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성현준은 갑자기 후회되기 시작했다.그는 심지어 당장이라도 눈앞의 합의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마저 들었다. 이렇게 하면 그는 여전히 유이안과 부부로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이것 또한 그의 상상일 뿐이다. 성현준과 유이안의 결혼생활은 이미 종점에 이르렀다.유이안도 성현준을 원망했으니 동영상을 공개했겠지.하지만 반면, 성현준의 그윽한 눈빛을 보며 유이안은 그저 역겨울 뿐이었다. 하여 그녀는 한치의 미련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냉혹하게 입을 열었다.“이제 서명했고 기자 회견 참석해줄게요.”인정사정없는 유이안의 모습을 보니 성현준은 괜히 마음 한구석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만 같았다.그러나 기자 회견에서 유이안이 두 사람은 이제 부부가 아니라는 것을 발표할 때 성현준은 분명 그녀의 눈가에 희미하게 맺힌 눈물을 봤었다. 그 순간 성현준은 또 이혼을 선택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게 되었다. 그렇게 수없이 반복적으로 후회하며 이제 성현준 본인도 유이안에 대한 그의 감정은 과연 사랑일지 원망일지 알 수 없었다......이번의 기자 회견으로 권성기술회사 주가는 다시금 안정적인 수치를 기록하게 되었다.유이안도 성공적으로 이혼 증명 서류를 발급받게 되었다. 떠나기 직전, 성현준은 결국 참지 못하고 유이안의 곧은 뒷모습을 향해 말을 꺼냈다.“이안아, 같이 저녁이나 먹자.”“헤어진 기념으로.”...그러나 유이안은 그저 우스웠다.그녀는 엘리베이터 안에 서서 점점 내려가는 빨간 숫자를 올려다보며 긴 머리를 쓸어넘겼다.“당신 말처럼 우리 둘은 이미 헤어졌는데 다 헤어진 마당에 무슨 밥을 먹어요?”그러나 성현준 역시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그는 그윽한 눈빛으로 유이안의 손목을 움켜쥐고 다시 한번 말을 꺼냈다.“너 분명 이혼만 하면 연우 치료 해주겠다고 약속했어.”“성현준 씨, 내가 정말 악덕 의사였다면 권하윤과 그 딸이 아직도 제 병원에서 지낼 수 있었을까요? 게다가 그렇게 좋은 병실에서? 만약 내가 정말 일말의 양심도 없는 악덕 의사였다면 지금
나무 밑에 훤칠한 모습의 남자가 우뚝 서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에는 연민이 가득했다. 그가 허리를 굽히고 유이안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유이안 씨.”강원영이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앞에 있는 남자를 조용히 바라보던 그녀는 그가 강원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이 사람이 왜 여기 있는 거지? 왜 시도 때도 없이 내 앞에 나타나는 걸까?그녀는 많이 취한 상태였다. 술에 취한 사람은 아무 말이나 한다고 하더니 그를 빤히 바라보던 그녀가 직설적으로 입을 열었다. “나 이혼 도장 찍었어. 현준 씨가 그러더라. 너랑 잤냐고... 죽을 만큼 좋았냐고?”강원영은 화도 나고 우습기도 했다. 그러나 약간 설렜던 건 사실이다. 남자라면 그게 정상이니까. 그는 여자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나중에 느끼게 해줄게요.”말을 마친 그가 그녀를 안아 올리고 자신의 차를 향해 걸어갔다.다행히 그녀는 반항하지 않았다. 그녀는 차에 앉아 이내 잠이 들었다. 안전벨트를 매주면서 그녀의 손에 있던 이혼신고서도 살며시 내려놓았다.희미한 불빛 속에서 그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다.그녀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수한 여인 같았다. 그러나 이 순수함과 달리 사실 그녀는 B시에서 가장 큰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었고 세계 최고의 외과 의사이기도 했다. 남자로서 성현준이 어떤 마음인지 모르는 건 아니다. 유이안이라는 여자와 7년을 살았는데 어떤 남자가 아무렇지 않게 이혼 도장을 찍을 수 있겠는가? 성현준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다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맞지 않는 사람들일 뿐. “강원영.”갑자기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그의 귀에 정확하게 꽂혔다. 더 이상 참기 어려웠던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뜨거운 입술을 그녀의 입술에 대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베어 물었다. 짧은 키스였다. 이혼을 했으니 더 이상 꺼릴 필요는 없지만 그는 유교적인 남자였다.남녀 사이는 꽃다발과 선물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
