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신무열은 큰 소리로 외치며 바로 온지유 쪽으로 몸을 던졌다.군영 전체는 바로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여이현은 신속하게 배치를 지시했고 인명진도 급히 온지유 앞으로 도착했다. 한편 홍혜주와 나민우는 대부대와 함께 이번 기습에 대한 반격을 시작했다.신무열은 이 틈을 타 온지유를 데려가려고 했지만 인명진의 저지를 받았다.“도련님, 이현 씨가 특별히 당부한 게 있습니다. 지금은 전투 중이니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게 좋습니다. 게다가 율이도 말했잖아요. Y국과 엮이고 싶지 않다고...”신무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그가 무언가 말하려던 찰나 온지유가 앞으로 나서더니 신무열의 손목을 단단히 잡았다. 온지유는 표정을 굳히고 캐물었다.“이번 전쟁, 당신이 일부러 일으킨 건 아니죠?”아니면 왜 신무열만 이 상황에서 평온하게 그녀를 데리고 가려고 하는 걸까?그들은 온지유를 데려가겠다는 의지만 밝혔을 뿐 여이현이 중독된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아무런 해결책을 제공하지 않았다.“우리가 한 게 아니야.”신무열의 얇은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고 그의 표정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그는 전쟁을 싫어했고 자신의 나라를 화국처럼 만들고 싶어했지만 화국을 싫어하기도 했다.온지유만 없었다면, 그는 애초에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온지유는 지금 신무열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온지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응시했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는 여전히 의심이 서려 있었다.신무열은 입술을 꼭 다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지유야, 나는 그냥 여기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하지만 네가 나와 함께 간다면, 나는...”“함께 가면 무슨 좋은 일이 있는데요? Y국의 귀족 딸이 되어 누릴 수 없는 부와 명예를 얻게 되는 건가요?”온지유의 입가에는 차가운 웃음기가 스쳤다.Y국의 상류층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지만 하류층 사람들은 어떤가.노예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 그들의 부하들, 모두가 피눈물을 흘리며 살고 있었다.신무열은 계속해서 말했다.“그런
그들은 말을 돌려 온지유의 의심을 사지 않고 조용히 그녀를 데리고 가려 했었다.하지만 여이현의 부하들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그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혼란한 틈을 노려 온지유를 Y국으로 데리고 가려 했는데 지금 상황을 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이 모든 것이 다 인명진 때문이다!인명진은 입을 살짝 벌리며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신무열이 그의 말길을 끊었다.“인명진 씨, 무슨 수를 써서든 지유를 Y국으로 데려와야 해요.”...두 시간 후.“큰일 났습니다!”조급한 목소리가 군영 전체에 울려 퍼졌다. 모든 사람이 그 소리에 놀라 신속하게 상부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온지유도 빠른 속도로 천막에서 달려 나왔다. 그녀는 많은 사람이 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밖으로부터 돌아오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하지만 그녀는 사람들 속에서 여이현 뿐만 아니라 용경호와 성재민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기에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다 갑자기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몰골이 그녀 눈에 띄었다.조급한 마음이 어려있는 그의 까만 눈동자를 본 온지유는 심하게 요동치는 가슴을 쥐어 잡고 다가가서 물었다.“경호 씨, 이현 씨는요? 왜 이현 씨가 보이지 않는 거죠?”그 말을 들은 용경호의 두 눈은 격한 슬픔에 잠겨있었다. 그는 머리를 푹 숙인 채 대답했다.“사모님, 대장님께서…”무언가 눈치 채고 다리에 힘이 풀려 뒤로 넘어질 뻔한 온지유를 인명진이 부축해주었다.온지유는 한순간에 모든 힘을 빼앗긴 것처럼 고통스럽고 믿기지 않았다.“경호 씨, 지금 장난치는 거죠? 그 말이 진심 아니죠?”용경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사모님, 대장님께서는 전투 중 총알을 맞고 강으로 추락했습니다. 저희들이 오랫동안 찾았는데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 강에 사람을 포식하는 악어와 아나콘다가 서식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온지유는 힘이 풀린 채 온몸의 감각을 서서히 잃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여이현이 총을 맞고 추락하는 화면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인명진은 온지유를 막으며 설득하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율아, 우리가 강을 따라서 이렇게나 오래 찾아보았는데도 발견하지 못했잖아. 