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눈을 꼭 감았다. 커다란 물체에 튕겨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찰나, 나는 누군가가 나의 몸을 감싼 채 나를 데리고 옆으로 피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한 나는 주변이 어수선한 것을 발견했다. 어떤 사람은 다행이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었던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자 내가 낯선 남자의 품에 안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키가 큰 그 남자의 숨이 내 주변을 감싸는 듯했다. 남자는 까만 마스크를 끼고 있었는데 그 속을 알 수 없이 깊은 검은 눈동자가 나를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두 눈은, 이유를 모르게 어디서 본 적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남자의 팔을 꽉 잡았다. 두 눈은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나를 사뿐히 내려놓고 아무 말하지 않고 그의 팔을 잡고 있는 내 손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제야 실수했다는 것을 느끼고 손을 뒤로 뺐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누군가가 나의 캐리어를 주워서 나의 옆에 가져다주었다. “조심하세요, 위험합니다. 이 남자분이 나서줘서 다행이에요!”난 또 한 번 그 남자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어디... 가세요?”남자는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전...”나는 그를 보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디서 들어 본 듯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 남자를 자세히 관찰했다. 우월한 기럭지, 도도하고 차가운 듯한 기품과 깊고 맑은 눈동자...남자는 나의 의문점을 눈치챈 모양인지 바로 마스크 한쪽을 벗어서 잘생긴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잠시 멈칫하다가 놀라서 작게 웃음을 흘렸다. “배, 배현우 씨!”나는 그제야 알았다. 왜 그 눈동자가 익숙했던 것인지. 오전에 천우 그룹에서 본, 조 대표를 대신해 회의에 참석한 배현우였다. 그는 또 마스크를 쓰고는 얘기했다.“늦었는데, 같이 돌아갈까요?”이 남자가 나에게 준 인상은 꽤 깊었다. 과묵하고 결단력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놀란 나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무서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이게 내 환각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시 눈을 크게 뜨고 보았다. 하지만 다시 보아도 그 두 얼굴은 하나는 신호연이고 하나는 신연아였다. 나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신호연이 바람이 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여자와 침대에서 뒹굴고 있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지금 그가 안고 있는 게 그의 여동생인 신연아라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나는 번개를 맞은 것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대로 문을 박차고 들어갔을 거지만 나는 머리가 새하얘지고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바닥에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시야 속의 두 남녀는 여전히 침대에서 격렬히 뒹굴었고 나의 눈은 커지다 못해 아파질 정도였다. 마지막 남은 정신을 붙잡은 나는 겨우 휴대폰을 꺼내 떨리는 손으로 사진 몇 장을 찍고 비디오도 녹화한 후 조용히 나갔다. 속이 울렁거려 금방이라도 토할 것만 같았다. 나는 손으로 입을 꾹 막은 채 황급히 달려가 속을 게워 냈다. 나는 미친 듯이 아파트 단지를 뛰쳐나가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달렸다. 마치 채찍질 당한 팽이처럼 빠르게 달리기만 했다. 정해진 방향도 없고 목적지도 없이 그저 달릴 뿐이었다. 머릿속에는 그저 세 글자뿐이었다. 더럽다. 나는 저도 모르게 한강 보행로까지 달려왔다. 어슴푸레한 불빛이 비치는 강을 보며 내 가슴속에 묵혀있던 덩어리가 폭발하는 듯했다. 이제는 모든 게 확실해졌다. 똑똑히 알 것 같았다. 신호연이 자기 여동생과 바람을 피우다니. 어쩐지 신연아가 항상 나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어쩐지 신호연이 항상 오만한 신연아가 선을 넘어도 그녀를 보호하고 감싸주었다. 심지어는 자기 딸도 생각하지 않고 신연아가 딸을 괴롭히게 놔두었다. 게다가 대놓고 진후 빌딩을 드나들며 사모님 행세를 했다. 어쩐지 서강훈이 신호연의 불륜녀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신호연은 아예 감
