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식사 자리에서 그는 결국 투자를 따내지 못하였다. 배후에 주식을 소유한 사람 또한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매일 대량의 주식을 내던졌고 성현준은 어쩔 수 없이 그 주식을 혼자 다 사들여야 했다.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회사 자금과 그의 개인 재산도 한계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누군가에 의해 바닥에 깔린 듯한 기분이다. 투자를 받고 대출을 받으려고 매일 밤 그는 사람들을 접대했다. 결국 이전보다 2%나 높은 금리로 일부 자금을 빌리게 되었다. 이것도 회사 건물을 담보로 잡아 겨우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것이었다. 일주일 만에 그는 많이 야원 것 같았다. 그날 밤, 술에 취한 그가 화장실에서 토하고 난 뒤 벽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문이 열렸고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그를 쳐다보는 남자는 다름 아닌 유이준이었다. 세면대 앞으로 가서 금색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천천히 손을 씻으면서 조롱 섞인 말투가 물었다.“술 많이 마셨어요? 투자 유치가 잘 안되나 봐요? 나한테 말하지. 그래도 한때는 매형과 처남 사이였는데.”성현준은 벽에 기댄 채 검은 눈동자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예전 같았으면 달려들어 한바탕 싸웠을 것이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 고되게 당하고 나니 알게 되었다. 그의 사업이 그렇게 순탄했던 건 결국 YS 그룹의 후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권성기술은 유씨 가문이라는 배경이 있어야 사람들이 도와준다는 것이었다. 지금 유이준이 한 몇 마디 각박한 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성현준이 아무런 대꾸가 없자 유이준은 조금 놀란 듯했다.손을 씻고 그가 몸을 돌려 성현준을 쳐다보는데 성현준이 이상한 소리를 했다.“강원영 그 사람이랑은 어떻게 됐어?”눈빛이 어두워진 유이준은 한참이 지나서야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잘 지내고 있어요. 누나가 그 사람과 어떻게 되든 다시 성현준 씨한테 돌아갈 일은 없어요. 똑똑히 알아둬요. 우리
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VIP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권하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연우만 혼자 침대 끝에 기대어 보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핼쑥해진 아이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그가 앞으로 다가가 장난감을 건네주며 물었다.“엄마는?”장난감을 받아 옆에 두고 아이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음료수 사러 간다고 했는데 몇 시간째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아저씨, 우리 엄마 언제 와요?”그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권하윤이 밖에서 무슨 일이 있는 줄로만 알았다. 게다가 간호사 두 명이 이리 지키고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엄마는 잠깐 볼일이 있어서 나간 거야. 곧 돌아올 거야.”아이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이때, 성현준이 아이가 입고 있는 바지에 시선을 돌렸다. 옅은 핑크색 바지는 편안하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엄마가 사준 바지야?”연우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유 선생님이 간호사 언니들한테 사 오라고 한 거예요.”그 말에 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이내 입을 열었다.“며칠 전에 원장님께서 진찰하러 오셨다가 연우의 바지가 짧은 걸 보고 두 벌 사 오라고 하신 거예요. 여자아이는 핑크색 좋아한다고 신신당부하셨거든요. 그래서 이걸 사 왔는데... 연우도 무척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요.”연우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마음에 들어요.”마음이 복잡해졌다. 연우에 대한 유이안의 마음에 기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쓸쓸하기도 했다. 이젠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건지? 그래서 권하윤의 아이한테도 이리 잘해주는 걸까?멍하니 서 있는데 연우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입을 열었다.“아저씨, 유 선생님 생각 하는 거예요? 유 선생님 좋아하죠?”아이의 천진난만한 물음에 그는 말문이 막혔다.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아저씨랑 유 선생님은 이미 이혼했어.”“그런데 아저씨는 아직 유 선생님 좋아하잖아요.”말을 마친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유신이 준 장난감을 가지고