성재민 씨 쪽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것을 보니...”인명진은 오랜 수색에도 여이현이 보이지 않자 사망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수는 없으니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도 반드시 받아들여야 했다.온지유는 인명진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집을 세웠다.“이런 말 하지 마세요. 제 눈으로 시체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지 않을 거예요. 모두 돌아가세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현 씨를 찾아낼 거에요!”온지유는 멘탈이 붕괴되어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여이현의 시체만 발견되지 않는다면 살아있을 희망이 있었기에 이대로 멈추기 싫었다. 하지만 지금 위급한 상황이라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에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인명진은 온지유가 말을 들을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녀를 기절시켜 억지로 데려갔다.군영에 도착하니 신무열이 온지유를 데리고 Y국으로 돌아가려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인명진은 온지유를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도련님, 지금 이 상황에서 지유를 보내드릴 수 없어요. 지유가 여이현 씨를 찾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는데 도련님이 막무가내로 데려가시면...”자살하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비록 온지유는 아직도 여이현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온지유가 여이현을 자신의 목숨처럼 여기고 사랑하는데 Y국으로 돌아갔다가 감금이라도 당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컸다.신무열은 온지유가 했던 말과 그들에 대한 태도가 생각나서 한 발짝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혼미 속에서 깨어난 온지유는 눈을 뜨기 무섭게 여이현을 찾아 나서려 했지만 인명진에게 잡혔다.“너 지금 그 몸으로 어딜 가려고 그래? 온지유 정신 차려! 그냥 현실을 받아들여. 화국에서 이미 여이현 씨 사망 통지를 내렸다고.”온지유는 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심한 타격을 받았다.
익숙한 말투에 온지유는 고개를 번쩍 들고 홍혜주를 바라보았다. 홍혜주의 눈가에 은구슬 같은 눈물방울이 맺혀있었다.홍혜주의 옷은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고 얼굴에는 전투를 겪은 화약 흔적이 남아있어서 먼지를 뒤집어쓴 듯 초라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맞닥뜨리자 혼혜주는 빠른 발걸음으로 온지유에게 다가가서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유 씨, 저 돌아왔어요. 소대장님 소식 들었어요.”그녀는 병사들과 함께 전쟁터로 향했다. 그러다 적군의 대포에 쓰러져 여러 날 동안 혼미상태였다. 다시 눈을 떠보니 모든 기억이 회복되어있었다.그리고 영지도 돌아와서야 여이현의 희생 소식을 알게 되었다.홍혜주는 온지유가 여이현에 대한 깊은 감정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을 알고 이리로 황급히 달려왔다.온지유는 홍혜주를 본 순간부터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그녀는 자주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녀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히 돌아올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제일 기대했던 아이마저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그녀 곁을 떠나버렸다.“콜록, 콜록!”그녀는 너무 슬퍼 감정 기복이 심했는지 맹렬한 기침을 하다가 급기야 피를 토하고 말았다.이 장면에 옆에 서 있던 홍혜주는 소스라치게 놀라 했다. 다행히 인명진이 휴지를 가져다주며 홍혜주에게 온지유를 위로해 주라는 눈치를 줬다.홍혜주는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온지유 곁에 앉아 그녀의 손을 꼭 잡아줬다.“지유 씨, 전 지유 씨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 그리고 지유 씨가 지금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아요. 하지만 진정하시고 마음을 다잡으세요. 그래야 아이를 만날 수 있죠.”“뭐라고요?”온지유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했다.‘아이라니? 우리 아이는 이미 하늘나라로 떠난 것이 아니었나? 혜주 씨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거지?’온지유는 목에서 밀려오는 고통을 참으며 물었다.“혜주 씨, 무슨 뜻이죠? 무슨 소식을 알고 있는 거예요?”그