그 순간 나는 결국 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전혀 강한 사람이 아닌데, 나도 조금 전의 내가 어디서 그렇게 큰 용기가 나서 냉정하게 사진을 찍고 나서야 집에서 뛰쳐나왔는지 모르겠다.배현우는 머뭇거리다가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의 동작은 매우 절제되고 매너가 넘쳤다. 하지만 이 순간, 낯선 사람의 위로조차도 나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의 다독임 같아서 마음속 장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나는 엄마 잃은 아이처럼 갑자기 그를 안고 다시 흐느끼며 울었다. 뜻밖에도 오늘 그를 몇 번이나 마주쳤고 그에게 나의 초라한 모습을 보였다.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울음을 멈추었다. 아마도 눈물이 메말라서인 것 같다.나를 토닥이는 그의 깊은 눈동자는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먼 곳의 하늘가에 이미 옅은 회백색이 떠올랐고 어두운 하늘은 점점 물러갔다. 아침이 곧 밝아올 것 같았다.“현우 씨, 고마워요. 저 친구 집에 가려고요. 골드 빌리지에 있어요.”나는 그에게 얘기했다. 그는 나를 꼭 껴안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초라한 모습으로 이미연 앞에 나타났을 때 그녀는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힘껏 반쯤 감긴 눈을 비볐다.“지아야,너... 너 왜 그래? 친정에 간다고 하지 않았어?”나는 그녀의 품속에 안겼다.“미연아...”그녀는 나의 뻣뻣하고 차가운 몸을 껴안은 채 욕실까지 데려다줬다.“일단 얘기하지 말고 울지도 마. 가서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나와. 알겠지?”나는 감각을 잃은 사람처럼 욕실에 들어갔다. 온몸이 벌벌 떨려서 윗니가 아랫니를 ‘다닥다닥’하고 두드리는 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었고 그 소리는 매우 소름 끼쳤다. 나는 손을 뻗어 온수기를 들어놓고는 아래에 서서 따뜻한 물이 내 몸을 흥건히 적시도록 내버려 두었고 조금씩 온도를 높였다. 나는 따뜻한 물을 느끼며 점차 의식을 회복하고 이성을 되찾았다. 이미연이 노크를 두 번이나 하고 나서야 나는 밖으로 나와 그녀가 준비해 준 옷으로 갈아입었고 그녀가 끓여 준 생강차를 마셨다.그 순
이것은 나의 삶에 대한 맹세이다. 나는 새로운 삶을 살 것이고 새로운 자아로 살 것이다. 이미연은 내 표정이 독해진 걸 보고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다독였다. “뭐라도 좀 먹어.”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는 얼른 성큼성큼 걸어 나가서 음식 준비를 하였다. 나는 나의 기분과 외모를 정리하고는 방을 나섰다. 밥을 먹고 나서 나는 입을 열었다.“콩이 데리러 가려고.” “너 괜찮아? 아니면 그냥 맘 편히 이곳에서 며칠 쉬고 있어.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가.”나는 그녀가 나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보며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나, 쉽게 죽지 않을 거야. 반드시 나의 모든 것들을 돌려받을 거야. 반드시!”“하지만 네가 친정에 가지 않은 것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이미연은 조금 걱정스러워하며 말했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나에게 다 계획이 있어.” 그리고 나는 내 옷으로 갈아입고 가방을 들어 휴대폰을 켜고는 떠나기 전 이미연에게 당부했다. “미연아, 그 외투 세탁 맡겨줘.”“내가 데려다줄게.”이미연도 황급히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었고 그 외투를 챙겨서 함께 나섰다. 가는 도중 이미연은 나에게 어떻게 할지 물었고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절대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 휴대폰을 켜자마자 딩동 하는 알림음이 쉬지 않고 울렸다. 나는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엄마는 유쾌한 목소리로 아빠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고 말해줬다.나는 드디어 한숨을 내뱉었다. 하느님이 보고 계시는구나! 나는 엄마에게 태풍이 지나면 꼭 갈 거라고 얘기했다. 전화를 끊고 기록을 확인해 보니 신호연에게서 몇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나는 도무지 그에게 전화할 용기가 없었고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친정에 가지 못했으니 오늘 아이 픽업을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얘기했다.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모든 것은 일상으로 돌아갔고 신호연은 우리를 보고는 즐거운 얼굴로 맞이했
