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범의 손가락이 순간 멈칫했다.반짝이는 크리스털 램프 아래서 그의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안색이 좋지 않았고 긴 손끝은 가운을 꽉 잡은 채 한참 만에야 드레스룸을 나와 문 앞에 서서 조용히 아내를 바라보았다.진안영은 이미 일어나 앉아 있었다.어두운 불빛 아래 두 사람의 시선이 한 공간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한번 말했다.“우리 이혼해요.”“왜?”조진범은 아내를 빤히 쳐다보는데 잘생긴 그의 얼굴에는 쉽사리 알아챌 수 없는 피로감이 느껴졌다.“그날 일 때문에 그래? 그날 내 태도가 좀 난폭했다는 건 인정할게. 당신도 그 아이에게 미안하고... 하지만 안영아, 난 충분히 만회할 수 있어.”그러나 진안영은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반박했다.“아니요. 만회할 필요 없어요. 전 이미 충분히 고민해봤어요. 이런 결혼은 제가 원하던 결혼이 아니에요. 사실 당신도 나에게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당신은 단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제가 원하는 것이 너무 많은 것 뿐이에요.”...근데 진짜 너무 많았나?사랑 없는 혼인은 참을 수 있어도 남편의 가장 기본적인 보살핌은 필요한 것이다. 중요한 순간에 전화를 걸었는데 돌아오는 한마디가 언제 철드냐 라는 말이라니.그 말에 진안영은 조진범과의 평생을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어졌다.그녀의 눈빛이 촉촉하게 젖어갔다.어쨌든 조진범과 정식으로 혼인을 한 관계인데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게다가 엄연히 따지면 두 사람의 아이도 낳은 셈이다. 너무 빨리 죽었을 뿐.진안영은 사실 그들의 이혼은 매우 쉬우리라 생각했다. 그녀는 보상을 원하지 않았고 게다가 조진범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니 그들만큼 이혼이 쉬운 사람도 없을 것이다. 조진범이 결혼하는 것도 단지 합법적인 상속인을 원했을 뿐이고 사실 누구를 찾든 상관없는 데다 그녀와 이혼하면 더 나은 선택지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하지만 진안영은 틀렸다.조진범은 결코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 조씨 가문과 진씨 가문 모두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
그녀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러나 조진범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입가에 입술을 포갰다.그렇게 조금씩 녹아내리고 마침내 그녀의 가녀린 몸을 누르며 그녀에게 깊은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협조하지 않아도 조진범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은 단지 그녀의 순종 도를 측정하고 싶었던 것 뿐이니까.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조진범은 마침내 그녀를 놓아주었다.진안영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입술을 어루만졌다. 예전에 키스할 땐 심장이 두근거리는 설렘으로 황홀한 감정이 들었다. 그러나 방금은 그런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샤워하러 갈게.”조진범이 떠나고 진안영은 그 옆에 앉았다. 그녀는 그저 남편이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조진범의 뒤태는 훤칠하고 완벽했다. 많은 여자에게 있어 조진범은 매력으로 가득 찬 남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와 혼외로 지내길 원하는 사람들도 결코 적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녀의 마음은 점점 더 황폐해졌다.진안영이 가볍게 웃었다.10분 뒤 조진범이 욕실에서 나왔을 때 아내는 이미 침대에 누워 있었다.누런 등불 아래 누운 그녀의 몸은 얇고 선이 고왔다. 방금 유산을 했는지라 당연히 부부 일은 할 수 없지만 조진범은 며칠 내내 쉴 수 있는 시간이 항상 필요했다. 하여 그는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가 계속하여 그녀의 몸을 껴안은 채, 천천히 부드럽게 만져댔다.진안영도 굳이 막지는 않았다.예전에도 그의 친밀함은 배척하지 않았는데 이젠 진정한 조진범의 아내가 됐으니 그의 모든 요구를 거절해서는 안 된다. 그녀는 부드러운 침대 위에 엎드린 채 남편에게 고분고분 순종적인 모습을 보였다... 조진범이 감각을 더듬으며 스스로 해결하려고 할 때 진안영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하도경의 메시지였는데 학교 일이었다.조진범은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한 채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핸드폰을 잡고 한참 동안 가만히 있더니 이내 핸드폰을 그녀에게 던져주고 스스로 몸을 뒤척이며 욕실로 내려갔다.“그 사람한테
