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불빛 아래 성현준의 얼굴이 더욱 창백하고 난처해 보였다. 물러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저 여자가 내 와이프였는데. 어떻게 다른 남자랑 키스를 하고 있는 건지? 어떻게 저런 나른한 목소리로 다른 남자의 이름을 애타게 부를 수가 있는 건지? 저 여자는 내 여자였는데...그 순간,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당장 달려들어 강원영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마지막 남은 이성이 그를 붙잡았다.그래, 나랑 유이안은 이미 이혼했고 저 여자가 누구를 만나든 그건 그녀의 자유야.이내 그는 천천히 뒤돌아섰다. 문이 천천히 닫혔고 방 안의 두 남녀는 아무 것도 모른 채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사실 강원영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녀를 놓아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깊게 파고들었다. 정신을 잃을 듯한 키스에 그녀가 저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성현준이 떠난 뒤에도 두 사람은 한참 동안 키스를 더 나누었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고 그녀의 가는 허리를 어루만지며 다정하게 입을 열었다.“오늘은 우리 집에 가서 자요. 강윤이랑 같이.”진도가 너무 빠른 것 같았다.이제 막 시작한 사이인데 그의 집에 가서 자는 건 경우가 아니었다. 아무리 강윤과 같이 잔다고 해도 그렇지 아주머니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그러나 그녀와 헤어지기 싫었던 그는 집까지 그녀를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의 기분이 상할까 봐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 사무실을 나서면서 그가 그녀 대신 외투를 챙겨 살갑게 덮어주었다. 그의 자상함에 그녀는 어깨에 걸친 외투를 잡은 채 고개를 들어 환하게 웃었다.“고마워.”그가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뽀뽀했다. “서프라이즈 있어요.”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꽃을 선물해 줬는데 또 서프라이즈라니? 그녀는 꽃다발을 들고 그와 함께 아래층을 내려갔다.트렁크를 열자 그 안에 빨간 장미가 가득했다.가운데는 주얼리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고 그가 고개를 숙인 채 그녀를 쳐다보며
아파트 현관에 들어서고 강원영은 여전히 다정한 모습으로 유이안의 외투를 건네받고 그녀의 실내화를 가져다주었다. 유이안이 신발을 갈아 신는 동안 그는 또 유이안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가볍게 입을 열었다.“대추차 끓여놓을 테니까 먼저 씻고 있어요. 그리고 사야 할 물건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아요.”그 순간, 유이안이 잠깐 멈칫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그가 사야 할 물건이 무엇인지 깨달은 유이안은 몸을 흠칫 떨었다. 여자로서의 체면이 있으니 대충 얼버무리며 직접 묻진 않았지만 빨갛게 달아오른 양 볼이 모든 걸 설명해주고 있었다.옅은 홍조를 띤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며 이를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그윽한 눈빛으로 유이안을 바라보던 강원영은 갑자기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살포시 입을 맞추었다.대추차도, 피임 도구도, 원래의 계획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그 자리에 남은 건 남녀의 불타는 감정과 서로의 몸에 대한 갈망과 탐색뿐이었다...두 사람 사이의 첫 경험은 그렇게 침대 위에서 이루어졌다.강원영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했고 유이안은 그 열기를 온몸으로 감당하는 것이 너무나도 벅찼다. 다행히도 남자는 배려심이 많았고 끝마무리가 마냥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여자의 몸을 고려해 3라운드 만에 유이안을 순순히 놓아주었다...일이 끝난 후 그들은 함께 목욕하고 커피 한 잔을 나누었다.원래 강원영은 유이안의 집에 머무를 계획이었다.첫 경험이 끝나고 유이안을 쓸쓸한 집에 혼자 남겨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이안은 강원영의 생각처럼 나약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유카타 차림으로 강원영의 어깨에 살포시 기대며 담담히 속삭였다.“윤이가 잠에서 깨서 네가 보이지 않으면 겁을 먹을 거야. 그러니까 가봐.”강원영의 깊고 검은 눈동자가 은은한 조명 아래서 번뜩였다.그는 유이안의 손에 든 머그잔을 집어 들고 고개를 숙인 채 그녀에게 다시금 키스를 퍼부었다. 남자의 정력은 결코 바닥이 나지 않는 듯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거실에서
