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를 건네받은 그녀는 살며시 서류를 어루만졌다. 이것 때문에 그녀가 얼마나 많은 걸 견뎌내야 했는지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사실 그녀의 부모님은 성현준을 가만두려 하지 않았고 유이준은 성현준을 때리려고 했었다. 근데 그녀가 그들을 막아섰다. 오랜 시간 실망이 쌓이면서 이젠 그런 것이 무의미해졌으니까. 유이준은 이제부터 그가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유이준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유씨 가문은 더 이상 성현준과 얽힐 필요가 없고 앞을 보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치도 없는 사람 때문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허무할까?정확히 1분 후, 강원영은 그 서류를 낚아챘다 .“강원영.”그녀는 손을 뻗어 다시 빼앗아 오려고 했다. 사석에서의 모습은 병원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어리버리한 면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아직도 그녀가 고등학생이라는 착각이 들었다. 7년간의 결혼 생활로 마음은 다칠 대로 다쳤지만 다행히 그녀는 아직도 그의 기억 속의 그 유이안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녀에게 해장 약을 건네주며 챙겨 먹으라고 당부했다. 조금 어색했던 그녀는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이렇게 자상한 줄은 몰랐네.”창가에 다가가 커튼을 살짝 열던 그가 다시 뒤돌아서서는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내 와이프는 행복할 거예요. 난 직업도 안정적이고 시간도 많으니까 아이를 돌볼 수도 있고 등하교까지 책임질 수 있어요. 그러니 애 엄마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예요.”그의 뜻을 알아차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실에 단둘이 남은 채 이런 얘기를 하기에는 너무 어색할 것 같아서 말이다. 다행히 이때 강윤이 뛰어 들어와 어색한 분위기가 한결 나아졌다. 강원영은 자상한 남자였다. 적당한 거리 유지를 잘하는 사람이라 한 걸음 물러서는 것도 한 걸음 다가오는 것도 과하지 않고 적절했다. 그의 자상함과 배려심에 그녀는 조금도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은 이른 것 같은 생각이 들었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당신이 권하윤이랑 자고 싶어서 안달 난 건 아니고요?”그가 이를 악물었다.“강원영이 당신 데려다주는 걸 봤어.”“그래서 뭐요?”“뭐 문제 있어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 이혼했어요. 더 이상 법적으로 부부 사이 아니라고요.”“서로 체면은 세워주는 게 어때요?”...그는 한참 동안 그녀를 노려보았다. 구구절절 말을 한 건 그녀가 해명해 주길 바라서였다. 강원영과는 아무 사이 아니라고 다른 남자를 받아들인 적이 없다고. 그러나 그녀는 온통 짜증이 섞인 목소리였고 해명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사실 나도 뭐 당신한테 미련이 남아서 이러는 건 아니야.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그래. 근데 당신이 이렇게 빨리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길 줄은 몰랐어. 정말 아무런 감정도 남지 않은 모양이군.”정말 마음 같아서는 그한테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라고 한 소리 하고 싶었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손가락으로 향했다.“결혼반지도 다 뺐네.”“2년 전에 이미 뺐어요.”“당신이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죠. 하긴 바람이 난 사람이 와이프한테 관심이나 있겠어요? 반지는 강에 던졌어요. 되돌려받고 싶다면 가서 찾아봐요.”...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바쁜 인생은 계속되어야 하고 성현준은 인생에서 그저 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했다. 외래 진료센터의 홀에는 인파가 많이 몰려있었고 성현준은 멍 하니 그곳에 서 있었다. 갑자기 세상이 모두 멈춘 것처럼 끔찍하게 조용해졌다. 그는 시간을 보낼 일이 필요했고 외로운 마음을 달랠 일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심장이 텅 빌 것만 같았다. 얼마 후, 그가 병실에 나타났을 때 권하윤은 깜짝 놀랐다. 그가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그녀를 건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안색이 좋지 않은 그 모습에 권하윤은 간호사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는 그를 따라나섰다.차에 올라탄 후, 그의 안색이 조금 나아졌다. “왜 그래?”그의 얼굴
