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영은 조진범을 바라보았다.깜깜한 어둠 속에서 침실 소파에 누워있는 조진범의 윤곽만 보일 뿐이었다. 8월 말이라 날씨가 좀 쌀쌀했지만 조진범은 얇은 담요 한 장만 덮고 있었다.진안영의 머릿속에는 진은영이 했던 말이 계속 맴돌았다.‘내가 아직도 조진범을 사랑한다고?’머리가 복잡한 진안영은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렸다.어둠 속에서 조진범의 나지막하고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잠 안 오면 우리 다른 것 좀 할래?”조진범이 정말 뻔뻔하다고 생각한 진안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뒤숭숭한 마음에 욕실에 가서 세수나 할 생각으로 몸을 일으키던 찰나 단단한 팔에 눌린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이내 조진범은 진안영의 옆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게 진안영을 꽉 끌어안았다.진안영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진범 씨!”어둠 속에서 조진범은 그녀를 안고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한숨을 쉬며 말했다.“안영아, 우리 한 침대에 누워본 지 오래됐어.”조진범은 진안영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꽉 끌어안고 고개를 들어 콧날이 닿을 만큼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더불어 뜨거운 숨결까지 휘감기며 사람을 떨리게 했다.진안영은 눈을 내리깔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왜일까요?”짧은 네 글자에 진안영 자신마저도 참을 수가 없었다.그러니까 왜 이 시점에 지난 일을 다시 꺼낸 것인지 본인조차 이해할 수가 없었다.이러면 자신이 여전히 조진범을 신경 쓰고 있고 아직도 아쉬움이 남아있다는 걸 증명하는 꼴이 되어버렸다.진안영은 조진범이 아무리 과거에 자신한테 큰 잘못을 했어도 요즘 자신과 아이를 보살핌으로써 그에 대한 보상은 다 받았다고 생각했다.심지어 조민희는 진안영한테 수혈까지 해줬었다.진안영의 이 네 글자는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한동안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진안영은 조진범한테 안긴 채 가만히 있었다.조진범은 진안영이 말하기 난처해한다는 것도 알고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아쉬움이 자신으로 인한 감정 때문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조진범은 아무 말
오전 9시 조진범은 진안영과 함께 아현이의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차에 탄 뒤 조진범은 몸을 돌려 뒤에 앉은 진안영과 딸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몇 마디 당부했다. 진안영의 대답에도 조진범은 곧바로 시동을 걸지 않고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나와 함께 B시로 돌아가면 안 돼? 어머니를 방문하고 싶다면 우리 함께 오면 되잖아. 안영아, 나는 매일 너와 아이랑 함께 있고 싶어. 우리 재결합하자!”진안영은 가볍게 웃다가 이내 무표정으로 돌아왔다.조진범은 진안영이 말을 피하지 못하게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밤새 생각하고도 마음이 안 바뀌었어?”예전 같으면 아무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겠지만, 어젯밤 그 일 때문에 진안영은 대답하기 망설여졌다.진안영은 가늘고 흰 손가락으로 아이의 볼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조금 더 생각해 볼게요.”조진범은 음탕한 목소리로 말했다.“남자의 청춘에도 한계가 있어.”진안영은 퉁명스럽게 말했다.“다른 사람을 찾으면 되잖아요.”조진범은 가볍게 웃었다.그 웃음 속에는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기쁨이 섞여 있었다.조진범은 진안영의 말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진안영은 화가 나서 더는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이후 차 안에는 침묵만 흘렀고 조진범도 운전에 집중하느라 더는 진안영을 놀리지 않았다.병원에 도착한 후 차를 멈춘 조진범은 몸을 돌려 진안영을 보며 강아지 놀리듯 말했다.“예전에는 몰랐는데 귀여운 구석이 있네.”진안영은 조진범을 외면하며 아이를 안고 차에서 내렸다.조진범은 낮게 웃으며 진안영이 힘들지 않게 아이를 받아 안았다.뒤편 주차장에 정지혜가 멍하니 서 있었다.주일마다 정지혜는 몰래 조진범을 따라 C도시로 갔다.정지혜는 조진범이 진안영을 지극히 보살피는 것도 봤고 가정의 따뜻함을 만끽하는 것도 봤다.어젯밤에도 아파트 밑에서 지키다 새벽에 침실의 불이 켜졌다가 꺼진 것도 봤다.정지혜는 조진범과 진안영이 또다시 부부가 되었
