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장면을 목격하는 순간 신호연의 비겁함에 화가 치밀었고 그가 너무 원망스러웠다.신호연은 아무 일도 없던 사람처럼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보, 빨리 누가 왔는지 봐봐. 당신이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줄 알고 내가 어제 오후에 바로 고향에 내려가서 모시고 올라왔어. 우리가 이사하더라도 부모님들께 먼저 새집 구경을 시켜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나는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마음속으로 신호연의 18대 조상까지 한바탕 훑어보며 화를 참으려 했지만 결국에는 십x끼하고 욕이 나와버렸다. 신호연은 정말 뻔뻔스럽게 부모님을 데리고 집안 구경을 시켜주었다. 부모님들은 새집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고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응! 정말 괜찮네! 보아하니 이 몇 년 동안 헛고생을 한 건 아니고만! 잘했어!”안방에 들어가자 콩이가 엄청 기뻐하며 소리쳤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콩이는 막 달려가려던 참에 뒤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서는 신호연을 보고는 발걸음을 멈추고 서버리고 말았다. 잠시 멈칫하던 콩이는 그래도 외할머니 품으로 달려가 안겼다.신호연도 콩이에게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마치 사이좋은 아버지 행세라도 하듯이.보아하니 우리 부모님에게는 그사이 발생한 일들을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 비겁한 놈.“여보 얼른 어머님 아버님께 물 좀 따라 드려. 그리고 냉장고에 먹을 만한 건 좀 있으려나? 어머님 아버님 다 비행기에서 아무것도 못 드시고 오셨는데 내가 요리할 테니까 당신은 부모님이랑 좀 얘기나 나누고 있어!” 말을 마친 신호연은 팔소매를 걷으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나는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지만 아버지께서 금방 몸을 회복했던지라 티를 낼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다시 자극이 가해져서 재발 할수도 있으니까. 그것만큼은 정말 피하고 싶었다.나는 할 수 없이 그냥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는 나를 아래 우로 훑더니 걱정스럽게 물었다. “지아야, 왜 이렇게 핼쑥해졌어?”내가 입을 열려고 하자 신호연이 부엌에서 먼저 말을 가로채 갔다. “어
신호연이 안방으로 들어가는 걸 본 나는 탈의실로 가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바로 다른 객실로 들어가려 했다.그러자 신호연은 또 뻔뻔한 얼굴을 하고선 나의 길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여보, 어디가?”나는 참다못해 낮은 목소리로 치를 떨며 속삭였다. “비켜! 아니면 진짜 가만있지 않을거야.”신호연은 입을 오므리며 웃으며 말했다. “왜 그래, 우리 어쩌다가 이렇게 만났는데. 우리 오랫동안 같이 못 잤잖아. 아버님께서 혹시 눈치채고 또 편찮아지시면 어쩌려고? 아버님 편찮으신 거 잊지 마.”“아픈 건 너겠지!” 나는 신호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하지만 신호연은 그런 나의 손목을 세게 붙잡고 나를 향해 걸어왔다. “요 며칠 못 본 사이에 까칠해졌네. 근데 나는 네가 이러는 게 너무 좋아!”말을 마치고 그가 내 앞으로 한 걸음 더 다가왔고 나는 그를 향해 발을 뻗어보려 했지만 바로 그의 손에 잡혀버렸다. “나는 바보가 아니야.”나는 화가 나 온몸이 떨려왔다. “신호연, 네가 이렇게까지 뻔뻔할줄은 상상도 못 했어. 도대체 뭘 어쩌려는 거야?”“네가 말해봐. 네가 내 전부를 다 가져가 놓고는 이렇게 나를 차버리면 그만 일 줄 알았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 있어? 너 너희 아버지가 죽는 게 두렵지 않으면 계속 이렇게 소란 피워! 같이 피워줄 테니까!” 그는 나를 보며 히죽거렸다. “그게 싫으면 그냥 순순히 우리 집안 며느리로 돌아가. 예전처럼 말이야. 다시는 다른 남자한테 한눈팔지도 말고 꼬시려 하지도 말고! 소용없으니까!” 그는 나의 불행을 비웃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나는 화가 너무 치밀어 올라 이빨이 뿌득거리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이였다. “지금의 나는 너 때문에 프로젝트도 망하고 아버지는 감옥에 들어가고 심지어 남은 재산까지 네가 독차지 할려하는데... 너 진짜 너무 독한 거 아니야? 난 정말 몰랐어, 네가 이런 사람인줄. 아니면 너 혹시 뒤에서 이래라저래라 훈수 두는 사람이라도 있는 건가? 응? 넌 오늘 밤에 날 아주 정성껏 모셔야 할 거야!”말을 마치