섹스가 끝난 뒤, 그는 계속할 생각이 없는 듯 바로 침대에서 내려가 욕실로 들어갔다.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며 얇은 이불로 몸을 감쌌다. 코끝은 여전히 땀으로 젖어 있었고 몸은 아직도 뜨거웠지만 그를 붙잡아둘 수가 없었다. 아이를 출산 후 몸매가 망가져서 그가 흥이 깨진 것은 아닌지라는 의심이 들었다.마음이 편치 않았다. 예전에 그녀는 그한테 여신 같은 존재였다. 얼마 후, 욕실 문이 열렸고 샤워를 마친 그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탄탄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이불로 몸을 감싼 채 침대에서 내려와 수건으로 그의 몸을 닦아주었다. 그와 다시 몸을 섞고 싶은 마음에 그를 유혹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녀를 밀어내고는 바지를 입으며 차갑게 말했다.“회사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가봐야 해. 다음에 해.”아무리 애를 써도 돌아온 건 남자의 무심한 말투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재떨이로 그의 머리를 내리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아직은 그럴 수가 없었다. 성현준의 아내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으니까.그녀는 가련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내가 뭐 잘못했어? 알려줘. 다음에는 고칠게.”여자의 뜻을 그는 모를 리가 없었다.약간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니 흥미를 잃게 되었다. 뭐든 조심스러워하는 그녀를 보며 재미가 없었고 방금 잠자리도 다시 하고 싶은 충동이 생길 만큼 황홀했던 것은 아니었다.그가 담담하게 거절했다.“다음에.”난감했지만 그녀에게는 억지를 부릴 자격이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가진 것도 없이 성현준한테 빌붙어 있는 신세니까. 그가 별 마음 없이 자신을 안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웃는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로비로 내려와 체크아웃을 하는데 앞뒤로 불과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직원들의 눈빛에 의아함이 가득했다.그걸 보면서 권하윤은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병원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녀는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고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나도 너랑 같이
말을 하면서 고개를 들어 그에게 키스했다.이번에는 그도 그녀를 거절하지 않았다. 두 입술이 자석처럼 달라붙어 얽히고설켰고 서로를 집어삼킬 듯한 진한 키스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남자한테 섹스와 사랑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그녀가 차에서 내린 후,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전처 생각뿐이었다. 지금 그한테 유이안은 내려놓을 수 없는 마음의 병이었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또 그녀를 원망하고 있다. ...한편, VIP 병실로 돌아온 권하윤은 병실 안이 텅 빈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연우의 심장병이 재발한 것이다. 현재 응급수술을 하고 있는 중이고 유이안이 직접 치료를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간호사가 권하윤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유이안이 연우의 주치의가 될 거라는 소식도 전해줬다. 권하윤은 연우를 성현준을 붙잡는 도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 됐든 자신이 배 아파 난 딸인데 마음이 아프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게다가 성현준은 연우를 무척 좋아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간호사를 따라갔다. 걸음걸이가 불안정하고 가는 목에 키스마크가 있는 걸 보고 간호사는 마음속으로 그녀를 경멸했다.딸이 이 지경이 됐는데 남자랑 섹스가 웬 말이냐고? 참, 어떻게 된 사람인 건지.잠시 후, 권하윤은 응급실 입구에서 애타게 기다렸다. 그녀는 성현준에게 문자를 보냈다. 연우가 병이 발작하여 지금 응급처치를 하고 있는 상황이고 시간이 되면 얼른 병원으로 와달라고 했다. 문자를 보낸 그녀는 몸에 힘이 풀렸다. 모든 것을 성현준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고 그를 떠난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도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한 시간 후, 응급실의 문이 열렸고 유이안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 수술복을 입은 그녀는 마스크를 쓴 채 눈동자만 드러내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는 의사로서 환자 가족에 대한 동정심도 있었고 전남편의 애인에 대한 차가움도 담겨있었다. 권하윤을 보니 유이안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그녀는 무심코 권하윤이
