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보낼 생각이야?”인명진은 온지유 말속에 숨겨진 뜻을 눈치채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온지유는 잠깐 침묵을 지키더니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명진 씨, 세상에 헤어지지 않는 잔치는 없는 법이에요. 우리 모두 각자 걸어야 할 길이 있잖아요. 그리고 명진 씨는 저 때문에 이곳까지 온 거잖아요.”인명진에게 원래 자기만의 계획이 있었는데 온지유를 위해서 계획을 바꾸었다.“맞아, 너에게 일이 터지지 않았다면 나는 이곳에 오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지유야 나는 그냥 너를 위해서 움직이고 싶어. 내가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말이야.”온지유와 마주 앉아있는 인명진은 굳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의 눈빛 속엔 확고한 의지뿐만 아니라 온지유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었다.그녀는 인명진의 마음을 잘 알고 있지만 받아줄 생각은 없었다. 그녀 마음속은 여이현으로 가득하여 있고 지금 그가 행방불명이 되었으니 다른 사람에게 내어줄 자리가 없었다.그에 온지유는 모르는 체하며 입을 열었다.“명진 씨 인생은 명진 씨가 해야 할 일을 하며 보내는 거예요. 명진 씨는 약인 이라 저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제 곁에 남으려 한다는 거 알아요.”“지유야, 지금 이런 얘기를 꺼내기 적합하지 않다는 거 알아. 하지만 꼭 말해야겠어. 내가 직접 말하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할 것 같아. 지유야, 나는 널 좋아해.”온지유가 말했었다. 그녀는 온지유일 뿐 율이가 아니라고.그녀가 율이라 불리는 것을 꺼리니 고백하는 이 순간 인명진은 그녀를 더는 율이라고 부르지 않았다.온지유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인명진의 눈빛에는 사랑과 슬픔이 함께 깃들어 있었다.그는 말을 이었다.“지유야, 난 항상 네 곁을 지키면서 너를 챙겨줄 수 있어. 언제든지 네가 뒤를 돌아보기만 한다면 내가 그곳에서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진심 어린 고백에 온지유는 목구멍이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인명진이 아주 좋은 사람이라는 알고 있다. 하
말을 마친 여이현은 온지유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손을 내리고 유유히 사라졌다.온지유는 시야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여이현을 잡으려 손을 뻗고 달려갔다. 하지만 여이현은 온몸이 투명해지며 빠른 속도로 사라져 버렸다.“여이현 이 나쁜 놈!”온지유가 꿈속에서 성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다.얼굴에서 촉촉한 무언가가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어 만져보았더니 눈물이었다.이때 인명진이 신무열을 데리고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온지유의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신무열은 빠른 걸음으로 온지유에게 다가가서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부드러운 말투로 얘기했다.“지유야, 괜찮아. 그건 그냥 꿈일 뿐이야. 이왕에 나랑 같이 Y국으로 돌아가지 않을래?”여이현이 목숨을 잃은 지금 온지유를 홀로 이곳에 내버려 두려니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아버지께서 무슨 일이 있든 온지유를 Y국으로 데려오라고 명령을 내렸다.온지유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저는 무열 씨와 함께 떠날 생각이 없어요.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 거예요? 저는 율이가 아니라 온지유라고요! 저는 화국 경성사람이지 Y국 사람이 아니에요!”그리고 신무열의 손을 내팽개쳤다.지금까지도 자신의 신분을 인정하지 않는 온지유의 태도는 신무열의 가슴에 못을 박고 있는 것과 같았다. 신무열은 그동안 온지유가 마음을 바꾸었으리라 생각했는데 여전히 고집을 세울 줄 몰랐다.그는 어릴 적 기억이 문뜩 떠올랐다. 어린 시절 그들은 아주 화기애애한 남매였다.신무열도 온지유를 자극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가 계속 이대로 나온다면 방법이 없는 일이다.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온지유를 바라보며 설득했다.“지유야, 우리는 피를 나눈 남매야. 네가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우리의 몸에서는 같은 피가 흐르고 있어. 우리는 서로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극친한 존재라고. 지유야, 네가 우릴 미워하고 증오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하지만 한 번이라도 돌이킬 기회를 주면 안 돼?”신무열은 온지유 곁에 앉은
