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영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가볍게 몸부림쳤다. “조진범?”그녀의 다급한 반응과 달리, 남자는 느긋해 보였다.그는 잘생긴 얼굴을 그녀의 얇은 어깨에 얹었다. 숄의 부드러운 촉감이 그에게 안락함을 주었다. 그는 팔을 더 단단히 감으며 그녀를 가까이 끌어안았고 목소리에는 더욱 낮고 거친 성숙한 남자의 매력이 깃들어 있었다.“나랑 B 시로 돌아가서 살자. B 시에는 최고의 병원과 학교가 있어. 아현이도 그곳에서 자라는 것이 가장 유리할 거야... 어때?”말을 마친 그는 검은 눈동자로 정안영을 가만히 응시했다.정안영은 속눈썹을 드리우고 나지막이 말했다.“먼저 나 좀 놔줘요.”하지만 남자는 그렇게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당겨 두 사람의 몸은 과거 부부였을 때처럼 다정하게 밀착되어 있었다...정안영은 더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려 애쓰며, 창밖의 푸른 잎을 바라보며 조용히 진심을 털어놓았다.“앞으로 나는 아이를 데리고 여기서 살 거예요.”조진범은 추측했다.“어머님 때문이야?”정안영은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더욱 차갑게 변했다.“진범 씨, 이 세상에 저에겐 가족이 별로 없어요. 엄마와 언니, 그리고 내 아이뿐이에요. 남은 인생 동안 나는 욕심부리지 않고 그들과 함께 잘 지내고 싶어요. 그러니 나는 당신과 함께 B 시로 돌아가지 않을 거고, 함께 살지도 않을 거예요.”“우린 이미 이혼했어요.”“당신은 정지혜와의 혼약이 끝났다고 말하겠지만 그건 당신들 둘 사이의 문제예요.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니까, 당신과 그녀가 헤어졌다고 해서 내가 당신과 다시 같이할 일은 없을 거예요... 진범 씨, 내 말 이해했어요?”...조진범이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그녀의 뜻은 분명했다. 그와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참을 수 없이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안고 낮고 섹시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처음 엄마가 된 정안영은 자는 시간도 아까웠다.조금만 지나도 딸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침실 안의 조명이 어두워지자 조진범은 소파에 가서 누웠다. 그는 가볍게 눈을 감으며 나지막이 말했다.“빨리 자. 밤에 내가 아현을 안아다 줄게.”정안영은 거절하려고 했지만, 말을 꺼내기도 전에 조진범은 이미 잠든 것 같았다.어두운 불빛 속에서 그는 소파에 조용히 누워 한쪽 팔을 아기 침대 위에 올려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 그 부드러운 흔들림에 정안영의 마음은 먹먹해졌다.사람의 마음이란 결국 살로 이루어진 것이다—조진범이 진아현을 얼마나 아끼고 자신에게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그녀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들 사이의 관계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아이로 이어진 관계는 ㅁㅁ았다. 어떻게든 그와 잘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그들 사이에는 일종의 경계가 있어야 했다... 예를 들어 그가 아이를 보고 싶다면 아이가 조금 더 클 때까지 기다렸다가 매주 두 번씩 데려가는 것이다.정안영은 마음이 복잡해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한밤중에 진아현이 깨어나 아주 낮은 소리로 두어 번 울었다... 조진범은 너무 피곤했던 건지 깨지 않았다. 정안영은 일어나 아기를 달래고 기저귀를 갈아준 뒤 젖을 먹였다. 그러자 아기는 만족한 듯이 아기 침대에서 다시 잠들었다.이렇게 착한 아기라면 누구의 마음이 녹아내리지 않을까. 정안영은 아기 침대를 붙들고 오랫동안 딸애를 바라보았다.잠자리에 들려다 정안영은 조진범이 아무것도 덮지 않은 채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방 안에는 서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기에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얇은 양모 담요를 가져와 그에게 덮어주려 했다. 그녀를 가까이 오게 하려고 조진범이 일부러 잠든 척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그녀가 담요를 덮어주려고 가까이 다가갔을 때, 조진범의 한 팔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그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다음 순간, 그녀는 뜨거운 남성의 품에 안겨 그의 몸과 밀착되었다.정안영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어둠 속에서 그를