유이안이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요?”“넌 내 아내잖아.”그러나 유이안은 그를 노려보기만 할 뿐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한편, 성현준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뚫어지라 유이안을 바라보았다. 현재 그의 모습은 정말 낭패의 극치에 달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유이안에게 집착하는지는 성현준조차 알 수 없었다.이혼 후, 각자 새로운 애인을 찾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한참 동안 침묵이 흐르고 유이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이만 돌아가요. 그리고 오늘 일은 없던 일로 치고 둘 다 본적 없는 거로 해요.”그러나 성현준은 발로 문틈을 막으며 쉽게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남녀의 힘은 너무나도 분명했고 성현준은 결국 그녀의 집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하지만 막상 집안에 발을 들여도 결국 상처받는 사람은 성현준일 뿐이었다.조금 전, 유이안이 강원영과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비록 돌아가기 전, 강원영이 깨끗하게 관계의 흔적을 수습했지만 남녀 사이의 뜨거운 열기가 뒤섞인 공기는 쉽사리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 흐트러진 소파 자리는 성숙한 남녀라면 그 누구나 쉽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잠시 말문이 막힌 성현준이 눈시울을 붉히며 물었다.“유이안, 뭐가 그렇게도 급했어?”그러자 유이안은 성현준을 지나쳐 창가로 걸어가며 몸에 걸친 잠옷을 다시 한번 조였다. 금방 잠에서 깨어난 탓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다소 피곤해 보였다.“성현준 씨, 우린 이미 이혼한 사이에요. 게다가 헤어질 때 당신은 이미 권하윤과 몰래 사귀고 있었잖아. 이혼 후에도 전 당신에게서 한 푼도 받지 않았고 그중에는 심지어 마땅히 받아야 할 결혼 재산까지 있었어요... 충분히 체면을 세워줬는데 거절한 건 당신이었어요. 그런데 왜 집까지 찾아와서 제 한계를 건드리는 겁니까?”“널 좋아했어.”“그래요. 하지만 그것 역시 과거의 성현준이지 지금 같이 술과 재물에 흠뻑 젖어 있는 성현준이 할 말은 아니에요. 우리의 결혼은
성현준은 손에 쥐어진 작은 물건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그는 도무지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답답하고 숨통이 꽉 막히는 기분에 술을 빌려 애써 마음을 달래는 수 밖에 없었다. 이대로 밑바닥까지 추락해도 상관없었다.‘어차피 유이안도 떠나간 마당에 이제 누구와 사귀든 상관없지 않은가?’그렇게 성현준은 술집으로 향했다.한밤중의 술집은 아늑한 분위기를 자랑하고 있었고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여가수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쓸쓸한 영혼을 치유해 주었다...성현준은 가장 독한 술을 주문했지만 마음속의 불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그때, 구석에서 뜨겁게 키스하고 있는 한 쌍의 남녀가 눈에 들어왔다.그런데 그중 여자의 옆모습이 특히 유이안과 닮았다. 검정 스웨터 치마를 입고 남자의 목을 껴안고 몰입하여 키스하는 여인의 모습...이미 술에 취한 성현준은 몽롱한 눈빛으로 여자를 바라보다 연이어 마른 침을 삼켰다. 그렇게 성현준은 그 여인을 유이안으로, 옆의 남자는 바람남 강원영으로 착각하게 되었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 성현준은 다짜고짜 여자를 끌고 가더니 남자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강원영, 그 손 치워. 내 아내에게서 떨어지란 말이야.”이윽고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술집에 울려 퍼졌다.“당신 누구야? 미쳤어요?”그녀는 다급히 손발을 휘저으며 남자를 구하려 했지만 성현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눈에 불을 켜고 계속하여 남자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상대도 마냥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게 주먹이 오가며 두 사람은 점점 짐승처럼 상대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당신이 못 지킨 아내를 왜 여기에서 찾아?”남자의 주먹을 받고 성현준은 다시 한번 주먹을 휘둘렀다.순식간에 술집은 술병이 깨지는 소리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이성을 잃은 두 남자의 쌈박질에 도무지 말릴 수 없었던 옆 사람은 결국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었다.잠시 후, 경찰들은 불과 10분도 안 돼 술집에 도착했고 성현준과 그 남녀는 순순히 경찰을 따라 경찰서로
