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환자실에 도착했을 땐 이미 여러 명의 의사가 콩이를 둘러싸고 검사를 하고 있었다. 한 분은 콩이의 뇌 CT를 들고 주위 다른 의사들한테 무언가를 얘기해주고 있었는데 주위 사람들은 그 의사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의사는 말을 마치고 또 자세히 콩이를 진찰했다.나는 밖에서 숨을 죽이고 병실 내부 상황을 뚫어져라 지켜보았다.한 시간 후에야 의사들이 콩이에 대한 진찰을 마치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유명하다던 신경외과 의사는 배현우한테 콩이 진찰 상황을 얘기해줬다.“배현우 씨, 아이 몸의 각 부위는 연약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지금까지 대뇌 신경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 조금 후면 깨어날 겁니다. 하지만 뇌진탕은 아주 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여러 곳 근육 손상과 피하출혈도 있고... 제일 엄중한 건 두개내피하출혈 면적이 큽니다. 아이가 깨난 후 더 상세한 검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신호연도 배현우에게 의사를 찾아줘서 고맙다고 끊임없이 인사했다.콩이는 혼수 상태에 빠진 지 28시간 만에 깨어났다. 모든 사람이 콩이가 깨어난 걸 보고는 안심했다.배현우가 모셔 온 전문가는 콩이를 위해 전면적이고 구체적인 검사를 해주었다. 콩이는 유달리 얌전했다. 큰 눈을 끔뻑끔뻑하면서 유리창 너머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유리창에 붙어 서서 눈물을 흘리면서 콩이가 무서워할까 봐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검사가 다 끝난 후 콩이는 배현우가 준비해 준 VIP 병실로 옮겨졌다. 내가 콩이랑 함께 병실에서 지내면서 콩이를 보살피는데 큰 편리를 제공했다.아무도 없을 때 콩이는 내가 슬퍼하고 걱정할까 봐 나를 위안했다. 내가 며칠 동안 들은 얘기 중에서 콩이는 복이 많고 명이 긴 아이여서 이번에 고생하고 나면 꼭 뒤에 복이 따라올 것이라는 말이 제일 설복력이 있는 위안이었다.신건우와 신연아는 일이 생긴 후로 지금까지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여러모로 좋았다. 아무튼 나도 그 두 사람 얼굴 보기가 싫었으니까.신호연과 시어머니는
나는 문을 여는 소리에 놀라서 마음이 조여왔다. 제자리에 멈춰서서는 문만 바라보았다.원수도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문을 연 사람은 다름 아닌 신호연이었다. 그도 내가 집에 있을 걸 예상하지 못했는지 눈이 휘둥그레해서는 밖에 서서 나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나도 여기서 신호연을 만나게 될 줄은 예상 못 했는지라 긴장되었다.저도 모르게 우리 두 모녀 옷들과 내가 버리기 아쉬워하던 기념 의의가 있는 물건들이 들어있은 캐리어를 나한테로 끌어당겼다.“여보… 언제 돌아온 거야.” 신호연은 기쁜 맘에 얼굴빛이 환해졌다. 아주 온화한 미소를 띠면서 나한테 다가왔다. “여보…”나는 뒤로 한걸음 후퇴하면서 신호연을 멀리했다. 내 눈앞에 서 있는 신호연은 언제부터인가 나에겐 이미 떠올리는 것조차 싫은 존재가 되었다.신호연이 나한테 가까이 다가오거나 내가 신호연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악몽에 시달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역겨움, 공포, 증오, 많은 복잡한 감정들이 엉켜있었다.내 반응을 본 신호연은 잠시 멈칫하면서 얼굴을 찌푸리는가 싶더니 눈 깜빡할 사이에 눈썹이 반달 모양으로 되면서 웃는 얼굴로 바뀌었다. 그는 내가 끌고 있는 캐리어를 발견하고 나한테 물었다.“여보, 어디 가는 거야?”“물건 가지러 왔어.”나는 냉정하게 대답하고는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신호연은 갑자기 캐리어를 잡고 있는 내 손을 붙잡고 말했다.“아니야, 여보, 가지 마!”나는 깜짝 놀란 맘을 가라앉히고 신호연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성가시다는 듯 그를 쳐다보면서 말했다.“여보라고 부르지 마. 이후에도 날 그렇게 부르지 마.”“여보, 왜 그렇게 고집이 센 거야.” 신호연은 곤란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면서 말을 이어갔다.“꼭 이렇게까지 매정하게 해야만 하겠어?”“나를 처음 아는 것처럼 말하지 마. 내가 고집이 세서 너희한테 이렇게 당하면서 살아가겠네? 내가 너희 때문에 상처투성이가 된 것까진 넘어가 줄 수 있어. 하지만 콩이가 죽을 뻔했잖아! 내가 고집이 센 대가를 치르고 있잖