희미한 불빛 아래 성현준의 얼굴이 더욱 창백하고 난처해 보였다. 물러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저 여자가 내 와이프였는데. 어떻게 다른 남자랑 키스를 하고 있는 건지? 어떻게 저런 나른한 목소리로 다른 남자의 이름을 애타게 부를 수가 있는 건지? 저 여자는 내 여자였는데...그 순간,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당장 달려들어 강원영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마지막 남은 이성이 그를 붙잡았다.그래, 나랑 유이안은 이미 이혼했고 저 여자가 누구를 만나든 그건 그녀의 자유야.이내 그는 천천히 뒤돌아섰다. 문이 천천히 닫혔고 방 안의 두 남녀는 아무 것도 모른 채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사실 강원영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녀를 놓아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게 파고들었다. 정신을 잃을 듯한 키스에 그녀가 저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성현준이 떠난 뒤에도 두 사람은 한참 동안 키스를 더 나누었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고 그녀의 가는 허리를 어루만지며 다정하게 입을 열었다.“오늘은 우리 집에 가서 자요. 강윤이랑 같이.”진도가 너무 빠른 것 같았다.이제 막 시작한 사이인데 그의 집에 가서 자는 건 경우가 아니었다. 아무리 강윤과 같이 잔다고 해도 그렇지 아주머니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그러나 그녀와 헤어지기 싫었던 그는 집까지 그녀를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의 기분이 상할까 봐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 사무실을 나서면서 그가 그녀 대신 외투를 챙겨 살갑게 덮어주었다. 그의 자상함에 그녀는 어깨에 걸친 외투를 잡은 채 고개를 들어 환하게 웃었다.“고마워.”그가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뽀뽀했다. “서프라이즈 있어요.”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꽃을 선물해 줬는데 또 서프라이즈라니? 그녀는 꽃다발을 들고 그와 함께 아래층을 내려갔다.트렁크를 열자 그 안에 빨간 장미가 가득했다.가운데는 주얼리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고 그가 고개를 숙인 채 그녀를 쳐다보며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고 강원영은 여전히 다정한 모습으로 유이안의 외투를 건네받고 그녀의 실내화를 가져다주었다. 유이안이 신발을 갈아 신는 동안 그는 또 유이안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가볍게 입을 열었다.“대추차 끓여놓을 테니까 먼저 씻고 있어요. 그리고 사야 할 물건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아요.”그 순간, 유이안이 잠깐 멈칫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그가 사야 할 물건이 무엇인지 깨달은 유이안은 몸을 흠칫 떨었다. 여자로서의 체면이 있으니 대충 얼버무리며 직접 묻진 않았지만 빨갛게 달아오른 양 볼이 모든 걸 설명해주고 있었다.옅은 홍조를 띤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이를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그윽한 눈빛으로 유이안을 바라보던 강원영은 갑자기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살포시 입을 맞추었다.대추차도, 피임 도구도, 원래의 계획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그 자리에 남은 건 남녀의 불타는 감정과 서로의 몸에 대한 갈망과 탐색뿐이었다...두 사람 사이의 첫 경험은 그렇게 침대 위에서 이루어졌다.강원영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했고 유이안은 그 열기를 온몸으로 감당하는 것이 너무나도 벅찼다. 다행히도 남자는 배려심이 많았고 끝마무리가 마냥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여자의 몸을 고려해 3라운드 만에 유이안을 순순히 놓아주었다...일이 끝난 후 그들은 함께 목욕하고 커피 한 잔을 나누었다.원래 강원영은 유이안의 집에 머무를 계획이었다.첫 경험이 끝나고 유이안을 쓸쓸한 집에 혼자 남겨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이안은 강원영의 생각처럼 나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유카타 차림으로 강원영의 어깨에 살포시 기대며 담담히 속삭였다.“윤이가 잠에서 깨서 네가 보이지 않으면 겁을 먹을 거야. 그러니까 가봐.”강원영의 깊고 검은 눈동자가 은은한 조명 아래서 번뜩였다.그는 유이안의 손에 든 머그잔을 집어 들고 고개를 숙인 채 그녀에게 다시금 키스를 퍼부었다. 남자의 정력은 결코 바닥이 나지 않는 듯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거실에서