진안영은 자신이 조금 흔들렸다는 걸 인정했다.조진범 같은 남자가 모든 일과 체면을 내려놓고 그녀와 함께 출산하고 산후조리를 도우며, 밤낮 없이 아이를 돌보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반달 동안 진안영은 거의 고생도 하지 않았고, 몸도 많이 회복됐다.솔직히 말해, 이런 남자의 다정함은 어느 여자라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진안영도 마찬가지였다.조진범과 얼굴을 맞대고 그의 품 안에서 그의 체온을 느끼며, 그가 속삭이는 달콤한 말을 듣고 있는데 어떻게 아무런 느낌도 없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진안영은 여전히 이성을 유지하고 살짝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지금은 좋아하지 않아요.”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조진범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입을 맞추려 했다.이번에는 진안영이 그를 저지했다. 그녀는 하얀 손으로 그의 입술을 막으며, 낮은 목소리로 그를 밀어냈다.“진범 씨, 자꾸 이러면 나 이사 갈 수밖에 없어요. 당신이 볼 수 없는 곳으로요.”조진범은 그녀의 표정을 바라보며, 그녀가 장난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그는 조금 실망했다. 이제야 그는 진심으로 그녀와 부부가 되어 아이를 키우며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는데.그가 멍하니 있는 틈을 타 진안영은 재빨리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아침부터 그녀는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조진범은 모를 리 없었지만, 그는 굳이 드러내지 않고 뒤의 일들을 처리했다. 그는 진안영의 맞은편 집을 사서 진안영과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육아 전문가팀을 그곳에 배치했다. 그뿐만 아니라 B 시에 있던 도우미 아주머니도 남겨 두어 진안영을 위해 매일 보양식을 끓이게 했다... 다른 것들도 조진범은 하나하나 세심하게 챙겼다.그가 이런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정은영은 팔짱을 끼고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참으로 강압적인 아빠 같으니라고!’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조진범, 이제 와서 이런 걸 해봤자 뭐 하겠어?”만약 이전에 그가 진안영에게 조
조진범이 차 문을 열고 나섰다. 조진범의 단정하고 고상한 모습은 형형색색의 네온 불빛 아래서 더욱 빛났다. 이 비서는 조수석에서 내려 조진범 곁으로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조 대표님, 들어가시죠. 회장님과 정씨 집안 분들이 모두 와 계십니다.”조진범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조용히 계단을 올랐다.길고 화려한 클럽 복도 위로 내려오는 크리스탈 조명이 일행의 그림자를 부드럽게 감싸며 은은하게 반짝였다. 매니저가 나서서 두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여깁니다, 조 대표님.”조진범은 안쪽을 바라보았다. 조진법의 부모님과 정씨 가족들이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분위기는 성벽처럼 차갑고 단단하게 느껴졌다. 테이블 위에는 몇 가지 음식이 놓여 있었으나 아무도 식사할 마음이 없는 듯했다.이 순간 조진범이 등장하자 조은혁 부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정지혜의 가냘픈 몸은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정지혜는 문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신과 결혼할 뻔했던 그 남자를 바라보며 조진범이 C성에 갔던 긴 시간 동안 자신을 전혀 그리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과의 혼약을 파기하려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무너졌다.정지혜는 계속해서 조진범을 바라보았다. 조진범이 들어와 앉는 모습을 눈으로 따라가며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고였다.문이 부드럽게 닫혔다.조진범은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와인 잔을 들어 정씨 부모님께 경의를 표하며 차분히 사과했다. 정지혜에게 미안하다고, 이 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정지혜의 부모님은 여전히 탐탁지 않다는 눈빛으로 조진범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조진범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조진범은 사업가였고 오늘 저녁의 이 자리 역시 사실상 사업을 논하는 자리였다. 조진범은 홀로 술을 한 잔 들이켜고 나서 거액의 현금 보상과 함께 20조 원 상당의 계약을 정씨 가족에게 제안했다.정지혜의 부모는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이 계약은 정씨 가족에게는 커다란 유혹이었고 몇백억 원의 현금 보상까지 더해져 있었으니 조씨 집안이 이 정도로 배려해 준 것은 충
