도 그녀를 이렇게 키스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눈물이 한 방울 뺨을 타고 살며시 흘러내렸다. 짠맛과 함께. 그가 이내 그녀를 놓아줄 줄 알았지만 오히려 그녀의 목덜미를 단단히 감싸 안고는 미친 듯이 더 깊게 키스하기 시작했다. 거칠고도 강렬한 키스는 그녀의 모든 것을 차지하려는 듯했다. 눈물은 계속 쏟아졌다. 한참 뒤, 유이준이 그녀를 놓아주었다. 진은영은 정신이 멍해져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 악당 같은 남자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부드럽게 속삭였다. “이제 날 신고해도 돼요. 아니면 한 대 때려서 화풀이해도 되고.” 몇 초 후, 그녀의 손이 그의 얼굴에 날아들었다. ‘짝!’ 소리가 맑게 울렸다. 진은영의 가슴은 격렬히 뛰었고 온몸은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완전히 망가진 모습이었다. 번진 립스틱과 번진 아이라인, 이마에 붙은 흐트러진 머리카락까지, 마치 한참 울고 나온 여자 같았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오히려 유이준에게는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는 내면에 차오르는 욕망을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손해 볼 줄은 모르네요?” 진은영은 화난 얼굴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다음에 또 이러면 당신 혀를 물어버릴 거예요.” 유이준은 갑자기 그녀를 다시 잡아당기더니 거칠게 입을 맞췄다...진은영은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몸을 맡겼다. 두 사람은 뒤엉키듯 몸을 밀쳤다... 결국 그녀는 그의 품에 파묻혀 울며 소리쳤다. “유이준 씨, 당신은 정말 나쁜 놈이에요! 진별이의 양육권을 빼앗으려고 했잖아요. 저를 외도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잖아요... 그런데 저 결혼해야 돼요!” “나쁜 놈, 저 결혼해야 된다고요!” “알고 있어요.”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유이준은 진
유이준은 멍했다.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겨우 목소리가 나왔다. “뭐? 다시 한번 말해봐.” 김 비서가 흥분에 목소리를 떨며 다시 한번 소식을 전했다. “박준식의 전처가 아픈 것 같아요. 아마 책임감으로 다시 결혼해서 심적으로 위로해주려는 것 같아요. 박준식도 제법 괜찮은 사람이네요.” 박준식이 좋은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이준은 그가 현명한 결정을 내린 것 같아 속으로 박수를 쳤다. 그제야 그는 생각을 고쳐먹고 김 비서에게 그녀의 병세를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필요한 경우 그녀에게 좋은 의료 지원을 제공할 계획도 세웠다.김 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대표님. 우리 YS 그룹은 의약 회사입니다. 효과 좋은 표적 치료제도 있으니 박준식 부인에게 시도해 볼 수 있도록 해보죠.” 전화를 끊은 후 유이준은 혼자 차 안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마음속이 복잡했다. 그는 기뻤지만 기뻐해서는 안 될 이유가 있기도 했다. 의약업을 하는 YS 그룹의 대표로서 환자가 아프다는 사실에 기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진은영과의 관계에 작은 희망이 생긴 듯하여 흥분을 감추기가 어려웠다. 결국 유이준은 직접 유이안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을 했다. 유이안은 흔쾌히 수락했지만 그를 놀리며 몇 마디 농담을 던졌다. 유이준은 덤덤하게 대답했지만 전화를 끊은 후 그녀와의 입맞춤을 떠올렸다. 진은영이 그를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긴 시간 동안 그를 허락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의 마음은 복잡했다. 이 순간 유이준은 진은영이 너무 보고 싶었다. 그녀가 싫어하는 눈총을 받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러다 결국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녀에게 티 나지 않게. 화창한 봄날이었다. 유이준의 마음은 달콤했다. 그리고 그날 YS 그룹에서 진행된 회의에서 모든 중간 간부들은 유이준의 기분이 그 어느 때보다 좋아 보인다고 느꼈다. 게다가 그는 쉬는 시간마다 휴대폰을 꺼내 멍하니 쳐다보기도 했다. “우리 대표님
