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질문에 신호연은 그만 굳어버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가 집을 사려고 저축한 돈 말이야! 그 돈 빨리 찾아와야 해! 내가 좋은 집 발견하기만 하면 바로 사들일 거니까. 더는 시간을 끌기 싫어. 게다가 이번에 콩이가 넘어진 후 더 마음이 급해졌어. 좀 좋은 어린이집을 찾아야 할 것 같아. 영재 유치원 같은 곳 말이야.”신호연은 계속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더욱 눈치 없는 것처럼 굴었다. “왜 말이 없어? 내 말이 듣기 싫어?”신호연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럴 리가. 남편인 내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 돈은 내가 프로젝트에 일단 투자해 놨어. 많은 사람들이 연관 된 프로젝트라서 내가 급한 마음에 그 돈을 써버렸네. 회사가 이렇게 잘 굴러가고 있는데 우리가 집을 살 돈이 없겠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당신은 신경 쓰지 마.”신호연은 환하게 웃으며 내 코를 부드럽게 눌렀다. 그 웃음은 가식적인 웃음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의 식사는 동상이몽이었다. 나는 그 돈이 정말 아까웠다. 빨리 돈의 행방을 알아내서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말하기 전에 가져와야 한다. 사무실에 돌아온 나는 이미연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서강훈의 사진을 보내 그에 대해 알아보라고 했다. 신호연은 요 며칠 몸을 사리고 있을 테니.온 오후, 나는 착실하게 사무실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신호연이 나를 위해 준비한 특별한 자료를 보았다. 나는 신호연이 나를 배신하게 만든 그 여자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호연은 요 며칠동안 정상적으로 출퇴근을 했고 서강훈은 자주 회사를 드나들었다. 신호연이 이렇게 조심스럽게 행동하면 불륜녀도 조용히 집에서 몸을 숨기고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월요일 아침, 나는 신호연과 함께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같이 회사로 돌아왔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내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나는 외투를 벗고 휴대폰을 들어 스크
“공유해 드릴게요! 진짜 대단하거든요!”짧은 몇 마디가 사람을 절망 속으로 빠지게 만든다. 불륜녀가 말하는 “대단”한 것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나는 그만 화가 나서 휴대폰을 바닥에 꽂을 뻔했다. 크게 심호흡하며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을 참고 있었다. 이건 분명한 도발이었다!감히 내 앞에서 도발하고 있었다! 나는 이를 뿌득뿌득 갈다가 눈을 감고 깊게 심호흡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휴대폰을 들고 내 가방을 챙긴 후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미연을 보자마자 나는 억울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녀의 품속에서 엉엉 울었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들이 끊이지 않는 것인지. 조금도 마음이 편안한 날이 없었다. 이미연은 사진을 확인한 후 화가 나서 소리를 몇 번 지르고 주먹을 가만두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억울함을 공감해 주었다. “진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미친 거 아니야? 완전 미친 게 틀림없어!”우리 둘 다 진정한 후 나는 이미연에게 얘기했다. “절대 이대로 넘어가지 않아. 이건 분명히 나를 화나게 만들려는 거야. 우리는 아직 불륜녀의 정체를 모르니까 불리해. 불륜녀가 이런 짓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겠어. 아니면 불륜녀가 감히 내 앞에 나타나기라도 할 건가? 어차피 내 앞에 당당히 나서지도 못하잖아!”“그래, 맞아. 에휴... 진짜, 요즘 불륜녀는 이렇게 막 나가니? 창피함이라는 건 모르고 사나 봐?”이미연은 또 화가 치밀어 올라서 욕을 퍼부었다. “우리가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 우리랑 친한 사람일 거야. 내가 이미 회사로 출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일 거야. 내가 신호연과 떨어지지 않고 다니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거지!”이건 나의 예감이었다. 이미연은 내 옆에 앉아 얘기했다. “지아야, 계속 이렇게 냉정함을 유지하면 좋을 것 같아. 네 말이 맞아. 난 우리 둘과 우리의 조력자들까지 합심해서 꼭 그 불륜녀를 찾아낼 거야! 지금은 불륜녀가 우리의 예상을 빗나갔다는 게 문제야. 곧 네 앞에 나타