그가 앞으로 다가왔다. 권하윤은 긴장된 얼굴로 유이안을 바라보았다. 성현준이 방금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을까 봐 겁이 났고 자신이 이혼하지 않은 사실을 유이안이 폭로할까 봐 겁이 났다.그러나 그건 그녀의 쓸데없은 근심이었다. 그까짓 일에 유이안은 전혀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연우의 주치의가 된 이상 최선을 다해 아이를 치료해 줄 것이다. 그러나 심장이식이라는 게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었다. 담담한 유이안을 보고 권하윤도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유이안을 앞에 두고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성현준의 어깨에 기대어 연우의 상황을 얘기하며 눈물을 보였다.성현준은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응급실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불편했던 그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먼저 연우한테 가보라고 했다. 권하윤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복도에는 유이안과 성현준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그는 유이안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연우에게 수술해 줄 거라고 했다.“당신한테 방법이 있다는 거 알아. 연구센터에 기부가 필요하잖아. 1000억, 2000억 얼마든지 기부할 수 있으니까 연우한테 건강한 심장만 구해줘.”문득, 그녀는 권하윤이 유부녀라는 사실이 떠올랐다.마스크를 벗은 뒤 성현준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돈 많은 건 알겠는데요. 이러기에 앞서 그 여자가 정말 이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확인해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좋은 마음에서 일깨워 주었지만 그는 오히려 그녀의 뜻을 오해했다.“권하윤 말하는 거야? 당신이 왜 자꾸만 권하윤을 적대시하는지 모르겠어. 우리 결혼이 파탄 난 건 권하윤 때문이 아니야. 난 가족의 따뜻함을 느낄 수가 없었어. 당신이 조금만 시간을 내서...”망설이던 그가 차갑게 다시 입을 열었다.“당신 걱정이나 해. 강원영 그 사람한테 당하지나 말고.”“알려줘서 고마워요.” 그녀는 피식 웃고 자리를 떴다.성현준 당신, 언젠가는 후회하게 되겠지. ...VIP 병실 안,
그녀는 조금 부끄러웠다.“강원영.”핸드폰 너머로 그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소파에 가서 등을 기대고 앉더니 햇살 아래의 책상을 쳐다보았다. 완강한 생명력을 가진 생강꽃을 보고 있으니 사람도 새로운 피와 살이 생겨나는 것만 같았다.생강꽃, 이게 강원영의 낭만인 건가?...그날 저녁, 그녀는 유씨 가문의 별장으로 향했다. 붉게 지는 해가 별장을 온통 빨갛게 물들여 마치 산림의 불꽃 같았다.그녀의 차가 주차장에 도착하자 하인이 와서 차 문을 열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유이안은 피식 웃었다.“분명 뭐라고 하셨죠?”하인은 유선우가 말하는 모습을 흉내 냈다.“이 자식이 이제는 컸다고 그러는지 이렇게 큰일을 우리한테 참견하지도 말라니... 손해라도 보면 어쩌려고 그러는지.”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아주머니, 진짜 똑같은데요.”“아직도 농담할 여유가 있어요? 단단히 벼르고 계시는 것 같던데...”그 말에 그녀는 황급히 표정 관리를 했다.유선우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몇 마디 하고 나니 무의미한 것 같아서 손을 저었다.“이제부터 성현준 그놈은 없는 셈 치자. 그놈을 죽일 건지 그놈의 회사를 무너뜨릴 건지 말만 해. 나랑 이준이가 도와줄 테니까.”한쪽 소파에서 잡지를 보고 있던 유이준이 입을 열었다.“아버지, 지금은 법치 사회예요.”조은서가 유선우를 향해 눈을 흘겼다.“신경 쓰지 마. 말만 저렇게 하는 거니까. 예전에 성현준을 얼마나 마음에 들어 했니?”한참을 침묵하던 유선우가 말했다.“가난한 집안의 자식이라 안 그럴 줄 알았더니. 이렇게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 줄이야. 결혼한 지 몇 년 되었다고 다른 여자랑 바람을 피워?”우유 한 잔을 따르던 유이안이 피식 웃었다.“오래된 건 정리해야 새 사람을 만나지.”“새 사람이 강원영이야?”우유를 마시던 그녀는 하마터면 사레가 들 뻔했다.“아빠.”“오전에 강원영이 다녀갔어. 선물 말고도 그 사람 명의의 권성기술의 주식도 가지고 왔더라. 1조 6천억