정지혜는 취해 있었다.정지혜는 몸매가 드러나는 섹시한 원피스를 입고 두 팔을 벌려 캠핑카 앞을 막으며 마지막으로 차 안에 있는 남자를 붙잡으려 애썼다.검은 롤스로이스 안에서 조진범은 조용히 바깥에 서 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조진범은 사실 정지혜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결혼할 뻔한 사이였고 비록 이제 모든 것이 끝났어도 조진범은 차에서 내려 정지혜를 한 번쯤은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정지혜는 기뻐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정지혜는 참지 못하고 조진범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뻗어 조진범을 만지려 했지만 조진범의 눈 속에 담긴 차가운 무관심이 정지혜를 멈추게 했다. 정지혜는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살짝 저으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정지혜는 어두운 밤 속의 저택을 한 번 바라보고 이내 시선을 다시 조진범의 얼굴로 돌렸다. 정지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다시 이곳으로 이사한 거죠? 진범 씨, 사실 처음부터 당신은 진안영 씨와 헤어질 생각이 없었던 거죠? 당신의 자존심 때문에 진안영 씨가 당신에게 실망할까 봐 두려웠던 거잖아요. 이제 진안영 씨가 당신의 아이를 낳았으니 당신은 아이를 핑계로 떳떳하게 진안영 씨에게 다가가서 다시 잡으려 하는 거고요. 하지만 우리 결혼할 예정이었잖아요. 나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바로 C성으로 가서 그 사람과 며칠이나 함께 있었다니.”“조진범 씨, 정말 웃기지 않나요? 저는 그저 당신들 사이의 희생양일 뿐이에요.”...조진범은 고개를 숙여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한 대를 뽑아 불을 붙였다.연한 청색의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자 조진범은 정지혜를 보며 가볍게 말했다.“정지혜, 너 많이 취했어. 기사에게 너를 집에 데려다주라고 할게.”“저 안 취했어요.”정지혜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조진범을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정말 당신을 좋아해요! 진범 씨, 왜 나를 받아주지 않는 거예요? 왜 당신이 저버렸던 여자를 다시 잡으려고 하는 거죠? 진범 씨, 당신은 내가 정신이 온전치 않다고 생각하
조진범은 말했다.“아기 엄마가 당분간 돌아오지 않겠대요. C성에서 더 머물고 싶다고 하더군요. 내가 두 곳을 오가야 할 것 같아요... 가끔은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요.”고용인은 미소 지으며 동의했다.조진범은 잠시 앉아 생각에 잠긴 뒤 천천히 2층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진범은 업무를 미리 처리해 두고 금요일에 C성으로 가서 아기와 아이 엄마를 잠시라도 보려는 생각이었다. 이틀만 머무르더라도 말이다.새벽 두 시.서재에서 나온 조진범은 고요하게 깊어지는 밤의 정적을 느꼈다.조진범은 저택의 긴 복도를 천천히 걸어가 안방 문을 조용히 열었다. 그 안은 조진범과 진안영이 함께 살던 곳이었다. 조진범은 침실 한가운데에 서서 살며시 넥타이를 풀었다.조진범은 상사병이라도 걸린 듯 마음이 미칠 것만 같았다.조진범은 몰랐다. 조진범이 C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정지혜가 먼저 그곳에 갔다는 것을.C성.진안영은 카페에 앉아 있었다. 6월의 날씨, 진안영은 흰색 셔츠에 은은한 회색 얇은 울 숄을 걸치고 있었다. 출산 후의 연약함이 몸에 남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성숙한 여인의 풍미가 느껴졌다.진안영의 차분한 모습과 비교하니 정지혜는 오히려 더욱 초췌하고 창백해 보였다.정지혜는 유명 브랜드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저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정지혜는 고급스럽게 커피를 홀짝이며 커피 원두의 산지와 출처에 관해 설명했다. 진안영은 그런 정지혜의 태도를 차분히 들어주고 있었다.잠시 후, 정지혜가 말을 마쳤다.정지혜는 맞은편의 진안영을 바라보며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진안영 씨, 당신도 잘 알겠지만, 학벌이든 외모든 집안이든 저는 당신보다 모두 뛰어나요... 저는 당신보다 진범 씨에게 훨씬 더 어울리는 여자예요. 그러니 진안영 씨도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내 약혼자에게 더 이상 얽매이지 마세요.”...진안영은 조용히 커피를 저었다.정지혜의 몰아붙임에도 불구하고 진안영은 반박하지 않고 부드럽게 말했다.“정 아가씨 말씀이 맞아요. 저는