꼬리가 길면 밟힌다더니, 마침내 서강훈의 꼬리도 드러나게 되었다. 이미연이 나한테 이 일을 얘기해 줄 때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서강훈이 매일 드나드는 곳은 바로 골드 빌리지였다. 골드 빌리지는 금방 개발된 작은 별장이었다.그러자 나는 바로 그 열쇠가 떠올랐다. 어떠한 실마리도 없던 그 열쇠가 혹시 골드 빌리지와 연관이 있는 건가? 가슴 속에 큰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답답했다.오랜 시간 동안 같이 역경을 이겨내고 고생하면서 콩이한테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자고, 좋은 학구의 집으로 이사 가자고 몇 번이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신호연은 자꾸만 화제를 돌리고 시간을 끌면서 집을 사지 않았다. 그러고는 골드 빌리지에 작은 별장을 샀다.바람을 피운 신호연의 행동은 그에 대한 내 생각을 계속 뒤엎고 있었다. 신호연은 실수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쓰레기였다.위치를 확인한 나는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다. 이미연이 사람을 시켜 관찰하게 했다. 그 집에 사람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 이미연이 나한테 연락해 빨리 오라고 했다.나는 아무 핑계나 대고 빨리 골드 빌리지로 가 이미연을 따라 그 별장에 도착했다. 아담한 별장이었지만 곳곳에 디테일을 신경 쓴 흔적이 보였다. 그런 별장을 눈앞에 둔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입구에 선 채 숨을 가다듬었고 이미연은 계속해서 신호연의 욕을 했다. 열쇠를 꺼낸 나의 손바닥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열쇠를 문에 꽂자 문이 열렸다. 나는 열린 문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이미연이 나를 당겨서 들어가지 않았으면 나는 계속 그곳에 서 있었을 것이다. 내가 꿈에 그리던 골드 빌리지. 내 돈으로 사들인 골드 빌리지가 왜 나에게 사주는 것이 아닌가. “그 돈을 여기에 쓴 거구나. 나도 참 바보 같지. 내 눈앞에서 이렇게 큰일이 일어났는데 난 아무것도 몰랐으니까!”내가 담담하게 얘기했다.“화내지 마, 지아야.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잖아. 신호연 그놈, 언젠가는 이런 일을 벌일 놈이었어! 그냥 네 운이 안 좋았던 거야!
겉과 속이 달라 연기를 해야 하는 나에게 요 며칠은 진짜 힘들었다. 감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사는 부부들이 대단하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우리 세 식구의 삶이 연기 같았다. 각자 자기 대본만 있는, 그런 드라마 말이다. 나나 신호연이나 서로 지지 않는 연기를 선보이는 듯했다. 콘돔을 발견한 후로부터 나는 그와 잠자리를 가지지 않았다. 그가 조금이라도 나에게 스킨십을 하면 나는 미친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게다가 불륜녀가 보내온 그 두 사진을 본 후에는 더욱 메스꺼웠다. 신호연이 나를 다치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럴 때마다 신호연은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려고 하지만 나는 괜찮다고 고집을 부렸다.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나를 병원에 데려갈 그였지만 이제는 그대로 나를 포기하는 신호연을 보며 우리 사이가 점점 멀어짐을 느꼈다. 요 며칠 나는 힘을 내서 이미연이 해킹해 온 진짜 데이터를 보게 되었다. 근년 간의 매출액이 생각보다 낮지 않은데다가 나의 예상보다 훨씬 높아 나는 매우 놀랐다.하지만 고객 중의 80% 정도가 내가 데려온 고객이었다. 그 당시에 그들의 잠재력을 보고 내가 점찍어 놓은 고객들이었는데 몇 년 안에 꽤 성장하여 신호연이 떼돈을 벌게 했다. 나의 공로였지만 보상은 편안히 놀고 있는 신호연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러니 신호연이 눈을 밖으로 돌릴 기회를 만들어 준 셈이다. 신호연이 나에게 준 자료는 그가 요즈음에 새로 개발한 회사 같았다. 이 회사 중에서 랜덤으로 뽑아서 찾아본 결과 개발 회사라고 하지만 그냥 투기로 먹고사는 유령회사였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장부에서 보면 그 회사들은 돈을 갚을 능력이 약했다. 이미 많은 돈을 지급하지 않기도 했고. 하지만 신호연은 바보가 아니다. 많은 돈을 받지 않으면 그만큼 리스크도 커진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우리의 장부를 찾아보아도 자금이 많지 않았다. 돈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수상했다. 하
