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말 몰라요! 그저... 그저 신 대표님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밖에 몰라요. 그 불륜녀가 누구인지는 정말 모릅니다!”서강훈의 낯빛이 카멜레온처럼 순식간에 변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신 대표님... 신 대표님이...”“바람을 피우는 건 알면서 상대가 누구인지 모른다고요? 서강훈 씨...”“지아 누님, 진짜입니다! 전 정말 몰라요! 밖에서 데리고 다니신 적이 없거든요. 전 그저 뒷모습을 두 번 정도 본 게 다입니다...”나는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신호연이 꽤 조심하면서 다닌 모양이었다. 혹은 서강훈이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거나.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나는 화를 억누르면서 감정을 자제했다. “도와줘야 할 일이 있어요.”내가 또 화제를 돌렸다. 한껏 누그러진 말투에, 내가 한발 양보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역시나 서강훈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한숨을 돌리며 얘기했다.“네, 지아 누님이 얘기하시면 제가 꼭 하겠습니다!”“내게 숨기고 있던 재무 보고서와 최근의 고객 리스트를 줘요.”내가 과감하게 얘기했다.서강훈은 내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표정관리에 실패한 그는 마치 줄이 끊어진 인형 같았다. “지아 누님...”“왜요? 없어요?”내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지아 누님, 진짜 없어요... 예전의 재무 보고서는 이미 가져다 보여드렸습니다.”서강훈은 한껏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에게 얘기했다.“진짜 저한테 이러지 마세요...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요 몇 년간 신 대표님을 잘 따랐던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건 지아 누님의 회사잖아요! 저도 양심이 있죠! 끝까지 지아 누님을 따를 겁니다!”“신 대표를 끝까지 따르는 게 아니라요?”내가 차갑게 물었다. 말투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뻗어있었다.“...”나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서강훈을 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 소리가 공허한 거실에서 울려 퍼졌다. 고막을 울리는 소리는 그 어떤 욕설보다도 무서웠다. 나는 태연함을 잃지 않고 우아하게 서
내가 엘리베이터를 나서는 순간, 신호연의 표정이 살짝 굳더니 재빨리 정상으로 돌아왔다.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은 신호연이 또 고객과 몇 마디 하더니 나에게 그 여자를 소개해 주지도 않고 바로 신사처럼 그녀를 엘리베이터에 앉혀 보냈다. 나는 저도 모르게 그 여자를 흘깃 쳐다보았다. 지성적인 면이 있는 그 여자는 우아하고 기품이 흘러넘쳤다. 그 여자도 나를 보더니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천천히 닫혔다. “누구야?”내가 물었다.“그저 고객이야.”신호연의 대답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나의 어깨에 올리고 물었다.“어디 갔었어?”나의 행적에 완전히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답을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묻고 있었다. 나는 귀엽게 웃어 보이면서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며 얘기했다.“안 알려줄 거야!”그리고 퇴근하기 전까지 서강훈은 회사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 서강훈은 내가 보고 싶다고 한 자료를 몰래 내 사무실에 가져다주었다. 그 표정은 내가 쉽게 묘사할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지아 누님, 진짜... 제 상황이 얼마나 난처한지 아세요? 전...”그가 말하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 첫째로는 그의 비밀을 고발할까 봐였고 두 번째는 신호연이 그의 배신을 알아차릴까 봐였다.“하는 거 보고요. 일단 나가요.”나는 담담하게 말하면서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어제 본 여자가 떠올라서 서강훈을 붙잡았다. “어제 퇴근 전에 회사에 와서 신호연이랑 있던 여자, 누구인지 한번 알아봐 줘요. 이름, 신분, 전화번호도요.”서강훈은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려 나갔다. 나는 한시 빨리 회사의 일에 대해 알아보려고 했다. 불륜녀도 나에게 문자를 보내느라고 바빴다. 나의 카톡까지 추가해서 끊임없이 문자를 보냈다. 신호연이 살짝 눈치를 챈 모양인지 나의 행적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아니면 그 불륜녀가 그에게 얘기를 흘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서강훈은 아닐 것이다. 그는 그럴 담이