홍혜주는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현재 쓸개를 먹은 것처럼 목구멍이 쓰라렸다. 온지유가 이렇게 슬픈 얼굴로 남에게 애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온지유는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어 토끼처럼 빨간 두 눈으로 홍혜주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홍혜주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은 진실을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지유 씨, 아이의 행방을 알고 있는 사람은 소대장님뿐이에요. 하지만 소대장님께서는...”현재 여이현의 사망 통지가 널리 퍼진 마당에 믿으려 하지 않아도 방법이 없었다. 오랫동안 찾아보았는데도 여이현의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했으니 이미 건너지 말아야 할 다리 너머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오직 여이현만이 아이의 행방을 알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었다.온지유는 북받쳐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양 볼을 따라 쉴 새 없이 흘러내려왔다.“혜주 씨, 그 말 진심이세요? 절 속이시는 거 아니에요? 저는 제 아이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 저는...”온지유는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었다.홍혜주는 그 모습이 너무 가슴이 아파 온지유를 품에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지유 씨, 진짜예요. 살아만 있다면 뭐든 다 가능하죠. 소대장님께서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시고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데려오려는 속셈일 수도 있죠.”그녀는 이렇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온지유를 속이는 말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렇게 하면 온지유라도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온지유는 눈물을 닦으며 생각했다.‘이현 씨라면 모든 일을 잘 계획했을 거야. 그래야 이현 씨지.’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홍혜주의 말에 동의했다.“그래요. 혜주 씨 말이 맞아요. 더 강해져서 꼭 제 아이를 살아서 만날 거에요. 혜주 씨, 그동안 고생이 많았어요.”온지유는 붕괴한 멘탈을 다시 붙잡고 이성을 되찾았다.그녀는 아직도 홍혜주가 그녀를 보호하려고 심하게 다쳤던 일을 잊을 수 없었다. 홍혜주는 그녀 때문에 노승아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당시 홍
“날 보낼 생각이야?”인명진은 온지유 말속에 숨겨진 뜻을 눈치채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온지유는 잠깐 침묵을 지키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명진 씨, 세상에 헤어지지 않는 잔치는 없는 법이에요. 우리 모두 각자 걸어야 할 길이 있잖아요. 그리고 명진 씨는 저 때문에 이곳까지 온 거잖아요.”인명진에게 원래 자기만의 계획이 있었는데 온지유를 위해서 계획을 바꾸었다.“맞아, 너에게 일이 터지지 않았다면 나는 이곳에 오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지유야 나는 그냥 너를 위해서 움직이고 싶어. 내가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말이야.”온지유와 마주 앉아있는 인명진은 굳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의 눈빛 속엔 확고한 의지뿐만 아니라 온지유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었다.그녀는 인명진의 마음을 잘 알고 있지만 받아줄 생각은 없었다. 그녀 마음속은 여이현으로 가득하여 있고 지금 그가 행방불명이 되었으니 다른 사람에게 내어줄 자리가 없었다.그에 온지유는 모르는 체하며 입을 열었다.“명진 씨 인생은 명진 씨가 해야 할 일을 하며 보내는 거예요. 명진 씨는 약인 이라 저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제 곁에 남으려 한다는 거 알아요.”“지유야, 지금 이런 얘기를 꺼내기 적합하지 않다는 거 알아. 하지만 꼭 말해야겠어. 내가 직접 말하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할 것 같아. 지유야, 나는 널 좋아해.”온지유가 말했었다. 그녀는 온지유일 뿐 율이가 아니라고.그녀가 율이라 불리는 것을 꺼리니 고백하는 이 순간 인명진은 그녀를 더는 율이라고 부르지 않았다.온지유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인명진의 눈빛에는 사랑과 슬픔이 함께 깃들어 있었다.그는 말을 이었다.“지유야, 난 항상 네 곁을 지키면서 너를 챙겨줄 수 있어. 언제든지 네가 뒤를 돌아보기만 한다면 내가 그곳에서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진심 어린 고백에 온지유는 목구멍이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인명진이 아주 좋은 사람이라는 알고 있다. 하