그날 밤, 나는 강렬한 심리적 장애를 극복하고 그 더러운 침대에 누웠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하는 것이 내 복수의 첫걸음이라고 스스로 끊임없이 말했다.밤에 신호연은 가까이 다가와 나를 안았고 나는 바로 그를 밀어버렸다.“나 생리 왔으니 가까이 오지 마. 예민하니깐.”“나 당신이 화나 있는 걸 알고 있어. 다 내 잘못이야. 그러니 여보, 화내지 마.” “빨리 자. 난 그냥 친정 일이 걱정될 뿐이야. 아버지의 컨디션이 어떤지도 모르고. 무슨 화를 냈다고 그래. 그만 징징대.”나는 어두운 밤을 빌려 나의 마음을 애써 감춰버렸다.그는 기뻐하며 다가와 나의 볼에 뽀뽀를 하였다.“걱정하지 마. 좋은 사람은 복을 타고났어.” 나는 너무 징그러워서 이불 속에 있는 손을 꼭 잡았고 마음속으로는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그가 뻔뻔스럽게 자신의 여동생과도 몸을 섞었다는 사실에 나는 토가 나올 것 같았다. 만약 나의 모든 것을 되찾기 위하여 지금 애써 참고 있지 않다면, 난 반드시 모든 대가를 아까워하지 않아 하며 신 씨 집안을 패가망신시켜 버릴 것이다.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 돈도 없고 집도 나의 명의로 된 것도 아니다. 나는 딸에게 큰 집을 줄 것이라고 약속했기에 절대로 그 약속을 깨면 안 된다. 어둠 속에서 나는 어떻게 하면 가장 짧은 시간에 나의 모든 것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이 짐승과 함께 있고 싶지 않다. 이렇게 한 침대에 누워 있는 것도 나에게는 일종 모독이다.이 순간까지 나는 나의 냉정함에 정말 감탄했다. 어젯밤에 섣불리 뛰어 들어와 분노를 터뜨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말이다.이튿날, 나는 구 변호사를 만나러 갔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증거와 약간의 재무 데이터를 변호사에게 제공했으며 자세하게 모든 사건의 상황을 그에게 이야기했다. 구 변호사마저 약간 경악했다. 하지만 그는 전문적인 관점에서 나를 도와 현재 상황을 분석했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그가 바람을 피웠다는 증거가 있다고 해도 나의 승산은
집에 돌아온 뒤 나는 또 이것을 전혀 숨기지 않고 그대로 신호연에게 말해주었다. 그는 뿌듯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칭찬했다.“여보, 당신은 정말 현명한 내조를 하는 여자야. 사리 분별을 제대로 할 줄 알고 사람의 환심을 살 줄 알고 말이야.”“환심을 사는 게 아니고 난 진심이라고.”나는 그의 말을 정정하고 계속 입을 열었다.“서강훈 씨는 확실히 고생을 많이 했잖아. 이 몇 년 동안 회사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도 많이 했고. 당신은 남자니깐 이렇게 섬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지 못하는 건 당연한 거지. 그런데 여자들은 말이야, 이런 소소한 것에 좋아하고 행복해해.”사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그의 걱정을 없애기 위해서이다. 내가 만약 이 일을 숨겼다가 나중에 이 여우 같은 인간이 알게 되면 그는 반드시 경계심을 세울 것이다. 나는 티 내지 않고 그를 무장해제 시켜야 한다.이 충분한 명분으로 나는 고객들의 아내와 빈번하게 만나면서 친하게 지냈고 이후를 위한 기초를 다졌다.그러나 신호연이 보기에 단지 여자의 꼼수에 지나지 않았다. 같이 식사를 하고 샵에 가서 머리를 하는 행동들은 이상한 것도 없었다.내가 바삐 보내고 있는 하루는 그가 보기에 아무 일도 아니고 어떠한 파장도 일으키지 못하는 사소한 일들이다. 심지어 그는 이렇게 하면 얼굴도 익히고 좋은 것 같다고 몇 번이고 칭찬을 하였다. 나도 의기양양해하며 큰소리로 그는 밖에서 사무를 처리하고 나는 내조를 담당할 것이라고 얘기했다.신호연도 자연스럽게 이 사실에 기뻐하였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그를 수없이 욕하고 그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재차 다짐을 하였다. 저녁을 먹고 있을 때 나는 갑자기 그에게 물었다.“집 비용은 언제 돌려받을 수 있어?”“곧 받을 수 있어. 수복 가든이 완공하여 결산을 받으면 바로 메꿀 수 있어.”그는 덤덤하게 말했다.“빨리 서둘러! 이 돈이 지금 계좌에 없으니깐 나 자꾸 불안해.”나는 사실대로 속마음을 말하면서 그를 바라보았다.“당신도 이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즉시 이미연에게 전화를 걸어 그 외투에 대해 물었고 그녀는 듣자마자 높은 소리로 답했다.“오 마이 갓, 나 잊고 있었어. 