신연아는 음침한 눈빛으로 우리 둘을 바라보면서 신호연을 비난했다.“신호연,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신호연은 나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는 놀란 듯 긴장해 하면서 화가 난 신연아를 쳐다보았다. 마치 아내한테 바람 핀 현장을 들킨 것처럼 당황해하는 표정이 아주 우스웠다.“한지아, 너 너무 뻔뻔한 거 아니야? 왜 자꾸 신호연 옆에 붙는 건데, 아직도 신호연 잊지 못하겠어? 너무 파렴치하게 노는 거 아니야?”신연아가 입을 열면 언제 한번 이쁜 말이 나온 적이 없었다. 그녀는 집안으로 성큼 들어오더니 두 눈을 부릅뜨고 나를 쳐다보았다.“우리 아빠 감옥 보내고 재산까지 다 뜯어내고 너 진짜 대단하다. 이미 다른 남자 생겼다며? 왜 자꾸 우리 오빠한테 집착하는 건데? 한심하기 짝이 없네, 그 좋은 별장에 살면서 여기에 있는 쓰레기 물건들은 왜 자꾸 가져가려고 해? 그냥 돌아와서 또 우리 오빠 꼬시려고 그러는 건 아니고?”“입 함부로 놀리지 마.”난 두려워하는 기색 하나 없이 험한 말을 내뱉는 신연아를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네가 만졌던 물건들 더러워서라도 안 가져.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신호연이 자꾸 나한테 감성팔이 못하게 단속이나 잘하고 다녀.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네가 나한테서 빼앗아 갈 수 있는 것처럼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네가 아닌 다른 여자한테 맘이 빼앗길지 누가 알아?”“한지아…”“쓰레기 같은 년, 너 오늘 내 손에 죽었어!”신연아는 소리치면서 나한테 달려들었다.나는 신연아의 배를 주시하면서 냉정하게 경고했다.“조심하는 게 좋지 않을까? 내가 힘 조절을 잘 못 해서 네 배 속에 있는 그 소중한 애가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래?”신호연은 내 말을 듣자마자 흉악하게 날뛰는 신연아를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나를 쏘아봤다.나는 헛웃음 한번 치고는 말을 이었다.“그래, 네 아들을 소중히 여기라고. 그리고 건의 하나 할게. 애 낳고 DNA 검사해 보는 거 잊지 마!”“너…”난 웃으며 할 말을 다 하고는 캐리어 두 개를 끌고 뒤도 돌아보지
신씨 가문에 대해 큰 호감은 없었어도 수년 동안 나와 시어머니 사이는 그래도 나쁘지 않았기에 그날 나에게 차갑게 대했다 해도 용서할 수가 있었다. 자기의 이익 앞에서는 누구나 이기적이었으니까.시어머니는 나를 신씨 가문으로 다시 들어와달라고 부탁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나에게 그곳은 지옥 같은 곳이었기 때문이다.나는 대화 할 장소로 시어머니 집 근처의 한 카페를 골랐다.시어머니를 만났을 때 나는 마음을 강하게 먹을 수 없었고 태도도 많이 누그러들었다. 아직은 노인까지 못살게 굴 수 없었다.시어머니의 상태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고작 며칠 못 본 게 다인데 정말 많이 초췌해져 있었다. 그녀는 매우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사실 나도 시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따뜻한 우유 한 잔을 시켜주고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려 주었다. 그녀는 우물쭈물하다가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그... 콩이는 괜찮지?”말을 마치고 시어머니는 바로 눈물을 흘렸다. 그녀가 콩이 만큼은 정말로 예뻐했다는건 나도 인정하는 사실이었다.“그럭저럭 잘 지내죠. 하지만 전처럼 그렇게 활발하지는 않은 거 같아요.”나는 그냥 덤덤하게 대답하고 끝내려 했지만 그녀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였기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그... 어머니께서는 언제든지 콩이를 보러 와도 돼요...”이 말에 시어머니는 갑자기 용기가 생겼는지 나를 잡아당기면서 물었다.“지아야, 그냥 우리 가문 식구로 있어 주면 안 되겠니?”나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다. 전에는 신씨 가문의 모든 사람의 호의나 접촉 같은 건 무조건 거부했는데 말이다.“어머니, 입장을 바꿔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머니가 저라면, 바람 난 남자과 그 바람 난 상대랑 같이 살 수 있겠어요?”이 말을 들은 시어머니의 얼굴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나의 손을 천천히 놓으며 말했다.“나는 정말로 이렇게 살아왔어. 심지어 그 몹쓸 여자의 애까지 키워줬지.”이 말을 듣고 나는 정말 깜짝 놀랐