말을 마친 여이현은 온지유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손을 내리고 유유히 사라졌다.온지유는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여이현을 잡으려 손을 뻗고 달려갔다. 하지만 여이현은 온몸이 투명해지며 빠른 속도로 사라져 버렸다.“여이현 이 나쁜 놈!”온지유가 꿈속에서 성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다.얼굴에서 촉촉한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어 만져보았더니 눈물이었다.이때 인명진이 신무열을 데리고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온지유의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신무열은 빠른 걸음으로 온지유에게 다가가서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부드러운 말투로 얘기했다.“지유야, 괜찮아. 그건 그냥 꿈일 뿐이야. 이왕에 나랑 같이 Y국으로 돌아가지 않을래?”여이현이 목숨을 잃은 지금 온지유를 홀로 이곳에 내버려 두려니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아버지께서 무슨 일이 있든 온지유를 Y국으로 데려오라고 명령을 내렸다.온지유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저는 무열 씨와 함께 떠날 생각이 없어요.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 거예요? 저는 율이가 아니라 온지유라고요! 저는 화국 경성사람이지 Y국 사람이 아니에요!”그리고 신무열의 손을 내팽개쳤다.지금까지도 자신의 신분을 인정하지 않는 온지유의 태도는 신무열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는 것과 같았다. 신무열은 그동안 온지유가 마음을 바꾸었으리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고집을 세울 줄 몰랐다.그는 어릴 적 기억이 문뜩 떠올랐다. 어린 시절 그들은 아주 화기애애한 남매였다.신무열도 온지유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가 계속 이대로 나온다면 방법이 없는 일이다.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온지유를 바라보며 설득했다.“지유야, 우리는 피를 나눈 남매야. 네가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우리의 몸에서는 같은 피가 흐르고 있어. 우리는 서로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극친한 존재라고. 지유야, 네가 우릴 미워하고 증오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하지만 한 번이라도 돌이킬 기회를 주면 안 돼?”신무열은 온지유 곁에 앉은
신무열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통해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려고 했다.하지만 온지유는 Y국과 더 얽히고 싶지 않았다.여이현에게 사고가 나지 않았을 때 그녀는 신무열과 협상을 통해 해독약을 가지려 했다.하지만 지금은...온지유는 여이현 생각을 할 때마다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린 것처럼 가슴 한구석에 아릿한 고통이 퍼졌다. 숨을 쉬는 것조차도 힘들게 느껴졌다.“무열 씨, 이곳에서 무사히 나가고 싶다면 지금 당장 떠나세요.”온지유는 천막 밖을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신무열은 잠깐 침묵을 지켰다가 그녀의 뜻을 따랐다. 떠나기 전 그는 온지유에게 다시 한번 부탁했다.“지유야, 기다리고 있을게.”말을 끝낸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온지유는 신무열과 함께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신무열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온지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인명진에게 물었다.“저 사람들이 명진 씨를 치료해 주겠다고 약속해서 다시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려는 거에요?”아까 인명진이 신무열을 데리고 들어온 것을 목격한 온지유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인명진은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지유야, 미안해. 나는 그냥 널 돕고 싶은 마음에 그런 거야. 너는 가족이 없잖아. 이곳에서 혼자 지내기 힘드니까 가족이 생긴다면 네가 행복해질 것 같아서 그랬어.”인명진의 얼굴에는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온지유는 그런 인명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사람은 다 현실적이기 마련이야. 명진 씨도 사람인데 평생을 이대로 살고 싶진 않을 거야.’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만약 명진 씨가 저 사람들과 거래를 했다면 제가 도와드릴게요.”인명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녀는 얼마든지 연기를 해줄 수 있었다. 