시어머니가 입을 벌리려 하자 신연아가 걸어 나왔다. 그는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은 후 김향옥의 팔짱을 끼고 말했다. “아버지는 둘째 삼촌 집에 갔어요. 당분간 저랑 어머니는 여기서 지내려고요. 사람이 많으면 좋잖아요.”나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지금 그녀의 뜻은 이 집에서 나가지 않겠다는 소리다.신연아는 승리자의 자태로 자신만만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새언니가 우리랑 같이 지낸 적이 거의 없는 거 같아요. 이번 기회에 다들 같이 지낼 수 있어서 저는 너무 좋다고 생각해요.”나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 가슴이 꽉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듯 무덤덤하게 말했다.“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아버지의 두 눈은 내 얼굴에 고정되어 있고 침묵을 지키며 입을 열지 않았다.어머니도 약간의 어색함을 느낀 듯 신연아한테 질문을 던졌다. “오랜만에 연아 만났는데 더 예뻐진 것 같아. 연아는 남자친구 있어?”“있어요. 몇 년 사귀었는데 곧 결혼할 거예요.” 그는 얼굴색 한번 변하지 않고 큰소리를 쳤다.나는 말하고 있는 그녀의 주둥이를 찢고 싶었다.“잘됐네! 연아도 결혼할 나이가 다됐다니. 결혼할 때 우리가 가서 축복해 줄게.” 어머니는 자상하게 웃었다.“네. 제가 결혼할 때 꼭 오셔야 해요.” 그는 거리낌 없이 웃으면서 나를 쳐다봤다. 도발적이고 조롱하는 눈빛이었다.나는 그녀의 멱살을 잡을 뻔했지만, 가까스로 이성을 유지했고 속으로는 이미 수백 번 계집년이라고 욕을 했다.“제 남자친구의 전처가 문제에요. 그년만 아니었다면 우리는 진작 결혼했을 거예요.” 신연아는 마치 자기가 피해자인 것처럼 말했다.“저랑 제 남자친구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고 서로 좋아하는 사이에요. 근데 그 여자가 끈질기게 매달려 포기하지 않고 있어요. 심지어 최근에는 남자친구의 모든 재산까지 뺏어갔어요.”어머니는 어떻게 반응해 줄지 몰라서 어색한 표정만 지었다.“연아야, 들어와서 나 좀 도와줘. 새언니 귀찮게 하지 말고.”
그의 물음에 나는 갈피를 못 잡았다.“오늘 재판 날 아니에요? 근데 왜 안 했어요? 왜 취소됐냐고요?” 그는 무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말투도 딱딱해서 기분이 안 좋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설마 법원에 갔었나? 갑자기 일정 변경되는 바람에 통지도 못 했는데, 그는 어떻게 알았지? 유일한 해석은 그가 법원에 다녀온 것이다.’나는 해명했다. “사정이 있어서 날짜를 변경했어요.”“지금 또 머뭇거리는 거예요? 아니면 당신의 그 빌어먹을 이유 때문이에요?” 그는 지금 화가 나 있는 상태였고 공기 속의 온도도 몇도 내려간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 당하고도 그 사람한테 미련이 남은 거예요?”그의 차갑게 굳은 얼굴에 비하면 나는 많이 차분해져 있다. 손을 뻗어 물 한 잔을 가져와서 몇 모금을 천천히 마셨다. 그리고 다소 풀이 죽은 말투로 얘기했다. “당분간은 이혼 못 할 것 같아요.”“왜 이혼 못 하는 건데요?” 그는 나의 속마음까지 뚫어볼 지경으로 나를 쳐다봤다.“저는 그를 막을 수가 없어요. 제 부모님을 이용해 나를 협박하는데 이젠 저도 속수무책이에요.” 나는 힘없이 말했다. “모든 것이 제 뜻대로 되는 줄 알았는데 제가 상대를 너무 만만하게 봤어요. 신호연의 파렴치함을 과소평가한 것은 저의 실수죠.”“지아 씨는 한평생 신호연의 그림자 속에서만 살 거예요?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거예요?” 그는 나를 보면서 질문을 했다.“그러면 어쩔 건데요,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퇴원한 지 얼마 안 돼서 저는 그런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어요. 아버지의 목숨을 뺏기느니 차라리 제가 참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들이 매일 내 앞에서 알짱거리는 것만 생각해도 나는 화가 났다. 잠깐 우리는 침묵했다. 한참 후에야 나는 그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언제 돌아온 거예요?”“어제저녁에 왔어요.” 그는 조용히 나를 보고 있는데 그 눈빛은 나를 소름 끼치게 했다. 웨이터가 따뜻한 우유를 가져다주자, 그가 내 앞으로 옮겨줬다. “지아 씨는 지금,
