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맞아.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다가 모든 걸 잃고, 원래부터 나의 것이었던 모든 물건들을 잃을 수는 없었다. 차라리 내가 쟁취했다가 잃은 거라면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휴대폰은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이미연의 차가운 시선을 마주하며 나도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생각도 정리되었다. “네 말이 맞아.”나는 얼굴을 닦고 이미연에게 말했다. “다행이야, 이럴 때 너같이 냉정한 사람이 내 곁에 있어서 다행이야. 내가 정신을 차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니까.”휴대폰이 다시 울릴 때, 나는 내 감정을 잘 억누르고 이미연한테서 휴대폰을 받았다. 이미연은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넌 잘할 수 있어!”깊게 숨을 들이킨 나는 휴대폰을 들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여보! 왜 이제야 전화를 받는 거야! 우리 카드 안의 돈은 다 어디 간 거야? 콩이가 새벽에 급성 폐렴으로 병원에 왔는데 현금이 없어서 카드에서 현금을 꺼내려고 했는데 돈이 하나도 없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이미연은 나의 말을 듣더니 이마를 쳤다. 하지만 나는 신호연에 대해서 잘 알았다. 이렇게 말해야 더욱 나다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신호연은 더욱 경계할 것이다. “아... 여보, 걱정하지 마! 돈은 내가 잠시 썼어. 돌아가서 얘기해 줄게.”아니나 다를까, 신호연은 바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콩이는 지금 어때?”“아직도 링거를 맞고 있어. 열이 39.5도까지 올랐어. 진짜 심각해. 언제 돌아올 거야? 제발 빨리 돌아와!”나는 일부러 조급해하며 얘기했다. “나 너무 무서워! 새벽에 시부모님도 다녀가셨어! 다음에 돈을 쓰면 나한테 먼저 얘기해 주면 안 돼? 당신이 집에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예전 같으면 이런 대화는 매우 정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한테 예전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나도 거짓말을 잘하는 재능이 있는 걸까.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다. “알겠어. 바로 돌아갈
나는 그저 헛웃음 터뜨렸다. 어떻게 생각해도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얘기하지 못했다. 나도 더 묻지 않고 내일 보기로 했다. 신씨네 집에 돌아와 보니 일가족이 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신연아도 있었다. 내가 돌아온 것을 본 시어머니는 반찬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일단 밥부터 먹자. 지아가 오랜만에 왔잖아?”나는 웃으며 얼른 손을 씻고 도왔다. 한 가족이 모이니 꽤 즐거웠다. 식사할 때 시아버지가 갑자기 신호연에게 출장에 관한 일을 물었다. 신호연은 대충 둘러대며 그저 일을 했다고 말했다. 시어머니는 또 신연아에게 물었다. “넌 네 오빠를 따라가서 뭐 했니?”시어머니의 말에 신연아는 그대로 굳어버려 신호연을 보았다. 신호연은 바로 되물었다. “너도 안양에 갔어?”신연아는 잠시 변명할 거리를 찾는 것인지 굳어버렸다가 대답했다. “아, 나 친구랑 놀러 갔어요!”“그러면 왜 오빠랑 갔다고 거짓말을 해.”시어머니가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신연아는 오히려 화를 냈다. “내가 안양에 가겠다고 하면 보내줄 거예요? 맨날 나가놀지 못하게 하면서.”그들의 대화를 들으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느낌이었다. 갑자기, 신호연에게 나보다 신연아가 더욱 중요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 집에서, 이 몇 사람 중에서 나만 외부인이었다. 매번 식사를 할 때의 화제도 거기서 거기였다. 신연아더러 빨리 남자친구를 찾으라고 독촉하면 나는 옆에서 묵묵히 콩이를 살필 뿐, 그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후 신연아는 나갈 준비를 했다. 신호연은 갑자기 물었다. “이렇게 늦었는데 어딜 가는 거야.”“신경 꺼. 네 식구들이나 챙겨. 나는 나가서 바람 좀 쐬면 안 되냐? 남자친구 찾으러 간다, 왜!”신연아는 바로 신호연에게 공격적인 태도로 쏘아붙였다. 그리고 곧 신발을 신고 나가버렸다. 그 뒷모습에 신호연은 또 말을 붙였다. “빨리 돌아와!”나는 신호연을 힐끔 쳐다보았