인명진은 온지유가 율이 신분을 회복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지유야, 고마워. 네가 도와줄 수 있다니 정말 다행이야.”온지유는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다른 사람들은 다 가까이 다가가도 되는데 왜 나만 안 돼? 지금 날 따돌리고 있는 거잖아. 그런데 어떻게 가족처럼 지내? 애초에 날 진짜 가족으로 받아들일 생각도 없었던 거잖아!”소미는 말을 하면 할수록 괴로웠다.만약 온하윤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사라진다면 별이에게 남은 동생은 자신 한 명뿐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녀에게만 잘해줄 것이고 모든 사람들의 관심도 그녀에게만 쏟아질 것이니 온하윤 때문에 누군가 자신에게 짜증을 낼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약을 더 먹이는 거였는데.'‘그래, 어차피 약병은 내 가방에 있어. 그 나쁜 사람들이 그 약의 효과가 엄청나다고 했었어. 반병만 먹어도 어른 한 명은 거뜬히 죽일 수 있다고 했으니까 아기한테는 그 절반을 먹이면 되겠지.'‘기회를 봐서 조금만 더 먹이면 돼. 그러면 온하윤은 이 세상에서 완벽히 사라질 수 있어.'‘그렇게 되면 엄마도 볼 수 있고 별이 오빠도 온전히 내게만 잘해줄 거야.'“이상한 생각하지 마. 우린 가족이 맞아. 우리가 가족이니까 동생을 챙겨야 하는 거고 엄마도 배려해 줘야 하는 거야.”별이는 계속 설명했다.그러나 아무리 설명해도 소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가족은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이였다.그들은 한 가족이 되었다곤 하지만 온하윤은 유독 그녀만을 보면 울기 시작했다.게다가 다른 사람들이 온하윤에게 다가가는 것은 괜찮았지만 유독 그녀만 다가갈 수 없었다. 가족이라면 차별하지 않는가.“어쨌든 지금은 혼자 놀고 있어. 난 엄마를 도와서 하윤이를 돌봐야 하니까. 하윤이가 나아지면 그때 같이 놀아줄게. 그때 가서 우리 같이 아쿠아리움도 가자.”“그럼 그때 가서 하윤이도 데리고 갈 거야?”소미가 물었다.별이는 곰곰이 생각했다.“아마 당연히 데리고 갈 것 같아.”“그럼 그때 오빠 동생이 방금처럼 울면서 칭얼대면?”“그럼 다음에 가면 되지.”그녀가 한 질문에 별이는 빠르게 대답했다.어쨌든 그들에겐 시간이 많았으니 급할 건 없었다.오늘 갈 수 없다면 내일,
“이미 열이 내렸다고 하지 않았어?”소미는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온하윤을 보며 순간 또 나쁜 마음을 먹게 되었다.‘온하윤은 이미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잖아. 그런데 왜 나한테서 별이 오빠를 빼앗아 가는 거야?'분명 별이와 함께 놀고 싶었으나 별이는 그녀의 작은 요구도 들어주지 않았다.“응, 열은 내렸는데 그래도 좀 걱정돼서.”별이의 인내심은 점점 바닥을 보이었다. 어느새 소미를 보는 시선엔 짜증이 조금 섞여 있었다.“일단 혼자 놀고 있으라니까. 나 좀 그만 찾아와. 하윤이는 내 동생이니까 내가 걱정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별이는 전처럼 소미가 귀엽게 느껴지지 않았다.그의 친동생은 온하윤이지 소미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소미를 가족처럼 생각하면서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려고 했다.그런데 지금 온하윤은 아팠다. 언니로서 소미도 자신처럼 걱정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소미는 계속 자신을 찾아오며 놀아달라고 칭얼대고 있었다.“오빠?”소미는 당황하고 말았다.방금 별이는 있는 힘껏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처음이었다. 별이가 이렇게까지 짜증을 낸 적은.순식간에 눈에 눈물이 맺혔다.“미안해. 내가 오빠를 방해하고 있었어. 오빠한테 자꾸 놀아달라고 칭얼거리면 안 되는 건데. 그럼 오빠랑 같이 하윤이를 돌봐도 돼?”“그래. 나도 미안해. 일부러 짜증을 내려던 건 아니었어. 그냥 난 지금 놀 기분이 아니었을 뿐이야.”별이는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온하윤은 아기였기에 아무것도 몰랐다. 그랬기에 소미의 행동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 행동임을 몰랐다.하지만 아기들의 감은 정확했다.소미가 다가온 순산 조용하던 온하윤이 갑자기 큰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소미가 다가갈수록 더 크게 울어댔다.“하윤아, 뚝. 괜찮아. 오빠가 옆에 있잖아.”별이가 얼른 온하윤을 토닥여주며 달랬다.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미가 이 자리에 있는 한 온하윤은 울음을 그칠 생각이 없었다.빠르게 집 안의 사람들도 아기의 울음소리에 모여들었다. 소미는 덩그러니 서서 어찌