조진범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신경 씌어.”정지혜는 믿을 수가 없었다.진안영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신경 쓰면서 감싸고 있는 조진범을 정지혜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바라봤다.조진범은 고개를 돌려 진안영을 보며 말했다.“안영아 먼저 들어가. 잠깐 얘기하고 집으로 갈게.”‘집으로 갈게?’정지혜는 어리둥절 해졌다.‘조진범이 지금 진안영이 사는 곳을 집이라 말했다고? 그럼 한때 약혼자였던 나는 뭐야?’정지혜는 떠나는 진안영을 자상하게 부축까지 해주는 조진범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조진범이 얼마나 진안영을 만나고 싶어 했는지 얼마나 그녀를 소중하게 여기는지 정확히 표현되었다.그럼 정지혜는 뭐야?진안영이 떠나고 나서야 조진범의 시선이 정지혜에게 돌아갔다.담배를 피울 수 없는 커피숍이라 조진범은 담뱃갑을 탁자 위에 놓고 정지혜를 냉정한 표정으로 쳐다봤다.B시에서 보여줬던 따뜻함이 완전히 뒤바뀐 것 같았다.정지혜가 C시로 찾아온 건 조진범의 심기를 건드린 것임을 알 수 있었다.조진범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여긴 왜 왔어? 우린 이미 파혼했고 서로 건드리지 말기로 하지 않았었나? 안영이는 왜 찾아온 거야?”“그래서 신경 쓰여요?”아까부터 왜 이것만 집요하게 물어보는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조진범의 대답은 한결같았다.어쩌면 B시에 있을 때 조진범이 정지혜를 대하는 태도가 온화해서 그녀의 착각을 불러일으켰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이젠 더는 정지혜한테 그 어떤 미련도 남기게 하고 싶진 않았다 조진범은 솔직하게 말했다.“네가 생각하는 게 맞아. 안영이와 재결합할 생각이야. 안영이는 아직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겠지만 그래도 언젠간 내 옆에 다시 돌아올 거야. 그러니까 더는 나한테 미련 가지지만. 미안해.”정지혜는 이성을 잃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진안영한테 무슨 짓을 할지 안 두려운가 봐요? 그리고 당신의 한 달밖에 안 된 귀여운 딸까지.”말이 끝나기 바쁘게 조진범은 정지혜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여자라고는 한평생 때
우유처럼 하얀 피부와 보들보들한 머리카락 때문에 진아현은 더욱 귀엽게 느껴졌다.진안영은 불안한 마음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조진범은 쉰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안영아, 우리 부부야.”진안영은 등을 돌리며 말했다.“아닌지 오래됐어요.”조진범은 뒤에 천천히 다가가 진안영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다정하게 말했다.“정지혜 때문에 아직도 화가 난 거야? 우린 이미 파혼했어. 그 여자가 한 말들은 마음에 담아 두지 마. 이젠 그 여자랑 엮일 일이 없어. 물론 그전에도 아무 일 없었지만.”진안영은 무의식적으로 조진범을 거절했다.하지만 손을 떼지 않고 한쪽 손으로 진안영의 품에 있는 아기를 놀아주는 조진범 때문에 진안영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리며 심장이 두근거렸다.부부였던 둘은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잘 알고 있었다.조진범은 얼굴을 그녀의 목덜미에 가까이 대며 섹시한 목소리로 속삭였다.“안영아, 솔직히 너도 아무 느낌 없는 거 아니지? 헤어지고 나서 한 번도 내 생각을 했던 적 없어? 필경 우린 부부였는데...”조진범은 점점 더 뻔뻔해졌다.참다못한 진안영은 그를 밀쳐냈다.조진범은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진안영의 품에 있던 진아현을 빼앗아 안고 풀린 단추 사이를 흘겨보며 말했다.“욕실에 가서 정리하고 와.”진안영은 자존심이 상했다.그녀는 옷매무시를 다듬으며 욕실에 들어가 수도꼭지를 틀었다.침실에서 조진범은 진아현을 품에 안고 놀아주고 있었다.금방 배불리 먹고 난 아현이는 까르륵거리며 웃기도 하고 옹알거리며 아빠와 무언가의 교류를 하기도 했다.일 초 전까지도 방긋거리던 아현이가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며 울음을 터뜨리더니 조진범의 바지에 오줌을 쌌다.비싼 셔츠와 바지가 모두 엉망이 되어버렸다.대성통곡을 하던 아이는 갑자기 또 기분이 좋은 듯 아빠 품에서 두 다리를 흔들어 대며 장난쳤다.조진범은 화도 나고 웃기기도 해서 아현이의 엉덩이를 두 번 때렸다.마침 욕실에서 나오던 진안영이 조진범이 아이를 때리는 모습을 보고 나무라
진석은 예의 있게 조은혁을 호칭했다.“아버님.”조은혁은 그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았고 가볍게 기침하며 조은희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먼저 올라가라. 네 엄마가 네가 돌아오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으니 아마 할 얘기가 있을 거다.”조은희는 처음엔 가만히 있었고 진석은 부드럽게 손을 내밀어 그녀를 밀면서 말했다.“먼저 올라가.”조은희는 그제야 움직였고 조은혁 옆에 다가갔다. 집에서 막내딸인 조은희는 가장 애교가 많았고 조은혁을 안고 인사한 후 아쉬운 듯 올라갔다.조은혁은 작은 딸을 안자 화난 기분이 어느 정도 풀리더니 진석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앉아서 얘기해.”진석은 즉시 자리에 앉아 조은혁에게 차를 따랐고 조은혁은 일부러 그를 자극하는 듯한 말을 던졌다.“눈치가 빠르네.”진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아버님 앞에서는 실수하지 않으려 합니다.”조은혁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그는 이제 두 사람이 다시 함께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여전히 아버지로서 딸의 미래를 걱정했다.“은희와 만나고 싶다면 지금은 조건은 없어. 하지만 요구 사항은 몇 가지 있네.”진석은 겸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조은혁은 진석의 태도를 만족스러워했지만, 하는 말은 전혀 봐주지 않았다.