참가한 회사는 모두 여섯 개였다. 우리 신흥 건재가 아마도 제일 작은 회사인 듯했다. 즉, 가장 경쟁력이 약한 상대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큰 기대를 걸고 온 것은 아니다. 그저 신호연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쇼였다.입찰회에 요청된 회사들은 큰 회의실에 모여서 천우 그룹의 대표가 나서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회의는 요청된 회사들이 자기 회사의 능력을 최대한 보여주고 협력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아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었다. 시간이 5분이나 지났지만 천우 그룹의 책임자가 나타나지 않자 사람들은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회의실 내부가 웅성거리고 있을 때, 회의실의 문이 갑자기 열렸고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흰 셔츠에 검은 정장 바지를 입고 검은색 넥타이까지 한 젊은 남자가 허리를 곧게 세운 채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준수하게 생긴 얼굴은 나이를 알 수 없게 깨끗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그를 따라 움직였다. 그의 뒤에는 비서 한 명, 그리고 이 프로젝트와 연관 있는 직원들이 있었다. 그는 길쭉한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와 회의장의 중간 자리에 와서 선 후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을 오래 기다리게 했습니다. 조 대표님께서 오늘 갑작스러운 일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 제가 대신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배현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자리에 앉았다. 고귀한 기품이 흘러넘치는 그는 어딘가 도도하고 차가워 보였다. 사람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왜 조 대표가 회의에 참석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중요한 회의에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 같은 젊은 남자를 보내다니. 여섯 회사 중 두 회사는 이미 불쾌함을 드러내고 있었다.배현우는 그들에게 질문 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입을 열었다.“오늘 시간이 좀 빠듯하니 얼른 시작하죠.”그리고 그가 한 회사의 이름을 불렀다. 그렇게 순서대로 부르
그 전화는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았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말도 나오지 않았다. 친정에 가보지 않은지 2년 정도가 되었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내가 항상 봐줘야 하고 신호연은 항상 바빠서 내가 혼자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가는 것이 위험하다고 했다. 그렇게 친정에 들르지 않은 지 이제 2년이나 되었다. 휴대폰을 손에 쥔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죄책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나의 일상생활을 쓸어가는 기분이었다. 부모님께는 자식이 나 하나뿐이었다. 하나뿐인 외동딸을 대학에 보낸 후 우리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저 힘든 일이 있을 때만 연락해서 도움을 청하곤 했다. 이제 와서 보니 요 몇 년간 그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그 생각에 나의 양심이 아팠다. 자기 부모님에 대한 효도와 관심이 시집 부모님에 대한 것 보다 못했다. 항상 부모님은 건강할 것이라고 믿어왔지만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것은 나에게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불효녀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부모님은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셨지만 지금의 나는 제대로 된 효도를 해드리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의 나는 그토록 사랑하던 가정이 파탄 날 위기에 놓여있다. 어떻게 이 사실을 친부모님한테 얘기하는가 말이다!나는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재빨리 신호연의 사무실에 도착해 울먹이면서 얘기했다.“여보, 얼른 비행기 티켓을 끊어줘! 나 친정에 가봐야 할 것 같아!”각 부문의 주임들과 회의를 하고 있던 신호연은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여보!”그리고 손짓으로 다른 사람들을 나가게 하고 가까이 와서 나를 안아주었다. “천천히 얘기해 봐!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엄마가 아까 전화가 왔어... 아빠가 위독하시대! 나 얼른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어느새 나의 눈에 고인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여태까지, 나는 큰일이 나에게 들이닥칠 때마다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이 필요했다.신호연은 나의 등을 두드려 주며 위
