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범은 바깥으로 나가 신경질적으로 차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탔다.조수석에 꽃다발을 던진 조진범은 곧바로 휴대폰 위치추적 앱을 실행하여 조민희가 있는 자리를 알아냈다.스카이 레스토랑.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위치를 확인한 조진범은 풉 웃음을 터뜨리더니 곧바로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쏜살같이 조씨 가문 큰 별장을 빠져나가 도심 쪽으로 달렸다...조은혁이 다급히 쫓아 나왔지만 그의 차 뒤꽁무니만 보일 뿐 조진범은 이미 점점 멀어져갔다.머리를 긁적이던 조은혁은 허리를 짚고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어젯밤까지도 외면하는 것 같더니 벌써 사랑이 불타오른다고... 이 개 같은 성격은 대체 누구를 닮았는지 몰라.”그렇게 중얼거리며 담배를 두 모금 빨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불을 꺼버렸다.마누라가 옆에 없으니 손에 쥔 담배도 맛이 나지 않았다....30분 후, 검은색 컬리넌이 레스토랑 앞에 멈춰 섰다.차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조진범은 자신의 어머니와 조민희, 그리고 박은화와 30도 채 안 되는 남자가 서로 마주 앉아 식사하면서 잡담을 나누고 있는 것을 보았다. 분위기는 꽤 좋아 보였다.심지어 조민희도 가끔 가볍게 웃어주며 남자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오늘 조민희가 특별히 꾸미고 나왔다는 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순백의 실크 셔츠에 살구색 머메이드 스커트를 매치하고 검은 긴 머리를 어깨에 늘어뜨린 데다 세련된 이목구비까지, 전체적인 스타일은 남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청순 스타일이었다.맞은편 남자의 시선은 거의 조민희의 얼굴에 달라붙다시피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묵묵히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조진범이 싸늘한 얼굴로 차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이 순간만큼은 정말 살인 충동이 들었다.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는 부드러운 음악이 흘러나왔고 손님들이 식사할 때 말하는 소리도 매우 격조 있고 우아했다.조진범이 검은색 정장을 입고 그 테이블로 다가왔을 때, 박은화가 먼저 그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어머, 진범이 아니니? 여긴
한밤중이었지만 언제 잠들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잠에서 깨보니 온몸이 뜨거웠다.그리고 곁에 있어서는 안 될 남자가 침대에서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다. 눈을 떠보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남자가 자신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남자의 평온한 목소리에서는 폭풍전야 같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소개팅은 왜 갔던 거야?”조민희는 남자를 잠시 바라보았다.현재의 그녀는 이미 너무 지치고 피곤했다. 가볍게 눈을 감은 조민희가 되물었다.“왜 오빠는 되고 난 안 되는데?”그녀의 말이 끝나자 조진범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오늘은 조진범도 많이 피곤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진범은 레스토랑까지 가 조민희를 만났고 늦은 시간까지 그녀를 기다리며 소개팅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왜 안되냐라니...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미세한 밤바람도 그의 울화를 가라앉히지는 못했다.그는 미간을 가볍게 문질렀다.잠시 후, 조진범이 다시 낮게 말했다.“민희야, 우리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사이 아니었어?”조민희는 침대에 기댄 채 두 손으로 무릎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그녀는 조진범의 말을 수도 없이 되뇌고 있었다.평생을 함께한다...멍하니 넋을 잃은 사람처럼 있던 조민희가 가볍게 미소 지었다.“어쩌면 처음부터 잘못됐던 게 아닐까. 애초에 유효하지 않은 약속이었던 거야.”“그때의 조진범은 책임이 무슨 뜻인지 몰랐고 나도 약속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잖아. 그렇게 무턱대고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말해버렸던 거야.”“6년이야! 조진범, 나 19살 때부터 너랑 같이 있었어.”“여자 청춘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또 이대로 6년이 흘러버리면 난 서른이 넘을 거야. 오빠는 나와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했지, 결혼도 필요 없다고 했잖아. 그런데 6년 동안 내 의사를 물었던 적이 단 한 번은 있었어? 내가 뭘 필요로 하는지, 결혼이 하고 싶은지... 어쩌면 나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싶었을지도 모르잖아!”“아이가 좀 멍청할지도 몰라.”“하지만, 그래도