진은영은 서둘러 1층 로비로 내려갔다. 로비에 도착하자 유이준이 공용 소파에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옆에 놓인 작은 테이블엔 향긋한 커피가 놓여 있었고 리셉션 직원은 그와 함께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진 대표님이 곧 내려오실 겁니다. 편하게 앉아 계세요. 제가 상업 잡지 두 권 가져다드렸어요.” 유이준은 기분 좋은 얼굴로 감사 인사를 하며 말했다. “고마워요. 괜찮습니다! 우리 아이 엄마가 곧 내려올 겁니다.” '아이 엄마'라는 단어에 리셉션 직원은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이 말을 듣고는 이 소식을 대출해 온 기세로 건물 전체에 전하고 싶어 할 정도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진은영이 금세 도착했고 그녀 역시 이 대화를 들었다. 유이준은 소파에 편하게 기대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입을 뗐다. “커피 맛은 좋은데 잡지는 업데이트가 좀 늦네요...” 진은영은 다가와 그 잡지를 쓱 들여다보고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제 회사를 인수라도 해버린다면야 그렇게 간섭할 수도 있겠죠.” 유이준은 갑자기 말했다. “좋아요. 제가 인수할게요. 팔 건가요?” 진은영은 순간 멍해졌다. 이 대화는 어딘가 익숙했다. 마치 2년 전 거래하던 그때처럼. 그 당시, 그녀는 초라한 입장이었고 그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날 밤 그들은 함께했고 유이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날의 일을 마음에 새긴 듯했다. 대화의 흐름이 둘 사이의 오랜 관계를 상기시키며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6년이라는 시간이 그들 사이에 엮여 있었다. 리셉션 직원이 카운터 뒤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구경했고 로비를 오가던 사람들이 은근히 지켜보고 있었다. 진은영이 주변을 둘러보며 짧게 말했다. “아직 퇴근 시간이 아닌 것 같은데요?”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로비는 텅 비어버렸다. 리셉션 직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유이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 관리를 잘 하네요.” 진은영은 그를 무시
진짜 그녀의 탓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눈빛이 너무 따스했던 탓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이준이 잘생긴 탓이었다. 결국 두 사람은 아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세 사람은 멕시코 음식점에 들어섰고 종업원이 자연스레 물었다. “세 분 맞으시죠?” 진은영이 대답하기도 전에 유이준이 담담하게 말했다. “네, 세 명입니다. 창가 자리로 부탁드려요. 아이가 멀리 있는 대관람차를 볼 수 있도록요.” 종업원은 유이준을 보며 그가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졌고 곧 상업 잡지에서 본 적이 있는 YS 그룹의 대표임을 알아차렸다. 한층 더 친절하게 최고의 자리로 안내했고 진별이에게 새 장난감을 주자 아이는 기뻐서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자리 잡고 앉자 진별이는 장난감에 푹 빠져 어른들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유이준은 흰 냅킨을 펴서 무릎에 얹으며 메뉴를 진은영에게 건넸다. “이렇게 오랜 시간 알고 지냈는데 제대로 같이 식사한 적이 없었네요. 그것도 아이와 함께라니 참 기분이 묘해요.” 진은영은 마음이 조금 흔들렸지만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이런 말들 별 의미 없어요. 유이준 씨, 우리...” 유이준의 눈빛이 깊어졌다. “우리가 각자의 길을 가게 됐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진별이는 우리 아이예요. 우리는 아이 때문에 계속 연결될 거고 진별이 생일엔 함께 식사할 일이 계속 있을 테니까요.” 진은영은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주문을 하며 조용히 덧붙였다. “우리 사이는 딱 여기까지였으면 해요. 차 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선을 넘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해요.” 유이준은 천연덕스럽게 미소 지었다. “차 안에서처럼 말이에요?” 진은영은 어이가 없었다. 요즘의 유이준은 평소와 다른 모습을 자꾸 보이며 사뭇 장난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유이준은 돈 걱정이 없었기에 진은영은 음식을 다양하게 시켰고 음식이 금방 한 상 가득 차려졌다. 이곳의 칠면조 다리와 타코는 유명했고 진별이는 먹느라 입가에 기름이 반짝거릴 정도로 만족스러워했다. 아이의 행복한 얼굴만큼 기쁜 것도