붉은 피가 조진범의 이마를 타고 콧등을 지나 차 보닛에 떨어졌다.순간 세상이 멈춘 듯 오직 조진범의 피 떨어지는 소리만 들려왔다.조진범은 손바닥을 보닛에 대고 열심히 몸을 일으키려 노력했지만 도저히 힘을 쓸 수가 없었다.결국 조진범은 쓰러진채 눈을 천천히 깜빡이며 그의 아내와 아이를 바라보았다.조진범의 눈동자와 시선 속에는 그의 세계가 담겨있었다.진안영은 몸을 돌려 피범벅에 쓰러져 있는 조진범을 바라보며 이름조차 부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얼어붙어 눈만 쳐다봤다.조진범이 눈을 깜빡이는 그 순간마다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고 한발씩 다가가는 이 길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진범 씨, 죽으면 안 돼요.’‘진범 씨, 나 아직 당신을 용서하지 않았어요.’‘진범 씨, 아현이 이제 겨우 100일이에요. 아이가 크는 걸 직접 봐야죠. 우리 아현이의 순간순간을 함께 지켜봐야죠. 우리 아직… 재결합도 못 했잖아요.’마침내 진안영은 조진범의 옆에 다가왔다.진안영은 아이를 안고 손을 뻗어 조진범의 몸을 흔들며 주변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119! 누가 119 좀 불러 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누군가 즉시 전화를 걸며 진안영을 위로했다.진안영은 아이를 껴안고 끊임없이 조진범의 이름을 불렀다.“구급차가 곧 올 거예요! 잠들면 안 돼요. 진범 씨 잠들지 말아요.”조진범은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머리는 어지럽고 몸은 부서지는 듯이 아팠다.조진범은 어딘가 파열된 것처럼 고통스러웠지만 울고 있는 진안영을 보자 마음이 더 아파져 왔다.조진범은 오랫동안 진안영이 우는 걸 본 적이 없었다.더욱이 이 눈물은 자신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었다.그는 손을 뻗어 진안영의 얼굴을 만져주고 싶었지만 헛수고였다.조진범의 얼굴에는 씁쓸한 옅은 미소가 퍼졌다.‘안영아, 울지 마. 네가 울면 마음이 아파.’진안영의 눈물이 끊임없이 조진범의 얼굴에 떨어졌다.그녀는 한 손으로 조진범의 손을 꼭 쥐고 생명의 마지막 버팀목이라도 되길 바라며 온기를 나눴다.정지혜는 몸
기다리는 시간은 항상 길게 느껴지는 법이다.온 가족이 수술실 앞을 지키며 모두 희망이 담긴 간절한 눈빛으로 위쪽에 밝게 켜져 있는 불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이 순간만큼은 어린 진아현도 무언가를 감지한 듯 조우현의 품에 안긴 채, 두 눈을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말똥말똥한 검은 두 눈에는 평소와는 달리 물기가 서려 있었다.한편, 초조해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진안영은 줄곧 눈 한번 깜빡이지 않았다.다른 이의 권유에도 그녀는 한사코 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았고 몇 시간 내내 수술실 문 앞에 서서 안에 있는 남자를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부풀어 오른 눈이 시큰거리고 몸이 휘청일 때쯤, 안내 등이 꺼지고 수술실 문이 활짝 열렸다. 이윽고 집도의가 천천히 걸어 나오더니 마스크를 벗고 조씨 가족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었다.“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비록 비장을 제거했지만 대표님 앞으로의 생활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그 소식에 조씨 가족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진안영은 순간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지만 다행히 조은혁이 부축해준 덕분에 간신히 몸을 지탱할 수 있었다.조은혁은 워낙 며느리를 아끼고 사랑하는지라 그는 금전적인 능력을 이용하여 조진범의 VIP 병동 옆에 따로 방을 하나 얻어서 진안영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마련해주었다.30분 후, 그들은 마침내 조진범을 만날 수 있었다.방금 의식을 되찾았는지라 아직 완전히 깨어난 건 아니지만 조진범은 눈을 뜨자마자 진안영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를 찾았다.그러자 진안영은 천천히 앞으로 다가와 그의 손을 꼭 잡아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나 여기 있어요.”그리웠던 목소리에 조진범이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이윽고 진안영의 붉은 눈꼬리가 눈에 들어왔다. 조진범은 진안영의 손을 잡으려고 애썼지만 몸이 너무 허약하여 안간힘을 써도 손을 들 수가 없었다. 현재의 그는 말을 꺼낼 힘조차 없었고 목소리는 듣기 거북할 정도로 완전히 갈라져 버렸다.“아이는