서류를 건네받은 그녀는 살며시 서류를 어루만졌다. 이것 때문에 그녀가 얼마나 많은 걸 견뎌내야 했는지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사실 그녀의 부모님은 성현준을 가만두려 하지 않았고 유이준은 성현준을 때리려고 했었다. 근데 그녀가 그들을 막아섰다. 오랜 시간 실망이 쌓이면서 이젠 그런 것이 무의미해졌으니까. 유이준은 이제부터 그가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유이준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유씨 가문은 더 이상 성현준과 얽힐 필요가 없고 앞을 보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치도 없는 사람 때문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허무할까?정확히 1분 후, 강원영은 그 서류를 낚아챘다 .“강원영.”그녀는 손을 뻗어 다시 빼앗아 오려고 했다. 사석에서의 모습은 병원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어리버리한 면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아직도 그녀가 고등학생이라는 착각이 들었다. 7년간의 결혼 생활로 마음은 다칠 대로 다쳤지만 다행히 그녀는 아직도 그의 기억 속의 그 유이안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녀에게 해장 약을 건네주며 챙겨 먹으라고 당부했다. 조금 어색했던 그녀는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이렇게 자상한 줄은 몰랐네.”창가에 다가가 커튼을 살짝 열던 그가 다시 뒤돌아서서는 뜨거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내 와이프는 행복할 거예요. 난 직업도 안정적이고 시간도 많으니까 아이를 돌볼 수도 있고 등하교까지 책임질 수 있어요. 그러니 애 엄마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예요.”그의 뜻을 알아차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실에 단둘이 남은 채 이런 얘기를 하기에는 너무 어색할 것 같아서 말이다. 다행히 이때 강윤이 뛰어 들어와 어색한 분위기가 한결 나아졌다. 강원영은 자상한 남자였다. 적당한 거리 유지를 잘하는 사람이라 한 걸음 물러서는 것도 한 걸음 다가오는 것도 과하지 않고 적절했다. 그의 자상함과 배려심에 그녀는 조금도 불편함이 없었다. 그러나 아직은 이른 것 같은 생각이 들었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당신이 권하윤이랑 자고 싶어서 안달 난 건 아니고요?”그가 이를 악물었다.“강원영이 당신 데려다주는 걸 봤어.”“그래서 뭐요?”“뭐 문제 있어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 이혼했어요. 더 이상 법적으로 부부 사이 아니라고요.”“서로 체면은 세워주는 게 어때요?”...그는 한참 동안 그녀를 노려보았다. 구구절절 말을 한 건 그녀가 해명해 주길 바라서였다. 강원영과는 아무 사이 아니라고 다른 남자를 받아들인 적이 없다고. 그러나 그녀는 온통 짜증이 섞인 목소리였고 해명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사실 나도 뭐 당신한테 미련이 남아서 이러는 건 아니야.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그래. 근데 당신이 이렇게 빨리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길 줄은 몰랐어. 정말 아무런 감정도 남지 않은 모양이군.”정말 마음 같아서는 그한테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라고 한 소리 하고 싶었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손가락으로 향했다.“결혼반지도 다 뺐네.”“2년 전에 이미 뺐어요.”“당신이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죠. 하긴 바람이 난 사람이 와이프한테 관심이나 있겠어요? 반지는 강에 던졌어요. 되돌려받고 싶다면 가서 찾아봐요.”...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바쁜 인생은 계속되어야 하고 성현준은 인생에서 그저 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했다. 외래 진료센터의 홀에는 인파가 많이 몰려있었고 성현준은 멍 하니 그곳에 서 있었다. 갑자기 세상이 모두 멈춘 것처럼 끔찍하게 조용해졌다. 그는 시간을 보낼 일이 필요했고 외로운 마음을 달랠 일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심장이 텅 빌 것만 같았다. 얼마 후, 그가 병실에 나타났을 때 권하윤은 깜짝 놀랐다. 그가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그녀를 건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안색이 좋지 않은 그 모습에 권하윤은 간호사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는 그를 따라나섰다.차에 올라탄 후, 그의 안색이 조금 나아졌다. “왜 그래?”그의 얼굴