“이모.”“이모...”아이의 애교에 녹아내리지 않을 수가 있나?“딱 하룻밤만이야.”강윤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내일 아침 아빠가 유치원에 데려다줄 거예요.”하룻밤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를 안은 채 그녀가 강원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올라가서 커피 한잔하고 가.”어두운 불빛 속에 남자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그가 다가와 강윤을 안고 유이안과 나란히 현관으로 향했다. 가로등에 비친 그림자를 보면 영락없는 세 식구였다. 강윤은 아주 얌전했다. 집으로 들어서자자마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유이안은 마음이 나른해졌다.그에게 커피를 끓여주면서 물었다.“아이가 늘 이렇게 순해?”그가 피식 웃으며 솔직하게 대답했다.“선배가 좋아서 선배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런 거예요. 평소에는 안 그래요.”그 말을 듣고 있던 그녀는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주방에서 커피머신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자 그 틈을 타서 그녀가 무심하게 물었다.“강윤이를 말하는 거야? 아니면 널 말하는 거야?”그가 못 들을 줄 알았는데 똑똑히 듣게 될 줄이야. 남자는 조용히 그녀의 뒤로 다가왔고 뜨거운 숨결을 그녀의 귓가에 뿜으며 다정하게 물었다.“뭐라고 했어요? 선배가 좋아서 선배한테 잘 보이려고 노력하냐고요?”“강원영.”그녀는 이런 분위기가 어색하기만 했다.남자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그녀의 옆에 기대어 중얼거렸다.“선물은 내가 보낸 거예요. 난 보수적인 남자라고 했죠. 그 주식들은 일단 내가 가지고 있을게요. 한 달 후에 처분하고 원금이랑 수익 선배 통장에 넣어줄게요.”커피머신은 여전히 요란스럽게 작동하고 있었다. 말을 하려고 고개를 돌리는데 그가 고개를 숙인 채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입술은 점점 가까워졌고... 곧 닿을 것만 같았다. 목석처럼 무뚝뚝한 남자도 아니고 그가 바로 그녀의 가는 허리를 끌어안으며 그녀에게 키스했다. 조심스럽게 다가오던 입술이 어
사람 마음을 아주 들었다 놨다 그는 그녀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단도직입적인 그의 대시가 솔직히 무서웠다. 어떤 남자가 1조 6천억이나 되는 주식을 내놓는단 말인가? 유이준의 말에 의하면 이런 공격적인 남자를 바보 같은 누나가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누구를 정복할 마음은 없다. 강원영이라는 남자는 온통 수수께끼뿐이었다. 다른 여자를 꼬실 때도 이러는 건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수단이 있는 건지 한번 보고 싶었다.솔직히 말해 이 남자한테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 강윤이 이곳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렇지 않으면 선을 넘을지도 모른다. 욕정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수치심을 느끼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관계를 가지는 건 너무 성급한 일인 것 같다. 그날 밤, 강윤은 그곳에 남았고 강원영은 늦은 밤에 집으로 돌아갔다.한밤중에 잠에서 깬 그녀는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고 품에 안겨있는 강윤은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말랑말랑한 아이가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으니 왠지 모르게 행복했다. 새벽 3시쯤,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조심히 침대에서 내려왔다. 창문 쪽으로 다가가 한쪽 귀퉁이의 커튼을 젖히고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빗속에서 강원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운전석 창문을 반쯤 내린 채 완벽한 옆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잘생긴 사람들을 많이 봐왔어도 지금처럼 충격을 받은 적은 없었다. 비 내리는 밤에 그려진 한 폭의 유화처럼 또렷한 이목구비가 그녀의 눈에 오롯이 담겼다. 그는 조용히 앉아서 가끔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담배를 피웠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바람에 더 이상 볼 엄두가 나지 않아 급히 커튼을 닫았다. 다음 날 아침, 아침 먹거리와 함께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강원영이 보낸 것이었다.[꽃미남의 서비스입니다.]문자를 보며 저도 모르게 마음이 설렜다. ...강원영 때문에 그녀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전에 수술을 마치고 병원을 돌아다니던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입원동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