유이안이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요?”“넌 내 아내잖아.”그러나 유이안은 그를 노려보기만 할 뿐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한편, 성현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뚫어지라 유이안을 바라보았다. 현재 그의 모습은 정말 낭패의 극치에 달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유이안에게 집착하는지는 성현준조차 알 수 없었다.이혼 후, 각자 새로운 애인을 찾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한참 동안 침묵이 흐르고 유이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만 돌아가요. 그리고 오늘 일은 없던 일로 치고 둘 다 본적 없는 거로 해요.”그러나 성현준은 발로 문틈을 막으며 쉽게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남녀의 힘은 너무나도 분명했고 성현준은 결국 그녀의 집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집안에 발을 들여도 결국 상처받는 사람은 성현준일 뿐이었다.조금 전, 유이안이 강원영과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비록 돌아가기 전, 강원영이 깨끗하게 관계의 흔적을 수습했지만 남녀 사이의 뜨거운 열기가 뒤섞인 공기는 쉽사리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 흐트러진 소파 자리는 성숙한 남녀라면 그 누구나 쉽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잠시 말문이 막힌 성현준이 눈시울을 붉히며 물었다.“유이안, 뭐가 그렇게도 급했어?”그러자 유이안은 성현준을 지나쳐 창가로 걸어가며 몸에 걸친 잠옷을 다시 한번 조였다. 금방 잠에서 깨어난 탓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피곤해 보였다.“성현준 씨, 우린 이미 이혼한 사이에요. 게다가 헤어질 때 당신은 이미 권하윤과 몰래 사귀고 있었잖아. 이혼 후에도 전 당신에게서 한 푼도 받지 않았고 그중에는 심지어 마땅히 받아야 할 결혼 재산까지 있었어요... 충분히 체면을 세워줬는데 거절한 건 당신이었어요. 그런데 왜 집까지 찾아와서 제 한계를 건드리는 겁니까?”“널 좋아했어.”“그래요. 하지만 그것 역시 과거의 성현준이지 지금 같이 술과 재물에 흠뻑 젖어 있는 성현준이 할 말은 아니에요. 우리의 결혼은
성현준은 손에 쥐어진 작은 물건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그는 도무지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답답하고 숨통이 꽉 막히는 기분에 술을 빌려 애써 마음을 달래는 수 밖에 없었다. 이대로 밑바닥까지 추락해도 상관없었다.‘어차피 유이안도 떠나간 마당에 이제 누구와 사귀든 상관없지 않은가?’그렇게 성현준은 술집으로 향했다.한밤중의 술집은 아늑한 분위기를 자랑하고 있었고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여가수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쓸쓸한 영혼을 치유해 주었다...성현준은 가장 독한 술을 주문했지만 마음속의 불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그때, 구석에서 뜨겁게 키스하고 있는 한 쌍의 남녀가 눈에 들어왔다.그런데 그중 여자의 옆모습이 특히 유이안과 닮았다. 검정 스웨터 치마를 입고 남자의 목을 껴안고 몰입하여 키스하는 여인의 모습...이미 술에 취한 성현준은 몽롱한 눈빛으로 여자를 바라보다 연이어 마른 침을 삼켰다. 그렇게 성현준은 그 여인을 유이안으로, 옆의 남자는 바람남 강원영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 성현준은 다짜고짜 여자를 끌고 가더니 남자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강원영, 그 손 치워. 내 아내에게서 떨어지란 말이야.”이윽고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술집에 울려 퍼졌다.“당신 누구야? 미쳤어요?”그녀는 다급히 손발을 휘저으며 남자를 구하려 했지만 성현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눈에 불을 켜고 계속하여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상대도 마냥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게 주먹이 오가며 두 사람은 점점 짐승처럼 상대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당신이 못 지킨 아내를 왜 여기에서 찾아?”남자의 주먹을 받고 성현준은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둘렀다.순식간에 술집은 술병이 깨지는 소리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이성을 잃은 두 남자의 쌈박질에 도무지 말릴 수 없었던 옆 사람은 결국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었다.잠시 후, 경찰들은 불과 10분도 안 돼 술집에 도착했고 성현준과 그 남녀는 순순히 경찰을 따라 경찰서로