어쩌면 이것 또한 유이안에게 복수하기 위한 수단일지도 모른다.그렇게 성현준은 권하윤을 데리고 별장에서 밤을 보냈다. 과거 일찍이 사랑한 적이 있었기에 두 사람 모두 안방에 들어간 후에도 딱히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곧바로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상대의 몸을 탐하기 시작했다...성현준은 술을 마신 상태였기에 관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허무하게 끝나버렸다.하지만 그런데도 권하윤은 전에 느껴본 적 없는 만족감으로 황홀한 기분에 휩싸여 있었다. 드디어 이곳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 드디어 유이안을 대체하고 이 별장의 사모님이 되었다.소원이 이루어지자 권하윤의 마음은 말로 이룰 수 없이 부드러워졌고 성현준이 자리에 눕자마자 코 박고 잠이 들었음에도 화 한번 내지 않았다. 곧이어 그녀는 또 욕실에 가서 따뜻한 물수건을 짜서 남자의 시중을 들기 시작했다.권하윤은 성현준의 곁에 반쯤 꿇어앉아 다정하고 세심하게 남자의 몸을 닦아주었고 그의 팔을 들어 올리려던 찰나, 성현준의 손바닥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물건이 방바닥에 떨어졌다.눈부시게 반짝이는 작은 다이아몬드 반지.유이안의 결혼반지였다.그러나 유이안은 외과 의사로서 자주 수술에 들어가기 때문에 결혼반지를 거의 착용하지 않았고 반지는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새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하여 권하윤은 너무나도 큰 오해를 하고 말았다. 그녀는 성현준이 그녀를 위해 산 반지라고 생각하여 뛸 듯이 기뻐하며 자신의 약지에 반지를 주워 끼었다.조명 아래 반짝이는 반지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말로 이룰 수 없는 기쁨에 입꼬리를 잔뜩 끌어올렸다.그러나 기쁨도 잠시, 성현준의 잠꼬대가 권하윤의 꿈을 산산조각내고 말았다.“이안아.”뺨을 한 대 세게 맞은 것처럼 얼굴이 얼얼했지만 괜찮다. 권하윤은 이제 곧 성씨 가문의 사모님이 될 테니까. 성현준이 누굴 생각하고 있는지는 이제 상관없었다.권하윤은 손가락을 펴 애정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손가락에 끼워진 다이아몬드 반지를 바라보았다.마음속에 품어도 아프지 않
절정에 다다르고 성현준은 저도 모르게 유이안의 이름을 내뱉었다.“이안아.”...보름 후.가을의 향기가 물씬 풍기고 겨울이 찾아오기 시작했다.유이안은 소파에 앉아 논문을 읽고 있었다. 밝은 사무실에는 히터가 켜져 있어 따뜻한 온기가 몸을 감싸주었다. 책상 위에는 크리스털 꽃병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강원영이 선물한 꽃이 꽂혀있었다.요즘 강원영은 하루걸러 사무실에 찾아와 신선한 꽃으로 바꿔주곤 하는데 강원영의 말로는 한가해질 때마다 강원영을 떠올리게끔 하는 그의 수법이라고 한다.정말 유치하기 그지없군.하지만 강원영을 떠올릴 때마다 유이안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었다. 최근 연우의 병세 연구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이대로라면 이식자가 나타난다는 전제에서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유이안은 성모가 아니다. 그녀는 의사다.유이안이 한창 논문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을 때, 비서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원장님, 연우의 어머니가 원장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권하윤?”의도치 않은 불청객의 등장에 유이안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솔직히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권하윤은 환자의 가족이기에 그녀 역시 거절하기 어려웠다.조금 머뭇거리고 나서 유이안은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곧이어 권하윤은 윤기 어린 얼굴을 하고 사무실에 들어섰다. 아픈 아이의 엄마라기에 권하윤의 옷차림은 확실히 필요 이상으로 화려했다.비서가 문을 닫자 유이안은 이내 서류를 닫으며 고개를 들어 물었다.“무슨 일이시죠?”“자리는 권해주지 않는 건가요, 원장님?”“죄송하지만 제 사무실에는 환자 가족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없습니다.”...“저와 성현준의 관계가 어디까지 발전했는지는 궁금하지 않나요?”“안 궁금해요.”이윽고 권하윤은 명품 가방에서 청첩장 한 장을 꺼내더니 유이안의 눈앞에 건네주었다.“저 현준이와 결혼합니다, 바로 3일 후에요.”“그... 정말 급하게도 하네요.”“유신 씨랑은 이혼했어요?”