“그럼 아니야?”조민희는 눈을 크게 뜨려 노력했다.그녀의 눈빛에는 슬픔과 두려움이 어려있었다.마침내 그들의 사이가 끝을 맺었다는 것에 대한 슬픔과 조진범을 떠나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조민희는 혼자서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학교에 다녀본 적은 없지만 그림으로 돈을 벌 수 있었고 외국어도 두 개나 가능했다. 영어와 프랑스어.만약 조진범이 없다면,조민희는 스스로 이 세상을 마음껏 구경하고 탐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조민희가 고개를 들어 자신이 6년 동안 죽도록 사랑했던 남자를 바라보며 다시 그 말을 꺼냈다.“조진범, 우리 헤어지자.”조진범은 조민희의 위에서 그녀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그때 누군가 밖에서 문을 두어 번 두드리더니 이윽고 박연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진범아, 문 열어. 나야.”어둠 속에서 조진범과 조민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둘 다 적잖이 놀란 눈빛이었다.이곳은 분명 조민희의 침실이었음에도 박연희가 조진범의 이름을 불렀다. 조민희가 떨리는 입술로 중얼거렸다.“엄마가 다 알아버렸어.”이 순간만큼은 싸움이고 상처고 중요하지 않았다.남은 것은 들킨 것에 대한 당황스러움 뿐이었다.조진범의 눈빛은 여전히 그윽했다.그는 계속해서 조민희를 바라보며 한 손으로 그녀의 흐트러진 옷깃을 정리해주고는 귓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우리가 사귀기 시작한 그 날부터 이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어.”“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는 거야.”“겁먹지 마!”...안으로 들어선 박연희의 표정은 매우 평온했다.양녀의 방,침대는 다 흐트러져 있었고공기 중에는 남성 호르몬의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 있었다. 조진범의 양복 상의가 자연스레 소파 등받이에 걸쳐져 있는 것이 그들의 남다른 애정 관계를 보여주고 있었다.조민희는 흰색 실크 잠옷 원피스를 입은 채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있었다.조진범이 자신의 겉옷을 집어 들어 조민희의 어깨에 가볍게 걸쳐주었다. 그 후에도 그의 손은 그녀의 몸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조진
조진범은 아직 회사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조민희 혼자 2층 안방에서 짐을 싸고 있었는데 몇 년 동안 두 사람 모두 계속 하와이에서 지냈던 탓에 짐을 싸는 것이 꽤 힘들었다. 조진범 한 명의 일용품을 챙기는 데만 캐리어 6개가 필요했다.흰색 셔츠를 곱게 개고 있던 조민희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셔츠를 가볍게 살살 쓰다듬었다.사실 조민희는 조진범과 함께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직 완성하지 못한 그림이 두 점이나 남아있었고 연말 전까지는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나서 서프라이즈로 귀국해 조진범을 놀라게 해줄 생각이었다.조민희는 캐리어를 덮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막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단단한 팔이 그녀의 몸을 감쌌고 남자의 뜨거운 열기가 그녀의 예민한 귀를 간지럽혔다.“항공권 바꿨어. 오늘 저녁에 세미나가 잡혔거든... 9시 비행기니까 한 번 할 시간 정도는 있잖아.”그렇게 조민희는 그의 손길에 이끌려 침대 끄트머리까지 도착했다.중심을 잡기 힘들었던 조민희는 조진범의 팔을 꼭 붙잡고 있었다. 이윽고 자신의 옷이 하나씩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조진범의 공세에 조민희의 목소리가 끊겼다.“왜 갑자기... 바꾼 거야?”조진범은 그녀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그저 조민희의 몸을 높이 들어 올려 검은 눈동자로 그녀의 작은 얼굴을 탐욕스럽게 주시했다.화려할 정도로 큰 침대에서 은밀한 소리가 들려왔다.듣기만 해도 심장 두근거리고 얼굴이 빨개지는 소리였다.조진범은 특이한 취향을 갖고 있었다. 그는 검은 침대 시트를 좋아했고 그 위에 누운희고 고운 조민희의 몸을 좋아했다. 그 모습만으로도 엄청난 시각적인 자극을 주었다.그는 보통 남자들보다 성적 욕구가 훨씬 강했다. 한 번으로는 해소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한 번 끝나고도 휴식 없이 다시 시작하는 타입이었다...실크로 된 침대 시트는 이미 엉망이 되어 본래 형태를 찾아보기 어려웠다.진짜 마지막을 맞게 되자 조민희는 이미 큰 침대 위에 널브러져 축 늘어져 가쁜