진은영은 두려웠다. 그녀는 한때 유이준을 사랑했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 지내다 보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를 다시 좋아하게 될까 두려웠다. 그녀는 스스로 그런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지만 유이준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듯했다. 그의 깊은 눈빛이 그녀를 가만히 응시하며 천천히 물었다. “왜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해요? 당신은 박준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박준식과 결혼하려는 건 현실을 피하고 저한테 상처받기 싫어서였잖아요. 하지만 만약 제가 더는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고 오늘 밤처럼 대한다면 여전히 박준식을 선택할 거예요? 박준식과 결혼할 거예요?” 진은영은 대답을 몰랐다. 그녀는 빠르게 고개를 저었지만 유이준은 그녀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의 눈 속에 담긴 감정이 너무 깊어 진은영은 착각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가 정말로 그런 눈빛을 보일 수 있을까?’ 더욱이, 그 눈빛 속엔 아련한 슬픔이 묻어 있었다.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던 두 사람이 결국 기회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씁쓸함이었다. ‘지금 와서 이런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진은영은 그의 손을 결국 뿌리치고 먼저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차에 올라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니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고 유이준의 눈빛은 바다처럼 깊었다. 진은영은 잠시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속으로 울며 페달을 밟아 차를 천천히 출발시켰다. 후방 거울 속에서 사라져가는 그녀의 차를 보며 유이준은 뒤돌아 잠든 진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고 고운 얼굴에 은은한 홍조가 감돌았다. 유이준은 속삭이듯 말했다. “곧 엄마도 우리와 함께 살게 될 거야.” 진별이는 들을 수 없었지만 이 밤이 너무나 아름다워 아이는 행복한 꿈을 꿀 것이었다. 진은영이 집에 돌아왔을 때, 정원에는 따스한 불빛이 비치고 있었다. 막 새싹을 틔운 잔디가 노란빛 아래 포근하게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잔디를 살짝 건드리며 문득 그것이 귀엽게 느껴졌다. 그때 진
하지만 조은희는 그 답변에 만족하지 않았고 눈물이 맺힌 채 애처롭게 다시 물었다.“결혼했어요? 다른 사람이 있어요? 아직도 저를 좋아해요?”그녀가 물었을 때 처음보다 조금 더 고집스러워졌고 그 모습에 진석은 마음이 아팠다.진석은 그들이 헤어졌을 때 조은희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소녀였다는 것을 기억했다.하지만 지금 조은희는 이렇게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질문을 던지며 진석에게 묻고 있었다. 그녀가 점점 용감해질수록 그의 마음은 더 아팠다.진석은 더 이상 조은희를 놀리지 않았다.그는 조은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답했다.“결혼 안 했고 내 옆에는 다른 사람이 없어. 약혼녀는 다리 치료를 마친 후 올 상반기에 결혼할 거야. 아직도 좋아해. 많이 좋아해.”...조은희의 눈가는 더욱 붉어졌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그게 제가 진석 씨와 사귀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요.”진석은 한 걸음 다가가 그녀 눈가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조은희는 눈물이 많은 여린 여자가 되었다. 그는 예전 조은희가 항상 웃고 뒤에서 그를 끌어안으며 ‘진 선생님’이라고 달콤하게 불렀던 기억을 떠올렸다.그녀를 좋아하는 것 그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그때 그는 자신이 자격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여전히 그 감정을 시작했다. 그 후 조은희는 해외로 떠났고 진석은 B시에 남았다. 그 뒤 1년 동안 진석은 조은희가 아무 말 없이 떠난 것에 대해 그녀를 미워하기도 했었다. 자신을 먼저 유혹한 것도 조은희였기에 더 화가 났다.하지만 그가 나중에 생각하니 조은희는 겨우 20살이었다.진석은 조은희의 첫사랑이었고 그녀의 청춘 그 전부였다. 게다가 그녀는 진심으로 진석을 사랑했기에 그녀를 비난할 수 없었다.진석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울지 마. 알겠지? 우리의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먼저 학교 관계자들과 저녁을 먹어야지. 도서관도 지어야 하잖아. 그곳도 우리가 갔던 곳이었지.”그는 조은희가 대답하기 전에