신무열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통해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려고 했다.하지만 온지유는 Y국과 더 얽히고 싶지 않았다.여이현에게 사고가 나지 않았을 때 그녀는 신무열과 협상을 통해 해독약을 가지려 했다.하지만 지금은...온지유는 여이현 생각을 할 때마다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린 것처럼 가슴 한구석에 아릿한 고통이 퍼졌다. 숨을 쉬는 것조차도 힘들게 느껴졌다.“무열 씨, 이곳에서 무사히 나가고 싶다면 지금 당장 떠나세요.”온지유는 천막 밖을 가리키며 차갑게 말했다.신무열은 잠깐 침묵을 지켰다가 그녀의 뜻을 따랐다. 떠나기 전 그는 온지유에게 다시 한번 부탁했다.“지유야, 기다리고 있을게.”말을 끝낸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났다.온지유는 신무열과 함께 떠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신무열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온지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인명진에게 물었다.“저 사람들이 명진 씨를 치료해 주겠다고 약속해서 다시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려는 거에요?”아까 인명진이 신무열을 데리고 들어온 것을 목격한 온지유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인명진은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지유야, 미안해. 나는 그냥 널 돕고 싶은 마음에 그런 거야. 너는 가족이 없잖아. 이곳에서 혼자 지내기 힘드니까 가족이 생긴다면 네가 행복해질 것 같아서 그랬어.”인명진의 얼굴에는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온지유는 그런 인명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사람은 다 현실적이기 마련이야. 명진 씨도 사람인데 평생을 이대로 살고 싶진 않을 거야.’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런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만약 명진 씨가 저 사람들과 거래를 했다면 제가 도와드릴게요.”인명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녀는 얼마든지 연기를 해줄 수 있었다. 인명진은 온지유가 율이 신분을 회복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지유야, 고마워. 네가 도와줄 수 있다니 정말 다행이야.”온지유는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여진숙은 여이현의 어머니였다.계다가 여이현에게 큰 사고가 발생했기에 이 상황에서 여진숙이 온지유에게 전화를 바꿔달라는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온지유는 여이현이 제일 사랑하는 여인으로서 이 통화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온지유! 차라리 네가 죽지 그랬니!”온지유가 전화를 받자마자 여진숙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전화 너머에 있는 여진숙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온지유는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이현 씨의 죽음은 사고 때문이에요. 모든 것이 제 탓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이현 씨 진짜 신분은 어머님께서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잖아요.”“온지유, 내가 널 가만히 놔둘 것 같아? 두고 봐.”‘승아의 죽음은 모두 온지유 이년 때문이야! 온지유가 끼어들지만 않았다면 승아는 이현이랑 결혼할 수 있었을 텐데.’여진숙은 온지유에게 저주를 내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여이현은 Y국 온지유 곁에서 목숨을 잃었다.여진숙의 말을 들은 온지유는 입꼬리를 비틀어 웃으며 아랑곳하지 않았다.“마음대로 해보세요. 제가 끝까지 가줄 테니까.”그녀는 한치 두려움도 없이 맞서 싸울 준비를 했다. Y국에 있어서가 아니라 더는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말을 마친 그녀는 통화를 끊어버렸다.옆에서 이 장면을 목격한 성재민은 온지유의 차가운 태도에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는 온지유와 여진숙이 서로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이야기를 나눌 줄로 알았는데 이렇게 서로를 용납하지 못할 줄이야.성재민은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조금 전으로 돌아가 전화를 바꿔주던 자신을 막고 싶었다. 이때 문뜩 여이현의 엄숙하고 냉담한 얼굴이 떠올랐다. 여이현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한바탕 혼을 낼 것이 분명했다.“지유 씨,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상황을 파악하고 전화를 넘겨야 하는데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성재민은 선생님께 혼이 나는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단정한 자세로 온지유 앞에 서 있었다.그는 여이현의 부하였기 때문에 온지유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모시고 있었다.온지