시어머니의 이런 행동으로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고 동시에 그녀가 너무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가게 안의 다른 손님들까지 놀라서 이쪽을 주목했다.나는 얼른 그녀를 부축하고 일어나려 했지만 그녀는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지아야,네가 약속하면 내가 일어설게. 아니면 나 계속 이러고 있을 거야!”나는 그녀가 이렇게 생떼를 부리는 걸 보니 속으로 정말 성가시다고 느껴졌다. 정말로 불쌍한 사람한테는 미운 데가 있는 법인 것 같았다. 나는 몸을 바로 세우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정말 죄송하지만 저는 당신이 아니에요! 당신의 뒤를 따라가지 않을 거라고요. 저는 신호연과 같은 성질도 안 좋고 인성도 별로인 사람을 포용해야 할 이유도 없고 그럴 의무도 없어요! 어머니도 얼른 돌아가세요. 어머니는 아들이 있으니까 며느리 하나 없어도 문제없잖아요. 그리고 신연아 걔가 당신 아들의 아이를 임신했으니까 그냥 그런대로 받아들여요!”“한지아, 네가 이러면 안 되잖아!”시어머니는 조급해졌는지 나를 붙잡으며 말했다. “아니 너도 이렇게 오랫동안 신씨 가문의 며느리로 살아왔는데 그냥 이렇게 가겠다고 하면 안 되지. 너 이러는 거 되게 무책임한 거야!”나는 이게 왜 무책임한 행동인지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그러고 그녀의 다음 말에 나는 너무 놀라서 턱이 다 빠질뻔했다.“애를 데려가고 그만인 게 아니라 너는 호연이가 힘들게 벌어다 온 돈까지 다 가져가 쓰잖아! 이렇게 뒤통수를 치는 거니? 그리고 결국엔 호연이보고 법정에 서라고 하고! 지아 너 진짜 이렇게까지 인정사정이 없는 사람이었어?”그녀는 목을 길게 빼 들고 원망으로 가득 찬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돈 너 혼자 독차지하면 안 되지. 정말 떠날 거라면 그래도 너희가 살 집은 있어야 하니까 내가 원래 쓰던 그 집을 너에게 줄게. 하지만 그 큰집은 호연이가 벌어서 산 거니까 넌 줄 순 없어.”시어머니는 내가 무슨 신씨 가문의 재산을 강탈한 도둑처럼 나에게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이 말을 들으니
다음날, 나는 늦지 않고 천우 그룹을 찾아갔다. 하지만 나는 배현우가 아닌 조 대표를 만나 계약을 체결했고 그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부디 우리 합작이 오래 갔으면 좋겠습니다!”“저도 천우 그룹 개발 프로젝트가 끊임없이 이어나가길 기원할게요!”나는 웃으며 대답했다.성공적으로 계약을 체결 함으로써 우리 이랑 건축은 정식적으로 존재하는 의의가 있게 되었다.비록 지금은 모든 울산의 사원 창호 기업이 나의 뒤를 봐주고 있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큰 프로젝트에 손을 대려니 너무 아득해 보이고 불안해졌다.그래도 나와 콩이가 먹고 살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니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이 소식은 아주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고 업계 내 모든 사람은 이랑이 어떤 내력을 가지고 있을지 추측했다.천우 그룹을 나선 뒤 나는 살짝 망설였지만 그래도 배현우에게 전화를 걸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계약을 체결하게 된 것과 우리 모녀가 생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 것 모두 배현우의 덕이 컸으니까.한참이 지나서 배현우가 전화를 받았다. 그는 살짝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말해요!”그는 늘 이렇게 말이 간결하고 박력 있었다.그의 이 한마디에 나는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싹 사라져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배현우는 내가 아무 말도 안 하는 걸 보자 살짝 급해졌는지 말했다. “한지아씨?”“아... 저는 그저 우리 회사랑 천우그룹이 계약을 체결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요. 아까 안보이시길래 전화 드린 거예요.”“제가 생각이 났나 봐요?” 배현우는 애틋한 목소리로 물었다.나는 머리가 ‘띵’ 울렸다. ‘입만 열면 나를 꼬신단 말이야.’“... 큼큼... 오늘... 왜 안 오신 거예요?” 그와 만난 것도 아니지만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어색하게 화제전환을 시도했다.“저 지금 캐나다에 왔어요!” 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네? 배현우 씨 출국했어요? 언제 돌아오는데요?” 나는 조금 놀랐다.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하고 이렇게 출국하다니. 어쩐지
나는 그 장면을 목격하는 순간 신호연의 비겁함에 화가 치밀었고 그가 너무 원망스러웠다.신호연은 아무 일도 없던 사람처럼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보, 빨리 누가 왔는지 봐봐. 당신이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줄 알고 내가 어제 오후에 바로 고향에 내려가서 모시고 올라왔어. 우리가 이사하더라도 부모님들께 먼저 새집 구경을 시켜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나는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마음속으로 신호연의 18대 조상까지 한바탕 훑어보며 화를 참으려 했지만 결국에는 십x끼하고 욕이 나와버렸다. 신호연은 정말 뻔뻔스럽게 부모님을 데리고 집안 구경을 시켜주었다. 