시간이 딱 맞았다. 서강훈은 내가 생각한 그 시간에 정확히 들어섰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불만스러운 말투로 투덜댔다.“사람은 다 어디간거야...”그의 입 모양이 바로 욕을 뱉어내려다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서강훈은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는 나를 보고 입을 딱 벌린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그저 서강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서 부장!”한참 지나서야 입을 다문 서강훈이 어버버하며 겨우 말을 뱉었다. “사모, 사모님!”“왜요? 예상하지 못했나 봐요?”나는 여전히 웃으면서 서강훈을 바라보았다.“이리 와서 앉아요. 너무 급해하지는 말고. 일하는 분들은 제가 내보냈어요.”“저, 저기... 저 좀 나가서 통화 좀 하고 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그... 일하시는 분들 시급을 챙겨드려야 해서...”서강훈은 말끝도 제대로 맺지 않고 빨리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서강훈 씨! 일하시는 분한테 통화하는 건 이따가 해요.”나는 조급해하지 않고 그에게 물었다. 나의 차가운 목소리가 공허한 거실에서 울려 퍼지자 조금은 무서웠다. 서강훈의 발걸음도 거기에서 굳어버렸다. 고개를 돌려 흔들리는 동공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입가의 근육이 계속해서 떨렸고 얼굴도 점점 창백해졌다. “제가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제 말을 들어주는 게 어때요? 얼른 와서 앉아요. 서강훈 씨를 찾으러 온 거란 말이에요. 서강훈 씨한테 할 말이 있어서 일부러 일하시는 분들도 내보낸 건데!”나는 담담하게 서강훈을 바라보았다. 긴장한 서강훈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까지 맺혀있었다.“왜요, 예전에는 지아 누님이라고 부르더니, 이제 서강훈 씨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가 봐요?”나는 내 말에 피식 웃었다. 예전에는 서강훈이 먼 곳에서부터 와 내 주변에서 항상 알짱거리며 나를 “지아 누님”이라고 부르곤 했다.서강훈은 마른세수를 하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낯빛이 어두워져서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걸어 들어왔다.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얼마나 무거운지 나는 알았다.“지아 누님, 그럴 리
“전 정말 몰라요! 그저... 그저 신 대표님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밖에 몰라요. 그 불륜녀가 누구인지는 정말 모릅니다!”서강훈의 낯빛이 카멜레온처럼 순식간에 변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신 대표님... 신 대표님이...”“바람을 피우는 건 알면서 상대가 누구인지 모른다고요? 서강훈 씨...”“지아 누님, 진짜입니다! 전 정말 몰라요! 밖에서 데리고 다니신 적이 없거든요. 전 그저 뒷모습을 두 번 정도 본 게 다입니다...”나는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신호연이 꽤 조심하면서 다닌 모양이었다. 혹은 서강훈이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거나.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나는 화를 억누르면서 감정을 자제했다. “도와줘야 할 일이 있어요.”내가 또 화제를 돌렸다. 한껏 누그러진 말투에, 내가 한발 양보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역시나 서강훈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한숨을 돌리며 얘기했다.“네, 지아 누님이 얘기하시면 제가 꼭 하겠습니다!”“내게 숨기고 있던 재무 보고서와 최근의 고객 리스트를 줘요.”내가 과감하게 얘기했다.서강훈은 내 말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표정관리에 실패한 그는 마치 줄이 끊어진 인형 같았다. “지아 누님...”“왜요? 없어요?”내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지아 누님, 진짜 없어요... 예전의 재무 보고서는 이미 가져다 보여드렸습니다.”서강훈은 한껏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에게 얘기했다.“진짜 저한테 이러지 마세요...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요 몇 년간 신 대표님을 잘 따랐던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건 지아 누님의 회사잖아요! 저도 양심이 있죠! 끝까지 지아 누님을 따를 겁니다!”“신 대표를 끝까지 따르는 게 아니라요?”내가 차갑게 물었다. 말투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뻗어있었다.“...”나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서강훈을 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 소리가 공허한 거실에서 울려 퍼졌다. 고막을 울리는 소리는 그 어떤 욕설보다도 무서웠다. 나는 태연함을 잃지 않고 우아하게 서