대답을 기다리는 온지유의 눈빛은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나민우는 몇 초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모두 내가 이미 죽은 줄로 알고 있을 거야. 지금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들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지낼 텐데 안부를 전하면 오히려 더 걱정하실 거야. 그리고 난 아직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잖아.”나민우는 아직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 가족들을 어떤 태도로 만나야 할지 몰랐다. 그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공허감에 휩싸여 무엇이든 해내서 그 구멍을 막고 싶었다.좀 더 시간이 지나서 기억이 돌아온다면 그때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슨 영문인지 온지유를 만날 때마다 나민우는 호흡이 가빠지며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린 것처럼 가슴 한구석에 아릿한 고통이 퍼졌다.“그래 네 말이 맞아. 그럼 네 마음대로 해. 근데 네가 여긴 위험하다고 했으면서 무섭지도 않냐?”온지유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인생길의 끝은 모두 죽음이야. 난 길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잖아. 지금 뭐라도 해서 나 자신을 꽉 채우고 싶어.”“그래.”그 대답을 듣고 온지유는 어느 정도 나민우가 이해가 되었다.온지유는 대화를 마친 뒤부터 홍혜주와 함께 강을 따라 여이현을 찾아다녔지만 아무런 발견이 없었다. 연이어 며칠 동안 여이현의 행적이 보이지 않자 온지유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홍혜주의 손을 잡고 애원하는 말투로 물었다.“혜주 씨, 전 이현 씨를 찾지 못하겠어요. 제 아이가 살아있다는 것 말고 다른 정보는 없어요? 이현 씨가 누구와 자주 통화를 하거나 어느 장소를 입에 올린 적 없어요?”온지유는 너무 지친 나머지 여이현 대신 아이를 찾으러 나섰다.홍혜주는 머리를 저으며 대답했다.“모르겠어요. 혹시 소대장님께서 가족에게 맡겨둔 게 아닐까요?”홍혜주는 자기의 추측을 털어놓았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여진숙이 여이현의 아이를 돌봐줄 리가 없었고 여재호는 밖에 다른 가정을 꾸리고 있었기에 더욱 불가능했다.이때 기발한 아이디어가 온지유의 뇌리
온지유는 홍혜주를 곁에 두고 인명진에게 물었다.“혜주 씨가 알고 있는데 명진 씨가 모르고 있었다고요? 인명진 씨, 지금까지도 절 속이실 생각이세요?”말을 하는 온지유의 낱카롭고 차가운 눈길이 인명진을 향했다.인명진은 얇은 입술로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지유야, 내가 다른 사람을 속이면 속였지 너에게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 내가 널 알아보고도 말을 하지 않은 이유는 네가 이미 온지유가 되어있었기 때문이야. 과거의 기억을 잃은 너를 끌어들이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법로의 딸인 너에게 그곳은 아주 위험한 곳이야.”Y국 내부 모순이 점점 격화되고 있는 지금 인명진은 법로를 초월하기 위해 더 위험한 독약을 연구 개발하고 있으며 심지어 법로의 자리를 엿보고 있었다.법로는 한마음 한뜻으로 Y국의 세력을 키워나가고 있었기에 양극 분화가 심했다.온지유는 마음이 여린 착한 사람이고 그녀만의 삶을 살아나가고 있다. 그래서 인명진이 온지유에게 마음속 깊이 숨겨둔 암흑한 생각을 털어놓는다면 그녀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인명진이 멍을 때리는 것을 발견한 온지유가 미간을 찌푸리며 가까이 다가왔다.얼마나 가까웠던지 인명진의 피부 모공마저 똑똑히 보일 정도였다.인명진은 두 사람의 위험한 거리에 숨이 한껏 거칠어졌다.“널 만나기 전과 후에 생긴 일들을 생각하고 있어. 지유야, 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난 네 아이의 행방을 안 순간 너에게 알려줬을 거야. 여이현 씨와 약속한 일은 네 몸속의 독소를 제거하는 일뿐이야.”온지유가 입술을 오므리며 말을 하기 전에 인명진이 한마디 덧붙었다.“지유야, 난 더는 아는 게 없어.”뒤이어 홍혜주가 미안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지유 씨, 미안해요. 도움이 되지 못했네요.”온지유도 더는 할 말이 없었다.일의 자초지종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이의 행방을 모르고 여이현은 지금까지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래도 홍혜주와 나민우가 살아있어서 천만다행이다.신무열과 법로는 아직도 온지유를