부모님들은 새집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고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응! 정말 괜찮네! 보아하니 이 몇 년 동안 헛고생을 한 건 아니고만! 잘했어!”안방에 들어가자 콩이가 엄청 기뻐하며 소리쳤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콩이는 막 달려가려던 참에 뒤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서는 신호연을 보고는 발걸음을 멈추고 서버리고 말았다. 잠시 멈칫하던 콩이는 그래도 외할머니 품으로 달려가 안겼다.신호연도 콩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마치 사이좋은 아버지 행세라도 하듯이.보아하니 우리 부모님에게는 그사이 발생한 일들을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 비겁한 놈.“여보 얼른 어머님 아버님께 물 좀 따라 드려. 그리고 냉장고에 먹을 만한 건 좀 있으려나? 어머님 아버님 다 비행기에서 아무것도 못 드시고 오셨는데 내가 요리할 테니까 당신은 부모님이랑 좀 얘기나 나누고 있어!” 말을 마친 신호연은 팔소매를 걷으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나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지만 아버지께서 금방 몸을 회복했던지라 티를 낼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다시 자극이 가해져서 재발 할수도 있으니까. 그것만큼은 정말 피하고 싶었다.나는 할 수 없이 그냥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는 나를 아래 우로 훑더니 걱정스럽게 물었다. “지아야, 왜 이렇게 핼쑥해졌어?”내가 입을 열려고 하자 신호연이 부엌에서 먼저 말을 가로채 갔다. “어
신호연이 안방으로 들어가는 걸 본 나는 탈의실로 가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바로 다른 객실로 들어가려 했다.그러자 신호연은 또 뻔뻔한 얼굴을 하고선 나의 길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여보, 어디가?”나는 참다못해 낮은 목소리로 치를 떨며 속삭였다. “비켜! 아니면 진짜 가만있지 않을거야.”신호연은 입을 오므리며 웃으며 말했다. “왜 그래, 우리 어쩌다가 이렇게 만났는데. 우리 오랫동안 같이 못 잤잖아. 아버님께서 혹시 눈치채고 또 편찮아지시면 어쩌려고? 아버님 편찮으신 거 잊지 마.”“아픈 건 너겠지!” 나는 신호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하지만 신호연은 그런 나의 손목을 세게 붙잡고 나를 향해 걸어왔다. “요 며칠 못 본 사이에 까칠해졌네. 근데 나는 네가 이러는 게 너무 좋아!”말을 마치고 그가 내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왔고 나는 그를 향해 발을 뻗어보려 했지만 바로 그의 손에 잡혀버렸다. “나는 바보가 아니야.”나는 화가 나 온몸이 떨려왔다. “신호연, 네가 이렇게까지 뻔뻔할줄은 상상도 못 했어. 도대체 뭘 어쩌려는 거야?”“네가 말해봐. 네가 내 전부를 다 가져가 놓고는 이렇게 나를 차버리면 그만 일 줄 알았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 있어? 너 너희 아버지가 죽는 게 두렵지 않으면 계속 이렇게 소란 피워! 같이 피워줄 테니까!” 그는 나를 보며 히죽거렸다. “그게 싫으면 그냥 순순히 우리 집안 며느리로 돌아가. 예전처럼 말이야. 다시는 다른 남자한테 한눈팔지도 말고 꼬시려 하지도 말고! 소용없으니까!” 그는 나의 불행을 비웃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나는 화가 너무 치밀어 올라 이빨이 뿌득거리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이였다. “지금의 나는 너 때문에 프로젝트도 망하고 아버지는 감옥에 들어가고 심지어 남은 재산까지 네가 독차지 할려하는데... 너 진짜 너무 독한 거 아니야? 난 정말 몰랐어, 네가 이런 사람인줄. 아니면 너 혹시 뒤에서 이래라저래라 훈수 두는 사람이라도 있는 건가? 응? 넌 오늘 밤에 날 아주 정성껏 모셔야 할 거야!”말을 마치
나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서강민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서강민 씨, 먼저 들어가시죠. 언니가 깨서 서강민 씨를 보면 또 흥분할 것 같은데... 지금 같은 상황에 언니가 회복하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요.”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마디 더 보탰다.“어떤 일들은 천천히 해야 해요. 언니한테 시간을 좀 주세요. 서로 생각을 정리해 봐요.”서강민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도혜선을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발길을 돌리기 전에도 아쉬움에 한 번 더 뒤돌아보며 나한테 말했다.“고생해 줘요.”나도 담담히 답했다.“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언니에게 시간을 좀 줘요. 