내가 엘리베이터를 나서는 순간, 신호연의 표정이 살짝 굳더니 재빨리 정상으로 돌아왔다.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은 신호연이 또 고객과 몇 마디 하더니 나에게 그 여자를 소개해 주지도 않고 바로 신사처럼 그녀를 엘리베이터에 앉혀 보냈다. 나는 저도 모르게 그 여자를 흘깃 쳐다보았다. 지성적인 면이 있는 그 여자는 우아하고 기품이 흘러넘쳤다. 그 여자도 나를 보더니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천천히 닫혔다. “누구야?”내가 물었다.“그저 고객이야.”신호연의 대답은 너무나도 간단했다. 그리고 손을 뻗어 나의 어깨에 올리고 물었다.“어디 갔었어?”나의 행적에 완전히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답을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묻고 있었다. 나는 귀엽게 웃어 보이면서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며 얘기했다.“안 알려줄 거야!”그리고 퇴근하기 전까지 서강훈은 회사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 서강훈은 내가 보고 싶다고 한 자료를 몰래 내 사무실에 가져다주었다. 그 표정은 내가 쉽게 묘사할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지아 누님, 진짜... 제 상황이 얼마나 난처한지 아세요? 전...”그가 말하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 첫째로는 그의 비밀을 고발할까 봐였고 두 번째는 신호연이 그의 배신을 알아차릴까 봐였다.“하는 거 보고요. 일단 나가요.”나는 담담하게 말하면서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어제 본 여자가 떠올라서 서강훈을 붙잡았다. “어제 퇴근 전에 회사에 와서 신호연이랑 있던 여자, 누구인지 한번 알아봐 줘요. 이름, 신분, 전화번호도요.”서강훈은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려 나갔다. 나는 한시 빨리 회사의 일에 대해 알아보려고 했다. 불륜녀도 나에게 문자를 보내느라고 바빴다. 나의 카톡까지 추가해서 끊임없이 문자를 보냈다. 신호연이 살짝 눈치를 챈 모양인지 나의 행적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아니면 그 불륜녀가 그에게 얘기를 흘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서강훈은 아닐 것이다. 그는 그럴 담이
참가한 회사는 모두 여섯 개였다. 우리 신흥 건재가 아마도 제일 작은 회사인 듯했다. 즉, 가장 경쟁력이 약한 상대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큰 기대를 걸고 온 것은 아니다. 그저 신호연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쇼였다.입찰회에 요청된 회사들은 큰 회의실에 모여서 천우 그룹의 대표가 나서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회의는 요청된 회사들이 자기 회사의 능력을 최대한 보여주고 협력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아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었다. 시간이 5분이나 지났지만 천우 그룹의 책임자가 나타나지 않자 사람들은 서로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회의실 내부가 웅성거리고 있을 때, 회의실의 문이 갑자기 열렸고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흰 셔츠에 검은 정장 바지를 입고 검은색 넥타이까지 한 젊은 남자가 허리를 곧게 세운 채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준수하게 생긴 얼굴은 나이를 알 수 없게 깨끗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그를 따라 움직였다. 그의 뒤에는 비서 한 명, 그리고 이 프로젝트와 연관 있는 직원들이 있었다. 그는 길쭉한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와 회의장의 중간 자리에 와서 선 후 자리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을 오래 기다리게 했습니다. 조 대표님께서 오늘 갑작스러운 일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 제가 대신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배현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자리에 앉았다. 고귀한 기품이 흘러넘치는 그는 어딘가 도도하고 차가워 보였다. 사람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왜 조 대표가 회의에 참석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중요한 회의에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것 같은 젊은 남자를 보내다니. 여섯 회사 중 두 회사는 이미 불쾌함을 드러내고 있었다.배현우는 그들에게 질문 할 기회도 주지 않고 바로 입을 열었다.“오늘 시간이 좀 빠듯하니 얼른 시작하죠.”그리고 그가 한 회사의 이름을 불렀다. 그렇게 순서대로 부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