어쩌면 이것 또한 유이안에게 복수하기 위한 수단일지도 모른다.그렇게 성현준은 권하윤을 데리고 별장에서 밤을 보냈다. 과거 일찍이 사랑한 적이 있었기에 두 사람 모두 안방에 들어간 후에도 딱히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곧바로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상대의 몸을 탐하기 시작했다...성현준은 술을 마신 상태였기에 관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허무하게 끝나버렸다.하지만 그런데도 권하윤은 전에 느껴본 적 없는 만족감으로 황홀한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드디어 이곳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 드디어 유이안을 대체하고 이 별장의 사모님이 되었다.소원이 이루어지자 권하윤의 마음은 말로 이룰 수 없이 부드러워졌고 성현준이 자리에 눕자마자 코 박고 잠이 들었음에도 화 한번 내지 않았다. 곧이어 그녀는 또 욕실에 가서 따뜻한 물수건을 짜서 남자의 시중을 들기 시작했다.권하윤은 성현준의 곁에 반쯤 꿇어앉아 다정하고 세심하게 남자의 몸을 닦아주었고 그의 팔을 들어 올리려던 찰나, 성현준의 손바닥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물건이 방바닥에 떨어졌다.눈부시게 반짝이는 작은 다이아몬드 반지.유이안의 결혼반지였다.그러나 유이안은 외과 의사로서 자주 수술에 들어가기 때문에 결혼반지를 거의 착용하지 않았고 반지는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하여 권하윤은 너무나도 큰 오해를 하고 말았다. 그녀는 성현준이 그녀를 위해 산 반지라고 생각하여 뛸 듯이 기뻐하며 자신의 약지에 반지를 주워 끼었다.조명 아래 반짝이는 반지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말로 이룰 수 없는 기쁨에 입꼬리를 잔뜩 끌어올렸다.그러나 기쁨도 잠시, 성현준의 잠꼬대가 권하윤의 꿈을 산산조각내고 말았다.“이안아.”뺨을 한 대 세게 맞은 것처럼 얼굴이 얼얼했지만 괜찮다. 권하윤은 이제 곧 성씨 가문의 사모님이 될 테니까. 성현준이 누굴 생각하고 있는지는 이제 상관없었다.권하윤은 손가락을 펴 애정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손가락에 끼워진 다이아몬드 반지를 바라보았다.마음속에 품어도 아프지 않
절정에 다다르고 성현준은 저도 모르게 유이안의 이름을 내뱉었다.“이안아.”...보름 후.가을의 향기가 물씬 풍기고 겨울이 찾아오기 시작했다.유이안은 소파에 앉아 논문을 읽고 있었다. 밝은 사무실에는 히터가 켜져 있어 따뜻한 온기가 몸을 감싸주었다. 책상 위에는 크리스털 꽃병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강원영이 선물한 꽃이 꽂혀있었다.요즘 강원영은 하루걸러 사무실에 찾아와 신선한 꽃으로 바꿔주곤 하는데 강원영의 말로는 한가해질 때마다 강원영을 떠올리게끔 하는 그의 수법이라고 한다.정말 유치하기 그지없군.하지만 강원영을 떠올릴 때마다 유이안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었다. 최근 연우의 병세 연구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이대로라면 이식자가 나타난다는 전제에서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유이안은 성모가 아니다. 그녀는 의사다.유이안이 한창 논문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을 때, 비서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원장님, 연우의 어머니가 원장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권하윤?”의도치 않은 불청객의 등장에 유이안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솔직히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권하윤은 환자의 가족이기에 그녀 역시 거절하기 어려웠다.조금 머뭇거리고 나서 유이안은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곧이어 권하윤은 윤기 어린 얼굴을 하고 사무실에 들어섰다. 아픈 아이의 엄마라기에 권하윤의 옷차림은 확실히 필요 이상으로 화려했다.비서가 문을 닫자 유이안은 이내 서류를 닫으며 고개를 들어 물었다.“무슨 일이시죠?”“자리는 권해주지 않는 건가요, 원장님?”“죄송하지만 제 사무실에는 환자 가족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없습니다.”...“저와 성현준의 관계가 어디까지 발전했는지는 궁금하지 않나요?”“안 궁금해요.”이윽고 권하윤은 명품 가방에서 청첩장 한 장을 꺼내더니 유이안의 눈앞에 건네주었다.“저 현준이와 결혼합니다, 바로 3일 후에요.”“그... 정말 급하게도 하네요.”“유신 씨랑은 이혼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