정지혜의 아버지, 정상철도 덩달아 애원하기 시작했다.상당히 거북한 화면이었다.그리고 조은혁은 눈물을 쏟아내는 두 사람을 내려다보며 피식 냉소를 터뜨렸다.“내가 놓아주면, 정지혜는 진범이를 놓아준답니까? 안영이와 아이를 놓아주겠어요? 하물며 제가 정지혜를 용서해줘도 검찰은 절대 용서해주지 않을 겁니다.”단호한 조은혁의 말에 김유리는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뭐? 조씨 가문의 합의서를 손에 넣어도 정지혜는 무죄로 석방할 수 없단 말인가?충격을 견디지 못한 김유리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미친 듯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닌데? 그 변호사는 분명 당신들의 합의서만 있으면 지혜는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그러자 조은혁은 침착한 목소리로 담담히 입을 열었다.“내가 들어올 때부터 당신들은 지금까지 내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지금은 괜찮은지 한 번도 묻지 않았어. 당신들에게 중요한 건 오직 합의서뿐이라고. 미리 말해두는 데 조씨 집안에서 합의해줄 일 없으니까 그렇게 알아. 나한테 무릎 꿇어도 소용없어. 난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할 테니까.”그러나 김유리는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어떻게 이렇게 냉정할 수가 있어요? 내 딸이 조진범에게 감정적인 자극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겠어요? 만약 조진범이 지혜를 유혹하지 않았다면 우리 지혜가 그렇게 사랑에 빠졌겠어요?”“그리고 그 진안영은 아이를 임신했는데 왜 진작 말하지 않았대요? 조진범에게 실망해서 이혼했다면서요. 그런데 왜 아이를 낳으려고 하냐고요! 진안영이야말로 제일 악독한 여우라고요. 우리 지혜가 그 년을 죽이지 않은 것 만으로도 다행인 줄 아세요. 모든 것이 진안영 이 천한 년 잘못이고요.”...이성을 잃은 김유리에 정상철은 재빨리 그녀의 입을 가로막으며 사죄했다.“애 엄마도 애가 타서 이러는 겁니다. 너무 마음에 두진 마세요. 하지만 저도 이 일의 가장 큰 잘못은 확실히 우리 지혜가 아니라 그 진안영이라는 여자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안영은 부정하고 싶었다.그러나 붉게 달아오른 눈가의 홍조가 그녀의 거짓말을 들춰내고 말았다. 결국, 진안영은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황급히 손을 움츠렸다. 조진범의 단단한 손아귀에서 손을 빼내고 싶었지만 헛수고였다. 조진범은 가볍게 그녀의 손목을 다시 쥐어 잡더니 부드럽게 자신의 얼굴에 올려놓았다.이 순간, 그들의 사이에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서로를 향한 애틋한 시선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조진범은 손에 꽉 힘을 주더니 얼굴에 올려놓았던 진안영의 손을 천천히 내려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올려놓았다. 손바닥에 벅찬 떨림이 전해졌다. 조진범의 심장 박동이었다.이윽고 그는 그윽한 눈빛으로 사랑하는 여인에게 설레는 말을 건네주었다.“이 결혼과 감정이 당신에게 불공평하다는 것은 알아. 나에겐 오래된 연애 생활이 있었지만 당신에게 난 첫 연인이겠지. 하물며 후에 이혼까지 하면서 당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었어.”“하지만 안영아, 나에게 다시 한번 너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줘. 이미 한 번의 결혼생활을 거쳤으니 난 전보다 더 성숙해질 거고 너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거야. 물론 우리 딸도 잘 돌보고 싶어.”...묵묵히 듣고 있던 진안영의 볼이 옅은 홍조를 띠었다.그녀는 애써 붉게 달아오른 볼을 감추며 아무렇지 않은 듯 화제를 돌렸다.“배고프진 않아요? 의사 선생님께서 이제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하셨으니 방금 김 비서가...”그러나 조진범은 그녀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그는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고 그 까만 눈동자는 성숙한 남자만의 섹시한 매력을 띄고 있었다. 진안영은 도무지 그 눈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 계속하여 눈을 피했지만 남자는 끈질기게 늘어지며 진안영에게 투정을 부렸다.“네가 답하지 않으면 나 안 먹을 거야. 입맛 없어.”진안영은 부끄러우면서도 괜스레 화가 나 일부러 퉁명스럽게 답했다.“너무 뻔뻔한 거 아니에요?“나 체면은 갖다버린 지 옛날이야.”아직 회복되지 않은 조진범의