나는 나 자신을 비웃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돌아갈 길을 생각하고 있다니. 상대는 이미 내 돈을 빼돌리고 있는데 나는 또 돌아갈 길을 생각하고 있었다. 뇌가 어떻게 된 걸까. 나도 모르겠다. 난 그냥 멍청이 같았다. 이미연이 한 말이 맞았다. 신호연은 나를 버렸는데 난 여전히 신호연을 생각하고 있으니. 여태까지 나는 불륜녀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있다. 신호연이 얼마나 교활한지 알 수 있는 점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불륜녀가 누구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건 그저 호기심일 뿐이었다. 보통 이런 일에 부딪히면 자기의 이익을 떼어간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결국 그 사람이 누구든지 중요하지는 않다. 이미 자기의 이익을 뺏긴 것만은 사실이 된다. 난 바로 이미연에게 얘기했다. “난 그 돈이 어디로 간 것인지 알고 싶어.”“이미 사람을 시켜서 찾아보고 있어. 너무 급해하지 마.”이미연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얘기하고 있었다. 대화를 마친 후 회사로 돌아온 나는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어떻게 해야 내가 세운 회사를 돌려받을 수 있는지. 나는 신호연을 원래 그대로 내쫓을 생각이었다. 그게 바로 내 유일한 소원이었다. 지금의 회사 사람들은 내가 언제 오든지 언제 가든지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사모님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까. 점심이 되자 사람들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그사이에 나도 할 일이 없어졌다. 신호연은 점심에 뭘 먹을 건지 물어보려고 그의 사무실로 갔다. 입구의 비서는 보이지 않았고 절반 열린 문에서 대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신호연은 여전히 사무실에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문을 열려고 하는데 안에서 서강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하지 마십쇼. 제가 형수님께 보여드린 자료들은 다 준비하라고 하신 자료들뿐입니다. 역시 신 대표님이 한수 앞을 내다보시는군요! 하지만 제가 봤을 때 형수님은 사실 회사에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회사에 있는 시간도 길지 않거든요. 제가 볼 때는 출근을 핑계로 대표님을
나의 질문에 신호연은 그만 굳어버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가 집을 사려고 저축한 돈 말이야! 그 돈 빨리 찾아와야 해! 내가 좋은 집 발견하기만 하면 바로 사들일 거니까. 더는 시간을 끌기 싫어. 게다가 이번에 콩이가 넘어진 후 더 마음이 급해졌어. 좀 좋은 어린이집을 찾아야 할 것 같아. 영재 유치원 같은 곳 말이야.”신호연은 계속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더욱 눈치 없는 것처럼 굴었다. “왜 말이 없어? 내 말이 듣기 싫어?”신호연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럴 리가. 남편인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 돈은 내가 프로젝트에 일단 투자해 놨어. 많은 사람들이 연관 된 프로젝트라서 내가 급한 마음에 그 돈을 써버렸네. 회사가 이렇게 잘 굴러가고 있는데 우리가 집을 살 돈이 없겠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당신은 신경 쓰지 마.”신호연은 환하게 웃으며 내 코를 부드럽게 눌렀다. 그 웃음은 가식적인 웃음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의 식사는 동상이몽이었다. 나는 그 돈이 정말 아까웠다. 빨리 돈의 행방을 알아내서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말하기 전에 가져와야 한다. 사무실에 돌아온 나는 이미연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서강훈의 사진을 보내 그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다. 신호연은 요 며칠 몸을 사리고 있을 테니.온 오후, 나는 착실하게 사무실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신호연이 나를 위해 준비한 특별한 자료를 보았다. 나는 신호연이 나를 배신하게 만든 그 여자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호연은 요 며칠동안 정상적으로 출퇴근을 했고 서강훈은 자주 회사를 드나들었다. 신호연이 이렇게 조심스럽게 행동하면 불륜녀도 조용히 집에서 몸을 숨기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월요일 아침, 나는 신호연과 함께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같이 회사로 돌아왔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내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는 외투를 벗고 휴대폰을 들어 스크