“첫째, 결혼을 하게 되면 은희는 너의 집에 가지 않고 결혼식과 생활은 모두 B시에 있어야 해. 둘째, 조씨 가문은 금전적으로 부족함이 없으니 결혼 때 충분한 축의금을 줘서 편하게 생활하게 할거야. 하지만 네가 결혼 후 벌어들인 모든 돈은 은희와 공동 재산으로 해야 하며 은희가 어떤 일을 하고 싶어도 간섭할 수 없어. 또한 아이를 가질지 안 가질지 은희의 선택을 존중해야 해.”이 조건들은 모두 합리적으로 보였지만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는 어려운 일이다.그렇지만 진석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할 수 있습니다.”조은혁은 더 이상 그를 어렵게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진석을 보며 잠시 마음을 정리했다.사실 그도 같은 도시에서 사업을 하며 진석이 처음부터 얼마나 힘들었을
하지만 조은희는 그 답변에 만족하지 않았고 눈물이 맺힌 채 애처롭게 다시 물었다.“결혼했어요? 다른 사람이 있어요? 아직도 저를 좋아해요?”그녀가 물었을 때 처음보다 조금 더 고집스러워졌고 그 모습에 진석은 마음이 아팠다.진석은 그들이 헤어졌을 때 조은희가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소녀였다는 것을 기억했다.하지만 지금 조은희는 이렇게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질문을 던지며 진석에게 묻고 있었다. 그녀가 점점 용감해질수록 그의 마음은 더 아팠다.진석은 더 이상 조은희를 놀리지 않았다.그는 조은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답했다.“결혼 안 했고 내 옆에는 다른 사람이 없어. 약혼녀는 다리 치료를 마친 후 올 상반기에 결혼할 거야. 아직도 좋아해. 많이 좋아해.”...조은희의 눈가는 더욱 붉어졌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그게 제가 진석 씨와 사귀겠다는 뜻은 아니에요. 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요.”진석은 한 걸음 다가가 그녀 눈가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조은희는 눈물이 많은 여린 여자가 되었다. 그는 예전 조은희가 항상 웃고 뒤에서 그를 끌어안으며 ‘진 선생님’이라고 달콤하게 불렀던 기억을 떠올렸다.그녀를 좋아하는 것 그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그때 그는 자신이 자격이 없다는 걸 알았지만, 여전히 그 감정을 시작했다. 그 후 조은희는 해외로 떠났고 진석은 B시에 남았다. 그 뒤 1년 동안 진석은 조은희가 아무 말 없이 떠난 것에 대해 그녀를 미워하기도 했었다. 자신을 먼저 유혹한 것도 조은희였기에 더 화가 났다.하지만 그가 나중에 생각하니 조은희는 겨우 20살이었다.진석은 조은희의 첫사랑이었고 그녀의 청춘 그 전부였다. 게다가 그녀는 진심으로 진석을 사랑했기에 그녀를 비난할 수 없었다.진석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울지 마. 알겠지? 우리의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먼저 학교 관계자들과 저녁을 먹어야지. 도서관도 지어야 하잖아. 그곳도 우리가 갔던 곳이었지.”그는 조은희가 대답하기 전에
순간 조은희의 생각이 멈추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조은희는 진석의 의도를 알 수 없었고 그가 굳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이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미 진석은 그녀를 차에서 이끌어 내리고 있었다.학교에서 준비한 식당은 학교 근처에 있었고 과거에 조은희가 진석과 함께 와본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별도로 방을 예약하지 않았었다.익숙한 장소를 다시 찾으니 묘한 감회가 밀려왔다.진석과 조은희는 나란히 안으로 들어섰다. 키가 185cm인 남자와 170cm인 여자는 잘생긴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의 조합으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들 사이의 과거를 아는 학교 관계자들은 자연스럽게 몇 마디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웠다.조은희는 약간 불편한 기색을 띠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어린 시절엔 철이 없었죠.”반면 최근 몇 년간 사업을 통해 단련된 진석은 여유로운 미소로 담담하게 응대했다.“과거의 인연을 다시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것으로 보여요.”그 말이 나오자 학교 관계자들은 그 의미를 바로 알아챘다. 진석이 조은희 때문에 온 것임이 분명했다. 그 1억이 전부 조은희 덕분이었기에 학교 관계자들은 일부러 조은희를 진석의 옆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조은희에게 음료만 권하면서 농담을 건넸다. “잠시 후 진석이 취하시면 조은희가 집에 데려다줘야겠어.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날 수도 있잖아.”조은희는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려 했지만, 탁자 아래로 내려간 그녀의 손이 진석의 손에 잡혔다.진석의 손길은 매우 부드러웠고 남녀 간의 감정이 담긴 것 같지 않은 마치 어른이 아이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듯 따스한 느낌이었다.조은희의 붉은 입술이 약간 떨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후 손을 빼냈고 진석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그는 학교 관계자들에게 술을 따라주며 먼저 한 잔을 마셨다.교장은 여전히 예전의 그 교장이었고 진석의 이런 모습을 보고 깊은 감회에 잠긴 듯 말했다.“많이 변했구나.”감상적인 분위