순간 조은희의 생각이 멈추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조은희는 진석의 의도를 알 수 없었고 그가 굳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이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미 진석은 그녀를 차에서 이끌어 내리고 있었다.학교에서 준비한 식당은 학교 근처에 있었고 과거에 조은희가 진석과 함께 와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별도로 방을 예약하지 않았었다.익숙한 장소를 다시 찾으니 묘한 감회가 밀려왔다.진석과 조은희는 나란히 안으로 들어섰다. 키가 185cm인 남자와 170cm인 여자는 잘생긴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의 조합으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들 사이의 과거를 아는 학교 관계자들은 자연스럽게 몇 마디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웠다.조은희는 약간 불편한 기색을 띠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어린 시절엔 철이 없었죠.”반면 최근 몇 년간 사업을 통해 단련된 진석은 여유로운 미소로 담담하게 응대했다.“과거의 인연을 다시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것으로 보여요.”그 말이 나오자 학교 관계자들은 그 의미를 바로 알아챘다. 진석이 조은희 때문에 온 것임이 분명했다. 그 1억이 전부 조은희 덕분이었기에 학교 관계자들은 일부러 조은희를 진석의 옆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조은희에게 음료만 권하면서 농담을 건넸다. “잠시 후 진석이 취하시면 조은희가 집에 데려다줘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날 수도 있잖아.”조은희는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려 했지만, 탁자 아래로 내려간 그녀의 손이 진석의 손에 잡혔다.진석의 손길은 매우 부드러웠고 남녀 간의 감정이 담긴 것 같지 않은 마치 어른이 아이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듯 따스한 느낌이었다.조은희의 붉은 입술이 약간 떨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후 손을 빼냈고 진석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그는 학교 관계자들에게 술을 따라주며 먼저 한 잔을 마셨다.교장은 여전히 예전의 그 교장이었고 진석의 이런 모습을 보고 깊은 감회에 잠긴 듯 말했다.“많이 변했구나.”감상적인 분위
그날 밤 조은희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 후 며칠 동안 그녀는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조은혁은 그 시간 동안 새로 들인 취미인 거북이들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박연희는 그 모습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늙으니까 이런 거나 만지고 있지.” 그날 밤 조은혁은 거북이들을 모두 방생하며 자신이 아직 늙지 않았음을 증명하려 들었다. 심지어 한 마리 거북이 등에 ‘진석’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으며 괜히 화풀이도 했다. 박연희는 그 모습을 보며 유치하다며 혀를 찼다. 조은희는 이 모든 일을 몰랐다. 그녀는 그저 아버지가 며칠째 자신에게 집에만 있지 말고 좀 나가보라며 걱정하고 있는 것만 알았다. 일주일이 지나며 휴가가 끝났고 조은희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녀는 대학에서 미술학과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림 수업을 맡고 있었다. 가끔 그녀는 자신이 진석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었지만 딱히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일하는 게 나쁘지는 않았다. 저녁 해 질 녘이었다. 조은희는 차 열쇠를 챙겼다. 차를 몰고 가 간단한 간식을 사서 집에 돌아와 드라마를 보며 먹을 계획이었다. 그녀의 일상은 단순했고 굳이 그것을 깰 생각도 없었다. 며칠 전에 그 일은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진석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조은희의 얼굴은 노을빛에 물들어 더욱 맑고 투명해 보였다. 그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차 문을 열려던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은희야.” 그 목소리는 진석이였다. 조은희는 천천히 돌아섰고 그곳에 서 있는 진석을 보았다. 그는 몇몇 교직원들과 함께 기부에 관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조은희는 학교의 오래된 도서관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한 기부를 논의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재회에 조은희는 순간적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진석의 눈빛은 깊고도 복잡했다. 이 학교는 그들이 과거에 함께 있었던 곳이었