나민우는 온지유의 곁에 있어야만 마음속의 불안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그래? 그럼 같이 가자.”...5년 뒤.온지유가 여진그룹 사무실에 발을 들이자마자 배진호가 서류를 가지고 급히 찾아왔다.“지유 씨, 이 서류 좀 보세요. S국 z그룹에서 우리 장사를 낚아챘어요. 이번 장사 때문에 저희는 6조를 날려 먹었습니다.”여이현이 이혼서류를 작성하며 재산양도서까지 온지유에게 넘겨주었기에 현재 여진그룹 제일 큰 주주는 온지유였다.그녀는 돌아오자마자 여진그룹을 물려받고 열심히 경영했다. 왜냐하면 여진그룹은 여이현이 이 세상에 남겨놓은 유일한 산업이었고 여이현이 온지유에게 이 모든 것을 보호해달라고 부탁했었기 때문이다.여이현이 세상을 떠났으니 온지유는 그가 보호하려던 모든 것을 열심히 수호할 것이다.배진호의 말에 온지유는 재빨리 결정을 내렸다.“그렇다면 S국 z그룹과 정식으로 대결을 펼쳐봅시다. 아 그리고 원래 저희랑 합작하기로 했던 회사 책임자에게 연락해서 제가 직접 가볼 것이라고 전해주세요.”온지유는 여의현 곁에서 7년 동안 배진호와 함께 회사의 크고 작은 사무를 해결했기에 이 정도 일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그뿐만 아니라 지금은 제일 큰 주주로서 모범을 보여야 했다.배진호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알겠습니다. 먼저 홍혜주 씨에게 급히 연락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저희는 오후에 출발하는 게 어떻습니까?”온지유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나지막한 목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오후에 출발하겠다니? 어딜 가려고?”두 사람이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니 인명진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하얀 셔츠차림으로 금테 안경을 쓰고 밖으로부터 들어왔다.그의 손에는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온지유를 따라 돌아온 뒤 인명진은 진료소를 차리고 매달마다 온지유의 건강검진을 해주었다. 그들은 인명진을 보고서야 온지유가 건강검진을 받을 날임이 생각났다.온지유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저는 진호 씨와 S국에 가보려고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 꼭 가봐야
배진호는 급히 말했다.“지유 씨, 먼저 방에 들어가 계세요. 제가 먼저 나서겠습니다.”여진숙은 늘 온지유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여이현이 사망한 지금 배진호는 그의 부탁을 받은 사람으로서 온지유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이에 온지유는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아니에요. 제가 직접 뵐 거예요.”배진호가 한두 번은 막아줄 수 있더라도 매번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온지유는 배진호의 어깨를 쓰다듬고 여진숙을 만나러 내려갔다.여진숙은 모란꽃이 새겨져 있는 흰색 치마를 입고 서 있었다. 에메랄드그린 보석을 달고 있는 그녀는 온유하고 우아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눈빛은 독기를 머금고 있었다.여진숙은 온지유를 보자마자 건방진 태도로 따졌다.“온지유, 넌 무슨 얼굴로 이곳으로 돌아온 거니?”여진숙은 하이힐을 신고 온지유에게 달려왔다. 막무가내로 휘두른 손찌검은 공중에서 온지유에게 막혔다. 온지유는 여진숙의 손목을 잡고 뒤로 꺾으며 뿌리쳤다.여진숙이 뒤로 몇 걸음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했다. 그녀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온지유 네가 감히 날 밀어? 정말 하늘 무서운 줄을 모르는구나!”지금의 온지유는 눈빛으로 굳센 의지를 나타냈고 옛날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다.온지유의 작은 몸에 이리도 강한 힘이 존재하고 있다니.온지유는 도도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할 말이 있으면 빨리하세요. 손찌검이나 하시지 말고. 제가 지금 많이 참아주고 있는 거예요.”온지유는 일을 해결하러 왔지 괴롭힘을 당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온지유, 네가 뭔데 이렇게 기세가 등등한 건데? 이현이는 너 때문에 죽은 거잖아!”여진숙은 분노에 찬 두 눈으로 온지유를 바라보며 소리쳤다.노승아는 온지유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되었는데 끝까지 그녀의 신분을 밝혀주지 못했다.여이현의 이름 세글자는 날카로운 비수처럼 온지유의 심장에 꽂혔다. 여이현의 죽음은 온지유에게 여전히 말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그래서 고작 이 말 하시려고 찾아온 거예요? 부