섹스가 끝난 뒤, 그는 계속할 생각이 없는 듯 바로 침대에서 내려가 욕실로 들어갔다.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며 얇은 이불로 몸을 감쌌다. 코끝은 여전히 땀으로 젖어 있었고 몸은 아직도 뜨거웠지만 그를 붙잡아둘 수가 없었다. 아이를 출산 후 몸매가 망가져서 그가 흥이 깨진 것은 아닌지라는 의심이 들었다.마음이 편치 않았다. 예전에 그녀는 그한테 여신 같은 존재였다. 얼마 후, 욕실 문이 열렸고 샤워를 마친 그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탄탄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이불로 몸을 감싼 채 침대에서 내려와 수건으로 그의 몸을 닦아주었다. 그와 다시 몸을 섞고 싶은 마음에 그를 유혹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녀를 밀어내고는 바지를 입으며 차갑게 말했다.“회사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가봐야 해. 다음에 해.”아무리 애를 써도 돌아온 건 남자의 무심한 말투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재떨이로 그의 머리를 내리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아직은 그럴 수가 없었다. 성현준의 아내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으니까.그녀는 가련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내가 뭐 잘못했어? 알려줘. 다음에는 고칠게.”여자의 뜻을 그는 모를 리가 없었다.약간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니 흥미를 잃게 되었다. 뭐든 조심스러워하는 그녀를 보며 재미가 없었고 방금 잠자리도 다시 하고 싶은 충동이 생길 만큼 황홀했던 것은 아니었다.그가 담담하게 거절했다.“다음에.”난감했지만 그녀에게는 억지를 부릴 자격이 없었다. 아이를 데리고 가진 것도 없이 성현준한테 빌붙어 있는 신세니까. 그가 별 마음 없이 자신을 안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웃는 얼굴을 할 수밖에 없었다. 로비로 내려와 체크아웃을 하는데 앞뒤로 불과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직원들의 눈빛에 의아함이 가득했다.그걸 보면서 권하윤은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병원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녀는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고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나도 너랑 같이
말을 하면서 고개를 들어 그에게 키스했다.이번에는 그도 그녀를 거절하지 않았다. 두 입술이 자석처럼 달라붙어 얽히고설켰고 서로를 집어삼킬 듯한 진한 키스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 남자한테 섹스와 사랑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그녀가 차에서 내린 후,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전처 생각뿐이었다. 지금 그한테 유이안은 내려놓을 수 없는 마음의 병이었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또 그녀를 원망하고 있다. ...한편, VIP 병실로 돌아온 권하윤은 병실 안이 텅 빈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연우의 심장병이 재발한 것이다. 현재 응급수술을 하고 있는 중이고 유이안이 직접 치료를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간호사가 권하윤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유이안이 연우의 주치의가 될 거라는 소식도 전해줬다. 권하윤은 연우를 성현준을 붙잡는 도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 됐든 자신이 배 아파 난 딸인데 마음이 아프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게다가 성현준은 연우를 무척 좋아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간호사를 따라갔다. 걸음걸이가 불안정하고 가는 목에 키스마크가 있는 걸 보고 간호사는 마음속으로 그녀를 경멸했다.딸이 이 지경이 됐는데 남자랑 섹스가 웬 말이냐고? 참, 어떻게 된 사람인 건지.잠시 후, 권하윤은 응급실 입구에서 애타게 기다렸다. 그녀는 성현준에게 문자를 보냈다. 연우가 병이 발작하여 지금 응급처치를 하고 있는 상황이고 시간이 되면 얼른 병원으로 와달라고 했다. 문자를 보낸 그녀는 몸에 힘이 풀렸다. 모든 것을 성현준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고 그를 떠난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도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한 시간 후, 응급실의 문이 열렸고 유이안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 수술복을 입은 그녀는 마스크를 쓴 채 눈동자만 드러내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는 의사로서 환자 가족에 대한 동정심도 있었고 전남편의 애인에 대한 차가움도 담겨있었다. 권하윤을 보니 유이안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그녀는 무심코 권하윤이