나는 실망하면서 보안 검색대를 지나 탑승구로 걸어갔다. 이렇게 힘들 때 사랑하는 사람이 같이 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님도 그걸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신호연은 빠르게 사라졌다. 회사 일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나 자신을 위로하면서 나는 이미연에게 연락했다. 친정에 간다는 사실을 알리고 홀에서 초조하게 탑승을 기다리며 앉아있었다. 내가 신호연과 같이 친정에 간 건 딱 세 번이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졸업하던 그해, 우리 둘의 마음을 확인한 후 그를 데리고 집에 갔었다.두 번째는 우리가 창업하기로 결심했을 때 창업할 자금이 없어 부모님께 돈을 빌리러 갔었다. 세 번째는 우리 부모님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후 그 대출금을 다 갚았을 때, 신호연이 나를 데리고 부모님을 뵈러 가자고 했다. 그 후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한 번도 같이 돌아가 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은 말로는 이해한다고 하셨다. 홀로 창업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고, 항상 마음을 놓을 수 없고 언제나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하셨다. 창업한 첫 두 해는 진짜 한시도 쉴 새 없이 바빴다. 우리 두 사람으로 시작해서 회사를 이렇게 큰 규모로 이끌어 오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후에는 내가 임신하고 혼자서 친정에 다녀왔다. 그리고 콩이를 낳았을 때 부모님이 나를 보러 서울로 올라오셨다. 우리는 같이 있은 시간 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어쩌면 그저 나의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버님이 위독하시다니. 다시 생각해도 너무 슬펐다. 이런 불효녀가 또 있을까. 부모님은 나를 위해 뭐든지 해주셨는데 나는 여태껏 뭘 해줬나. 마음이 급할수록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급한 내 마음도 모르고 비행기는 계속해서 연착되고 있었다. 공항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점점 더 많아지고 하늘도 점점 어두워졌다. 어느새 저녁 여덟 시가 되었다. 이미 7시간이나 연착되었다. 항공 시간은 한 시간 좌우밖에 되지 않지만 나는 이미 공항에서 7시간이나 기
나는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눈을 꼭 감았다. 커다란 물체에 튕겨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찰나, 나는 누군가가 나의 몸을 감싼 채 나를 데리고 옆으로 피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한 나는 주변이 어수선한 것을 발견했다. 어떤 사람은 다행이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던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내가 낯선 남자의 품에 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키가 큰 그 남자의 숨이 내 주변을 감싸는 듯했다. 남자는 까만 마스크를 끼고 있었는데 그 속을 알 수 없이 깊은 검은 눈동자가 나를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두 눈은, 이유를 모르게 어디서 본 적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남자의 팔을 꽉 잡았다. 두 눈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나를 사뿐히 내려놓고 아무 말하지 않고 그의 팔을 잡고 있는 내 손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제야 실수했다는 것을 느끼고 손을 뒤로 뺐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누군가가 나의 캐리어를 주워서 나의 옆에 가져다주었다. “조심하세요, 위험합니다. 이 남자분이 나서줘서 다행이에요!”난 또 한 번 그 남자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어디... 가세요?”남자는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전...”나는 그를 보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서 들어 본 듯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 남자를 자세히 관찰했다. 우월한 기럭지, 도도하고 차가운 듯한 기품과 깊고 맑은 눈동자...남자는 나의 의문점을 눈치챈 모양인지 바로 마스크 한쪽을 벗어서 잘생긴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잠시 멈칫하다가 놀라서 작게 웃음을 흘렸다. “배, 배현우 씨!”