여자 연예인은 욕실을 힐끗 보았다. 그녀도 스캔들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조씨 기문 조범진이 결국은 양녀와 몰래 함께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럼 아까 범진이 그녀를 거절한 건 민희때문인 것인가.여자 연예인도 지기 싫어했다. 그녀는 전화기를 받아 들고 일부러 요염한 목소리로 말했다. "범진 씨를 찾는 건가요? 지금 샤워 중이에요."향시에서 민희가 하얀 카펫 위에 앉아 있었다. 등 뒤에 그녀가 정성스레 준비한 크리스마스 나무가 있었고 나무 위엔 오색영롱한 작은 등이 반짝반짝 거렸다. 그 불빛은 민희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비췄다. 그녀는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요염한 목소리의 여자와 범진이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상상하기도 싫었다.범진은 향시를 떠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그녀에게 준다고 했지만 결국 주지 않았다. 그는 민희에게 매일 연락을 한다고 했지만 연락을 주지 않았다. 민희는 범진이 스트레스가 많은 걸 알고 있었기에 이에 대하여 원망한 적도 없었다. 민희는 향시에서 매일 밤낮으로 그림을 그리며 하루빨리 해가 가기 전에 범진과 만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하지만 범진은 이 여자와 놀고 있는 것이다. 민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전화를 꺼버리고 조용히 앉아 음악 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민희는 그녀와 범진의 미래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에겐 미래가 없었다. 2분이 지난 후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여전히 냉담한 목소리였다."오늘 좀 많이 마셨어. 그 여자는 고객사가 데리고 온 사람이야. 아무런 일 없었으니까 허들갑 떨지 마. 민희야, 나 요즘 많이 힘들어."...민희의 얼굴은 차갑게 식어갔다. 한참 뒤에 범진은 민희가 화난 걸 알아차리고 그의 말투는 많이 부드러워졌다. "화난 거야?" 민희는 담담히 웃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강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나도 힘든 거 알아. 힘든 거 아니까 여자를 찾아서 스트레스를 마음대로 풀어. 그냥 하룻밤 사이니까 괜찮아."
오랫동안 금욕한 남자는 미칠 듯이 거칠었다. 그의 몸짓에 민희는 목소리도 다 쉬었다. ... 하늘이 점점 밝아오자 범진은 향시를 떠났다. 아침 9시. 민희는 하나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이미 회사에 도착했고 미팅을 준비한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범진은 매우 자상하게 민희에게 잘 쉬어라 문자를 보냈고 그는 아주 부드러워 보이는 애인이었다. 민희는 침대에 걸터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이 각도에선 푸른 나무들이 보였다. 향시는 B 시와 달리 1년 내내 푸르른 나무가 많았다. B 시에선 오늘 눈이 내렸지만 범진은 아마 그녀와 이런 사소한 이야기를 공유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범진은 계절이 바뀌는 걸 느낄 시간조차 없었고 재무제표의 차가운 숫자에만 관심이 있었다. 한차례 정사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들 사이엔 많은 문제가 존재했다.민희와 범진은 결코 어울리지 않았다. 아마 범진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녀와 회사의 일이나 비즈니스 얘기를 하지 않았다. 범진은 그녀와 침대 위에 있는 시간이 제일 오랬고 자신의 욕망을 그녀에게 물었다. 민희도 그녀와 범진의 마지막 결말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민희는 한 번 더 노력하고 싶었다. 그녀는 자신이 B 시로 돌아가게 되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범진이 진정으로 JH 그룹 업무를 인수학에 된다면 지금처럼 바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면 그때 그들은 얘기할 거리가 많이 생길 것이다. 민희는 밤낮으로 쉴 새 없이 그림만 그렸다. 섣달그믐날, 민희는 열이 나는 상황임에도 마지막 그림을 완성하고 에이전시에 넘겨줘 계약을 끝마쳤다. 저녁에 그녀는 B 시에 도착했다. 공항 홀에서 민희는 범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 지금 공항이야. 데리러 올 시간 있어? 시간 없으면 기사님한테 부탁할게.” 범진은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을 하고 있었다. 민희가 온 것에 대해 그는 매우 기뻤다. 사실 그는 기사에게 부탁을