그날 밤 조은희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 후 며칠 동안 그녀는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조은혁은 그 시간 동안 새로 들인 취미인 거북이들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박연희는 그 모습을 보며 농담을 던졌다. “늙으니까 이런 거나 만지고 있지.” 그날 밤 조은혁은 거북이들을 모두 방생하며 자신이 아직 늙지 않았음을 증명하려 들었다. 심지어 한 마리 거북이 등에 ‘진석’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으며 괜히 화풀이도 했다. 박연희는 그 모습을 보며 유치하다며 혀를 찼다. 조은희는 이 모든 일을 몰랐다. 그녀는 그저 아버지가 며칠째 자신에게 집에만 있지 말고 좀 나가보라며 걱정하고 있는 것만 알았다. 일주일이 지나며 휴가가 끝났고 조은희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녀는 대학에서 미술학과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림 수업을 맡고 있었다. 가끔 그녀는 자신이 진석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었지만 딱히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일하는 게 나쁘지는 않았다. 저녁 해 질 녘이었다. 조은희는 차 열쇠를 챙겼다. 차를 몰고 가 간단한 간식을 사서 집에 돌아와 드라마를 보며 먹을 계획이었다. 그녀의 일상은 단순했고 굳이 그것을 깰 생각도 없었다. 며칠 전에 그 일은 그냥 우연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진석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조은희의 얼굴은 노을빛에 물들어 더욱 맑고 투명해 보였다. 그녀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차 문을 열려던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은희야.” 그 목소리는 진석이였다. 조은희는 천천히 돌아섰고 그곳에 서 있는 진석을 보았다. 그는 몇몇 교직원들과 함께 기부에 관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조은희는 학교의 오래된 도서관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한 기부를 논의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재회에 조은희는 순간적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진석의 눈빛은 깊고도 복잡했다. 이 학교는 그들이 과거에 함께 있었던 곳이었
휴게실에서 조은희는 진안영의 품에 안겨 억눌린 채로 울고 있었다. 진안영은 그녀의 부드러운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낮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좋아한다면 내가 대신 가서 말해줄게요.” 조은희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빠가 언니를 대역죄인이라고 할 거예요.” 진안영은 잠시 멈칫한 뒤 부드럽게 말했다. “진범 씨가 도와줄 거예요.” 조은희는 진안영의 품에 더욱 몸을 기댄 채 계속 울었지만 오늘이 조우찬의 첫돌 날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 조금만 울고 말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눈물을 흘리기 마련이니까. 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이 온화하고 점잖은 사람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진안영은 그가 누군지는 몰라도 자기 남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문 열어볼게요.” 진안영이 문을 열었을 때 예상대로 문밖에는 진석이 서 있었다. 진안영은 그와 눈을 마주쳤지만 아무 감정 없이 그대로 서 있었다가 조용히 말했다. “두 분이 얘기하세요.” 진석은 고개를 끄덕였고 진안영은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휴게실 안은 여전히 조은희의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그녀는 왜 이렇게 슬픈 걸까. 다시 그 사람을 만나는 게 이렇게 슬픈 일일까? 아니면 이 몇 년 동안 계속 슬픔에 잠겨 있었던 걸까? 진석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5년 동안 떨어져 지낸 그녀에게 다가갔다. 사실 그들이 처음 함께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첫 만남 이후 바로 헤어졌으니까. 조은희는 그때 겨우 18살의 어린 소녀였고 5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많이 성숙해졌지만 여전히 그때의 소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언니...” 조은희는 그를 품에 안으며 애교를 부렸다. 처음엔 진안영인 줄 알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진안영의 허리는 이렇게 강건하지 않았다. 분명히 남자의 허리였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름답고 온화한 듯하면서도 차가운 기운을 풍기