나는 그제야 알았다. 왜 그 눈동자가 익숙했던 것인지. 오전에 천우 그룹에서 본, 조 대표를 대신해 회의에 참석한 배현우였다. 그는 또 마스크를 쓰고는 얘기했다.“늦었는데, 같이 돌아갈까요?”이 남자가 나에게 준 인상은 꽤 깊었다. 과묵하고 결단력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놀란 나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무서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이게 내 환각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시 눈을 크게 뜨고 보았다. 하지만 다시 보아도 그 두 얼굴은 하나는 신호연이고 하나는 신연아였다. 나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신호연이 바람이 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여자와 침대에서 뒹굴고 있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지금 그가 안고 있는 게 그의 여동생인 신연아라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나는 번개를 맞은 것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대로 문을 박차고 들어갔을 거지만 나는 머리가 새하얘지고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바닥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시야 속의 두 남녀는 여전히 침대에서 격렬히 뒹굴었고 나의 눈은 커지다 못해 아파질 정도였다. 마지막 남은 정신을 붙잡은 나는 겨우 휴대폰을 꺼내 떨리는 손으로 사진 몇 장을 찍고 비디오도 녹화한 후 조용히 나갔다. 속이 울렁거려 금방이라도 토할 것만 같았다. 나는 손으로 입을 꾹 막은 채 황급히 달려가 속을 게워 냈다. 나는 미친 듯이 아파트 단지를 뛰쳐나가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달렸다. 마치 채찍질 당한 팽이처럼 빠르게 달리기만 했다. 정해진 방향도 없고 목적지도 없이 그저 달릴 뿐이었다. 머릿속에는 그저 세 글자뿐이었다. 더럽다. 나는 저도 모르게 한강 보행로까지 달려왔다. 어슴푸레한 불빛이 비치는 강을 보며 내 가슴속에 묵혀있던 덩어리가 폭발하는 듯했다. 이제는 모든 게 확실해졌다. 똑똑히 알 것 같았다. 신호연이 자기 여동생과 바람을 피우다니. 어쩐지 신연아가 항상 나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어쩐지 신호연이 항상 오만한 신연아가 선을 넘어도 그녀를 보호하고 감싸주었다. 심지어는 자기 딸도 생각하지 않고 신연아가 딸을 괴롭히게 놔두었다. 게다가 대놓고 진후 빌딩을 드나들며 사모님 행세를 했다. 어쩐지 서강훈이 신호연의 불륜녀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신호연은 아예 감
그 순간 나는 결국 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전혀 강한 사람이 아닌데, 나도 조금 전의 내가 어디서 그렇게 큰 용기가 나서 냉정하게 사진을 찍고 나서야 집에서 뛰쳐나왔는지 모르겠다.배현우는 머뭇거리다가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의 동작은 매우 절제되고 매너가 넘쳤다. 하지만 이 순간, 낯선 사람의 위로조차도 나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의 다독임 같아서 마음속 장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나는 엄마 잃은 아이처럼 갑자기 그를 안고 다시 흐느끼며 울었다. 뜻밖에도 오늘 그를 몇 번이나 마주쳤고 그에게 나의 초라한 모습을 보였다.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울음을 멈추었다. 아마도 눈물이 메말라서인 것 같다.나를 토닥이는 그의 깊은 눈동자는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먼 곳의 하늘가에 이미 옅은 회백색이 떠올랐고 어두운 하늘은 점점 물러갔다. 아침이 곧 밝아올 것 같았다.“현우 씨, 고마워요. 저 친구 집에 가려고요. 골드 빌리지에 있어요.”나는 그에게 얘기했다. 그는 나를 꼭 껴안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초라한 모습으로 이미연 앞에 나타났을 때 그녀는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힘껏 반쯤 감긴 눈을 비볐다.“지아야,너... 너 왜 그래? 친정에 간다고 하지 않았어?”나는 그녀의 품속에 안겼다.“미연아...”그녀는 나의 뻣뻣하고 차가운 몸을 껴안은 채 욕실까지 데려다줬다.“일단 얘기하지 말고 울지도 마. 가서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나와. 알겠지?”나는 감각을 잃은 사람처럼 욕실에 들어갔다. 온몸이 벌벌 떨려서 윗니가 아랫니를 ‘다닥다닥’하고 두드리는 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었고 그 소리는 매우 소름 끼쳤다. 나는 손을 뻗어 온수기를 들어놓고는 아래에 서서 따뜻한 물이 내 몸을 흥건히 적시도록 내버려 두었고 조금씩 온도를 높였다. 나는 따뜻한 물을 느끼며 점차 의식을 회복하고 이성을 되찾았다. 이미연이 노크를 두 번이나 하고 나서야 나는 밖으로 나와 그녀가 준비해 준 옷으로 갈아입었고 그녀가 끓여 준 생강차를 마셨다.그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