언니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잖아요.”내가 말하는 회복이 뭔지는 서강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건 도혜선이 마음에 입은 상처였다. 오늘 도혜선의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그녀의 상처는 아물 수 없을 것이다. 언급만 해도 피가 흘러내릴 만한 상처였다.잠시 후, 서강민은 한발 물러섰지만, 눈길은 여전히 도혜선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모습 아래에서 어떠한 파도가 휘몰아치는지 나는 몰랐다.한참 전 도혜선이 했던 말들은 마디마디가 주옥이었다. 모두 그녀가 마음속으로만 담아두었던 것들이었고 또한 서강민의 약점이었다. 얼마나 아플지는 서강민 본인만 알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쓰디쓴 독주도 그는 혼자 삼켜내야만 했다.도혜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와 깨어나려는 낌새가 보이고 나서야 서강민은 조용히 병실을 나갔다.나는 마음이 아파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뻗어 도혜선의 손을 맞잡았다.인제야 하루 종일 배현우에게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쪽에는 어떤 상황인지, 김우연에게서는 소식이 없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도혜선을 보니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 살며시 그녀의 손을 놓고 일어서려 했을때, 그녀는 다시 나를 잡으며 미약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지 마...”나는 너무 놀라 얼른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서강민은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는 걸까?’“당시의 사고는 내가 저지른 거야. 그녀도 나 때문에 다쳐서 지금처럼 된 거고… 나는 좋은 남편이 아니야. 아내가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나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말이야...”서강민은 여기까지 말하며 후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그녀를 마주할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고 고민스러워. 나 또한 발버둥 쳐봤지.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의 일탈을 받아들일 수 있어 해. 그녀한테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거야...”“강민 씨!”도혜선은 꾸짖는 듯한 말투로 그의 말을 잘랐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당신 아내가 듣고 있을 거예요. 저를 끌어들여서 같이 속죄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의 구세주가 아니에요. 저는 그냥 사람답게 살고 싶은 평범한 여자라고요. 저 좀 그냥 내버려둘 순 없어요?”도혜선은 말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녀는 한 손으로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녀 앞으로 갔다.“혜선 언니, 움직이지 마! 위험해...”늑골 골절과 뇌진탕이 있는 환자다 보니 이러한 행동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녀를 안으려고 하는 한지아를 제지했다.“제가 오늘 한 말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요? 서강민 씨, 저의 인생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당신한테 묶여 당신의 부속품이 되었었는데 저도 자존심이 있어요. 더 이상 당신처럼 지난날의 죄책감을 짊어지며 답답하게 살아가지 않을 거예요.”도혜선은 여전히 분노에 차 외치고 있었다.“매일 제 앞으로 와 지난날의 행동에 대해 속죄하라고 일깨워 주실 필요 없어요! 당신을 보면 저는 지난날 모든 서울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었던 치욕적인 과거가 떠올라요. 당신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 당신은 아내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해요.”말을 마친 도혜선은 숨이 차올랐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도혜선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계속하여 들려왔다.“당신은 아무런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저 같은 여자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아도 돼요.”