나는 그녀가 내 차에 타는 것을 보고 그녀가 좋은 마음을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내 집에 들어온 것부터 나쁜 마음을 품고 왔는데 지금 자발적으로 내 차에 올라타는 것도 틀림없이 나에게 도발하려고 하는 것이다.나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녀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나는 차를 출발시켰다.그녀가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한지아. 왜? 나랑 있으면 불편해?”“몰라서 물어보는 거야? 솔직히 말해서 너를 보기만 해도 속이 메스꺼워, 역겨워 죽겠다고!”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나도 똑같은 생각이야!” 그녀는 음흉하게 나를 쳐다봤다. “좋은 말 할 때 빨리 집에서 나가. 안 그러면 나쁜 결과는 네가 책임져야 해!”“꿈도 꾸지 마. 나쁜 결과? 신예 건축 사건을 벌써 잊은 거 같은데 두세 명을 더 들여보내는 건 나는 개의치 않아.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네 양아버지를 따라 들어갈 수 있어. 증거가 아직 내 손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 나는 그녀를 보지 않았지만, 말투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한지아. 네가 지금 주제 파악 못 하는 거 같은데...” 그녀는 나의 말에 화가 나 침착하지 못했고 목소리 톤도 높아졌다.“주제 파악 못 하는 건 너희들이야. 내 집에 와서 소란 피우면 내가 정말 너를 무서워할 것 같아? 너같이 숨어다녀야 하는 존재 주제에 어디서 행패 부리는 거야? 네가 내 뒤통수를 치면 너도 신호연도 내가 지옥으로 보내버릴 거야. 못 믿겠으면 해보든가.”그를 비하하면서 계속 얘기했다. “며칠 좋은 날 보냈다고 정말 자기가 상류층이 된 줄 착각하는가 본데, 네가 별장에 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한지아... 너는 끝장을 봐야 정신 차리지. 지금 네 곁에 남은 건 늙은이와 아기뿐인데 굳이 내가 손쓸 필요가 있을까?” 그녀는 나를 저주하듯 말했다.그녀의 말은 사실이다. 나는 부모님과 콩이를 지켜야 하는데 모두 나의 가장 친한 사람들이고 나의 약점이다.신호연 신연아. 이 두 짐승은 정말 양심이 털끝만치도 없어 사람을 죽이고 불
나는 그녀를 향해 섣불리 행동하지 말라는 경고의 눈길을 줬다. 그리고 가족들을 데리고 겨울왕국에 들어갔는데 신호연과 시시각각 애정을 과시하는 것도 까먹지 않았다.신연아는 고구마 백 개를 먹은 듯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지만, 그저 쳐다만 볼 수밖에 없었다.아쿠아리움을 구경하고 나오니 바로 뽑기 이벤트였다. 나는 콩이에게 뽑기를 한번 해보라고 시켰는데 뜻밖에도 ‘서프라이즈’를 뽑았다.이 상품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3장 6박 7일의 제주도 여행권이였다. 남들 눈에는 그야말로 부러움의 대상이다.나는 바로 전에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라고 부모님께 열정적으로 설명했고 한라산 배경 아래의 오설록 녹차밭과 금계국 풍경을 꼭 한 번쯤은 보고 싶다고 말했다.그리고 즉시 주최 측에 가서 전체 스케쥴의 세부 사항을 문의했다.집에 돌아와서도 우리는 여행에 관한 부분을 의논했고 신호연도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 가면 좋다고 계속 부추겼다.누가 보면 1등 사윗감인 줄 알겠다. “아버님 어머님, 지아랑 같이 가서 재미있게 노세요. 모든 비용은 제가 낼 테니 마음껏 즐기세요. 제주도가 맘에 들면 거기서 며칠 더 놀아도 돼요. 역시 내 딸 콩이. 운이 장난 아니네!”나는 어린이 표까지 한 장 구매하고 신나게 여행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배현우의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구 변호사도 법원 쪽이랑 잘 조율해 놓았다. 나는 가족들을 보내고 나서 다시 핑계를 대고 돌아와 재판을 진행할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다만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가 나타났다. 출발 전날 밤, 나는 짐을 싸놓고 출발만을 기다리며 부모님 방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콩이가 울면서 방으로 뛰어 들어와서 내 품에 안겼다. “엄마. 아빠랑 고모가 싸우고 있어!”나는 콩이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님도 손녀가 우는 것을 보고 같이 콩이를 달래 주셨다.“아빠랑 고모가 싸우고 있어.” 콩이가 훌쩍이면서 말했다.“싸우긴 왜 싸워. 콩이랑 장난치는 거야. 울지 마.” 나는 신연아가 또 콩이를 괴롭힌 줄 알고 달래줬