여자의 거절을 남자가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하도경의 사랑은 깊이가 있다. 그는 기혼여자를 굳이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그녀를 언론의 소용돌이에 빠뜨리고 싶지도 않았다. 하도경이 계속 고백하지 않고 그녀의 주위만 맴도는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하도경은 사무실을 떠나 뜨거운 햇살 아래까지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은 원래 햇빛 아래에서 살아야 하는 법이다.하지만 아무리 억눌러도 하도경은 자연스레 그녀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매일 임지유가 보양식을 보내오는 덕분에 입이 마를 날이 없었다. 사실 그녀가 매일 보양식을 살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사실 다 하도경이 사고 그녀가 달여서 보내주는 것이다. 물론 임지유가 돈을 쓰게 놔둘 수는 없어 진안영도 계속하여 몰래 보태서 돌려주곤 한다.시간이 흐르며 하도경은 줄곧 자기만의 방식으로 진안영을 보살펴주고 돌봐주었다.가끔 그는 캠퍼스에서 진안영과 우연한 만남을 만들어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데 물론 진안영은 아는 것이 없다. 그녀는 유부녀의 선을 지키며 항상 하도경과의 거리를 유지하지만 남자가 진심으로 여자를 좋아한다면 그 눈빛은 숨길 수 없다. 하여 하도경이 진안영을 좋아하는 것은 학교에서도 비밀이 아닐 지경이다....JH그룹 회장실.조진범은 중요한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후 가죽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안정을 취했다. 잠시 후 그는 또 초조한 마음에 손을 들어 양미간을 주물렀다.한편, 이 비서는 자리에 서서 업무를 보고하고 있었다.공적인 이야기를 마친 조진범은 잠시 손을 뻗어 서랍을 열고 사진 뭉치를 꺼내 책상 위에 던졌는데 그 사진들은 역시 진안영과 하도경의 사진이었다.대부분 캠퍼스의 반얀나무 대로 위의 사진이었다.서로 얼굴을 맞대고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은 결코 별다른 기류가 흐르진 않았지만 하도경의 눈빛에 담긴 애정은 도무지 속일 수 없어 남편인 조진범은 진안영과 이에 관해 직접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조진범은 고개를 숙인 채 고급 패션 가방을 가지고 놀며 이리저리 손가락 장난을 했다.잠시 후, 그는 다시 가방을 내려놓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기 위해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전화를 끊은 후, 그는 아내와의 몇 안 되는 데이트를 떠올렸다. 비록 전부 진심이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는 진안영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녀에게는 특유의 우아한 기질이 있어 함께 지내면 편안함이 느껴질 정도다.진안영이 유산한 후에도 그는 짬짬이 시간을 내서 그녀와 함께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하지만 그녀는 그의 노력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침대에서 키스할 때마다 진안영은 분명 그 순간의 스킨쉽을 전부 건성으로 대했고 어느 날 만약 정말로 그녀와 관계를 맺게 되면 그의 몸 아래에서 잠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자신의 마음이 딴 데 있다는 것을 굳이 숨기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이런 결혼은 정말 냉담하고 무미건조한 결혼임이 틀림없다....저녁 6시, 조진범은 정시에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갔다.검은색 롤스로이스 팬텀이 메인 저택 앞에 멈춰서고 조진범은 긴 다리로 운전석 도어를 열고 차체를 넘어서 늠름한 자태를 뽐내며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검은 머리카락 끝은 석양 아래서 거무스름하게 빛나며 순수한 남성의 기운을 더해주었다.현관을 지날 때, 고용인은 자연스럽게 그의 외투를 받아 그에게 보고했다.“아까 사돈께서 사모님을 찾아오셨는데 사모님께서 계시지 않아 다시 돌아가셨습니다.”진철수는 분명 그들에게 사정하러 온 것이 틀림없다.하여 그는 말을 아끼고 화제를 돌려 고용인에게 말을 건넸다.“그나저나 부인은요? 오늘 저녁 식사하러 왔을 텐데.”고용인은 잠깐 생각해보더니 두 손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아, 사모님께서는 학생 집에 가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조진범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집에 들어와 손을 씻은 후 식당에 앉아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잠시 후 고용인은 저녁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고 저녁 식사는 모두 여섯