그 옷 아직 세탁소에 있어.”“괜찮아, 그러면 그냥 내가 가지러 갈게.”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나는 배현우의 연락처가 없다는 사실이 생각났다.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배현우의 연락처를 찾아보았지만 아무런 수확도 없이 그 사람 자체가 검색이 되지 않았다. 보아하니 그는 천우 그룹에서 그다지 중요한 인물이 아닌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검색이 안 될 리가 없다.나는 그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 보았는데 그의 이미지와 포스는 결코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그도 그럴 것이 천우 그룹 같은 대기업은 일반 사원도 출중한 사람일 것이다.어떻게 배현우의 연락처를 알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가 신호연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나더러 그의 사무실에 잠깐 오라고 하였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도착해 보니 신호연이 나더러 저번에 천우 그룹 방문 시 정리했던 자료를 체크하라고 했고 난 깔끔히 정리하여 그에게 전달했다. 이런 부분에 관하여 나는 절대 소홀히 대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건 큰 프로젝트이고 신흥건재는 내가 직접 세운 회사이기에 절대 신흥건재 발전에 영향 가는 일은 하지 않는다.나는 또 특별히 신호연에게 독점 신제품에 중점을 두라고 당부했다.말을 마치기도 전에 서강훈이 다가와 신호연에게 상황 보고를 하였다. 방금 통지를 받았는데 업계에서 열리는 파티의 티켓을 받았다고 말했다.나도 참가 리스트를 대충 훑어보았는데 수많은 대기업들이 리스트에 있었다. 이것은 정말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신호연에게 그와 함께 참석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는 내키지 않았지만 가서 시야를 넓히고 싶다는 나의 애원에 그는 결국 같이 파티에 참석하는 걸 허락하였다.예전의 나는 이런 파티에 참석하여 얼굴을 비치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런 기회가 생기면 신호연에게 참가하라
사실 그의 차가운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칠 때 나는 이상하게 두근거렸고 조금 어색했다. 그 차디찬 밤의 이야기를 나는 여전히 새록새록 기억하고 있고 불과 며칠 전에 발생한 일이니 그도 분명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그날 밤 나는 미친 듯이 울부짖었고 그가 보기에 강에 투신까지 하였고 온갖 초라한 꼴을 다 보였는데 지금 이 순간 신호연 옆에 서서 애정을 과시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웃긴 일인가.그의 시선에 나는 저도 모르게 신호연의 팔을 끼고 있던 손을 내렸고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조민성이 걸어오는 걸 보고는 그 아첨꾼들은 서로 앞다퉈 인사를 건넸고 신호연도 마찬가지였다.나는 쌀쌀맞은 시선으로 그 사람들의 “진심”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배현우가 신호연을 바라보는 눈빛을 캐치했는데 그의 눈빛 속에 경멸이 담겨 있었다.조민성도 다른 사람에게 배현우를 소개해 주지 않았고 배현우도 다른 사람을 소개받을 생각이 없었다. 그저 바로 나의 옆에 다가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지아 씨, 아니다. 사모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지아 씨가 좀 더 듣기 좋네요.”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오늘 오실 줄은 몰랐네요.”“네.”그는 술 한 모금을 마시고 나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기분 좋아 보이는데요?”“연기는 계속 이어가야죠. 저에게 말씀하셨잖아요. 모든 자신에게 달렸다고요.”나는 교묘하게 답했다.“현우 씨, 저 아직 연락처가 없어서 외투도 돌려드리지 못했네요. 혹시 시간 되실 때 밖에서 커피 한잔 괜찮을까요? 겸사겸사 외투도 돌려드리고요.”그는 고개를 숙여 술 한 모금을 마실 뿐 나에게 그의 연락처를 주지 않았다. 알려주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모습에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마침 신호연이 나와 배현우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걸 보고는 나의 허리에 손을 올리고 웃으며 물었다.“지아야, 이분은...?”“아, 이분은 천우 그룹의 배현우 씨야.”나는 신호연에게 소개를 하였고 배현우를 바라보았다.“현우 씨, 이분은 저의 남편이자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