심지어 밤에도 편히 눈을 감지 못했다. 두 시간에 한 번씩 잠자리에서 일어나 온하윤의 상태를 살펴보았다.그녀는 아주 열심히 아기를 돌봤다. 온하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아기에게 분유를 제외한 다른 음식을 먹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알겠어요. 일단 들어가 보세요.”여이현은 증거가 없는 상태였다. 그랬기에 김명자를 붙들고 모든 책임을 돌릴 수 없었다.만약 전부터 집 안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두었다면 아마 누가 온하윤을 해친 것인지 바로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김명자는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비서가 그에게 연락했다.“대표님, 이미 찾아낸 자료를 전부 전송해 드리겠습니다.”비서가 찾은 자료엔 김명자의 가족 관계는 아주 단일했다.김명자에겐 딸이 한 명 있었다. 몇 년 전에 결혼해 남편과 함께 작은 마트를 운영하고 있었고 아이도 낳았다. 그녀에겐 빚도 없었을 뿐 아니라 통장에 거액의 돈이 오간 흔적도 없었다.업계에서 김명자에 대한 평가는 아주 좋았다. 그녀를 베이비 시터로 고용한 사람들은 대부분 아기에게 정성을 다한다고 말했고 친할머니 같다는 평가도 있었다.자료만 봐도 여이현은 김명자가 아주 좋은 베이비 시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온하윤은 대체 왜 갑자기 중독된 것일까?여이현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러다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온지유가 그에게 전화한 것이다. 그가 병원을 나서기 전보다 온지유의 목소리는 많이 평온해졌다.“이현 씨, 하윤이는 제때 치료받아서 지금 열도 내리고 있어. 많이 괜찮아졌어.”“응, 괜찮아졌다면 다행이야. 내가 지금 갈게.”여이현은 원래 병원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별이의 모습이 떠올라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별이를 데리고 가기로.“소미야, 나랑 같이 하윤이 보러 가지 않을래?”집을 나서기 전 별이는 고개를 돌려 소미에게 물었다.소미는 급하게 고개를 저었다.그녀는 지금 여이현의 두 눈을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다만 같은 공간에 있던 모든
온하윤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온지유는 피를 너무 많이 뽑은 탓에 안색이 창백했고 입술에는 혈색이 없었다.그녀는 힘겹게 의자의 손잡이에 의지하며 일어났다. 몸이 잠깐 휘청였지만 그래도 힘을 내서 병실 쪽으로 비틀대며 걸어가려 했다.“앉아서 쉬고 있어요. 저희가 다시 수혈해드릴게요. 지금 이 모습으로는 병실을 돌아가기는커녕 몇 발자국도 못가서 쓰러지게 되실 거예요.”간호사가 얼른 온지유의 팔을 잡으며 부축했다.온지유는 자신의 몸 상태가 어떤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무리하지 않았다. 다시 의자에 앉아 쉬면서 따듯한 차를 마셨다. 어리럼증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녀는 딸의 병실로 갈 수 있었다.온하윤의 상태는 처음 병원으로 찾아왔을 때보다 마노이 나아져 있었다. 더는 고열에 시달리지 않았지만 열은 있었다.“아마 세 시간쯤 지나야 정상 체온으로 돌아올 거예요. 만약 그동안 체온이 다시 올라간다면 바로 절 불러주세요.”의사가 세심하게 말해주었다.온지유는 주현도의 말을 전부 머릿속에 새겨듣고 있었다.의사가 나간 후 그녀는 딸 옆에 앉아 손을 뻗어 이마를 쓸어주었다.“아가야, 얼른 나아야 해.”한편 여이현 쪽.시동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당장 김명자 씨 가정 상황까지 전부 조사해서 나한테 보내요.”집안에 사람이라곤 몇 없었다. 별이는 친동생을 해칠 리가 없었기에 남은 가능성은 김명자였다.소미는 아직 어렸고 별이와 비슷한 또래였기에 절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여이현이든 온지유든 누구든 소미가 그랬을 거라곤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빠르게 차는 집 앞에 세워졌다. 여이현은 문을 열고 내렸다. 그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별이가 초조한 얼굴로 맞이했다.“아빠, 하윤이는 어때요?”“괜찮아. 열이 내렸으니까 곧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별이 먼저 들어가서 자. 아빠는 이모님이랑 할 얘기가 있으니까.”여이현은 별이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그리고 그는 김명자를 뒷마당으로
“둘 다 아니에요. 최근에 구한 베이비 시터 이모님이 대신 돌봐주고 있었어요.”이렇게 말하니 온지유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의사가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그다음으로 의사는 들고 있던 검사 결과를 그녀에게 건넸다.“하윤이는 중독으로 고열에 시달리고 있는 거예요. 다행히 제때 병원으로 데려와 치료할 수 있게 된 거고요. 만약 한 시간이라도 더 늦게 찾아왔다면 아마 정말로 다시는 못 보게 될 수도 있었을 거예요.”그 순간 온지유는 자신이 잘못 듣기를 바랐다.옆에 있던 여이현이 대신 검사 결과를 받았다. 하얀 종이엔 까만 글씨로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온하윤의 혈액에서 대량의 독 성분이 검출되었다고 말이다.“전에 우리 병원에서 베이비 시터가 아기한테 약을 먹이고 찾아온 사례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 이모님은 수면제를 먹인 거죠. 아기가 자꾸 우니까 수면제를 먹여서 온 하루 자게 만든 거예요. 그런데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요. 아기한테 독을 먹이다니. 이건 두 분 아기의 목숨을 앗아가려고 계획한 거나 마찬가지예요.”의사는 너무도 황당했다.이렇게나 어린 아기를 죽여서 무슨 이득을 손에 넣을 수 있단 말인가.