다음 해 8월. 조우현과 방유설의 아기가 첫돌을 맞았다. 방유설은 조우현에게 아들을 낳아주었고 그 아이의 이름은 조우찬으로 지어졌다. 이 이름은 큰아버지인 조진범이 지어준 것이었고 방유설은 이 이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한편 조진범과 진안영의 막내아들의 이름은 조우진이었다. 조우찬과 조우진, 이 두 아이는 조씨 가문의 차세대 남자아이들이었다. 하지만 가문에서 첫 아이는 여전히 진아현이었다. 현재로서는 유일무이한 작은 공주님으로서 이 작은 소녀는 조은희 고모를 따라다니는 걸 좋아했다. 올해로 세 살 반이 된 진아현은 곧 유치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조우찬의 돌잔치 날 조은희는 여전히 진아현을 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예상치 못한 옛사람을 마주쳤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해 그녀가 타국으로 떠난 이후로 가끔 스쳐 지나갈 뿐 이렇게 제대로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 몇 년이 지났을까. 조은희는 차마 생각하기조차 두려웠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 흐른 듯했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 벌써 4, 5년이 된 것 같았다. 진석은 옆에 아무도 없이 홀로 서 있었다. 그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행사장의 중앙에서 다른 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조씨 가문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예전의 일은 잊은 듯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은희 진아현의 손을 잡고 있었고 저절로 눈물이 고였다. 진아현은 고개를 들어 고모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모, 저 사람 좋아해요?” “아니야.” 조은희는 순간 당황하며 빠르게 대답했다. 하지만 진아현은 그 말을 믿지 않는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럼 왜 자꾸 그 사람만 보고 있어요? 물론 잘생겼긴 하지만 여자애들은 좀 더 절제해야 해요.” 조은희는 잠시 놀라며 물었다. “어디서 그런 걸 배웠어?” 진아현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아빠가 그랬어요! 아빠가 항상 엄마한테 말했어요. 잘생겼어도 자기만 보면 안 된다고. 여
유이안의 말이 끝나자 조씨 가문 사람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박연희였다. 그녀는 서둘러 유이안에 물었다. “유설이 상태는 괜찮아?” 유이안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외숙모, 걱정하지 마세요! 유설 씨 상태는 좋아요. 그냥 조금 놀란 것 같아요. 우현이가 안에서 곁에 있어 주고 있어요.” 박연희가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서 조은혁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뜻밖에 아이라니. 그게 좋은 거지! 좋은 거야.” 두 사람의 부부 사이는 원래도 좋았지만 부모라면 누구나 손주를 보고 싶어 하는 법이다. 게다가 조우현과 방유설의 외모가 워낙 출중하니 그 아이 역시 틀림없이 예쁠 거라는 생각에 조은혁은 그저 상상만으로도 격동되었다. 방유설을 닮은 귀여운 딸일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한참 지난 후 조우현이 방유설을 부축하며 나왔다. 방유설은 설탕물을 조금 마신 덕분에 정신을 차렸지만 집에 돌아가 며칠은 충분히 쉬어야 했다. 특히 임신 초기 3개월 동안은 모든 일을 미루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뜻밖에 찾아온 아이였지만 방유설은 그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아직 평평한 아랫배를 감싸고 다른 손으로는 조우현의 목을 끌어안으며 마음속 깊이 행복이 가득 차올랐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 방유설도 한 번쯤은 행복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행복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꿈에서조차 감히 바랄 수 없을 정도의 행복이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조우현이 깊은 애정을 담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목소리가 약간 잠긴 채 말했다. “유설아,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어.” 결혼한 지 오래됐지만 조우현은 가끔은 철없고 유치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성숙했고 갈수록 더욱 성숙해졌다. 가끔 방유설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우현은 젊은 나이에 결혼한 편이었고 자신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모두 그녀에게 쏟아부은 것 같다고. 밤에 문득 잠에서 깨어날 때면 그는