어둠 속에 서 있는 훤칠한 얼굴의 조진범은 그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잠시 후 그는 다시 아내의 팔을 잡아당기고 하도경에게 작별을 고했다.하도경이 진안영을 바라보았다.그가 아무리 그녀를 사모하고 좋아한다고 해도 진안영은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있기에 그녀의 남편 앞에서는 조금도 선을 넘어서는 안된다. 잠시 후 하도경은 씁쓸한 목소리로 덩달아 작별을 고했다.“그럼 안녕히 가세요. 진 쌤.”은은한 달빛이 나무 아래에 서 있는 하도경의 머리 위로 추적추적 쏟아져 내렸다.반은 달빛에 새기고 반은 어둠에 새겼다.조진범의 손에 붙잡힌 진안영도 애써 입술을 달싹이며 작별인사를 했다.“그럼 잘 자요.”잠시 후, 차에 탔을 때 조진범은 안전벨트를 맨 채 무심한 척 물었다.“하도경이 가서 아쉬워?”조수석에 앉은 진안영은 바깥의 끝없는 어둠을 바라보며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진범 씨, 지금 이게 무슨 뜻이에요? 도경 씨를 보내는 거... 설마 진범 씨 뜻이에요?”“맞아.”조진범은 굳이 부정하진 않았다.“내 뜻 맞아. 그 사람이 내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남자라면, 특히 내 위치에 있는 남자라면 아무도 아내가 그렇게 사랑받는 것을 참을 수 없을거야.”진안영이 눈시울을 붉히며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해명했다.“저랑 도경 씨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그러자 조진범은 굵은 손바닥으로 핸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담담하게 답했다.“물론 아직은 아무것도 아닐수 있지. 만약 두 사람 사이에 정말 무슨 일이 있었다면 단지 H시로 전근 가는 거로 끝나진 않았겠지.”말을 이으며 그는 또 한 손을 들어 아내의 뺨을 다정하게 어루만져주었다.“아름다움이 화의 근원이잖아. 뭐 어쩌겠어.”그러나 진안영은 모질게 그의 손을 뿌리치고 얼굴을 홱 돌려 반대편 차창을 바라보았다. 가슴팍이 부르르 떨려 나며 커다란 기복을 이루고 있었다... 분명 사석에서 처리한 일이지만 진안영은 여전히 간통을 당한 아내가 되어 남편에게 무자비하게 공개
진안영은 움직이지 않았다.차 안에 있는 조진범만이 그녀를 곁눈질로 힐끗 보며 몸을 기울여 한쪽 차 문을 열어주었다.“내려.”진안영은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려 현관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조진범은 담배를 피우며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허리를 꼿꼿이 펴고 걷는 그녀는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조진범의 눈빛은 깊었고 마음속은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워졌다. 그는 진안영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사랑이라는 감정은 생기지 않는 것 같았다.그렇다고 이혼을 생각하자니 이혼도 하고 싶지 않았다.조진범도 이렇게 오랫동안 고민에 빠진 적은 처음이었다.그는 차 안에서 담배 두 세대를 더 피우고 나서야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그가 뒤늦게 저택 거실 안으로 들어갔을 때, 진안영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다이닝룸에 있던 두 하인이 식탁을 정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안으로 들어온 조진범을 발견한 하인들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모님께서 기분이 안 좋으신 모양이에요. 두어 술 뜨시더니 바로 올라가시더라고요.”하인의 말에 조진범이 고개를 들어 2층을 바라보았다.잠시 후, 그는 계단을 올라가 2층에 도착했다. 침실 문을 열어봤지만 진안영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곧이어 옆에 있던 욕실에서 물소리가 흘러나왔다…조진범은 입고 있던 검은 코트를 벗어 소파 등받이에 던져놓고는 소파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그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었지만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그저 길고 가는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운 채 계속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욕실 문이 살짝 열리더니 샤워가운을 입은 진안영이 걸어 나왔다. 갓 샤워를 마친 진안영의 온몸에서는 물기 어린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작은 계란형 얼굴은 하얗고도 부드러웠다.조진범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그녀와 관계를 맺지 않았다.게다가 오늘 밤은 하도경 일로 골머리까지 앓았던 탓에 조진범은 지금 아내를 굉장히 원하고 있었다. 진안영이 그