성현준의 손에는 청첩장이 쥐어져 있었다.보아하니 권하윤과 같은 목적인듯싶었다.불청객들의 연이은 등장에 유이안은 머리가 아픈 듯 소파에 기대어 이마를 짚었다.“성현준 씨, 청첩장을 주러 찾아온 거라면 한발 늦었어요. 당신 미래의 아내가 이미 줬으니까요. 왜, 권하윤 씨가 당신에게 말하지 않던가요?”그녀의 말에 잠깐 멈칫한 성현준은 그제야 비로소 권하윤을 발견했다.권하윤은 마음이 찔린 것인지 우물쭈물하며 성현준의 눈치를 봤다. 방금 이성준을 차단했는데 성현준이 튀어나오다니...유이안은 권하윤과 성현준을 번갈아 보더니 곧바로 그들의 상황을 훤히 꿰뚫어 보았다.권하윤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성현준은 권하윤이 부드럽고 자상한 여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권하윤은 정말 보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유신과 정식으로 이혼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성현준 몰래 또 다른 남자와 사귀고 있다. 그러나 유이안은 권하윤의 비밀을 폭로하지 않았다. 경찰도 아니고... 애초에 이건 성현준 본인이 선택한 길이다.성현준은 권하윤을 보면서 내심 불만이 쌓였지만 체면이 있으니 티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그는 일부로 유이안의 앞에서 권하윤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입을 열었다.“하윤이가 청첩장을 줬다고 하니 난 그냥 말만 하도록 하지. 나와 하윤이가 결혼하는 날, 축하주라도 한잔하고 가. 잊지 말고.”“참, 새로 사귄 남자 친구도 데려올 수 있어.”그러자 유이안은 담담하게 웃으며 답했다.“그럼요.”성현준은 무어라 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유이안은 두 사람의 악취미에 가담할 생각이 없었다. 하여 그녀는 비서를 불러 이제 그만 손님을 배웅해드리라며 당부했고 얼굴도 늘 냉랭하기만 할 뿐이었다.성현준은 유이안의 차가운 얼굴을 바라보며 마치 이혼 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유이안은 줄곧 냉담한 얼굴을 하고 있어 성현준은 그녀와 함께하며 단 한 번도 집안의 온기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사무실을 나설 때, 성현준은 권하윤의 다정함과 부드러움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문
성현준이 몇 마디 말을 내뱉고 이 일은 얼렁뚱땅 넘어간 셈이다....저녁 7시.성현준은 아직 병원에서 떠나지 않았고 약속한 시각이 점점 다가오는 것을 보며 혹여나 그 남자가 다시 전화할까 두려웠던 권하윤은 계속하여 성현준을 재촉했다.7시 반, 성현준은 마침내 미련 가득한 눈빛으로 병원을 돌아보며 떠날 준비를 했다. 떠날 때 그의 마음속은 온통 권하윤의 다정한 배려심이 가득했다.성현준이 떠나고 권하윤은 곧바로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연우는 다급히 움직이는 권하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깡마른 몸에서 가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엄마 또 나가세요?”그러자 권하윤은 몇 마디 대충 얼버무리며 상황을 모면했다.연우는 아픈 아이였다. 게다가 장기간 권하윤의 협박과 폭력 속에서 살다 보니 마음도 극도로 불안한 상태였다. 하여 엄마의 호된 꾸지람을 듣고도 연우는 그저 소파에 앉아 묵묵히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옆에 있던 간호사는 연우를 매우 동정했지만 그 누구도 권하윤을 뭐라 할 수는 없었다.이런 어머니를 만나다니, 불쌍하기도 하지....저녁 8시 정각.권하윤은 제시간에 호텔에 도착했다. 이성준은 문을 열고 권하윤의 옷차림을 훑어보았다. 겉은 베이지색 코트를 걸치고 있었는데 이성준은 알고 있다. 코트를 벗기면 그녀의 섹시한 옷차림이 드러난다는 것을. 이성준의 눈에는 남자의 매서운 눈길이 담겨있었고 그는 몸을 조금 기울이더니 이내 권하윤을 호텔에 들여보냈다...이윽고 두 사람은 말없이 일을 치기 시작했다.몇 번의 관계를 거친 후, 권하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이성준의 품에 쓰러졌고 슬픈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 이제 당신과 못 만나. 나 곧 결혼할 거야.”협탁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인 이성준은 한 모금 깊게 들이마신 뒤,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성현준이랑?”그 순간, 권하윤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권하윤은 결코 멍청한 여자가 아니다. 그녀는 곧바로 이성준이 그녀와 몸을 섞는 건 전부 성현준 때문이라는 것을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