몇 달 후 가을 10월쯤.방유설이 주연한 《청홍》이 대히트를 치며 영화 글러브 최우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시상식 당일 날 조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모여 방유설을 응원하고 있었다. 진안영은 그녀가 부담을 느낄까 봐 다음에 받으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의 말을 계속 전했다. 방유설은 매우 감동했다. 진안영이 갓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마친 후 이렇게 와서 자신을 응원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방유설은 진안영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난 이미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상을 받았어요.” 진안영은 원래 차분한 성격인데 방유설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너는 우현이랑 있으면 사람이 이렇게 활발해져! 우현이가 사람을 잘 챙긴다고 네 아주버님이 자주 칭찬하셔.” 방유설은 조금 부끄러워하며 작은 목소리로 진안영과 얘기했다. 조은희는 사탕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평소에 연기하면서 다이어트해도 이럴 때는 사탕 하나 드세요. 나중에 여우주연상 받고 저혈당으로 쓰러지면 안 되잖아요.” 방유설은 사탕을 받아서 입에 넣었다. 우유사탕이 입안에서 달콤하게 녹았다. 조은희는 살짝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딱 봐도 언니예요! 다른 여배우들보다 언니가 훨씬 이뻐요.” 조우현은 여동생을 흘깃 보며 말했다. “이건 외모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 외모만 보고 결정되면 긴장감이 없잖아.” 조은희는 달콤한 사랑을 떠먹은 기분에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이때 최우수 남자주연상이 발표되었고 다른 영화의 남자 주연이 받게 되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박도원이었다. 그는 국내에 없어서 촬영 감독이 대신 상을 받으며 발언 중 여러 번 방유설을 언급했다. 갑자기 설원 커플 팬들이 들썩이며 이 장면을 모든 플랫폼에 퍼뜨렸다. 설원 커플 팬클럽에서 활동 중인 팬들은 102만 명에 달한다. 그렇게 인기 있는 커플이었다. 조우현은 아내의 직업을 존중하는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그저 코를 머쓱할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방유설은 가장 떠들썩한 설날을 보냈다. 3월쯤 그녀는 조우현과 결혼했다. 그녀의 웨딩드레스와 베일은 무려 3미터 길이였고 어르신들은 베일이 길수록 결혼이 오래 지속된다고 했기에 조우현은 3미터 길이의 베일을 디자인하게 했다. 그는 그녀에게 평생을 함께할 거라고 약속했다. 교회 종소리가 울리자 방유설은 조진범의 손에 이끌려 천천히 조우현에게 다가갔다. 이제부터 그들은 하나가 되었고 그의 가족도 그녀의 가족이 되어 함께 기쁨과 고난을 나누게 되었다. 10여 미터의 거리. 그 길은 마치 그들이 걸어온 4년과 닮아 있었다. 순백의 제단 앞에서 조진범은 방유설을 동생에게 넘기며 가볍게 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 대해라.” 조우현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베일 너머로 방유설을 바라보았다. 오늘에 그녀는 순백의 모란꽃 같았다. 조우현은 부드럽게 방유설의 베일을 올리며 그녀에게 그의 눈을 바라보게 하며 결혼식을 마치려 했다. 그들은 이 감동적인 순간을 함께 목격할 것이고 잠시 후 서약을 마치면 그들은 진정한 부부가 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백발이 될 때까지 그것이 그가 그녀에게 약속한 평생의 로맨스였다.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그들의 감정은 깊었고 후회는 없었다! 방유설은 연예인이었기 때문에 생중계가 이루어졌고 그녀는 생중계 수익은 모두 산간 지역의 아이들에게 기부했다. 네티즌들은 광고비를 통해 많은 수익을 올렸고 한 번의 생중계에서만 160억 정도의 이익을 얻었다. 네티즌들은 생중계를 보며 신나서 토론했다. [와! 조우현의 큰형도 잘생겼네.] [너무 아쉬워. 결혼을 너무 일찍 했어.] [여동생도 엄청 이쁘네! 이 가족은 다들 왜 이렇게 훈훈하지?] [저런 부모님이라니. 부러워!] 조씨 가문에 대한 댓글이 잠잠해지고 이번에는 유씨 가문으로 넘어갔다. [YS 그룹 대표도 너무 잘생겼잖아!] [영국에 모델 같아. 혼혈인가?] [100% 순수 본토! 얼굴이 완벽할 뿐!]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