휴게실에서 조은희는 진안영의 품에 안겨 억눌린 채로 울고 있었다. 진안영은 그녀의 부드러운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좋아한다면 내가 대신 가서 말해줄게요.” 조은희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빠가 언니를 대역죄인이라고 할 거예요.” 진안영은 잠시 멈칫한 뒤 부드럽게 말했다. “진범 씨가 도와줄 거예요.” 조은희는 진안영의 품에 더욱 몸을 기댄 채 계속 울었지만 오늘이 조우찬의 첫돌 날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조금만 울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눈물을 흘리기 마련이니까. 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이 온화하고 점잖은 사람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진안영은 그가 누군지는 몰라도 자기 남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문 열어볼게요.” 진안영이 문을 열었을 때 예상대로 문밖에는 진석이 서 있었다. 진안영은 그와 눈을 마주쳤지만 아무 감정 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가 조용히 말했다. “두 분이 얘기하세요.”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고 진안영은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휴게실 안은 여전히 조은희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그녀는 왜 이렇게 슬픈 걸까. 다시 그 사람을 만나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일까? 아니면 이 몇 년 동안 계속 슬픔에 잠겨 있었던 걸까? 진석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5년 동안 떨어져 지낸 그녀에게 다가갔다. 사실 그들이 처음 함께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첫 만남 이후 바로 헤어졌으니까. 조은희는 그때 겨우 18살의 어린 소녀였고 5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많이 성숙해졌지만 여전히 그때의 소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언니...” 조은희는 그를 품에 안으며 애교를 부렸다. 처음엔 진안영인 줄 알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진안영의 허리는 이렇게 강건하지 않았다. 분명히 남자의 허리였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름답고 온화한 듯하면서도 차가운 기운을 풍기
다음 해 8월. 조우현과 방유설의 아기가 첫돌을 맞았다. 방유설은 조우현에게 아들을 낳아주었고 그 아이의 이름은 조우찬으로 지어졌다. 이 이름은 큰아버지인 조진범이 지어준 것이었고 방유설은 이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한편 조진범과 진안영의 막내아들의 이름은 조우진이었다. 조우찬과 조우진, 이 두 아이는 조씨 가문의 차세대 남자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가문에서 첫 아이는 여전히 진아현이었다. 현재로서는 유일무이한 작은 공주님으로서 이 작은 소녀는 조은희 고모를 따라다니는 걸 좋아했다. 올해로 세 살 반이 된 진아현은 곧 유치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조우찬의 돌잔치 날 조은희는 여전히 진아현을 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예상치 못한 옛사람을 마주쳤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해 그녀가 타국으로 떠난 이후로 가끔 스쳐 지나갈 뿐 이렇게 제대로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몇 년이 지났을까. 조은희는 차마 생각하기조차 두려웠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 흐른 듯했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 벌써 4, 5년이 된 것 같았다. 진석은 옆에 아무도 없이 홀로 서 있었다. 그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행사장의 중앙에서 다른 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조씨 가문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예전의 일은 잊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은희 진아현의 손을 잡고 있었고 저절로 눈물이 고였다. 진아현은 고개를 들어 고모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모, 저 사람 좋아해요?” “아니야.” 조은희는 순간 당황하며 빠르게 대답했다. 하지만 진아현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럼 왜 자꾸 그 사람만 보고 있어요? 물론 잘생겼긴 하지만 여자애들은 좀 더 절제해야 해요.” 조은희는 잠시 놀라며 물었다.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 진아현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아빠가 그랬어요! 아빠가 항상 엄마한테 말했어요. 잘생겼어도 자기만 보면 안 된다고. 여