조은혁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조진범은 한 손으로 아내의 몸 곁을 짚고는 다른 한 손으로 전화를 받으며 아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조은혁은 다급한 목소리로 지금 당장 부부 모두 집으로 돌아오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조은희에게 큰일이 났다는 소식이었다.어떤 일인지는 전화로 자세히 얘기하기 곤란하다는 말도 함께 전했다.전화를 끊은 조진범은 몸을 옆으로 돌리며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우리 집에 좀 갔다 와야겠어.”진안영이 원하던 바였다.그녀는 조진범과 한 침대에서 자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관계를 맺지는 않았지만 그가 자신을 만지는 것도, 털끝 하나 건드리는 것조차 치가 떨리게 싫었다. 그녀는 천천히 천장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알겠어요.”조진범은 고개를 돌려 깊은 눈빛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30분 정도 지나자 조진범은 진안영과 함께 조씨 가문의 저택에 도착했다.늦은 밤이었지만 조씨 가문 저택의 불은 환히 켜져 있었다.두 사람이 현관에 다다르자마자 조은혁의 고함이 들려왔다.“당장 헤어져!”조진범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졌다. 그는 아내를 한 번 쳐다보더니 빠르게 거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조은혁 부부가 무거운 얼굴로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조은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곁에 서 있었다.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조은희는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조은혁이 딸에게 이런 식으로 화를 낸 적은 처음이었다.조은혁이 화가 나면 조진범과 진안영이 와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조은혁이 자신의 막내딸을 향해 소리쳤다.“내 기억으론 그 진석이라는 사람, 네 가정 교사 아니었니? 게다가 지금 교수로 앞날도 창창하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너희 둘이 엮인 거냐? 엮이는 건 그렇다고 쳐도 왜 본가에 민며느리가 있을 거라는 건 알아보지도 않은 거야? 그 여자가 B시까지 와서 울고불고 난리 치다가 학교 건물에서 뛰어내려 반신불수가 됐다더구나. 이제 그 여자는 책임을 진석에게 묻겠지.”“넌
봄날의 밤.밖에서는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무섭게 떨어지는 빗줄기가 장대 같았다. 거실에서는 아내가 자신의 동생을 위로하고 있었고 조진범은 검은 셔츠를 입은 채 발코니에 서서 담배를 치우며 저택 문 앞에 주차되어 있는 SUV 차량을 바라보고 있었다.잠시 후, 차에서는 한 남자가 내렸다.키와 체격으로 보아하니 아마 진석이라는 남자인 것 같았다.진석은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그는 10분 정도 서 있었다. 그러다가 진석은 곧이어 얼굴에 흐르는 빗물을 닦으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조진범은 그런 진석을 조용히 쳐다보고 있었다.진석은 전화를 끊고 다시 빗속에 서 있다가 1~2분 정도 지나자 다시 차에 올라타더니 자리를 떠났다. 조진범은 아마 진석에게 급한 일이 있어 떠나야만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진석 또한 선생님이었다.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는 남자인 하도경을 떠올렸다.조진범은 가느다란 손가락에 담배를 끼우고는 천천히 한 모금씩 빨아들였다. 준수한 얼굴에는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조진범은 SUV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다시 거실에 있는 아내와 여동생을 바라보았다.부드러운 조명이 거실 안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조은희 역시 자신이 이탈리아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진안영에게 말했다.“새언니, 저 진석 씨 진심으로 좋아해요. 저 사람은 그냥 가문에서 정해준 약혼자일 뿐이지, 단 한 번도 저 사람한테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게다가 저가 먼저 진석 씨 좋아한 거였단 말이에요. 처음에는 진석 씨도 저 멀리했다가 제가 하도 끈질기게 쫓아다니니까 결국 받아준 거예요.”그때의 조은희는 꽃다운 나이 18살이었다.진석은 대학교를 막 졸업하려던 참이었고 그의 지도교수는 조은혁과 꽤 깊은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조은희에게 가정 교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지도교수가 진석을 조은혁에게 추천해준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냉정하기도 유명한 진석이 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