그녀는 자기비하적인 말을 내뱉었다.”선아...”“설사 강민 씨가 와이프와의 약속을 안 지킨다 해도 당신의 신분과 지위로 당신에게 더 어울릴만한 사람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하물며 당신네 부부 눈에는 저는 그냥 염치없고 미천한 사람일 뿐이죠. 저 같은 사람은 본처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아요. 사모님이라는 호칭도 어울리지 않죠.”“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 오해하지 마.”서강민은 조급함에 한 발 앞으로 나서며 해명하려 했다.하지만 도혜선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아섰다.“강민 씨... 해명하지 않아도 돼요. 당신의 행동이 모든 걸 설명해 주고 있어요! 장담하건대 아직 당신들이 어떤 의도로 얘기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바보가 된 건 아니에요. 그녀는 정말 대단하네요. 죽을 때까지도 제가 이길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녀는 아무리 병상에 누워있어도 고상한 사람이고 저는 그냥 미천한 사람일 뿐이니 말이에요.”도혜선은 말을 내뱉으며 입가에 처량한 미소를 비췄다. 누가 봐도 가슴 아픈 미소였다.“이전의 저는 확실히 허례허식에 차 있는 사람이었지만 저도 성장했어요. 정신 차렸어요. 당신 앞에 있는 저의 진정한 가치가 어떤 것인지 깨달았어요. 저는 하나의 도구, 들러리뿐이었지만 원망하지 않았어요.”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한숨 돌렸다. 얼굴빛은 아까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하지만 이제 저는 자존감을 챙기며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의탁하지 않고 쓰레기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며 살고 싶어졌어요.”점점 더 차가워지는 도혜선을 바라보며 서강민은 답했다.“혜선아, 나는 널 한 번도 무시한 적 없어. 나는 그냥 내가 뭘 하든지 네가 다 이해해 줄 줄 알았어.”도혜선의 서강민의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안색은 더 창백해져 있었다.“이해? 당신이 어떤 말을
방금 허투루 한 말이 어머니의 진실인가 싶다. 보아하니 어머니가 나를 속이는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음속의 의문점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마치고 차씨 가문의 할머니께 말씀을 드린 후, 위층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도혜선을 보러 가려고 준비했다.그리고 팔도 겸사겸사 검사하려고 했다. 차에 앉고 나서 배현우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이 이른 아침에 뭐 하러 갔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김우연 쪽에 무슨 소식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생각해 보니 이렇게 빠르진 않겠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병실에 도착하자마자 도혜선이 노발대발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병실에는 도혜선과 서강민 두 사람만 보이고 이미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내가 들어서자 분위기가 좀 이상하고 심상치 않는 것을 느꼈다.침대 옆 머릿장에는 보온병이 놓여있다. 서강민은 오늘도 도혜선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러 온 것 같다.서강민은 침대 앞에 떡 하니 서있었고 침대에 있던 도혜선은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도혜선은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 같았다.상황을 정리하려고 다가가서 서강민에게 인사를 하고 도혜선에게 다가갔다. "오늘은 좀 어때?""별로야."도혜선은 차갑게 대답하더니 또 말을 건넸다. "지아야, 손님 좀 배웅해 줄래?"난감했다, 도혜선은 서강민을 내쫓으라고 하는 거였다. 난 당연히 그 뜻을 알고 있다. 조심스럽게 서강민을 쳐다보았다. "혜선아, 꼭 이래야 하니?"서강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도혜선을 바라보며 물었다."네! 서강민씨, 저는 이미 분명히 말했고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도혜선은 내가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서강민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참지 못하고 웃어 버렸다. "언니, 화 그만 내고 진정 좀 해. 초조해하는 거 알아, 점차 좋아질 거야. 강민씨랑 얘기 좀 하고 있어. 나는 팔 검사해야 돼서, 금방 돌아올 거야!"나는 핑계를 대고 떠나서 그들에게 자리를 비워주었다.