민희는 집에 돌아가지 않고 트렁크를 끌고 공항으로 갔다. 그녀는 택시를 잡고 새로 산 전화 카드를 전화기에 꽂고 앱들을 다운했다. 그리고 서울로 가는 티켓을 샀다. 두 시간 후 출발하는 티켓이었다. 티켓을 예약하고 민희는 의자의 기대어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모든 걸 끝낼 결심을 했지만 6년이란 감정은 쉽게 놓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 민희와 범진 사이의 가장 큰 저애 요소는 결코 외부 사람이 아니었다. 항상 범진이었다. 범진은 종래로 민희가 그와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는 항상 민희가 향시에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범진 자신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들의 만나는 방식은 남녀 사이나 약혼자 사이도 아닌 잠자리 상대같았다. 민희는 마치 범진이 키우는 애완동물 같았다. 범진은 항상 그녀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집에서 승낙할 때까지, 그의 사업이 안정적으로 될 때까지 항상 기다리라고만 했다. 하지만 범진은 사랑의 본질은 과정에 있고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했다. 불행한 결과를 민희는 결코 만들고 싶지 않았다. 조범진의 세계는 너무나 컸으나 민희를 담지 못했다... B 시 공항 안에 안내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객 여러분, 오전 10시 20분 서울로 비행기가 곧 이륙합니다. 빨리 수속을 마치길 바랍니다.][Please haven't boarding passengers boarding as soon as possible.]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고 갔다. 민희는 티켓을 손에 꽉 쥐고 마지막으로 이 도시를 바라보았다. 민희의 두 눈은 눈물이 차올랐다. 그녀는 이별은 좋은 만남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돌아올 것이다. B 시에 그녀의 집과 그녀의 가족이 있었다. 민희의 세계에는 조범진만 있어는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녀는 아직 아빠, 엄마, 동생들이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민희 얼굴은 조금 결연해 보였다. B 시 안녕. 조범진 안녕. ...범진이
범진은 핸드폰을 꺼내 이 비서가 걸어온 전화인 것을 확인하고 자연스럽게 받았다. “민희는 집에 있는 거죠? 저녁은 먹었대요?” 이 비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대표님, 아가씨는 집에 없습니다.” 순간 범진의 얼굴빛이 변했다. 그는 전화를 끊고 향시 저택의 전화에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민희가 떠날 때 집의 모든 집사들에게 설 휴가를 줬기에 아무도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여러 명의 직원이 술을 함께 마시자며 그에게 다가왔다. 범진은 술잔을 내려놓고 빠르게 연회장을 나갔다. 그렇게 직원들만 홀연히 남겨졌다. “대표님은 무슨 일인 거야?” “몰라.” ...그날 밤 범진은 향시로 날아왔다. 그때까지도 범진은 민희가 화를 내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의 말 때문에 기분이 나빠져 향시로 돌아와 그를 만나지 그와 만나지 않으려는 줄 알았다. 범진은 매우 피곤했지만 그녀를 잘 달래서 함께 돌아가 설을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향시엔 아무도 없었다. 민희는 향시로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이 비서는 민희가 서울로 간 것을 알아냈고 범진은 향시에서 서울로 날아갔다. 하지만 온 서울의 호텔을 다 찾아보아도 민희의 체크인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고 범진이 그녀에게 준 카드도 그녀는 사용하지 않았다. 범진은 많은 인맥을 이용했고 많은 돈도 썼다. 그는 온 서울 시내를 찾아다녔지만 민희를 찾을 수 없었다. 섣달그믐날 조은혁이 범진에게 전화를 걸어 그에게 욕을 퍼부었다. 아마도 그가 한 일을 알아냈을 것이다. 범진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관람차를 바라보았다. 관람차가 움직이자 위에 달린 오색영롱한 불빛이 반짝거렸다. 범진은 민희가 만약 이곳에 있다면 그에게 자신과 반드시 함께 올라타라고 투정을 부렸을 것이다.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그날 범진은 철저히 민희를 잃어버렸다. 민희는 아무런 설명 없이 떠났다. 민희는 그렇게 범진의 세계에서 사라졌다. 민희는 그렇게 범진을 버렸다. 불빛이 점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