“공유해 드릴게요! 진짜 대단하거든요!”짧은 몇 마디가 사람을 절망 속으로 빠지게 만든다. 불륜녀가 말하는 “대단”한 것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나는 그만 화가 나서 휴대폰을 바닥에 꽂을 뻔했다. 크게 심호흡하며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을 참고 있었다. 이건 분명한 도발이었다!감히 내 앞에서 도발하고 있었다! 나는 이를 뿌득뿌득 갈다가 눈을 감고 깊게 심호흡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휴대폰을 들고 내 가방을 챙긴 후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미연을 보자마자 나는 억울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녀의 품속에서 엉엉 울었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들이 끊이지 않는 것인지. 조금도 마음이 편안한 날이 없었다. 이미연은 사진을 확인한 후 화가 나서 소리를 몇 번 지르고 주먹을 가만두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억울함을 공감해 주었다. “진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미친 거 아니야? 완전 미친 게 틀림없어!”우리 둘 다 진정한 후 나는 이미연에게 얘기했다. “절대 이대로 넘어가지 않아. 이건 분명히 나를 화나게 만들려는 거야. 우리는 아직 불륜녀의 정체를 모르니까 불리해. 불륜녀가 이런 짓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겠어. 아니면 불륜녀가 감히 내 앞에 나타나기라도 할 건가? 어차피 내 앞에 당당히 나서지도 못하잖아!”“그래, 맞아. 에휴... 진짜, 요즘 불륜녀는 이렇게 막 나가니? 창피함이라는 건 모르고 사나 봐?”이미연은 또 화가 치밀어 올라서 욕을 퍼부었다. “우리가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 우리랑 친한 사람일 거야. 내가 이미 회사로 출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일 거야. 내가 신호연과 떨어지지 않고 다니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거지!”이건 나의 예감이었다. 이미연은 내 옆에 앉아 얘기했다. “지아야, 계속 이렇게 냉정함을 유지하면 좋을 것 같아. 네 말이 맞아. 난 우리 둘과 우리의 조력자들까지 합심해서 꼭 그 불륜녀를 찾아낼 거야! 지금은 불륜녀가 우리의 예상을 빗나갔다는 게 문제야. 곧 네 앞에 나타
꼬리가 길면 밟힌다더니, 마침내 서강훈의 꼬리도 드러나게 되었다. 이미연이 나한테 이 일을 얘기해 줄 때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서강훈이 매일 드나드는 곳은 바로 골드 빌리지였다. 골드 빌리지는 금방 개발된 작은 별장이었다.그러자 나는 바로 그 열쇠가 떠올랐다. 어떠한 실마리도 없던 그 열쇠가 혹시 골드 빌리지와 연관이 있는 건가? 가슴 속에 큰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답답했다.오랜 시간 동안 같이 역경을 이겨내고 고생하면서 콩이한테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자고, 좋은 학구의 집으로 이사 가자고 몇 번이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신호연은 자꾸만 화제를 돌리고 시간을 끌면서 집을 사지 않았다. 그러고는 골드 빌리지에 작은 별장을 샀다.바람을 피운 신호연의 행동은 그에 대한 내 생각을 계속 뒤엎고 있었다. 신호연은 실수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쓰레기였다.위치를 확인한 나는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다. 이미연이 사람을 시켜 관찰하게 했다. 그 집에 사람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 이미연이 나한테 연락해 빨리 오라고 했다.나는 아무 핑계나 대고 빨리 골드 빌리지로 가 이미연을 따라 그 별장에 도착했다. 아담한 별장이었지만 곳곳에 디테일을 신경 쓴 흔적이 보였다. 그런 별장을 눈앞에 둔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입구에 선 채 숨을 가다듬었고 이미연은 계속해서 신호연의 욕을 했다. 열쇠를 꺼낸 나의 손바닥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열쇠를 문에 꽂자 문이 열렸다. 나는 열린 문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이미연이 나를 당겨서 들어가지 않았으면 나는 계속 그곳에 서 있었을 것이다. 내가 꿈에 그리던 골드 빌리지. 내 돈으로 사들인 골드 빌리지가 왜 나에게 사주는 것이 아닌가. “그 돈을 여기에 쓴 거구나. 나도 참 바보 같지. 내 눈앞에서 이렇게 큰일이 일어났는데 난 아무것도 몰랐으니까!”내가 담담하게 얘기했다.“화내지 마, 지아야.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잖아. 신호연 그놈, 언젠가는 이런 일을 벌일 놈이었어! 그냥 네 운이 안 좋았던 거야!