유이안의 말이 끝나자 조씨 가문 사람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박연희였다. 그녀는 서둘러 유이안에 물었다. “유설이 상태는 괜찮아?” 유이안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외숙모, 걱정하지 마세요! 유설 씨 상태는 좋아요. 그냥 조금 놀란 것 같아요. 우현이가 안에서 곁에 있어 주고 있어요.” 박연희가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서 조은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뜻밖에 아이라니. 그게 좋은 거지! 좋은 거야.” 두 사람의 부부 사이는 원래도 좋았지만 부모라면 누구나 손주를 보고 싶어 하는 법이다. 게다가 조우현과 방유설의 외모가 워낙 출중하니 그 아이 역시 틀림없이 예쁠 거라는 생각에 조은혁은 그저 상상만으로도 격동되었다. 방유설을 닮은 귀여운 딸일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한참 지난 후 조우현이 방유설을 부축하며 나왔다. 방유설은 설탕물을 조금 마신 덕분에 정신을 차렸지만 집에 돌아가 며칠은 충분히 쉬어야 했다. 특히 임신 초기 3개월 동안은 모든 일을 미루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뜻밖에 찾아온 아이였지만 방유설은 그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아직 평평한 아랫배를 감싸고 다른 손으로는 조우현의 목을 끌어안으며 마음속 깊이 행복이 가득 차올랐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 방유설도 한 번쯤은 행복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행복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꿈에서조차 감히 바랄 수 없을 정도의 행복이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조우현이 깊은 애정을 담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목소리가 약간 잠긴 채 말했다. “유설아,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어.” 결혼한 지 오래됐지만 조우현은 가끔은 철없고 유치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성숙했고 갈수록 더욱 성숙해졌다. 가끔 방유설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우현은 젊은 나이에 결혼한 편이었고 자신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모두 그녀에게 쏟아부은 것 같다고. 밤에 문득 잠에서 깨어날 때면 그는
몇 달 후 가을 10월쯤.방유설이 주연한 《청홍》이 대히트를 치며 영화 글러브 최우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시상식 당일 날 조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모여 방유설을 응원하고 있었다. 진안영은 그녀가 부담을 느낄까 봐 다음에 받으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의 말을 계속 전했다. 방유설은 매우 감동했다. 진안영이 갓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마친 후 이렇게 와서 자신을 응원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방유설은 진안영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난 이미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상을 받았어요.” 진안영은 원래 차분한 성격인데 방유설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너는 우현이랑 있으면 사람이 이렇게 활발해져! 우현이가 사람을 잘 챙긴다고 네 아주버님이 자주 칭찬하셔.” 방유설은 조금 부끄러워하며 작은 목소리로 진안영과 얘기했다. 조은희는 사탕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평소에 연기하면서 다이어트해도 이럴 때는 사탕 하나 드세요. 나중에 여우주연상 받고 저혈당으로 쓰러지면 안 되잖아요.” 방유설은 사탕을 받아서 입에 넣었다. 우유사탕이 입안에서 달콤하게 녹았다. 조은희는 살짝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딱 봐도 언니예요! 다른 여배우들보다 언니가 훨씬 이뻐요.” 조우현은 여동생을 흘깃 보며 말했다. “이건 외모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 외모만 보고 결정되면 긴장감이 없잖아.” 조은희는 달콤한 사랑을 떠먹은 기분에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이때 최우수 남자주연상이 발표되었고 다른 영화의 남자 주연이 받게 되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박도원이었다. 