배현우는 나의 우울한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없는 동안에 회사 일도, 한심로얄의 마지막 한방도 둘 다 포기할 수 없잖아요. 신예 쪽 일도 있고, 전희가 다시 살아날 기회를 얻지 않도록 조심해야 돼요. 지금 모든 게 중요한 시기이니까요.""지금 그 누구도 아버지보다 중요하지 않아요! 수십년간 도망치면서만 살았는데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분명 아주 괴로워하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는데, 내가... 내가 딸로서, 난..."배현우는 내 말을 듣고 나서 침대에 누워 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일단 내일 소식을 기다려 봅시다. 김우연 쪽에서 어떤 정보를 얻었는지 보고 결정합시다."배현우는 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제 말 듣고 일단 자세요, 내일 일어나서 먼저 할 일들을 처리하고 준비하고 있으세요, 만약에 상황이 좋으면 내일 같이 데리고 갈게요,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배현우가 지금 나를 위로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내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지를 못한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배현우의 따뜻한 품에 안기며 눈을 감고 내일 먼저 무엇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했다.근데... 눈을 떠서 배현우를 쳐다보는데 배현우도 잠에 들지 않았다. "현우씨... 할머니가 보존하고 있는 CCTV를 보여주시겠어요?"'그 영상을 꼭 보고 싶었다,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어떻게...'"알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세요, 나중에 보여 드릴게요. " 팔짱을 끼더니 분명히 나를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 배현우가 그 장면을 내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밤이 깊었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배현우의품에 안겨 점점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여전히 흐렸다. 배현우는 이미 곁에 없었고, 손을 뻗어 그가 누워 있던 곳을 만졌다. 이미 차가운 걸 보니 배현우는 일찍 침대에서 일어났나 보다.'무슨 소식이라도 왔나?'이
"할머니가 이번 사건을 피할 수 있었던 건 당시 큰 병을 앓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했어요. 제 생각에는 반은 꽤병인것 같아요. 직접 사표를 쓰고 나서도 서둘러 호주를 떠나지 않았다는 게 참 슬기로운 선택이었어요.""네?"너무 놀라서 몸 둘바를 몰랐다.배현우는 인정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호주를 떠나지 않으셨어요. 그곳에 머물면서 배씨 저택의 인기척을 살피다가 배씨 저택의 요상한 소문들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뒤에야 조용히 호주를 떠나셨어요."나도 모르게 할머니의 메커니즘에 감탄했다."저도 그때 상황을 잘 몰라서, 할머니도 몸이 허약했고 내 행방을 알아 볼 길이 없어 그 비밀을 계속 지켜왔었나봐요. 부하들이 할머니를 찾고 나서도 여전히 어리석은 척을 하고 있었지 뭐에요."배현우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할머니께서 저를 두눈으로 직접 보고서야 그걸 꺼냈어요."배현우의 말을 듣고 나니 할머니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던 중 배현우가 나를 쳐다보더니 나의 지친 모습을 보고서야 손을 들어 대문을 열어 장벽들이 천천히 열리는 걸 볼 수 있었다.차는 왔던 길을 따라 경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벌써 자정이 되어 우리 둘은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 방에 돌아왔다.'우리를 배신한 소인이 두 집안을 풍비박산 시켰다니. 오늘 밤 일어난 모든 일들은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간단히 씻고 걱정 가득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태어나서 얼굴도 한번 못 본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를 걱정해 발 뻗고 자지 못했다. '한강인이랑 한걸은 이미 잡혔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의 처지는 어떤지.''한씨 부자가 그저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면 왜 배현우는 그곳의 환경이 복잡하다고 했을가.''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아버지를 미끼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고 싶으려는 걸가?''배현우? 아니면 배유정?'생각할수록 더욱 걱정이 됬다.아버지의 이번생은 이미 충분히 힘들다.어머니랑 서로
나는 걱정스레 배현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배현우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계속 말했다.“후에 목격자 어르신을 찾고서 한강인을 자세히 조사하니 한강인은 이 모든 것이 일어난 뒤에야 천우 그룹을 떠난 거였어요. 지아 씨도 알잖아요. 그때 당시 천우 그룹은 아직 배유정 손에 있었어요.”“현우 씨의 말은 한강인은 배유정 과도 사이가 틀어졌단 말인가요?”나는 추측하며 물었다.“우리가 조사할 때 이상한 단서 하나가 나왔어요. 한동안 배유정도 한강인을 찾았고 심지어 한강인에 대한 추살령도 내렸어요! 참 이상해요. 배유정은 왜 한강인을 죽이라고 지령을 내린 걸까요?”“이유는 하나뿐이죠. 즉 한강인이 분명 무엇을 알아냈거나? 아니면 어떤 일에 참여하였거나?”나는 대답했다.배현우는 고개를 끄덕이었다.“진백이 죽임을 당했듯이 이 안에는 분명 남들한테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 있는 거겠죠. 우리는 이 단서를 따라 계속 추적해 보니 한강인의 혐의가 점점 더 드러나더군요. 그리고 그의 아들 한결도 같이 도망쳤어요.”