더 이상 신연아랑 말이 통하지 않아 신호연을 보면서 말했다. “네가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당장 신연아를 데리고 여기서 나가. 아버지께서 잘못되면 가만 안 둘 거야.”아버지의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다.신호연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신연아를 막았다. “연아야, 그만해!”하지만 신연아는 아버지의 상태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일을 더 크게 벌이려고 계속해서 폭주했다.“한지아. 여기서 피해자 코스프레 하지 마. 신씨 집안에서 가져간 거 다 토해내지 못해? 애초에 이 집은 호연 오빠가 나에게 사준 건데, 네가 치사하게 뺏어가고 지금 가족들까지 다 끌고 와서 산다니, 미친 거 아니야?” 그녀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버지를 보고 더 흥분했다.한쪽에 있던 시어머니의 안색도 좋지 않았고 조금의 당황스러움도 있었다.“아버지, 먼저 방으로 가세요. 어머니, 아버지 데리고 방으로 가세요.” 나는 먼저 아버지를 방으로 모셔다드리고 그들을 정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괜찮다는 듯 나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지아야, 걱정하지 마. 너의 아버지는 그렇게 연약하지 않아.”아버지가 신호연을 향하는 눈동자에는 마치 칼날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고 분노를 억제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신호연, 너는 배우 해도 되겠다. 내 하나뿐인 소중한 딸을 너에게 맡겼는데 네가 내 딸한테 이렇게 대한다고? 지아때문에 네 사업까지 도와줬는데 이게 너의 태도니?”신호연은 결국 면목이 없어서 내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눈길을 피했다.“내 딸을 평생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 근데 지아는 너를 위해 아이를 낳고 지금까지 너의 곁을 지켰어. 최소한 이런 성의를 봐서라도 상냥하게 대해야 하지 않겠니?”아버지의 몸은 안 좋았지만, 언성은 여전히 힘 있고 높았다. 내가 아버지께 이런 근심을 드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버지는 늘 학교의 리더이자 존경받는 분이셨는데 이런 치욕은 어디서도 받아 본 적이 없을 것이
“아... 아버지!” 나는 너무 놀라서 그만 펑펑 울었다.이 외침에 모두가 숨이 막힌듯했고 신호연마저 깜짝 놀라 전화를 걸어 구급차를 불렀다. 순식간에 건물 전체는 나와 어머니 그리고 콩이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구급차가 왔을 때 이미연도 뛰어 올라왔고 눈앞의 정경을 보고 나서 바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나는 어머니와 딸을 이미연의 손에 맡기고 구급차를 따라 병원으로 향했다. 구급차 안에서는 의료진들이 응급처치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나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전화를 찾아 배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맞은편에서 받자마자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빨리 의사 찾아주세요... 저희 아버지가...”“어느 병원인데요?” 배현우가 직접적으로 물었다.“서울대병원!”“알겠어요.”그가 전화를 끊자 나는 희망을 본 것 같았다.아버지는 곧바로 응급실로 들어갔고 나는 힘없이 병원 벽에 기대어 조금씩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나는 내 자신을 껴안았고 내 마음은 더없이 아팠다.아버지는 나를 길러주셨는데 아직 효도를 제대로 해 드리지 못해 나는 아버지가 반드시 이겨낼 수 있기를 수술실 밖에서 기도했다.10분도 안 돼 배현우가 의사 몇 명을 데리고 황급히 달려왔다. 의사는 곧장 응급실로 들어갔다. 배현우는 내 앞으로 다가와 손을 뻗어 나를 끌어당기고 바라보며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나는 힘없이 벽에 기대어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이때 어머니는 콩이의 손을 잡고 이미연과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 그 뒤에는 착잡한 표정을 한 신호연도 뒤따라왔다.신호연이 응급실 문 앞에 이르자마자 배현우가 있는 것을 보고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흥! 정말 빨리도 왔네. 괜찮다고 하더니 누굴 속이려고! 한지아, 너 아직도 변명하는 거야? 이건 다 네가 만든 거야.”신호연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다. 지금의 그의 얼굴은 정말 매를 때리고 싶은 모습이었다.어머니가 내 옆에 서 있는 배현우를 쳐다보며 의아해하자, 이미연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