그는 국내에 없어서 촬영 감독이 대신 상을 받으며 발언 중 여러 번 방유설을 언급했다. 갑자기 설원 커플 팬들이 들썩이며 이 장면을 모든 플랫폼에 퍼뜨렸다. 설원 커플 팬클럽에서 활동 중인 팬들은 102만 명에 달한다. 그렇게 인기 있는 커플이었다. 조우현은 아내의 직업을 존중하는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그저 코를 머쓱할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방유설은 가장 떠들썩한 설날을 보냈다. 3월쯤 그녀는 조우현과 결혼했다. 그녀의 웨딩드레스와 베일은 무려 3미터 길이였고 어르신들은 베일이 길수록 결혼이 오래 지속된다고 했기에 조우현은 3미터 길이의 베일을 디자인하게 했다. 그는 그녀에게 평생을 함께할 거라고 약속했다. 교회 종소리가 울리자 방유설은 조진범의 손에 이끌려 천천히 조우현에게 다가갔다. 이제부터 그들은 하나가 되었고 그의 가족도 그녀의 가족이 되어 함께 기쁨과 고난을 나누게 되었다. 10여 미터의 거리. 그 길은 마치 그들이 걸어온 4년과 닮아 있었다. 순백의 제단 앞에서 조진범은 방유설을 동생에게 넘기며 가볍게 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 대해라.” 조우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베일 너머로 방유설을 바라보았다. 오늘에 그녀는 순백의 모란꽃 같았다. 조우현은 부드럽게 방유설의 베일을 올리며 그녀에게 그의 눈을 바라보게 하며 결혼식을 마치려 했다. 그들은 이 감동적인 순간을 함께 목격할 것이고 잠시 후 서약을 마치면 그들은 진정한 부부가 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백발이 될 때까지 그것이 그가 그녀에게 약속한 평생의 로맨스였다.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그들의 감정은 깊었고 후회는 없었다! 방유설은 연예인이었기 때문에 생중계가 이루어졌고 그녀는 생중계 수익은 모두 산간 지역의 아이들에게 기부했다. 네티즌들은 광고비를 통해 많은 수익을 올렸고 한 번의 생중계에서만 160억 정도의 이익을 얻었다. 네티즌들은 생중계를 보며 신나서 토론했다. [와! 조우현의 큰형도 잘생겼네.] [너무 아쉬워. 결혼을 너무 일찍 했어.] [여동생도 엄청 이쁘네! 이 가족은 다들 왜 이렇게 훈훈하지?] [저런 부모님이라니. 부러워!] 조씨 가문에 대한 댓글이 잠잠해지고 이번에는 유씨 가문으로 넘어갔다. [YS 그룹 대표도 너무 잘생겼잖아!] [영국에 모델 같아. 혼혈인가?] [100% 순수 본토! 얼굴이 완벽할 뿐!]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저택 앞 계단에서 조우현과 방유설은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박도원이 차에서 내렸다. 오늘 밤 그는 유난히 단정하고 멋져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조우현은 곧바로 얼굴을 찌푸렸다. 박도원이 공작새처럼 너무 화려하게 꾸미고 왔기 때문이다. 조우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유설이에게 물어봐야겠다. 나랑 박도원중에 누가 더 잘생겼는지. 박도원은 저물어가는 노을 속을 걸어왔다. 방유설은 앞으로 나가 그를 꼭 안아주었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으면서 이제 그들은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조우현은 그 모습을 보고 참지 못하고 말했다. “꼭 그렇게까지 친밀해야 해?” 방유설과 박도원의 포옹이 끝나자 조우현은 자신도 박도원과 포옹하겠다고 나섰다. 박도원은 당황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리고 순간 조우현의 힘에 거의 날아갈 뻔했다! 조우현은 다가가 박도원을 단단히 끌어안고 그의 등을 세차게 두드리며 말했다. “네가 떠난다니 정말 많이 보고 싶을 거 같아.” 박도원은 말문이 막혔다. 방유설은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한숨을 쉬었다. 도저히 조우현이 자기 집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났는데 어쩜 아직도 저렇게 유치할까? 밥은 다 먹은 후에도 조우현은 여전히 소심하고 질투가 많았다. 그러나 박도원은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조우현 같은 사람만이 방유설의 차가운 삶을 따뜻하게 채워줄 수 있었다. 박도원은 자신이 방유설을 온전히 채워줄 수 없음을 느꼈다. 박도원은 방유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부족했고 방유설에 대한 감정도 너무 단순했다. 하지만 조우현은 달랐다. 그에게는 든든한 형제자매와 부모님이 있었다. 박도원은 씁쓸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그래도 이번엔 질투 좀 해도 되겠지. 그날 밤은 박도원이 B시에 머무는 마지막 밤이었다. 다음 날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P국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식사 중 몇 잔의 술이 오갔고 모두 조금씩 취기가 올라왔다. 두 남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