그가 앞으로 다가왔다. 권하윤은 긴장된 얼굴로 유이안을 바라보았다. 성현준이 방금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을까 봐 겁이 났고 자신이 이혼하지 않은 사실을 유이안이 폭로할까 봐 겁이 났다.그러나 그건 그녀의 쓸데없은 근심이었다. 그까짓 일에 유이안은 전혀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 연우의 주치의가 된 이상 최선을 다해 아이를 치료해 줄 것이다. 그러나 심장이식이라는 게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수술이 아니었다. 담담한 유이안을 보고 권하윤도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유이안을 앞에 두고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성현준의 어깨에 기대어 연우의 상황을 얘기하며 눈물을 보였다.성현준은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응급실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불편했던 그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먼저 연우한테 가보라고 했다. 권하윤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복도에는 유이안과 성현준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그는 유이안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연우에게 수술해 줄 거라고 했다.“당신한테 방법이 있다는 거 알아. 연구센터에 기부가 필요하잖아. 1000억, 2000억 얼마든지 기부할 수 있으니까 연우한테 건강한 심장만 구해줘.”문득, 그녀는 권하윤이 유부녀라는 사실이 떠올랐다.마스크를 벗은 뒤 성현준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돈 많은 건 알겠는데요. 이러기에 앞서 그 여자가 정말 이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확인해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좋은 마음에서 일깨워 주었지만 그는 오히려 그녀의 뜻을 오해했다.“권하윤 말하는 거야? 당신이 왜 자꾸만 권하윤을 적대시하는지 모르겠어. 우리 결혼이 파탄 난 건 권하윤 때문이 아니야. 난 가족의 따뜻함을 느낄 수가 없었어. 당신이 조금만 시간을 내서...”망설이던 그가 차갑게 다시 입을 열었다.“당신 걱정이나 해. 강원영 그 사람한테 당하지나 말고.”“알려줘서 고마워요.” 그녀는 피식 웃고 자리를 떴다.성현준 당신, 언젠가는 후회하게 되겠지. ...VIP 병실 안,
그녀는 조금 부끄러웠다.“강원영.”핸드폰 너머로 그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소파에 가서 등을 기대고 앉더니 햇살 아래의 책상을 쳐다보았다. 완강한 생명력을 가진 생강꽃을 보고 있으니 사람도 새로운 피와 살이 생겨나는 것만 같았다.생강꽃, 이게 강원영의 낭만인 건가?...그날 저녁, 그녀는 유씨 가문의 별장으로 향했다. 붉게 지는 해가 별장을 온통 빨갛게 물들여 마치 산림의 불꽃 같았다.그녀의 차가 주차장에 도착하자 하인이 와서 차 문을 열었다.“아가씨, 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세요.”유이안은 피식 웃었다.“분명 뭐라고 하셨죠?”하인은 유선우가 말하는 모습을 흉내 냈다.“이 자식이 이제는 컸다고 그러는지 이렇게 큰일을 우리한테 참견하지도 말라니... 손해라도 보면 어쩌려고 그러는지.”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아주머니, 진짜 똑같은데요.”“아직도 농담할 여유가 있어요? 단단히 벼르고 계시는 것 같던데...”그 말에 그녀는 황급히 표정 관리를 했다.유선우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몇 마디 하고 나니 무의미한 것 같아서 손을 저었다.“이제부터 성현준 그놈은 없는 셈 치자. 그놈을 죽일 건지 그놈의 회사를 무너뜨릴 건지 말만 해. 나랑 이준이가 도와줄 테니까.”한쪽 소파에서 잡지를 보고 있던 유이준이 입을 열었다.“아버지, 지금은 법치 사회예요.”조은서가 유선우를 향해 눈을 흘겼다.“신경 쓰지 마. 말만 저렇게 하는 거니까. 예전에 성현준을 얼마나 마음에 들어 했니?”한참을 침묵하던 유선우가 말했다.“가난한 집안의 자식이라 안 그럴 줄 알았더니. 이렇게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 줄이야. 결혼한 지 몇 년 되었다고 다른 여자랑 바람을 피워?”우유 한 잔을 따르던 유이안이 피식 웃었다.“오래된 건 정리해야 새 사람을 만나지.”“새 사람이 강원영이야?”우유를 마시던 그녀는 하마터면 사레가 들 뻔했다.“아빠.”“오전에 강원영이 다녀갔어. 선물 말고도 그 사람 명의의 권성기술의 주식도 가지고 왔더라. 1조 6천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