며칠 지내다 보니 진안영은 조진범의 성격이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조진범이 퇴원하기 하루 전, 진안영은 아현이의 분유를 챙기기 위해 홀로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 아래에 차를 멈춰 세우고 차에서 내리려는데 웬 부부가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았다.정지혜의 부모님이었다.진안영은 그들과 만날 일이 없었기에 처음에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김유리가 신분을 밝히고 진안영은 곧바로 두 사람이 그녀를 찾아온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정지혜 씨의 일이라면 저를 찾아오셔도 소용없어요. 검찰과 이야기해 보세요.”물론 정상철과 김유리도 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하지만 그들은 조진범의 친필 서명이 너무나도 간절했다. 게다가 현재 조씨 가문 사람들은 그들을 만나주지 않으니 이제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진안영뿐이었다. 진안영이 아무리 밉고 원망스러워도 현재는 진안영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하여 김유리는 한사코 진안영의 손을 끌어안고 잡아당기며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진안영 씨, 우리 지혜 제발 한 번만 봐줘요, 응? 안영 씨만 너그러이 넘어가 주면 조진범도 분명 합의해줄 거고 우리 지혜에게도 집행유예로 풀려날 기회가 있을 거란 말이야.”진안영은 손을 빼내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김유리의 힘이 너무나도 셌다.애걸복걸 매달리던 김유리는 점점 선을 넘기 시작했다.“우리가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부탁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매정할 수가 있나요? 진안영... 당신만 아니었다면 내 딸이 이렇게 됐겠어?”두 사람의 소란은 쉽사리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운 좋게 이 싸움에서 이긴다고 하여도 진안영에게 차려지는 이득은 없었다. 게다가 옆에는 정상철까지 지키고 있으니 빠져나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그런데 그때,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지 검은 캠핑카 한 대가 그들의 옆에 멈춰서더니 검은 옷을 입은 건장한 남자 두 명이 차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각자 김유리와 정상철을 끌어내고 진안영을 향해 공손히 입을 열었
진안영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답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그러자 조진범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살짝 잡으며 잠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아무것도 아니긴. 우유가 다 흘러넘치고 있는데?”고개를 숙여보니 조진범의 말은 사실이었다.이윽고 조진범은 능숙하게 넘쳐난 물을 정리하고 손바닥을 모아 진안영의 잘록한 허리를 가볍게 감싸더니 그렇게 잠깐 묵묵히 포옹을 이어갔다.“보디가드의 말을 들어보니 정지혜의 부모님이 널 찾아갔다면서?”진안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정상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는 진안영에게 당신도 엄마이지 않냐고, 그러니 자식을 위해서라도... 정지혜 역시 그들 부부의 심정이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차에 치인 건 조진범이지 그녀가 아니기에 진안영에게는 그들을 용서할 자격도, 조진범을 말릴 자격도 없었다.한편, 한때 진안영과 부부로 지냈던 사람으로서 진안영의 속내를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았다. 사실 조진범은 그녀의 눈빛과 동작 하나만으로도 진안영의 걱정거리를 알아차렸지만 굳이 폭로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오랫동안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었고 얼마나 지났을까, 조진범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내일 B 시로 돌아가기 전에 정지혜를 만나보고 싶은데... 괜찮아?”그 말에 진안영은 본능적으로 답했다.“당신이 만나고 싶은 건데 왜 저한테 말해요?”그러자 조진범은 진안영의 어깨라인에 엎드려 가볍게 웃었다.“넌 내 아내잖아. 다른 여자를 만나러 가는 건데 당연히 아내한테 보고해야지... 혹여나 네가 화낼까 봐 걱정돼서 그래.”“저는 당신의 아내가 아닌데요.”“곧 내 아내가 될 거잖아.”...다른 사람이었다면 쓸데없이 자신감이 넘치는 비호감으로 전락하였을 테지만 조진범이 그 말을 하니 오히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게다가 요즘 두 사람은 확실히 예전의 감정을 되찾게 되었고 현재의 그들 사이에는 전과 달리 다정함과 사랑이 싹트고 있었다.진안영은 진득한 남성의 숨결에 휩싸여 결국 거절하지 않았다.그리고 함께 B시로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