겉과 속이 달라 연기를 해야 하는 나에게 요 며칠은 진짜 힘들었다. 감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사는 부부들이 대단하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우리 세 식구의 삶이 연기 같았다. 각자 자기 대본만 있는, 그런 드라마 말이다. 나나 신호연이나 서로 지지 않는 연기를 선보이는 듯했다. 콘돔을 발견한 후로부터 나는 그와 잠자리를 가지지 않았다. 그가 조금이라도 나에게 스킨십을 하면 나는 미친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게다가 불륜녀가 보내온 그 두 사진을 본 후에는 더욱 메스꺼웠다. 신호연이 나를 다치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럴 때마다 신호연은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려고 하지만 나는 괜찮다고 고집을 부렸다.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나를 병원에 데려갈 그였지만 이제는 그대로 나를 포기하는 신호연을 보며 우리 사이가 점점 멀어짐을 느꼈다. 요 며칠 나는 힘을 내서 이미연이 해킹해 온 진짜 데이터를 보게 되었다. 근년 간의 매출액이 생각보다 낮지 않은데다가 나의 예상보다 훨씬 높아 나는 매우 놀랐다.하지만 고객 중의 80% 정도가 내가 데려온 고객이었다. 그 당시에 그들의 잠재력을 보고 내가 점찍어 놓은 고객들이었는데 몇 년 안에 꽤 성장하여 신호연이 떼돈을 벌게 했다. 나의 공로였지만 보상은 편안히 놀고 있는 신호연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러니 신호연이 눈을 밖으로 돌릴 기회를 만들어 준 셈이다. 신호연이 나에게 준 자료는 그가 요즈음에 새로 개발한 회사 같았다. 이 회사 중에서 랜덤으로 뽑아서 찾아본 결과 개발 회사라고 하지만 그냥 투기로 먹고사는 유령회사였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장부에서 보면 그 회사들은 돈을 갚을 능력이 약했다. 이미 많은 돈을 지급하지 않기도 했고. 하지만 신호연은 바보가 아니다. 많은 돈을 받지 않으면 그만큼 리스크도 커진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우리의 장부를 찾아보아도 자금이 많지 않았다. 돈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수상했다. 하
시간이 딱 맞았다. 서강훈은 내가 생각한 그 시간에 정확히 들어섰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불만스러운 말투로 투덜댔다.“사람은 다 어디간거야...”그의 입 모양이 바로 욕을 뱉어내려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서강훈은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는 나를 보고 입을 딱 벌린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그저 서강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서 부장!”한참 지나서야 입을 다문 서강훈이 어버버하며 겨우 말을 뱉었다. “사모, 사모님!”“왜요? 예상하지 못했나 봐요?”나는 여전히 웃으면서 서강훈을 바라보았다.“이리 와서 앉아요. 너무 급해하지는 말고. 일하는 분들은 제가 내보냈어요.”“저, 저기... 저 좀 나가서 통화 좀 하고 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그... 일하시는 분들 시급을 챙겨드려야 해서...”서강훈은 말끝도 제대로 맺지 않고 빨리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서강훈 씨! 일하시는 분한테 통화하는 건 이따가 해요.”나는 조급해하지 않고 그에게 물었다. 나의 차가운 목소리가 공허한 거실에서 울려 퍼지자 조금은 무서웠다. 서강훈의 발걸음도 거기에서 굳어버렸다. 고개를 돌려 흔들리는 동공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입가의 근육이 계속해서 떨렸고 얼굴도 점점 창백해졌다. “제가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제 말을 들어주는 게 어때요? 얼른 와서 앉아요. 서강훈 씨를 찾으러 온 거란 말이에요. 서강훈 씨한테 할 말이 있어서 일부러 일하시는 분들도 내보낸 건데!”나는 담담하게 서강훈을 바라보았다. 긴장한 서강훈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까지 맺혀있었다.“왜요, 예전에는 지아 누님이라고 부르더니, 이제 서강훈 씨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가 봐요?”나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 예전에는 서강훈이 먼 곳에서부터 와 내 주변에서 항상 알짱거리며 나를 “지아 누님”이라고 부르곤 했다.서강훈은 마른세수를 하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낯빛이 어두워져서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걸어 들어왔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나는 알았다.“지아 누님, 그럴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