“그러고 보니 이 안에는 분명히 또 다른 요소가 있겠네요!”나는 사색에 잠겼다.“그래서 우리는 추측했죠. 한강인은 확실히 이 사건이랑 연관이 있고 둘이 도주하는 과정에 서로 연락하는 빈도를 보아서 부자 둘은 서로 다른 곳에 있는 것으로 판단했어요.”“그리고 한강인이 도망 다니는 그 시기에 그의 모친이랑 누나 모두 영문도 모른 채 실종되었어요. 지금 보니 그분들은 아마 이미 이 세상을 떠난 것 같네요. 이 때문에 한강인은 고두리에 놀란 새가 돼서 끊임없이 도망치며, 이 또한 한강인이 지금의 상태로 되게 한 원인인 것 같아요. 사실 한강인은 원래 지금의 모양이 아니거든요.”배현우의 말을 듣자 나는 저도 모르게 아까 보았던 한강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강인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엄청 정신적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니면 다른 기타 방식으로 정신을 잃지 않게 버티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저렇게 말라죽을 정도일 리가 없다.“그리고 한 가
배현우는 나를 한눈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맞아요. 제 씨 어머니가 얼마나 총명한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어요. 제 씨 어머니는 책 속에 카메라를 숨겨두고 만약 사고가 난다면 여기에 있는 이 물건을 숨겨두었다가 훗날 믿음직스러운 사람에게 주라고 할머니한테만 똑똑히 당부해 두셨어요!”나는 코가 찡긋거리더니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보아하니 제 씨 어머니는 분명 위험이 닥칠 거라는 것을 미리 예감했던 거네요!”배현우는 안색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갑자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 씨 어머니는 만약 자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할머니더러 애들을 데리고 허씨 가문으로 가라고 할머니한테 당부하셨어요.”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코를 훌쩍이었다.배현우는 자기 손을 꽉 움켜쥐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참 생각지도 못한 게 모든 것이 제 씨 어머니의 예상대로 일어났고 감춰둔 카메라에 모든 것이 담겼어요! 근데 할머니는 제 씨 어머니의 뜻대로 우리 둘을 순리롭게 허씨 가문으로 데려가지 못했어요.”“급한 나머지 할머니는 고씨 가문에만 소식을 전했고 그마저도 나쁜 놈들보다 동작이 빠르지 못해 그들이 지아 씨를 데려간 후였어요. 그래서 저만 고씨 가문에서 데려갔어요.”나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그때 당시의 내가 얼마나 힘없고 무력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가 돌아가신 데다가 배현우와 억지로 갈라지게 되었다.배현우는 내 손을 꽉 잡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나도 배현우 지금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날 배현우는 눈앞에서 억지로 끌려 나가는 나를 보기만 하고 반항할 수도 없는 그런 무능력함은 아마 배현우한테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되었을 것이다.차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고 자동차가 앞으로 가는 소리밖에 안 들렸다.한참 뒤에야, 배현우의 잠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이런 것들을 찾은 후에야 비행기 추락 사고가 떠올랐고 이로써 모든 것들이 비로소 한강인을 추측하게 했으며 그 이후에 우리는 한강인
이 소식은 그야말로 나를 입이 떡 벌어지게 했다. ‘나를 데려간 게 어떻게 그 사람이지?’“맞아요. 우리는 유일한 목격자를 찾았어요. 그 당시 그쪽 산에서 약재를 캐는 어르신이신데 그때는 중년인이셨어요. 하늘의 뜻인지, 우리가 수년을 찾아 헤맨 끝에야 비로소 이 참극의 전부를 직접 목격한 증인을 찾아냈어요.”“그 어르신 정말로 전체 과정을 모두 목격하셨나요?”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배현우 얘네가 얼마나 큰 공을 들여야 바다에서 바늘 건지는 것 같은 일을, 그것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목격자를 찾아낸 걸까.“어르신의 말로는, 당시 자기는 산 위에서 내려오는 도중에 잠시 계단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아래 도로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해요. 알다시피 외국에서는 약재를 캐는 일은 엄청 드물어요.”배현우는 엄청 뿌듯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형제들이 엄청나게 고생 많았어요. 십수 년을 하루같이 귀찮음을 마다하고 사건 지역을 탐방하러 다니면서 일말의 흔적도 소홀히 하지 않았어요.”나도 믿어지지 않아 입을 열었다.“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참 노고가 많았어요.”“어르신이 말씀하기를 당시의 장면은 엄청 아슬아슬했대요. 부딪힌 차는 거의 굴러떨어지기에 일보 직전이었는데 후에 폭발했대요. 어르신은 우리의 차가 폭발한 뒤 키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는 걸 똑똑히 봤다고 해요. 그리고 그 남자는 길 왼쪽의 언덕 아래로 달려가 무언가를 찾았대요.”배현우는 그때 당시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때 당시의 상황을 필사적으로 상상해 내려고 하니 머리가 또 아파 났지만, 배현우가 말을 멈출까 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당시에 일어난 이 모든 것, 전부 나한테는 엄청난 매력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찾아낸 산산조각 난 퍼즐들을 하루빨리 제 위치에 맞춰서 하나의 완전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싶었으며 그때 당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되찾고 싶었다.그 뒤로 난 어떻게 Z 국의 만덕동에서 떠돌게 되었고 또 어떻게 지금의 한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