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복수.“선생님, 얼른 제 딸 좀 치료해 주세요. 전 어떻게 된 일인지 가서 알아봐야겠어요.”온지유는 여이현을 보았다.두 사람은 함께 보낸 시간이 아주 길었기에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넌 하윤이 곁에 있어 줘. 내가 가서 알아보고 올게.”여이현은 그렇게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온지유는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작고 작은 몸에 가득 연결된 주삿바늘을 보며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그녀에게 대신 아파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정말이지 지금 당장 목숨이라도 바꿔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녀는 누군가 이 독을 어린 딸에게 아닌 자신에게 먹인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자신이 고통을 받는 건 얼마든지 괜찮았지만 어린 딸이 고통을 받으며 병원에 눈을 감고 누워있는
“엄마, 저도 갈래요.”별이는 온지유를 쫓아가며 큰 소리로 말했다.소미는 무의식적으로 별이를 붙잡으려 했으나 너무도 빨리 달려가는 별이에 공기만 잡았다.현관까지 걸어온 온지유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말했다.“별아, 엄마랑 아빠는 지금 정말로 정신이 없어서 별이까지 챙겨줄 수가 없어. 그러니까 별이는 집에 있어 줘. 집에는 이모님이 있으니까. 그래야 엄마랑 아빠도 마음 놓고 하윤이랑 병원에 갈 수 있을 것 같아.”비록 별이가 얌전하고 병원에 데리고 간다고 해도 칭얼대지 않으며 온하윤까지 돌봐줄 것이지만 병원엔 사람도 많고 그녀와 여이현은 별이에게 신경 써줄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가 만약 유괴범이라도 섞여 들어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만약의 상황을 위해 아이를 집에 두고 나가는 것이 나았다.“네. 그럼 엄마, 하윤이가 나아지면 바로 별이한테도 말해줘야 해요.”별이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곤 걸음을 멈추었다. 집을 나서는 온지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속으로는 온하윤이 얼른 나아 건강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오빠.”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소미는 인형을 들고 다가왔다.“우리 같이 소꿉놀이하자. 나는 얘 언니 할게, 오빠는 오빠 해.”“미안해, 소미야. 난 지금 소꿉놀이할 기분이 아니야.”별이는 고개를 저었다.지금 아픈 사람은 인형이 아니라 별이의 친동생이었다.그러니 소미와 함께 소꿉놀이할 마음이 있을 리가 있겠는가?소미는 입술을 틀어 물며 손을 뻗어 별이의 팔을 잡고는 작게 물었다.“오빠, 오빠는 하윤이가 아주 아주 좋아?”“당연하지. 난 하윤이가 너무너무 좋아. 나한테 하윤이는 우리 엄마랑 아빠 다음으로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라고.”별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별이가 동생을 잘 돌보게 된 것은 여이현과 온지유가 바쁜 이유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정말로 동생을 좋아했기 때문이다.소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떨구었다....한편 병원.온하윤이 너무도 어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응급실로 들
소미는 얼른 약병을 숨기며 가방에 넣고는 태연하게 다시 바닥에 앉았다.“소미야, 나 왔어. 방금 뭐 하고 있었어?”별이는 소미의 곁으로 다가갔다. 소미와 함께 놀고 싶었기 때문이다.여하간에 소미는 6살 즈음 되는 어린아이였기에 표정 숨기는 것에 능하지 않았고 별이의 맑은 두 눈을 똑바로 볼 엄두가 나지 않아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조금 졸려. 자고 싶어.”“그럼 좀 자. 이모님은?”“내가 배고파서 타르트 만들어 달라고 했어. 근데 지금은 너무 졸리니까 일단 좀 잘게. 이따가 말해.”소미는 소파에서 담요를 끌어당기며 얼굴까지 푹 뒤집어썼다.별이가 온하윤을 엄청나게 좋아했으니 만약 자신이 약을 먹였다는 사실을 별이가 알게 된다면 별이는 더는 자신과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영원히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여하간에 별이의 부모님을 해치지 않았고 별이한테도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별이 동생은...아직 어리고 말도 못 하니 여이현과 온지유가 또 한 명 낳으면 된다고 생각했다.빠르게 김명자가 갓 구운 타르트를 들고 돌아왔다.“소미가 방금 막 잠들었어요. 타르트는 여기에 놔주세요. 이따가 소미가 깨면 먹을 거예요.”별이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행여나 소미가 깰까 봐 말이다.김명자는 고개를 끄덕였다.별이는 혼자 책을 읽었다. 소미는 처음에 자는 척했지만, 나중엔 정말 자게 되었다.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져버렸다. 김명자는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온하윤을 보며 이상하게 생각했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본 순간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세상에! 하윤이가 열이 나고 있잖아?”“네? 제 동생이 아파요?!”별이는 고개를 확 들었다.다급했던 별이는 옆에 누가 잠들어있다는 사실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이 일어나 온하윤의 상황을 살펴보려 했다.“도련님, 일단 여기서 지켜보고 있어요. 내가 얼른 사장님이랑 사모님한테 가서 말하고 올게요.”김명자는 별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온지유는 소미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몰랐다. 그랬기에 종류별로 접시에 담아주었다.“먹어 봐, 입에 맞는 거 있으면 더 가지러 오면 되니까. 하지만 낭비하면 안 돼. 먹을 만큼 가져가야 해. 알았지?”“아주머니가 골라준 거라면 소미는 전부 좋아요.”소미는 정말로 음식을 낭비하지 않았다.온지유가 담아준 음식은 전부 먹어치웠고 수프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전부 마셨다.배를 채운 후 여이현은 그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소미는 처음에 어색해하면서 편히 놀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몇 개의 놀이기구를 타고 난 뒤 신나게 놀았다.“오빠, 난 회전목마가 좋아. 우리 한 번 더 타면 안 돼?”“아까 내가 큰 말에 탔으니까 이번엔 네가 큰 말에 타. 내가 작은 말에 탈게.”별이는 소미의 손을 잡았다.두 아이는 아직 어렸기에 위험한 놀이기구는 탈 수 없었다. 어린아이들이 타도 위험하지 않은 놀이기구를 전부 타본 뒤 마지막엔 온지유와 여이현과 함께 관람차를 탔다.관람차가 제일 높은 곳까지 올라갔을 때 소미는 두 손을 꼭 모아 말았다.“관람차가 제일 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들었어요. 전 오빠랑 오빠 가족이랑 평생 같이 살고 싶어요.”“그럴 거야.”온지유는 아이를 보며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가족 구성원이 넷이면 아주 좋았다. 다섯이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놀이공원에서 나온 뒤 여이현은 호텔로 운전했다. 돌아가는 길에 고속도로를 지나서 온하윤을 태우려고 했다.온하윤은 이틀 동안 아빠와 엄마, 오빠를 보지 못해 반가웠는지 작은 손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아주 좋아했다.“소미야, 봐봐. 하윤이는 내 여동생이야. 귀엽지?”별이는 소미를 데리고 온지유 옆에 서 있었다. 두 아이는 온지유가 안고 있는 온하윤을 보았다.소미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온하윤의 입가로 가져다 댔다. 온하윤은 먹을 것인 줄 알고 혀를 내밀며 소미의 손을 깨물려고 했다.여이현은 얼른 소미를 안아 올렸다.“안 돼. 하윤이한테 손가락 물리면 안
“그래, 별이한테도 친구가 생겼으니 우리도 둘만 있을 시간이 더 많아지겠지.”여이현은 손가락으로 온지유의 손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따듯하면서도 간지러웠다.온지유는 붉어진 얼굴로 그를 밀어냈다.“그러지 마. 아이들이 밖에 있다고. 만약 소리를 듣기라도 한다면 안 좋아.”별이는 아주 똑똑한 아이였다. 만약 별이가 그것이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면 온지유는 정말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정말이지 너무도 민망했다.“이 호텔은 방음이 아주 잘 되어 있어. 더구나 꼬맹이들은 지금 티브이에 정신이 팔렸잖아. 그래도 걱정된다면 티브이 음량을 더 높이면 되지.”온지유가 반박의 말을 하기도 전에 여이현은 이미 손을 뻗어 리모컨을 들고 오더니 음량을 두 개 정도 높였다.그리고 몸을 돌려 그녀에게 키스했다.그의 리드에 온지유는 몸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하늘에 어둠이 깔리고 나서야 두 사람의 몸은 떨어지게 되었다. 온지유는 티브이를 끈 뒤 녹초처럼 침대에 흐느적 누웠다.땀에 몸은 끈적거렸기에 너무도 샤워하러 욕실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움직이는 것이 귀찮았다.여이현은 욕실로 들어가 욕조에 따듯한 물 받아놓았다. 그리고 다시 나와 온지유를 안은 후 천천히 그 욕조 안으로 내려놓았다.온지유는 몸을 감싸는 따듯한 온기에 온몸이 나른해졌다.“지유야.”여이현이 나직하게 그녀를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너무도 매혹적이었다.“나 오늘 너랑 같이 자면 안 될까?'온지유는 하마터면 그의 목소리에 홀려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다행히도 정신이 번쩍 들어 그의 요구를 거부했다.“안 돼. 꿈도 꾸지 마. 내일 아이들이랑 놀이공원도 가기로 했단 말이야.”이미 조금 전의 일로 힘이 전부 빠진 그녀였다. 만약 또 반복하게 된다면 내일은 아마 눈을 뜰 수 없을지도 모른다.여이현은 점점 더 짙은 미소를 지었다.“얼른 씻어. 밖에서 기다릴게.”그도 온지유를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목욕을 마친 온지유는 샤워 가운을 입고 나와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여이현은 자연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